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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먼저 사람의 자리에 살아왔고,

사람과 함께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가는 나무이지만,

요즘 사람들에게는 나무를 바라볼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나무는 사람이 가질 것을 덜어내는 순간 보입니다.

이제야말로 가만히 나무가 내 마음속 한켠에서 자랄 수 있도록

우리 마음 한 구석을 비워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원초적 풍요로 이끌어가는 첫걸음입니다.

- 고규홍, 나무컬럼니스트

언제 바라봐도 우아한 백목련

지난해 단 5개의 꽃을 피웠던 목련 묘목이 한해 동안 많이 자랐다

목련 꽃이 지고 잎이 다음 차례를 준비하고 있다

자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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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지난해 해거리를 했던 살구나무가 금년엔 풍년을 예고한다

앵두나무

금년 봄 단풍나무 주위에 무궁화, 철쭉 그리고 회양목을 심었다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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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숲속의 배꽃

바비큐그릴 바퀴 아래서 피어나는 민들레

언제봐도 기분좋은 개나리

금년에도 매화와 함께 제일 먼저 봄소식을 <학소도>에 알려준 산수유

살구꽃

3년 전 유럽출장길에 사다심은 무스카리

오갈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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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치커리

텃밭에 만든 화단의 데이지와 팬지 & 의자에 앉아 있는 텃밭 지킴이 <고리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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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라일락

단풍나무

배꽃

황금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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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꽃복숭아)

홍도화의 꽃말은 우아, 수려, 정열, 총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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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이영조·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더디 오는 봄을 기다리는 것은 나이 들어서도 늙지 않는 가장 순수한 감정일 것 같다. 이 순진한 감정이 여느 때와 달리 샛노란 개나리 꽃 무리의 느낌처럼 성급히 내 가슴에 들어찬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작곡을 하는 주제에 몇 억원짜리 큰 아파트에 살 형편은 안 된다. 하지만 시골이라면 마치 꼬리 치며 마당에서 뛰노는 강아지처럼 좋아하기에 시골 비스름한 곳에서 산 지가 어언 10년을 넘었다.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제일리는 집 앞에 논바닥이 펼쳐져 있고, 숲과 바람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곳이다.

적응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처음엔 퇴비 냄새에 코를 막고 밭고랑을 지나 대문을 뛰어 넘어오던 때도 있었다. 텃밭의 배추벌레를 보고 마냥 농약을 뿌리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젠 밭에 나가 고추·상추·파를 뜯고 감자를 캐고 아욱을 거두며, 익어가는 옥수수 수염 색깔을 볼 줄 알게 됐다.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 텃밭에 가는 그런 취미 생활이 아니다. 촌로(村老)들이 ‘이씨(李氏)’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마음 편하고 사람들의 정을 느끼며 살 정도의 삶이 됐다.

이런 곳에 살다 보니 집 주변은 온통 잡풀과 나무들로 둘러싸였다. 정원을 가꾼답시고 ‘잡초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당 한구석에 서있는 못생긴 나무 한 그루를 베어냈다. 모질게도 뿌리까지 캐내서 뒷동산 밤나무 우거진 언덕 아래로 굴려 버렸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던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의 말을 생활 신조로 삼는다고 한 지가 30여 년이 훨씬 지났지만, 한 번도 그 뜻을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어 늘 부끄럽기만 했는데, 이제 뒤돌아보니 그 일 역시 그랬다.

긴 겨울을 지내고 이제 기다리던 봄을 맞았다. 새싹이 돋을 무렵, 묵은 가랑잎이 뒤덮인 그 뒷동산을 산책하다가 내가 자르고 캐내어 버렸던 그 나무 뿌리 둥치를 다시 발견하게 됐다. 저만치에서 보기에도 제법 컸던 뿌리 부분은 이제 비바람에 마른 뼈같이 줄기만 남아 얼기설기 몸을 비비며 잔뿌리와 흙이 엉켜 있었다. 톱에 잘려 뭉툭하게 된 짧은 기둥은 땅과 머리를 맞대고 누워 있었다.

범법자(犯法者)는 자기가 저지른 범죄장소에 다시 나타나 그 이후의 모습을 살핀다고 했던가. 그 나무 주위를 돌며 내 발걸음에 따라 버석거리는 낙엽 소리를 즐기다가 순간 마치 살인자 같은 죄책감에 빠져 버렸다.

“한겨울을 이 차디찬 나무 숲에 홀로 뒹굴어 누워 있었단 말인가. 내 마당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 내가 그랬단 말이지.”

시신(屍身) 같은 나무 그루터기를 살펴보던 나는 이번에는 홀연히 엄습하는 자연의 위대한 힘과 생명력 앞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누워 있는 그루터기 밑바닥에서는 어느 틈엔가 가냘프고 연약한 줄기와 새싹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참한 나무 그루터기인 줄만 알았는데 또다시 생명이 자라나고 있는 모습에 압도당해 경외로움에 빠져들고 말았다. 실낱같은 실뿌리 몇 가닥이 주검처럼 쓰러져 있는 그 나무에 필사적으로 생명을 공급해 왔고, 나무는 전력을 다해 거기서 모질고 모진 자기 생명을 이어 왔다.

생명의 위대함을 새삼 느낀 나는 삽을 가져와 구덩이를 파고 다시 그 자리에 나무를 바로 세워 심었다. 마치 참회자와 용서받은 자가 된 것 같은 행복한 느낌에 빠지면서, 봄이 다시 내 가슴속에 가득 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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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