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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영화 중에 ‘달리고 싶은 욕망’을 가장 자극했던 영화는 화려한 스포츠카들이 등장하는 액션영화가 아니라,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였습니다. 두 젊은이가 구닥다리 모터사이클로 남미의 목초지를 따라 난 구불구불한 길을 흙먼지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이 라틴 분위기의 음악과 함께 어울려 묘한 매력을 자아내더군요. 최근 외신에 따르면 이 영화 이후에 비싼 값에 모터사이클로 남미를 종단하는 관광상품까지 등장했다는 조금 씁쓸한 이야기도 들립니다만, 남미 여행에 나서게 되는 영화 초반부는 정말 보는 이의 가슴을 들뜨게 합니다.

끝없이 이어진 지평선을 향해 한없이 내달리고 싶은 욕망...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이 미완의 혁명가가, 역시 과거유산이 돼 버린 영국의 구식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는 모습은 안타깝지만 아름답고, 무모하지만 낭만적입니다. ‘남미의 민중은 하나’라는 정치적인 메시지도 들어있지만, 보는 이들의 탈출과 질주 욕망을 자극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외면하기 힘든 영화입니다. 다음은 대우자판 사보 1월호 ‘영화속의 자동차’ 코너에 실리는 글의 일부입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노턴 500

모터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2004년)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 1929~1969)가 젊은시절 남미 종단여행을 했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속의 체 게바라 모습은 붉은 바탕에 검은색 모노톤으로 빵모자에 수염 기르고 강렬한 눈빛으로 먼곳을 응시하는 그 유명한 혁명가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체 게바라 얼굴은 홍대앞 맥주바나 티셔츠 가게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인기 팝 아이콘 중 하나다. 그러나 그의 이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 ‘특이한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어쨌든 영화는 이 이국의 혁명가의 때묻지 않은 열정을 옮기는데 성공했다. 무모해 보이는 남미여행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는, 미소가 아름다운 젊은이 모습은 확실히 낭만적이고 매력적이다.

“이것은 대범한 행동을 과장한 이야기도, 냉소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이것은 비슷한 열망과 꿈을 갖고 한 동안 나란히 달린 두 인생의 한 부분이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이 선언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을 혁명담 대신 열정 넘치는 한 젊은이 이야기로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스물세살의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일명 푸세)는 생화학도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남미대륙 횡단여행을 결심한다. ‘포데로사’라 이름붙인 모터사이클에 몸을 싣고 안데스산맥을 가로지르고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건넌 뒤, 아마존까지 가보기로 한다. 여행은 아슬아슬한 모험의 연속. 칠레에서는 정비사 아내에 손댔다는 오해를 받아 쫓겨나고, 모터사이클도 소떼에 부딪쳐 망가지고 만다. 이후 푸세와 알베르토는 페루 잉카유적을 거쳐 실직자들이 몰리는 광산을 둘러보며 현실의 불합리함에 분노하고, 남아메리카 최대의 나환자촌 산파블로에 머무르며 환자들과 고락을 같이 하게 된다.

영화 초반부에 두 젊은이가 큼지막한 오토바이에 짐을 잔뜩 챙겨 싣고 대평원을 가르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다. 흙먼지 잔뜩 일으키며 비포장 도로를 일직선으로 달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엉덩이가 들썩일 만큼 신난다. 그들을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 주는 수단으로 등장하는게 바로 노턴(Norton) 500이라는 1939년식 중고 모터사이클이다. 주인공들이 여행에 나선 1952년 시점에서 볼 때 10년도 더 된 고물이지만, 이들은 이 모터사이클에 포데로사(힘이라는 뜻)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준다. 여행에서 모양새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낭만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고전적인 디자인과 혼다 류의 고회전 하이톤 엔진음 대신 밑바닥에서부터 훑고 올라오는듯한 우람한 배기음이 매혹적이다. 두 사람이 걸친 가죽재킷, 조종사들이 쓰는 가죽헬멧과 선글라스도 남미종단이라는 무모하지만 근사해보이는 여행과 잘 어울린다. 영화 초반에 둘이 모터사이클로 신나게 초원을 달리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한대 사서 평원을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1939년식 노턴 500이라는 모터사이클은 20세기 중반 고성능 모터사이클 제작으로 이름높았던 영국 노턴사의 주력제품중 하나다. 500cc 짜리 단기통 엔진을 달았으며, 당시 유명 모터사이클 경주였던 TT 경주에서 몇번이나 우승해 명성을 떨쳤다. 노턴사는 1898년 제임스 랜스다운 노턴이 설립했다. 자전거 체인과 모터싸이클 부품 제작으로 시작해1902년 첫 모터사이클을 만들어냈고, 1925년 노턴 사망 후에도 배기량 350cc 500cc 짜리 단기통 엔진을 단 모델들이 1920년대와 1930년대 TT 경주에서 여러차례 우승을 거머쥐며 성능을 과시했다. 노턴은 1960년대 750cc 엔진을 단 모터사이클 ‘아틀라스’를 내놓았고, 1967년에는 지금까지도 클래식팬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코만도’를 발표했다. 코만도 750cc, 850cc 모델은 이후 10여년간 노턴의 기함 역할을 맡았다. 70년대 중반 노턴사가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서,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지고 만다.

모터싸이클 하면 혼다 야마하 스즈키 가와사키 같은 일본 메이커들을 먼저 떠오른다. 자동차회사 BMW 역시 멋진 모터사이클을 대량생산하고 있다. 이탈리아에도 아프릴리아나 두카티 같은 회사들이 나름대로 특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미국에는 전통의 할리 데이비슨이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영국 모터사이클 하면 별로 떠오르는게 없지만, 영국은 체 게바라가 남미종단 여행을 떠났던 50년대 초반만 하더라고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생산국이었다. 노턴 뿐 아니라 BSA 트라이엄프 등 당시 영국의 3대 모터사이클 회사는 지금의 혼다 야마하 스즈키처럼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주류기업이었다. 1950년대 미국 모터사이클 시장은 영국의 노턴과 독일의 BMW, 미국의 할리 데이비슨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일본제 모터사이클이 저렴한 가격와 높은 성능, 좋은 연비를 무기로 전세계 시장을 잠식하자, 영국 업체들은 이에 대응하지 못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노턴 역시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마치 혁명을 향한 열정으로 넘쳤지만, 결국 미완의 인물로 사라진 체 게바라 인생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셈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감독 월터 살레스는 1956년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뒤 브라질로 돌아왔다. 미국 남가주대를 졸업한 뒤 80~90년대 브라질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했으며, 이후 장편 극영화를 찍게 된다. 리우 데 자네이루 중앙역 앞에서 문맹들의 편지를 대필하는 중년여성과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소년의 브라질 종단기를 담은 ‘중앙역’(1998년)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조선일보 최원석기자 ws-choi@chosun.com

200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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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가대표축구팀이 독일의 전차군단을 상대로 멋진 경기를 펼쳤던

2004년 12월 19일,

안면이 있는 클린스만 감독을 만나

오전에 독일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해운대에서 산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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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감독이 지휘하는 수원 삼성이 2004 한국프로축구를 제패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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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송년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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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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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