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글 (박철화,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

최범석, 그를 떠올리면 1995년 말이거나 혹은 1996년 초, 꽤나 추웠던 파리의 겨울이 떠오른다. 그렇다. 우리는 파리에서 만났다. 여러 번 보았음에도 나의 기억은 딱 한 장면으로만 한사코 가 닿는다. 노트르담 성당 건너편 ‘셰익스피어 서점’ 2층 삐걱거리는 구석방 말이다. 한겨울에도 난방이 되지 않던 그 방에서 그는 겨울을 나고 있었다. 하바드에서 공부를 하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리를 쫓아 무작정 파리로 온 최범석, 그에게 서점의 주인 할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하바드 동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방을 내주었다. 뼛골을 스미는 냉기 때문에 쉽지 않았을 텐데도 그는 차가운 방에서 뜨거운 차로 몸을 녹이며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세느 강 너머 노트르담 성당을 건너다보는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 즐김은 반더루스트, 즉 자유를 양분으로 하고 있었다.

최범석 형을 나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지금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재직 중인 김명섭 교수였다. 김교수와 나는 파리 대학 학생기숙사에서 함께 공부한 인연으로 내가 결혼 뒤에 시내 아파트로 옮긴 뒤에도 서로 자주 오가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보스턴의 하바드 대학에서 공부하는 후배가 왔는데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김교수가 물어왔다. 유럽에서 공부를 하면서 미국의 대학은 어떨까 하고 늘 궁금해 하던 차라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명섭 교수는 당시 포항제철 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 파리에서 외교사를 공부하고 있었고, 최범석 형은 바로 그 장학재단의 후배 장학생이었다. 그가 파리로 오면서 선배인 김교수에게 연락을 한 것이고, 나와 서로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김교수가 소개함으로써 우리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 그의 인상은 혼란스러웠다. 예의를 차리는 몸짓이나 말투를 보면 영락없는 토종 한국인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낯선 면모도 적지 않았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군상을 만났지만, 전혀 새로운 유형의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친숙한 듯 하면서도 생소한 그 모습에 이끌려 십수년을 친구로 지내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따금 그 모호한 얼굴을 다시 확인하곤 한다. 그는 순수 한국인이자 동시에 세계인이다. 독일어와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고, 5대양 6대주의 곳곳을 돌아다닌 그이기에 세계인이며, 그런 세계인이기에 정말 한국인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 말을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어 ‘우리’라는 말 안에는 단일민족으로서의 동일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다. 그래서 다름을 다 걷어내고 아주 적은 공통분모만을 우리 것으로 인정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것이 한국적이며, 순수함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서는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없다. 떠나지 않은 자는 돌아올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 대한 축소지향적 집착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실제 모습과 가능성을 가늠하는 데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인일 수 있을 때 우리는 한국인이며, 진정한 한국인이라면 세계인일 수 있어야 한다.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출발하여 반세기 만에 경제규모 13위의 강소국이 된 21세기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적어도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모호하면서도 풍요로운 그 가능성의 얼굴을 최범석 형에게서 본다.

1999년 4월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왔다. 당시만 해도 ‘IMF 구제금융’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 이 땅을 짓누를 때였다.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을 보고 놀란다’고, 세계를 잘 모르는 채 ‘세계화’를 부르짖은 대가로 우리는 한껏 움츠러들어 신음하고 있었다. 1990년대 유행처럼 외국으로 쏟아져나간 반작용으로 외국의 ‘외’자도 꺼내기 쉽지 않던 때였다. 그때 파리에서 시작하여 인천항으로 귀국하는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말하다니!

하지만 불과 몇 해 지나지 않아 이 땅의 사람들은 더욱 단단히 영혼의 무장을 하고, 우리 ‘밖’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외국의 문화가 소문이 아닌 실체로 이 땅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안이 곧 밖인 세계가 열린 것이다. 비싼 수업료를 치른 덕에 비로소 우리는 지구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최범석 형이 거쳐 온 그 길을 이제 우리가 가고 있다.

여행이란 친숙한 자기를 떠나는 일이다. 거기서 우리는 낯선 얼굴을 만난다. 하지만 그 얼굴 역시 우리 자신이다. ‘타자(他者)’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따라서 떠남 없이는 나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없으며, 그런 만남이 없이는 나 자신의 변화와 성숙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나 자신인 타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떠나야만 한다.

하지만 떠남과 만남이 구호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조심스런 영혼을 이끌 매혹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최범석 형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외국에서 다 보내고도 이토록 정확하고 간결한 우리말로 아름다운 영혼의 궤적을 그려 보였다. 모국어에 대한 그 애정에 나는 감탄한다. 이 책에도 언급된 말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경계가 곧 나의 세계의 경계이다”라고 말했다. 최형의 언어에는 화려한 수사가 없다. 거기에는 오직 절실한 자유와 고독의 영혼을 담을 소박하지만 단단한 말 꾸러미만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꾸러미 안에는 뇌관이 들어 있다. 떠남에 불을 지르는 뇌관! 반더루스트, 그것은 자유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본성을 일컫는 말이다. 누구도 그 자유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물론 있다. 일상의 무게가 먼저 그 사람들을 붙들겠지만, 그것보다는 자유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익숙한 자기를 떠나서 새로운 자신인 타자를 만나기까지의 그 막막한 고독 때문에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움츠러든 동굴에서 자기를 털고 일어날 용기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 생의 떠남의 기억들, 동시에 떠나지 못했던 아픈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책을 집어든 행운의 영혼들을 한 없이 부러워한다. 우리는 떠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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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여행이 버겁다면 기차 여행은 어떠한가. <내추럴 트래블러>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인천까지 33일에 걸친 기차 여행을 담는다. 기차에서 보낸 시간만 300시간에 이르는 유라시아 횡단 여행이다. 책은 1999년 출간됐던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의 증보판인데,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한 뒤인 1990년대 중반에 20대 말을 통과하던 젊은이의 여정의 기록이다.

파리발 열차 ‘모차르트’에 몸을 맡기면서 여정을 시작한 지은이는 그 많은 도시의 기차간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얘기를 기록한다. 기차는 독일과 폴란드·핀란드를 지나 발트 삼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에 닿는다. 러시아의 광활한 시베리아와 몽골·중국을 지나 인천에 최종 도착한다. 에스토니아~핀란드, 중국 칭다오~인천까지만 배를 이용한 ‘홈 커밍’ 기차 여행이다. 프랑크푸르트, 탈린, 헬싱키, 모스크바, 네바 강…. 그 도시들의 문화를 곱씹어보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아련한 사색이 달콤쌉싸름하다.

삶이 팍팍해도 휴가철은 다가오고, 지갑이 얇아져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국외로 떠나는 걷기 여행도, 기차 여행도 그저 그림의 떡이라 서럽다면, 책을 펼쳐 그예 대리만족의 눈 호사를 누리는 것도 좋으리라. 부엔 카미노!(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버스 창 밖에 갑자기 나타났던 새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 내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다. 사랑과 여행은 분명 어떤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공통분모의 이름은 바로 모험이라는 것.”

-여행광인 이 남자,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유럽을 지나 러시아·중국·몽골을 거치며 도시의 풍광과 만난 사람들 얘기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평범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흥미로운 『내추럴 트래블러』(최범석 지음, 책세상, 404쪽, 1만4500원)에서

 

내추럴 트래블러

최범석 지음|책세상|404쪽|1만4500원

프랑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33일 동안 유럽을 지나 러시아, 몽골,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여정과 그 여행을 통한 사색을 기록한 책. 자유에 대한 상념, 인생과 세계에 대한 고민을 담은 문장들이 100여컷의 사진과 어우러진다.

문재인이 ‘정치는 NO’라는 다섯 가지 이유

[중앙일보 강민석]


6년 전 이 무렵이다. 그때도 그는 손수 차를 몰고 있었다. 봉하마을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우러 스포렉스를 몰고 올 때처럼 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변호사 얘기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문 수석은 정치할 사람이 못 된다’고 비난했습니다만.”

운전 중이라는 그에게 전화로 강 회장의 주장에 대한 입장을 물어봤다. 강 회장은 당시 386그룹과 가까웠다. 그 대표 주자 격인 안희정씨가 나라종금 사건으로 수사를 받게 되자 검찰 쪽을 담당하던 문재인 수석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정치할 사람 못 된다’는 비판에 선뜻 나온 답변이 ‘허무’하게 “저도 공감합니다”였다.

그런 문재인 변호사에게 다시 정치권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부산시장 출마를 권유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달 16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범야권 수뇌부 만찬에서다. 그 자리에서 그는 미소만 지었다고 한다. 정치권의 요구에 대한 그의 대답이 궁금해 지난달 24일 ‘법무법인 부산’으로 찾아갔다.


그의 대답은 6년 전과 똑같은 것이었다.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왜 안 하겠다는 것일까. 까마귀 노는 곳엔 못 가겠다는 것일까. 그는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 사유를 열거했다. 다섯 가지였다.

첫째 이유는 “정치를 잘할 수 있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정치 잘할 것 같은 사람들만 하는 게 정치라면 요즘 정치는 왜 저 모양일까. 어쨌든 그의 입장은 확고부동했다.

둘째 이유는 반문형이었다. “정치권에 가면 사람이 영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몇 마디 부연 설명도 했다.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갔습니다. 좋은 일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정치권에 들어가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당략에 따라 마음에 없는 말도 해야 한다지만 어떤 사람은 들어가자마자 바뀌었어요.” 사실 쟁쟁한 인사들이 정치를 바꾸겠다며 정계에 입문했다가 정작 바뀐 건 자신인 사례는 너무 많다.

셋째 이유는 현실적이었다. “정치란 게 빚입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적이 있다. “선거를 하려면 재정·조직·사람, 모든 분야에서 신세를 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그런 게 다 ‘청구서’가 돼 날아오거든요. 만나자고 하면 만나야 하고 술 마시자면 마셔야 하고.”

조금 다른 얘기지만 기자가 아는 어떤 정치인은 4년 전 돈 한 푼 없는 상태에서 당내 기초자치단체장 후보 경선에 나갔다가 6개월 만에 2억원을 빚졌다고 한다. 돈 정치가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현실은 그렇다.

넷째 대목에서 그는 노 전 대통령 얘기를 꺼냈다. “정치란 게… 허망합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게 ‘차출당했다’는 표현을 썼다. 그렇게 불려와 대통령 비서실장,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는 동안 생활비가 모자랐다고 한다. 사실 박연차 게이트로 노 전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들이 사법 처리되는 와중에도 그의 이름은 단 한 차례 언급된 적이 없다. 그렇게 지냈는데도 “도덕성은 땅에 떨어지고, 박수보다는 비판이 많았고, 노 전 대통령도 그렇게 되시고….” 정치가 허망한 이유였다.

다섯째는 결론 격이었다. “정치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그렇다. 과연 정치가 사람을 행복하게 할까. 남을 행복하게 하는 건 고사하고 정치를 하는 본인은 진짜 행복할까.

문 변호사와 면담한 직후 공교롭게 ‘시사IN’이란 매체가 부산시장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허남식 현 시장과의 대결에서만 6%포인트(문재인 33%, 허남식 39%) 뒤졌을 뿐 한나라당의 권철현 주일 대사나 서병수 의원보다 우위였다. 세 번의 가상 대결 모두 진보신당 후보가 10% 정도 지지율을 잠식한 와중에 거둔 성적표다. 진보 진영의 후보 단일화 여부에 따라 ‘문재인 효과’는 더 파괴력을 가질지 모른다.

혹시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해서 다시 전화를 해 봤다. 그의 반응은 이랬다.

“쓸데없는 일(여론조사)을 하셨습니다.”

은근히 ‘빅매치’를 기대하던 이들에게 문 변호사의 입장은 실망스러울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이렇다면 굳은 마음을 돌리려 하기보단 정치문화를 먼저 바꾸는 게 순서일지 모른다.

진영 논리에 함몰되지 않아도 되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빚지지 않아도 되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 그렇다면 그 역시 “잘해 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가 그렇게 바뀔 가능성은? 비정규직 처리 건 하나만 보면 0%에 가까워 보인다.

강민석 기자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학소도에 <검은 접시꽃> 이 피었다

작년 봄인가 텃밭에 씨앗을 몇 개 심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얼마전 나를 깜짝 놀라게 한 붉은색과 흰색의 겹 <접시꽃> - 마치 조화같다

<동자꽃>

 <담쟁이덩굴>이 담벼락에 이어 펜스까지 덥고 있네

 <능소화>와 <해바라기>가 피기 시작하는 걸 보니 진짜 여름인가 보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