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휴먼 북스] 책과 연애하는 방법

불평하지 않고 늘 같은 얼굴로 우릴 대하는 그에게 몽테뉴처럼
책 여백에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라

인생에 중요한 세 가지 교제가 있다. 첫째는 "교양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과의 교제"이다. 그것은 서로 방문과 환대 그리고 대화와 토론이 있는 향연을 통한 관계 맺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둘째는 "교양 있고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다정한 교제"이다. 그것은 절대 상호성을 바탕으로 몸과 마음을 교환하는 것이고 육체적 감각의 축제이자 대화의 즐거움을 나누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는 제3의 교제가 있다. 그것은 변덕부리는 일 없이 "불평을 늘어놓지도 않고 늘 같은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 주는" 책과의 사귐이다.

미셸 드 몽테뉴는 '인생 에세이'(동서문화사)에서 세 가지 교제에 대해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책과의 교제'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긴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어떤 실천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독서에 동반하는 글쓰기의 욕구다. 몽테뉴 만년의 삶은 독서와 사유 그리고 글쓰기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우리같은 일상의 독서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몽테뉴의 사유와 명상은 책읽기에서 시작되었다. 종교전쟁의 시기를 살았던 몽테뉴는, 혼란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만남, 즉 자아 성찰을 시도한다. 성찰을 위한 첫발은 구체적으로 인류의 정신적 유산과의 만남이었다. 즉 고전의 독서였다. 그는 말한다. "책은 언제나 내가 가는 곳에 있으며 어디서나 나를 도와준다." 그리고 "나의 심령은 거기서 훈련받는다."

중요한 건 훈련받은 심령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몽테뉴는 책을 통해 사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사색을 어떤 형태로든 기록했다. 그는 독서하면서 책의 여백 혹은 뒷면에 자신의 느낌과 생각들을 깨알같이 적었다. 그의 대작은 이 작은 기록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독서로 훈련받은 그의 심령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와 글쓰기는 그에 있어 별개의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책과 교제함으로써 그는 자기 책의 창조자가 된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몽테뉴의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실용적 성찰의 실마리다. 독서는 글쓰기의 의욕을 자극하고, 글쓰기는 독서를 더욱 증가시킨다. 쓰지 않으면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다. 또한 글쓰기는 타인에게 자기를 노출하는 것이므로 노출의 고통을 수반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아 성찰의 치열함을 겪게 된다. 독서가 자아 성숙의 길이라고 함은 그것이 글쓰기의 실험에 이를 때 더욱 그 의미를 완성한다. 이는 우리 일상의 독서가들도 기꺼이 시도해 볼만한 실험인 것이다.

우리는 독서함으로써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또한 책에서 얻은 삶의 의미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의욕을 갖는다. 이것이 글쓰기의 시발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자아를 실험하고 자아를 표현한다. 이 과정에는 항상 다시 찾아가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 책은 몽테뉴가 그러했듯이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친구이다. 이 부담 없는 귀환의 길이 '책과 맺은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하며, 이 때의 책은 인성을 가진 '휴먼 북'이 된다.(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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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無性) 이라는<불두화>, 언제 보아도 고귀하다

금년에 목단을 세 뿌리 심었는데, 내년에도 다시 <목단꽃>을 볼 수 있기 바란다

내가 만약 꿀벌이라면 <작약꽃>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 같다

수채화 같은 무늬의 <옥잠화>

어린 <능소화>와 <담쟁이덩굴>이 사이좋게 외벽을 타오르고 있다

언제 보아도 힘있고 신선해 보이는 <석류> 잎

금년엔 학소도에 첫 <모과>열매가 결실을 맺을까.....

새식구 <은태사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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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시 장미를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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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꽃

아직까지 학소도에 감이 열린 적이 없는데, 금년에 첫 감을 수확할 수 있을지......

<살구>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작년에 땅에 떨어진 씨가 자손 <해바라기>를 낳았다

<고추> 꽃

<가지> 꽃

<제라늄>이 다년생인줄 몰랐기에 작년에 심었던 뿌리에서 새싹이 나와 반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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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발선인장>의 꽃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경복궁 역 앞 길가에서 어느 할머니한테 산 난인데,

이름이 <탄란>이라고 한다. 정확한진 잘 모르겠지만.

꽃이 참 신기하다

<방물토마토> 꽃

<감자>

금년엔 학소도에 딸기가 유난히 많이 열렸다.

지방출장 중에 잠시 들렀던 해인사에서 자라는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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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의 문학의 숲] 해보는 수밖에 길은 없다
시인 천양희

꽃 진 자리에 무성해진 잎들을 보면서 생명의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이란 말을 떠올려 본다. 내 눈길이 초록빛 나무에 머무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무야 고맙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나무한테로 가서 실컷 울고 실컷 소리치고 돌아오면 한동안 세상에 시달릴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나무처럼 바닥에 굴복하지 않고, 꼿꼿하게 자신을 세운 것이 어디에 또 있을까. 그러면서도 온갖 꽃들을 피워주고 새들을 품어 노래하게 하고 열매를 맺어 넉넉하게 해주는 나무들. 그 나무들이 왠지 마지막까지 내 스승이 될 것만 같다. 사랑을 나누어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내 어머니 말고는 나무를 통해서 배웠다. 아무래도 나무는 부모처럼 스승처럼 우리의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만큼 넓이만큼 그 높이만큼 우리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래선지 내 마음의 뿌리는 온통 나무에게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럴 때 독일 시인 에리히 케스트너의 시 ‘마음의 소리’로 다시 한 번 나직이 말해 본다. 나무야, 고맙다.

‘좀 더 큰 소리로 말해도/ 마음의 목소리는 왜 그렇게 작을까요/ 마음은 그저 소곤거릴 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어요/ 마음이 천진한 아가들은/ 바라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말로 하지 않아요/ 아가들은 바라고 있는 멋진 것을/ 마음에 품고/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대지요/ 마음을 만든 신은/ 목소리 만드는 걸 잊었나 봐요’

‘요람과 무덤 사이에는 고통이 있었다’는 단 한 줄의 ‘숙명’이란 시와 ‘해보는 수밖에 길은 없다’는 단 한 줄의 ‘틀림없는 교훈’이라는 처방시로 유명해진 그는 정신과 의사이며 작가다.

에리히 케스트너는 독일 시단에서 처음으로 처방시를 쓴 시인이며 급진적 사설을 쓴 저널리스트로도 유명하다. “세상은 공원과 같아서 약속이 있는 것처럼 기다려 봐도 대개는 헛수고일 뿐”이라며 현대인의 메마른 삶에 맑은 바람을 수혈하듯 구급처방시를 썼다. 그런 그도 히틀러 시대에 “파괴적이고 부도덕한 정신태도의 문인”이란 이유로 발표할 지면도 봉쇄당하고 반(半)나치로 몰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한때 스위스에 머물면서 조국 독일에 대한 경고로 ‘대포로 꽃피는 나라’라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정신과 의사 시인으로서 병든 인간의 영혼에 대한 치료법을 의사 케스트너 특유의 처방시로 표현해 독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인생처방전으로 잘 알려진 ‘마주보기’란 시집으로 독일의 대표적 문학상인 게오르규 뷰히너상을 수상한 케스트너. 특히 그의 시집은 ‘이별의 아픔은 절반, 이별의 기쁨은 두 배’라는 반어적 말로 가슴앓이를 원인별로 규명하고 처방한 시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라고 경고하는 그의 시편들은 현대인의 정신적 방황을 멈추게 하는 묘약 같은 힘을 갖고 있다. 오늘 아침 처방시를 읽으며 세상을 얻고도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천양희 시인(63)은 “별을 보고 길을 묻던 나그네들 다 어디로 갔나”하고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느림’에서 한탄했듯, “그 많던 한량들은 다 어디로 갔나”고 물었다. 별이 그리운 날이면 윤항기의 노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즐겨 부른다는 시인은 시 ‘별자리’에서 ‘서울엔 별별 사람 많아/ 가끔 하늘을 잊기도 하였으나/ 별자리는 처음부터 별의 자리였다’고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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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