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여정 한 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옳은 길을 완전히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우리가 현재의 우리를 만든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더 깊이 이해를 하고,

본능적 충동, 시회적 통제, 문화적 표현 등 우리의 의식의 형성에 기여한

모든 요소들의 기원에 대한 인식을 한층 더 넓혀 간다면,

우리의 에너지를 바람직하게 사용하는 일이 훨씬 용이해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렵게 얻은 우리의 개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 주변의 존재들과 우리 자신을 재통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인간의 의지의 한계를 인식하고,

우주 속에서 지배적이기보다는 협조적인역할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는 마침내 고향에 돌아가게 된 유랑자의 안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칙센트미하이 <flow 몰입,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중에서

'톰 소여어의 모험'과 '허클베리핀의 모험'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마크 트웨인,

독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이고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손꼽히지만,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참 특별했습니다.

 

그가 32세가 되던 해에 유럽을 여행하던 중, 관광유람선에서 찰스 랭던이라는 청년과 친해졌고,

그와 자주 어울리다가 우연히 올리비아의 사진을 보게 되고, 그 사진에 흠뻑 반하게 되었죠.

그 몇달후 만찬회에 찰스의 초대를 받아가서 ,

꿈에도 그리던 그녀를 만나게 되어 기쁜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마크가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 올리비아의 바로 그 사진

 

그러나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그녀와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 일부러 마차에서 떨어져

사고를 내고 그 덕분에 찰스의 집에서 2주간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과 그후 끈질기게 올리비아에게 구혼을 했고 매번 거절을 당했지만,

그러나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청혼을 하여 17번째 프로포즈에 간신히 허락을 받았습니다

                      

                              어린시절의 마크                                 마크의 젊은 시절

 

마크는 처음 올리비아를 만났을 때 부터 한평생 아내만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결혼생활은 행복했으나, 어느날 올리비아가 빙판에서 미끄러져 한평생 불편한 몸이 되었음에도

그는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올리비아는 늘 아파서 누워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런 아내를 위해 어느날 마크는 집안뜰의 나무마다 이렇게 써붙여 놓았다고 하네요

"새들아 울지 마라, 사랑하는 나의 아내가 이제 잠을 자고 있다"

올리비아는 사고로 몸이 불편해졌지만,마크는 변치 않고 아내를 돌보았다. 

 

아내를 끔찍히 사랑하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얻었음에도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잃게 되었습니다.  첫째딸 수지가 23살 되던해에 병을 얻어 몹시 앓다가 세상을 뜨고,

그후 8년이 되던 해에 사랑하는 아내 올리비아의 병이 악화되었습니다. 

올리비아를 위해 따뜻한 이태리로 갔지만 병은 더 악화되어

1904년에 올리비아마저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불운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3년 후에 사랑하는 막내딸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가족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아의 정신과 변경인의 혼을 노래한 작품들을 쓴 마크 트웨인,

그 자신은 계속된 불운에 고통과 염세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으면서도 그러나

늘 이웃들에게는 유머와 낙천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늘 아내를 그리워했습니다.

        

                  첫째딸 수지                           둘째딸 클라라                       셋째딸  제인

.신혼초에 발표한 "톰소여의 모험"에도 아내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실렸고

두사람의 사랑은 무수한 대화를 통해 쌓여진 평등한 것이었기에

더 소중한 것이겠죠.  작가로서 성공하고 사업가로서도 성공했지만

아내가 죽자 염세적인 작품을 쓰는가 하면 사람들과도 접촉을 끊고 지내다가,

1910년 4월 21일 사랑하는 아내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살던 집

 

            

                                    올리비아 랭던                     노년의 마크 트웨인

 

누군가 노년의 마크 트웨인에게 물었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그 물음에 마크는 한마디로 대답하였습니다.

'사랑이란 25년을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내가 최근에 읽었던 책의 목록에는 <마크 트웨인의 19세기 세계일주>가 포함돼있다.

100년 전에 쓰여진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정도로 그가 여행하며 관찰한

나라들, 사람들, 풍습들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지고 도시의 모습들이 그때와 비교하면

훨씬 더 복잡해졌지만,

그가 묘사하는 사람들의 모습, 대화내용, 각 나라별 특색은

최소한 내가 보고느낀 점들과 의외로 큰 차이가 없다.

인도에서 겪은 기차여행이라든가,

바라나시, 다질링 등의 풍경,

호주에서 그가 받은 그곳 사람들의 인상 등등....

거기다 그의 다소 과장된 유머들이 중간 중간 나를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글을 쓴다면 정말 마크 트웨인같이 가볍고 재밌게,

그러면서도 작가의 철학이 깊이 베어있는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밑줄친 문장이 너무 많아,

아래는 그냥 몇 줄만 옮겨보았다.

12개월간의 여행이었지만, 나는 1천 년 동안 강연하며 돌아다닌 듯한 기분이 든다.

세계일주 여행은 사우스 햄프턴 항구에서 끝이 났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세계일주 항해를 마쳤다는 데 대해 나는 은근히 뿌듯해졌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잠깐에 불과했다. 천문 관측소에서 나온 발표에 따르면 먼 우주의 별빛이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의 속도와 거리로 계산하면, 내 여행 코스는 1분 30초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므로 나의 허영심은 깨끗이 무릎을 끓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자만심이란 이처럼 덧없는 것이다. 조금만 귀를 열어두어도 이처럼 금세 코가 납작해진다. (352)

이곳보다 더 평온한 삶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파란 바다에는 잔잔한 수평선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배의 속력으로 인해 지분 좋은 산들바람이 연신 불어온다. 편지, 전보가 오거나 신문이 배달되지도 않는다. 세상의 온갖 기쁨, 비탄, 불안, 재앙, 사고에 관한 소식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324)

[인도에서] 나도 이른 아침에 창문을 열어두고 잠깐 방을 비웠다가 원숭이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원숭이 한 마리가 거울 앞에서 내 빗으로 제 머리를 빗질하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내가 메모해 둔 습작 노트를 들여다보며 눈물 흘리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빗질하는 녀석한테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노트를 훔쳐본 녀석 때문에 몹시 마음이 상했다. 원숭이가 펼친 부분은 가장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대목이었는데, 녀석이 감히 울고 있다니! 화가 난 나는 그 녀석을 향해 뭔가 집어던졌는데, 그 순간 아차 실수했다 싶었다. 집주인이 말하기를, 원숭이는 흉내내는 데는 선수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은 닥치는 대로 내게 물건들을 던져댔고, 더 이상 던질 게 없어지자 욕실로 들어가 다른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틈에 나는 얼른 욕실 문을 닫았다. (315)

오랜만에 초등(국민)학교 친구들이 모였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학교다닐 적엔 전혀 몰랐던 친구들도 지금 만나면 편안하고 친근감이 느껴진다.

참 신기하다.....

각자 다양한 직업세계를 갖고 있지만,

모여 노는 방식은 비슷하다...ㅋㅋ

*독일문학이란 독일어권 내에서 쓰이는 시나 산문의 총칭이다.

현재 독일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4개 국어 사용), 리히텐슈타인이다.

독일어권내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은 12명이다. 모두 독일국적을 가진 작가들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스위스작가와 유대계 작가들을 포함한 숫자이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국적은 영국이지만 독일어로 작품을 썼기 때문에 포함했다.  

1. 1902년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 1817-1903)

 국적:독일

독일의 역사가. 1817년 슐레스비히 가르딩에서 출생하였다.

1845년 이후 <로마사>의 저술로 유명한 역사가가 되었다.

그의 저서에는 <로마 연대학Römische Gedichte>, <라틴비문집성>, <테오도시우스법전>등의 편찬 및교정으로 명성을 얻어, 190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 1908년 루돌프 오이켄(Rudolf Christoph Eucken: 1846-1926)

국적:독일

 독일의 철학자. '생의 철학'의 대표자로 꼽혀 많은 저작으로 이상주의적인 생의 철학을 옹호하고 발전시켰다. 네덜란드의 동프리슬란트주 아우리히에서 출생하여 괴팅겐대학교, 베를린대학교에서 배운 후 바젤대학교와 예나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저서에는 <대사상가의 인생관Die Lebensanschauungen der grossen Denker>, <정신적 생활 내용을 위한 투쟁 Der Kampf um einen geistigen Lebensinhalt>, <삶의 의미와 가치 Der Sinn und Wert des Lebens> 등이 있다.

 

3. 1910년 파울 하이제(Paul Johann Ludwig von Heyse: 1830-1914)

국적: 독일

1830년 베를린에서 출생. 

정확하고 유려한 언어의 구사로 독일 근대소설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주요저서로는 <아라비아타L'Arrabbiata>,<가르다호 단편집> 등이 있다.

 

4. 1912년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1826-1926)

국적: 독일

독일의 극작가.소설가.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

하우프트만은 자연주의에서 출발하였으며, 그 완성자이다. 그는 독일문학에 공통된 관념적인 묘사를 피하고 하층민에서 영웅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인간과 생의 고뇌 그 자체를 사실적이면서도 구상적으로 부각시킨 점에서 독일로서는 독자적인 작가였다.

주요저서로는 <아트리덴 사부극Die Atriden-Tetralogie>,<직조공들 Die Weber>,<해리모피 Der Biberpelz>등이 있다.

 

5. 1919년 칼 슈피텔러(Carl Spitteler: 1845-1924)

국적: 스위스

스위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서사시와 신화문학의 부활을 꾀하여 서사시 <올림푸스의 봄 Olympischer Frühling> 을 썼다.

대표작 <이마고Imago>는 고아한 문체로 된 사실주의적인 산문의 걸작으로 알려졌으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끼쳤다.

 

6. 1929년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

국적: 독일

토마스 만은 뤼벡의 부유한 곡물상 집안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형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과 그의 아들 클라우스 만(Klaus Mann)도 모두 작가였다.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미술사, 문학사등을 청강하였으며 한편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마의산Der Zauberberg>은 사랑의 휴머니즘으로 향해 간 정신적 변화과정을 묘사한 작품으로 독일의 소설예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인 임무를 다하였다.

  주요저서로는 <베네치아의 죽음Der Tod in Venedig>, <선택받은 사람Der Erwählte>등이 있다.

 

7. 1946년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국적: 스위스

남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유서있는 신학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헤세는 4세에서 9세까지 스위스에위스의 바젤에서 지낸것 외에는 대부분 칼프에서 지냈다.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다음해에 마울브론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인을 꿈꾼 헤세는 신학교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탈주,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1895년 튀빙겐의 서점에서 견습점원이 되고 여가에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처녀시집 <낭만적인 노래 Romantische Lieder>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시간 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을 출판하여 릴케에게 인정 받았다.

주요저서로는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 <데미안Demian>,<싯다르타 Siddhartha>, <황야의 늑대 Der Steppenwolf> 등이 있다.

 

8. 넬리 작스(Nelly Leonie Sachs: 1891-1970)

국적: 독일

독일의 유대계 여류시인으로 1891년 베를린에서 출생하였다.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유대 민족의 현실을 구약성서의 유대인의 운명과 비교해서 예언자적, 묵시록적인 시를 많이 썼다.

주요저서로 <시신의 집에서 In der Wohnungen>, <별의 침식Sternverdunelung>, <찾는 여자 Die Suchende>등이 있다.

 

9. 1972년 하인리히 뵐(Heinrich Theodor Böll: 1917-1985)

국적: 독일

독일 쾰른 출생으로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대전의 경험에서 취재한 것이 많다. <검은 양 Die schwarzen Schafe>으로 '그룹47(Gruppe 47)'의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폐허의 문학이라고 불리던 전후문학의 지도적 작가가 되었다.

주요저서에는 <열차는 정시에 도착하였다 Der Zug war pünklich>,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Und sagte kein einziges Wort>, <아홉시 반의 당구장 Billard um halb zehn>등이 있다.

 

10. 1981년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1905:1994)

국적: 영국

1905년 불가리아에서 출생하였다. 에스파냐계 유대인으로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빈대학교를 졸업한 후 나치스를 피해 런던에 정착하고 독일어로 작품을 썼다. 제 2차 세계대전 후부터 높이 재평가 되어 흔히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와 비견된다.

주요저서:<현혹Die Blendung>

 

11. 1999년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

국적: 독일

독일 단치히에서 출생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포로생활을 하였으며 뒤셀도르프에서 조각을 공부하였다. 아이러니와 위트가 넘치며, 익살과 직설적인 현실폭로로 속세와 시대를 비평하는 것이 특징이다. 700페이지에 이르는 대표적 장편소설 <양철북Die Blechtrommel>은 대전 이후 불모지였던 독일 문학계에서 큰 주목을 끌었다.

1965년 뷔히너 상을 받았으며, <양철북Die Blechtrommel>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2. 2004년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 1946~)

국적: 오스트리아

체코계 유대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집안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빈대학교에서 연극학, 미술사, 음악 등을 공부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전업작가로 들어서서 1967년 <리자의 그림자 로 데뷔하였다.

옐리네크의 모든 작품에는 페미니즘,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 소시민 근성 등 다양한 주제가 녹아있다. 또 작품 대부분의 내용이 아주 까다롭고 어려워 일명 ' 독서 고문자'로 불리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2001년 하네케(Michael Haneke)감독이 제작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원작 <피아노 치는 여자Die Klavierspielerin>이다.

하인리히 뵐 문학상, 슈타이어마르크주 문학상, 하인리히 하이네상, 마인츠상 등을 받았다. 2004년에는 소설 등 작품을 통해서 비범한 언어적 열정으로 사회의 진부한 사상과 행동, 그것에 복종하는 권력의 불합리성을 잘 보여주었다는 공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www.freemanlee.com

이제 이런 외로움을 소재로 한 자학카툰에 지쳤다.
2008년에는 사랑을 소재로 만화를 그려보자!

Robert Cook 1948~

 

우리 가족들은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강한 의지와 독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순간마다 난 가족들의 이 공통점이 부러웠고,

내겐 없는 것에 속상해했다.

 

그런데,

오늘 아빠가 날 불러앉히셨다.

 

힘들어하고 방황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마치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하신다.

난 아빠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그러니 아마도 난 당신의 그 시절

힘들고 고민스러운 나날들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아침마다 하시던 말씀과 같은 그 말이,

그저 당신처럼 강하고 독하게 이겨내라는 질책으로만 들리던 그 말이,

어쩌면 저렇게 애초에 조금 더 여린 사람이 있다는 걸 이해해주지 못할까, 라는 원망에

그 어떤 것보다 날 외롭고 힘들게 만들었던 그 말이,

이제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발가락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 때 아빠도 잠시 말씀이 없으셨다.

 

당신의 가슴으로, 머리로 손을 움직이며

하신 그 말씀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산다는 건,

바로 이 마음으로 산다는거야.

그 마음이 머리에 가 있으면 안돼.

마음이 계산하게 되면, 안돼.

 

그 말을 듣는 내 발에

뿌리가 내리는 것 같았다.

흔들리던 마음들이

조금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All for One

 

사색, 뿌리를 내리다

 

독학으로 미술을 시작한 로버트 쿡,

그의 그림들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누군가의 머릿 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형태가 잡히기 전

아직은 결론을 내리지 않은 생각들이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는 과정의 중간에

서 있는 것 같은.

 

실제로 쿡은

나무를 소재로 한 그림에 골몰해있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그루의 나무들은

저마다 나보다 훨씬 지적인 첫 인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들판에 서서

감히 나로선 시작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무겁고 중요한 주제를 고민하고 있는 듯 하다.

 

아마도 쿡의 작품이

보는 이들의 기분을 가라앉게 한다는 평이 많은 것은

바로 그가 등장시킨 나무들의

이 놀라운 지적인 탐구 때문이 아닐까 싶다.

 

Insight

 

White Trees on Blue

 

Tuscan View

 

Black Trees on Red

 

Deja Blue

 

머릿 속 풍경

 

사색하는 과정을

말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쿡의 작품을 보며

난 어쩌면 인간의 사색에 관련한 기전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주제에 따라 장소와 풍경이

다양하게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겠지만,

공통적으로 집중되고 고요하다는 점에서

쿡의 작품은 머릿속 풍경을 그렸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지적인 탐구를 계속하고 있는

이 다양한 형태의 나무들은

마음을 간직한 인간을 표현한다.

하지만 아빠의 말씀대로 가슴 속에 살아야 하는데,

머릿 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지

상당히 정치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홀로 진행을 하다가도

어느 새 몇 그루가 담합을 하다가,

하나의 뿌리로 연합을 하기도 한다.

 

마음이 가슴에서 머리로 옮겨가면

생각이 많아지듯이,

쿡의 작품들은 참 오랜 시간 생각에 빠져있다.

덕분에 작품 앞에 선 나 역시도

생각에 빠져 조용해진다.

 

 

Amber Fields

 

Crescendo

 

Tree's Company

 

Union

 

Treeo

 

느낌이 동일화되다

 

누군가의 작품을 보며

작품에 대한 논의를 한다는 것은,

가끔은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주관적이고 거창해질 수 있다.

어쩌면 예술가들은 아주 단순하게,

그저 창조하고 싶다는 기분으로 작품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는데,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려다보면

작품 하나가 의미하고, 담아내고,

반영하고 있는 것이 너무 많고 대단해

오히려 작품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쿡의 작품을 보는 순간,

난 웬지 그가 어떤 기분으로 그림을 그렸겠구나,

어떤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했구나, 라는 것을

감히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건방진 말이 아니라,

그의 그림, 풍경화로 보이는 이 작품들은

단순히 풍경화라기보다는

순간의 기분, 느낌, 분위기를 표현해낸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해가 저무는 시간

노곤하고 외로운 기분이라든지,

나뭇잎 하나 없이 밤을 고스란히 견디는나무의 시린 기다림이라든지,

가을이 다가온다는 막연한 쓸쓸함 등이

작품을 꽉 채우고 있다.

 

그래서 나와 쿡의 느낌이

동일화되는 기분에

더 작품의 분위기가 공감이 간다.

내 마음 어느 한 순간을 읽어내고

마치 내가 그려낸 듯이.

 

Elders II

 

Moody Blues

 

Reuinion

 

The Basin

 

Last Light

 

Autumn's Approach

 

물기 어린 눈을 들어

 

축축한 물안개에 흔들리는 풍경은

물기 어린 눈으로 문득 돌아보는 내 주변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외롭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사실 눈 한 번 깜빡거리면 어느 새

또 그 뚜렷하고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걸 확신하기에는

내 뒤로 적립된 시간이 모자란 건지 모른다.

그러니,

그냥 시간을 쌓아두어야 한다.

 

쿡의 그림은

비록 손바닥으로 물기를 훔쳐내도

또렷해지지는 않겠지만,

그 너머의 아릿한 윤곽들이

실제보다 부드럽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만족하고 싶다.

 

눈 한 번 깜빡인 후 보이는

너무 쨍한 세상이

아직은 그다지 편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머릿속으로 자꾸 올라가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가슴으로 끌어내리고

견뎌봐야겠다.

 

Innes Moon

 

Grey's Creek

 

Moonlit Marsh

 

written by mandar

지난 겨울 광화문 세종로를 걷다 찍은 사진

 
"그냥 곰이 아니라 전우 였다"2차대전때 참전한 불곰 '보이텍' 추모 열기
계급장 달고 포탄 나르고 스파이 붙잡기도
김민구 기자 roadrunne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폴란드 육군 2군단 22보급중대 병사들이 이란의 고원(高原)에서 엄마 잃은 아기 곰 '보이텍'을 발견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초였다. 병사들은 당시 생후 8주였던 이 아기 불곰을 막사 안에서 군납 우유를 먹여 길렀고, 의지할 곳 없던 보이텍은 병사들을 부모처럼 따랐다.

이후 보이텍은 정식 사병 계급장까지 받고 2차대전 사상 치열하기로 유명했던 이탈리아 '몬테 카시노' 전투(1944년)에 참전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운 뒤 1963년 스코틀랜드에서 생을 마쳤다. 영국 BBC 방송은 28일, 한동안 잊혀졌던 '참전 곰' 보이텍의 전기(傳記)가 어릴적 할아버지의 참전 스토리를 추적한 한 고교 교사의 노력으로 오는 3월 출간된다고 보도했다. 이를 전해들은 스코틀랜드 주민들도 뒤늦게 '보이텍 동상' 건립 운동에 나섰다고 방송은 전했다.
▲ 폴란드 군 소속으로 2차대전 때 참전한 불곰‘보이텍’(오른쪽)이 생전에 병사와 장난치는 모습. /임페리얼 전쟁박물관
연합군 '병사' 보이텍의 임무는 박격포탄과 탄약을 전선으로 나르는 것이었다. 키 180㎝, 몸무게 113㎏의 거구로 자란 보이텍은 앞발을 이용해 11㎏짜리 탄약 상자를 가볍게 들어 날랐다.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걷기를 좋아했고, 차량을 타고 이동할 때는 항상 조수석에 앉았다. 휴식을 취할 때는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맥주와 담배를 즐겼다. 더운 여름에는 사병 샤워장에 들어가 샤워도 했다.

한 번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부대 안에 잠입한 적의 스파이를 붙잡기도 했다. 이 공로로 보이텍은 맥주 두 병과 반 나절 동안 욕조에서 첨벙거릴 수 있는 특혜도 얻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보이텍과 폴란드 병사들은 영국 스코틀랜드로 휴가를 떠났다. 이 곳에서 전쟁이 끝나 부대는 해산됐고, 보이텍은 에든버러 동물원으로 보내졌다. 부대 동료들은 이후에도 이 동물원을 방문했다. 폴란드어로 부르면, 반가운 표정으로 '담배를 달라'는 몸짓을 했다고 한다. 전우였던 아우구스틴 카롤루스키(82)씨는 "곰이 아니라 완벽한 동료였다"고 말했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