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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력 갖춘 리더 길러야 살아남는다”

  • 일본의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이자 전략가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64)는 글로벌 경쟁에 돌입한 21세기를 “정답이 없는 시대”라고 규정했다. 그는 21세기 인재 교육의 기본 개념(콘셉트)으로 ‘구상력(構想力)’을 강조한다. 그는 “과거의 교육 시스템이 대량생산시대에 맞는 인재들을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는 누구나 공감하는 창의적 사고방식과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기술을 가진 ‘글로벌 리더’만이 성공하고 풍요한 삶을 향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28일 도쿄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기존 교육시스템은 대량생산시대에나 맞는 것

    다른분야 사람끼리 의견나눠야 새로운것 나와

    ‘교사’라는 용어 버린 덴마크·핀란드 본받을 만  

    ―여러 저서를 통해 21세기형 인재 교육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구상력’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구상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전체적인 사고능력’과 ‘새로운 것을 발상하고 실행해나가는 능력’을 말한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대부분 중국과 인도로 가버렸다. 한국도 풍요한 삶을 유지하려면 개발도상국에서 불가능한 것을 해야 한다. 구상력을 기르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 실현해나가는 집념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학교 교육은 처음부터 해답을 가르친다. 과거에는 유럽과 미국이 정답이었고, 이를 빨리 배우는 사람이 이겼다. ‘선생(先生)’이라는 말은 먼저 태어나서 해답을 안다는 뜻이지만, 지금 시대는 먼저 태어난 사람의 생각이 낡았을 뿐만 아니라,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떤 인재가 필요한가.

     “정답이 없는 시대인 만큼 ‘걸물’, ‘걸작’인 개인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이나 일본의 교육 시스템은 지금까지 대량 생산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냈다. 앞으로는 아무리 그런 인간을 육성해도 중국이나 인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을 실현해내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새로운 경제나 삶의 방식이 탄생하지 않는다. 이민(移民) 사회인 미국이야 국민 절반이 잠을 자고 있어도 괜찮다. 끊임없이 세계의 새로운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는 ‘아이씨(IC=India-China) 밸리’로 불릴 정도로 중국과 인도 사람들이 많이 활동한다. 이런 게 없는 일본은 어떻게 견딜까. 한국도 일본과 같은 이유로 어려워질 것이다. 기존의 교육시스템에 얽매이면 낡은 사회에 적응하는 인간만 만들어낼 뿐이다.”

    ―그러면 기존의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중앙 정부가 책임지는 의무교육인 공교육이야 당장 사회에 적응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니까 정부가 책임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대학과 대학원 교육만큼은 새것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연출가), 예술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힘, 새로운 사업의 구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들이 서로 만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구상력을 갖춘 인재는 선생이나 회사, 상사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업계의,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끼리 의견을 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무엇보다 일선에서 활약하는 창조적 기업가들의 경험을 나눠야 한다. 구상력을 키우는 데 최대의 적(敵)은 자기 자신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에 다니니까 ‘이대로 좋은 것 아닌가’ 하면서 자신의 틀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하겠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런 교육의 사례를 들자면?

     “내가 운영하는 ‘사이버 대학’을 소개하겠다. 대학과 대학원 합쳐 학생이 모두 700명인데, 모두 경영학 석사학위(MBA) 소지자들이다. 학생 평균 나이는 37세로 대부분 회사에선 중간관리층들이다. 외국인 학생도 50여 명쯤 된다. 캠퍼스는 따로 없고 인터넷을 이용한 ‘에어 캠퍼스(Air Campus)’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GE의 잭 웰치 회장 등 실제로 일하는 유명한 경영자들이 강의에 나선다. 지금까지 확보한 콘텐츠는 영상 비디오로 4500시간 분량이다. 거기에는 내 자신의 비즈니스 강의 800시간이 포함돼 있다. ‘에어 서치’라는 검색엔진으로 필요한 키워드를 넣으면, 세계 어디서든 필요한 영상 강의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도록 돼 있다. 미국이나 한국에도 사이버 대학이 있지만 학습 도구가 인터넷일 뿐 방식은 종래의 대학과 다르지 않다.”

     ―당신이 말하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이 기존 대학교육과 결정적인 차이점은.

    “지금의 대학에선 교수가 자신의 노트에 있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일방통행 방식으로 가르칠 뿐이다. 가령 ‘경제원론’이라면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폴 새뮤얼슨 교수의 책을 놓고 학생들과 윤독하면서 가르치는 방식이다. 그것은 교수(professor)가 아니고, 인터프리터(번역가·interpreter)다. 인터넷 시대에는 실제로 한 명의 선생이 있으면, 세계 어디서도 배울 수가 있다. 한 명의 폴 새뮤얼슨이 있으면 되는 것이지, 별도로 인터프리터가 있을 필요는 없다. ‘티칭 어시스턴트(보조교사·Teaching Assistant)’만 있으면 족하다. 한 시간 강의가 있으면 이에 대해 일주일 이상 토론이 이어진다. 도서관은 ‘구글(Google)’이다. 무엇이든 조사할 수 있다. 훌륭한 사람들과 만나는 장이 에어캠퍼스다. 모두가 함께 학습하면서, 보다 높은 차원으로 함께 나아가는 방식이다.”

    ―당신이 보기에 어느 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덴마크와 핀란드를 들고 싶다. 두 나라는 10년간 크게 바뀌었다. 교육시스템이 완전히 변했다. 덴마크의 경우는 교육현장에서 ‘티처(교사·Teacher)’라는 용어가 금지됐다. 대신 ‘인스트럭터(안내자·Instructor)’ 또는 ‘퍼틸라이저(영양분을 주는 사람·fertilizer)’라는 말을 쓴다. 한 반에 학생 26명이 있으면 26개의 다른 대답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인스트럭터’의 역할이다. 학생들에게 어느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토론을 시킨다. 누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는가, 리더십이 뛰어난가가 드러난다. 덴마크는 1990년대 초 금융 위기를 계기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그때 학부모 등 교육 관계자들이 일어났다. 핀란드도 인구가 500만명에 불과하다. 핀란드 회사인 노키아는 국내 매출이 1%다. 99%의 매출이 해외에서 발생하니까 글로벌 리더를 키우지 않을 수 없다.”

    오마에 겐이치는

    미국의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20여 년간 일하면서 세계 유명 기업들의 경영 성과를 개선해 유명해졌다. 일본 와세다 대학을 거쳐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원자력공학)를 받았다. 국가의 성장 동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관료 조직을 과감하게 줄이고 창의적인 젊은 기업가를 많이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기업가 양성 학교인 ‘어태커즈 비즈니스 스쿨(Attacker’s Business School)’을 운영하고 있다. ‘전략가의 사고(The Mind of the Strategist)’ ‘국경 없는 세계(The Borderless World)’ ‘국가의 종말(The End of the Nation State)’ 등을 비롯해 140여 권이 넘는 저서가 있다. 1995년 도쿄 도지사에 출마했다 낙선한 경험도 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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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접붙이기

    과수원을 하면 필수 지식이 접붙이기 이다..생각보다 쉽다..정말 재미 있다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것은 유실수에 대해 잘모르는 전주조 회원들의 안목과 재미를 위해
    제가 경험하고 알고있는 바를 기술하고자 한다.

    독자의 호기심을 발동하자면 단풍나무 한그루에 여러 종류의 단풍가지가 공존하고..
    장미 한그루에 형형색색의 꽃을 피울수 있게 하고.찔레나무에 장미꽃이 피고..
    복숭아 나무 한그루의 가지마다 매실/살구/복숭아/벗꽃 등등이 공존하고....

    분재전시장에 가면 별별나무가 몇백년 되었네 어쩌네 하면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나무를 분재로 키운줄 안다..우리나라의 본격적 분재 역사는 30년을 넘기기 힘든다...
    오래된 대목(대부분 바위끝등 악조건으로 성장이 더딘)을 산채하여 시간이 지난후 지주/가지등에 동일종으로 접을 붙여 새로 가지를 생산한 것이다..
    심지어 소나무에 향나무도 접이 된다..

    식물은 계,문,강,목,과,속,종 으로 분류한다.
    접은 같은 같은 종끼리는 물론이고 같은 속이면 거의 다 된다..어렵고 쉽고 차이뿐..
    벗나무 속에는 각종 벗나무/살구나무/매실/복숭아/자두/앵두/옥매/백매 등등이 속해 서로 접이 잘된다..
    소나무과의 소나무와 측백나무과의 향나무가 접이 되는 판에...

    접을 설명함에 반드시 필요한 단어가 대목과 접수이다..
    대목은 접붙일 대상목 즉 뿌리가 있는 나무이다.
    접수는 접 붙이고자 하는 새로운 품종의 1년생 가지를 말한다.

    1. 접의 기본 성질
    접이 성공하면 접수 아랫부분은 기존 대목의 성질을 유지하고..접수 부터는 접수의 성질을 유지한다..복숭아 대목에 매실을 접붙이면 접수 아랫부분은 복숭아..접수부터는 매실이다. 성장하면 매실이 열린다..대목의 한가지에만 붙였다면 그가지만 매실이다.
    다시말해 접수(눈접은 눈,가지접은 가지)부분부터의 유전형질은 접수 고유의 형질이 유지 된다는 것이다.
    살구와 매실을 구분함에 있어 어떤이는 뿌리 색깔을 논하는데..접목묘의 경우 불가능 하다
    살구는 뿌리가 붉지만 살구 대목에 매실접 안붙이란 보장 없고..매실 뿌리는 황색이지만 매실대목에 살구접 안 붙이란 보장 없다.

    2. 접은 왜 필요한가
    1)과수는 특히 실생(씨앗 심기)으로 유전형질 보존이 어렵다.
    -포도/사과/배/복숭아/자두 등등은 씨앗을 심었을때 그 품종이 안된다. 매실/은행/호도 등은
    되지만.
    2).우량 품종을 단기간내 번식이 필요할때.
    -우량 호도를 육종/발견 했을때 나무 열매가 많이 맺혀 실생하는 기간(10년이상)보다 가지접으로 번식하고..번식한 나무도 2년이면 열매는 생산 못해도 가지는 생산하고...
    -복숭아 우량종이 육종/발견되면 가지의 눈하나로 한나무씩...
    3).품종개량이 필요 할 때
    -a라는 복숭아 나무를 심었는데..나무를 키우다 보니 b라는 복숭아 품종으로 바꾸고 싶을 때.
    -복숭아를 심었는데..살구로 바꾸고 싶을 때 등.
    4).조경수 수형개선/취미 등등

    3. 실생과 접목묘의 차이
    실생묘는 대부분 수세가 좋고..세월이 오래 지나도 노화 속도가 느리다..병도 적다
    접목은 2항과 같은 사유로 행하지만..은행/매실/호도 등 실생도 가능하고 오래/크게 키울 나무들은 접목과 실생묘의 선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4. 접의 종류는
    접은 서로 가능한 품종의 대목에 눈접 또는 가지접을 한다.
    눈을 사용하면 눈접..가지를 사용하면 가지접이다..
    1).눈접..눈접은 주로 형성층(나무껍질)이 목피(나무속)과 잘 분리되는 품종에 이용된다
    품종-벗나무 속/배/감 등등
    시기-대목의 수액이동이 완만한 시점(8월중순~9월중순)
    2)가지접..가지접은 종류가 많다..깍기(절)접,쪼개기(할)접,혀접 등등..
    품종-눈접품종 및 거의 모든 나무에 가능하다.
    시기-대목 수액이 오르기 직전(3월 중순~4월 중순)

    추가로 접을 붙이는 위치에 따라 고접/저접으로 나뉘지만 의미는 적다.

    5. 접을 붙이는 방법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사진과 함께 자세히 나와 있다.
    봄에 가지접이 실패하면 가을에 눈접해도 된다..두려워 말라 실패해도 대목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다.

    6. 접붙일때 주의할점.
    1)칼은 잘드는 것으로
    2)비닐은 부름켜를 꼭조여 붙인다/비가들어 가선 안된다.
    3)접수가 말라서도/눈접의 접수 눈안쪽/가지접의 접수 칼로 자른 부위에 손을 다이면 성공이 적다.
    4)접은 잘 붙이고 생명인 접수의 눈(잎눈)을 망가뜨리면 헛방
    5)목장갑을 끼고..인간 손의 온도 36.5도는 식물에 화상을 입히고 물고기를 죽게 만든다.

    7. 접붙이고 주의할점
    접의 원리는 대목의 영양분이 접수의 잎눈으로 집중케 하여 순환토록 함이다.
    그러므로 깍기접은 봄부터 대목에서 새싹/새순이 나오면 즉각 제거하여(자주) 접수의 눈으로 영양이 가게(강제 순환)해야..
    눈접은 이듬해 봄에(물오르는 싯점) 접수 윗부분의 대목은 한뻠정도 남기고 잘라버리고 대목에서 순이 나오면 접붙인 접수 눈외에 대목의 새순들은 초기에 제거해야 한다.
    품종개량을 위해 성목에 가지마다 붙인 경우 또는 한가지만 붙인 경우는 해당 가지만 새순들을 제게하여 수액이 접수눈으로 집중되게 해야한다..접수눈 위 대목을 한뼘정도 남기는 것은 접수눈이 성장했을때 붙잡아 맬수 있는 지주목?으로 쓰기 위함이다.
    바람에 접붙인 신초는 잘 부러지기 때문이다..접수 신초가 목질화 되면 이듬해 깨끗이 잘라줘도 된다.

    8. 대목이 다른 이유
    고욤나무에 감/복숭아에 살구/돌배에 배/야광에(요즘은M) 사과/찔레에 장미 등 대목과 접수가 다른 이유는?
    1)대목묘 생산의 용이성 즉 씨앗구하기 쉬운 것을 대목으로
    2)뿌리의 힘이 좋은 것
    3)뿌리의 병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9. 접붙이기전/후에 관수를 충분히 해주는 것도 접 활착을 돕는 요령이다.


    10. 회원들중 유실수 품종을 잘못 선택or다른 품종으로 바꾸고 싶을 때 한번쯤 이용해 보시길...나무를 다시 심느니 접이 휠씬 용이 합니다..


    보너스


    장미를 좋아 하는 분들께..몇가지 상식
    장미 종류는 크게 2종 나무장미와 덩쿨장미로 나뉜다..요즘 미니 장미도 있지만..
    나무장미는 눈접(찔레 대목)을 통해..덩쿨장미는 삽목이 잘되기에 삽목으로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눈접은 상기와 동일하고..덩쿨의 삽목은 꽃진 꽃가지를 삽목해야 성공한다..
    다른 나무들처럼 당년의 신초를 삽목하면 실패한다.
    나무장미는 신초를 잘 받아야 건강한 꽃을 볼수 있다..초봄에 묵은 가지를 과감히 잘라 아래로부터 튼튼한 신초 몇가지를 선별하여 키우면 된다..영국처럼 일정 높이로 키우고 해마다 그곳에서 전정을 통한 새순 받기도 가능하다,
    나무장미 꽃질때 보기 흉하다..바로 잘라라..신초하단부에서 위로 잎 4~5장 남기고.
    그럼 또 꽃핀다..일년에 3번 꽃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기후가 장미가 자라기엔 가장 적합하다.
    영국보다도..나무 장미는 물을 좋아 한다..건조한 땅엔 잘 안된다 .가장 좋은 땅은 지하 1m에 자갈층과 물이 흐르는 땅이다..끝

    <전주조 봄꿈님 글을 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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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가난한 자가 평생을 가꾼 꿈, 정원 죽설헌

  • 지금 한국의 곳곳에는 온갖 고수(高手)들이 포진해있다. 경남 김해에는 전통 염색에 일생을 바친 고수가 있고, 전남 벌교에는 오행쌀만 30년 동안 연구해온 고수가 있으며, 계룡산에는 전통무술의 고수가 여전히 수련 중이다. 이 고수들을 모두 연결한다면 살아있는 지식의 전당인 대학을 상상할 수 있다.

    이름 짓자면 토종대학(土宗大學). 토(土)는 토종(土種)과 민초(民草)들을 뜻하고, 종(宗)은 중심과 근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동양학자 조용헌씨의 신조어다. 새 주간 연재물 ‘토종대학- 전국의 고수를 찾아서’는 수천 년 동안 내려온 한국의 토종문화 고수들을 소개하는 가상(假想)의 대학이다. 전남 나주의 죽설헌(竹雪軒)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 땅의 쟁쟁한 고수들을 탐방한다.

    비자·산벚·동백… 4천평 대지에 150여종 나무·화초 숨쉬는 이곳

    35년전엔 자갈 황토밭이었다 긴 호흡과 정성으로 생명을 만든 박태후씨

    “겨울엔 고구마 구워먹고 지인들 불러서 놀고 그림도 그리면서 그렇게 삽니다”

    “숲은 성지(聖地)이다”. ‘휴’(休)자를 보더라도 나무(木) 옆에 사람(人)이 있다. 인간은 숲에 들어가서 쉬어야만 근심을 잊고 거듭날 수 있다. 나무와 숲에 들어가서 쉬고 싶은 인간의 오래된 갈망이 ‘정원’(庭園)을 만들어 냈다. 자연을 문명과 집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가내구원’(家內救援)을 받고자 하였던 것이다. 호남에는 오래된 정원이 있다. 조선시대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컬어지는 16세기에 양산보(梁山甫)가 조성한 담양의 소쇄원(瀟灑園), 17세기에 윤선도(尹善道)가 조성한 보길도의 세연정(洗然亭), 18세기 이덕휘(李德輝)가 조성한 월출산 자락의 백운동(白雲洞)이다.

    현대에 들어와 이들의 풍류계보를 잇는 정원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나주의 금천면에 있는 죽설헌(竹雪軒)이다. 나주 금천면은 배나무 과수원들이 자리 잡고 있는 구릉지대이다. 나지막한 과수원 길을 따라서 1km정도 꼬불꼬불 언덕을 돌다보면 저수지가 나오고, 그 저수지 옆에 숲이 우거진 자그마한 동산이 바로 죽설헌이다. 대지 4천 평에 약 150여종의 나무, 과실수, 화초가 대숲을 끼고 우거져 있다. 비자, 산벚, 왕버들, 동백, 단풍, 호두, 감, 복숭아, 배나무, 노랑꽃 창포, 매화, 국화 등등이다.

    죽설헌 입구에서 살림집까지 들어가는 길은 S자 형태로 150m정도를 돌아들어가도록 만들었다. 그 길 중간쯤에는 30년 된 탱자나무와 꽝꽝나무가 좌우 양쪽으로 터널처럼 우거져 있다. ‘좌탱자 우꽝꽝’의 이 길은 방문객에게 그 어떤 서늘함과 유현(幽玄)한 기운을 선사한다. 이런 길을 걸으면 세상사 욕심이 떨어져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좌탱자 우꽝꽝’을 통과해서 좌측으로 꺾으면 살림채인 단층 벽돌집이 나온다.

    거실에 들어서니까 마룻 바닥이 특별히 거칠고 질박한 느낌을 준다. 질박하니까 편하다. 폐교가 된 시골학교의 교실 마룻바닥을 사포로 다듬어 깔아놓은 것이다. 마루 끝에서는 동네 철공소에서 만든 검정색 벽난로가 실내공기를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거실 옆방은 한쪽 벽면이 온통 투명한 유리이다. 통유리 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은 푸른 대밭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밭 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굵게 뻗은 왕대나무 밭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고사를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이 집은 나주와 광주 일대의 강호제현(江湖諸賢)들이 수시로 모여서 시서화(詩書畵)와 문사철(文史哲)을 이야기 하며 노는 학교이자 살롱이기도 하다. 이렇게 서로 모여 놀아야만 중년에 직면하는 늙음(老)과 병(病)과 죽음(死)의 근심과 우울을 다소나마 털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생과 걱정만 하다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이처럼 멋진 정원을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주인은 박태후(53), 김춘란(53) 부부이다. 남편 박태후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원예고등학교를 다녔다. 원예고교 재학시절인 70년대 초반부터 자갈 섞인 황토밭이었던 이곳에 나무를 심고 화초를 가꾸기 시작하였다. 고교 졸업 후에는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하였다. 결혼하여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좋은 나무를 구하러 외지로 돌아다녔고, 살구, 복숭아, 포도, 밤, 배, 호두, 사과, 보리수, 감나무와 같은 유실수들을 많이 심었다. 그 세월이 35년이다. 죽설헌은 돈이 많은 부자의 정원이 아니다. 가난했던 서민부부가 근검절약하여 가꾸어 놓은 정원이다. 서민의 체취가 배어 있는 정원이다.

     “죽설헌의 특징은 무엇인가?”

     “보통 사람이 만든 토종정원(土種庭園)이란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원들은 네모 반듯한 일본식이나 서구식이다. 죽설헌은 네모 반듯하지 않다. 그래서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작은 숲 속에 들어온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도록 가꾸었다. 과일나무들이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유실수는 보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미학(美學)과 실학(實學)의 만남이다. 죽설헌 후원에는 대략 보름 간격으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도록 유실수를 배치하였다. 5월 초에는 딸기와 양앵두가 나오기 시작한다. 5월 중순에는 보리수, 6월 초순에는 매실, 버찌이다. 6월 말에는 자두, 살구, 복숭아이다. 7월 초에는 포도, 8월 초순에는 단감, 8월 말에는 무화과, 9월 초에는 배, 10월에는 밤과 홍시가 나온다. 지금처럼 겨울에는 고구마를 벽난로에 구워먹는다.”

     “관리하기에 힘들지 않은가?”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할 정도의 분량만 과일나무를 심었다. 홀수 날은 아침에 운동을 하고, 짝수 날에는 아침에 1~2시간씩만 일을 한다. 여름에 일이 많을 때에는 해질 무렵에 부부가 1시간 정도 더 한다. 나머지 시간은 그림도 그리고 찾아온 지인들과 논다. 그렇게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즐기는 차원에서만 노동을 한다.”

    죽설헌을 나오면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인가?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자문자답해 보았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는 탄식이 나온다. 죽설헌은 찾아오는 방문객으로 하여금 이 질문에 자문자답하게 만드는 ‘토종정원’이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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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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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경의 과일

    그 지역에 알맞은 과일나무를 심으면, 봄에는 꽃을 볼 수 있고, 여름에는 그늘을 즐길 수 있으며, 가을에는 열매를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자라서 재목이 되면 그것이 모두 자산을 늘리는 방법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도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을 중히 여겼다.

    조선후기의 농서 [산림경제]의 글이다. 여기서 과일을 곡식이나 채소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후기의 농서들에는 당시 재배되던 과일의 종류와 그 재배방법이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반면에 그 이전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다.

    어떤 과일을 먹었나?

    인류가 농사를 짓기 전 채집생활을 할 때 가장 대표적인 채집대상이 바로 나무 열매였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과일 역시 재배하기 시작하였겠지만 산이나 들에 있는 나무 열매 역시 중요한 식량자원이었고, 그 사실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예로부터 중요한 과일을 5과라 하였는데, 5과는 복숭아, 오얏, 살구, 밤, 대추이다. 중국 측 고대기록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부여에는 5과가 나지 않는다고 한 반면 마한에는 배같이 큰 밤이 난다고 하였으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도 복숭아, 오얏, 밤, 살구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중국 고대 농서인 [제민요술]에는 과일류로 대추, 복숭아, 매실, 살구, 배, 밤, 감, 석류, 모과, 임금(능금) 등의 이름이 보이는데 여기에서 소개된 과일 대부분은 그 당시 한반도에서도 생산되었을 것이다.

    고려시기에도 복숭아, 오얏, 살구, 밤, 대추 등 5과를 비롯하여 배, 잣, 호두 등이 생산되었다. 우선 [고려도경]에서는 잣, 밤, 앵두(함도), 개암, 비자, 능금(래금), 오얏(청리), 복숭아, 배, 대추 등을 소개하면서, 특히 밤은 복숭아만큼 크고 달다고 하였다. 아울러 [고려도경]에서는 밤을 질그릇에 담아 흙속에 묻어 보관하는 법까지 소개하고 있다. 또 고려후기의 의서로 알려진 [향약구급방]에서도 대추, 복숭아, 밤, 감, 배, 도토리, 호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고려시기에는 이전 시기와 달리 포도와 감귤류에 대한 기록도 보인다.

    사진1: 밤송이(2005, 항동) 밤은 예로부터 5과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과일이었다.

    과수의 재배와 기술

    앞에서 본대로 과일나무를 심으면 여러 가지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과수재배를 권장하였고, 당시 사람들도 마을 어귀나 산기슭은 물론이고 도시의 빈터나 정원에도 과일나무를 즐겨 심었다. 고려 명종은 백성들에게 곡식뿐 아니라 밤 잣 배 대추나무 등 과수 재배를 권장하는 교를 내린 일이 있었으며, 이규보는 앵계 근처에 살면서 주변에서 뽕나무 삼나무 복숭아나무를 볼 수 있었다. 또 통재기([동국이상국집] 권23)라는 글을 보면 이규보가 서울에 사는 양응재의 집에 가보니 사방 40보(步) 남짓한 정원에 진귀한 나무와 유명한 과목들이 가까이 있는 것은 서로 닿지 않고 떨어져 있는 것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게 늘어서 있었으며, 포도는 나무에 감기어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규보는 이것을 모두 주인 양생이 소밀(疏密)을 고르게 하여 질서가 있게 심은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렇게 고려시기에는 과수재배가 일반화되었고, 이에 따라 과수재배기술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이규보의 접과기([동국이상국집] 권23)에는 배나무 접을 잘했던 전씨라는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전씨의 기술은 나쁜 배나무에 좋은 배나무 가지를 꽂아 좋은 배나무를 만드는 이른바 과수 접붙이기로 이런 기술은 배나무뿐 아니라 다른 과수에도 이용되었을 것이다.

    귀하신 과일, 포도와 감귤

    포도는 중국 한나라 때 장건이 서역에서 종자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려후기의 문집에서 포도를 읊은 시문 몇몇이 눈에 띈다. 이규보는 통재기에서 양응재의 정원에 있는 포도가 나무에 감기어 아래로 늘어진 것이 영락같다고 묘사하였으며, 이색은 포도가 겹겹이 그늘을 만들었다고 하기도 하였고([동문선], 권5, 답동암선사), 포도가 시렁에 가득한 것이 마치 푸른 빛이 흐르는 것 같다고 하기도 하였는데([동문선], 권16, 신우숭덕사), 이색은 절집에 심은 포도를 보고 읊은 것 같다. 특히 이인복은 정휘의 포도헌의 시렁에 가득찬 포도 덩굴을 보고 쓴 시를 남기고 있다.([동문선], 권11, 정상국휘포도헌차운) 이를 통하여 당시 절이나 관리들의 집 정원에서 포도를 흔치 않게 심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청자에는 포도무늬를 상감한 것이 있는데, 이것도 당시 사람들이 포도에 관심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원간섭기인 충렬왕 때 원에서 고려왕에게 몇 차례 포도주를 선물로 보낸 사실이 확인된다(충렬왕 11년 8월, 22년 3월, 23년 3월, 24년 9월, 28년 2월, 34년 2월). 이것은 고려시기에 포도주가 매우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2: 상감포도동자문동채주자(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얼마 전까지 감귤나무 1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다는 제주의 감귤은 고려시기에도 제주에서 재배되었다. 제주의 귤은 중앙에 공물로 납부되었는데, 문종 6년에 탐라에서 바치는 귤을 100포로 정했다. 이외에도 [고려사]에는 일본과 대마도에서 귤을 바친 예가 기록되어 있다. 이 귤은 팔관회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와 궁궐에서 사용하였다. 장순룡은 팔관회 때 오봉루에 올라가 상위의 귤과 유자를 손으로 집는 무례한 행동을 하여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으며, 명종 때 한 궁녀는 귤을 던져 관리를 유혹한 사례가 있다. 모두 귤이 매우 귀한 과일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감귤에 얽힌 일화

    다음은 감귤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충렬왕 때 전라도안찰사가 된 임정기는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제주의 귤나무 2그루를 소 12마리를 동원하여 여러 날 걸려 궁궐까지 옮겼다. 귤나무를 옮기는 동안 잎과 가지가 다 말라 버려서 임정기 자신도 쓸모가 없을 것으로 알았지만 왕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충령왕 때 활동했던 곽예가 쓴 영귤수(詠橘樹)([동문선] 권11)라는 시이다. 이 시는 당시 궁궐에 심어진 귤나무를 노래한 것인데, 시기적으로 보아 이 귤나무는 바로 임정기가 가져와 심은 것으로 여겨진다. 곽예는 이 시에서 궁궐 정원에 뿌리 내린 귤나무의 무성한 가지, 만발한 흰 꽃, 동그랗고 노란 열매를 읊고 있으니, 가져올 당시 말랐던 귤나무가 회생한 것인지 아니면 곽예 역시 왕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이 시를 지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대표적인 구황식품, 산속의 도토리

    사진3: 도토리(2005, 백두대간 백학산 근처)

    한편 산속의 열매들은 흉년 때 비상식품으로 매우 중요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도토리와 밤은 대표적인 산 속의 식품이자 구황식품이었다. 충선왕이 흉년 때의 백성들을 생각하여 도토리를 맛보았다는 일화는 도토리가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었기 때문이었다.  김극기는 전가사시([동문선] 권5)라는 시에서 산의 배와 밤은 일찌감치 거두어야 한다고 읊었으며, 이달충은 산촌잡영([동문선] 권11)에서 익은 도토리는 삶아서 밥 대신 한다고 하여 농촌이나 산촌 사람들에게 도토리가 얼마나 중요한 식량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윤여형의 상율가([동문서] 권7)는 토지탈점과 중첩된 수탈로 황폐해진 농촌에 홀로 남은 노인들이 차마 몸을 구덩이에 던져 죽을 수 없어 새벽에 마른 밥을 싸가지고 산에 올라 들짐승과 경쟁하며 도토리와 밤을 줍는 참혹한 농촌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고려시기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으니, 흉년으로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어야 할 때 산속의 밤과 도토리 등은 시기를 막론하고 더할 나위없는 훌륭한 비상식품이었다. 따라서 이때의 밤과 도토리는 요즈음 먹고 살만한 등산객들이 다람쥐와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도토리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하겠다.

                                                                                  (중세1분과,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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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