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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릭 러핀(Rick Ruffin)·프리랜서 작가

나는 한국에서 13년 이상 살았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약간의 진전은 있었다. 그런 변화 중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진짜 긍정적일까.

수퍼 하이웨이의 도래(到來)로, 여행 시간이 상당히 단축됐다. 자동차 판매가 늘어나는 '긍정적인' 피드백 고리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더 많은 교통 혼잡으로 이어졌다. 인터넷 접속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됐다. 오히려 시간과 생산성 낭비의 문제, 인터넷 중독의 문제도 생겼다. 한국 영화감독들은 저예산의 성공 스토리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김연아·박태환·장미란·박지성 등과 같은 한국 선수들은 스포츠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모든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에도, 한국은 여전히 상당 부분 역사의 십자선상에 갇혀 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고, 침체의 신호들은 많다.

지리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도 그렇다. 남북한 간의 끝없는 군사·이념적 갈등은 계속된다. 이전보다 더 위험한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6자 회담도 풀리지 않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미군이 필요한 실정이다. 냉전의 추한 얼굴은 사라지지 않을 기세다. 체스의 고수라면 '교착상태(stalemate)'라고 말할 법하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어떤가. 한국 경제는 10년 이상 세계 지수에서 '13번째 규모'라는 데에 묶여 있다. 한국인들의 연간 평균 수입도 나아질 조짐이 없다. 외국 투자펀드 회사인 론스타가 빚은 금융 뉴스는 사라지지 않고,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외환은행의 미래는 불분명하다.

교육 면에서 한국인들은 계속 토익과 토플, 텝스라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면서, 시험을 치르는 데에만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 시험 결과를 보면 전체 한국인들의 영어 능력이 나아지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세계에서 한국 학생들은 여전히 비판적 사고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의 질을 개선하려는 희망에서 수많은 돈이 투자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 대학들의 평가가 크게 향상됐는가.

불만에 쌓인 한국인들은 계속 서울시청을 포위하고, 뭐든지 다 항의한다. 한국인들은 서구(the West)를 더 닮을 것인지, 덜 닮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 같다. 반대파들은 이명박 정부가 실제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비판도 쏟아놓는다.

어떻게 이 교착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분명히 전면적인 재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인들은 융통성을 갖춰야 한다. 한 외국 칼럼니스트가 말했듯이,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고집스러운" 사람들이다. 한국인들은 서구나 일본을 벤치 마킹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일궈나가야 한다. 한국은 이 작고 인구가 조밀하고 자원은 없고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에 가장 잘 맞는 지속가능한 경제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의사소통을 더 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자신의 뜻을 잘 전달하지 못한다. 여기엔 많은 이유가 있다.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유교의 영향이라고 할 만한 요인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한국인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어로 말하든 한국어로 말하든 듣지 않는다. '문화적 장벽', '언어 장벽'을 자신들이 의사소통할 수 없는 이유로 든다. 그러나 그건 핑계다.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어떤 것이든 모두 버려야 한다. 발전하려면 서구를 닮아야 한다는 선입관도 버려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은 들을 필요가 있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디를 가든 온갖 종류의 시계들이 도처에 걸려 있었다. (상징적 의미로)그 '시계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2009년이고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나는 말하고 싶다. 그 모든 시계들의 시각을 정확히 일치시킬 수 없다면, 그걸 가지고 있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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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한국인의 성격과 운명에 대하여

황상민·연세대 심리학 교수

선진국 문턱에서 10년이나 제자리걸음하는이유가 무엇인가
외국인의 눈으로만 우리를 평가한다면 여전히 미래가 없다

몇 사람 모였을 때, 거창하게 늘어놓았던 시국 한탄이나 대통령 욕도 시들해지면, 사람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이럴 때, 우아하게 관심을 끄는 소재가 있다. 용하다는 점쟁이, 또는 운명 철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신이라고 핀잔이 나올 것 같지만 놀랍게도 학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관심을 표현한다. "올해 내 운세가 좋을까?"와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운명을 안다는 것, 미래를 알아맞히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며, 누가 그런 '신통방통'한 '영발(신기)'을 발휘하는지 몇 가지 사례로 수다를 떠는 것이다. 누구나 솔깃해하면서 친구나 선후배 누군가의 경험도 풀어 놓게 된다.

삶이 답답하고 풀리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아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믿을 때, 사람들은 용한 분들을 찾는다. 그렇다면 그런 분들은 정말 신기한 '영발'로 답답한 마음을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일까? 아니다. 놀라운 일은 '영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답답해하는 바로 그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비밀의 답은 '너 자신을 알라'는 말 속에 있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것에 견주어 그 사람의 미래를 설명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려요." 이런 사람의 성격을 잘 살펴보면 하는 일마다 안 풀리게 되어 있다. 쉽게 싫증을 내고, 한 가지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어렵다. 이런 성격이라면 잘 풀릴 수가 없다. 뭐든지 간에 제대로 되려면 일정한 시간이 걸리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복권 당첨과 같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 생겨나면, 그것은 보통 나에게 불행이 되기 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한다면, 먼저 자신의 성격을 잘 파악해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그리스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 쓰인 경구였다. 이 신전에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나 중요한 일에 대한 신의 계시를 받았다. 그런데 그 신의 계시는 모호한 말 투성이였다. 명확하지 않은 계시의 의미를 파악하여 미래를 알 수 있는 비법은 바로 '자신을 아는 것'이었다. 어떻게 자신을 아는 것이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일을 알게 하는 것일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그것은 바로 나의 성격에 대한 파악이다. 점쟁이가 아무도 모를 비밀을 알거나 족집게처럼 맞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앞에 있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자신을 보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던지는 이야기들이 더 자신을 잘 나타내고 또 맞는다고 믿으려는 심리가 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더욱 그러하다.

바둑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 더 판을 잘 보듯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잘 몰라도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다. 내가 볼 수 없는 나에 대한 단서를 다른 사람이 더 잘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기한 현상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 각자는 너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가 어떻다'뿐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 너무나 많은 나의 모습이다.

'자신을 아는' 것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성격 유형' 또는 '성격 프로파일'이다. 성격을 알면 현재 하는 일이 잘될지, 앞으로 하는 일이 어떻게 될지, 어떤 어려움을 느낄 수 있을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사주명리학'을 통계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것이 성격에 관한 다양한 단서로 설명하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성격은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각자의 삶을 구체적으로 만든다. 미래 삶의 나침반은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 사회의 생존 법칙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나? 남 눈치도 봐야지'이다. '눈치코치도 없이'라는 말이 성격의 한 부분처럼 언급된다. 그러나 자신을 알지 못한 채 주위만 살피게 되면 어두운 미래만 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도, 내가 어떤지를 알 수 없다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살아가는 이유'가 더 불분명해진다. '경제'로 포장되는 악착같은 '돈 벌기'나 '디자인'으로 꾸며지는 보여주는 '쇼'만 한다.

국가 브랜드가 아무리 중요해도, 외국인이 생각하는 한국, 외국인이 보는 대한민국만을 이야기하면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남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안타까운 사람이 된다. 여전히 미래가 없다. 선진국 문턱에서 10년 이상이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이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다른 나라보다 잘한다고 선전하지만, 미래가 불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미래에 대한 아무런 통찰을 발휘할 수 없다. '나를 아는 것'이 만사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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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and Af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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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옛사진들 *

Winter 1995, Shakespeare & Company

빠리의 셰익스피어 서점 -- 사진 중앙에 앉아계신 분이 주인장 George Whitman 할아버지

나머지는 (나를 포함해) 가짜와 진짜 예술가들이 뒤섞여있다

서점 4층 아파트 복도--

                                 보스턴에서 짊어지고 간 노트북(거의 세계 최초 모델?)과 프린터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다

빠리에서 친하게 지내던 다국적 친구들

서점에서 그리 멀리 않았던 빠리의 룩셈부르 공원

대학 졸업할 때쯤?? 설날 어머니와 함께

미국 플로리다주 키웨스트(Key West)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

아마도 1982년? 독일을 방문하신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 --

한복을 입으신 어머니, 제일 왼쪽에 양복을 입으신 아버지 그리고 나비넥타이를 맨 나

40대 후반의 우리 부모님 -- 80년대 초 독일 우리집

하버드 졸업식날 어머니와 함께 찰스강변에서

신혼 때의 우리 부모님 -- 지금의 학소도 뜰에서

옛친구 Carmen과 함께 -- 그녀의 고향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오른손에 쥐고 있는 시가cigar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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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때 사랑에 빠졌던 미 동부 캠브리지 시에 있는 "윅스 다리(Weeks Bridge)"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메인 캠퍼스를 이어주는 찰스강 위의 아름다운 다리....

바로 위의 사진은 내가 살던 아파트 17층에서 창밖으로 찍은 사진이다

John W. Weeks Bridge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The John W. Weeks Bridge, usually called the Weeks Footbridge (or simply Weeks Bridge), is a pedestrian bridge over the Charles River connecting Cambridge, Massachusetts with the Allston section of Boston. John W. Weeks was a longtime U.S. Representative, and later Senator, from Massachusetts, as well as Secretary of War in the Harding and Coolidge administrations.

Weeks Bridge was opened in 1927 to carry pedestrian traffic between the Harvard Business School's newly-built Allston campus and the Business School's former home, Harvard's traditional campus in Cambridge. Its concrete underbelly conceals tentacles of the University's steam, electrical, and communications networks.[3]

The bridge is a popular vantage point from which to enjoy the Head of the Charles Regatta. An abrupt bend in the river prompts most boats to crowd through the bridge's center span, and collisions have occurred when coxswains cannot make themselves heard above the cheering of the crowd.[4]

Jump to: navigation, search

John W. Weeks Bridge is located in Massachuset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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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 필요 없어, TV가 밀어주면 돼

송혜진 기자 enavel@chosun.com

1시간만에 뚝딱 만든 '무한도전' 노래들 대박 행진

"원더걸스 '텔미' 음반이 4만8000장 팔렸는데, '무한도전' 음반이 3만장 팔렸다는 건 사실 믿기 힘드네요."

기현상(奇現象). 어떤 이들은 "비정상"이라고도 한다. MBC TV 오락프로그램 '무한도전' 팀이 지난 11일 방송에서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란 이름으로 발표한 노래 8곡이 음원차트를 휩쓴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MBC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MBC티숍'에서 주문받은 앨범 수는 3만장. 16일 온라인음원사이트 '벅스뮤직' 실시간 다운로드 순위를 살펴봐도 놀랍다. 10위 안에 든 이들 노래는 무려 6곡이다. 음원사이트 '도시락' '멜론' 등에선 한때 실시간 음원 차트 1위부터 8위가 모두 무한도전 팀 노래로 채워지는 '이변'을 빚기도 했다.

11일 방송한 MBC TV‘ 무한도전’의‘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 이날 유재석·정준하 등이 가수들과 함께 부른 노래 8곡이 음원차트를 장악했다./MBC 제공

1위를 달리고 있는 노래는 '냉면'. 박명수제시카(소녀시대)가 함께 불렀다. 가사는 이런 식이다. '널 보면 너무나 차디차 몸이 떨려 냉면, 질겨도 너무 질겨, 냉면….'

정준하·윤종신·애프터스쿨이 '애프터쉐이빙'이란 팀 이름으로 부르는 노래 '영계백숙'은 '영계백숙 워어어어 그의 튼튼한 다리를 믿어 그의 거친 피부를 믿어 거만하게 꼬은 다리를 믿어 속이 꽉 찬 그의 배를 믿어 그 누구보다 진국이라네' 같은 내용으로 채워졌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이 앨범의 성공을 보면서 "허탈하다"는 입장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강태규씨는 "TV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 연달아 홍보해주고, 포털에서 며칠 동안 끊임없이 인기검색어로 올려만 주면 앨범 하나 히트시키는 건 일도 아니구나 싶다"며 "차곡차곡 단단하게 음악을 만들고 싶어하는 음악 관계자들에게 이건 일종의 '쓰나미' 같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 음악 관계자는 "음반의 흥행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건 얼마나 공들여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인기 있는 연예 프로그램에 노출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효리·원투 등의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 이트라이브(E-TRIBE)는 그러나 "인기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가수들을 적극 영입하고, 그들에게 맞는 가볍고 경쾌한 노래를 효과적으로 만든 결과"라며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이 원하는 코드를 적절하게 취합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무한도전 팀과 가수들이 각 곡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1시간. 노래 '냉면'은 작곡·작사하는 데 다 합쳐 30분, 녹음엔 1시간30분이 걸렸다. 편곡엔 따로 이틀이 걸렸다. 총 앨범 전체 제작기간은 모두 합쳐도 열흘이 안 되는 셈이다. 김동률·윤상 같은 가수들이 음반 하나를 만들 때 걸리는 기간은 2~3개월이다. 무한도전 음반, 씁쓸하게 '효율적'인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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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가의 오랜 벗, 황의만 변리사

“1931년 에디슨의 장례식날 밤 10시, 미국 전역의 가로등이 2분 동안 꺼졌습니다. 전구를 개발한 위대한 발명가의 죽음을 애도한 것이죠. 우리나라에도 이런 발명가, 이런 발명 문화가 피어나길 기대합니다.”

지난 30여 년간 특허와 상표 등록을 천직으로 삼아온 만성국제특허법률사무소 황의만 대표변리사(63)는 업계의 입지전적 인물. 경기도 파주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초등학교 때 어머니마저 여읜 황씨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꿋꿋이 공부해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79년 변리사가 돼 국제변리사연맹 한국협회장을 역임했다.

◆발명이야기

황씨는 발명이야기를 좋아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발명이야기는 그야말로 휴먼 드라마입니다. 아주 아름답죠.” 그가 먼저 꺼낸 이야기는 삼각팬티 발명 에피소드. 1952년 50대의 일본 할머니 사쿠라이가 애지중지하는 손자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긴 반바지 같은 팬티 밖에 없어 손자가 불편해했거든요. 손자를 사랑한 덕에 할머니는 억만장자가 됐어요.” 이어 종이컵 이야기가 나왔다. “1907년 하버드 대학 초년생 휴그 무어가 생수 자판기를 만든 형을 위해 발명한 거예요. 당시 자판기는 비치된 유리잔에 따라 마셔야 해서 잘 깨지고 비위생적이었죠. 결국 망해가던 형의 자판기 사업도 살렸어요. 형제애가 백만장자를 만들었죠.”

황씨는 청바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며 말을 이었다. “청바지는 193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천막 장사를 하던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발명품이에요.” 녹색으로 염색해야 할 군납용 천막을 푸른색으로 잘못해 엄청난 빚을 지게 된 스트라우스. 어느 날 양복바지를 꿰매고 있는 광부의 모습을 보고 질긴 작업복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창고에 쌓인 푸른 천막 천을 바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실수해도 정신만 차리면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죠. 사연 없는 발명은 없습니다. 발명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발명가의 적(敵)은 변리사?

고생 끝에 발명품을 만들어 찾아온 발명가들을 대하다 보면 종종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진다. 일부 개인 발명가 중엔 자신의 발명품이 가장 획기적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혹시 변리사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 먼저 특허 등록을 해버리지 않을까?’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다는 것. 그럴 때마다 황씨는 “본인 발명에나 더 매진하시오”라고 일갈(一喝)한다고 한다.

황씨는 “변리사는 발명가의 특허 획득을 위해 가장 힘쓰는 사람”이라며 “보안 유지는 변리사의 가장 기초적인 윤리사항”임을 강조했다. 발명가들의 작품은 도면 설명이나 청구 범위 등을 상세히 기재한 명세서가 있어야 특허의 기초 요건을 갖출 수 있다. 발명가 혼자 특허 절차를 밟는 경우가 많이 늘었지만, 서류상의 흠결 때문에 상대로부터 교묘하게 권리침해를 받는 사례 역시 많아 안타깝다고 한다.

발명품이 유망해 보일 때 일부 법무법인에서 발명가에게 동업을 제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허로 등록되고 나면 발명가에게 한국발명진흥회를 찾아가라고 권합니다. 실용화에 따른 장점이 크면 자금을 지원해줍니다. 가장 공신력 있고 분쟁 가능성이 낮은 곳이죠.”

◆회사의 발명인가, 개인의 발명인가?

회사에서 사원이 발명에 성공했을 때 이 특허는 회사의 것인가, 사원의 것인가? 수년 전 삼성전자 휴대폰 ‘애니콜’의 문자 입력 방식인 ‘천지인’이 개발된 후 이를 발명한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 사건이 있었다. 결국 회사 측이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은 직무 관련 발명에 대한 관심과 논란을 불러왔다.

황씨는 직원의 발명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는 직무발명보상제도의 정착을 위해 이미 90년대 초부터 당시 차수명 특허청장과 전국을 누볐다. 국제 특허 및 상표 등록 업무 차 해외에 자주 다니면서, 부존자원이 부족한 조국의 살 길은 오로지 기술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 “선진국은 직무발명보상제도가 잘 확립돼 있어 직원들의 동기 유발이 잘 됩니다. 1500억 달러에 이르는 기술 무역 수익의 90%를 미국, EU, 일본이 독식하고 있죠. 작년 우리나라가 사들인 외국기술이 수출한 우리 기술보다 29억 달러(약 3조 7천억원)나 많습니다. OECD 국가 중 늘 최하위권이죠. 기술이 부족하고 지적재산 관리가 부족해 해외에 거액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근 20년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왔지만 해가 갈수록 적자액이 커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논쟁

인터뷰 중 키 185cm의 훤칠한 사내가 들어왔다. 장남 황성필(30) 변리사였다. 그의 주 업무 분야는 콘텐츠 비즈니스(contents business). “가령 과거엔 ‘조선일보’라는 종이신문만 존재했다면 요샌 ‘조선닷컴’, 동영상, 블로그, 웹진, 모바일 등 다양한 콘텐츠가 구축됐죠. 온라인 세상에 접목시킬 지적재산권이 필요합니다. ‘남규리’, ‘김하늘’ 등 스타들의 이름까지도 상표로 만들어 보호하는 게 제 일이죠.”

순간 옆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 변리사의 표정이 근심스럽게 변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뀐다 해도 콘텐츠 산업은 부침이 심할 거예요. 나는 아들이 제조회사에서 연구가 · 발명가들과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집에서도 이처럼 산업 세대 변리사와 정보화 세대 변리사 간의 논쟁이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부자(父子) 변리사의 논쟁은 변리사의 업무 범위가 시대 변화에 따라 크게 확대되었음을 의미했다. 농담 섞인 공방이 이어지다 아버지 변리사가 껄껄 웃으며 정리했다.

“빌게이츠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건 지적재산권’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오늘날 지적재산권은 중요성과 범위는 커졌습니다. 그간 변리사로서 많은 영광을 누려왔지만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아들이 있어 직업인으로서나 아버지로서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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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