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과연 어떤 <삶의 주제>를 가지고 살아갈까, 궁금할 때가 있다.삶에서 어떤 테마를 의식적으로 형상화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삶의 방향이나 색깔을 나름대로의 원칙과 철학을 근거로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삶의 목표란 여러 가지일 수 있고, 고로 <삶의 주제> 또한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한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커다란 줄기, 하나의 선명한 주제는 존재하지 않을까.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할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것이 소박한 인생이던 화려한 인생이던, 그 사람의 삶의 수많은 조각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속성(continuity)이란 것이 존재할까?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 아무리 상이하더라도, 같은 사람의 인생이고 같은 공동체의 역사이기에 연속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본다.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는 유명인, 공인들의 학위위조문제와 정치인들의 해쳐 모여 식의 새로운 정당 만들기. 우리 사회의 복잡한 현상들 중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개인 삶의 일관성, 사회 전체의 지속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현재가 있다면 분명 미래가 있을 텐데, 현재가 미래를 결정짓는 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의식하고 있다면 현재 나의 결정과 행동에 좀더 책임감이 따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자동차를 새로 구입했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1년 뒤에 이 차를 다른 새 차로 바꿀 계획을 갖고 있을 경우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이 차를 타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을 경우, 내가 신차에 대해 갖는 태도는 이 두 경우 사이에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정성을 들이는 차원에서, 투자를 하는 차원에서, 애착을 갖는 차원에서, 내가 신차를 대하는 심리적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1년 뒤에 이별할 자동차와 평생 함께해야 할 자동차는 단절의 심리와 연속의 심리를 대변할 수 있는 하나의 예이다.

친구와의 관계, 회사와의 관계, 배후자와의 관계,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모두 이러한 관계를 우리가 어떤 시간적 연속성 속에서 대하는가에 따라 관계의 성격과 깊이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학위와 같은 자신에 대한 중요한 객관적인 정보를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면, 내일의 무책임과 손해를 담보로 오늘의 이익을 위해 사는 것이다. 오늘이 제일 중요하고 내일은 불투명할 뿐 희망과 기대는 없는 것이다. 내가 꿈을 안고 만든 정당이 얼마 후 인기가 없고 나의 정치생명에 불리하게 됐을 때, 그 정당을 버리고 떠나는 게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건 무책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임승차, 기회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는 오래 타면 탈수록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새 차가 좋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건 주인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의 선택이다. 학위를 위조해서 덕을 봤다면, 그 사실이 거짓으로 밝혀졌을 땐 그만큼의 대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당원, 국민을 상대로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다면, 그 당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고 당의 미래를 걱정하고 더 많은 노력을 들여 문제해결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개인이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고, 국가가 지나온 역사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개인과 국가는 연속성을 갖게 된다. <삶의 주제>가 생기고 <전통>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면 개인과 국가에게 연속성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연속성은 안정을 제공한다. 지속된다는 건 예측가능성을 의미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과 기대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은 희망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반대로, 미래에 대한 희망, 기대, 예측하려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연속성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삶을 이어주는 주제는 존재하지 않고, 국가의 전통과 역사는 그냥 과거에만 존재했던 기록에 불과하게 된다.

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그냥 두서없이 적어봤다.

작년 12월 말 어느날 퇴근길에 회사 지하주차장에 버려진 파키라(Pachira)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세 그루가 줄기에 비해 비좁아보이는 화분 하나에 심어진채 숨을 거두기 직전이었다.

화분의 흙은 바싹 말라있었지만, 앙상한 몇 줄기의 가지에 다행이 초록빛이 아직 남아 있었다.

회사 직원의 도움으로 이 유기목(?)을 차에 간신히 태우고 집에 와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화분 3개에 나누어 심어주었다. 드러난 뿌리는 파키라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증명했다.

겨울을 실내에서 보내고 봄이 되어 앞뜰에 내놓았지만 5월 말까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더니,

6월이 되면서 드디어 작고 싱싱한 잎을 하나둘 보여주기 시작했다.

얼마나 반갑던지!

6월, 7월, 8월 섯달 동안 햇빛과 빗물을 충분히 흡수하면서

이 세 그루의 파키라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제 겨울이 오면 실내로 들여놓아야할텐데, 내가 세 그루 모두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혹시 이 녀석들을 입양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저한테 연락주세요.

세종 대왕 당시 의관이었던 전순의가 편찬한 '산가요록' 근거해
겨울철 야채를 재배했던 조선 시대 온실을 복원함
온실은 세계 최초로 알려졌던 1619
도이칠란트의 하이델베르크 온실보다 170 앞선 것이다.



위에 하얀 부분이 기름칠한 종이로 비닐에 해당하는 재료로 쓰임



조선시대 과학영농온실 재현 전경



추울때 온도를 높여주는 아궁이



▲ 500
전에도 비닐하우스가 있었다는 자랑스런 우리 조상의 업적

무궁화(Rose of Sharon)가 굳이 우리나라 국화라서라기 보다,

소박한 꽃의 자태와 특히 그 강인한 생명력 때문에 나는 이 나무를 좋아한다.

번식도 잘되고 한여름에 끊임없이 꽃을 피운다.

학소도에는 줄잡아 20 그루의 무궁화나무가 있다.

화분에 옮겨심어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이라도 하고 싶은데,

화려하고 희귀한 꽃나무들에 밀려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