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학소도에서는

겨울의 긴 정적(靜寂)을 깨고 여기저기서 봄의 종소리가

다양한 꽃과 함께 울려퍼진다.

굳어 있던 대지가 기지개를 켜며 큰 하품을 하면,

대지 위에서는 가지각색의 식물들이 기다렸다는 듯

순서대로 톡 톡 예쁜 꽃을 활짝 벌린다.

벌들은 날개위의 먼지를 털어내고 맑은 봄공기를 들이마시며

이 어여쁜 새색시 꽃들을 방문한다.

학소도의 주인장도 이런 자연의 축제를 놓칠까 두려워,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현관문을 열고 앞뜰로,

텃밭으로 구경나간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시작을 놓칠세라 황급히 현관문을 따고들어와

TV 리모콘을 찾는 사람의 마음과 동작처럼,

전날밤 이후로 초록이들의 축제가 얼마나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증으로 가득찬 주인장의 마음이

조급하게 자연으로 향한다고나 할까.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는 학소도에서

사람이 축제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기온도 서서히 올라 해가 저물어도 앞뜰에 앉아서 술한잔 하며

담소를 나누기에 적당하다.

키큰 나무들은 아직 여름의 두터운 옷을 입기 전이고,

키작은 일년초, 다년초들도 아직은 얼굴만 대지위로 살짝 내밀 정도이니

앞뜰과 텃밭에서 여백의 미를 즐기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공기의 건조함은 그것을 들이마시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어느덧 먹을 만큼 자란 텃밭의 신선한 채소는

먹는 이의 혀를 즐겁게 해준다.

밤이 늦어 기온이 더 내려가면,

고기를 굽던 바비큐 통에 마른가지와 장작을 태운다.

그러면 적당한 열과 화려한 불꽃이 새로운 안주가 된다.

이런 불장난은 겨울엔 너무 추워서, 여름엔 너무 더워서 할 수 없다.

이미 지난해보다도 더 많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매화나무, 살구나무, 보리수를 보면서

일 년을 묵힌 매실주, 살구주, 보리수주를 지하실에서 꺼내와

손님들과 함께 즐긴다.

"이 밀주는 내가 꼬챙이 만한 묘목을 학소도에 심어 키운 나무에서 딴

열매로 담근 술입니다. 일명 '스마일(smile)酒'라고 하죠."

 

자연이 선물한 고마운 술기운에,

일년중 잠깐만 즐길 수 있는 봄기운에,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하며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 속에서 학소도는 기분 좋게 취한다.

학소도에는 두 그루의 <모란나무>가 산다

하나는 앞뜰, 다른 하나는 텃밭에서

몇 년 전에 심었는데, 몸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꽃도 많이도 아니고 한 나무에 세, 네 송이만 핀다

그 꽃의 화려함에 비해 참 겸손한 나무이다

가날파 보이면서도 묵묵히 자기할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집 옥상에서 바라본 텃밭의 붉은색 꽃의 <만첩홍도>와 노락색 잎의 <회화나무>

현관 앞 작은 꽃밭에서 <튤립> <황금사철> <매발톱>이 옹기종기

이웃하면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마치 조화같은 <튤립>

매년 나를 감탄시키는 <꽃사과나무>와 <라일락>의 꽃

<보리수>

수없이 많이 핀 이 꽃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 열매로 담근 술맛이 기억과 입속에서 저절로 튀어나온다

                                                      

 

<매발톱>

Aquilegia vulgaris 'Blue Barlow'

작년에 씨앗을 심어 1년만에 꽃을 보는 즐거움을 맛본다

더군다나 상상도 못했던 이렇게 예쁜 꽃을!!

다년초이니 매년 더 풍성하게 꽃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를 거르더니 <흰철쭉>이 활짝 피었다

꽃도 이름도 귀여운 <애기똥풀>

인터넷에서 찾은 몇몇 정원 & 새집 컷

학소도에서 매일 보는 새들

<딱새 숫컷>

<딱새 숫컷>

 

노랑할미새와 딱새의 ‘이웃사랑’


같은 장소에 둥지 튼 후 상대 새끼들에게도 먹이 줘

전문가들은 “특이한 사례”


서로 다른 종(種)의 새들이 같은 장소에 둥지를 튼 뒤, 남의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배설물까지 치우는 이색적인 모습이 동영상 카메라에 생생하게 잡혔다. 번식기의 새들은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자기 영역을 침범당할 경우 공격해서 내쫓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조차 “과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희한한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4월 중순, 전북 남원시 한 농가의 농기계 안에 노랑할미새와 딱새 부부가 나란히 둥지를 틀었다. 노랑할미새는 해마다 4~10월 우리나라에 머무는 철새이고, 이보다 몸집이 조금 작은 딱새는 전국에 흔한 텃새이다. 노랑할미새가 먼저 세 마리를 부화하자 며칠 뒤 딱새도 여섯 마리를 부화해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에 들어갔다.

어미 딱새가 자기 새끼를 품고 있자 수컷 딱새는 바로 옆의 노랑할미새 새끼들에게 물고 온 먹이를 입에 넣어주었다. <윗사진> 이번엔 노랑할미새의 차례. 수컷 노랑할미새가 입을 활짝 벌린 딱새 새끼들에게 먹이를 넣어주려 하고 있다. <아래 사진> 하지만 먹잇감이 너무 커 새끼 딱새들의 입에 들어가지 않자 자리를 옮겨 자기 새끼들에게 먹였다. 이 진귀한 모습은 국립공원관리공단 홍보팀의 오영상 과장이 5월 18일 하루 동안 무인카메라로 촬영했다. 딱새와 노랑할미새 가족들은 이달 초 모두 둥지를 떠났다.

[박은호 기자 unopark@chosun.com]

 

제목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출판사 : 김영사

저자 : 임준수

사진 : 류기성

 

 

[[[책 내용 중에서]]]

나무의 주인 노릇을 하지 말라

'천리포수목원은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 나무를 위한 곳이다.'
'나무를 지켜만 줄 뿐 나무의 주인 노릇을 하지 말라.'

수목원 직원들은 민 원장으로부터 이 말들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사무실 안에 직원이 두 명 이상 눈에 띄면 대번에 민 원장의 벼락이 떨어졌다.  수목원에 있는 사람은 항상 나무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수목원 직원들이 모시는 최고의 상전은 민병갈 원장이 아니라 바로 '나무'였다.


직원들은 상당수가 식물학과 조경학을 공부한 전문가인데도 그 지식과 기술을 제대로 펼치기가 어려웠다. '자연은 자연대로!'라는 민 원장의 철두철미한 나무사랑 철학 때문이었다. 한 직원은 통행로를 막는 거추장스러운 나뭇가지 하나를 잘라냈다가 현장에서 해고당하는 수모를 치렀다.


천리포수목원에서는 나무를 위한다고 몸통에 영양제주사를 놓는다거나 해충을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다른 수목원처럼 나무를 예쁘게 키우기 위해 가지를 치고 잎을 다듬고 보기에 더 좋은 곳으로 옮겨 심을 수도 없었다.  수목원 조성 초기에 계획 없이 심은 나무들이 삐죽삐죽 마구 자라고 있었지만  손 하나 대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아야 했다.

수목원이 어느 정도 터전을 잡은 1980년대 중반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힐리어 가든의 4대째 주인인 해럴드 힐리어가 찾아왔다. 그는 한참 동안 수목원을 둘러본 뒤 민 원장에게 매우 쓴 소리를 했다.

"이럴 수가! 왜 이렇게 나무들을 뒤죽박죽 심었지요? 수목원 설계가 기본적으로 잘못됐으니 전반적으로 뜯어고치는 게 좋겠습니다."
민 원장은 이 수목원 대가의 의견을 경청했으나 그 나름의 소신을 당당히 내세웠다.


"천리포수목원은 마스터플랜을 세워 조성한 곳이 아닙니다. 2만 평 정도의 자연 공원을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하다보니 18만 평 규모로 커졌지요. 전문 지식 없이 내 취향대로 나무를 심었으니 전문가가 보기엔 거슬리겠지요.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식처럼 키운 나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습니다. 그들도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잘못 뿌리를 내렸다 해도 그대로 두고 서로 어울려서 살아가게 하렵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 아니겠습니까?"

민 원장의 소신을 들은 힐리어는 더는 자신의 뜻을 앞세우지 않았다. 영국이 자랑하는 힐리어 가든의 주인인 그에게는 천리포수목원의 구조가 주먹구구처럼 보였지만, 국적까지 바구며 수목원에 헌신해 온 민 원장의 철두철미한 나무 사랑에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에게 예브게 보이려고 나무 심은 적 없어. 나무가 어떻게 자라건, 그건 나무의 마음이야. 내가 할 일은 나무들이 스스로 자라도록 돕는 일 뿐이야."


말년의 민 원장이 한 이야기처럼, 천리포수목원의 나무들은 어떤 위해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