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우리네 인간됨의 일부이고,

그 신성한 신비로움을 어느 정도 인식하거나 경험하지 않고서는 사람을 사람이라 말할 수 없다.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풀을 스치며 지나는 바람이 더 이상 인간의 영혼, 바로 이 살과 뼈의 일부가 되지 못할 때,

인간은 동물의 완결성이나 완전함도 갖지 못하고 진정한 인간성에서 나오는 천부의 권리도 잃어버린 채,

말하자면 우주의 무법자가 되어 버린다.

언젠가 다른 지면을 통해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인간은 인간 이상이 될 수도 있고 이하가 될 수도 있으며, 둘 다 괴물이지만, 더 두려운 것은 후자이다.”

 

- 1949년 1월, 헨리 베스톤Henry Be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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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금년 여름에도 능소화가 예쁘게 피었다

가을의 기미가 전혀 안보이던 입추 저녁의 학소도

작년에 해거리를 하더니 금년엔 머루가 풍년을 이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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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동물을 바라보는 더 현명한, 그리고 어쩌면 더 신비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우주적 자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복잡한 기술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문명세계의 인간들은 저마다의 지식이라는 유리창을 통해 생물을 관찰하고, 그렇기 때문에 깃털 하나가 지나치게 확대되기도 하고, 이미지 전체가 왜곡되기도 한다. 우리는 동물이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우리보다 훨씬 떨어지는 형태를 받고 태어난 그 비극적인 운명 때문에 선심 쓰듯 보살피려 든다. 그러나 그건 실수, 그것도 대단히 큰 실수이다. 동물은 인간이라는 기준에 의해 우열이 평가될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오래되고 더 완전한 세계 안에서, 우리는 이미 잃어버렸거나 아예 얻지도 못한 확장된 감각을 갖고 태어난 그들은 정교하고 완벽하게 운신하며, 우리는 절대 듣지 못할 목소리에 따라 살아간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개한 존재도 아니다. 이를테면 다른 부족, 그저 같은 생명과 시간의 그물에 함께 포획된, 지구의 광채와 진통이라는 수용소에 함께 갇힌 동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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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곳에서 생명의 씨를 뿌리려는, 이 지구를 그것으로 채우려는, 땅과 하늘과 바다를 충만하게 하려는 자연의 열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어 있는 모서리마다, 잊혀진 사물과 후미진 구석마다, 자연은 생명을 쏟아 부으려, 죽은 것에 생명을 쏟아 부으려, 생명에도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려 애쓴다. 생명의 활력을 위한 자연의 무한하고 거대하고 거침없는, 불타는 열정! 그리고 자연의 피조물이라면, 심지어 여기 이렇게 의지가 좌절된 것들마저도, 대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 어떤 굶주림과 추위, 어떤 피맺힘과 서서히 숨을 끊는 투쟁인들 마다하겠는가? 그리고 인간이 아무리 의식적으로 결의를 다진다 한들, 보편적인 생명의 의지를 위해 자아를 내던지는 이 비인칭의 집단 의지에 비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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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묻기도 했다. 그토록 낯선 한 해를 통해 자연의 어떤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느냐고.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첫 번째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창조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며, 창조의 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거대하고 활발하며, 내일의 아침은 세계의 그 어느 것 못지 않게 용맹스러울 것이라고. 창조는 바로 지금 여기서 진행되고 있다. 인간은 창조의 행렬과 너무나 가깝고 그 끝없고 놀라운 실험의 커다란 일부인 나머지, 언뜻 일별한다고 해도 순간적인 계시에 지나지 않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천둥처럼 울리는 교향악 가운데 단 한 개의 음만을 들을 뿐이다. 시는 과학만큼이나 세계의 이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즐거움 없이 살 수 없듯이 외경심 없이 사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자연 그 자체에 대해서 뭘 이해했느냐고 또 묻는다. 그 무심하고 잔인한 추진력, 그 붉은 이와 송곳니에 대해서. 하지만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엔진 같은 추진력이라고만 볼 수 없다. 그리고 ‘붉은 이와 송곳니’나 그것을 조금 지적으로 가다듬은 표현을 접할 때면, 구경꾼처럼 스치듯 지나는 사람들이 그저 책에서 삶을 얻으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냉혹한 운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유행처럼 퍼진 인간의 가치로 판단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에 돌아가 의자에 앉아 우리가 지닌 인간의 가치들에 대해 자연이 대답해 줄 것을 기대해야 한다. 자연의 섭리, 그것의 견제와 균형, 경쟁하는 삶에 대한 자연의 평가 -- 이 모든 것은 위대한 경이로움이자 자체적인 도덕률을 지닌다. 자연 속에서 살면 인간 외적인 자연의 리듬이 고통의 동굴이 아님을 금세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위대한 해변의 사랑스러운 새들에 대해, 그것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열정을 생각한다. 두려움도 있겠지만, 자연은 또한 예기치 못한 순간에 우리가 끝내 모를 자비를 베풀기도 한다.

 

각자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는다 해도, 그것이 자연에 대한 태도의 그림자일 때에만 타당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대 위의 장면에 흔히 비교되곤 하는 우리네 인간의 삶은 오히려 의식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그것을 지탱해 주는 존엄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시와 같은 유구한 가치들은 자연의 영감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것들은 이 세계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으로부터 태어난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을 손상시키지 않으려거든 땅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타는 불길 위로 손을 내밀 듯이 이 대지 위로 두 손을 내밀어 보라. 대지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그것을 향해 제 정맥의 문을 활짝 여는 이들에게, 대지는 힘을 주고, 가늠할 수 없는 비밀스런 삶의 전율로 격려해준다. 대지를 어루만지고, 그것의 평원과 계곡과 언덕과 또한 그 위로 넘실대는 바다를 사랑하고 경배하라. 고독한 그 공간에서 영혼의 안식을 구하라. 삶의 선물은 대지의 것이며, 그것은 모두에게 주어지고, 그것은 동틀녘 새의 노래이며, 오리온자리와 큰곰자리이며, 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 위의 새벽이기 때문이다.

 

- [세상 끝의 집, 케이프코드 해변에서 보낸 1년] 헨리 베스톤Henry Beston 지음, 강수정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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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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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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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도 명문대 프리미엄

명문대와 연예인
-명문대는 연예인의 성공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배국남의 연예문화탐험기]

최근 눈길 끄는 스포츠지 기사 하나. ‘명문대 출신 누드 모델 화제…, 교사로 재직도’ 라는 제목의 뉴스다. ‘일반인 누드가 붐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명문 S대 출신 누드 모델이 등장해 시선을 끌고 있다. 화제의 인물 규리(예명․24)는 학교를 휴학한 상태에서 지방 사립고에서 1년간 기간제 과학교사로 재직한 경력도 있다. 그는 한달 평균 16mm 에로 영화 2~3편과 10편 정도의 모바일 영화를 찍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엔터 드림과 계약해 ‘Teacher Fantasy Nude'를 촬영 중이다. 명문대생이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누드업계에 몸을 던지고 있는 지 26일 오후 규리씨와 인터뷰를 했다‘로 시작하는 인터뷰 기사다.

기사 내용 중 결정적 사실 부분이 틀렸기 때문에 이를 지적한 다음, 명문대와 연예인의 관계를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기사 중 기간제 교사로 활동했다는 부분은 규리 본인이 거짓말을 했든지, 아니면 기자가 잘못 썼든지 그렇지 않다면 지방의 사립 고교가 불법채용을 했든지 세 가지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교육 공무원법(32조)에 근거해 기간제 교사는 대학 졸업자중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휴학생 신분인 규리는 기간제 교사를 할 수 없다. 이 기사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지만 이 내용은 명문대와 그리고 연예인(에로 배우도 연예인의 범주에 포함)의 관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준 기사라고 보기에 예를 든 것이다.

우선 규리가 명문 S대생이라는 제목을 달고 보도가 되었기에 이 기사 제목에서 떠 오른 연예인과 명문대라는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서울대, 고대, 연대로 통칭되는 소위 명문대 관련된 연예인이 등장하면 반드시 출신 대학이 소개된다. ‘서울대 재학 중인 김태희 연기자로 나서’ ‘서울대 자퇴한 유밀레, 젊은 나이에 다방면 활동’ ‘서울대 치대 학생, UN의 김정훈 가수로 데뷔’ ‘가수 유진 고대 입학’ 등등. 규리 기사를 포함한 이러한 보도 내용과 행태는 적지 않은 일반인의 인식과 궤를 함께 한다.

명문대와 연예인의 관계에 관련한 두 가지 사례를 먼저 들겠다. 2002년 9월 서울대 법대와 의대의 두 여학생이 연예계에 진출한다는 소문을 둘러싼 논란과 가수 박진영의 가수 데뷔 일화다. ‘서울대 두 여학생의 연예계 진출설이 나돌면서 서울대 인터넷 사이트에서 “권위의 상징인 서울대 법대와 의대생이 딴따라에 불과한 천박한 직업을 가질 경우 서울대 권위가 실추된다”라는 반대론과 “서울대생은 결코 특권계층이 아니며 연예인은 천한 직업이 아니다”라는 찬성론의 논박이 전개됐다.’(한겨레신문 2002년 9월10일자)

‘박진영이 ‘Blue City'라는 음반을 발표하고 무대에 데뷔했지만 그의 변변치 못한 외모 때문에 쇼프로그램 담당자들 사이에 그의 출연 여부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결국 쇼프로그램 담당자들은 TV에 박진영을 출연시키는 대신 그가 연세대 출신이라는 썩 괜찮은 학벌을 부각시켜 당시 한국 대부분의 댄스가수들이 가지지 못하고 있던 엘리트성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가 TV에 데뷔하는 프로그램에서 연세대 동기생들과 교수들의 응원과 격려사를 방송한 것이다’(시사인물사전5, pp55~63)

이 두 개의 일화는 연예인과 명문대의 관계에 대한 일반인과 대중매체의 인식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명문대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기득권을 부여하는 잘못된 인식과 연예인에 대한 맹목적으로 폄하하는 편견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저변에는 유교의 영향에 따른 연예인 천대 의식과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된 대중문화에 대한 멸시적 시선의 고착화, 대중매체의 연예인에 대한 부정적 보도 등이 어우러져 구축된 연예인에 대한 부정과 멸시, 천대라는 부정적인 편견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일의 성격과 본질에 상관없이 명문대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과분한 덕을 보거나 혜택을 받거나 때로는 명문대 간판이 일의 본질보다 앞서 사람의 평가 기준이 돼버리는 잘못된 사회의 일면이 연예계에서도 엄존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죽했으면 ‘서울대 망국론’이라는 말이 나와 겠는가.

요즘 연예인의 상품성과 인기는 대중이 얼마나 선호하는 이미지를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에서 명문대라는 간판은 연예인 본인의 진정한 지성과 관련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적인 이미지 등을 구축하는 긍정적인 기제로 활용된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은 개선돼야 한다. 연예인의 평가는 당연히 연기자일 경우, 연기로 평가해야하고, 가수의 경우 가창력으로 평가해야한다. 일의 본질과 수행능력이 그 사람의 배경보다 우선시 돼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예인에 대한 터무니없는 직업적 편견도 사라져야 한다. 대중문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연예인은 결코 부끄러워할 직업이 아니다. 에로 배우를 한다고 명문 S대로 표기하는 속 보이는 짓거리는 에로 배우를 스스로 격하시키는 일이다. 서울대 출신도 에로 배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제발 이제 ‘명문대 출신 연예인’ 이라는 표현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국남(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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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러시아 시베리아의 알타이 주(州)에서 최근 개가 키워 온 7세 남자 아이가 발견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적이라곤 없는 외진 산골의 한 집에서 발견된 안드레이라는 이름의 이 어린이는 생후 3개월밖에 안 됐을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곧이어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마저 다른 지역으로 떠나 아들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혼자 내팽개쳐졌다. 그 뒤 이 집에서 키우던 개가 혈혈단신(孑孑單身)의 처지가 된 안드레이에게 먹을 것을 찾아다 주며 돌보아 왔다는 것.

발견 당시 안드레이는 네발로 기고, 짖는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냄새를 맡고, 사람을 무는 등 개가 지닌 습성을 그대로 드러냈으나 보육원으로 옮겨져 집중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고 한다. 두발로 걷고,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으며, 심지어 공놀이를 하는 법까지 익혔다. 그러나 아직 말은 못해 주위 사람들과는 몸짓으로 대화를 한다. 또 감정 상태도 불안해 낯선 사람들에겐 극도의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cj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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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용필/유상록
노래 듣기 aniblue12_next.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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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표범  

킬리만자로의 표범 - 조용필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있다 야망에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없잖아 내가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꼿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그렇게

높은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시릴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건 사랑때문이라구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

진다는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
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것 같으면서도
텅비어있는 내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것을 거니까 외로운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건 외로운거야

사랑이란 이별이보이는 가슴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수있겠지 아무리 깊은밤일지라도 한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꺽이지 않는 한그루 나무되리 내가

지금 이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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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