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사진은 우리 학소도 멍멍이들이 절대 보면 안된다

"개의 자존심"에 부글부글 끓을 것이기에....

약 2주 전에도 옆동네에서 놀러온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동네 동료들한테 미처 소문을 듣지 못했는지

학소도 앞뜰을 침범(?)했다가 단 몇 십 초만에 생을 마감했다.

봄햇살을 맞으며 평화로운 주말 오후를 즐기던 나는,

졸지에 삽들고 장례식을 치뤄줘야했다.

아멘....








이렇게 맥없는 우울증 환자견은 학소도에 입대하면

해병대 제대 이상으로 씩씩해질텐데....

아니면 이웃동네 고양이를 따라가던지....





<사진 출처: http://kr.blog.yahoo.com/fanddegi/452051>

 

“난 영어 몰입교육 논란을 보면서 꼭 영어를 다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해요. 난 1960년대에 5개 국어를 했어요. 영어, 일본어, 중국어, 불어, 한국어. 언어라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그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를 지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 언어는 그 인간의 철학, 사상, 문화, 심리, 정서 이런 것들을 지배하게 돼. 언어는 단순히 수단이 아니지. 의사 표시와 회의에서뿐만 아니라 언어에 지배 당하는 것이니까. 언어라는 것은 음의 발성학적 구성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그 언어를 만들어내고 사용한 민족의 역사적 배경, 그 언어가 지금까지 오게 된 과정에서의 사회·인간 경험의 총체, 내포하고 있는 철학, 심리 이런 게 언어 속에 들어가 있어. 한국의 지식인들은 언어를 실용주의의 도구로 착각하는데, 그게 자기에게 돌아와 자신의 모든 생각을 정하지."

<경향신문> 리영희 선생 인터뷰 중에서

 

―자기 자신과도 사귀어야 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시간을 따로 떼어놔야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일기를 쓰거나 텅 빈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자기 점검을 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과 친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남도 사랑할 수 있어요. 메모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자기가 자기를 안내해주고 돌봐야 합니다."

<조선일보> 이해인 수녀 인터뷰 중에서

 

[삶과문화] 문학과 과학의 거리

[중앙일보]

삶과 문화지난 삶과 문화 기사 보기몇 달 전에 낯선 분이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사진이라 했다. 새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딱따구리라는 말 앞에 붙은 ‘큰오색’이라는 세 음절에 귀가 솔깃해졌다. 딱따구리를 한자말로 탁목조(啄木鳥)라고 부른다는 것 외에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분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렇다고 조류를 전공한 분은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큰오색딱따구리 암수가 둥지를 짓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이 알을 낳아 키우고, 새끼를 떠나보내기까지 50일간을 기록한 원고가 있다는 것이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과연 어떤 놈일까? 그놈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왠지 내 인생이 한 발자국 앞으로 멋지게 나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서 사진과 원고를 보게 되었는데, 사진으로 본 큰오색딱따구리의 자태는 아름다웠고, 미루나무 구멍 속에 튼 둥지는 매우 신비로웠다. 사진을 들여다볼수록 큰오색딱따구리가 그 길쭉하고 앙증맞은 부리로 내 상상력을 자꾸 콕콕 찍어댔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큰오색딱따구리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과정을 세세하게 밝힌 연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고 한다. 전공도 아닌 새를 관찰하는 일 때문에 그분은 어슴푸레한 새벽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도, 어두워 오는 저녁 시간에도 큰오색딱따구리를 찾아갔다.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거르는 일도 잦았다. 새에 미쳐버린 남편과 아버지를 식구들이 반기고 좋아할 리가 없었다.
관찰의 대상인 큰오색딱따구리가 비를 맞는 느낌이 어떤가를 알기 위해 새와 함께 비를 맞아보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라웠고,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비에 젖는 풀잎을 시로 노래한 적은 있어도 풀잎의 마음을 알기 위해 비를 맞아본 적이 있던가? 주체와 객체의 합일이니, 자연에의 동화니 하는 상투적인 어휘들을 끌어오는 게 여기서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만다. 이성을 앞세워 체계적인 논리로 무장한 과학이 감성의 영역과 어떻게 만나는지, 어떻게 철학적인 사유와 결합할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큰오색딱따구리 부부가 애지중지 키운 두 마리의 새끼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50일간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새끼가 떠나고 없는 빈 둥지를 아빠는 먹이를 물고 찾아온다. 그러나 부리에 물고 있는 먹이를 물려줄 새끼는 떠나고 없다. 아빠 새의 그 허전함을 충분히 이해하는 관찰자는 메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 눈물을 쏟고 만다.

“아빠 새가 첫째와 둘째를 어찌 키워냈는지 잘 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빠 새가 더 이상 오지 않을 때까지 미루나무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었지요.”

과학자가 시인이 되는 순간이다.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몰입하고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에 몰두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몰입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은 뜨겁게 사랑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멀게만 여겨졌던 과학과 문학의 거리가 결국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과학 상식에 속하는 일이지만,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는 물방울들이 하나하나 깨지면서 내는 소리가 모인 거라고 한다. 또 나무가 새로 잎을 피워내거나 떨어뜨릴 때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나무를 노끈으로 묶거나 필요 이상으로 밤에 불빛을 쪼이면 나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지만 고금의 시인들이 시의 훌륭한 소재로 채취해 노래해온 것이기도 하다.

봄이 더 깊어지면 나도 한 과학자의 발자국을 좇아 큰오색딱따구리의 둥지를 찾아가 보고 싶어진다. 비록 오색딱따구리는 떠났지만 거기에 그들이 남겨놓은 시의 부스러기가 좀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그때 부쩍 자란 큰오색딱따구리 새끼가 둥지를 다시 찾아와 반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

                                - 안도현 ‘3월에서 4월 사이’
지난 겨울 늦추위가 질겼다. 겨울 속 봄인지, 봄 속 겨울인지 우수 지나 경칩 오도록 영하 추위가 쉬 물러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봄이 보내는 신호를 일찌감치 감지하는 것이 혀, 미각이다.

‘오늘 나의 밥상에는/ 냉이국 한 그릇/ 풋나물무침에/ 신태(新苔)/ 미나리김치/ 투박한 보시기에 끓는 장찌개// 실보다 가는 목숨이 타고난 복록(福祿)을/ 가난한 자의 성찬(盛饌)을/ 묵도(默禱)를 드리고/ 젓가락을 잡으니/ 혀에 그득한/ 자연의 쓰고도 향깃한 것이여/ 경건한 봄의 말씀의 맛이여.’  - 박목월 ‘소찬(素饌)’

봄은 시린 발목으로 청보리밭을 밟는 촉각에서도 온다. ‘풀을 밟아라/ 들녘엔 매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정희성 ‘답청·踏靑’). 대지의 온기를 전해주는 새순들은 ‘땅 위에서/ 무수히 일어서는 촛불’(노창선 ‘땅’)이기도 하다. 봄은 절집 댓돌 위 스님의 흰 고무신에도 내려앉는다. ‘문빈정사/ 섬돌 위에/ 눈빛 맑은 스님의/ 털신 한 켤레/ 어느 날/ 새의 깃털처럼/ 하얀 고무신으로 바뀌었네’ (최윤진 ‘봄’). 다가오는 봄은 코끝 후각에도 잡힌다. ‘…비릿한 비냄새/ 겨울난 화초들이 심호흡하며/ 냄새 맡기 분주하다’(황동규 ‘봄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그러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 이수복 ‘봄비’

봄은 실비처럼 속삭이며 온다. 풀, 보리, 종달새, 뭇 생명들더러 어서 일어나라 재촉하며 온다. 싱숭생숭 처자들 가슴 들썩대며 온다. 마침내 봄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화신(花信)이다. ‘봄이 가려운가 보다// 엉킨 산수유들이/ 몸을 연신 하늘에 문대고 있다/ 노란 꽃망울이 툭툭 터져 물처럼 번진다’(정영주 ‘가슴 안쪽에 생기는 나무’). 이른 봄 세상은 꽃을 터뜨리려는 가려움증에 시달린다.
 ‘모과나무 꽃순이 나무껍질을 열고 나오려고 속에서 입술을 옴질옴질 거리는 걸 바라보다 봄이 따뜻한 부리로 톡톡 쪼며 지나간다/ 봄의 줄탁/ 금이 간 봉오리마다 좁쌀알만한 몸을 내미는 꽃들 앵두나무 자두나무 산벚나무 꽃들 몸을 비틀며 알에서 깨어 나오는 걸 바라본다/ 내일은 부활절// 시골 교회 낡은 자주색 지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저녁 햇살이 몸을 풀고 앉아 하루 종일 자기가 일한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 도종환 ‘봄의 줄탁(茁啄)’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껍질을 쪼아야 알을 깨고 나오듯, 안쪽 꽃순의 힘에 바깥 햇살의 힘이 보태져야 나무껍질을 뚫고 나올 수 있다. 무르익은 봄 햇살 속으로 꽃순들이 고개를 내밀기만 하면 일사천리 꽃세상이다. 기다리기 지루해서 그렇지 일단 상륙했다 하면 꽃은 빛보다도 빠르게 대지를 물들인다.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  - 안도현 ‘3월에서 4월 사이’

전북 장수 산서면에서 교편을 잡았던 안도현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을 곳곳을 차례대로 물들이는 꽃으로 봄을 노래했다. 임영조가 바라본 개화 행렬은 참 맹랑하고 유머러스하다.

 ‘무엇이나 오래 들면 무겁겠지요/ 앞뜰의 목련이 애써 켜든 연등을/ 간밤에 죄다 땅바닥에 던졌더군요/ 고작 사나흘 들고도 지루했던지/ 파업하듯 일제히 손을 털었더군요/ 막상 손 털고 나니 심심했던지/ 가늘고 긴 팔을 높이 뻗어서 저런!/ 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챕니다/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하느님/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지만/ 마을 온통 웃음소리 낭자합니다/ 들불 같은 소문까지 세상에 번져/ 바야흐로 낯 뜨거운 시절입니다/ 누구 짓일까, 거명해서 무엇하지만/ 맨 처음 발설한 것은 매화년이고/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덩달아/ 희희낙락 나불댄 게 아니겠어요/ 싹수 노란 민들레가 망보는 뒤꼍/ 자꾸만 수상쩍어 가보니 이런!/ 겁없이 멋대로 발랑 까진 10대들/ 냉이 꽃다지 제비꽃 환하더군요/ 몰래 숨어 꼬나문 담배불처럼/ 참 발칙하고 앙증맞은 시절입니다/ 나로서는 대책없는 봄날입니다.’    - 임영조 ‘대책 없는 봄’

시인의 귀엔 남도에 봄 오는 소리, 꽃 피는 소리가 북소리로 들린다. 고수(鼓手)처럼 무겁게 앉은 지리산은 섬진강이 판소리 하듯 길게 흐르며 한 구비 틀 때마다 난타로 매화를 터뜨리고 동백을 떨어뜨린다.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 발원의 시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 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 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 문인수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지는 동백 신호탄 삼아 지리산 자락 섬진강변엔 줄 폭죽 터지듯 봄꽃이 연달아 터진다. 광양 백매(白梅) 청매(靑梅)가 보름 넘게 향기를 내뿜으면 구례 산수유가 샛노랗게 흐드러진다. 하동 쌍계사 십리길은 벚꽃에 덮이고 섬진강 양안(兩岸)을 달리는 17·19번 국도, 861번 지방도도 벚꽃길이 된다. 순천 선암사 무우전 옆 돌담길에 600년 고매(古梅)가 연분홍 홍매(紅梅)를 틔우면 그 기운이 백리를 날아 구례 화엄사의 진홍빛 흑매(黑梅)를 깨운다. 꽃은 마침내 서울까지 북상해 북한의 언젠가 으름장보다 훨씬 요란한 축포(祝砲) 공습을 퍼부을 것이다. 잿빛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녹색 군복의 병정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총구를 곧추세운다/ 발사!/ 소총, 기관총, 곡사포, 각종 총신과 포신에/ 붙는 불/ 지상의 나무들은 다투어 꽃들을 쏘아올린다/ 개나리, 매화, 진달래, 동백…/ 그 현란한 꽃들의 전쟁/ 적기다!/ 서울의 영공에 돌연 내습하는 한 무리의 벌떼!/ 요격하는 미사일.’   - 오세영 ‘서울은 불바다 1’

춘분 넘기고도 영하 추위가 강짜를 부렸던 재작년, 봄꽃이 사보타주라도 하듯 더디 오는 바람에 남녘 꽃축제들이 울상이었다. 겨울이 따뜻했던 작년엔 화신(花信)이 그보다 열흘이나 일찍 왔고 평년보다도 사나흘 앞섰다. 올핸 다시 꽃소식이 늦어져 예년과 비슷할 거라는 예보다. 하긴 자연의 조화를 인간이 내다보고 기다리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짓일지 모른다. 시절이 더디 온다 안달하고 쉬 간다 탄식한들 무슨 소용일까. 유리창 묵은 때 말갛게 닦아내듯 봄을 맞는 마음부터 가다듬을 일이다. 그러면 어느 사이 싱그런 봄 빛깔이 찾아와 삶을 축복해 줄 것이다.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 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 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빛도 닦으리.’    - 정완영 ‘초봄’

[새롭게 밝혀진 난중일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신… 그리움에 눈물이 떨어져
하늘과 땅 사이에 원균처럼 망령된 이가 없을 것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과 관련된 기존 기록들을 뽑아 필사한 17세기의 문서 ‘충무공유사(忠武公遺事·재조번방지초)’는 지금까지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담고 있다. ‘충무공유사’의 탈초(脫草·초서로 된 글씨를 풀어 씀)와 완역 작업을 수행한 노승석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대우교수의 번역을 토대로, 새로 발굴된 기록들 중 주요 내용들을 뽑아 소개한다. /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1595년(을미년) 정월 10일

순천 부사(=이순신의 부하 장수인 권준·權俊)도 공사(公私)간의 인사를 하려는 것을 잠시 보류했다가 조금 뒤에 불러들였다. 이들과 함께 좌석에 앉아 술을 권할 때 말이 매우 잔혹하고 참담했다.

順天公私禮, 姑留之, 而有頃招入, 同坐饋酒之際, 言辭極兇慘.

(이번에 발굴된 일기에는 부하 장수인 권준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이순신의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기존의 ‘난중일기’에선 찾기 어려운 부분이다. 당시는 전선이 교착 상태인 채 강화 회담이 전개되고 있었고,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은 군량 확보에 노력하면서 다시 닥칠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정월 12일

삼경(자정쯤)에 꿈을 꾸니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오셔서 분부하시기를 “13일에 회( ·이순신의 맏아들)를 초례(醮禮·전통 혼례)하여 장가보내는데 날이 맞지 않는 것 같구나. 비록 4일 뒤에 보내도 무방하다”고 하셨다. 이에 완전히 평소와도 같은 모습이어서 이를 생각하며 홀로 앉았으니, 그리움에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

三更夢先君來敎, “十三日送醮,  往似有不合. 雖四日送之無妨”爲敎. 完如平日, 懷想獨坐, 戀淚難禁也.

(돌아간 아버지 이정·李貞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기존 ‘난중일기’에는 전쟁 중에도 수시로 사자를 보내 어머니의 안부를 대신 묻게 하는 등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을 적은 부분이 많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쓴 부분은 거의 없었다.)

  

▲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 월전 장우성 화백의 1953년 작품이다. /조선일보 DB

●정월 15일

우후(虞候·수군절도사 밑에 두었던 무관직) 이몽구와 여필이 왔다. 이 편에 “이천주(李天柱)씨가 뜻하지 않게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경탄함을 이기지 못했다. 천리 밖의 땅에 던져진 사람이 만나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죽으니 더욱 애통과 슬픔이 심했다.

虞候李夢龜及汝弼來, 聞李天柱氏, 不意暴逝云. 不勝驚嘆, 千里投人, 不見而奄逝, 尤極痛悼.

(‘이천주’란 인물은 이순신의 지인으로 추정된다. 전란 중 벗을 잃은 애절한 심정을 표현했다.)

 

●정월 27일

오늘이 바로 (맏아들) 회( )가 혼례를 올리는 날이니, 걱정하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장흥 부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그의 서울에 있는 첩들을 자기의 관부(官府)에 거느리고 왔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乃 奠雁之日, 心慮如何? 長興佩酒來, 其京妾亦率來于其府云, 尤可駭也.

(전란 중에 혼례를 올리는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당시 관원들의 행태를 기록했다.)


●2월 9일

꿈을 꾸니 서남방 사이에 붉고 푸른 용이 한 쪽에 걸렸는데, 그 형상이 굴곡져서 내가 호로 보다가 이를 가리키며 남들도 보게 했지만, 남들은 볼 수 없었다. 머리를 돌린 사이에 벽 사이로 들어와 그림 용이 돼 있었고, 내가 한참 동안 어루만지며 완상하는데 그 빛과 형상이 움직이니 특이하고 웅장하다 할 만 했다.

夢西南間, 赤靑龍掛在一方, 其形屈曲, 余獨觀之, 指而使人見之, 人不能見. 回首之間 來入壁間, 因爲畵龍, 吾撫玩移時, 其色形動搖, 可謂奇偉.


●3월 24일

(전라)우수사(右水使=이억기)는 앉을 대청을 개수(改修)해 세우는 것을 나쁘게 여기고 헛소리를 많이 하며 보고해 왔다. 매우 놀랍다.

右水使以坐廳改立爲惡, 多費辭報來, 可愕可愕.

(‘우수사’는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이던 시절 함께 해전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고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했다. 새로 발굴된 부분에서 이순신은 세 번에 걸쳐 이억기에 대해 못마땅한 심정을 적었는데, 역시 기존 ‘난중일기’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이다.)


●4월 30일

아침에 원수(元帥=도원수 권율·權慄)의 계본(啓本·임금에게 제출하는 문서 양식)과 기(奇)·이(李)씨 등 두 사람의 공초(供招·죄인의 진술)한 초안을 보니 원수가 근거 없이 망령되게 고한 일들이 매우 많았다. 반드시 실수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원수의 지위에 둘 수 있는 것인가. 괴이하다.

朝見元帥啓本及奇李兩人供草, 則元師多有無根妄啓之事, 必有失宜之責. 如是而可置元帥之任乎! 可怪.

(무척 당혹스런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전체를 통솔했던 도원수는 다름아닌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장군이었다. 그는 당시 이순신 장군의 상관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각각 육군과 수군의 총사령관이었던 권율 장군과 이순신 장군 사이에 이와 같은 갈등이 있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순신의 일기가 대단히 솔직한 기록이었음을 알 수 있다.)


●7월 1일

내일은 아버지의 생신인데, 슬픔과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明日乃父親辰日, 悲戀懷想, 不覺涕下.


●8월 22일

강을 건너 주인집에 갔다가 그 길로 체찰사(體察使)의 하처(下處·임시 숙소)로 가니 먼저 사천현에 와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맞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우습다.

渡江入主人家, 因到體察下處, 則以先到泗川縣宿, 而不爲迎命爲言, 可笑.

(기존 ‘난중일기’에는 이 내용의 앞부분에 ‘오후에 진주 남강가에 이르니 체찰사가 이미 진주에 들어왔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체찰사는 비상시에 임시로 지방에 파견해 군대를 지휘 통솔하는 역할을 맡은 관직이다. 고위 관료의 행태를 비웃는 자세가 보인다.)


●10월 3일

오늘은 (맏아들) 회( )의 생일이다. 그래서 술과 음식을 갖춰 주도록 예방(禮房)에 당부했다.

乃 生日, 故酒食備給事, 言及禮房.

●10월 21일

정사립(鄭思立·이순신의 비장)을 통해 들으니 “경상수백(慶尙水伯=권준)이 모함하는 말을 거짓으로 꾸미는데 내키는 대로 문서를 작성하고, 문서로 적게 되면 오로지 알려지지 않게 했다”고 했다. 매우 놀랍다. 권 수사의 사람됨이 어찌하여 그처럼 거짓되고 망령된 것인가?

因思立, 聞“慶水伯飾誣陷辭. 倚指成文之, 而文之則專不聞”之云. 可駭可駭! 權水之爲人, 何如是誣妄耶?


●10월 28일

초경(밤 8시쯤)에 거센 바람과 폭풍우가 크게 일었다. 이경(10시쯤)에 우레가 치고 비가 와서 여름철과 같으니 변괴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初更狂風驟雨大作, 二更雷雨有同夏日, 變怪至此.


●11월 1일

조정에서 보낸 편지와 원흉(元兇·경상우수사 원균을 매우 낮춰 표현한 것)이 보낸 답장이 지극히 흉악하고 거짓되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 기만하는 말들이 무엇으로도 형상하기 어려우니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이 원균(元均)처럼 흉패하고 망령된 이가 없을 것이다.

朝報及元兇緘答則極爲兇譎, 口不可道. 欺罔之辭, 有難形狀. 天地間無有如此元之兇妄.

(이순신·원균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았음 기존 ‘난중일기’에서도 드러나지만, 이처럼 커다란 혐오감을 보인 대목은 없었다.)

 

●11월 4일

우리 나라의 병사들이 쇠잔하고 피폐한데 이를 어찌하랴.

我國兵殘力疲, 奈如之何?

 

●1598년(무술년) 7월 24일

복병장(伏兵將) 녹도 만호 송여종(宋汝悰)이 전선(戰船) 8척을 거두다가 적선 11척을 절이도(折爾島)에서 만나 6척을 통째로 포획하고 적군의 머리 69급(級)을 벴으며 용기를 발휘해 진영에 돌아왔다.

伏兵將鹿島萬戶宋汝悰, 斂戰船八隻, 遇賊舡十一隻于折爾島, 全捕六隻, 斬首六十九級, 賈勇還陣.

(전쟁 막바지에 조선 수군이 거둔 승리인 ‘절이도 해전’에 대한 기록이다. 절이도는 지금의 전남 거금도다. 이 승전은 지금까지 ‘선조실록’과 이순신의 조카 이분의 ‘행록’ 등에 단편적으로 등장했을 뿐 정작 ‘난중일기’에는 그 내용이 없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마추픽추

24일(현지 시간) 페루 쿠스코의 마추픽추 잉카성의 모습. 페루 관광 통상부에 따르면 마추피추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이 됐기 때문에 올해 예상 관광객 수가 2백만명 정도될것이라고 했다. ⓒ로이터

기분좋은 칭찬기술7가지

칭찬은 분명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최고의 기술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은 물론 나의 기분까지도  좋게 만드는
기분좋은 휘파람이다. 이 멋진 휘파람은 사람과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모을 수 있는 신비의 주문으로 신께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가슴속에 넣어두셨으나
이것을 꺼내어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없다.
신이 주신 큰 선물 칭찬의 7가지 요령을 이야기하자
 

 

 1,웃으며 하라!

칭찬 내용도 중요하지만 나의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만약 무표정한 얼굴과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칭찬을 한다면 마치 놀리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될것이다.
웃음과칭찬은 가장 훌륭한 파트너이다
 

2구체적으로 하라

우리가 칭찬을 하다보면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예를 들면 "눈이 이쁘세요"
"아름다우시네요!"라고 칭찬한다.
물론 안하는것보다는 낫지만
감동을 동반한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칭찬에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자!
"눈동자가 정말 크시네요! 연예인 누구처럼 청순해보이세요^^"
"아름다운 얼굴과 오늘 입으신 패션과 너무 잘어울리시네요~
얼굴만 이쁘신게 아니라 패션감각도 뛰어나시네요^^
라고 칭찬한다면 전자보다 훨씬 큰 효과를 기대할 수있다.
우리가 옷을 고를때 세련된 옷을 고르는 것처럼
칭찬또한 세련된 칭찬을 원한다.
세련된 칭찬의 시작이 구체적인 칭찬이다
 

3 공개적으로 하라!

"비난은 비공개적으로 칭찬은 공개적으로 하라!"라는 말이 있다
칭찬은 많은 사람앞에서 할 수록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사무실이나 매장에서 이 공개적인 칭찬을 시상식이라든지
이벤트와 함께한다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것이다.
공개적으로 하라!
칭찬이 행복의 스피커를 타고 더욱 더 멀리 퍼질것이다.
 

 

 4.상황에 맞게 하라!

아무리 좋은 칭찬도 때와 장소와 상대방에 맞추어 하지 않는다면
배부른 상태의 진수성찬처럼  오히려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예를들면 눈이 작은 사람에게
 "어머! 눈이 참 시원하게 생기셨어요^^"라고
말하자 그 사람이 죽일듯이"야! 너 나한테 시원하게 맞아볼래?
내가 니 척추뼈번호 재 배열 해줄까?"라며 퍼붓는다
칭찬에는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레이더가 반드시 필요하다
 
 

 
5스킨쉽을 사용하라!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어머니의 따뜻한 스킨쉽에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칭찬할때 스킨쉽이 더해진다면
그 효과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물론 과도한 스킨쉽 특히 이성간에 무리한 스킨쉽은
불쾌감을 심어 줄 수 있지만

적절한 스킨쉽은 패션을 빛내는 악세사리처럼

나의 칭찬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6 자신있게 하라!

대부분 칭찬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안좋은 반응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부산 미용실에 나이는 30대이구 외모는 말그대로
아저씨처럼 생긴 친구가 20대여성손님이
계산을 끝내고 나가려고 하자
"손님 지금 나가시면 햇님이 부끄러워 도망갈 것 같아요"라고
능그럽게 이야기한다. 옆에 직원들은 인상을 구기며
닭살을 긁기 시작하지만
손님은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나간다
두려워 말자! 진심으로 하는 칭찬은 반드시 효과가 있다.
자신있게 멋진 칭찬을 선물하라!
더욱 더 멋있는 선물로 돌아올 것이다
 

 

7 칭찬도 학문이다. 끊임없이 연습하라!

일본의 한 은행장은 자신의 직접 만든 칭찬360가지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암기하게 해서
고객에게 사용하게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위기에 처했던 은행이
1년만에 우량은행으로 재 탄생하게 되었다.
칭찬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연습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어단어를 가장 쉽게 외우는 방법은 연습뿐이다
칭찬도 오늘 부터 아니 지금 부터 연습하고 실행하자!
훈련된 칭찬은 성공과행복을 잡을 수 있는 튼튼한 올가미이다
 

출처 : [직접 서술] 직접 서술

희귀 분홍동백나무

분홍색 희귀 동백나무(사진) 군락지가 남해안 섬에서 발견됐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14일 경남 통영시 욕지면 우도에서 분홍색과 흰색, 붉은색이 어울려 있는 동백나무 군락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들 동백나무 군락은 키 5~7m, 수령 40년 전후로 추정되며 분홍색과 흰색 꽃이 각 3그루, 붉은색 꽃이 22그루다.

동백꽃은 보통 붉은색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동안 흰 동백의 경우에는 거문도 울릉도 등지에서 드물게 발견되기도 했다. 분홍 동백은 1994년 경남 거제시 남부면 민가에서 1그루가 발견된 후 자연군락지 형태로는 처음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우도의 분홍 동백은 흰 동백과 붉은 동백이 자연 교배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며 “군락지 보호를 위해 문화재청과 천연기념물 지정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사종(類似種)

 

뜰동백(var. hortensis MAK.) : 꽃잎이 거의 수평으로 퍼진다.

흰동백(for. albipetala H. CHANG.) : 백색 꽃이 핀다.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 나무라고 하는 것은 원래 그 이름이 아카시 나무이다.

영어로는 False Acacia라고 하는데, "아카시"라고 불러야 할 이름이

아카시아라고 불리워 지게된 것은 일제 시대에 그 나무가 처음 독일에서 들어와,

독일식으로 발음하게 되어 아카시아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한다.

우리가 "아카시아"로 알고 있는 나무의 정식 명칭은 "아카시"이고,

'아카시아'라는 나무는 열대지방에서 자라고 있는 별개의 나무를 지칭한다.

 

한편 아카시 나무에 대하여서 한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 일제시대에 일본사람들이 조선땅을 망치게 하기위해 갖다가 식재했다.

2. 아카시가 자란 곳 주변 땅은 모두 황페화 한다.

 

그래서 얼마전까지 전국의 아카시 숲에서 아카시 나무들을 인위적으로 뽑아 버린 예가 많다고 한다.

이에 반해 전문가들은 아카시 나무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1. 척박한 땅을 가장 빠른 속도로 기름지게 한 것은 아카시 나무이다. 

산림녹화가 현재 수준에 오르기 전까기 우리 강산은 척박하고 헐벗었기에

아카시 나무를 식재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황폐한 이북땅을 빠른 시일내로 비옥하게 하려면 아카시 나무숲을

조성해야 한다.

 

2. 아카시 나무는 꿀 생산에 절대적이다.

헝가리 국가의 경우 다뉴브 강 주변에 심은 아카시 나무에서 꿀을 생산

일본에 까지 수출, 상당한 외화를 벌어드리고 있는 바,

헝가리의 예에서 보듯, 아카시 나무 숲을 국책사업으로 적극 권장해야 할 것이다.

 

3. 아카시 나무는 향료등, 원료는 물론, 고급 가구제, 고급 침목 재료로도

사용되고 있다.

 

4. 같은 견고성을 지닌 참나무는 식재후 80년 쯤 경과한 후에야 경제성이 있지만,

아카시나무는 식재후 30년 후면 경제성이 있다.

그러고 보니, 아카시 나무의 용도와 효용성이 돋보인다.

그간 아카시 나무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전국의 아카시 나무들이 억지로

배어저 버린 대 수난을 겪었다 한다. 

 

늦게나마 산림청장을 비롯한 입업 전문가들이 이제부터라도 아카시 나무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출처: http://blog.daum.net/sinhaw1001/10690192)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