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소도의 5월 - 전속 모델 "서울이"

  

<클레마티스>

<말발도리>

 

 

학소도에 "우연히 초대받은 사람들"

 <붉은 아카시 꽃>

   

<지중해의 종>

<창포>

 <매발톱>

 <무늬 오가피>

 <불두화>

<색색의 매발톱>

<클레마티스>

<인동꽃>

    

 <학소도의 어느 일요일 저녁>

 

<학소도 표 딸기와 내 모자>

“왜 멀쩡한 옛 한옥 부수고 새 한옥 짓나요”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한옥이 밀집한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일대의 재개발 사업 추진 절차에 하자가 있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 씨(61) 등 주민 20명의 손을 들어줬다.

1년 7개월여 만의 승소. 바돌로뮤 씨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그간의 우여곡절이 떠올랐는지 잠시 침묵하다 "속시원하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번 판결로 한옥 보존에 대한 공감대가 생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공감대가 실제 정책에 반영되느냐가 더 중요해요. 지난해 말 서울시가 한옥 밀집 지역 중 재개발이 예정된 곳은 한옥 보존을 전제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서울의 상당수 한옥 밀집 지역에 재개발 사업 허가가 난 것에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아요."

재판이 진행 중이던 6개월 전 동소문동 집에서 만났을 때(본보 2008년 12월 17일자 A12면 참조)처럼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그는 상기된 얼굴로 "한옥처럼 오래된 집을 오래된 냉장고나 텔레비전 버리듯 취급하는 곳은 한국 밖에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바돌로뮤 씨는 법원이 한옥의 보존 가치 그 자체에 주목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법원은 동소문동 재개발 구역의 노후 불량률이 법령이 정한 기준(60%)에 미치지 못한 점을 인정했지만 한옥이 보존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후하거나 불량한 건축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그래도 희망을 얻었다. 이번 소송 전에는 한옥이면 무조건 낡은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했다.

바돌로뮤 씨는 "동소문동이 '한옥은 허물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을 바꾸는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동소문동의 경우 과연 한옥이 실제로 노후한 건물인지 과학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을 시작한 이후 바돌로뮤 씨가 가장 가슴 아프게 한 것은 그의 한옥 사랑을 "돈 많은 외국인이 유유자적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그 때문에 한옥을 수리할 돈 없는 가난한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오해. 재판에 이긴 뒤 기자들이 그의 집에 몰려들었던 5일에도 집 밖에서는 재개발을 추진하는 이들이 시위를 벌이고 욕설을 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재개발 예정지에 한옥을 임차한 젊은 캐나다 친구도 부자가 아닙니다. 그곳에서 살기 위해 망치질에 손가락을 다쳐가며 직접 한옥을 보수합니다. 미국과 유럽인들은 오래된 건물을 고쳐 쓰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인들이 오래된 한옥은 무조건 지저분하다, 고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럽 선진국의 경우 작은 고택 하나도 함부로 헐지 않기 때문에 오래된 집의 난방과 배관 주방 목욕탕을 보수하는 수리업이 발달돼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건설업계가 신축 공사 수요의 부족을 걱정할 게 아니라 한옥 보수 사업을 발전시키면 한옥 보존이 개발의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외국인들이 한옥을 보고 '왜 이렇게 좋은 것을 없애려고 하냐'고 말하는 건 단지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오래된 집을 고쳐 사는 문화 때문이에요."

바돌로뮤 씨는 한옥을 보존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 광복 이후 한국의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문제를 지적했다. 짧은 시간에 첨단 도시가 형성되면서 전통 건축의 맥이 단절되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지은 100년 밖에 안 된 한옥이라도 지금은 잇기 어려운 조선시대의 귀한 건축 전통이 남아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을 없애는 일은 과거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단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한옥이 잘 남아 있다는 서울 종로구 북촌을 가보니 멀쩡한 옛 한옥을 부수고 원형과 상관없는 새 한옥을 짓고 있더군요. 새 집에 사는 것만이 행복한 건 아니지 않나요?"

윤완준기자 zeitung@donga.com

  

<구제불능의 보너>

 

<오스트리아 친구들 - 홍대앞>

 <학소도 표 앵두>

[시시각각: 노재현] 우측통행만 하면 뭐하나
“부정부패와 특권·반칙이 통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전직 대통령이 이른 아침밥 서둘러 드시고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쪽 팔리게’ 먼 서울길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착잡했다. 영국 인류학자 프레이저의 고전 『황금 가지』의 한 대목이 머리에 떠올랐다. 왕의 통치 기간을 정해 기한이 되면 왕을 죽여버리는 나라들이 있다. 인도 남부의 한 나라는 그 기간이 12년이었다. 12년마다 열리는 축제 때 임기가 끝난 왕은 칼로 자기 코·귀·입술 등을 베어내고, 마지막엔 스스로 목을 벤다. 왕의 후임자는 그 광경을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끔찍한 경고의 시간이 끝나면 백성들은 새로운 왕을 추대한다….

우리는 대개 후임자 ‘왕’의 임기가 시작되고 나서 전임자(또는 가족)의 ‘목’을 베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식 번제(燔祭)의 전통이 그저 악순환의 되풀이에 그쳤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수십 년간 번제를 거듭 치르면서 ‘특권·반칙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서서히 구현돼 왔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말을 너무 번지르르하게 내세운 탓에 미운 털이 더 박혔을 뿐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동안 잊고 있어서 그렇지 달라진 게 참 많다. 나는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 시청 앞 광장의 횡단보도를 이용할 때마다 감탄한다. 수십 년간 으레 지하도로 다녀야 했던 길이다. 수없이 다니면서도 차량 소통을 위해 지상에 건널목을 만들면 안 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요즘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웬만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있다. ‘복마전’이던 서울시가 청렴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공무원 사회도 맑아졌다. 아직 버들치·쉬리가 헤엄치는 1급수가 되지 못했을 뿐이지 2, 3급수 수준에는 올랐다고 본다.

하지만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 공공 장소에서의 행동이다. 반칙·특권이 서서히 줄면서 소수만 이용하던 공간들이 일반 국민에게 많이 반환됐다. 공유지(共有地)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그런 공간을 우리는 서로 배려하며 조화롭게 쓰고 있을까. 나는 자신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동료가 털어놓았다. “아이를 안고 건물에 들어서는데, 앞에서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이 뒤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바람에 하마터면 아이가 다칠 뻔했다”는 것이다. 그는 앞사람에게 거의 적개심까지 느꼈다고 했다.

사회학자 장원호 교수(서울시립대)도 비슷한 경험을 했나보다. 9년간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뒤 우리나라의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새치기 문제에 부닥쳤다고 한다. 인기있는 놀이기구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줄을 섰다가 순서가 되면 우르르 몰려들어 기구에 탄다. 새치기인지 아닌지 한국에선 룰이 없다. 그러나 미국 놀이공원에선 엄연한 새치기로 명문화해 제재한다. 장 교수는 “한국 사회가 극복할 문제는 규정이 애매모호하고, 규정이 있어도 엄격히 적용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임의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대한민국은 도덕적인가』·동아시아).

생물학자 가레트 하딘은 개인의 영리하고 합리적인 행동이 모두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는 상황을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공공 장소는 공유지 비극의 실험장이나 마찬가지다. 길거리를 다녀보라. 아이부터 청소년·어른까지 남들과 어깨를 부딪치는 것쯤엔 개의치도 않는다. 목소리는 왜 그리도 큰가. 결국에는 모두가 불편해지는데도 거리낌이 없다. 이건 문화 차이가 아니다. 민도(民度)의 차이, 수준 차이다.

1921년부터 88년간 지켜오던 보행자 좌측통행 규칙이 내년부터는 우측통행으로 바뀐다고 한다. 교통사고 날 위험이 줄고, 오른손에 든 물건끼리 부딪칠 염려도 없다는 것이다. 보행자 간 충돌 횟수도 7~24% 감소할 것이라고 국토해양부는 예측했다. 그러나 우측통행으로만 바뀌면 무슨 소용 있나. 남을 배려 안 하고 저마다 ‘합리적’으로 휘젓고 다니는데….

 

<삼청동에서>

 

[Dr.황세희의몸&마음]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다 [중앙일보]

무엇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걸까. 전쟁·기아·재앙·사고·질병…. 모두 ‘죽음’을 연상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음은 출생과 동시에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하지만 덤덤하게 받아들이기엔 공포스럽다. 생존본능이 죽음을 꺼리는 데다 초행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엔 막연히 거부감이 들지만 가족·이웃·친지 등 주변 사람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죽음은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온다.

피하고 싶다, 아니 최대한 잊고 싶다. 그래서 두려움을 벗어날 방도를 찾는다. 방법은 다양하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본인은 실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위험한 모험을 통해 죽음을 극복한 감격을 맛본다. 어떤 일에 광기 어린 집착을 보이면서 공포심을 떨치는 이도 있고, 때론 영원히 공포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한다.

더 많은 사람은 최대한 죽음을 멀리할 영생(永生)의 길을 꿈꾼다. 이런 일엔 현실 세계의 승자들이 앞장서 왔다.

불로초를 찾는 일은 기원전 2000년께 쓰여진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나와 있을 정도다. (당시 최고 권력자인 우르크왕 길가메시가 친구의 죽음을 본 후 영생의 비법을 찾아 떠나지만 결국엔 빈손으로 귀향한다)

종교적 신앙심·후손·물신(物神) 숭배 등도 불멸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이 중 현대인은 물신 숭배를 선호한다.

신앙심은 깊지 않으면 회의가 뒤따르기 쉽다. 후손을 통해 유전자를 남기는 일 역시 영생의 믿음을 주기엔 미흡하다.

반면 물신은 “현실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을 부정하는 수단”이라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설명처럼 눈에 보이기에 죽음의 공포를 떨치는 숭배의 대상으로 적합하다.

현대사회에서 물신은 돈이다. 필요한 물건과 쾌락·권력 등을 살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돈(혹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불멸의 환상을 제공하는 과정은 이렇게 설명된다.

예컨대 ‘1억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정해 보자.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의 시계 바늘은 목표가 달성될 미래에 고정된다. 즉 1억원을 모을 때까지 나는 죽음과 무관한 사람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이런 환상은 2억, 5억, 10억 하는 식으로 목표를 변경하면서 계속된다. 그래서 큰 부자, 작은 부자 할 것 없이 재테크 행렬에 나서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한 1년 내에 부자가 된다”는 말로 돈 벌기를 독려한다.

하지만 “돈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여전히 진실로 통용된다.

최근 한국인 평균 수명이 남자 75.1세, 여성 82.3세로 발표됐다. 현재의 의학 수준에서 보통 사람이 건강관리로 도달할 수 있는 천수는 90세 정도다. 100세인은 1000분의 1 확률인 장수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 몫이다.

의학계에선 유한한 삶을 최대한 행복하게 누리기 위해선 ‘심신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목표와 행동을 정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즉 밥도 알맞게, 운동도 체력에 맞게, 욕망도 적절히 조절하면서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이 유한하다고 느낄수록 매 순간이 더 소중해지면서 현실적인 행복을 찾기 때문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H Forum 모임>

 <Athenian School 후배들과 - 압구정동>

 

<Athenian School 후배들과 - 지난 겨울 학소도에서>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