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전하는 새소식이죠?

왜 새소식 업데이트가 없느냐고 항의(?)해오신 분도 몇 있었는데,

이제서야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Are you ready?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기르고,
Memory and desire, stirring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Dull roots with spring rain.
봄비로 메마른 뿌리를 깨우는...
 
Thomas Stearns Eliot의 황무지(The Waste Land)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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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 1999년 4월의 마지막 두 주는 예상외로 나에게 잔인하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믿는 나에게 꽤나 신선한 체험을 허락하는 호의적인 시간이었다.

일단 나의 첫 여행수필집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이 세상의 첫 빛을 보는 것으로 4월의 마지막 두 주는 시작되었다. 1년 이상 나와 씨름했던 단어들이 책이란 매체로 내 눈앞에 새롭게 나타났을 때,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익은 그 단어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치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쓴 글을 대하는 것 같은 낯설음. 몇 번인가 내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원고와 비교를 하고서야 그 표현들이, 그 문장들이 실제로 내가 직접 쓴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내 기억력은 30대의 한 평범한 남자로서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데 말이다.

책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인 "따끈한 책"을 손에 쥐게 된지 이틀만에 두 개의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게되었다. <조선일보>와 <스포츠서울>. 사실은 책이 인쇄되어 나오던 날, 모 주요 일간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인터뷰를 몇 시간 앞두고 갑자기 취소되었다. 서울역 앞에서의 사진촬영 얘기까지 나온 상태였는데 편집회의에서 뒤집혔단다. 그땐 솔직히 마음이 좀 상했다. 출판사 직원이 전해주는 말에 의하면, 기자가 한 여러 질문 중에 나의 부친에 대한 것이 있었다고 하니 아마 '그 세계'에서도 지저분한 정치 게임이 존재하나 보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글은 내가 썼는데, 기자가 나의 부친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도대체 뭐가 있을까 말이다. 내가 이상주의자인지, 현실이 잘 못된 건지, 아니면 나의 단순한 오해인지......

하지만 4월 20일 아침 <조선일보> 36면을 보고 나는 이것이 새옹지마(塞翁之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 모 일간지에서 기사를 내보냈었다면 <조선일보>에서는 그날 그리고 그 이후에도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에 대한 기사를 그처럼 크게 다루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는 그 기사를 보고 무척 기뻤다. 주위 사람들 중에는 내가 신문사에 청탁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상당 수 있나본데, 그 기사를 쓴 김한수 기자는 인터뷰하는 날 처음 만났고 그날도 나는 일부러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그의 직장 동료들(나의 선-후배들)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인터뷰 전에 출판사에서 관례적으로 신문사 문화부로 보낸 <<반더루스트.....>>를 직접 읽고(신간이 하루에 평균 100권 이상 나온다는데) 수준 있는 질문에 이어 좋은 기사를 써준 그 기자 분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스포츠서울>의 최희주 기자도 마찬가지다. 가끔 지하철을 타기 전에 스포츠신문을 사보지만, 솔직히 그 신문이 서울인지 조선인지 일간인지 구분하지 않는 나에게 관심을 갖아주고 예쁜 사진과 함께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소화한 기사를 실어주어(4월 21일)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는 마치 친구와 카페에 앉아 유쾌한 잡담을 나누듯 흥겨운 1시간 반이었다.

신문에 <<반더루스트.....>>가 소개된 이후에도 라디오/잡지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매주 한번씩 나가는 라디오 FM의 한 고정코너도 맡게 되었다. 전에는 라디오에서 종종 '아무개 씨와 전화연결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전화인터뷰나 게스트와 DJ 사이의 활기 넘치는 대화를 들으면서 마치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로 느껴졌는데, 어느 날 문득 나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걸 들었을 땐,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번 야스민의 매직! 에 걸려드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매직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순식간에 4월의 마지막 2주가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5월. 이번 달은 나에게 떠날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나의 <<반더루스트....>>가 기대 이상으로 화려한 spotlight를 받으면서 냉정한 현실 속에서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동안 나는 서서히 그 현실을 벗어날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라이트는 켜졌다 곧 다시 꺼지겠지만, 어둠 속에서라도 나의 문장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나는 떠나련다. '반더루스트'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독자라면 나의 새로운 여행의 동반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해본다.

<예술적인 것'으로의 자유로운 여행>

모든 인간들은 '역마'에 대한 꿈을 어느 정도 안고 산다.

먼지와 소음에 뒤덥인 일상을 훌훌 떨치고

아무런 구애받음도 없이 산맥과 사막과 강물을

바람처럼 떠돌고 싶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철저한 행운아다.

자신들의 삶에 충실한 세계관을 지닌 부모님들의 덕분으로

철이 들기도 전에 이미 삶이 '역마'라는 것을 체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면에 쌓인 역마에 대한 욕망을

'여행'이란 말로 대체한다.

이승에서의 질긴 삶의 끈을 쉬 놓아 버릴 수 없어

자동차를 타고 찜통의 아스팔트 길을 대여섯 시간쯤 달려

강능이나 삼척 바닷가에 에 식구들의 뭉개진 몸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잠시 이승을 벗어난 듯 후웃 한숨을 쉬는 것이다.

여기 묶인 글들은 내 삶의 일정한 부분 동안의 역마의 기록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가능한 자유롭게 아무런 가식없이

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들과 그 추억들을 아야기하고자 했다.

곽재구의 기행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작가의 말] 중에서

 

<<반더루스트....>>를 벌써 읽으시고 저에게 코멘트를 적어 보내주시거나 구두로 말씀해 주신 여러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은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냉정한 비평을 기대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는 99년의 5월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일산 문촌마을에서 최범석 -

 

p.s. 4월 24일(토요일) 밤에 있었던 '출판기념회를 빙자한' 파티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프로들의 살사 공연, 데킬라와 맥주, 끊이지 않는 웃음들,
       본능의 또 다른 표현인 춤 등....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비공식 집계로 약 120분) 그리고
       마음만이라도 그곳에 계셨던 분들 모두에게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밤이었고,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이었습니다.
       뭐 그리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너무나도 사적인 글이
       세상의 빛을 보내 되어 많은 분들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매우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하구요.
       책 출간을 떠나 그날 'in the Loop'에 오셔서 즐거운 시간 보내셨다면,
       저로서는 그 이상 더 기쁠 수는 없을 겁니다. 단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개별적으로 좀더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점이 아쉽군요. 이 점 양해 바랍니다.
       요즘 날씨가 무척이나 매력적인데, 활기찬 5월 맞으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