지난 몇 주 동안,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옛 편지들을 정리했다. 내가 집에 보낸 편지들과 부모님이 나에게 부치신 편지들이 사과박스 두 개에 가득하다. 1982~90 그리고 1994~97, 그리니까 11년간 부모와 아들 사이에 평균 2주에 한 통씩 오간 편지가 다행히 거의 대부분 보존되어 있다. 거기다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와 카드, 엽서도 한아름이다. 비록 다 다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무작위로 꽤 많은 편지들을 읽으면서 옛생각이 많이 났다. 읽으면서 쑥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저절로 웃음도 많이 나왔다. 여행길에서 보낸 꽤 많은 그림엽서들을 보면서 지구 어디선가에서 여행하고 있던 내 자신을 떠올렸고, 학기중엔 아버지와 학과공부, 청강과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내용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께서 지도교수 이상으로 대학생이었던 나의 공부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격려를 해주셨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과 힘이 되었고.....

그 많은 편지더미 중에 유일하게 개봉이 안된 두터운 편지를 한 통 발견했는데, 1997년 어버이날에 아버지께서 당시 미국 보스턴에 유학 중이던 나에게 부치려고 쓰셨다가 어떤 이유인지 의도적으로 발송을 안하신 편지였다. 상당히 감성적으로 쓰셨는데, 그 이후 7년이 지난 시점에서 내가 처음 읽게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마치 바로 옆에서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세상에서 부모님만큼 자식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되었다.

 

1997년 5월 8일

사랑하는 범석에게

요즘은 안정된 마음으로 학업에 열중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며칠 전 전화통화가 모처럼 안정을 되찾은 너의 마음에 또 물결을 일으키지 않았나 걱정이 되는구나.

1994년 7월 6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너를 떠나보내며, 자랑과 기쁨에 차 있어야할 내 마음이 왜 그렇게도 허전하였을까? 너를 어린 나이에(16세) 독일에서 난생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떠나보내면서도 나의 마음은 그때 김포공항에서처럼 허전하지 않았다.

너가 처음 집을 떠난 후 너는 씩씩하고 부지런하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젊은이로 자라, 자랑스런 Berkeley대학의 우등 졸업생으로 귀국하였다. 그 해가 1990년이었던가? 그 후 너는 한국에서 자랑스런 군대생활과 모범적인 서울대생으로 눈부시게 활약했고, 또한 너무도 보람찬 학교생활을 했다. 너의 한국생활에서의 기여와 보람은 포철장학금으로 보답되었다고 믿는다. 게다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얻어진 하버드대학원의 입학허가는 너를 더욱 개선장군처럼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만들었다.

이 백전백승의 개선장군을 떠나보내면서 나는 왜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을까?

첫째는, 너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내가 부모로서 좀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우리는 너무도 오래 떨어져 살았으며, 가족이 함께 한 그 짧은 기간(4년?)이나마 지난날 못 다한 사랑과 행복을 흐뭇하게 베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우리의 오랜 헤어진 삶은 - 특히 정서적 성숙기의 - 서로의 생각과 이해를 엇갈리게 했다. 이에는 서로의 삶의 문화적 차이에도 기인한바 있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너의 한국생활 중에도 일어났고, 특히 너가 떠나기 전날의 의견차이에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못난 아버지의 소이라 생각한다.

이런 만감의 생각들이 너를 다시 떠나보내며 기어이 내 눈을 눈물로 흐리게 하드구나.

둘째로, 그때 너는 한국을 떠나기를 아쉬워했다. 하버드대학원의 입학을 1년 연기 신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못해 떠나는 사람의 애처로움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다만 너가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한국생활, 가족, 친구, 학교생활의 보람 그리고 외국생활의 외로움과 무한경쟁생활(공부)에 대한 지침......이런 것들이 너로 하여금 떠나기를 주저하게 하는 줄 생각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더 중요한 학업의 성취를 위해서는 어느 때고 다시 떠나야할 처지가 아닌가를 생각할 때......그리고 다시 돌아와 더 큰 보람을 위해 일할 것을 생각할 때 자잘한 정에 매달리지 말고 선뜻 떠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범석아! 그러나 이 애비도 그때 너가 왜 한국을 떠나기를 아쉬워했으며 하버드대학원 입학을 1년 연기할 것을 생각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구나! 이번에 우연히 너의 그때의 일기장을 훔쳐보다가 그때 너가 "젊음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애비로서 미쳐 그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이제사 너무도 가슴이 아파오는구나!

셋째, 나는 언제나 너의 "무한욕심"을 두려워했다. 너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바로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겼다. 너의 오랜 여행경험이 그러했고......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런 이들이 다행이 대부분의 경우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런 일들을 두고 나는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은 운에 의존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운이란 다만 노력하는 가운데 어쩌다 주어지는 기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 기회를 타고 자기의 욕망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는 이 행운의 성취에 대해 나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것으로 그리고 언제나 그러할 것으로 오만한 생각을 키워온 것은 아닐까?

넷째, 나는 너의 "자유주의적 이상주의"를 두려워한다. 자칫하면 현실도피의 은거처이거나 현실패배자의 자기변호방패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추상적일 수도 있지만, 현실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더욱이 한국사회의 현실을 내가 살아가야 할 현실로 받아들이자. 그 현실 속에서 더불어 살면서 그들이 따르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자. 너의 현실에 대한 냉소는 어쩌면 너의 무능의 변명이 될 수도 있다. 구름을 타고 홀로 높은 곳을 떠다니는 이상주의가 아니라 땅위에서 더불어 땀흘리며 웃고 우는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생활인이 되자!

범석아!

어쩌면 이런 나의 생각들은 이미 너가 간파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하느님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남 앞에 나를 자랑하기에 앞서 항상 나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귀한 것을 얻었을 때는 언제나 그것이 내 능력에서 얻은 것이라기보다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과분한 은혜로 생각하고 감사할 줄 알자! 크고 높은 것은 언제나 적은 것이 오랜 시간을 두고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 적은 것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젊은 날의 욕망"은 가장 귀한 보배. 그러나 귀한 것일수록 깊이 감추어 남이 엿보고 탐내지 않게 간직하는 법이 아니니? 그 욕망이 현실로 이루어졌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쫓아와 그 귀함을 축복해 줄 것이다. 그 탄생의 기쁨을 위해 우리는 고난을 참고 남모르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너의 나이도 30세. 너의 일은 너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너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부모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효심)은 우리도 잘 알고 기특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의 생각 때문에 너의 생각과 할 일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홀로 서서 홀로 걸어가는 독립과 자립의 앞날이기를 바란다. 그것은 실로 외로운 길. 그러나 삶이란 이 고독과의 긴 투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고독과의 투쟁에서 이기는 자가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너의 앞날은 아직 멀고 창창하다. 일시적인 고난에 좌절하지 말고 7전8기 "오뚝이 정신"을 갖자.

사랑하는 범석이의 앞날에 건강하고 밝은 새길이 활짝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in advance) 졸업 축하한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아버지가 내게 보낸 다른 편지 몇 통은 타이핑해서 http://www.haksodo.com/moi-1-8에 올려놓았다.

 [장영희의 문학의 숲] 창가의 나무

〈내 방에는 커다란 창이 있고, 창 바로 옆에는 나무가 하나 있다. 내 일상의 하루하루는 이 나무와 시작해서 이 나무로 끝난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하트 모양의 나뭇잎들이 투명한 아침 햇살에 찬란한 금테를 두르고, 오늘같이 화창한 봄날에는 창문을 열면 마치 바다냄새 같은 나무 향기가 나는 것 같다. 긴 하루가 지나고 침대에 누우면 달이 나뭇가지에 걸리고,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하나는 마치 작은 깃발처럼 현실보다 훨씬 좋은 꿈의 세계로 초청한다.

창가의 나무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사는 방법을 가르친다. 봄에는 재생의 기쁨을, 여름에는 성장의 보람과 생명력을, 가을에는 희생과 성숙을, 그리고 겨울에는 인내와 기다림을 가르친다. 조이스 킬머는 ‘나무’라는 시에서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는/ 내 결코 볼 수 없으리/ 온종일 하느님을 바라보며/ 잎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시는 나 같은 바보가 만들지만/ 나무는 오직 하느님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노래했고, 타고르는 “나무는 땅이 하늘에 말하는 언어”라고 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창가의 나무’라는 시를 읽는 지금도 나무는 내 책상 위로 그림자 물결을 던지고 서 있다. “내 창문가의 나무, 창문 나무/ 밤이 오면 나는 창틀을 내린다/ 그러나 너와 나 사이에는 커튼이 드리워지지 않기를….”〉

우연히 오래 전에 어느 대학 영자 신문의 청탁을 받고 쓰다가 마무리가 생각이 안 나서 그만두었던 ‘나무’라는 글을 발견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읽으니 마치 내 글이 아닌 것처럼 목소리가 생경하다. 지금의 내 글들보다 훨씬 더 낭만적, 아니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지금은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의 내 방 창문은 옆집 벽과 맞닿아 있고, 글 속의 나무 백일홍은 이사 와서 뜰 한구석으로 옮겨졌지만, 솔직히 말해 그 나무를 제대로 쳐다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오래 전 글에는 아직도 조금 삶의 여유와 낭만이 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있다. 요새 내가 쓰는 글에는 삶의 여유보다는 부대낌이, 낭만보다는 현실이, 그리고 자연보다는 인간이 더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슬픈 일이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학 때부터 지독한 근시였던 내가 삶의 가까운 쪽, 앞쪽, 아름다운 쪽만 보았다면, 원시가 된 지금은 삶의 좀 더 먼 쪽, 뒤쪽, 그리고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쪽도 눈에 들어온다. 삶 속에는 달콤한 꿈, 야망, 낭만적 환상, 별, 장미꽃밭, 아름다운 숲, 향기로운 미풍, 연인과 만나는 호텔 스카이라운지, 아이들이 분홍빛 조가비를 줍는 백사장이 있다. 하지만 삶 속에는 실패와 배신, 위험, 좌절도 있고 찌개가 타는 부엌, 가족 간의 사소한 다툼, 악쓰고 우는 아기도 있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소리쳐대는 시장통에도, 노동자들이 등짐을 져 나르는 건설현장에도, 어깨를 스치며 다니는 복잡한 거리에도 삶은 있다. 삶은 사람들이 울고 웃고 싸우고 상처를 주고받고, 그리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곳이면 어디에든 있다.

 
   
  ▲ 장영희 서강대 교수
   
‘나무’라는 글을 쓴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야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는지 알 것 같다. 그 글에서는 프로스트의 시 ‘창가의 나무’의 첫 부분만 인용했었는데 아마 이 시의 진정한 의미는 마지막 두 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의 머리가 바깥 기후에 시달리듯/ 내 머리는 내 안의 풍파에 시달린다.”

여전히 뜰 한구석에 서있는 나무는 변화무쌍한 바깥 기후에 시달리고 있고, 나는 내 안의 풍파를 견뎌내면서 조금씩 성숙의 나이로 다가간다.

(서강대 영문과 교수·조선일보 Books 서평위원)

  

추억의 사진 한 커트

1979년 5월 3일,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아마도 학교 수업시간에 어버이날 집에 편지쓰기를 해서 쓴 편지 같다

1976년 12월 7일자 직인이 찍혀있는 미국에서 날아온 편지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동네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보낸 편지같다

보내는 사람 주소에 미국인 성이 적혀있는 것으로 봐서,

친구 어머니가 국제결혼을 한 것 같기도 하다.

키가 많이 자라 143cm나 된다고 자랑하는 친구의 말과

(당시면 8살) 내 영어철자가 틀렸다고 자랑스럽게 고쳐주는 친구가 귀엽기만 하다.

<말聯 `억세게 운나쁜' 날치기범 화제>
(방콕=연합뉴스) 조성부 특파원= 말레이시아는 요즘 날치기 범죄가 극성을 부려당국이 `총비상' 태세에 들어가 있다. 날치기범들은 주로 오토바이를 탄 채 지나가는 여성의 핸드백을 낚아채 그대로 뺑소니치곤 한다.

이런 가운데 말레이시아의 일간 영자지 `스타'는 5일 범인으로서는 `억세게 운나쁜' 날치기 사례를 하나 소개했다. 이는 한 성직자가 4일 오전 세렘반이라는 곳에서 어깨에 맨 가방을 날치기 당한 이야기.

스타지는 날치기범이 낚아챈 이 성직자의 가방에 현금이나 귀중품은 전혀 없었고 종교 관련 서적들만 들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날치기를 당한 아난 고피(32)라는 성직자는 날치기범들이 가방안에 있는 종교서적들을 읽고 `회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성직자는 또날치기범들이 종교 서적들을 읽고 자기들의 행위를 뉘우친 다음 책은 돌려주면 고맙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피씨는 날치기 당한 가방에 종교 서적들과 종합비타민제 몇알만 들어 있었다고 이야기하자 도움을 주고자 현장에 몰려든 행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고 밝혔다.

그는 은행의 현금자동인출기(ATM)에서 현금을 찾는 모습을 지켜본 날치기범 2명이가방안에 돈이 들어있을 것으로 짐작해 낚아챈 것 같다며 그러나 돈은 허리춤에 찬전대속에 있었다고 말했다.

(끝)

너는 아느냐, 미지의 나라에 대한 향수와 조바심 나는 호기심,

우리들을 비참한 일상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이 알 수 없는 열병을?

- 보들레르 '여행에의 초대'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