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글을 쓴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업무 관련 메일을 쓰다가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책상 앞에 앉아 내 개인적인 글을 쓰는 일이

언제부턴가 힘들 게 느껴진다.

기록으로 남길 만한 혹은 누구에게 들려줄 만한 특별한 사건도 없고,

하루 하루가 그렇게 시냇물 흐르듯 흘러가 버린다.

지금까지 내가 항상 변화무쌍한 삶을 추구해와서 그럴까,

생활이 무색이거나 같은 색이 지속되면 왠지 불안해진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만나면 간혹 사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요즘 무슨 낙으로 사세요?"

이런 나의 생뚱맞은(?)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글쎄요.....하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그들 또한 삶에서 뭔가 특별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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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소식을 전해오는 <담쟁이덩굴>(위)

시간을 기록하는 <담쟁이덩굴>(아래)

학소도 앞뜰에서 소박하게 자라는 야생화

문득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 <자귀나무>의 잎

2년 전에 사다심은 묘목이 많이 컷다

2005년의 마지막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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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갈피> 열매

<산초> 열매

<봉숭아> 씨앗

<머루> 열매

며칠 전 처음으로 <학소도>의 감나무에 열린 감을 따먹었다

작은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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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⑩국제] 닫는 글

돈과 말과 피의 교환 구조
글로벌 한국인의 세 가지 벽 넘기

“경마장에서 말(馬)을 잃는다” 는 역설을 기억하는가.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은 질주하는 말이 아니라 손에 쥔 마권의 숫자다. 말은 없다. 그것은 화폐이고 욕망이고 달리는 운명이다. 우리 눈 앞에서 펼쳐진 40년 동안의 성장과 번영의 드라마는 어쩌면 말이 보이지 않는 경마장의 질주, 흥분, 그 아우성이었는지도 모른다.
대체 어느 나라가, 그것도 반쪽 난 민족이 불과 한 세대 동안에 농경, 산업 그리고 정보의 세 문명을 한꺼번에 뛰어넘은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이제는 세계 최초로 복제 개 스너피로 생명문명 시대의 빗장을 열려고 한다. 천리마인들 이렇게 빨리 뛸 수 있겠는가.

그에 답하기 위해서는 ‘돈’과 ‘말(言語)’과 ‘피’의 삼대 교환 구조에 조명을 비춰 그 숨어 있는 코드를 풀어보는 수밖에 없다.

‘엽전’의 로컬 코드는 ‘달러’의 글로벌 코드로 변했다. 그리고 시골 장터는 자유무역의 세계시장으로 바뀌었다. 엽전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비하했던 한국인은 이제 보릿고개를 넘어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손꼽히는 당당한 글로벌 시장인(市場人)이 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무역(trade)이라는 말이 중세 영어로 ‘길(track)’을 의미했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길이라고 하면 나귀를 몰고 봉평 장터로 가는 허생원의 산길이 떠오른다. 그런데도 좁고 험한 길에 만족해야 했던 것은 일제 침략으로 목숨을 끊었던 한 선비의 말 그대로 “ 만약 조선의 길이 넓고 다리가 단단했던들 우리 역사는 외침에 더욱 혹심하게 유린당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 오솔길이 고속도로가 되고, 영종도의 신공항이 돼 한국인들은 열린 세계의 대로로 나가게 되었지만, 동시에 우리가 원하지 않은 것들도 그 길을 통해 거침없이 들어왔다. 중세의 유럽 도시가 페스트로 황폐해진 것은 중국과의 무역을 트면서부터 쥐들이 따라 들어왔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얻기 위해 반드시 자기 것을 내 줘야 하는 것이 ‘트레이드 오프’의 법칙이다.

물건과 시장을 만들어 내는 돈의 글로벌 파워가 달러였다면 정보와 문화를 만들어 내는 말(언어)의 파워는 영어다. 중국 문명권에서는 한자에 치이고,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서는 일본어에 억눌렸던 한국어는 정보기술(IT)의 글로벌시대를 맞아 새로운 상황과 변화를 겪었다. 제임스 베넷의 말대로 한국은 영어라는 공통어를 사용하면서 개방주의와 법에 의한 지배, 그리고 자유 시장주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앵글로스피어’의 주변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를 맞아 아일랜드에서 잊혀 가던 켈트어(語)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처럼 한국어 사용 인구가 세계 10위 안에 들고 동남아 지역에서는 코리안 드림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뜨거워졌다. 이뿐이 아니다. IT시대의 한글은 알파벳보다 더 글로벌한 잠재력을 과시하게 된다. 노사모ㆍ박사모 등 한자에 눌렸던 조어 기능이 정치적 키워드로 발전하면서 그동안 잠자고 있던 한국 로컬 문화의 사화산이 다시 불을 뿜기 시작했다.

‘피’(사람)의 교환과 그 드라마는 어떤가. 지구 전체에서 한국인처럼 단일민족으로 수천년 동안 순혈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은 거의 없다. 100여 개 인종이 모여 일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중국만 해도 56개 민족으로 구성돼 있는 다민족ㆍ다문화의 나라다. 순혈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일본조차도 알고 보면 북방에는 아이누, 남방에는 오키나와의 인종문제를 끌어안고 사는 나라다.

이렇게 피의 동질성이 짙은 한국에서는 혈족이 아닌 남을 믿지 않는 의식이 강하다. 자연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대로 글로벌 시장의 사회자본인 ‘트러스트’(사회의 신뢰문화)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제ㆍ기업 모델은 거의가 가족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선거 때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이다. 무엇보다도 “피는 물보다 짙다”는 분단 상황의 극복 논리는 한국 특유의 ‘싸리 장벽’을 높여줬다. 그러나 가족주의가 해체되고 순혈주의의 신화가 붕괴되면서 젊은이들의 외혼(外婚) 비율은 10%에 달하고 있다. 농촌 마을의 토담에 나붙은 동남아시아의 신부 광고는 더 많이 나붙게 될 것이다. 이제는 국가가 개인을 선택하는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 국가를 선택하는 세상이 됐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640만 명에 달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돈’은 글로벌 시장, ‘말’은 IT, 그리고 ‘피’는 BT의 발전에 의해서 한국인의 생산 양식과 소유 모델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기업가들은 40년 뒤 우리가 먹고살아갈 수 있는 제품이 무엇인지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40년 뒤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가치관의 모델이 어떤 것인지, 가족이나 국가를 넘어선 보편적인 문화라는 게 있기나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다.

돈과 말과 피의 글로벌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말한다. 이미 2000년 전 여씨춘추에서도 엿볼 수 있는 거대 담론이다. 발단은 활을 잃어버렸던 형(荊)나라 사람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형 나라 사람이 잃은 활을 형 나라 사람이 주울 것이니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 이야기를 들은 공자가 말했다. “형 나라라는 말을 빼는 것이 좋다.” (사람이 잃은 것을 사람이 주울 것이니 …) 이번에는 공자의 말을 들은 노자가 말했다. “사람이란 말을 빼는 것이 좋다.” (천지의 것이 천지에 있으니…)

형나라 사람의 공동체 의식은 개인을 넘은 국가이고, 공자의 그것은 국가를 넘은 인간이다. 노자는 인간마저 뛰어넘는 천지의 우주의식이다.

그렇다고 내 의식이 지구만큼 커졌다 해서 잃어버린 ‘활’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토머스 프리드먼처럼 ‘올리브 나무’와 ‘렉서스’는 반드시 택일적인 것인가. 아니면 마빈 조니스의 ‘빅맥과 김치’처럼 서로 공존하는 파워인가. 이제부터 그 해답을 구하지 않고 말은 달릴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한국인의 경마장 드라마는 끝나간다는 것이며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잃어버린 활 찾기의 새로운 경주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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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비주얼의 폭력, 간판의 숲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다 잠시 다니러 왔던 선배와 함께 차를 타고 서울 동대문 근처를 지나는 길이었다. 화가인 선배가 높다란 축대에 누군가 그려 넣은 그림을 가리키며 도대체 '비주얼'이 저게 뭐냐는 것이었다. 맨벽으로 그냥 두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는 콧김을 거세게 뿜으며 미국에도 벽에 그림을 그려 넣는 그라피티 아트(낙서예술)가 있지만 거기에는 일반인들도 수긍할 만한 전문성과 치열성이 있다고 했다. 축대에 그려진 그림은 보물 1호인 동대문의 아름답고 고전적인 '비주얼'과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엉터리니 없는 편이 백번 낫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전문가들이 저런 걸 그냥 방치해 두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전문가가 도시계획 전문가든, 미술 관계자든, 지나가는 화가든 간에….

며칠 뒤 그 선배와 서울 교외에 있는 맛있다는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거의 다 가서 산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느닷없이 웬만한 식당만한 크기의 간판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는 '둘이 먹다 둘 다 죽어도 그 맛을 낸 주인은 책임 안 진다'는 요지의 호들갑스러운 광고 내용과 무슨 방송에 나왔다는 흔해 빠진 문안의 진실성, 진부함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선배는 간판 크기와 노란 바탕에 시뻘건 글씨에 대해 마구 화를 내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가려고 한 곳은 그 잘난 식당이 아니었고 자그마한 간판에 식당 이름과 주식단인 막국수, 전화번호만 얌전하게 적어 놓은 곳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요란한 간판을 내세운 식당 앞 드넓은 주차장에는 차가 몇 대 보이지 않았다. 반면 자그마한 간판의 식당은 주차장이 꽉 차 있어 차를 먼 곳에 대고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번호표를 받고 자리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선배는 자신처럼 미술을 하는 사람에게 어떤 '비주얼'은 저질과 무지를 넘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어차피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음식점 주인이 손님의 운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밥맛을 좋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드시 운명을 결부시켜야겠다면 '황천 가던 사람도 우리 식당 앞에서는 발병이 난다'고 해도 될 것을.

어느 날 저녁 그는 내가 살고 있는 신도시의 중심 상업지역에 왔다. 전철에서 내려 육교 계단에 선 그는 아예 넋을 잃고 원색의 숨가쁘게 점멸하는 간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를 낼 정신도 없는 듯했다. 한참 그 엄청난 간판의 숲 앞에 서 있던 그는 그 간판들을 미술로 써먹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부분을 쓰든, 전체를 쓰든, 축소.확대를 하든, 변형을 하든, 뭘 하든 간에. 그는 한국에서 누가 혹시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대신 이런 말을 했다. 누군들 좋아서 천박하게 번쩍거리고 싶겠는가. 옆집 앞집 뒷집에서 하니까 가만히 있으면, 아니 평범하게 하면 묻히고 버림받을 것 같은 초조감에 간판도 커지고 자극적으로 변한다.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니까 나도 스피커를 마주 틀어댈 수밖에 없다.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비슷비슷하게 사는 한국에서 눈에 띄는 방법은 저런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지금 거리에 있는 우리 간판들은 너무하다. 요란스럽기만 하지 내용도 쉽게 들어오지 않고 잘못 들어가면 자기네 본전 뽑자고 바가지를 씌우지 않을까 겁난다. 그래서는 장사가 안 된다, 비싼 간판 값만 날린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걸려야 할까.

"제발 좀 이야기해 줘, 기회가 되거든."

선배가 미국으로 가면서 한 말이었다.


성석제 소설가

◆약력=소설가.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등 다수의 소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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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 있는 아버지 산소 앞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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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