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의 옛글 읽기]소반을 만들며
안대회·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
 

부끄러운 일이지만 학문을 직업으로 한답시고 손에 책을 잡는 것 외에는 잘 하는 것이 없다. 한때 이 직업을 버린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 적이 있다. 결국 대안이 없어 생각을 진전시키지 못하고 다행히 학생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일을 계속하지만 무언가 다른 일도 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조선시대로 치자면 내 직업은 선비에 속할 터인데, 그 시대에는 선비의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았다. 사대부는 학문과 정치를 주업으로 하며 천한 일을 하지 않았다. 선비가 굶는다 하여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하거나 물건 만드는 장인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심대윤(沈大允·1806~1872)이란 학자가 있었다. 백여 권이 넘는 저서를 남긴 큰 학자로 고조부가 영의정을 지내고 증조부가 이조판서를 지낸 혁혁한 명문가의 후예이다. 그의 글에 ‘소반을 만들며(治木槃記)’가 있다. 형제 셋이 소반을 만들어 파는 생활에 대해 1845년 그의 나이 40세에 쓴 글이다.

경기도 안성의 가곡(佳谷)이란 곳에 살 때 흉년이 들어 생활이 곤란해졌다. 마침 마을에 경상도 통영의 장인이 찾아 들어 소반을 만들어 파는 것을 보고 곁눈질로 기술을 배워 아우 둘과 함께 소반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다. 독서만 하며 굶는 것보다는 힘이 드는 일을 하여 생계를 꾸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서였다. 나중에는 형제 셋이 읍내로 나가 아예 공방을 차려서 물건을 만들어 팔았다. 첫째 아우가 솜씨가 가장 좋았고, 막내 아우가 그 다음이며, 자신은 솜씨가 좋지 않아 잔일을 했다. 소반 하나에 육십, 칠십 전을 받아 하루에 백 전(錢)의 이문을 남겼다. “근력이 들어 힘들기는 하지만 마음은 한가로워 아무 일이 없었기에”소반을 만들어 파는 여가에 형제들과 그동안 추구하던 학문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어찌하여 마음이 편하였던가?

당시 소반을 만드는 일은 비천한 장인이나 하는 일로 간주되었기에 그처럼 명문가 후손이 가난하다 하여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심대윤은 그 일을 하는 것이 “현명하고도 현명한 일이라서 더럽고 욕되다 할 수 없다”며 이렇게 썼다. “나는 평생 신경을 쓰고 힘을 들여서 조금이라도 물건을 만들어 낸 노력이 없는 데도 40년 동안 뱃속에 곡식을 넣었고 몸뚱어리에 옷가지를 걸쳐 왔다. 늘 언짢고 부끄러워하며 천지 사이의 한 도둑놈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두 아우를 따라 이 일을 하니 내 마음이 조금 편안하고 부끄러움이 사라졌다. 일은 크고 작기를 가릴 것 없이 스스로 갖은 힘을 다해 그 노력으로 먹고 산다는 점에서 똑같다.”

이 대목에 이르러 글을 쓰게 된 그의 내면이 참으로 크게 성숙한 결과라는 것을 느꼈다. 세인이 천히 여기는 일을 양반이 하는 데 대한 핑계의 글이 아니라 오히려 나이 40에 비로소 하는 일 없이 밥 먹고 옷을 입는 도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기쁨을 표시한 글임을 알게 되었다. 현대적인 표현을 쓴다면 이 글은 노동의 즐거움을 알게 된 어느 사대부의 고백을 피력하고 있었다.

심대윤의 선배 서유구는 이렇게 비꼰 적이 있다. “우리 동방의 사대부는 10대조 이상에서 벼슬한 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식쟁이도 손에 쟁기와 따비를 잡지 않는다. 한갓 문벌만을 빙자하여 공업과 상업에 대해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메뚜기처럼 곡식을 축내는 생활을 하며 꾀가 참 좋다고 우쭐댄다.”

심대윤의 행동과 사고가 얼마나 파격적인가를 서유구의 생각을 읽으면 짐작된다. 막내 아우가 심대윤 곁에서 “직업의 귀천은 때에 따라 다릅니다. 장인(匠人)을 지금 사람은 천하게 여기지만 훗날에는 귀하게 될지 어찌 압니까?”라며 거들었다. 그의 말처럼 변한 세상이기는 하지만 잔재는 여전하기에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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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의 주인공, 혹시 낯이 익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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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골 수원 우승 공신…외국인 첫 수상

‘쏘면 골’ 나드손(수원)이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K리그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브라질 출신 나드손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15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한 축구기자단 최우수선수 투표에서 58표의 압도적인 표로 최우수선수가 됐다. 14골로 득점왕에 오른 모따(전남)와 10골로 토종 킬러의 자존심을 지킨 우성용(포항)은 각각 3표와 2표에 그쳤다. 프로축구 22년 사상 외국인 선수가 최우수선수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드손은 12골 4도움으로 수원 삼성이 5년 만에 K리그 정상에 오르는 동안 최전방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스포츠서울] ‘브라질 특급’의 명성을 또 한번 확실히 보여줬다. 수원 삼성의 해결사 나드손(23)이 절정에 오른 탁월한 골 감각으로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뜨리며 K-리그 오픈 축제인 2005슈퍼컵에서 소속팀에 우승컵을 선사했다. 나드손은 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부산과의 단판 승부에서 전반 28분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넘어온 안효연(27)의 땅볼 패스를 침착하게 골로 연결해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아크 정면에서 부산 수문장 김용대와 마주선 상황에서 오른발 슛이 막혀 김용대를 맞고 뒤로 흘렀지만 왼발로 다시 침착하게 밀어 넣어 골망을 흔들었다.

지난 달 제주에서 열렸던 A3닛산챔피언스컵2005에서 3경기당 2골씩,무려 6골을 터뜨리는 괴력을 과시한 그는 이 골로 4경기 연속골 행진을 이어갔다. 나드손은 경기 뒤 “올해 벌써 2번이나 우승을 차지해 기분 좋다”면서 “특히 홈 서포터스(그랑블루)에게 기쁨을 드린 것 같아 행복하다”며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활짝 지었다. 국내 데뷔 때부터 ‘30골을 넣겠다’고 장담한 그는 A3컵 뒤에는 “올 시즌 30~40골 정도는 넣고 싶다”며 이 부문 기록(김도훈 28골)을 넘어서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한편 스포츠서울은 나드손을 ‘올해의 프로축구대상’에서 올 시즌 처음으로 주는 슈퍼컵 MVP로 선정해 상금 50만원과 함께 트로피를 안겼다. 그는 이로써 지난 해 정규리그, 지난달 A3컵에 이어 또 다시 MVP에 올라 3연속 최우수선수라는 진기록을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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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