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gif

[문화비전] 학장님, 학장님, 우리 학장님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1991년 6월 6일 오후 1시, 나는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국제대학의 한국인 학장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서울대에서 학사, 미국 명문 하버드대에서 석사, 역시 명문인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라고 했다. 한국 여권을 지닌 최초의 미국 주립대학교 학장이라고 했다.

호텔 밖은 몹시 더웠다. 하지만 나는 준비해간 양복, 그것도 두꺼운 춘추복으로 정장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학장 댁으로 갔다. 반바지 차림의 한국 학생 서넛이 뜰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이가 좀 든 학생도 있었다. 그 학생의 반바지 길이는 거의 수영복 수준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용무를 말하고는, 쏟아지는 땀을 닦으면서 뜰을 지나 거실로 들어섰다. 학장 비슷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서재 문이 열리면서, 나비 넥타이로 정장한, 점잖은 학자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그가 영어로 말을 걸 것인지, 한국어로 말을 걸 것인지 그것도 견딜 수 없이 궁금했다. 영어로 말을 걸면 나는 망한다, 제발 한국어로 말을 걸어주었으면…. 거의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고기를 굽던, 반바지 차림의, 예의 그 나이 든 학생이 거실로 들어섰다. 그는 악수를 청하고는 손을 내미는 나를 끌어 덥석 껴안더니 조금도 미국화하지 않은 한국어로 말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오실 줄 알았는데, 내가 틀렸네요. 양아치 임길진입니다.”

그 자칭 양아치가 바로 한국인 학장 임길진 박사였다. 당시 내 나이 45세, 그의 나이 46세였다. 소탈하다기보다는 탈속한 듯한 그 모습에 완전히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해 여름부터 5년 동안 나는 배우고 또 익히면서, 완전히 세계화한 이 한국인, 완전히 한국화한 이 세계인 스승의 곁을 맴돌았다.

미국 부통령과 너나들이를 하고, 주지사의 어깨를 중심이 무너지게 칠 수 있을 만큼 미국인들과 가까웠어도 그는 끝내 한국인이었다. 그는 미국 대학의 행정가일 때는 증오처럼 강경했고 조선 선비일 때는 오래된 술처럼 순후했다.

그는 도시계획학 학자이기도 했고 한국어로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시를 쓰되 한글로는 물론이고, 한문으로도 쓰고, 영어로도 썼다. 그는 문인화를 습작하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판소리를 애호하는 귀명창이자, 태권도 고단자이기도 한 토종 한국인이었다. 미국의 한국인들에게 하던 그의 공격적인 제안이 귀에 쟁쟁하다.

“…유학생들이나 연구원들로부터, 아들딸에게 영어만 가르쳐야 하느냐, 한국어도 가르쳐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지요. 다 가르치세요. 왜 한 가지만 가르쳐요? 힘이 남으면 일본어와 중국어도 가르치세요. 프랑스어도 가르치고 독일어도 가르치세요. 미국 와서까지 김치와 고추장 타령 하려거든 다 틀렸으니까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김치 타령도 하고, 햄버거 타령도 하세요. 그리고 이곳은 미국이니까 무엇보다도 영어로 말하세요. 컴퓨터를 배우세요. 영어와 컴퓨터 모르고는 반미도 안 됩니다. 배우세요, 안 되면 죽어버리세요….”

독신이었던 그는 술과 담배도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즐기는 것은 조금도 방해하지 않았다. 담배도 더러는 내 것을 빼앗아 피웠다. 중독되면 어쩌게요 하고 내가 걱정했을 때, 그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집착하지 않으니 해탈할 일도 없을 거요.”

새 세기 들어서는 환경운동연합의 공동대표가 되어 조국의 환경운동까지 훈수하던 그의 부음(訃音)을 그제 들었다. 우리가 즐겨 다니던 음식점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아, 학장님, 학장님, 우리 학장님.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book.gif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가을 바람은 괴로움을 읊는데)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세상에 참된 벗은 적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창 밖 깊은 밤에 비가 내리고)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등 앞에서 만 리를 향하는 이 마음)


신라 때 문장가 최치원(857∼?)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이란 한시(漢詩)다. 한문학사의 명작으로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교과서는 '최치원이 당나라 유학 시절 고국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충남대 한문학과 이숙희(52·사진) 교수는 최근 『한시 바로보기 거꾸로 보기 1, 2』(역락)란 저서에서 "최치원이 귀국 후 당나라 유학 시절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라고 반박했다.

물론 근거가 있다. 2구에서 '지음(知音)'은 자신을 알아주는 벗을 말한다. 최치원은 당나라 유학 시절인 16년 동안 1만 수가 넘는 한시를 지었고 과거에도 급제했다. 그러나 신라에선 6두품 출신이라는 한계를 절감해야 했고, 끝내 유랑의 길을 걷는다.

따라서 '지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귀국 후의 정서여야 옳다는 것이다. 다른 근거는 최치원의 대표 작품집 『계원필경』에 '추야우중'이 없다는 점. 『계원필경』 이후의 작품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문학계도 이 교수 주장에 수긍하는 편이다. "동의한다. 이를 계기로 교과 과정의 한시들을 재검토 해야 한다."(서울대 이종묵 교수), "비슷한 취지의 박사논문도 나와 있다."(한양대 정민 교수)

저자는 책에서 신라부터 조선까지 한시 120여 수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러나 '추야우중' 이외의 분석에는 이론이 많다. "너무 과도한 의미 부여"나 "엄밀치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시를 어렵게만 여기는 시기에 나온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라는 목소리는 같다.

글=손민호, 사진=신동연 기자

ploveson@joongang.co.kr

  book.gif

   

      

book.gif

한밤중에 `멍멍' 아파트 이웃끼리 주먹질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8일 아파트에서 애완견이 짖어 시끄럽다며 이웃 주민끼리 서로 폭행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로 박모(37)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 아파트 3층에 사는 박씨는 이날 오전 0시5분께 위층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나자 아내 김모(34)씨와 함께 위층 이모(46)씨 집에 찾아가 이씨 부자와 서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위층의 이씨가 "박씨가 흉기를 휘둘러 손바닥을 베었다"고 주장함에 따라 박씨가 흉기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조사중이다.

book.gif

'셀프 레드카드'로 자신을 퇴장시킨 엽기심판
스포츠조선
입력 : 2005.02.01 14:58 50'

경기도중 주심이 자신에게 레드카드를 제시한 후 그라운드를 떠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에서다.

엽기의 주인공은 심판 앤디 웨인씨(39). 웨인씨는 노스앰튼주 아마추어리그의 심판으로 '그라운드의 포청천'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는 달랐다. 기미는 경기시작부터 나타났다. 누가봐도 정당한 플레이임에도 불구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휘슬을 불어댔다.

그러더니 후반 초반 한창 격전이 벌어지는 도중 갑자기 레드카드를 꺼내더니 자신을 향해 퇴장 명령을 내린 후 그라운드를 떠나버렸다. 더 이상 주심을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 웨인 주심에게도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었다.

웨인 주심은 경기 전날 의붓아버지를 잃었고, 아내도 중병으로 병원신세를 지게됐다. 그래도 경기 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법. 하지만 경기 당일 그라운드에서 몸을 푸는 순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절친한 친구가 급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수많은 악재가 있지만 이처럼 감내하기 힘든 연이은 악재에 그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웨인 주심은 "경기를 공정하게 볼 수 없는 정신 상태였다.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쓸쓸히 경기장을 떠났다.

Shall We Dance?

book.gif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