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들을 키워낸 파리 뒷골목 서점
앙드레 지드ㆍ엘리어트ㆍ헤밍웨이 …1920~30년대 문인들의 사랑방

193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의 작은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앙드레 지드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후원회`를 조직했고 정기 낭독회를 열어 서점 살리기에 나선다. 이 후원회에 동참한 사람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시인 폴 발레리와 T S 엘리엇,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와 헤밍웨이 등 20세기 문단을 주도한 대표작가들이 이 작은 서점 살리기에 나섰다.

세계 문단을 쥐고 흔들었던 그들이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서점은 어떤 곳이었을까.

최근 국내에 출간된 책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박중서 옮김)는 이 서점의 창업자인 실비아 비치가 쓴 회고록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실비아 비치는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건너와 서른네 살이 되던 해 영문학 전문서점을 낸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앞에 선 창업자 실비아 비치(왼쪽)와 제임스 조이스.
1차대전 직후 영어로 된 책을 구하기 힘들었던 파리에서 실비아의 서점은 애서가와 문인들의 쉼터 겸 사교장으로 인기를 끈다. 서점은 앙드레 지드나 폴 발레리 같은 프랑스 작가는 물론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엘리엇, 파운드, 피츠제럴드 같은 영어권 작가와 에릭 사티, 조지 앤타일 같은 작곡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서점이 유명해진 건 1922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때문이었다. 실비아는 외설시비로 영어권 국가에서는 출간이 금지됐던 `율리시스`를 용감하게 펴낸다. 작은 출판사 겸 서점에서 나온 `율리시스`는 프랑스에서 엄청난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으로는 갈 수 없었다. 이 책의 미국 밀반입(?)을 도와준 공모자가 다름아닌 헤밍웨이였다. 헤밍웨이는 `율리시스`를 금서로 지정하지 않은 캐나다를 통해 책을 미국으로 가져가는 아이디어를 냈고, 자신의 친구들을 동원해 실행에 옮겼다.

실비아의 회고록에서는 많은 거장들의 실제 생활사를 만날 수 있다. 에즈라 파운드를 기억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파운드는 자신은 물론 남의 작품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모더니즘 운동의 리더인 이 유명한 인물은 결코 자만하는 법이 없었다. 한번 자기 솜씨를 자랑한 적이 있는데 문학이 아니라 목수 일에 대해서였다."

헤밍웨이의 젊은날을 기억하는 글에서는 헤밍웨이의 문학적 인간적 특질을 단박에 읽을 수 있다.

"헤밍웨이는 젊은 사람치고는 매우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대학이 아니라 현실과 몸으로 배웠다. 헤밍웨이는 더 멀리 더 빨리 뻗어나갈 수 있는 사람인 듯했다. 약간 유치한 구석이 없지는 않았지만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총명하고 독립적이었다."

영화" 비포선셋"의 그 서점이기도…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 스콧 피츠제럴드는 인기 있는 미국인이었다.

"우리는 그를 좋아했다. 그의 푸른 눈이며 멋진 외모,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무모함, 마치 타락한 천사 같은 매력 등 그가 오데옹가를 가로질러 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다"고 찬사를 보내면서도 아무도 못말리던 스콧의 낭비벽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구제불능인 스콧은 큰돈을 벌어서인지 그 돈을 모두 써버리겠다는 기세로 엄청나게 많은 샴페인을 마셔댔다. 스콧은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모든 수익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1941년 결국 문을 닫았다. 하지만 제2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1964년 문을 열었고 다시 보헤미안들의 휴식처가 됐다. 서점 주인인 조지 휘트먼은 실비아의 장서를 모두 인수했고 서점 이름까지 물려받았다.

영화 `비포 선셋`에 등장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이제 파리의 문화유산이자 관광명소다.

이 책은 서점 하나가 어떻게 한 시대의 정신적 발원지가 됐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사랑했던 한 여인의 순수한 열정은 직접 명작을 써낸 작가들만큼 위대했다.

  출처: [허연 기자][ⓒ 매일경제]

초등학교 시절 나...ㅋㅋ

얼굴에 '나 장난꾸러기'라고 박혀있네요.

무너지고 불탄게 너뿐이랴… 역사 홀대한 우리의 업보 "용서하라 숭례문이여"… 김병종 교수가 바치는 弔辭
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
입력 : 2008.02.11

[畵手 조영남 토크쇼 ‘무작정 만나러 갑니다’] 실망이다! 마광수가 순교하면 좋았을 텐데 [조인스]
<즐거운 사라>에 갇힌 16년, 마광수 연세대 교수
“여자에 대해 나는 몸으로 하고, 당신은 입으로만 하는 게 차이야”
“어디서나 씹히는 것 지겨워. 이제 절대 사고 안


금기에 대한 도전인가, 단순한 음담패설인가? 이 시대의 자유로운 영혼을 자처하는 조영남이 역시 이 시대의 자유로운 영혼 마광수를 만났다. 평생 철들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마광수 교수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리고 외로워 보였다.


스물여덟 살에 대학교수가 됐다. 서른 살이 넘어서는 출판하는 책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잘생겼고, 목소리까지 좋았다.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이었다. 야한 소설을 써서 문제만 안 일으켰으면 지금도 대학교수로 떵떵거리며 잘나가고 있을 사람이다. 연세대 마광수(57) 교수 얘기다.

그는 인생의 정점에 서 있어야 할 40대에 점잔을 떨어야 하는 것이 직업의 본분인 대학교수로서 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직장에서 퇴출당했으며, 우울증을 겪다 끝내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환갑을 목전에 둔 그는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노후가 두렵다”고 한다.

스물다섯 살에 가수로 데뷔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덕분에 다니던 대학은 중퇴했다. 중간에 성가 가수로 미국에 유학해 신학교에서 신학학사 학위를 받았다. 서른여덟 살에 귀국했다. 가수왕은 못했지만,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MBC 연말대상에서 라디오MC부문 신인상도 받았다.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지만, 친아들도 있고 입양한 딸도 있고 여자 친구도 많다. 가수 조영남 얘기다.

너무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 남자가 만났다. 조영남과 마광수, 이 둘은 따지고 보면 공통점이 참 많다. 둘 다 여자와 그림을 참 좋아한다. 둘 다 이혼 경력이 있는 독신남이다. 또 둘 다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 다 한다. 그러나 한 남자는 지금 모든 것을 가졌고, 한 남자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이 두 남자의 인생에는 무슨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조영남 아이고~ 오랜만이야. 우리가 마지막으로 같이 술 마실 때가 몇 년 전이냐? 그때 내가 당신 전시회에 갔었지?

마광수 6년 전쯤 되죠? 저는 그 새 머리가 다 빠졌는데, 형님은 어떻게 그대로예요? 유전자가 좋은가? 아무튼 그때 저를 한국의 앤디 워홀이라고 호평을, 너무 거창하게 잘 써주셨죠. 감사히 기억하고 있죠.

조영남 <가자 장미여관으로> 책 표지그림 말이야. 장미 그린 거. 그거 지금 어디 있지?

마광수 팔렸죠. 그게 제일 먼저 팔렸어요.

조영남 아깝다. 그걸 그때 내가 샀어야 하는데…. 그 그림이 환상이었어. 사람들이 당신과 나를 비슷하다고 하는데, 당신과 나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어. 뭔지 알아?

마광수 (한참을 생각하다) 글쎄요.

조영남 여자에 대해 나는 몸으로 하고, 마광수는 입으로 하는 거야.

마광수 하긴, 저는 스캔들은 없는 사람이에요.

조영남 당신은 의외로 잘 놀 줄 몰라. 잘 노는 거는 나고, 당신은 뭐 전혀, 무슨 수도사 같아.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 나야 현장에 (같이) 있어 봐서 알지.

마광수 에이~ 저도 젊었을 때는 잘 놀았죠. 외모와 정력 때문에 포기했지. 나는 이혼 한 번 하고 나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어요.

조영남 결혼에 학을 뗐나? 결혼생활을 몇 년 했지?

마광수 결혼 자체가 싫어서 이혼한 것이죠. 3년 같이 살고, 1년 별거하고, 딱 4년 만에 이혼했어요. 딱 1년 재미있더라고요. 그 후로는 만사가 힘든 거야. 3년째는 방을 따로 썼어요. 그래도 또 못 살겠더라고.

조영남 나는 이혼했지만 힘들어서 한 것은 아냐. 내가 바람을 피워서 끝난 것이지. 당신은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마광수 같이 자는 것이 힘들었어요. 제가 아주 신경이 예민하거든요. 한 침대를 쓴다는 것이 섹스할 때는 좋은데, 같이 자려면 잠이 안 와. 옆에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잖아요. 또 잠드는 시간 다르고, 깨는 시간 다르고…. 그 친구는 새벽잠이 많은 스타일이었어요. 새벽 4시에나 잠이 온대. 그런데 나는 12시면 자야 해요. 그래야 나는 아침에 학교에 갈 것 아냐? 최악이었지.

조영남 그건 최악이다.

마광수 나는 드라마 볼 때 제일 이상한 것이 부부가 같이 이불 덮고 자는 장면이에요. 내가 쓴 시 중에 팔베개 해주다 신경통 걸렸다는 것도 있어요. 팔베개 해주고 얼싸안고 그러는 것이 말이 쉽지, 진짜 팔 아프다고. 되게 당겨요.

조영남 나는 두 번째 부인과는 한 침대에서 잔 적이 없어.

마광수 한 번도요? 어떻게 가능해요?

조영남 왜냐하면 같이 잔다는 게 굉장히 불편한 것을 첫 번째 결혼에서 깨달았으니까. 두 번째 부인과는 합의하에 그렇게 했지. (남들이) 왜 그러느냐고 난리를 치는데. 우리는 그게 편해서 그랬거든.

“18년 독신생활 동안 연애 딱 두 번”

마광수 합의하에 그렇게 하면 괜찮은데 여자들이 싫어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방을 따로 쓰면 자연히 섹스 횟수가 줄어들어요. 옆에서 피부 접촉이 생기면 생각이 나죠.

조영남 당신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해?

마광수 경험으로요.

조영남 3년밖에 안 되는 그 경험 가지고? 참~.

마광수 솔직하게 말하면 섹스는 6개월 하니까 물리더라고요. 딱 6개월 동안만 재미있었어요. 나는 태생적으로 (몸이) 약하거든요. 그러니까 부담스럽지. 오르가슴을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고요. 이런 압박감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남자가 있는 것인데, 내가 좀 예민한지도 모르겠고.

조영남 그럼 지금 홀아비생활이 몇 년째인고?

마광수 제가 1990년에 이혼했어요. 그러니까 벌써 18년째네요.

조영남 18년째 비뚤어졌구나?

마광수 비뚤어지다니요?

조영남 그러니까 쉽게 서지 않는다는 거지. 18년 홀아비생활에 정상이 아니라는 말이야. 18년 동안 그나마 섹스가 원만했던 기간이 얼마나 돼? 연애는 조금 했지?

마광수 그 사이에 사건이 많았잖아요. 이혼하고서 금방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이 났잖아요. 잡혀갔다 학교에서 잘리고, 재판을 3년인가 4년인가 했죠. 그럴 때 뭐 연애할 맛이 나요? 그게 사람이 미치는 건데…. 어느 날 갑자기 직하강한 거죠.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방송국마다 출연금지라고 뻥뻥 나오고. 그것을 왜 보도해요?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학교 잘리고 돈 없지, 사람 위축되지. 1992년에 잡혀가 1998년에 복직했어요. 그런데 2000년에 또 사건이 났죠. 재임용 탈락사건이…. 신문은 동료 교수들한테 따돌림 당했다고 보도하고. 다행히 학교에서 동료 교수들의 안을 거부해 안 잘리기는 했는데, 내가 아주 울화병이 들어 휴직해 버렸죠. 너무 배신감이 느껴져서. 그것도 나랑 제일 친했던 놈이 그랬거든. 그때부터 국문과랑은
계속 관계가 안 좋죠. 우울증으로 폐인 됐다가, 2004년에 복직해 얼렁뚱땅 다니다가, 지난해 또 강의 빼앗기고-. 이번에도 교수들이 강의를 안 준 것을 총장이 결단으로 다시 강의를 줬어요.

조영남 이야~.

마광수 사실, 동료 교수들한테 ‘왕따’당한 것은 1989년부터예요. 그 때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책 나오고 딱 6개월 만에 강의를 안 줬어. 계속 왕따에 우울증, 감옥을 왔다 갔다 하는데 사랑이 되겠어? 그러다 재작년에 처음으로 반한 여자를 만났어.

조영남 재작년에?

마광수 네. 어떤 여류화가인데 서른여섯이야. 그때 제가 쉰 여섯이니까 딱 20년 차이가 났죠. 결혼하고 싶더라고요. 내가 반했어. 열심히 꼬셨는데 늙어서 싫대. 얘가 나하고 사귄 지 6개월 정도 있다 시집갔어. 아홉 살 연하한테.

조영남 이야~. 그건 드라마다!

마광수 충격이었지. 그 20대 중반놈을 내가 봤어. 진짜 새파란 애야. 완전히 아들 같더라니까? 요새 여자들이 그래요. 연하의 시대야. 연상연하 커플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아주 실감했다니까요.

조영남 조금 쓰렸겠다?

마광수 쓰리지. 내가 진짜 늙었구나, 실감했죠.

조영남 그러면 18년 동안 겨우 6개월 연애한 거야? 이야~, 야박하다.

마광수 그 사이에 또 버림받은 게 있어. 어린애한테 버림받았지. 서울 모 대학 1학년 다니는 여학생이었는데, 독자라면서 그 애가 나를 막 꼬셨지. 처음에는 나도 대학 1학년생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대로 손톱 기르고 나오고…. 부업으로 모델을 하는 애더라고. 한마디로 ‘퀸카’였지. 그래서 ‘아~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모텔도 가고 놀았지. 그렇게 6개월 있다 또 젊은 딴 놈한테 가더라고.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연애는 그 두 가지야.

조영남 당신은 그 경력 때문에 문학가가 되는 거고, 나는 그런 쓰라린 경험이 없어서 이렇게 날라리밖에 될 수 없어. 나는 사랑의 아픔을 당해보지 않아서 사실 그런 사랑을 아주 흠모한다고!

마광수 아니, 왜 안 당해봐요? 이혼을 두 번이나 했으면서.

조영남 이혼은 둘 다 내 뜻대로 한 것이어서 아픔은 없었어. 지겨워서 끝낸 것이니까.

마광수 두 번째 부인은 다른 여자가 생겨서 헤어진 것은 아니었죠?

조영남 그 쪽이 아이를 낳고 싶다고 해서 헤어졌어. 나는 배다른 애는 싫다고 했지. 그것이 핵심이었어.

마광수 그냥 애를 낳으시지….

조영남 아니, 왜? 그건 내 취향인데. 나는 배다른 아이를 두는 것이 싫었어.

마광수 나도 내가 찬 적도 많아요. 하지만, 그것은 다 30대, 젊었을 때 일이죠. 마흔일곱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30대까지는 나도 인기교수였어요. 애들이 줄을 섰었다고, 줄을. 제가 강사를 시작한 것은 스물다섯 살이고, 스물여덟 살 때 전임강사가 됐어요. 그것도 홍익대에서.

홍익대 교수 시절이 내 인생의 황금기

조영남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때 교수가 된 거야?

마광수 (뜨악한 표정으로) 그때 내가 박사였어요. 젊은 박사!

조영남 (놀랍다는 듯이) 아, 그랬어?

마광수 (매우 자랑스럽게) 연세대 4년을 장학생으로 다녔어요. 대학원도 전부 장학금으로 공부했고.

조영남 박사논문 주제는 뭐지?

마광수 윤동주 연구요.

조영남 아, 그랬구나~.

마광수 지금도 스물여덟 살 때 교수 되기는 어려워요. 제가 초등학교 한 살 일찍 들어갔고, 몸이 약해 군대를 6개월 방위로 갔다 왔어요. 또 재수 안 했고. 그러니까 코스가 착착 나갔지. 제가 처음에는 잘나갔죠.

조영남 음~.

마광수 제가 한때 미대를 갈까도 고민했어요. 미술상도 많이 탔거든요. 그런데 처음 강의를 맡은 학교가 홍익대예요. 지금도 저는 홍익대 앞이 연세대 앞보다 더 좋아요. 또 그때는 홍익대학이 정원의 반이 미대생일 때예요. 국문과가 생기자마자 내가 거기 교수가 된 거예요. 그니까 교양수업이니 뭐니 전부 미대 여학생들 천지야, 천지. 그때 그 애들이 내 방에 꽃 가져오고, 자기 그림 걸어놓고 하면서 나를 꼬시는데…. 어느 책에서도 내가 내 인생의 제일 행복했던 시절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5년이라고 쓴 적이 있죠.

조영남 그러다 어떻게 첫 번째 색시를 만났던 거야?

마광수 그 친구는 대학원 때부터 같이 연극하며 알던 사람이에요. 내가 대학원을 스물세 살 때 들어갔으니까 그때부터 알았던 것이죠. 어쩌다 그 애랑 친구가 됐는데, 솔직히 그 애는 나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내가 정성을 바쳤지.

조영남 하하….

마광수 그때만 해도 나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거든. 당시에는 서른만 넘어도 노총각으로 칠 때입니다. 내가 만으로 서른네 살 때 장가를 갔는데, 그 애를 계속 친구처럼 만났는데 하도 주위에서 결혼하라고 해서 둘러보니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그 애밖에 없어. 그래서 내가 매달렸지. 그때는 그 친구도 서른세 살이었거든. 자기 보기에도 내가 조건이 좋았으니까. 연세대 젊은 교수였잖아. 프러포즈하고 한 달 만에 했어요. 급속도로 마음이 맞아서….

조영남 몇 년 연애한 건가?

마광수 햇수로 10년이죠. 근데 그 애가 미국에 오래 있어서 그 동안은 편지만 하고….

조영남 그때 사랑 다 해버렸구먼?

마광수 혼전에는 다른 여자랑 할지언정 그 친구랑은 섹스를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진심으로 사모했거든요. 그 친구한테는 순정을 바쳤죠.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지만. 결혼하고 첫날밤에 섹스를 하는데, 드디어 내가 10년 만에 이 여자하고 한다는 생각에 황홀했지요. 또 결혼하고 호적에 딱 제 이름 나오고, 마누라 이름 나오는 그걸 보고 내가 ‘아, 나 정말 성공했다’ 하고 흐뭇했던 생각이 나요. 그런데 결혼하고 6개월 재미있다가 1년 있으니 피곤한 거야. 지루하고. 그것은 싫은 것하고는 다른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혼하자고 했어요.

늙는다는 것 절실히 느껴

조영남 그럼 이혼하고 몇 년 후에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출판한 거야?

마광수 별거 중에 출판했죠. 그 책이 나오자마자 이혼했어요. 그 책이 세상을 뒤집어 놓으면서 100만 권이 팔렸거든요. 덕분에 내가 위자료 많이 줬죠. 번 돈 다 줬죠.

조영남 그런데, 당신 말이야. 돈도 생겼겠다, 그 여자 쪽에서 굳이 이혼하자고 그러지도 않았는데…. 싫어도 적당히 살 수 있지 않았어?

마광수 저는 그런 거 못해요. 연애할 때도 나는 양다리를 절대 못 걸쳐. 제가 그걸 철칙으로 지켰어요. 양다리 걸치는 애들은 마누라를 두고 애인도 있고 이건데, 나는 평생 절대 그렇게 못해요. 문학에서도 저는 그런 거 싫어해요. 왜, 야한 얘기 써놓고 나중에 민중적 섹스 어쩌고 하면서 쓱 넘어가고 그런 놈들 많잖아요?

조영남 보통 사람들은 다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지. 돈이 아까우니까. 그리고 또 평판도 아깝잖아? 그래서 이혼도 안 하고. 그래도 당신이 이혼한 것은 당신 결벽증 혹은 결벽증에 대한 편집증 때문인가? 내가 진단하기에는 당신 그거 질병인 거 같아.

마광수 병이 아니라, 나는 독신 하면서 연애나 하는 게 맞는다고 느낀 거죠. 같이 사는 게 싫은 게 아니라 부담스러웠으니까. 그 뒤 여러 가지 풍파를 겪기도 했지만, 정말로 다시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재작년이 처음이었어요. 스무 살 어린 여자한테 프러포즈 딱 한 번 하고 딱지 맞았죠.

조영남 공부를 박사까지 한 사람이, 결혼하자 하면 그 여자가 딱지 놓을 걸 몰랐나?

마광수 그냥 ‘무대뽀’로 한 거지.

조영남 거절당할 줄 몰랐느냐 이 말이야.

마광수 그냥 해본 거예요. 그냥.

조영남 바보 아니야? 보통 계산하고 하잖아? 딱지 놓을지 말지 딱 알잖아?

마광수 하도 좋으니까. 이혼하고 만난 여자 중에서 제일 좋았어.

조영남 그러니까 당신은 여자랑 섹스에 대해서 괜히 쓴 것만 많지, 실제적으로 건진 게 아무것도 없는 거야.

마광수 사실 나도 젊었을 때 여자 재미는 실컷 봤어. 쫓아다니는 애들이 많아서. 싱싱한 애들이….

조영남 자꾸 옛날 추억만 말하면 더 서글퍼 보여.

,b>마광수 이제 늙으니까 쫓아다니는 여학생 하나 없고…. 요즘은 ‘고삐리’들이 밤에 지나가면서 길 물어볼 때 나한테 할아버지라고 그런다니까요?

조영남 하하하….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이성에 대한 낙은 뭐야?

마광수 낙은 무슨…. 대리배설밖에 없어요.

조영남 대리배설이라 함은?

마광수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야한 영화나 보고 그런 거지. 이제는 자위행위도 안 해요. 치사해서. 저는 여자친구가 별로 없어요. 형님은 연예계에 있으니 기회가 많겠죠. 학교는 있어 봤자 교류 상대가 학생밖에 없어요. 저는 뭐 애들하고 연애했다는 게 같이 잤다는 것이 아니라 같이 술 퍼 마시고 놀러 다닌 것뿐이거든요. 뻑하면 설악산 가고, 해운대 가고 그랬다는 말이야. 그런데 이제 늙으니 그런 것도 없어요.

조영남 늙으면 어차피 다 똑같아.

마광수 늙어도 외모가 좀 되면 돼요. 그런데 저는 머리가 아주 갔잖아요.

조영남 괜히 핑계지. 내가 뭐 외모가 돼서 젊은 친구들하고 같이 놀러 다니나?

마광수 저는 가발은 치사해서 안 써요. 연예인도 아니고. 내가 그것으로 밥 벌어먹는 사람도 아니고…. 그 더운 걸 어떻게 써요?

조영남 내가 보기에는 생각이 자유롭다는 것이 큰 낙일 수 있어.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마광수 그렇죠. 저도 요새는 불안에 떨어요. 노후 때문에. 지금 내가 늙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거든요. 그런데 내게는 아무도 없잖아. 자식도 없고, 마누라도 없고….

조영남 그것은 굉장히 불안하겠다.

마광수 죽을 때 어떻게 죽나 그런 거, 그런 생각이 이제 슬슬 와요.

조영남 그럼 자살하는 게 낫지 않아?

마광수 자살할지도 모르죠. 우울증 걸렸을 때 자살도 시도해 봤어. 강변에 몇 번 나가 봤다고.

조영남 하하하…. 그런데 우울증 걸리면 스스로 내가 우울증인 것을 알아?

마광수 증세가 있으니까 알죠. 우울증에 걸리면 증세가 밖에 절대 나가지 않는 거예요. 누구도 안 만나게 돼요. 불면증도 오고, 꼼짝하기가 싫어. 딱 가만히 있는 거야. 집안에서도 내 방에서…. 응접실까지도 가기 싫어요. 그 병이 무서워요. 전화도 안 받고, 기자는 특히 만나기 싫고. 제가 입원했다니까요. 입원을. 우울증이 심해서.

조영남 그랬었구나.

마광수 그때 충격이 컸어요. 요새 또 자신이 없어진 것이, 지난해 위궤양으로 병원에 입원했었거든요. 갑자기 졸도해서 병원에 실려갔더니 위출혈로 위가 뚫어졌어요. 내가 하루에 담배를 세 갑을 넘게 피워요. 의사는 끊지 않으면 죽는다는데 지금도 담배를 못 끊었어요. 그 사건 뒤로 지금까지 비실비실하는 거야. 소화도 안 되고. 그러니까 이제 여자에 대해서 더 자신이 없어지는 거죠. 몸이 건강해야 뭐 여자를 만나죠.

“마광수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

조영남 나는 머리 좋은 인간들이 자기학대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해. 담배는 자학 아냐?

마광수 못 끊어요. 내가 감옥에 몇 달 있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거였어요. 환장하겠더라고. 검사한테 불려갈 때마다 창피를 무릅쓰고 한 대만 피우게 해달라고 사정했어요. 창피한데도 사정하게 돼요. 사람이 그렇게 치사해져. 중독되면.

조영남 아이고, 불쌍해라~. 나는 담배를 태어나서 대학교 때 한 모금 빨아 봤어. 무지하게 쓰더라고. 그 이후로는 끝. 다시는 안 피워 봤어. 아무튼, 마광수에게 일자리를 준 대한민국 대학은 굉장히 선진화한 대학이라고 생각해.

마광수 내가 처음부터 야했나? 모범생이었다니까요. 지금은 뭐 아주 걸레가 됐지. 남 보기에.

조영남 동료 교수들한테 왕따당한다는 느낌 받는 거, 그건 참 갑갑하겠어.

마광수 느낌이 아니죠.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주니까. 그 친구들이. 이번에도 그랬고. 아주 미치겠어요.

조영남 그런데 당신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 누군지 있을 거야.

마광수 나는 학생 덕으로 살았어요. <즐거운 사라> 때도 총학생회 아이들이 플래카드를 붙였죠. 그런데 거기에 “마광수 교수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썼어. 재미있는 것은, 인도대사관에서 항의 전화가 왔어요. 인도가 뭐 아직도 식민지냐, 이러면서. 하하하….

조영남 그러면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게 크겠다.

마광수 크지. 사실 강의할 때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왜냐하면 기대하고 들어오거든, 애들이. 무지 재미있어야 하고….

조영남 무척 신경 쓰이겠네.

마광수 요새는 (제 강의를) 수강하기도 어렵거든요? 선착순 마감이어서. 컴퓨터로 하기 때문에….

조영남 보통 학생들한테 당신 입장을 어떤 식으로 옹호하나?

마광수 애들한테 내 강의를 수강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절반은 호기심이라고 답해요. 그런 애들도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대부분 (제 입장을) 납득하고 끝나죠. 끝까지 보수적인 애들도 있어. 그래도 연세대의 장점은 전체적으로 아이들이 리버럴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이 언제나 저를 봐줬죠. 이번에도 학생들이 서명운동하고 난리를 쳤죠. <즐거운 사라> 사건 때도 학생회에서 ‘마광수는 옳다’는 700쪽짜리 백서를 만들었어요. 재임용에 탈락했던 2000년에도 문과대 학생회에서 책을 만들었고. 역시 백서 형태로…. 그러니까 솔직히 선생들이 내가 더 미운 것이지.

조영남 그렇겠구나.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라는 시집은 언제 낸 거야?

마광수 그게 지난해 나왔어요.

조영남 이것 쓸 때 또다시 문제 생기겠다, 이런 생각 안 들어?

마광수 왜요, 들죠. 그 책도 출판사에서 벌벌 떨면서 냈어요. 나도 떨었고요. 도저히 기준이 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지난해에도 홈페이지가 야하다고 정보통신윤리법에 걸려 불구속 기소됐잖아요? 집행유예 나오면 학교 또 잘리거든요. 다행히 벌금만 200만 원 물었죠.

조영남 이걸 출판한다면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걸 예측했을 거 아냐?

마광수 내가 이상하게 또 ‘똥깡’이 있어요.

조영남 그냥 단순한 똥깡이야?

마광수 우기는 거지.

조영남 한번 해 보자?

마광수 그렇지. 그런데 얼마 전에는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모 출판사에서 중편 시리즈를 내요. 그런데 나한테 써보라고 했다 이 말이에요. 제목이 <사랑의 학교>야. 홍익대 시절 학생들하고 연애한 이야기야. 5명하고. 그런데 막 과장을 해서 썼더니 출판사가 한 달을 고민하더라고요. 변호사한테 자문까지 해봤대요. 죽어도 안 됩니다. 그래서 퇴짜 맞고 다시 쓰고 있어요.

조영남 똥깡이 줄어든 건가?

마광수 당연히 줄죠. 지난해에도 재판받았잖아.

조영남 당신은 혹시 본인이 말이야. 재판정에 끌려가면서 매스컴에 사진 찍히고 이런 걸 좋아하는 거 아냐?

마광수 그런 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벌벌 떨었는데.

조영남 그럼 당신은 끌려가는 거하고 똥깡부리는 것하고 연결이 안 돼?

마광수 이게 연결이 안 되는 거야. 어머니하고 누님이 있는데 만날 뜯어말리지. 지난해 재판받으며 우리나라에 절망했어요. <즐거운 사라> 사건 난 게 벌써 16년 전이에요. 그런데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표현의 자유가 없어. 웃긴 것은 요즘은 중학생들도 ‘야동’을 다 봐. 이게 이중성이 아니고 뭐냐는 말야. <즐거운 사라>가 일본에서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됐잖아요? 여태까지 일본에서 출판된 한국소설 중에서 제일 많이 팔린 것이 내 책이야.

조영남 그랬구나~.

마광수 일본에서는 내 책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 게네가 볼 때는 웃긴다 이거야. 한국은 16년 지나고 문민정부에다 또 뭐 참여정부 다 지났어도 그대로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이런 나라가 우리밖에 없어.

<즐거운 사라> 때문에 은퇴 후 연금 못 받아

조영남 그래도 당신 지금 대학교수 하고 있잖아?

마광수 <즐거운 사라> 사건 나고 잘렸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사면시켜줬어. 그래서 다시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거야. 아니었으면 절대 교수 못해요. 공무원·군인· 교수 뭐 집행유예 이상 받으면 잘리거든요. 지금도 내가 무슨 불이익을 받느냐 하면 퇴직 후 연금을 못 받아요. 전과자는 연금을 못 받거든. 그러니까 내가 노후가 불안한 거야.

조영남 미국에도 성문학이 있나? 그런 학문에 그런 분야가 있나?

마광수 미국에는 아예 ‘에로티카’라고 장르가 있어요. 미국은 보수적인 나라지만 작가를 외설로 구속하지는 않아요. 판매를 금지하기는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박정희가 아무리 독재를 했어도 작가 잡아간 적은 없어요. 나는 김영삼 때 잡혀갔다 이 말이야. 도저히 앞뒤가 안 맞는 거야. 정치 민주화만 하면 뭐하냐고? 문화의 민주화는 멀었는데.

조영남 그럼 당신은 외국에 성문학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언제 안 거야?

마광수 대학교 때부터 좋아하고 찾아 읽기 시작했죠. 처음 성에 눈뜬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금병매>를 읽으면서였죠. 그 책이 명나라 때 쓰여진 책으로 중국에서 제일 야한 책이라는데, 명나라 때도 잡아갔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다 삭제한 판이 나와서 그것을 초등학교 때 봤지. 그때 자위를 독학했어요. 저절로 자위행위가 되더라고.

조영남 당신을 옹호하는 문학의 바람이 없는 이유를 뭐라고 봐?

마광수 내가 그것을 통탄하는 거야. 내가 제자들한테 하는 말이, ‘너희는 나보다 젊은데 왜 나보다 덜 야하냐’예요. 제2의 마광수가 나와야 하는데, 너무 이상하다고.

4학년 때 <금병매> 읽으며 성에 눈 떠

조영남 글쎄….

마광수 머리 허연 놈이 야한 이야기 하고 앉았고, 젊은 놈들은 무슨 책이 그렇게 어려운지…. 나는 어려운 말 하나도 안 쓰잖아?

조영남 당신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바람이 없는데도 20년 가까이 이러고 있는 것은 당신 용기가 굉장한 것이야. 아무나 독립군생활을 그렇게 오래 할 수 없어.

마광수 내가 만날 얘기하는 게, 나는 문단의 왕따라는 것이죠. 문단에서는 나를 도와 준 것이 없어. 항상 학생들만 나를 도와줬지. 제 책들을 보세요. 유명 출판사가 아니잖아? 제 책은 뭐 예를 들어 유명한 데, 창작과비평·문학과지성 이런 데서는 죽어도 내 책을 절대 안 내줘요. 왜 똥을 묻혀? 내 책은 다 소소한 출판사들이야. 또 내 책은 별로 팔리지도 않아. 워낙 이상한 선입관들이 있어서 마니아밖에 안 봐요. <즐거운 사라>때 만들어진 선입관이지. 오죽하면 잡아갔겠느냐 이거야.

조영남 그래도 당신이 역류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옳다 혹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긍지가 있어서인가?

마광수 나는 분업주의자예요 문학은 쟁이다, 글쟁이. 나는 우리나라에서 성문학을 개척해 보겠다 이것은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문학으로 인류를 구원하네, 세상을 구원하네 그랬잖아? 그게 싫었지. 문학이 결국 재미지, 뭐야?

조영남 감옥에 들어간 건 얼마 간이야?

마광수 세 달. 강의하는 중에 잡아갔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지. 학기 중에 교수를 잡아가는 예는 없었거든.

조영남 다른 사람 같으면 법정에 끌려가는 것이 귀찮아서라도 걸리지 않게 한다 이 말이야?

마광수 올해부터는 그러려고요. 지난해 또 기소당해 보니 이제는 못 하겠더라.

조영남 늦었어.

마광수 진짜로 이제는 원고를 퇴짜맞았는데도 기분이 안 나쁘고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요. 걸리는 것보다 낫잖아? 그래서 점잖은 거 쓰려고 구상 중인데, 젠장 또 생각은 야한 거만 나네. 저는 야한 생각으로 꽉 차 있어요.

조영남 야한 게 더 흥미로운가?

마광수 그렇죠. 제 전공인데….

조영남 허허.

마광수 이론도 저밖에 없어요. <문학과 성>이라는 이론서를 냈는데, 그것이 성문학에 관한 한 유일한 국내 저서예요. 국내에 성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없어. 이론도 없고, 실천도 없고, 완전히 저 혼자예요. 그게 이해가 안 가. 왜 이렇게 점잖으냐는 것이지.

조영남 사람들 중에 당신의 <성애론>을 읽은 사람은 몇 안 될 거야.

마광수 그것도 유일한 책이야. 한국사람이 쓴 것으로는. 거기도 섹스 이야기를 종합했죠.

조영남 우리나라에서 참 값진 책이야. 그렇게 본격적으로 쓴 것은 외제밖에 없지. 인간들이 우리 인간사가 성애론에 기초한 그런 걸 몰라.

마광수 그러니까 내 책을 제발 읽어라. 그리고 사실 내가 야한 것만 쓰지 않거든요? 논문도 쓴다고요. 아무튼 지금은 나이도 먹고, 이제 접으려고 해요. 너무 시달려서 도저히 헤쳐나갈 길이 없어. 무엇보다 출판사들이 싫어하고 겁을 내고…. 나도 더 이상 걸리기 싫거든요. 굉장히 귀찮은 일이거든. 굉장히 불이익도 오고. 나는 세상이 좀 달라진 줄 알았죠. 그런데 이제는 홈페이지까지 잡아요.

조영남 참 피곤하겠다.

마광수 두 번 불려갔잖아요? 서대문경찰서로 불려가고, 그 다음에 또 서부지검에 불려가고…. 벌벌 떨다 200만 원 벌금이라고 해서, ‘아이고~ 이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항소도 안 했어요. 항소해 봤자 안 되거든. 우리나라는. 죽었다 깨도. 이제 나는 반성했어. 이제 안 쓸 거야. 아, 괜히 손해 안 보려고. 그런데 미치겠어. 상상력은 야한 게 막 뻗쳐있는데. 진짜예요. 나는 표현의 자유만 주면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예를 들어 동성애 소설도 쓰고 싶고, 스와핑도 쓰고 싶고…. 꾹꾹 참는 거지. 예전에 쓴 책 중에 내가 스와핑이 좋다고 썼던 글이 있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내가 20년 앞을 내다봤다고 말해. 내가 또 손톱 긴 여자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요즘 네일아트 유행하지. 그 다음에 피어싱이라는 것을
1980년대부터 썼어. 그리고 페티시도….

조영남 결론은 나왔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사람들한테 맞아 죽으면 당신은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는 거야.

마광수 아, 나는 절대로 싸울 생각 없고….

조영남 누군가 희생이 없으면 문화 발전이 안 되는 거 아냐? 결론은 이렇게 내는 게 어때? ‘마광수, 이중성 타파를 위해 순교하다’로….

마광수 절대로 저 혼자로는 안 돼요. 또 절대로 싫고. 나는 이제 안 써. 나 같은 작가가 10명은 나와야 해요. 젊은 작가와 그들의 조직이 있어야지.

조영남 유종의 미를 남겨야지. 마광수답게!

마광수 나는 젊은 놈들이 더 미워. 그렇게 민주화 주장을 했다 이 말이야. 그럼 문화도 인정해야죠. 요새 애들이 더 보수적이야.

조영남 그러면 마광수는 왜 끊임없이 저항하는 거야?

마광수 저항도 아니에요. 내가 뭐 투사도 아니고.

조영남 투사지.

마광수 제가 일부러 싸우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썼다는 것뿐이죠. 운동한 적은 없잖아요?

“젊은이들이 더 미워”

조영남 그래도 잡혀갈 꼬투리를 만든 거는 저항 이상이야. 이 시대의 독립운동인데, 독립운동 하는 이유가 딱 하나야. 당신이 사랑을 안 해서 그래. 바쁘지 않아서. 사랑으로 바빠야 하는데.

마광수 대리배설을 하는 거지. 직접 배설해야 하는데. 그런데 다들 오해해. 내 실제 생활이 그렇다고. 재판할 때도 판사가 ‘당신 해보고 썼지’ 이러거든요. 되게 웃긴다 이거야. 판·검사가 소설의 가장 기본을 모르더라고. 소설이라는 것이 뭐야? 거짓말이라는 건데. 소설의 정의가 그럴 듯한 거짓말이잖아?
조영남 그럼~.

마광수 그런데 사람들이 혼동해요. 저 새끼 교수인데 저런다고 하면서.

조영남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냐? 마광수한테 여자가 생길 것 같지는 않은데….

마광수 이제는 단념했어요. 그리고 솔직히 정력도 없어요. 자신도 없어. 여자를 만족시켜줄 자신이 없어요.

조영남 아~ 웃긴다. 누가 정력 가지고 여자 만나나?

마광수 물론 정력보다 정열이 어쩌고 저쩌고 떠드는데, 사실 나는 정력 콤플렉스가 좀 있죠. 아무래도, 몸이 약하니까. 사실 정력보다 정열이야. 그런데 여자를 꾈 엄두가 안나. 또 건방지게 50대 여자는 싫거든. 내 또래는 싫다 이 말이야. 젊은 게 좋거든.

조영남 우리 사회가 그런 병에 걸렸어. 나도 그 병에 걸려 있어. 그래서 욕먹는 거야.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 그런 보수도 필요하지 않을까?

마광수 보수도 있어야 하죠. 예를 들면 이런 거야. 모든 문학이 전부 마광수 소설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광수 소설 같은 것도 하나쯤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면 안 될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다원주의가 없어.

조영남 늙는다는 것이 장점도 있지 않을까? 콤플렉스가 80%라면 20% 정도는 늙어서 좋은 점도 있을 거 아냐?

마광수 나이 먹으면 일단 아는 게 많아져요. 좀 느긋해지지.

조영남 그런데 당신이 지난해 재판정에 끌려갔다는 것은 내가 볼 때는 아직 철이 안 든 것 같아.

마광수 설마 홈페이지 잡을 줄은 몰랐지. 그것도 개인 홈페이지인데. 내가 뭐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조영남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시인 기형도를 만난 적이 있나?

마광수 기형도를 내가 가르쳤어요. 그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 내가 예심을 했어. 사실, 내가 기형도라서 예심에서 그냥 뽑아줬어. 그런데 죽었지. 고인한테는 안된 말이지만, 그래서 유명해졌고…. 살았을 때는 그 친구가 시집 한 권 없었잖아요? 시만 발표했지, 시집이 없었어. 친구들이 죽은 다음에 유고시집을 내 준거야. 그것이 이렇게 뜰 줄 몰랐죠. 그 친구들도 다 내 제자잖아.

조영남 굉장해.

마광수 기형도가 오늘날의 이상이고, 윤동주라고. 무슨 전설이 돼 버렸어. 살아 있었으면 절대로 그렇게 안 됐지.

조영남 그랬을까?

마광수 이상하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추모가 강해요. 일찍 죽어야 해요. 예컨대 윤동주는 스물여덟에 죽었고, 이상도 스물일곱에 죽었고, 김소월은 서른 세 살에 자살했고….

조영남 그럼 당신하고 나는 틀렸나?

마광수 우리는 이제 틀렸죠. 신화는 어렵습니다. 미국도 제임스 딘을 봐. 그가 <자이언트> <이유 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 딱 세 개 나왔잖아요? 그런데 신화야.

조영남 당신은 이상의 글을 언제 접했어?

마광수 중학교 때 멋모르고 이상 시집을 봤지.

조영남 어떻게 이상을 중학교 때 봤어? 그럼 천재 아니면 바보 둘 중 하나인데….

마광수 나 그때 칭찬 무지하게 받고, 학창시절에 정말 내가 귀여움을 받았어요, 조숙하다고. 무조건 1등 하니까.

조영남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마광수 공부 안 해도 1등이야. 연세대도 그래서 4년 장학금 받고 톱으로 들어갔어요. 가서도 공부 안 했어요. 연극 하고, 미술 하고, 심지어 방송국 PD까지 했지. 그래도 내가 1등이야.

조영남 당신이 그걸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상을 좋아해야 하는데….

마광수 내가 이상은 싫어해요. 어려워서. 나는 어려운 거 싫어해요. 기형도 시도 솔직히 나는 싫어.

조영남 암호 같지?

마광수 암호 같아. 왜 이상이냐 이거야.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 알아야 말이지. 윤동주는 쉽게 쓰거든. 일기 같아. 아주 어린애가 봐도 윤동주 시는 다 이해할거야. 솔직히 이상은 유명하기만 했지, 그걸 읽고 감동할 사람이 있을까요?

조영남 없지.

마광수 괜히 뻥튀기야. 내가 볼 때 이상은 일찍 죽어서 과대평가된 사람이야.

조영남 재미있는 말이네.

마광수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난해한 걸 좋아해. 기형도 시 좋아하는 거 보면. 질투가 아니라, 그 친구 동정은 하지만, 내가 볼 때 그의 시는 오리무중이거든요. 그런데 아주 사람들이 깜빡 죽어요. 이상한테는 더 깜빡 죽고…. 오죽하면 사람들이 나한테 글을 좀 어렵게 쓰면 욕을 안 먹을 것이라고 충고해요.

“마광수 하나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조영남 그럼 정지용·김기림은 어때?

마광수 아후~ 싫어요, 저는. 어렵지. 요새 백석 붐이에요. 젊은 학자들이 꼽는 시인이지. 그런데 시집 <사슴>, 딱 시집이 한 권인데 어려워. 백석 씨는 또 사투리도 오라지게 많고. 사전 없이는 절대 못 봐. 나는 사전 없이 중학생 이상이면 읽을 수 있는 글을 좋은 글로 봐.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어려운 글에 대한 존경이 있어. 나보고는 너무 직설적으로 쉽게 쓴다고 뭐라고 하지.

조영남 내가 당신의 글을 총체적으로 존중하는 이유는 글의 폭이야. 폭이 넓어.

마광수 우리나라는 유행에 너무 민감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민중문학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한 물 갔다고 하니까 아무도 안 해.

조영남 그럼! 다양하게 있어야지. 그런데 우리는 획일이야. 참, 당신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떨까? 글로 쓰면 자꾸 남들이 뭐라고 하잖아?

마광수 그림도 성기 같은 것은 조심해야 하는데 그림을 부업으로 하는 것이 힘들지. “너 글은 별로인데 그림은 괜찮다” 이런 말도 많이 들어. 하지만 내 본업은 문학이죠.

조영남 아이고~. 암튼 나는 오늘 실망이다. 마광수가 순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얘기는 끝났어.

마광수 나는 이제 절대 사고 안 칠 것이고, 조심할 거예요. 학교, 문단 어디서나 씹혀서 지겨워, 이제는.

조영남 지금 반성문 쓰는 거야? 하하하하…. 내가 뭐 꼭 야단친 것 같네.

기획·정리■오효림 월간중앙 기자 / 사진■안윤수 월간중앙 사진기자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퇴임

뉴시스|기사입력 2008-02-19 18:00
붉은 열정 불태웠던 피델 카스트로


【아바나=로이터/뉴시스】

피델 카스토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1)이 19일 49년간의 통치를 끝내고 퇴임한다고 밝혔다.

카스트로 의장은 이날 대국민 성명을 통해 오는 24일 열리는 국가평의회에서 새로운 임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공산당 기관지 웹사이트에서 "최근 평의회 의원으로 선출해준 존경하는 국민들에게 알린다"며 "나는 더 이상 국가평의회 의장과 군통수권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가평의회는 그의 동생이며 후계자인 라울 카스트로(76)를 새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지명할 것으로 보인다.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카스트로는 지난 19개월 동안 거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50년 가까이 쿠바를 통치하면서 미 중앙정보국(CIA)의 암살 기도를 겪고 냉전, 소련 붕괴 등 굵직한 역사적 순간들을 지켜봤다.

군복 차림으로 장시간 연설하는 등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그는 미국에 맞섬으로써 제3세계 국가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는 반면 서구에선 독재자로 평가되고 있다.

카스트로는 1959년 미국의 지원을 받던 정부를 전복하고 권좌에 앉은 이후 통치를 계속해 오다 2006년 7월 장출혈로 수술을 받고 그의 동생 라울에게 일시적으로 권력을 넘겨줬다.

그 뒤 간헐적으로 수척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공개됐으며 당기관지에 기고문이 실리며 근황이 알려졌다.

국가평의회 의장을 퇴임한 그가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여전히 정치적인 영향력을 유지할지 주목되고 있다.


정진탄기자 chchtan7982@newsis.com

“인생의 기술 중 90%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사뮤엘 골드윈

 인생의 기술 중 90%가 싫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생에 있어 성공의 90%는 싫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에 달려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사회에서는 친구를 만드는 것보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의 경우 친구는 성공을 가져오나 적은 위기를 가져오고 애써 얻은 성공을 무너뜨린다. 조직이 무너지는 것은 3%의 반대자 때문이며, 10명의 친구가 한 명의 적을 당하지 못한다. 따라서 쓸데없이 남을 비난하지 말고, 항상 악연을 피하여 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급적 상대방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는 이해와 관용을 베풀고 너그럽게 수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일체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며 또 실제로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불가피하게 타인에 대해 비판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를 무시하여 감정과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야 한다.

상대방을 적으로 만드는 것은 단순한 비판때문이 아니라 비판하는 나의 말속에 수치심, 모욕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불가피하게 비판하는 경우에는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 사실만을 말해야하며, 비판하려는 내용과 상관없는 상대방의 개인적 특징에 대해 평가하거나 비난하는 표현은 삼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 반면에 모든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불완전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은 완전한 것으로 생각하는 양면적인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는 항상 단점보다 장점을 보려 노력해야 한다. 사뮤엘 테일러 콜리지는 “ 위인과 만나거든 너의 좋은 인상을 남기도록 하되, 소인과 만나거든 그 사람의 좋은 인상만을 남기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세상에 위인은 적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인이니 항상 다른 사람을 만나면 좋은 인상만을 간직하자.

다른 사람의 단점만을 보면 비판하게 되고, 비판하면 적을 만들기 쉽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좋은 인맥보다 좋은 인연이며, 인연은 항상 변하는 것이니 호연을 구하고 악연을 피하라. 항상 나의 말과 행동에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조심하여 적을 만들지 않도록 경계하라.

적을 만들지 말라. 그것이 좋은 인맥을 만드는 비결이다!

장관 인선이 남긴 황당 어록과 유행어…의혹보다 더 어이없는 해명들
강영수 기자 nomad90@chosun.com

장관 후보자 3명 낙마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 인사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만큼 수많은 유행어와 ‘어록’ 를 남겼다.

‘고소영 S라인’ ‘강부자 내각’이라는 유행어로 떠올랐고, 후보자들의 ‘땅사랑’ ‘오피스텔 선물’등 서민정서와 동떨어진 해명은 인터넷에서 거센 후폭풍을 일으켰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여의도는 살기 좋지 않다”“수석 입학한 스트레스 때문에 딸이 국적포기했다” 등 ‘코미디같은 해명’이 이어지면서 인터넷에서는 ‘장관 후보자 해명 어록’까지 돌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후보자들의 ‘황당해명시리즈’에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 “새 정부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코미디정부’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 ‘고소영’‘강부자’‘강금실’등장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수석과 초대 내각 인사가 실시되자 ‘고소영 S라인(고려대+소망교회+영남+서울시청 출신)’이라는 단어가 주목을 받았다.

경북  포항 출신으로 고려대를 나와 소망교회를 다니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와 내각 인선 등에서 ‘고소영 S라인’출신들을 중용했다는 비판이다.

통합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지난 20일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 수석 중에 충청과 호남 출신이 한명도 없다. 고소영 S라인을 들어봤냐”고 지적했고, ‘고소영 S라인’이란 단어는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를 차지하기도 했다.

장관 후보자들의 평균 재산 39억원으로 대부분 강남에 부동산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강부자(강남부자) 내각’이 유행어가 됐고, 야당에선 ‘강금실(강남에 금싸라기 땅을 실제로 소유) 내각’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또한 국무위원 후보자들 검증과정에서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자녀 이중국적, 경력 부풀리기 등 각종 비리 의혹들이 쏟아지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까도까도 의혹이 끝이 없다’는 뜻에서‘양파내각’이라는 말도 나왔다.

◆낙마 후보자들의 어이없는 해명…패러디까지

무엇보다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것은 해당 후보자들의 ‘황당해명’이었다.

낙마한 후보자들은 각종 의혹에 대해 “일생을 바르게 살아왔다”“일방적으로 와전된 언론보도” “왜곡된 사실로 투기꾼으로 매도했다” 면서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들의 해명은 서민들 가슴에 ‘대못질’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경기도 김포의 절대농지 투기의혹에 대해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해명했다.

네티즌들은“이명박 정부가 땅사랑 정부냐” “농사도 안 지으면서 농지를 사랑해서 땅을 사는 게 바로 투기”라고 비난했다.

“술을 사랑한 것일 뿐 음주운전과는 전혀 상관없다” “자연의 일부인 여자를 사랑했을 뿐 불륜과는 상관없다” 는 등 패러디 댓글도 속출했다.

전국 각지에 40건의 부동산을 소유한 이춘호 전 여성부 장관 후보자의 ‘오피스텔 선물’ 해명도 논란이 됐다.

이 후보자는 조선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서초동 오피스텔은 내가 유방암 검사에서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기념으로 사준 것이다. 글도 쓰고 사무실로 쓰라고 했다. 일산 오피스텔은 친구에게 놀러 갔다가 사라고 해서 은행 대출 받아 샀다”고 해명했다. 

‘이영수’란 네티즌은 조선닷컴 댓글에서 “암 아니라고 오피스텔 사주는 정도면 재벌 못지 않네”라며 “감기가 아니라면 차 한대 사줄 것”이라고 비꼬았다. 네이버의 ‘foxhan’란 네티즌은 “부동산이 무슨 기념품이냐 선물을 한단다”고 했다.

통합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오피스텔이 과자나 아이스크림인가. 무슨 길거리 붕어빵인가. 그러한 관행이 우리사회에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선물인가”라며 “이것은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뛰어다닌 수많은 서민들을 울리는 해명”이라고 비난했다.

남주홍 전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부부가 교수를 25년 동안 했는데 둘이 합쳐 재산 30억원은 다른 사람에 비해 양반인 셈”이라는 해명도 서민정서에 반하는 발언으로 꼽혔다.

민주당은 “참으로 듣기 민망한 말”이라며 “교수 부부 연봉이 50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30년 동안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돈”이라고 비난했다.

◆인사청문회서도 ‘황당 해명 시리즈’

‘황당 해명’은 낙마한 장관 후보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일부 장관후보자들의 어이없는 해명은 계속됐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민주당 서갑원 의원이 “여의도 롯데캐슬 입주 한달만에 송파구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분양 받은 것은 좋게 말해 재테크, 사실상 투기 목적이 아니냐”고 추궁하자  “여의도가 사람이 살기 그리 좋은 지역은 아니다. 자연친화적이지 않다”고  답변, “공직자로서 인식이 일반인들과 너무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질타를 받았다.

이 후보자는 “평균적으로 봐서 재산이 많다. 골프 회원권을 2개나 가지고 있다”는 자유선진당 곽성문 의원의 지적에는 “사실은 싸구려 골프회원권”이라고 답변했다가 집중포화를 맞았다.

구입 당시 가격이 4000만원이었던 것이 ‘싸구려’의 근거였다는 것이다. 

서갑원 의원은 “서민들 가슴이 무너지는 말”이라고 비난했고, 일부 네티즌들은 “연봉 4000만원이면 싸구려 인생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딸의 한국국적 포기 이유에 대해 “아이가 중 3때 연합고사에서 수석을 했다. 인근 학교에 수석입학을 해 그것을 유지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청소년 복지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워 시골에 있는 엄마에게 갈 것인지, 미국에 가서 공부할 지 선택하게 했는데 딸이 미국에 가서 생활하겠다고 해 국적을 포기했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놨다.

김 후보자의 발언도 넷심(네티즌들의 민심)에 불을 질렀다. “정 안타까우면 유학 보내면 되지 왜 국적포기를 하냐”는 비난이 쇄도했다.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국적 포기했으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 다 국적포기 해야 하나” “수능 수석 했으면 지구인이기를 포기했겠네”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김 후보자는 논문 중복게재 및 표절 의혹에 대해서 “복지에 대한 열정으로 봐달라”고 했다가 민주당 우 대변인에게 “살다 살다 표절을 열정으로 봐달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 후보자는 140억원의 재산에 대해 “내가 배우생활 35년을 했는데, 그 정도 벌 수 있는 것 아니냐. 배용준을 한번 봐라”고 해명했다 결국 27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내가 20년전엔 지금의 배용준과 맞먹을 정도였다는 뜻으로 한말인데 적절치 않았다. 국민들께 죄송하고, 언행을 더 조심하겠다”고 사과했다.

유 후보자는 또 민주당 이광철 의원으로부터 “배용준은 보이고, 병상에 있는 희극인 배삼룡씨나 사글세 20만원도 제대로 못내는 가수 한명숙씨는 보이지 않았냐”는 질타를 들어야 했다. 그는 “어려운 연극계를 위해 재산을 출연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후보자는 경기도 이천시와 서울 송파구 문정동,관악구에 집이 한채씩 있는 것에 대한 민주당 이경숙 의원의 질문에 “여름에는 주로 이천에, 겨울에는 송파구 아파트에 지낸다”고 답했다. 김 후보자는 ‘왜 이천에 거주하냐’는 질문에는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이다. 농사짓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통합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지난 1996년부터 2년 간 노동부 고용정책 심의위원을 맡으면서 6차례 열린 회의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고용문제가 중요한 것은 알지만 고용 그 자체에 대해 제가 발언할 정도의 실력이 없었다”고 말해 장관 자질시비논란을 자초했다. 우 의원은 “고용을 모르면서 노동부장관을 할 수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경한 법무장관 후보자는 재산 급증에 대해 “저도 이번에 (재산) 액수를 보고 상당히 놀랐다”면서 “국민여러분이 볼때 과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김 후보자는 부동산투기 질타에 대해 “공직을 맡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예상했다면 신변을 깨끗하게 하고 특히 부동산과 회원권(골프·헬스·콘도회원권) 문제는 좀 다르게 살았을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