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오디세이(1)] “즐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

스포츠칸은 2006년 독일월드컵 개막을 맞이해 스포츠 마케팅사인 ‘포르투나 2002’ 최범석 대표의 월드컵 이야기를 연재한다. 최범석 대표는 독일에서 중·고교를 나와 독일 본대와 미 버클리대(경제학·국제정치학)와 하버드대(국제통상·금융학 석사), 서울대(정치학 석사)에서 수학했으며, 2002년 월드컵 조직위 해외홍보과장을 지낸 다채로운 이력을갖고 있다. 미국 축구심판 자격증도 갖고 있는 축구인이기도 하다. 현재 차범근·차두리 부자의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다. 최 대표는 독일 월드컵 경기뿐만 아니라 월드컵과 관련된 스포츠 마케팅, 독일의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일현지에서 체험하고 느낀 점을 지면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여행가방을 챙겼다. 두 달 만에 또다시 집을 떠나면서 이번 출장은 매우 특별한 여행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글쎄. 그냥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고, 뜻밖의 사건도 있을 것 같고, 왠지 이전의 출장들과는 다른 여행이 될 것 같다. 물론 이번 출장에는 월드컵이라는 큰 주제가 있고 다른 나라도 아닌 독일이며, 무엇보다도 우리 축구대표팀의 2002년 4강신화 이후 열리는 첫 월드컵이라는 사실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월드컵, 독일, 축구, 이 3가지 키워드는 나에게 유난히 특별하다. 먼저 독일은 나에게 제2의 고향이다. 인연은 보통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독일이라는 나라와 맺은 인연은 분명 좋은 인연이다. 그것도 질긴 인연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12세 때 부모님을 따라 처음 독일에 도착해 사춘기 4년을 보냈고, 독일을 떠나 다른 대륙에서 살면서 지금까지 23년 넘게 개인적으로 또는 일과 관련해서 꾸준히 독일 땅을 밟고 있으니 끈질긴 인연이라 표현해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인연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 나를 초대한 셈이다. 월드컵과의 인연 또한 각별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필자는 한국 월드컵조직위원회 해외홍보과장과 FIFA 마케팅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의 축제행사를 준비했다. 2002년에는 고향 한국에서, 4년 후인 올해에는 제2의 고향 독일에서 개최되니 월드컵은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가나와의 최종평가전 다음날 독일에서 전화가 왔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독일 축구전문기자와의 통화가 끝날 무렵 그의 마지막 질문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은 얼마나 선전할 것 같아?”였다. “음, 우리가 최소한 준결승까지는 가지 않겠어? 잘하면 지난번 2002년 월드컵 때와 마찬가지로 독일과 준결승에서 맞붙는 거지. 하지만 이번엔 독일을 상대로 한국팀이 단단히 복수전을 할 거라고.” “축구전문가의 예견이니까 맞겠지? 내가 보기엔 우리 독일팀이 4강에 다시 오르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데….” 우리는 이 농담 어린 대화를 웃으면서 끝냈다.

월드컵은 세계인의 축제이자 동시에 세계 최고 스타들이 펼치는 축구전쟁이다. 자국 팀이 상대팀에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모두가 이성을 잃어버리는 게 월드컵축구다. 무조건 이길 것 같고, 승리해야만 한다. 90분 경기의 종료휘슬이 울려퍼지기 전까지는 희망을 쉽게 접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로 떠나면서 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우리가 2002년에 너무나 높이 그리고 멀리 갔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다시 4강에 오를 수 없다고, 16강에 진출하는 것도 어려울 거라 얘기하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왔을 때 과연 그 허탈감을 어떻게 감당해낼지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연초부터 모든 언론매체와 기업광고가 월드컵 마케팅으로 우리 국민의 마음을 한참 들뜨게 만들고 있어 더욱 걱정이다. 2002년에 우리가 승리하면서 축제를 즐겼다면 이제는 패하면서도 축제를 즐길 수 있어야 하겠다. 과연 가능할까?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버릴 수 없겠지만, 제2의 고향은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의 선택일진대, 제2의 고향 독일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여행가방을 닫았다. 대표팀 축구선수도 아닌 내가 긴장되는 것은 무조건 우리 팀이 잘해야 한다는 기대, 지더라도 멋진 경기를 우리 국민에게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망 때문일 거다. 그냥 잊자. 즐기자. 다음 월드컵은 4년 뒤에나 다시 열리니까.

 

[월드컵 오디세이] 무뚝뚝한 독일의 상냥한 변신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독일인 부부.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꿈 같은 휴가를 보내고 귀국길에 서울에서 1박을 했단다.
“인구 1천만이 넘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우리는 못살 거예요. 시내 도로가 마치 대형 주차장 같고, 길거리에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독일의 대표적인 도시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도 서울에 비하면 한산한 편이다. 한국을 시끄럽게 떠들고 큰소리로 웃고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에 비유한다면, 독일은 단정한 복장에 말없이 얌전하게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필자는 독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균형’이다. 균형은 안정감을 주고 예측 가능하며 움직임이 별로 없어 자칫 지루할 수 있다. 균형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독일은 매우 균형 잡힌 사회다. 시회시스템이나 정부정책이 크게 우회하거나 획기적으로 수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경제 또한 낮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빈부의 격차가 급속하게 양극화되는 현상 없이 큰 골격 안에서 움직인다. 필자가 25년 전 중학교를 다니던 옛 서독의 수도 본을 4년 전에 다시 방문한 적이 있다. 호기심에 어릴 적 살던 멜렘(Mehlem)이라는 동네에 있는 옛집을 가봤다. 거기서 가장 놀랐던 것은, 옛집은 물론 동네 전체가 가게 간판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필자가 매일 아침 학교를 가기 위해 타던 시내버스의 시간표가 21년 전과 똑같았다! 아침 6시24분 버스가 여전히 같은 시각이면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다음 버스는 38분, 그 다음 버스는 51분….

버스기사 아저씨도 만약 정년퇴직을 안 했다면 아직도 같은 사람일지 모른다.

이처럼 20년 넘게 시내버스 시간표를 수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정된 독일 사회에서 이번 2006년 월드컵은 신선한 변화이자 신나는 국제행사가 될 것이다.

10일 열린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유럽은 물론 다른 대륙에서 축구팬들과 관광객들이 속속 입국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있다. 평상시 밤 10시만 돼도 한산해지는 독일의 거리에서 이제 브라질 응원단의 삼바축제가 시작되고 네덜란드 오렌지팬들의 응원가와, 한국 붉은악마의 북소리가 울려퍼지면 모범생 독일인들도 가만히 집에 앉아 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월드컵의 슬로건은 ‘친구가 되는 시간’(A time to make friends)이다.

“우리 독일인은 지난 2002년 월드컵의 호스트였던 한국인이나 일본인처럼 밝은 미소로 손님 맞는 걸 잘 못하잖아요. 이번 월드컵 때 우리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독일을 방문하는 외국 손님들에게 평상시 무뚝뚝하게 비춰지는 우리의 이미지를 친절하고 상냥한 이미지로 바꿔야 합니다.” 작년 여름 뮌헨에서 개최된 월드컵 관련 국제회의에서 독일 축구의 ‘황제’이자 월드컵조직위원장인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한 말이다.

앞으로 한달 동안 얌전한 모범생 모습에서 분주하게 손님을 맞는 활달한 호스트로 변신하는 독일인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할 것 같다.

또한 2006독일월드컵이 역대 대회 중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월드컵이 될 것을 확신한다는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의 발언은 조금도 과장됐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무뚝뚝하고 꼼꼼한 독일 국민이 준비한 화려한 축구잔치가 시작됐다.

〈최범석|프랑크푸르트에서·포르투나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FIFA는 마피아” 불신의 축제

지난 9일 밤~10일 새벽 벌어진 독일월드컵 개막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개막식 축사에서 “축구를 즐기라”고 외친 쾰러 대통령일까,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독일 대표팀일까, 그도 아니면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일까. 다 아니다. 개막식의 주인공은 바로 독일의 ‘축구황제(Kaiser)’ 프란츠 베켄바우어였다.



선수(1974년), 감독(90년)으로 월드컵 우승의 기쁨을 맛봤고, 2006년 월드컵을 독일로 유치하는 데 성공해 현재 조직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베켄바우어. 그는 고향인 뮌헨 홈그라운드에서 가장 큰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

독일 냄새가 물씬 풍기는 뮌헨 억양과 세련된 외모…. 그의 말은 지적이지 않지만 축구에 대해 얘기하면 누구나 존경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기 된다. 비록 바람둥이일지라도 독일의 영웅이고, 그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 월드컵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블라터 현 FIFA 회장은 민망할 정도로 팬들의 야유를 한몸에 받았다. 회장으로서 8년, FIFA에서만 31년을 일하면서 이번 독일월드컵 개막식은 그에게 아마도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이 아니었을까.



이 진귀한 광경을 지켜보면서 몇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FIFA의 상업성이 독일인이 보기에 너무 지나쳤다는 것, 둘째는 FIFA를 장악하고 있는 스위스인에 대해 상대적으로 느끼는 우월감, 그리고 결벽증에 가까운 독일인의 청렴함과 FIFA의 부패한 이미지. 먼저 독일인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입장권이다. 74년 서독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자국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을 보고 싶어도 일반 축구팬이 입장권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입장권의 상당수가 FIFA를 후원하는 업체들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들(대부분이 외국기업이다)은 입장권을 중요한 고객들에게 접대용으로 선물하거나 홍보 프로모션 용도로 활용한다. 독일인은 FIFA와 후원기업들이 월드컵 입장권을 끼리끼리 나눠 갖고 정작 자신들은 자국에서 열리는 축구잔치에서 소외됐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독일인들의 아우성에 베켄바우어는 자동응답기처럼 같은 설명을 되풀이한다.

“월드컵은 독일 국내행사가 아닙니다. 세계인의 잔치예요. 경기장 수용인원이 6만명이 아니라 10만명, 20만명이라도 입장권은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제발 이해해 주세요.”

2002 월드컵 당시에도 FIFA의 상업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업성에 대해 우리 한국인은 크게 불만을 갖지 않았다.

불만이 있었더라도 원래 그러려니 하고 야유 한번 못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독일인은 달랐다.

그 배경에는 독일이 스위스에 대해 전통적으로 느끼는 우월감이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규모나 인구, 군사력 등 독일은 유럽 현대사에서 스위스보다 항상 우월했다. 그리고 특히 축구에 관한 한 어디 스위스가 독일에 비할 수 있는가.

국제축구연맹임에도 불구하고 FIFA는 회장·사무총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요직을 스위스인이 장악하고 있다. 본부도 취리히에 있다. 필자는 월드컵을 계기로 ‘건전한 민족주의(positive nationalism)’가 독일인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부여할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미국 대통령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는 FIFA 회장을 상대로 그날처럼 노골적인 비난과 야유를 보낼 수 있는 국민은 지구상에서 독일인 빼고 몇 안될 것이다.

FIFA 회장을 향해 야유를 보낸 또 다른 이유는 FIFA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심지어 스위스인도 FIFA를 ‘블라터와 그의 마피아 조직’이라고 한다. 다른 FIFA 대회는 일단 제쳐두고 4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월드컵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는 이 국제조직에 대해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는 유럽인이 많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직성과 투명성을 중요시하는 독일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스위스 마피아 조직이 독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인 축구를 지나치게 상업화하고 축구팬을 소외시켰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것 같다.

〈최범석|뮌헨에서·포르투나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교육의 장’으로 꽃피운 축제

독일에 도착한 이후 날씨가 연일 최상이다.

독일에서 이런 날씨는 흔치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침에 제일 먼저 날씨 얘기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Wunderschoenes Wetter Heute!”(오늘 날씨 진짜 좋아요!)

“FIFA가 월드컵을 위해 날씨까지 준비해 두었다”고 농담하면 다들 좋은 기분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독일의 전형적인 날씨, 그러니까 우중충하고 변덕스럽게 비가 내리는 날씨 탓에 세계적 철학자·문학가·음악가들이 독일에서 많이 나왔다고 하는 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날씨만이 칸트와 괴테, 베토벤을 배출하는 환경을 만든 건 아니다. 최첨단 자동차로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속도무제한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을 질주하다가도 집에 가는 길에 동네 슈퍼에 들러 식탁 위에 꽂아놓을 생화를 사가는 독일인.

주중엔 정장을 하고 점심시간을 엄격히 지키며 열심히 일하다가도 주말이면 대를 이어 응원하는 프로축구팀의 유니폼과 머플러를 걸치고 경기장으로 가는 독일인.

필자가 독일에 대해 가장 높이 사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고전문화와 현대문화를, 일과 여가를 균형 있게 조화시켜 나가는 그들의 노력이다. 고전과 현대, 과거와 현재가 융화된 문화를 어릴 적부터 생활화하는 독일인들…. 그리고 넓은 의미의 문화 중심에는 교육이 있다. 독일의 교육제도는 우리 것과 많이 다른데,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교육비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교육을 중요시해온 독일은 국민 모두에게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초·중·고교는 물론이고 대학도, 매년 등록금이 치솟는 한국에 비하면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초·중·고교생에게는 교과서와 통학교통비가 무료로 제공된다. 심지어 국가가 대학생들에게 숙식비까지 일부 지원해 준다. 개인이 경쟁적으로 교육비를 지출하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국가가 많은 예산을 들여 교육에 투자하는 셈이다. 교육제도와 방식이 다를 뿐이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독일도 한국 못지않다.

2006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프로그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일 전역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Fair Play for Fair Life’라는 교육캠페인이다.

205개 FIFA 회원국에 맞춰 전국적으로 205개 학교가 참여한 이 프로그램은, 각 학교가 하나의 국가를 맡아 학생들에게 그 나라의 축구팀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역사·지리·언어 그리고 심지어 음식문화까지 가르친다.

어린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이국문화에 관심을 갖고 실감나게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남태평양의 섬나라, 중앙아시아 산악지역의 어느 왕국 등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 대해 공부하면서, 언젠가 성인이 되면 그 나라로 여행 떠날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A매치가 열리면 상대 국가대표팀에 대한 스타선수, 전력, 전술 등에 대한 보도는 홍수를 이룬다. 하지만 정작 그 국가에 대한 다른 정보, 이를테면 역사·문화·지리 등에 대한 정보는 접하기 힘들다.

과거 수년 간 우리 국가대표팀이 경기를 한 국가들을 보면 매우 다양하다. 가나, 노르웨이, 트리니다드토바고, 이란, 앙골라….

축구경기를 통해 우리가 평상시 잘 몰랐던 나라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제화는 단지 외국어를 배우고 해외여행을 많이 한다고 자동적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평상시에 다양한 외국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고 우리와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사고를 키움으로써 습득되는 것이다. 우리도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32개 출전국에 대해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자 그럼 당장이라도 세계지도를 펼쳐서 코스타리카, 토고, 호주, 트리니다드토바고가 지구상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찾아보시라. 그리고 언젠가 이 아름다운 나라들로 여행을 떠나는 꿈에 푹 빠져보시라. 꿈은 이루어진다!

〈최범석|뮌헨에서·포르투나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독일도 붉은 물결 ‘서울을 옮긴 듯’

필자가 서울역보다도 훨씬 더 잘 아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걸어 내려가자 독일에서 가장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역은 이미 붉은 물결로 넘실댔다. 한국의 유별난 악마들이 이미 역 광장을 점령했고, 역사 길 건너편 건물에 설치된 한국기업의 광고판들은 이들의 점령을 확인해주는 듯 보였다.

▲중국기자들도 “한국이 우리!”

우리의 국력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붉은 물결은 지하철역으로, 경기장 주변으로, 그리고 발트슈타디온으로 이어졌다. 발트(Wald)는 독일어로 숲이라는 뜻이다. 프랑크푸르트 월드컵 경기장은 실제로 숲 한가운데 서 있는데, 나뭇잎의 푸른색과 응원단 셔츠의 붉은색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원색무늬를 만들었다.

경기장의 좌석이 하나 둘씩 채워졌다. 우리 붉은악마의 응원소리도 점점 더 커져갔다. 밖에서도 낯익은 응원소리가 들려왔다.

“대~한민국.” 경기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대학생 나이의 독일인 커플이 필자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토고!’를 외친다.

토고 대표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종이에 인쇄된 토고국기를 손에 쥐고 있다. 왜 토고를 응원하느냐고 물었다.

“한국을 응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토고를 응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머플러와 토고국기는 경기장으로 오는 길에 샀단다. 필자도 그들 입장이라면 토고를 응원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상대팀이다.

경기시작 직전에 베이징에서 온 중국 스포츠신문 기자 둘을 만났다. 오늘 경기에 대한 예상을 물어왔다.

“누구든 골을 많이 넣는 팀이 이기겠지만, 한국선수들이 심리적인 부담감만 어느 정도 털어버릴 수 있다면 ‘우리 쪽’에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어제 일본경기에 이어 오늘 한국경기를 취재하러 왔다면서, 자기들은 한국팀이 아닌 아시아를 대표하는 팀을 취재하러 왔다고 거듭 강조한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한국팀.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우쭐해진다. 꼭 이겨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살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멋지게 토고를 상대로 첫승을 거뒀다. 이번 월드컵 첫승이자 다른 나라에서 따낸 월드컵 첫승이기도 하다.

▲“다 좋아요. 모든 게”

경기가 종료되고도 한참 동안 경기장 여기저기에 우리 응원단이 남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 옆에서 한 무리의 그들을 바라본다. 정신 없이 90분이 지나갔고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맛본 젊은 붉은악마들은, 멍하니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실감이 안 나는지, 응원을 너무 열심히 해서 지친 건지, 아니면 시차 때문인지, 얼굴표정이 지쳐 있다. 아마 모두 다일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이, 경기 90분이 정말 한순간같이 느껴지겠지. 그들 또한 우리 대표팀 선수들만큼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경기장 밖에서는 응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물놀이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지고 호기심 많은 독일인들이 합세해서 같이 껑충껑충 뛰면서 승리를 축하했다. 어여쁜 여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태극무늬가 그려진 얼굴이 아직도 많이 상기되어 있다.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다 좋아요. 모든 게 다!” 너무나도 솔직한 신세대 표현이다. 꾸밈이 없는 자기 표현이고 주장이다. 멀리 낯선 유럽으로 여행을 와서 좋고, 멋진 독일월드컵 경기장에서 일생에 한번밖에 볼 수 없는 경기를 봤기 때문에 좋고, 응원하는 팀이 승리해서 좋은 것이다.

열심히 일하며 앞으로만 달려온 기성세대와는 달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세대는 노는 것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자기 주장이 있고, 자기 표현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럼 오늘처럼 모든 게 다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다. 월드컵이 끝나고도 오래 오래.

〈최범석|프랑크푸르트에서·포르투나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과거史 사죄하는 독일의 응원문화

요즘 독일의 TV와 신문은 온통 독일팀에 대한 평가와 선수들에 대한 보도로 홍수를 이룬다.

그중 한가지 눈에 띄는 주제가 있다. 바로 ‘민족주의(nationalism)’에 관한 기사와 토론이다.

태극기가 시청앞 광장을 뒤덮고, 태극기를 얼굴에 그리고, 태극기로 온몸을 치장하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낯설지도 않고 거부반응도 없다.


그러나 독일의 사정은 좀 다르다.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으로 된 독일국기를 경기장에서, 길거리에서 집단으로 흔드는 모습은 왠지 낯설다. 독일인 중에서 이런 모습에 거부감을 갖거나 심지어 경악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유는 하나, 독일의 과거사 때문이다.

나치 그리고 세계 2차대전 이후 독일인은 집단주의, 민족주의에 대해 극도로 민감해졌다. 민간인이 집단적으로 유니폼을 입거나 국기를 흔들며 “도이치란트!”를 외친다든지 하는 애국심의 표현은 의식적으로 자제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보이스카우트가 사라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 A매치에서 우리처럼 초대형국기가 경기장 한쪽을 뒤덮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어떠한 형태이든 독일의 민족주의가 표현될 때 민감해지는 또 다른 사람은 이웃국가 국민들이다.

세계 2차대전 이전에도 독일이 강해지고 민족주의가 꿈틀대면 항상 피해를 본 이웃국가들. 1990년 동서독이 정식으로 통일되기 직전, 프랑스의 대표적 일간지 ‘르 몽드’는 사설에 심지어 이런 표현을 썼다.

“우리는 독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두개의 독일을 원한다.”

독일의 주요방송사인 ‘ZDF’는 아침 프로그램에서 월드컵과 민족주의에 대해 다뤘다. 독일국기 무늬의 모자, 셔츠, 머플러 등을 스튜디오에 진열해놓고 전문가들과 길거리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다.

“독일국기로 몸을 치장하고 국기를 흔드는 건 독일이 아니라 독일축구팀을 응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젊은 시민의 말이다.

“우리 동네에는 창문에 브라질 국기, 스위스 국기 등 자신이 지지 또는 좋아하는 나라의 국기를 걸어놓은 사람이 많은데, 독일사람으로서 독일국기를 걸어놓는 건 이상하지 않다고 봐요.”

다른 40대 시민의 의견이다. 베테랑기자 루디 미셜은 인터뷰에서 다른 의견을 얘기한다.

“제가 74년 서독월드컵을 취재할 땐 지금처럼 독일국기를 많이 볼 수 없었죠. 독일국민은 당연히 서독팀을 응원했지만, 이번 월드컵처럼 민족주의 색깔이 짙지는 않았습니다. 축구는 축구에 머물러야지, 민족주의를 표출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안젤라 메를켈 총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이런 얘기를 한 바 있다.

“이제는 정당화할 필요 없이 국기를 흔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우리에게는 이같은 ‘민족주의’ 이슈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인은 아직까지 나치 시절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20세기 인류사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가 어떻게 독일인이 나치 같은 집단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시 세계 최고수준의 교육, 문화, 과학, 기술 등을 자랑하던 독일국민이, 실패한 화가 지망생 히틀러의 선동에 이끌려 인간을 학살하고 전쟁을 일으켰을까.

근 30년간 옆에서 지켜본 독일인들은 반성의 자세로, 사죄하는 마음으로 독일국기를 마음 놓고 흔들어 보지 못했다. 필자의 바람은 최소한 독일의 신세대 젊은이들이 조상이 저지른 죄값을 대신 지불해야 하는 부담감에서 이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너는 독일인이고 그 사실을 당당하게 표현하라. 비슷한 만행을 저지르고도 반성은 둘째치고 의식조차 하지 않는 국민도 있단다. 독일국기를 손에 쥐고 흔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독일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최범석|프랑크푸르트에서·포르투나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월드컵은 스포츠브랜드 ‘대리전’



월드컵에서는 참가 팀들만이 경쟁하는 게 아니다.

각팀을 응원하는 서포터를 12번째 선수라고 한다면, 13번째 선수는 그 팀의 유니폼 스폰서 기업이라 할 수 있다. 2002월드컵 우승팀인 브라질은 나이키(Nike)가, 이번 대회의 주최국인 독일은 아디다스(adidas)가 용품스폰서로 계약돼 있다.

한국팀은 나이키, 일본팀은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는다. 강력한 우승후보인 잉글랜드는 움브로(Umbro)를 입고 경기한다. 그리고 이번 2006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32개 국가 중 가장 많은 대표팀을 후원하는 용품업체는 의외로 푸마(Puma)다. 총 12개 팀이 퓨마 유니폼을 입고 뛴다. 이는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회사인 나이키나 2위인 아디다스보다 더 많은 숫자다.

▲13번째 선수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스포츠용품 기업들은 세계 최대 스포츠대회인 월드컵을 통해 자사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물론 아디다스가 FIFA의 공식 파트너로서 다른 경쟁사에 비해 유리한 고지에 있다. 일단 월드컵 공식 축구공은 아디다스에서 제공하고, 축구는 결국 공에서 시작하고 공으로 끝나기 때문에 엄청난 브랜드 노출효과를 얻는다.

하지만 그 축구공을 골대 안으로 차 넣는 건 선수의 몫이다. 그리고 모든 선수는 유니폼을 입는다. 전세계 언론에 보도되는 경기 관련사진과 주요 영상은 대부분 골을 넣는 장면이나 승리에 환호하는 선수의 모습이기 때문에, 어느 용품회사의 유니폼을 입은 팀이 승리하는가는 용품스폰서 입장에서 최대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즉 각 국가대표팀의 13번째 선수는 용품 스폰서 회사인 것이다.

2002월드컵 결승이었던 브라질-독일전인 나이키-아디다스의 경기이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 결승에서는 과연 어느 회사의 유니폼을 입은 두 팀이 경기를 하게 될까.

▲사활을 건 대리전

유니폼 스폰서십을 통한 마케팅 경쟁은 월드컵에 국한되지 않는다.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초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 등 유럽의 명문 클럽들은 각각 영국과 스페인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팬들을 갖고 있다.

월드컵은 4년에 한번 개최된다. 하지만 국가별 프로리그 및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국제대회는 매년 열리고, 유럽 외 다른 대륙에서도 중계된다. 때문에 인기 있는 프로축구팀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용품업체들의 경쟁 또한 치열하다. 독일 아디다스 본사에 근무하는 친구가 필자에게 들려준 다음의 실제상황은 용품업체들의 글로벌마케팅이 얼마만큼 치열한지를 잘 보여준다.

2003년 봄,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던 데이비드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이미 스페인의 축구영웅 라울 곤살레스 외에도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지불하고 브라질의 호나우두, 프랑스의 지단, 포르투갈의 피구 같은 세계 최고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간 이유는?



그런 상황에서 설마 레알 마드리드가 실제로 베컴까지 영입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거기다 ‘베컴=맨유’라는 불변할 것 같은 공식을 베컴 자신이나 구단에서 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2003년 6월 18일. 전세계 언론의 관심이 도쿄 나리타 공항에 집중됐다.

전날 부인 빅토리아와 함께 베컴이 런던 히드로공항을 떠나 일본으로 출발한 직후, 전세계 언론에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데이비드 베컴, 레알 마드리드와 4년 계약.’ 그는 부인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었고, 그의 인터뷰와 사진을 따기 위해 일본 기자들은 물론 많은 외신기자들이 서둘러 도쿄로 몰려갔다.

베컴이 드디어 나리타공항에 도착해 이적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자신의 새로운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언론 앞에 선보이는 장면이 일본에서는 생중계되고 전세계 언론에 전달됐다. 베컴은 나이키가 후원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 대신 아디다스가 후원하는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첫 데뷔전을 스페인이 아닌 중국에서, 그리고 첫 골을 일본에서 넣게 된다.

▲최대의 승부처는 아시아

얼핏 보면 양 구단과 선수간의 이적거래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 화려한 무대 뒤에 ‘보이지 않는 손’ 아디다스가 있었다. 베컴이라는 선수를 영국 맨체스터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이적시킨다는 아이디어도, 그 이후의 협상과정도, 그리고 드라마틱(?)한 이적발표 및 도쿄에서의 인터뷰, 이 모든 프로젝트에 아디다스가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 왜 아디다스는 3,500만유로(약 420억원)나 되는 이적료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면서까지 베컴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켰을까?

이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독일 친구의 설명이다.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우리 아디다스는 유럽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었고, 나이키는 남미시장에서 우리를 앞질러 있었지. 다음으로 중요한 아시아시장에서는 우위경쟁이 치열했어. 어떻게 하면 이 시장에서 나이키를 따돌릴까 고민한 끝에 베컴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거지.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선수잖아. 오빠부대도 많고. 그래서 나이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베컴에게 레알 마드리드의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히게 된 거지.”

치열한 지역예선을 뚫고 독일에 입성한 32개국의 축구대표팀. 가슴을 조이며 모국을 응원하는 국민. 그리고 그들 뒤에서 소리 없이 울고 웃는 13번째 선수가 있으니, 바로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기업들이다.

〈최범석|뒤셀도르프·포르투나 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태극호 작은파리서 ‘작은혁명’



<자케(사진 오른쪽) 전 프랑스감독과 함께한

최범석 포르투나2002 대표.>



2006 독일월드컵 12개 개최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옛 동독에 위치해 있는 라이프치히.

인구 50만명인 이곳은 독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도시이자 독일통일이 시작된 곳이다.

1989년 라이프치히 시민들은 평화적 시위를 통해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에 반기를 들었고, 이는 즉각 다른 동독도시들로 퍼졌다.

결국 다음해인 1990년 동독의 체제는 붕괴되었고 동·서독의 통일로 이어졌다. 라이프치히는 독일축구와도 인연이 깊은 도시다.

1900년 이곳에 최초로 독일축구협회가 문을 열었고, 1903년에는 이곳에 연고를 둔 VfB 라이프치히가 독일리그의 첫 우승팀이 되었다. 광대한 숲과 호수, 강, 운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대학생 시절 이곳에서 살았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작은 파리’라고 칭송했던 라이프치히.

지난 18일(현지시간) 열차가 예정된 도착시각 오후 3시46분 정각에 라이프치히 중앙역 플랫폼에 멈춰 섰다. 초현대식 건축양식의 역사는, 몇시간 후 있을 월드컵경기를 보기 위해 역에 도착한 사람들과 경기와는 무관하게 오늘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도 붐볐다.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역사 안에 있는 중국식당으로 들어갔다. 손님의 절반은 붉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필자와 동석을 하게 된 두 한국인 여성은 대구에서 왔단다.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티켓을 구입했고 한국전 전 경기를 볼 계획이라고 얘기했다. 축구를 보기 위해 멀리 유럽까지 왔으면 축구를 정말 좋아하겠다고 하자, “아니요, 국가대표경기만요. 평소에 한국에서 프로축구경기는 안 보는데….”

독일에서 오랜만에 대구억양을 들으니 반가웠다.

긴장 속에서 경기가 진행됐고, 90분 경기가 드디어 끝났다. ‘작은 파리’에서 ‘작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붉은 셔츠와는 대조적으로 푸른색 셔츠를 입은 프랑스팀 서포터스는 풀이 죽어 있었다. 98 프랑스월드컵의 영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프랑스 축구팬들은, 설마 한국팀은 이기겠지 했다가 얻은 승점 1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관중이 대부분 떠나고 없는 젠트랄 슈타디온에는 우리 서포터스의 행복한 응원가가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지겹지 않은, 아니 들을수록 흥겹고 기쁜 우리 대한민국의 목소리.

생각 같아서는 우리 서포터스와 함께 경기장에서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고 오늘의 극적인 경기를 축하하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미디어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우연히 경기장 밖에서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98년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에메 자케! 필자는 프랑스팀의 경기결과에 실망해 있을 것 같은 그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I am sorry that the French team did not win.” 그러나 그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아닙니다. 한국팀이 잘 했어요. 축하해요!(No, the Korean team did a good job. Congratulations!”, “우리 팀도 잘 했지만, 프랑스팀이 너무 아쉽게 비긴 것 같아서….(Our team played very well, but the French team could have won…)” “그 정도면 프랑스팀도 잘 한 거예요.(The French team did what it could.)”

어두운 가로등이 비치는 경기장 주차장으로 가는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프랑스 아트 사커의 대부 에메 자케 감독. 그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고, 한국팀의 선전을 축하해주는 표정은 밝았다. 필자가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동행인들을 옆에 기다리게 하고 쾌히 승낙했다.

에메 자케 감독으로부터 직접 축하를 받다니! 라이프치히 중앙역을 떠나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는 바닥에 앉을 자리도 없이 초만원이었고, 필자는 90분을 내내 서서 가면서도 즐겁고 행복했다.

〈최범석|라이프치히·베를린에서|포르투나 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독일, 월드컵으로 제2통일

유럽에는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스페인 마드리드, 이탈리아 로마,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등 아름다운 수도가 한둘이 아니다. 도시마다 그만의 색깔이 있고 역사와 문화가 보존돼 있다.

하지만 독일 베를린은 이들 대도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20세기 세계사에서 베를린만큼 다양한 변화를 겪은 도시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독일의 수도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최근에야 안정을 되찾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여기저기 공사 크레인이 보이고 개·보수가 막 끝난 건물들이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필자는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돼 있던 80년대에 서베를린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는 동독 안에 위치한 베를린은 둘로 나뉘어져 있었고, 서베를린은 공산주의체제 한가운데 섬처럼 존재했다.

서독주민은 베를린으로 이주하기를 꺼렸다. 서독정부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최소한의 인구가 서베를린에 거주하도록 유인정책을 폈다. 생각해 보라. 만약 평양이 북평양, 남평양으로 분리되어 있다면, 남한 사람 중 과연 몇 명이나 가족과 함께 거주지를 남평양으로 옮기겠는가. 서베를린은 냉전시대의 상징이자 지뢰밭과 같은 곳이었고, JF 케네디 대통령은 60년대 초반 이 암울한 도시를 직접 방문해 그 유명한 말,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를 외쳤다.

서베를린을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지키겠다는 서방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서독기업들은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이곳에 투자하기를 꺼렸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자유대학 학생들과 외국인 근로자들, 진보성향의 독일인들이 시인구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랬던 베를린이, 1990년 예상치 못했던 통일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게 됐다. 동서로 도시를 가로지르며 영원히 서 있을 것 같았던 장벽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산주의 바다에 외롭게 떠 있던 섬은 자본주의 육지의 일부분이 되었고 명실상부한 통일독일의 새로운 수도가 됐다.

지난 20일, 독일-에콰도르 A조 최종예선경기가 있었던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 이날 경기장 관중석을 가득 메운 7만3,000여 독일관중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목이 터져라 독일팀을 응원하며 팀 승리를 자축했다. 경기장은 독일국기로 뒤덮였다.

불과 60여년 전에 히틀러의 연설에 독일국기를 흔들며 열광하던 독일인은, 이제 평화의 상징인 축구를 관람하며 건전한 민족주의, 애국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흐뭇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통일은 독일인에게 새로운 희망과 동시에 또 다른 문제를 안겨줬다. 구서독 주민과 구동독 주민 간 갈등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이 현실화하면서 유럽국가간의 이동이 완전히 자유로워지자 많은 외국인이 독일로 이주하면서 인종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FIFA가 이번 월드컵에 내세운 슬로건은 ‘Say No to Racism(인종차별을 거부하자)’이다. 축구만큼 인종을 초월해 지구촌 모든 민족이 공평하게 경쟁하며 즐길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바로 이번 월드컵 개최국인 독일에서 이 캠페인은 빛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구동독 태생의 발라크가 다시 한번 독일축구영웅으로 떠오르고, 폴란드 핏줄의 클로제와 포돌스키가 독일팀의 승리를 이끌고, 검은 피부의 오동코어와 아자모아가 독일축구팬을 열광시키면서 독일인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6년 전 동·서독이 통일하면서 외형적으로 새로운 독일과 베를린이 탄생했다면, 월드컵을 계기로 독일과 베를린은 이러한 통일의 내실을 다듬고 국민간의 단합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독일인에게 축구가 주는 소중한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최범석|베를린·포르투나 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명문구단은 ‘미래’ 에 투자한다

14개 한국 프로축구 구단 관계자들과 함께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함부르크SV 구단을 방문했다.

함부르크SV는 1887년에 창단됐으니, 내년이면 무려 120살이 된다. 먼저 호프만 사장의 환영사가 있었고 베마이어 단장의 구단소개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졌다. 그런 뒤 참가자들을 위한 질의응답시간. 한 구단 관계자가 질문했다.

“명문구단은 어떻게 탄생하나요?”

베마이어 단장은 미소를 띠며 짧게 대답했다.

“역사와 전통이 명문구단을 만듭니다.”

필자는 이 대답을 들었을 때,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 구단 로비에서 봤던 사진들을 떠올렸다. 수십년 된 흑백사진들이 액자 안에 소중하게 걸려 있었다. 영광의 순간들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사진 속에서 여전히 살아 경기장을 누비고 있는 듯했다.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고 인생을 정리할 나이가 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역사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앞으로 수십년 아니 수백년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다. 수백년 된 나무를 아주 비싼 가격에 구입해 자기 정원에 심을 수는 있어도, 담쟁이덩굴은 불가능하다. 씨를 뿌리거나 어린 묘목을 심은 뒤 세월이 흘러서 살아 남은 뿌리만이 오래된 나무로 담장을 뒤덮을 수 있다. 그게 바로 역사다.

전통은 역사 속에서 발전하고 진화한다. 전통은 곧 문화이고, 문화는 변하면서 지속된다. 문화의 핵심은 보존되고 지속되며 그 핵심 안에는 하나의 고유 정신이 살아 숨쉬어야 한다.

100년 전 조상이 구단의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만들어가면서 숨은 정신을 주위의 팬들과 공유했다면, 100년 후 후손이 이를 이어받아 주위 팬들은 물론 조상들과 함께 공유한다. 이것이 전통이다. 현재 눈에 보이는 영웅도 있지만, 역사 속의 영웅은 더 위대해 보인다. 그 역사 속 영웅들은 젊은 꿈나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꿈을 심어준다.

“잉글랜드의 첼시는 신흥명문구단이라고 하지만,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전통은 가질 수 없습니다. 명문구단은 하루 아침에 될 수 없으니까요. 비싼 선수 몇 명 영입해 우승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와 전통을 지닌 명문구단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베마이어 단장의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는 답변에 참가자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함부르크SV뿐 아니라 분데스리가 구단들은 예외 없이 유소년 축구 프로그램에 많은 투자를 한다. 명문구단일수록 그 투자액은 더 많다. 과거와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되도록 많은 씨앗을 뿌려야 그중에 건강한 나무로 성장할 확률도 그만큼 큰 것이다. 하지만 아무 땅에나 씨앗을 뿌린다고 새싹을 피우는 건 아니다. 토양에 신경을 쓰고, 흙을 연구하고 관리해야 한다. 유소년 축구를 위한 시설 및 기타 인프라가 발전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당장 골을 넣고 어떤 성과를 얻는다고 해서 기뻐만 할 게 아니다. 필자는 작년 가을에 한국의 고등학교 유망주 두명을 독일 최고 명문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에 연수를 보낸 적이 있다. 당시 담당 감독은 이들 선수가 기술도 좋고 스피드도 뛰어나지만 기본체력은 놀라울 정도로 부실하다고 평가했다.

한 선수가 턱걸이를 한번도 못하는 걸 보고 독일감독과 코치는 깜짝 놀랐다. 수학이 모든 과학의 기초인 것처럼 체력은 모든 스포츠의 기초다. 독일은 어린 축구선수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기 전에 균형 있는 체력단련을 우선시한다. 기초가 다져진 다음에 기술을 가르쳐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유소년 축구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축구는 땅과 같이 정직하다. 잔꾀를 써서, 약은 방식으로 승리할 수는 없다. 설령 한두 번 성공하더라도 세계 최고수준의 팀들을 상대로 여러번 이겨야 거머쥘 수 있는 월드컵 트로피는 불가능하다. 멀리 생각하자. 투자하고 기다리자. 인내하자. 언젠가 우리 한국에도 세계가 인정하는 명문구단이 탄생할 것이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도 월드컵 우승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최범석|함부르크·포르투나 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실망을 껴안아야 희망이 다시온다

질문: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귀가 크게 생겼다. 왜 그럴까요?

정답: 월드컵 우승에 한이 맺힌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습관적으로 아이들의 양 귀를 잡고 들어올려 국경 넘어 독일을 보여주며 이렇게 얘기한다고 한다. “저기가 월드컵 우승국 국민이 사는 나라란다.”


허탈, 분노, 슬픔에는 가끔 농담이 위로가 된다. 이제 대한민국 축구팀은 다른 15개 팀과 함께 독일을 떠났다.

모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는 독일팀을 제외하고는 모든 팀이 2주 안에 고국으로 떠나겠지만, 조금 일찍 가야만 하는 건 분명 아쉽다. 심판은 불공평했어도, 다행히 독일의 축구여신은 우리 한국팀에게 공평했다.

첫 경기에서 멋진 역전승을 허락했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승리보다 더 값진 무승부를 선물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는 다음 월드컵 때까지 잊지 못할 아쉬움을 남겨주지 않았나!

이천수 선수의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는 매우 솔직하고 성숙한 표현이다. 우리끼리 경쟁하고 결과에 만족한다면 모를까, 국제적으로 경쟁해서 우리의 실력을 평가 받고 싶다면 이천수처럼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의하면, 브라질은 2005년 한해 동안 무려 878명의 프로축구선수를 해외로 ‘수출’했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유럽명문 클럽은 물론 2부, 3부 리그에 꽤 많은 숫자가 진출해있다. 우리 대표팀의 핵심 선수 몇 명은 이미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평가해서 나머지 선수들의 국제경쟁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한 국가의 대표팀 수준이 자국리그의 수준에 비례한다는 말은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05~06 시즌에 영국 프리미어십, 독일 분데스리가 등 유럽 메이저리그는 평균 관중수가 평균 3만이 넘었다. 우리 K리그는 이에 비해 10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치는 평균 관중수를 갖고 있다. 재능이 뛰어난 어린 선수들이 해외리그로 ‘팔려’나간다고 해도, 결국은 이들 또한 자국리그가 키워낸 선수일 수 밖에 없다. 클럽시스템, 국민의 축구열정, 그리고 진정한 축구사랑이 합쳐져서 국제적인 축구스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계의 벽은 높다. 그리고 그 벽을 훌쩍 뛰어넘으려면 필수적으로 국내프로축구가 활성화 돼야 한다. 그 길 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독일의 축구여신은 우리에게 또 한번의 기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적은 자주 일어나면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비록 한국팀이 없는 월드컵 경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환희와 슬픔을 선사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축구를 진정 사랑한다면 세계 최고 선수들의 나머지 경기를 시청하면서 감동을 느껴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우면서 말이다.

- 독일의 축구사랑에 관한 유머 -

한 노인이 옆에 한자리를 비워 놓은채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A:같이 보기로 한 분이 아직 안오셨나봐요?

노인:함께 오기로 한 할멈이 그만 하늘나라로 가서…

A:그럼 가까운 친구나 친척하고 함께 오시지 그러셨어요?

노인: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다들 할멈 장례식에 간다고 해서…???

〈최범석|슈투트가르트·포르투나 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명장열전 ‘클린스만 獨무대’

독일 대표팀의 통쾌한 승리행진은 독일 국민을 흥분시키고 있다.

월드컵 개막에 무관심하고 축구를 외면하던 사람들까지 이제 독일팀이 결승전이 열리는 베를린까지 과연 승리를 이어갈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축구의 룰을 전혀 모르는 할머니가 독일 응원 깃발을 정원 한가운데 꽂아놓고, 유모차를 타고 가는 갓난아이 얼굴에는 검정, 빨강, 노란색 페이스페인팅이 새겨져 있다.

축구관전수준이 높은 독일인은 자국팀의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공격적이고 즐거운 축구에 더 열광한다. 초반에 터지는 골, 90분 내내 공격템포를 늦추지 않고 상대 골문을 괴롭히는 적극적인 플레이.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축구스타일의 엔지니어인 대표팀 감독 클린스만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2004년 7월, 히츠펠트 감독, 레하겔 감독 등 독일의 명장들을 대신해서 의외의 인물이 독일 대표팀 감독에 부임했다.

마흔이 갓 넘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험이 거의 전무한 그는, 취임하는 날 기자들 앞에서 자신 있게 얘기했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우승할 겁니다.” 2년 뒤 독일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에 대해서는 축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는 독일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다음날부터 그의 ‘개혁’은 시작되었다. 단순히 대표팀을 재건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그의 목표 대상은 그가 보기에 너무 노쇠하고 보수적인 독일축구협회까지 포함됐다.

그는 축구협회의 추천을 무시하고 독일인 대신 미국인을 피지컬 트레이너로 임명하고, 스카우트 담당도 파격적으로 스위스인을 선택했다. 클린스만이 다음으로 축구협회 요직인 경기국장에 축구인 출신이 아닌 독일 하키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려 하자 오랫동안 협회를 지켜왔던 임원들은 드디어 그의 개혁에 제동을 걸었다.

“우리는 혁신(Innovation)은 환영하지만 혁명(Revolution)은 필요 없다.”

결국 독일축구협회는 클리스만 감독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 잠머스를 경기국장에 임명했다. 그로 인해 클리스만 감독은 그의 개혁과정에서 첫 번째 좌절을 맛보게 된다.

올 3월 1일 독일-이탈리아의 원정평가전. 독일의 1-4 대패. 클린스만에 대한 불만이 커져만 가던 독일축구협회 내에서는 표정 관리를 하는 동안, 독일 언론은 협회를 대신해서 비난을 쏟아 부었다.

“독일행 대신 미국행 비행기를 타라.”

집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클린스만 감독은 실제로 얼마 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사임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 이후에도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대표팀 골키퍼에 부동의 올리버 칸 대신 얀 레만을 앉혔고, 월드컵 최종명단에는 오동코어와 같은 의외의 선수이름을 올렸다.

이번 월드컵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클린지(Klinsi·클리스만 감독의 애칭)’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이다. 잘 생긴 얼굴, 소년 같은 미소, 영어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가 유창한 국제 신사, 그리고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사생활.

그는 일년 중 절반은 아시아계 미국인 부인과 아이들이 사는 캘리포니아에서 보낸다. 부임 초기에 독일 대표팀감독은 독일에 거주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독일 국민은 지금 그가 무엇을 하건, 어떻게 하건 전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2006년 독일인의 꿈인 월드컵 우승은 전적으로 그의 손과 머리에 달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작은 빵가게 아들이었고, 작년에 아버지가 작고했지만 빵가게는 아직도 ‘클린스만 베이커리’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이다. 그도 만약 프로축구 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면, 학생 때 배운 빵 굽는 기술과 자격증을 가지고 아버지의 빵가게를 이어받아 지금도 꾸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클린지”는 새로운 ‘저먼 드림(German Dream)’의 표본이자 독일인의 절박한 희망이 되었다. 과연 7월 9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젊은 독일감독의 개혁이 성공을 거두고 독일인의 꿈이 이루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최범석|베를린·포르투나 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명품 서비스’ 명문구단 만든다

유럽프로축구의 발전사는 노동자계급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주말 축구경기 관람은 긴 근무시간과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오는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수단이었다.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지인 리버풀, 맨체스터 등에 오랜 전통의 축구팀이 있고, 독일 ‘라인강의 기적’ 심장부인 루르(Ruhr)지방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바이엘 레버쿠젠 등의 명문구단들이 밀집돼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여가활동이었던 축구관전문화는 지난 20년간 급속도로 변했다.

분데스리가 축구장 중에는 아직도 좌석 없는 전통적인 입석구역이 있는 곳이 여러 군데 남아 있지만, 다른 쪽엔 VIP를 위한 최고급 좌석과 스카이박스(Skybox)가 신설되었다. 1만원 이하의 입장권을 구매한 축구팬과 수백만~수천만원 하는 VIP 스카이박스를 구매한 축구팬이 함께 경기를 즐기게 된 것이다.

독일 바이에른 뮌헨구단의 마케팅팀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정장을 하고 VIP석에 점잖게 앉아 한 손에는 샴페인 잔을, 다른 손에는 시가를 들고 있는 관중에 대한 일반석 관중의 반응은 의외로 긍정적이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아야 구단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좋은 선수를 영입한다면 팬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좋다는 게 팬들의 시각이었던 것이다.

세계최대의 스포츠행사인 월드컵의 VIP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서비스는 그 명성에 걸맞게 최고급이다. 경기 전후 및 하프타임에 VIP 식당에서 최고급 식사와 음료를 즐기고, 경기 중에는 본부석과 맞은 편의 제일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특권을 위해 1인이 지불하는 비용은 최소 1,000 유로(약 120만원).

스카이박스(독립된 방과 발코니 좌석)는 10인 기준으로 평균 1억원이 넘는다. 이런 고가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날 경기장에서는 비어있는 VIP좌석과 스카이박스는 찾아볼 수 없다.

VIP 호스피탈리티 패키지(VIP 관전접대 서비스패키지)의 구매고객은 개인도 있지만 주로 기업들이다. 자사의 중요한 고객을 초청해서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선물하고 비즈니스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한다.

월드컵 개막전이 열렸던 뮌헨 월드컵 경기장은 바이에른 뮌헨과 뮌헨1860 팀의 홈구장이다. 이 경기장은 작년 5월에 개장했는데, 구장 안에 있는 100개의 스카이박스 모두가 이미 건설단계에서 5년간의 임대가 완료됐다고 한다.

시즌 시작 전에 이미 시즌 티켓은 3만장 이상이 팔린다. K리그 현실에서는 꿈같은 얘기이다. 대표팀의 16강 진출이 좌절된 이후, 한국에서 또다시 K리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한다.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된 것이다. 팬들은 수준 높은 경기와 관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구단을 탓하고, 구단은 축구를 사랑한다면서 정작 경기장을 외면하는 팬들을 원망하는 그런 비생산적인 토론….

필자는 축구팬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축구팬은 소비자이고, 구단과 연맹, 선수는 서비스 제공자다. 서비스를 판매하는 측은 끊임없는 배려와 노력을 기울여 구매자에게 매력 있는 상품을 선보여야 한다. 당연한 시장원리이다. 우리 한국에도 각계각층의 축구팬이 국내프로경기를 보기 위해 주말에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날이 과연 올까. 그 날이 올 때까지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는 게 현명할 것이다.

〈최범석|프랑크푸르트·포르투나 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에이전트의 세계 上

월드컵이 전세계 수천만명의 축구선수들에게 꿈의 무대인 이유를 선수 입장에서 한번 상상해보자.

어릴적부터 축구가 인생이고 인생이 축구인 생활을 하면서 드디어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됐을 때의 영광. 약 2년에 걸친 치열하고 숨막히는 지역예선을 통과해서 세계최강 32개 팀에 들었을 때의 기쁨.

그리고 월드컵 본선까지 잇단 평가전과 동료선수들과의 한치의 양보도 없는 주전경쟁. 부상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최종 엔트리에 오를 때까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긴장감. 모든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려 있다는 부담감.

월드컵 개최국 입성과 동시에 이제는 전세계 언론의 시선이 집중되고, 한 경기 한 경기가 생애 최고의 순간이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 경기시작 직전 국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질 때 고국의 부모와 가족, 친구들의 얼굴이 머리를 스쳐갈 때의 감정.

경기가 시작되면 세계적 스타들과 몸을 부닥치며 월드컵 그라운드를 누빌 때의 자부심.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불 때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승리의 짜릿함과 패배의 쓰라림. 최소 3주간의 꿈의 월드컵 체험이 끝난 뒤 만감이 교차하는 귀국길.

축구선수로서 이 모든 과정을 겪을 수 있다는 건 꿈이자 최고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선수의 국적, 피부색과 상관 없이 말이다.

가슴으로 느끼는 자부심과 애국심이 있다면, 선수로서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자신의 이름과 가치를 전세계축구팬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심이다. 프로축구선수는 말 그대로 직업이 축구선수인 사람이다.

일반계약직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연봉을 월 혹은 주단위로 나눠서 받고, 퇴직 이후의 생계도 미리 고민하고 계획해야 한다.

자신의 진가를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바로 월드컵이기 때문에,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선수들은 ‘프로정신’을 발휘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선수 하나하나를 일반 팬과는 다른 시각에서 관찰하는 사람들이 바로 선수에이전트다.

FIFA 공식 선수 에이전트인 필자는, 이번 월드컵 기간 중 경기장 안팎에서 평소 알고 지내는 여러 명의 에이전트를 만났다.

대부분 유럽인이나 남미인인데, 모두 새로운 ‘숨은 진주’ 찾기에 분주했다. 그들은 특히 소위 축구변방국가의 예선경기를 관전하면서 선수들을 주위 깊게 관찰한다. ‘어느 국가대표팀의 어떤 선수가 눈에 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유럽 어느 리그에서 뛰기에 충분하다’ 등 단지 정보교환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물밑작업이 끝나고 특정 구단과 구체적인 계약조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선수도 여럿 있다. 월드컵은 무명선수에게 마치 대기업경력사원 입사시험과도 같아서 단시일 내에 세계에서 가장 큰 유럽리그에 스카우트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필자와 친분이 있는 에이전트 중 가장 독보적인 사람은 남미 우루과이 출신의 후안 피거(Juan Figer)이다. 일흔이 넘은 후안 피거는 브라질에서 펠레만큼 유명하고 지난 30여년간 수백명의 브라질 선수를 유럽에 진출시킨 주인공이다.

그가 현재 관리하는 유명선수만 해도 포르투갈 대표팀의 주장 루이스 피구, ‘제2의 펠레’ 호비뉴, 제 호베르투와 훌리오 밥티스타 등 헤아릴 수 없다. 후안 피거는 유명선수들 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미의 명문구단, 여러 나라의 축구협회와도 친분이 두텁다. 그가 세계축구계에서 갖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200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렸던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독일 바이엘 레버쿠젠과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경기 직후 열린 만찬에는, 32개 챔피언스리그 참가구단 대표들과 유럽축구연맹 및 FIFA 임원들이 참석했다.

후안 피거도 한 구단의 초청으로 이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를 알아본 블라터 FIFA 회장은 자신의 축사가 끝나자마자 모든 귀빈을 뒤로한 채 제일 먼저 그가 앉아 있는 자리로 다가가 반갑게 포옹을 했다고 한다. 이 전설적인 축구에이전트를 통해 스포츠마케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에이전트의 세계를 아래 잠시 소개한다.

〈최범석|포르투나 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에이전트의 세계 下

3년 전 여름, 필자가 밤 늦은 시각에 여행가방을 끌고 레버쿠젠에 있는 한 호텔로 들어섰을 때 로비에는 2명의 거구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한 명은 독일프로축구의 전설적인 구단매니저 라이너 칼문트(Calmund)였고, 다른 한 명은 선수에이전트 후안 피거(Juan Figer)였다. 필자는 두 사람의 초대로 동석을 하게 되었는데, 사뭇 진지한 표정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보고듣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1년 전 브라질에서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레버쿠젠 구단이 영입한 전 브라질 득점왕 프랑카(Franca)가 그날의 주제였다. 프랑카가 유럽에서 보낸 첫 시즌은 자신을 포함해서 구단, 에이전트, 팬 모두에게 무척 실망스런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호텔로비에서 그의 에이전트인 후안 피거와 그를 적극적으로 영입했던 칼문트 단장이 이 브라질 선수의 거취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프랑카 일은 참 미안하게 됐네, 후안. 브라질에서 펄펄 날던 선수였는데 독일 축구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어. 부상문제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도 참 실망스러운 시즌이었어.”

“그게 뭐 자네 잘못인가. 프랑카가 브라질 특급용병이라는 건 우리 팬들, 언론들보다도 내가 더 잘 알지. 그나저나 다음 시즌엔 어떻게 하지?”

“내가 비슷한 급의 다른 브라질 선수를 보내주면 어때? 프랑카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구단 입장에서는 손해가 좀 발생할 수 있겠지만, 내가 내 수수료를 양보할 테니 그 대안을 고려해봐.”

“아니야, 새 선수를 영입하게 되면 자네는 당연히 수수료를 받아야지. 프랑카의 영입을 결정한 건 우리 구단이잖아. 한 시즌만 더 지켜볼까?”

결국 프랑카는 다음 시즌(03~04)에 레버쿠젠 유니폼을 입고 분데스리가 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몰아넣으면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해보였다. FIFA 선수에이전트인 필자는 종종, 2003년 여름 밤 한 호텔 로비에서 이 두 ‘대선배”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다.

그날 대화의 키워드는 ‘신뢰’, ‘배려’, 그리고 ‘동반자’. 에이전트와 구단이 공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물론 일반 비즈니스 거래의 기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조건이 시선을 한국의 축구선수시장으로 돌리는 순간, 흔하지도 당연하지도 않은 게 현실이다.

에이전트란 직업은 과연 무엇인가? “에이전트가 하는 일은 선수를 관리하고 선수를 상품화(마케팅)하는 것”이 교과서에 등장하는 에이전트업의 정의이다. 물론 현실세계는 교과서에 정의된 세계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

에이전트 후안 피거는 남미에서 뛰어난 선수를 선별해 레버쿠젠과 같은 유럽구단에 추천하고, 구단은 에이전트가 제공해준 정보를 근거로 자체적인 평가를 통해 선수를 영입한다. 선수가 팀과 리그에 적응을 잘 하고 팀 성적에 기여하면 구단은 만족하고, 또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다른 팀에서 눈독을 들이면 높은 이적료, 일종의 권리금까지 챙길 수 있다. 물론 에이전트도 입단계약과 동시에 수수료를 받게 되고, 선수의 실력이 향상될수록 미래에 더 많은 수입이 보장된다.

박지성 선수가 무명으로 한국에서 프로선수생활을 했다면 오늘의 박지성이 과연 될 수 있었을까?

어린 선수들이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건 빅리그다. 그리고 이런 한국선수들과 외국구단 사이의 다리역할은 사실 선수에이전트의 몫이다. 이들은 일종의 세일즈맨으로서 한국선수들을 외국 구단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입단을 최종 성사시키는 일을 맡는다. 물론 선수의 실력이 제일 중요하지만, 에이전트의 역할 또한 필수항목이다.

K리그의 발전과 국가대표팀의 실력향상.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유능한 에이전트,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가 앞으로 많이 나와줘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한국선수들이 빅리그로 진출할 수 있게 되고, K리그 또한 같은 예산으로 더 좋은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해 프로축구수준을 높임으로써 더 많은 축구팬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최범석|포르투나 2002 대표〉

 

[월드컵 오디세이] ‘즐거운 전쟁’ 축구는 아름답다

축구는 참 아름답다. 지난 4주간 몸으로 체험한 2006 독일월드컵을 이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왜 축구가 새삼 아름답다고 생각이 드는 걸까? 혹자는 축구를 전쟁으로까지 비유하는 데도 말이다. 독일인 개그맨이 한 TV 토크쇼에서 이런 얘기를 했던 게 기억난다.

“독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려면 우리 헌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헌법에는 독일영토에서 모든 전쟁을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력전쟁에 대해 누가 이런 농담을 할 수 있겠는가. 축구는 물론 치열한 전쟁이다. 하지만 국민이 하나가 되어 즐길 수 있는 전쟁이다. 설령 패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즐거운 추억만 남을 뿐이다.

한 달간의 이번 출장은 필자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스포츠마케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월드컵과 관련된 회사일로 출장을 왔지만, 평생 간직하게 될 아름다운 추억들을 한아름 안고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1만㎞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면서 12개 월드컵 경기장에서 최소한 1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행운도 누렸지만, 그보다도 여행길, 경기장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은 필자에게 축구의 아름다움을 확인해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가족이 월드컵을 보기 위해 독일에 왔다는 멕시코인 대가족, 4년 뒤에 자국에서 개최되는 차기 월드컵을 기다릴 수 없어 미리 왔다는 남아공인 신혼부부, 뜻밖에 입장권을 구해 일본 경기를 보러 왔다는 일본인 항공조종사, 월드컵과 한국인에 대해 책을 쓰고 있다는 미국인 교수, 기차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축구를 주제로 대화를 하던 독일인 아버지와 어린 아들, 자신의 인생은 4년에 한번씩 절정을 이룬다는 브라질인 축구팬, 여행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독일의 밋밋한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누구보다도 더 씩씩하게 응원가를 부르던 한국의 붉은악마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축구 때문에 행복했고, 축구로 인해 친구가 되었다.

축구는 그래서 아름답다.

사람이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고 정신적으로도 건강하다. 월드컵은 거대한 잔치, 축제이다. 우리 한국인은 2002년에 그 몰입의 즐거움을 발견했고, 2006년 여름 다시 한번 월드컵이란 축제에 몰입했다.

기업, 개인 모두 많은 돈을 썼고 많은 시간과 열정을 소비했다.

한국의 거의 모든 방송사와 신문사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취재팀을 독일로 파견했다. 독일인들이 놀랄 정도로 많은 한국사람이 우리 팀을 응원하기 위해 독일로 날아왔다. 한마디로 우리는 극성스러웠다. 가끔은 ‘오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흐뭇했다. 원래 파티는 그런 거다. 몰입하고 돈도 쓰고 ‘오버’도 하는 거다. 모든 걸 잠시 잊고 미친 듯이 노는 그런 거다. 그러다 파티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 같은 열정과 극성으로 생산에 기여하면 되는 거다.

축구가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잡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고, 잔디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축구공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 그래서 축구는 아름답다.

축구는 외형적으로도 아름답다. 파란 잔디 위에서 어우러 지는 땀에 흠뻑 젖은 유니폼,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살결, 치열한 몸싸움.

이 살아 숨쉬는 예술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예술은 계속된다. 팬들은 자기만의 응원복장과 치장, 페이스 페인팅으로 자기표현을 한다. 마치 원시인이 몸에 그림을 그리고 치장을 했던 것처럼. 인간의 창의욕구는 본능이고, 축구는 인간의 이같은 본능을 일깨워 창의적인 자기표현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2006 월드컵은 독일국민들은 평소 무뚝뚝하고 냉정해 보이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독일국민 모두 외국손님들에게 친절함을 베풀었다. 나치와 세계2차대전의 악몽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독일인은, 이번 월드컵기간 동안 처음으로 빨간, 검정, 노랑색의 국기를 마음껏 흔들며 기뻐했다. 과거를 쉽게 잊지 않는 모습, 독일국기의 물결, 모두 아름다웠다. 파괴적 민족주의가 긍정적 민족주의로 다시 탄생하는 과정을 축구가 마무리 지은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프랑스 대표팀 11명의 주전선수 중 8명이 흑인이고 주장 지단은 아랍계, 그리고 백인은 단 2명뿐이다. 프랑스인은 다인종으로 구성된 자국대표팀의 이어지는 승리에 열광하고 있다. 앙리와 지단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프랑스인이 인종차별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축구는 인종과 피부색을 초월할 수 있어 아름답다.

1골, 1승도 중요하지만, 축구를 좀더 넓은 의미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2010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최범석·프랑크푸르트|포르투나 2002 대표〉

 

  

 

축구의 마법에 걸린 코엘료

2006년 05월 10일
- FIFAworldcup.com

브라질의 유명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성공적인 몇 권의 소설을 썼다. 1988년 소설 '연금술사'로 널리 이름을 알린 그는 여러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으며 최근 발간된 수필집 '오 자히르'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FIFAworldcup.com은 토리노 도서 박람회에서 이 소설가를 만나 그와 축구와의 관계, 브라질 대표팀에 대한 그의 열정, FIFA 월드컵에 대한 사랑에 대해 독점 인터뷰를 가졌다.

FIFAworldcup.com: 파울로 코엘료와 축구와의 관계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파울로 코엘료: 브라질 사람은 음악과 축구 두 가지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태어난다. 나에게 있어 인생과 축구 두 가지는 매우 다른 문제라고 언제라도 말할 수 있다. 나는 매우 관대한 편이지만 축구와 브라질 대표팀에는 편견을 갖고 있다. 업무차 여행을 하는 동안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질문을 받으면 유명 작가로서 박물관과 극장의 초대는 거절하는 편이고 대신 축구 경기를 보러 가자고 청한다. 이렇게 말하면 답변이 될 수 있을런지...

당신의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지만 축구 선수는 움직임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를 통해 대화한다. 당신의 방식으로 보자면 둘 모두 세계적인 아티스트이다.
축구는 예술이며 그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매년 다보스의 세계 경제 포럼에 초대를 받는다. 올해 나는 하버드대 교수와 언론인들과 함께 세션에 참가했다. 토론 주제는 '세계를 움직이는 것들'과 이것이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축구”라는 말로 시작했다. 그 이유는 축구는 궁극적인 예술의 형태이며 사람들을 통합하고 자연스럽게 축제의 장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개성을 발휘하면서도 팀 정신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축구이다. 사회는 아름다운 경기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함께 모여 살아가야 하지만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축구는 위대한 은유이며 월드컵은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개성을 서로 이어주는 탁월한 본보기이다.

브라질 대표팀 말고 응원하고 있는 다른 팀이 있는가?
어릴 적에는 보타포고 팬이었지만 바스코 다 가마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의 팀이 되었다. 개인과 팀의 연결은 불가사의하고 영구적이다.

 

FIFA 월드컵으로 이야기를 옮겨 보자. 가장 먼저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10살 때 나의 가장 큰 꿈 중 하나가 이루어졌다. 브라질은 1958년 월드컵에 우승했다. TV도 없었으므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중계에 귀를 기울이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스웨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에 의존해야 했다. 당시 브라질에는 아이의 눈에는 환상적인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종교 의식처럼 적막이 흘렀다. 우리는 먼저 한 골을 허용하여 1-0이 되었고 모두 숨을 죽였다. 마치 세상이 끝장난 것 같았다. 결국 놀랍게도 5-2로 승리했으며 불꽃놀이로 이 승리를 축하했다. 당시 브라질 팀은 국가와 동급이었다.

그보다 8년 전,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패배 중 하나를 기억하기에는 당신은 너무 어리지 않았는가?
그렇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다. 1950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상대로 가진 그 경기는 브라질과 마라카나 모두에게 상처로 남았다. 오늘까지도 경기장 한쪽 끝은 우루과이 선수가 결승골을 득점한 후 '기지아의 골대'로 알려져 있다. 이 2-1 패배는 우리의 첫 월드컵을 잃은 슬픔으로 국가 전체가 비탄에 빠졌다.

1970년 멕시코에서는 펠레와 그 동료들 덕분에 아주 멋진 경기를 펼쳤다.
솔직히 그 대회의 기억은 만감이 교차한다. 브라질은 당시 메디치 대통령의 독재 치하에 있었고 축구는 통치자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는 끌어낼 수 없었던 애국심을 조성하는 데 사용되었다. 물론 승리의 기쁜 순간이 있었지만 대회 직전에 그가 대통령이 포함시키길 원했던 선수인 다리오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살다나 감독이 경질되는 등의 우여 곡절로 인해 많은 영광이 가려져 버리고 말았다.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은 당신이 더 이상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전세계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은 두 팀이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자신 안에서 어린이를 재발견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월드컵 기간 동안에는 무의식 중에 감정이 풍부해진다는 점이다.

1970년부터 1994년까지 4번째 세계 타이틀을 염원해 왔다.
1974년과 요한 크라이프의 네덜란드 대표팀에 대한 기억은 뚜렸하다. 브라질에서 우리는 이 팀과 '토탈 풋볼'이라는 혁신적인 방식에 무한한 경의를 표했다. 나는 프랑스를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패배했던 1986년에 최악의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범했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이 경기 도중 지코의 페널티킥 실축은 긴장감으로 인한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승부차기에서 소크라테스의 실수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국가 전체가 그가 최선을 다하기를 바랬지만 그의 노력은 오만에 그쳤을 뿐이었다.

 

1994년에는 승부차기가 브라질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는데…
이탈리아와의 결승은 정말이지 격렬했다. 연장전이 끝나갈 무렵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내를 불렀고 "해변으로 가자"고 말했다. 리오는 우리가 승리했는지 패배했는지를 알려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가 브라질에서는 저녁 시간이었다. 나는 마치 어제의 일처럼 온 도시가 경기 결과를 알려주던 그 때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승부차기마다 함성과 정적이 교차했으며 결국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편집주 주: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환상적인 카리오카의 저녁을 회상하는 소리를 재현하려고 시도했다). 월드컵을 높이 쳐들고 있는 둥가를 보는 것은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과소평가되었던 선수였기 때문에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FIFA 월드컵 경기를 보려 간 적이 있는가?
보러 간 적은 없지만 올해는 개막전과 모든 브라질 경기를 관전함으로써 그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만회하려 한다. 우리가 결승에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

파울로 코엘료 작가 본인이 선수라면 어떤 선수가 될 것인지?
단순함과 스타일을 겸비한 선수라고나 할까.

어떤 포지션을 맡고 싶은가?
말할 것도 없이 최전방 공격수가 아니겠는가!

어렸을 때 축구를 한 적이 있는가?
물론이다. 내 경우는 아주 형편이 없었지만 모든 브라질 국민과 마찬가지로 축구는 생활이었다. 늘 9번 유니폼을 즐겨 입었고 공격수로 나섰으며 고전적인 2-3-5 포메이션을 선호했다.

FIFA 월드컵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단결이 필수적이다. 감독이 일종의 연금술사가 아닌가?
대단한 은유다. 왜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축구의 연금술사는 누구인가?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는 위대한 감독이며 카를로스 알베르토 파레이라 감독도 나쁘지 않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텔레 산타나도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었다. 1958년의 우승 감독인 비센테 페올라도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바바, 펠레, 아마릴도와 같은 위대한 선수들을 가졌다. '뚱보' 페올라가 훈련 도중 잠에 곯아 떨어져 선수들이 자유롭게 훈련을 하여 우승팀이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철학자의 돌을 발견한 연금술사는 연금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는데.
정말 그렇다(웃음).

지금까지 만나 본 선수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선수는 누구인가?
'연금술사'는 많은 선수들이 좋아하는 책이고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몇 명의 선수를 만났다. 어떤 경우에도 내게 가장 감명을 준 선수는 펠레였다. '오 레이'는 브라질에서 우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10명의 브라질 국민 중 6명은 펠레를 보고 "그는 훌륭하지만…"이라고 말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우리는 비극을 공감한다. 오히려 고통스런 인생을 살아 온 가린샤를 존경한다. 펠레는 놀라운 아티스트였다고 생각하며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축구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기간 중에 프랑스 신문에 몇 건의 기사를 썼다.

축구를 소재로 하는 소설에서 등장 인물은 누가 될 것인가?
골키퍼는 문학에서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대표팀 전체로는 좋은 소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끄는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공이다.

파울로 코엘료가 주심이 된다면?
그는 인간이다. 실수할 수 있지만 경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전설에 나오는 고전적인 판관을 상징하기도 한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누가 우승하리라고 보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언자에게 넘겨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축구에 대해 말할 기회를 준
FIFAworldcup.com에 감사를 드린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코엘료 작가님께 감사 드립니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