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의<고향>中-

熱福(열복)과淸福(청복)

 

정약용은

사람이 누리는 복을

열복(누구나  원하는 화끈한 복)과

청복(욕심없이 맑고 소박하게 한세상을 건너가는것)으로 나뉜다고 하였다.

 

가진것이야 넉넉지 않아도 만족할줄 아니 부족함이 없다.

세상에 열복을 얻은 사람은 아주 많지만

청복을 누리는 사람은 몇되지 않는다.

하늘이 참으로 청복을 아끼는것을 알겠다      

군자는 어찌하여 늘 스스로 만족하고

소인은 어이하여 언제나 부족한가.

부족해도 만족하면 남음이 늘상있고

족한데도 부족타하면 언제나 부족하다.

넉넉함을 즐긴다면 부족함이 없겟지만

부족함을 근심하면 언제나 만족할까?

~~~~

부족함과 만족함이 모두 내게 달렸으니

외물이 어이 족함과 부족함이 되겠는가

  "족부족"이란 시에 나오는 이모든글들이 주는 의미를

새해엔 맘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실천하며

자족하고,

자재하고,

자유하는,

새로운

사람으로  시작하고픈 마음이다.    

2010년을 맞은 광화문

[마음 산책] “그대,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라” [중앙일보]

 
당신은 꽃입니다.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로 피어날 꿈을 품은 꽃씨이고 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노래했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그렇습니다. 그저 피는 꽃은 없습니다. 산과 들의 야생화나 화원의 꽃 한 송이도 마찬가지죠. 꽃씨의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과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우리도 삶의 고단한 일상을 딛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입니다.

여러분의 꽃은 어떻습니까? 활짝 피어 있나요? 행복하게 웃고 있나요? 아니면 피지도 못하고 지쳐 시들어가고 있는가요?

사실, 알고 보면 우린 세상에 둘도 없는 꽃입니다. 그러니 매일 웃을 수 있고, 매일 웃어도 되죠. 활짝 핀 꽃은 스스로도 행복합니다. 그 꽃을 보는 이들에게도 기쁨이 되죠. 눈 속에 핀 매화나 진흙 속의 연꽃은 기쁨을 넘어 감동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바랍니다. 그래서 더 좋은 차, 더 넓은 집, 더 높은 지위나 명예를 갖기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죠. 하지만 끝이 없습니다. 하나가 충족되면 그다음 단계가 보이기 때문이죠. 또 어떤 사람들은 깨달음이나 특별한 영적 체험에서 행복을 얻으려 합니다. 복잡한 일상을 떠나 명상이나 기도 등으로 어떤 경지에 이르면 만사가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갖고서 말이죠. 후자가 조금 고상하게 들리나요? 하지만 세속적 소유든 영적 체험이든 밖을 향해 ‘어떤 결핍된 것을 갈구’하는 것으로는 행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해답은 내 안에 있죠. 내 안의 꽃씨가 ‘본성’의 생명력을 잃지 않고 ‘나만의 색깔’로 피어날 때 진정한 행복이 가능합니다.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우리는 너무 많이 경쟁합니다. 너무 많이 비교하고, 눈치를 보죠. 그래서 정작 ‘내가 원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고,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죠. 남들 하는 만큼 못하면 불안하고, 남들 신경 쓰느라 도무지 내 삶이 없습니다. 한번 떠올려 보세요. 최근에 맘 놓고 행복해했던 적이 언제였는지를. 혹시 밖으로 비교하고 눈치 보느라 ‘이미 내 삶에 가득한 행복’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은 넓고, 나는 작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없고, 잘 할 수도 없습니다. 먼저 나의 한계와 가능성을 자각해야 합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선택할 것은 선택해야죠. 그때서야 비로소 ‘나에게 맞는 행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차별화된 행복이야말로 ‘안갯속의 막연한 행복’이 아니라 ‘나를 설레게 하고, 몰입하게 하고, 웃음 짓게 하는’ 그런 행복입니다. 그렇게 일상의 삶을 주도적인 선택과 과감한 포기로 이어가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다름 아닌 마음의 힘이죠. 선별하는 눈도 필요하고, 내 뜻대로 실행해가는 힘이 필요한 겁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의문이 생길 거예요. “그럼, 나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하지?” 과연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내 본성에 맞는 것을 선택하고, 본성에 맞지 않는 것은 포기하는 거죠. ‘무아(無我)’로써 ‘진아(眞我)’를 꽃피우는 겁니다. ‘나 아닌 것,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내려놓고 ‘참 나’를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워내는 거죠.

지난해 봄이었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딸기를 심어놓고 익어가는 딸기를 보면서 신기해하고 기뻐하던 일.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늦은 밤까지 머플러를 뜨며 가슴 설레던 일. 틈만 나면 요리에 도전해서 풀인지 빵인지도 모를 찐빵을 쪄놓고는 깔깔대던 일. 밤새워 공부하고 스스로에게 대견해하던 일.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할 때의 기쁨’과 ‘주어진 일을 완수해 냈을 때의 만족감’이 그것이었습니다.

꽤 세월이 흘렀죠. 사무실 창틀과 숙소에서, 어릴 때 좋아했던 일을 시도해봤습니다. 일명 제 안의 ‘원예 본능’을 되살려낸 것이죠. 화단에는 고추, 방울토마토, 상추, 쑥갓, 케일, 가지 모종과 콩을 심었습니다. 사무실에는 바질과 루콜라, 순무, 브로콜리 씨앗을 심었죠. 모종들이 자라서 방울토마토와 고추가 열리고, 씨앗들이 새순으로 자랐습니다. 그것들을 잘라서 예쁘게 선물을 했죠. 비록 아주 적은 양이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큰 선물이더군요. 직접 농사(?)지은 토마토와 고추, 새싹이라 그런지 받는 분들도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화단 풍경은 제게 생명력의 신비도 일깨워주었죠. 바질과 루콜라 새싹이 햇볕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 창틀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넘어지고 뒤집어지고 하면서도 어떻게든 자라나는 모습. 이런 것들이 제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었습니다. 지금도 쓰다듬어 주면 향기로 화답하죠. 그런 바질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올해 봄은 더 기다려집니다. 뭘 심어볼까 하고요.

그렇게 내 안의 ‘원예 본능’은 제게 특별한 행복을 안겨줬습니다. 제 자신이 꽃이라는 걸 일깨워 줬거든요. 이외에도 내 꽃씨(본성)에는 또 얼마나 많은 ‘소망과 소질’이 있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힘들거나 원치 않아도 이생에 완수해야 할 ‘소명이나 사명’도 자리하고 있겠죠. 원불교에서는 ‘처처불상(處處佛像)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부처’라는 뜻이죠. 알고 보면 모두가 꽃이고, 모두가 부처인 셈입니다. 저만의 향기와 빛깔을 가진 꽃처럼 ‘자기다움’으로 활짝 피어날 부처입니다. 불단에 금빛으로 모셔진 부처가 아니죠.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각양각색의 얼굴로 빛나는 살아있는 부처죠. 일터에서, 가정에서, 우리가 서있는 바로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부처입니다.

그런데 혹시 ‘나는 잡초야.’ ‘내 안에는 꽃의 유전자가 없어.’ 하며 불신하고 좌절하며 고통스럽게 시들어가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 안에는 이 우주를 꽃으로 덮고도 남을 씨앗이 있습니다. 다만 지금껏 물을 주지 않았을 뿐이죠. 가꾸고, 돌보지 않았을 따름인 거죠.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세요.” 당신의 꽃씨(본성)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세상에서 활짝 피어날 순간을 말입니다. 당신은 꽃이고 부처니까요.

김은종(법명 준영) 원불교 교무·청개구리선방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이 시대가 이승만을 부른다

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

 

요즘 불거진 사법반란을 비롯한 종북좌익들의 일련의 반대한민국 폭거를 보면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위대한 공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북한의 독재자와 남한의 공산 종북주의자들, 그리고 근시안적인 4.19세대 및 5.16세대에 의해 지금 거의 잊혀진 존재, 아니 마치 나쁜 대통령으로 매도 당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은 한민족이 5천년의 역사에서 배출한 몇 명 되지 않는 위대한 영웅이다.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을 잊고서는 대한민국이 장차 잘 되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한 공적을 다시 생각하며 그의 업적을 우리가 공정하게 평가하고 존중할 때만이 대한민국의 장래가 밝게 빛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공적은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이다. 오늘 우리가 성공한 역사를 창조한 조국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박사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였을 때 미국의 대 한민족 정책은 일정기간에 걸쳐 연합국이 신탁통치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는 귀국 즉시 반탁운동을 전개하였고 미국은 2년 정도 후인 1947년 신탁통치 정책을 정식으로 철회하고 이승만의 주장에 따라 총선거에 의한 독립으로 정책을 바꾸게 된다. 미국의 정책을 이승만 개인의 힘으로 2년 만에 바꾼 것이다. 이승만의 역사를 보는 눈과 올바른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용기와 미국을 설득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전략적 포석 등은 이승만이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초석이 되었다.

미국은 최초 소련을 의식하여 신탁통치안을 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군점령 지역인 남한에서도 좌우합작정부를 세우려고 하였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국가를 총선거에 의해 수립하려는 이승만을 배척하였다. 그러나 역사적 대세는 이승만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미국은 이승만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없었다면 건국될 수 없었던 국가다. 우리가 오늘날 대한민국의국민으로서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사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면 그 공적은 모름지기 이승만 대통령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둘째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을 친구로 삼는데 성공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별로 깊지 않았다. 일본군의 항복이나 받고 좌우합작정부를 세워 소련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나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손을 뗄 작정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어도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각오를 보이지 않았다. 북쪽의 공산군이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게 나토 조약과 같은 태평양 조약을 맺든지, 아니면 한미군사동맹을 맺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방어할 수 있는 방어무기만이라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그 어느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은 1949년 6월에 불야불야 미군을 철수하였고 1950년 초에는 미국의 극동 방어선 밖에 한국은 둔다. 이것이 마치 미국이 북한 공산군의 남침을 유도한 것인 양 북한이나 종북주의자들이 선전하지만 미국은 순수하게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와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맥아더 장군과 긴밀히 협조하여 유사시에 미국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었다. 그래서 6.25동란을 이승만 대통령은 오히려 북진통일의 기회로 만들고 한미동맹의 기회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1950년 6.25일 북한의 공산군이 기습적으로 남침을 하였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을 이끌어 내었고 결국은 한미동맹을 맺고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세계역사상 최강의 한미연합사를 만드는 기초를 닦아 놓았다.

이것은 1945년에 미국이 세워놓았던 대한반도 정책 그리고 1949년 미군이 한국을 떠나면서 세웠던 한반도 불개입 정책 등을 모두 180도 뒤집은 것으로서 이승만의 위대한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49년에 미군이 한국군의 방어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떠났을 때의 이승만 대통령의 심정이 어떠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당시 세계 여러 나라는 한국이 몇 년 버티지 못할 것으로 다들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굳건히 버텼고 오히려 성공적인 역사를 창조하였다.

1949년에 미군이 철수하고 1950년에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조차 제외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의 한미관계는 천지개벽이 일어났다고 할 만큼 가깝고 강하다. 미국은 한국과 한미동맹을 맺게 되었고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여 한국의 안보를 책임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이다. 한미동맹을 맺으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장차 한국이 이 한미동맹으로 인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역사를 그의 예언이 옳았음을 증명하였다.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한국은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이렇게 성공한 역사를 창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한 공헌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북한의 공산주의자들과 한국의 종북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고 북한에 나라를 갖다바치려는 반역사적 그리고 반인륜적 음모를 실천하고 있다. 이들 반역자들은 역사의 대세를 거스러는 반동주의자들이며 대한민국을 배신한 반역자들이다. 이들 반동세력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이승만 대통령에 버금가는 위대한 정치가가 필요하며 또 그러한 정치가가 나와야 그런 업적을 쌓을 수 있다. 이 시대는 다시한번 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위대한 인물을 요구하고 있다.

[동서남북] 국제 결혼한 외교관이 없는 외교부

  강인선 정치부 차장대우

외교관 채용방식을 현재의 외무고시와 함께 2년제 대학원인 '외교아카데미'로 이원화시키려 했던 방안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빠진 모양이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외교경쟁력강화위원회가 지난달 '외교아카데미 검토안'을 마련해 이명박 대통령에 보고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오늘로 예정됐던 이 위원회의 회의가 무기(無期) 연기됐다고 한다. 일부에선 대통령에게 보고되기도 전에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탈'이 났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위원회는 당초 외시(外試)를 완전히 없애고 외교관 후보들을 외교아카데미에서 교육시키는 방안, 프랑스의 국립행정학교(ENA)처럼 고급행정관료 교육기관을 만들어 외교관도 다른 공무원들과 통합해 훈련시키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잠정적인 타협안은 외시로 일부 인원을 뽑고, 나머지는 일종의 외교전문대학원인 '외교아카데미'를 통해 충원하는 방식이었다. 외교부는 당장 외시를 없애는 급격한 변화에 저항했고, 고시(考試)를 관리하는 행안부 역시 공무원을 선발하는 권한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교관은 역시 외시를 통해 뽑아야 한다는 '순혈주의+엘리트주의' 분위기도 한몫했던 모양이다. 여기에 '글로벌'할 것 같으면서 '글로벌'하지 않고, 변화를 이끌 것 같은데 오히려 뒤처지는 외교부 특유의 분위기도 작용하는 듯하다.

한 외교관이 사석에서 "우리 외교관 중에 국제결혼을 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오늘날 우리 외교부가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외교관이란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리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외국인과의 결혼비율이 높아지기 쉬운 환경에서 일한다. 실제로 외국 외교관 중엔 국제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다. 이 외교관은 그러나 "그런 '모험'은 못한다"고 했다. "한국 외교부란 조직 안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과 달라지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데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한 외국인은 "한국에선 가장 보수적이고 배타적일 것 같은 농촌에 가면 오히려 국제결혼이 많고, 가장 국제적이고 마음이 열려 있을 것 같은 외교관들은 도리어 국제결혼을 기피한다는 게 흥미롭다"고 했다.

외교부는 이상하게 세상 변화에 늘 뒤처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들어서야 여성 외교관을 아프리카 등으로 파견하면서 '여성 외교관들이 오지 근무도 한다'며 스스로 대견해하는 분위기였다. 기업에선 이미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외시의 여성 합격 비율을 보면, 정부 어느 부처보다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데도 그런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고참 외교관 중엔 "똑같은 시험을 치르고 들어와 수십년 같은 조직 안에서 일하며 서로 비슷비슷해지는 사람들로 국제 사회의 다양하고 높은 파고를 헤쳐가기 어렵다는 걸 절감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대학도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수시'와 '정시', 또 그 안에서 더 복잡한 방식으로 나눠 선발한다. 국민 세금을 받으며 국익을 위해 일하는 외교관들은 당연히 더 다양한 방식으로 선발해야 한다. 한 젊은 외교관은 "제도가 바뀌어 외교 전문대학원에서 수준 높은 훈련을 받은 후배들이 고시 출신 선배들을 재빨리 추월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변화에 저항이 없을 수는 없으나 달라져야 할 땐 확실하게 달라져야 한다.

혁이삼촌 새 둥지를 찾아 떠나는 겨울 숲 2009-12-28

1. 어디에서 새 둥지를 찾을까?

겨울 숲에서 무엇을 할까?

겨울 숲에는 나무의 이파리들이 모두 떨어진 가지 사이에 그동안 이파리에 가려서 안 보였던 새 둥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새 둥지에서는 어미 새가 봄과 여름사이에 알을 낳고, 알을 품고 새끼가 알에서 부화하여 태어나면 새끼 새가 날아오를 때까지 키우는 장소이다. 겨울 숲에서 새 둥지를 찾는 것은 요령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다. 우선은 새둥지가 있을 만한 나무를 찾아야 한다. 주로 키 작은 나무나 덤불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찔레나무, 싸리나무, 국수나무 등과 같은 곳을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국수나무 사이에 새 둥지가 있다.> 

 

2. 새 둥지는 어떻게 나무에 붙어 있을까?

어미 새들이 둥지를 만드는데 대강하는 법이 없다. 새들은 둥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둥지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나무에 둥지를 잘 고정을 시킨다. 나무에 고정 시키는 방법은 질긴 풀잎을 이용하여 나무와 새 둥지를 연결한다. 주로 나무의 가지가 세 갈래로 갈라진 곳에 새 둥지를 올려놓는데, 바람이 불어도 안전하고 튼튼하게 나무에 붙어있게 된다.

<세 갈래로 갈라진 가지 사이에 새 둥지를 만든다.>

 

<질긴 풀을 이용하여 새 둥지를 고정시킨다.> 

 

3. 새 둥지를 해부해볼까?

새 둥지를 잘 보면 새들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새 둥지의 바깥쪽은 거칠고 두꺼운 자연물을 이용하여 만들어서 쉽게 새 둥지가 부서지지 않도록 만들었고 속은 새끼들이 생활하기에 적당한 부드럽고 가는 자연물을 재료로 하여 둥지를 만든다. 그리고 새 둥지를 반으로 갈라보면 밑 부분이 옆면보다는 매우 두껍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어미 새가 알을 품을 때 부화하기에 적당한 온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새 둥지의 표면은 다소 질기고 폭이 넓은 풀을 이용한다.> 

 

<새 둥지의 속은 가늘고 부드러운 풀을 이용한다.> 

 

<새 둥지의 밑 부분이 상당히 두껍다.>

 

4. 새 둥지와 친해지기

자연과 친해지는 방법은 내가 자연이 되는 것이다. 새 둥지를 찾을 때에는 내가 새라면 어디에 집을 지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새 어미는 자신의 알과 새끼를 안전하게 숨겨둘 곳을 선정해서 둥지를 만들게 된다. 그래서 숲에서 새 둥지와 친해지려면 우선은 내가 새라면 어떻게 할까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내가 새가 되어 어느 곳에 새 둥지를 지을까를 생각하면서 숲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 둥지를 만드는 방법을 누구에게 배웠을까?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새가 새끼였을 때 어미는 먹이를 물어다 주면서 나는 방법을 가르쳤을 뿐이고 새 둥지를 만드는 방법을 새끼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새는 태어날 때 새 둥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새는 어떤 본능을 갖고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새 둥지를 관찰해 본다면 더욱더 자연 속에 숨어있는 비밀을 발견하는데 쉬울 것이다.

겨울에는 새 둥지를 찾아서 숲으로 떠나보자.

개보다 못한 인간을 반성시키는 영화-퀼

패션 큐레이터/패션,세상을 통섭하는 힘 2010/02/09 03:03 패션 큐레이터

S#1 개보다 못한 것들의 사회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강아지를 키우며 교감을 나누는 경험을 한다. 어른이 되서도 반려견을 옆에 두고 얻는 것이 많다는 걸 배운다. 나도 지금까지 4마리의 강아지를 키웠고 2마리는 자연사, 또 두 마리는 초기에 실수로, 사고로 그렇게 잃었다. 아끼던 강아지가 죽었던 날이 내 생일이어서 잊을수도 없다.


2008년 1월 시베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엄마는 대뜸 강아지가 하늘에 갔다는 말을 던졌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17년이란 세월을 같이 했는데, 마음이 아팠다. 죽을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마음 한구석이 더 쓰렸다.


예전에 보았던 연극 <맹인안내견>이 떠올랐다. 1991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 연극제대 발표된 신주꾸 극단의 <맹인안내견>은 지하철 역 안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의 삶을 다룬다. 제일교포 2세였던 김수진씨가 연출을 맡아 더욱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대학 2학년때 이 작품을 보면서 약간 초현실주의 적인 느낌의 연극을 처음 봤던 터라, 신기하기도 했다.


작품은 60년대 혼란의 도시 동경을 중심으로 좌익과 우익의 다툼, 그 속에서도 여전히 정신적 교감을 놓치지 않는 맹인 파리오와 안내견 파킬이 펼치는 따뜻한 애정을 놓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따스한 감성을 영화로 또 만난다.


제일교포 감독인 최양일. 난 그에 대한 믿음이 꽤 강한 편이다. 1993년 서울의 자칭 시네필이라 불리는 영화광들이 거의 매일 습관적으로 드나들던 공간이 있었다. '문화학교 서울'이라고. 오늘날의 구 피카디리 극장 자리에 있는 아트 시네마다. 이곳에 가면 하루에 3편씩, 지금과 달리 풍성하게 예술영화를 볼수 없던 시절, 다양한 제3국의 작품에서 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볼수 있던 곳이었다.


그때 <달은 어디로 뜨는가>란 작품으로 그를 만났다. 작가주의적 관점을 구지 들이대자면 그의 작품들은 오늘 소개할 '퀼'과는 완전 딴판인 세상을 그린다. 방향을 잃은 일본사회의 단면들을 씁쓸하고 신랄하게 파헤쳤다. 탐욕에 가득찬 채,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일본경제의 속살 속, 사회적으로 소외당한 이들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보여주었다. 단 코미디란 장르로. 그랬던 그가 돌아왔다. 원래 이 작품이 만들어진건 2004년인데 꽤 시간이 지나서야 한국에서 개봉이 된 셈이다.



영화 <퀼>은 맹인안내견의 일생을 다룬 영화다. 소설로 70만부 이상이 팔렸던 베스트 셀러였는데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 마디로 영화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어버린 영화기도 해서, 꼭 포스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퀼은 도쿄의 한 주택에서 5마리의 리트리버 중 한 마리로 태어난다. 이후 퍼피 워커라 불리는 제 2의 부모에게 맡겨져 1살이 될때까지 사람과 교류하며 사랑을 받고 주는 법을 배운다. 이후 그는 맹인안내견 훈련센터로 보내어져 훈련을 받는다. 다른 개들보다 유독 한 템포 느린 구부정한 느낌의 이 강아지가 최종 맹인안내견으로 선택된다. 감정표현이 빠르고 격한 성격을 소유한 강아지는 맹인안내견이 될수 없기 때문이란다.



훈련을 마치고 퀼은 첫번째 고객이자 동반자를 만난다. 시각장애인 와타나베는 어찌된일인지 고집도 세고, 도통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개인훈련을 위해 길을 나갔다가 '퀼'의 배려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서로는 친구가 된다. 이 영화를 본 후 자료를 찾아보니 맹인 안내견은 '지적불복종'이란 훈련을 엄청나게 감내하게 된단다. 원래 개는 주인의 말에 복종하게 되어 있으나, 주인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경우, 혹은 그런 가능성이 있는 명령에 대해서 불복종하는 것이다.



안타깝게 주인과 보낸 짧은 시간을 뒤로 하고 지병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된 와타나베. 그 동안 다른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으로 활동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원래 맹인 안내견은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서 훈련을 받는단다. 이 부분을 보면서 어찌나 숙연해지던지. 결국 와타나베는 병으로 죽고 이후 퀼은 자신의 두번째 엄마인 퍼피 워커에게 돌아와 나머지 일생을 보낸다.



무엇보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며칠 전 신호등 앞에서 본 맹인안내견 때문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맹도견을 보더니 귀엽다고 자꾸 먹을 걸 권하신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맹도견에게 이런 행동들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그 분은 몰랐던 거 같다. 시각 장애인을 위험에 빠뜨릴수 있는 행동이란 거다. 그 분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맹인안내견을 대할 줄 모른다는 거다. 이와 더불어 시각 장애인들을 어떻게 돕고 배려해야 하는지, 사실 제대로 보지도, 배우지도 안내받지도 못한게 사실이다.  그걸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행동에 대해 비난하면 안된다.



요즘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맹인안내견이 입장할 수 없는 곳이 너무 많다. 맹인안내견에 관한 법률 고시를 보면 "누구든지 보조견표지를 부착한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에 탑승하거나 공공장소 및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고자 하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되어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긴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집단 항의와 데모를 일삼던 강남의 한 아파트 부녀회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어디 이뿐인가? 장애인의 날에만 '장애우'를 들먹이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를 이야기 하지만, 항상 방송과 일상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랐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 인간의 부족한 면을 옆에서 채워가며 평생을 보내는 안내견의 삶엔 '개보다 때로는 못한'못난 우리들의 자화상이 녹아 있었다. 욕망을 참는 훈련을 받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통에, 다른 종에 비해 평균수명도 짧다고 들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 채우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 참고 사는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데로, 누리고 싶은 데로 타자의 삶을 뭉게면서도 얻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못난 인간에게, 맹인 안내견 한 마리가 전해주는 따스함이 너무나도 깊고 크다. 미안하다......정말 '퀼' 행복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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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서야 글이 메인에 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해주시는 거 감사할 따름입니다. 단 이 글은 맹인안내견에 관한 영화의 소감을
적은 글입니다. 개고기 문화에 대한 글은 아니란 것이죠. 맹인안내견과 시각 장애인을 둘러싼 우리들의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썼던 글입니다. 그러니 관련된 논의만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나친 욕설과 감정토로는 좀 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송고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제가 익숙하지 않거든요.

 

"바보야, 문제는 아파트야!"

[화제의 책] 허의도 <낭만아파트>

 

"안녕하세요, 전에 뉴타운 문제로 뵈었던 OOO라고 합니다. 이번에 구청 앞에서 시위를 할 건데요…. 이 사람들이 조합 의견만 일방적으로 따르라고 하잖아요. 법보다 조합이 위에 있는 거예요. 와주셔야 해요."

한 제보자의 전화를 받으며 '문제는 아파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언제부터였나를 정확히 얘기할 순 없지만 아파트가 우리를 변하게 했다. 뉴타운 문제로 조합원과 세입자가 갈라져 싸우는 이유는 새로 들어설 아파트단지 때문이다. 빨리 세입자 문제를 처리해야 개발이득을 누릴 수 있는 조합원에게도, 임대아파트 입주권이라도 받아야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세입자에게도 아직 생기지 않은 아파트가 갈등의 단초를 제공했다.

욕망을 가득 담은 우리의 아파트는 이웃과의 연대를 사라지게 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아파트 부녀회에서 흔히 얘기되는 "이번에 우리 아파트는 얼마 이하로는 절대 팔 수 없습니다. 부동산중개업소에도 확실히 압력을 넣어야 해요"라는 따위의 집단이기주의였다.

어느새 아파트는 뒤틀린 우리의 오늘을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강남 대치동 아파트단지는 신분 상승의 욕구와 기묘한 교육열을 반영한다. 강북권에 밀집한 아파트단지 사람들은 '성공시대' 욕망을 싣고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총선에서 서울지역을 싹쓸이하게 만들었다.

잘 사는 사람이건, 못 사는 사람이건 아파트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우리나라 모든 구성원이 도심 한 복판에 우뚝 솟은 아파트를 선망한다. 이러니 어떤 경제정책도 아파트값 상승을 막지 못한다. 서민들의 기대를 잔뜩 안고 출발했던 노무현 정권이 결국 강남 아주머니들의 뚝심에 무릎 꿇어 '강남 사람의 지지를 받는 정권' 따위로 희화화의 대상이 된 것은 상징적이다.

너무 위험하다. 더 이상 아파트가 넘치는 우리의 욕망을 투영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낭만아파트>(플래닛미디어 펴냄. 허의도 지음)에서 저자는 다분히 반어적인 책 제목을 통해 "욕망의 아파트가 인간성 회복을 위한 진짜 '낭만아파트'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노무현 정권 초기 정책특보로 일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가 사이버 공간에 남긴 글을 인용한다.

"(이제 투기에 관한 한) 사회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 (나아가) 영적 차원에서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해 4월, 미국 2위의 덩치를 자랑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회사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무너졌다. 이 회사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경제를 지탱하던 금융 시스템 근간이 요동쳤다. 알트A 등급 모기지 업체도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각 은행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자 실물 경제도 위기를 맞았다. 근사한 정원이 딸린 집이 텅 빈 채 경매딱지가 붙어있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집값이 폭락하자 미국에서는 부동산 매입을 위한 새로운 관광 상품이 선을 보이기도 했다.

명문 MIT 졸업생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에 광고판을 건 채 직장을 찾는 일이 화제가 됐다. 급기야 '시장보다 나은 건 없다'던 미국 정부가 공적자금을 대출보증업체에 쏟아 붓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나. 금융기관도, 정책 당국도 아직 우리에게 그 정도의 위험 신호는 없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믿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는 그것(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해 좀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 온통 아파트와 땅에 광란했던 우리의 선택, 그 후유증을 놓고 다시 또 누굴 탓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새로운 경고음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일본의 부동산 폭락 사태를 지켜본 바 있다. 90년대초까지 극을 달리던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지금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1985년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상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이라면 "그래, 차라리 다 꺼져라! 그래야 나도 집 한 채 장만해보지" 할지 모를 일이다. 지금의 비정상적인 강남 아파트값 거품은 어느 정도 제거돼야 마땅하다는 의견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것도 사실이다.

불행한 것은 이런 아파트가 우리 경제에 있어 시한폭탄급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파트 외부불경제를 그대로 방치한 채 우리 경제를 선진화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새로운 아파트 거품 만들기는 단순히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매국적 행위에 다름없다.

따라서 연착륙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은 일정 부분 감내해야 한다. 아무리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더라도 "아파트는 불패"라는 공식은 정상적인 시장경제 국가라면 깨져야 마땅하다. 저자도 여기에 고민의 초점을 맞춘다.

"부동산 거품 붕괴가 우리 경제를 일대 타격으로 몰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뛰어오른 것을 바로잡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것을 한국 경제의 성장통이라고 하자. 곧 아파트 거품이 가라앉고 예측불허의 성장통도 멎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자."

아파트 광시곡의 끝은 쓸쓸했네
▲<낭만아파트>(허의도 지음, 플래닛미디어 펴냄) ⓒ프레시안
 

지금 우리네 아파트는 과연 서민을 위한, 중산층을 위한 주택인가. 임대아파트는 그럴지 모른다. 서울 외곽도시 일부나 강북권, 서남권에 밀집한 아파트단지 사람들 대부분이 중산층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호화로운 실내장식과 최첨단 경비시스템을 구비한 초호화 아파트가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도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 전용 195㎡형은 57억 원에 거래돼 사상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가격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아파트를 부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아파트는 지난 60년대 서울 곳곳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무허가 판잣집을 대체하기 위해 건설했다.

군사정권 시절, 아파트 건설도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저자는 당시 서울시장을 지낸 '불도저(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다)' 김현옥 서울시장의 말을 빌려 그 때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도시 한복판까지 파고든 무허가 판잣집과 얼마 되지도 않은 차량을 소화하지 못하는 도로 사정 등 도무지 수도 서울의 체신은 말이 아니었다. 부임 직후 서대문 판자촌을 시찰하면서 머리는 복잡했다. 누더기처럼 어지러운 판잣집에 당시 막 시작 단계였던 시민아파트가 오버랩되면서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하는 수 없다. 난민촌처럼 드러누운 판잣집을 일으켜 세우자!"

그러나 아파트는 곧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 겨울에도 실내에서 반팔을 입고 다닐 수 있게 한 중앙난방 시스템과 수세식 화장실, '부엌'이 아닌 '주방'의 존재 등은 새 시대 자체였다.

여기에 70년대 시작된 강남 개발이 기름을 부었다. 1975년 10월, 강남구가 공식 출범하면서 이곳으로 주요 시설물들이 줄지어 이전했다. 자연히 아파트 분양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복부인이 활개를 치고 다녔고 특혜 분양 사건이 줄을 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뽕나무밭에 불과했던 압구정에 초호화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강남을 동서로 관통하는 테헤란로는 강남의 동맥 역할을 하게 됐다.

신흥 부르주아 세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투기꾼은 아예 이삿짐을 풀지도 않은 채 잠시 머물다 인근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저자의 표현 그대로 '사람들은 투기에 물들어가고 나라 역시 투기로 국가 재정을 충당하는 판'이었다. 광란의 수십 년을 보내고 나니 서울은 어느새 아파트 숲으로 변해버렸다. 아파트 공화국은 곧 '강남 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이 광란의 굿판이 남긴 유산이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저자는 외환위기는 단순히 정부의 실책 등으로 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아파트로 상징되는 우리의 광기 어린 압축성장의 필연적 결과였다는 뜻이다.

"거품이 거품이 아니라 몸통이 돼 끝까지 굴러갈 수 있다면야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젠가는 그것이 거품임을 증명할 것이다. (…) 1997년 환란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것을 두고 누구의 책임론 운운한 것은 분명 난센스다. 그것은 한 마디로 30여 년 압축성장의 가도에서 우리 경제가 온갖 크고 작은 질병을 감추고 지내다가 마침 외환금고가 말라가는 줄 모른 채 잠시 방치한 사이에 벌어진 일 아니었던가?"

"우리 경제에 있어 아파트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

이제 아파트는 우리나라를 설명하는 핵심어다. 아파트값이 폭등하면 서민 죽어난다고 대책을 내놓고, 떨어지면 경제가 마비된다고 난리다. 지난 총선에서 봤듯 정치 행위마저 아파트에 종속됐다. 저자는 이를 두고 "우리 경제에 있어 아파트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라고 말한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지난 대선 때 일어났다. 노무현 정권은 지지층의 기대와는 달리 아파트값을 천정부지로 뛰게 했다. 강남불패 신화는 예상과 달리 노무현 정권에서 재입증됐다. 서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에 분노했다. 그들에게 아파트는 삶의 가장 큰 짐이자 존재 이유였다. 그 분노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로 표출됐다.

경제, 정치 영역만이 아니다. 책 뒤편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우리의 집단 의식구조, 생활양식, 빈부 구분의 잣대 등은 물론 개개인의 인성마저 아파트 문화에서 비롯된다.

결국 아파트가 중요하다. 저자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유행시킨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패러디해 "바보야, 문제는 아파트야!"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떠안은 모든 고민의 근원에 아파트가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의 아파트는 '천민성'의 아이콘이 돼 버렸다. 거품을 깔고 앉은 국가 운영 체제의 근원이 됐다. 결국 우리가 가진 천민성, 우리 경제가 가진 비경제성, 우리 사고가 가진 비합리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파트가 '낭만'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실제 아파트는 양극화된 우리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편에는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얻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수십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에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있다. 아예 내 집 마련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멀쩡한 집이 있는데도 전세를 놓기 위해 스스로 세입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

양극화는 위기를 낳는다. 만약 경기침체기가 시작된다면 이는 다수 사람들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길로 스스로 걷게 만든다. 독재가 주인공이다. "경제 불황이 파시즘을 낳는다"는 말은 지난 과거에서 대체로 사실이었다. 물론 우리가 그런 길을 걷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아파트 문화가 가진 '비정상성'은 이상한 생각을 자꾸만 떠올리게 만든다. 지극히 낭만적인 제목의 이 책을 읽고나면 의구심은 더해질지도 모른다.  

/이대희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명의 이민수, 내가 생각하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다

 

Part 01. 명의열전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90년대 초반부터 우울증센터를 개소, 수많은 환자들과 교감하며 우울증 치료에 앞장서온 이민수 교수. 그는 우울증이 정신병인 양 치부해왔던 사람들의 생각을 뒤바꾸기 위해 사회적 계몽과 우울증 치료라는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해왔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이민수 교수를 만나, 그동안 오인해왔던 우울증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감 없이 파헤쳤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을 경험합니다. 이렇듯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 즉 마음의 감기와도 같습니다. 20% 가량의 사람이 경험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며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우울증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고대 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우울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정신과를 두고 ‘미친 사람’이나 가는 곳이라며 기피하거나 우울증은 ‘의지박약’한 사람의 전유물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링컨이나 처칠, 뉴턴, 버지니아 울프, 헤밍웨이, 반 고흐, 슈베르트, 뭉크 등은 모두 우울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위인들이다.

이렇듯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은, 역으로 우울증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 준다. 국내에서도 몇몇 연예인들이 우울증으로 자살을 선택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을 만큼 우울증의 심각성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우울증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여전히 팽배하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민수 교수는 고대 안암병원 내 ‘우울증센터’를 개소, 소장을 역임하며 우울증 연구에 몰두해왔고 2004년부터 국가의 지원을 받아 ‘우울증임상연구센터’를 이끌어왔다. 현재는 보건복지부 지정 ‘정신약물유전체센터’ 소장과 보건복지부 지정 ‘우울증임상연구센터’에서 ‘한국인 우울증 표준치료지침개발’ 책임자를 겸하고 있다.

“우울증 환자 중 95%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 비해 치료율이 낮은 이유도 결국 인지도의 차이죠. 우울증은 정신병이니까 낫지 않는다는 식의 편견이 없어지려면 사회 전반에 인식변화가 절실합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창피한가요? 바이러스 때문이니 창피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우울증도 똑같습니다.”

마음의 감기는 몸마저 해친다

우울증이 왜 생기는지 그 원인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생물학적, 유전적, 환경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 부모가 우울증일 때 그 자녀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의 3배이며 일란성쌍생아가 이란성쌍생아보다 다른 쪽에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뇌의 신경생화학적인 변화’와 ‘중요한 것을 상실했을 때의 심리적 요인’, 그리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들 수 있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은 물론 신체적인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몸의 병이기도 하다.

“이유 없이 우울증이 나타나는 사람들의 여러 데이터를 분석해본 결과, 우리 몸에 필요한 신경전달물질 중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이 감소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지 마음의 병이 아니라 생화학적인 뇌질환이라고 봐야 합니다. 뇌의 활동이 저하된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에 우울증은 곧 몸의 병이기도 합니다.”

이와 더불어 이민수 교수는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 불면증과 요통, 두통, 흉통,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이며, 오히려 ‘슬프다’거나 ‘괴롭고 눈물이 난다’는 심리적 증상은 일곱 번째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신체증상을 주로 호소하는 우울증 환자들 중에는 자신이 우울증인 줄 모르는 사람이 상당수이며, 신체증상만으로 1차 진료기관을 방문해 내과적 원인을 찾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 충분한 검진을 통해 내과적 원인이 없음을 알게 되더라도 정신과 질병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우울증의 진단과 치료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이민수 교수의 설명이다.

만성 스트레스를 치료하자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은 교감신경계를 항진시켜 여러 가지 신체반응을 유발한다. 특히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생기면 호흡이 빨라지면서 산소는 들어가고 이산화탄소가 계속 배출, 신체 내 산-염기 균형이 깨지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움을 느끼게 되며 심장에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또 항상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하며 몸과 어깨의 근육통 및 팔다리의 말초에 저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결국 늘 피곤하고 의욕이 없으며 짜증이 나고 분노를 잘 참지 못하게 되며, 면역계 활동이 저하돼 신체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병에 대한 저항력이 감소하게 된다. 이러한 만성 스트레스 반응은 모든 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울증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만성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개발된 방법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이 복식호흡과 점진적 근육이완법이다. 이 방법들은 불안감과 우울감이 신체의 긴장을 촉발한다면, 거꾸로 신체의 이완을 증진하여 불안감과 우울감을 줄여주는 전략이다. 복식호흡은 의자에 앉아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등은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등받이에서 뗀 후, 손은 배 위에 편안하게 올려놓는다. 그리고 숨을 들이쉴 때 배가 올라가고 숨을 내쉴 때 배가 내려가는 방식으로 숨을 쉬며, 가슴과 어깨는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점진적 근육이완법은 순서에 따라 16단계로 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가 이완시키는 행동을 반복하며, 근육을 긴장시킬 때 바짝 힘을 주고 이완시킬 때는 한 번에 힘을 빼는 것이 좋다.

이민수 교수가 제안하는 우울증 예방법

1 운동하는 습관을 갖자. 걷기, 등산 등 유산소 운동을 하되 1주일에 3회 이상 땀이 날 정도로 걸으면, 우울증 치료약의 복용을 절반 이하로 낮추어도 될 만큼의 효과가 있다.

2 침대는 잘 때만 사용하자. 잠을 너무 많이 자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필요한 수면시간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6~8시간이면 충분하다.

3 규칙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자. 야채, 과일, 콩, 땅콩, 곡물 등의 섭취를 늘리고 포화지방산, 설탕, 소금, 식품첨가물, 인공감미료 등의 섭취를 줄이면 더욱 좋다.

4 만성적인 음주는 피하자. 만성적인 음주는 그 자체로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다. 만일 우울증의 치료단계라면 알코올이 약물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에 더욱 피해야 한다.

5 명상과 요가로 우울증에서 벗어나자. 간단한 명상방법은 느린 복식호흡을 하면서 하루 10분만이라도 생각을 멈추고 코끝에 느껴지는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것이다.


/ 여성조선
  취재 피옥희 | 사진 이상윤

[데스크 칼럼/2월 9일] 李兄, 왜 그랬소…

채수종 (사회부장) sjchae@sed.co.kr
 
李兄, 왜 그랬소. 가족ㆍ친구ㆍ직장동료,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억겁의 인연을 남겨놓고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할 정도로 절박한 게 무엇이었소. 이형의 나이 이제 51세. 영원한 이별을 하기에는 너무 젊지 않소.

이형이 생을 마감한 지 보름이 다 돼가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럽소.

이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왔고 당시에는 선택된 사람들만 갈 수 있던 해외유학도 다녀왔지요. 그리고는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사에서 부사장에 올랐어요. 그것도 40대 때 말이죠. 누가 봐도 '평범한 10만명을 먹여 살릴 비범한 대한민국의 인재'였습니다.

정상엔 아무것도 없었나요

재산도 남부럽지 않게 모았죠. 우리나라에 1,200여명밖에 안 된다는 연봉 10억원의 주인공 아니었습니까.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강남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에 살았죠. 그리고 보유하고 있는 주식만 80억원이 넘는다죠.

이 정도 조건이면 대한민국 상위 0.001% 범위에 들 겁니다. 직장인들의 롤모델로도 손색 없지요.

그런데, 왜 그랬소. 남들이 모두 바라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당신이 왜 그랬소. 일면식도 없는 당신의 죽음에 이처럼 가슴이 허허로운 것은 단지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이형.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그렇게 컸습니까. 반도체 강국을 만든 당신의 열정이 오히려 당신의 목을 옥죄었습니까. 언제나 남보다 빠르게 움직이던 당신에게는 속도 조절이 그렇게 힘들었나요. 실패 한번 없이 승승장구해왔기에 넘어지는 방법을 몰랐나요.

살다 보면 넘어지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는 게 다반사 아닌가요. 아이는 2,000번을 넘어져야 걷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종이배를 물에 띄우려면 9번, 종이비행기를 하늘에 날리려 해도 9번을 접어야 하죠. 그저 펴려고만 하면 종이배도 종이비행기도 만들 수 없는 것이 이치죠.

이형은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글에서 업무 과다와 보직인사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했다지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을 이끄는 자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일반 직장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참기 힘들었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나는 이형이 그 정도 스트레스에 세상과의 이별을 결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형이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형의 삶의 궤적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하기 위해, 세계적 기업에서 신화만들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 당신을 강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 뒤에는 상상할 수 없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걸어온 길을 왜 포기했소.

혹, 가장 좋은 직장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보니 거기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은 아닌가요.

'꽃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flowers)'이라는 책에서 주인공 애벌레가 동료 애벌레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정상에선 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잖아"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저자인 트리나 폴러스는 "애벌레에서 나비가 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강조했죠.

한마리 나비로 훨훨 날아가소서

나는 사는 것이 힘에 부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마다 이 책을 읽습니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 인생과 성공과 행복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죠. 이형도 이런 작은 '숨구멍'이 필요했던 것 아닙니까.

이형의 선택에 대해 이런저런 추론을 해봤지만,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군요.

이형이 왜 그렇게 급하게 떠나야 했는지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이형이 '한 마리 나비가 돼 훨훨 날아갔다'고 생각을 정리하려 합니다.

중고자전거로 1만3500km 달린 20대 청년의 꿈은..

  1만 3500km를 달린 청년, 김태현씨


뙤약볕 내리쬐는 네바다 사막과 험준한 안데스 산맥도 그를 막지 못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칠레의 남쪽 끝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자전거에 40kg 넘는 여행꾸러미를 싣고 20대 청년은 달렸다.

매일 100km씩, 때로는 200km까지 이동했다.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중고 MTB 자전거는 바퀴 속까지 삭았다. 타이어는 50번 넘게 터졌다.

지난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년 가까이 북미·남미 대륙을 누빈 김태현(28·부경대 재료공학과 4년)씨가 입국장에 들어섰다. 양쪽 어깨에 멘 검정색 자전거 가방 2개는 출국할 때와 달리 연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운동화 발끝에는 어린아이 주먹만한 구멍이 나 있다. 신발 속의 누런 양말까지 보였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부터 36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왔지만, 김씨는 졸린 기색 하나 없었다. 그가 지난 2008년 4월부터 1년9개월간 여행한 국가는 미국·코스타리카·페루·칠레 등 총 15개국. 이동 거리는 1만3500km가 넘는다. 서울~부산 거리를 15번 넘게 왕복한 셈이다. 김씨는 공사장, 다리 밑, 숲 속에서 노숙하며 ‘세상 구경’을 했다.

이날 공항에 김씨를 마중나온 친구 A(28·회사원)씨는 “다들 취업 정보 구하느라 바쁠 때 (이 녀석) 혼자서 여행 준비하는 걸 보고 신기했다”며 웃었다. 남들이 취업에 목 멜 시기에, 그는 왜 홀연히 세계여행을 떠났을까.

김씨가 처음 자전거 세계여행을 생각한 것은 2007년 8월이다. 일본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던 때였다. 김씨는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행객이 이시다 유스케의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라는 책을 추천하더라”고 했다.

“7년 넘게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한 이야기였어요. 갑자기 ‘나라고 못할까’라는 생각이 끓어오르군요.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 최배달이 그러잖아요. ‘젊을 때는 모험을 하는 곳에 길이 있다’고. 제 얘기 같더라구요. 한번 보고 싶었어요. 바깥 세상을.”

김씨가 훌쩍 여행을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겨울, 그는 125cc 오토바이를 끌고 전국을 일주했다. 같은 해 여름에는 일본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예행 연습 삼아 무일푼으로 2박3일 경상도 자전거 여행도 했다.

김씨는 “막상 세계여행을 하려니, 여행 경비문제부터 해결해야했다”고 했다.

“취직할 나이에 여행을 떠나겠다는데, 어느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어요. 돈 달라거나 그런 말은 전혀 안했어요. 그랬다간 여행을 못 떠날 것 같았거든요.”

김씨는 낮에는 방송국에서, 밤에는 피씨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술 한방울 마시지 않았다. 반년만에 자전거·카메라·비행기값을 빼고도 600만원 넘는 돈이 모였다. 2008년 4월, 김씨는 부푼 가슴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김씨는 길을 따라 남미대륙 남쪽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여행경비는 노잣돈 600만원이 전부였고, 이동 수단은 중고 MTB자전거 1대 밖에 없었다.

빠듯한 예산을 쪼개쓰다보니, 김씨는 숲이나 공사장에서 캠핑을 자주 해야했다. 해병대 출신이라서 노숙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하루 여행경비는 5000원 이상 쓰지 않았다.

“LA에서 텍사스까지 가는 두달동안 100달러(약 11만원) 정도만 썼어요. 멕시코에서는 60달러(약 7만원) 정도 썼나? 기나긴 여정을 마치려면 아무래도 돈을 아끼는 게 중요했어요.”

아메리카대륙 종단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김씨는 “다들 험상궂게 보이는데다가 총소리가 어찌나 자주 들리는지, 처음 한 동안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고 했다. 특히 멕시코처럼 치안이 어지러운 곳은 ‘빨리 지나가는 게 상책’이었다.

“멕시코에 막 입국했을 때였어요. ‘국경도시 레이노사에서 한국인 5명이 무장단체에 납치당했다’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멕시코 사람들이 3명 넘게 모여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빨리 지나가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 뒤로 긴장 탓인지 일주일 넘게 대변도 못 봤어요.”

멕시코 경찰이 돈을 뺏아가기도 했다.
“경찰이 길에서 저를 부르더군요. 그때 세수도 못하고 찢어진 티셔츠에 거지 몰골이었죠. 경찰관들이 제 가방을 뒤지더니 ‘돌라르, 돌라르(스페인어로 달러)’라고 소리쳤어요. 말이 안 통해서 손으로 비는 흉내를 내도 막무가내였죠.”

김태현씨의 신발
김씨가 빼앗긴 돈은 미화로 5달러. 한화로 약 5000원 정도였다. 빼앗기고 남은 건 멕시코화폐 50페소뿐이었다. 5달러와 비슷한 금액이었다. 가진 돈의 반을 빼앗긴 셈이다.

“멕시코에 머무는 한달동안 60달러밖에 안 썼는데… 어찌나 억울하던지 일주일동안 빼앗긴 돈만 생각났어요. 그 돈이면 콜라를 몇 번이나 더 사먹을 수 있었는데 말이죠.”

안데스 산맥에서 캠핑을 하며 비포장도로를 지날 때는 고산병(高山病)에 걸리기도 했다. 페루에서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순식간에 배낭을 도둑맞아 노트북·외장하드·옷·카메라 렌즈를 잃기도 했다.

“정말 힘들었어요.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돈도 거의 떨어졌을 때였는데, 정말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죠. 하루가 지나니까 마음이 바뀌더군요. 자전거는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일단 남미 땅끝까지는 가보기로 했어요.”

2년 가까이 여행을 하면서, 김씨는 네티즌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부모님을 안심시키려고 며칠에 한번씩 블로그(www.cyworld.com/tecggo)에 여행기를 썼는데, 그걸 본 네티즌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졌다. 블로그의 누적 방문자수는 60만명을 훌쩍 넘겼다. 2008년 2월부터는 사진잡지에 여행기도 연재했다.

생면부지의 후원자들도 생겼다. 여행을 할 시간이 없는 고시생, 다리가 부러져 입원중인 환자 등 ‘대리만족’을 느낀 50여명이 여행 경비를 보내줬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내가 20대일때는 이런 여행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편지와 함께 항생제·진통제가 담긴 상비약 한 상자를 부쳐주기도 했다. 자전거 용품과 함께 홍삼까지 보내준 스포츠업체 사장도 있었다.

“댓글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비타민을 보내주고 싶다. 육포를 좋아하니 육포를 보내주고 싶다. 어딜 지날때는 우리 집에 꼭 들려라’는 등, 너무 고마웠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갚고 싶어요.”

김씨의 부모님은 이 ‘무모한’ 여행을 반대하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취업하라고 하셨죠. 빨리 졸업해서 돈 벌어야하지 않겠냐고. 오토바이로 전국일주할 때도 말리셨거든요. 그런데 블로그도 사람들이 많이 봐주고 잡지에 여행기도 실리고하니까 어느 정도 마음을 놓으시는 것 같아요.”

그는 “힘들게 여행을 하면서, 평범한 것에 더 감동하게 됐다”고 했다.

“저를 보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는 현지인이 참 많았어요. 거의 거지행색이었는데 말이죠.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걸 느꼈어요. 사막의 개똥벌레, 여우, 수많은 별들, 여행하며 본 모든 것들이 너무 소중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씨는 “1년 정도 돈을 벌고 재정비를 해서, 다시 자전거 여행을 떠날 거예요. 취업도 중요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어요. 제 블로그에 세계일주 전편을 업데이트 하는 게 목표입니다”라고 했다.

<개그콘서트> '동혁이 형' "대학=신용 불량자 양성소?"

속시원한 '샤우팅 개그'…시청자들 "당신 말이 곧 진리" 환호

한국방송(KBS) 2TV의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 사회 풍자 개그, 일명 '샤우팅 개그'로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는 개그맨 장동혁 씨가 지난 31일 방송에서는 대학 등록금을 두고 일침을 놔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봉숭아 학당' 코너에서 '동혁이 형' 캐릭터를 선보이는 그는 31일 방송분에서 대학등록금을 두고 "신문 기사 통계를 봤더니 10년 동안 물가는 채 36퍼센트가 안 올랐는데 등록금은 116퍼센트나 올랐다"며 "이건 왜 한번 올라가면 내려 올 줄을 몰라. 아니 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한 학년 올라 갈 때마다 우리 아빠 얼굴에 주름살만 팍팍 늘어. 우리 아빠가 무슨 번데기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어 그는 "학자금 상환 제도가 '등록금이 비싸서 돈을 꿔줄 테니 취업하면 갚아라' 이건데, 그럼 취업 안 되면 안 갚아도 돼? 내가 만약에 돈 못 갚으면 쫓아다닐 거야? 네들이 무슨 '추노'의 장혁이야?"라면서 "송태호(오지호 분)랑 언년이(이다해 분)를 잡아라. 불쌍한 대학생 잡지 말고"라고 말해 비싼 대학 등록금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학자금 상환 제도가 좋은 제도지만 인간적으로 이자가 너무 비싸다"면서 "대학이 세계적인 학자를 만드는 곳이지 세계적인 신용 불량자 만드는 곳이냐"라고 다시 한 번 꼬집었다.

▲ 최근 KBS <개그콘서트>에서 '동혁이 형' 캐릭터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맨 장동혁 씨. ⓒKBS

그는 "옛날엔 우리 아버지들이 소 팔아서 등록금을 댔지만 지금은 소 팔아선 택도 없어! 왜 아버지들이 등록금 대려고 죽을 때까지 소처럼 일해야 되냐고! 우리 아빠가 무슨 워낭소리야!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대신 아빠 목에 방울 달아 드려야 돼? 이거 슬프잖아"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가르침이 기뻐야지 슬퍼서야 되겠니? 등록금 인상, 등록금 대출 이런 말하지 말고 그냥 쿨하게 등록금을 깎아주란 말이야. 형이 누구라고? 그래. 동혁이 형이야!"라고 마무리했다. 그의 속시원한 일침에 관객들은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이날 <개그콘서트>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장동혁 씨를 격려하는 시청자들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한 시청자(권세영)는 "대학교에 들어갈 신입생이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모든 대학생 학부모들의 마음 속 응어리를 확 풀어줬다"면서 "장동혁 씨 당신의 말이 진리입니다"라고 격려했다. 다른 시청자(엄종현)도 "개그 이상의 영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개콘을 꼭 봤으면 싶다"고 말했다.

한 시청자(송정우)는 "동혁이 형 개그를 보고 눈물 나올 뻔 했다"면서 "지금은 군인이지만 4개월 뒤 제대하고 대학 등록금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대변인처럼 말해주니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장동혁 씨는 지난 17일에도 각 신문사 등의 기사에 성인 광고가 만연항 상황을 꼬집어 "'주경야독'이 아니라 '주경야동'"이라면서 "TV 보면 맨날 선정적이네, 악영향을 미치네 마네 그러면서 청소년 교육 기사에까지 이런 광고 이거 아니잖아! 왜 학교 등교시간 맞춰서 눈떠야 되는 애들을 엉뚱한 곳에 눈뜨게 하냐"고 꼬집어 주목을 받았다.

 아바타와 아이폰 그리고 가난
  영화 '아바타'

이문원의 문화비평

드라마작가 김수현이 영화 ‘아바타’를 혹평하고는 큰 홍역을 치렀다. 김 작가는 지난 1월29일 자신의 트위터에 “‘아바타’ 난리도 아닌데 ‘아바타’ 보면서 나는 왜 중간중간 졸았을까. 너무 단순한 이야기는 따분하고, 목침 하나 가로로 코 위에 얹은 우스꽝스런 동물들은 헛웃음 나오게 하고”라며 “창작물로가 아니라 현란한 시각 홀림으로 밖에는… 이미 봤던 장면들, 설정들 짜깁기를 스리디(3D) 기법으로 확대 재탄생시킨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네티즌 반응은 뜨거웠다. 기사에 따라 수천 개 댓글이 달리며 김 작가의 소견을 맹공격했다. 김 작가의 트위터 역시 반박 포스트로 넘쳐났다. 이에 김 작가는 30일 재차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남겨 “나의 것이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분명코 있는데 함께 박수 안 친다고 바로 엄중한 훈계와 인신공격이 들어오는군요”라며 불편한 심경을 밝혔다. 이에 대한 비난이 또 다시 쏟아진 건 두 말할 것도 없다.

물론 김수현 작가로서는 낯선 상황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을 뿐더러 흔히 보이는 현상이기까지 하다. 특정 대중문화 상품에 대한 대중의 집단주의 현상, 인터넷상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에 맹목적으로 비난을 쏟아 붓는 ‘네카시즘’ 현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여타 분야에서도 유사 현상이 일어나지만, 대중친숙도가 높은 대중문화계에서 특히 빈번하게 벌어진다.

그리고 그 원인 역시 이제는 어느 정도 결론이 내려진 상태다. 경제 불황 증후군이라는 것이다. 특정 인물, 집단 또는 상품에 대한 맹목적 추앙, 집단주의, 패거리 의식 강화, 공격적 성향 대두 등 모든 특성이 그에 근거한다. 그리고 역시, 김수현 작가 개인 견해는 어떤지 몰라도 ‘아바타’에 대한 한국 대중의 열광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갈 법한 일이다. ‘아바타’와 함께 청년세대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또 다른 상품 ‘아이폰’과 함께 생각해보면 쉽다. ‘아바타’는 결국 영화라는 장르로 씌어진 ‘아이폰’이라는 것이다. 압도적 신기술에 대한 열광이다. 한국인은 본래 신기술 상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해외 기술상품마저도 한국시장을 전초기지로 여기고 시험 출시할 정도다. 괜히 1960년대부터 기술입국을 내세운 게 아니다. 어릴 적 추억 속 최대 화제는 늘 해외에서의 축구 대결 아니면 국산 메가D램 개발이었다. 기술혁신은 한국인의 신앙이다.

물론 문화예술 상품 경우는 조금 다르긴 했다. 먼저 텍스트 세대 특유의 내러티브 집착이 있었다. 아무리 신기술로 포장돼 시각적 경이를 안겨줘도 정작 내러티브가 부실하면 자연스레 저평가가 나왔다. ‘내용이 없다’는 평가는 최대 경계신호였다. 또한, 신기술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장르는 한국인에 낯선 SF/판타지였다. 한국 고유의 무협지 정서와 맞을 듯하면서도 안 맞는 게 SF/판타지다. 와 닿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 영화 주 관객층인 10~30대는 텍스트 시대를 살아오지 않았다. 비주얼에 경도된 시대를 살아왔다. 그만큼 뛰어난 비주얼에 대한 평가는 더욱 높아지고, 떨어지는 내러티브적 완성도는 큰 문제로 와 닿지 않는다. 또한 20여년에 걸친 러브콜 끝에 마침내 신세대는 무협지보다 SF/판타지를 더 살가워하게 됐다. 종합하자면, 현재 영화 주 관객층에게 ‘아바타’는 ‘최고의 문화상품’이 맞다. 가히 혁명적인 상품이다. 김수현 작가 변을 빌자면, ‘현란한 시각 홀림’ 하나로도 되는 것이다. ‘따분하고 단순한 이야기’는 복잡하고 낯선 내러티브에 짜증내는 신세대에 오히려 강점이다.

여기까지는 단순하다. 미디어에 의해 수차례 지적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등장한다. ‘아바타’는 ‘해외상품’이라는 점이다. 지금 같은 집단주의적 신봉은 해외상품을 놓고 일어난 적이 없다. 자국상품, 그 중에서도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상품에 국한돼 벌어졌다. ‘디워’ 등이 대표적이다.

언급했듯, 집단주의적 신봉은 경제 불황 증후군의 한 증세이기 때문이다. 불황 정서는 집단주의는 물론, 민족주의, 대중주의도 함께 포괄한다. ‘고상한 척하지 않는 대중영화로서,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자국영화’가 키워드다.

이런 상황이기에, 제임스 캐머런이라는 미국 감독이 20세기폭스라는 미국영화사를 통해 만들어낸 ‘아바타’라는 미국영화는 애초 집단주의적 신봉을 일으킬 ‘기본’이 안 돼있다는 것이다. 캐머런 전작 ‘타이타닉’만 해도 ‘금모으기 해서 벌어들인 외화, ‘타이타닉’ 보면 다시 해외로 빠져 나간다’며 안보기 운동까지 일으킨 바 있다. 당대 최고의 신기술을 자랑한 ‘타이타닉’과 ‘아바타’ 사이 차이점이 대체 뭐냐는 말이다.

언뜻 이해가 안 가는 괴현상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앞선 ‘아이폰’ 사례와 함께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아이폰’ 역시 휴대전화 업계에서는 ‘아바타’만큼이나 압도적이다. 고가에도 불구, 출시 한 달 만에 25만 대를 팔아치우는 괴력을 발휘했다. 한편 ‘아이폰’ 열풍은 전체 휴대전화 수입액까지도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2008년까지 외국산 휴대전화의 월간 수입액은 2000만 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아이폰’이 등장했던 지난해 11월 6100만 달러, 12월에는 8600만 달러로 몇 배씩 수입액이 뛰고 있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그저 해외상품 인기 정도가 아니라 국내상품 타격으로 바로 이어진다.

이 같은 상황을 놓고 ‘국산품 애용’을 외치며 국산 스마트폰을 지지하면 어떻게 될까. 신기하게도 맹렬한 공격이 댓글을 통해 돌아온다. 공격 방향은 대개 비슷하다. 국내 대기업에 대한 불신과 불만 심리를 드러낸다. 돌이켜보면 ‘아바타’를 비판한 기사들에도 비슷한 반응이 일었다. ‘아바타’와 함께 공개된 한국영화 ‘전우치’를 언급하며, ‘국내 대기업이 만든 ‘전우치’’에 대해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고 역반응으로 ‘아바타’를 지지했다.

원인은 또 다시 경제 불황 정서로 귀속된다. 경제 불황기 특유의 반기업 정서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물론 ‘아바타’도 ‘아이폰’도 모두 대기업이 만든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경제 불황기에는 국내 대기업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진다. ‘나와 더 빈번히 접촉되는 쪽’ ‘나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쪽’이 ‘적’으로 간주된다. 얄미운 국내 대기업 상품보다는 차라리 해외상품을 사주고 싶다는 괴심리가 발동한다. 이 같은 튕겨내기식 반발심리가 ‘아바타’와 ‘아이폰’의 ‘해외상품’이라는 걸림돌을 치워주고, 집단주의적 신봉의 길을 열어줬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타이타닉 안보기 운동’은? 그 시절만 해도 이 정도의 반기업 정서는 없었다. 막 IMF 구제금융이 시작되던 때다. 자국산업에 대한 보호심리가 강했다. ‘국란’으로 인식됐다. ‘애국’이 먹혔다. 그러나 이후 10여년간 지속된 경제난, 취업난은 현재 주 관객층인 청년세대 의식을 바꿔놓았다. 국가가 내게 해준 게 뭐냐는 의식이 자리 잡았다. ‘애국 상품’이란 이제 먹히지 않는다. ‘애국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좋게 말하면 ‘글로벌화’된 셈이다. 어느 나라 것이건 좋은 거면 된 거고, 우리 것을 강조하면 시대착오적 국수주의자가 됐다.

이쯤 되면 그간 우리가 ‘애국 마케팅’이라 여겼던 요소들을 재점검해봐야 할 상황에 이른 셈이다. 과연 ‘국가대표’는 애국주의로 800만 관객을 동원했나? ‘해운대’는 할리우드에 비해 부실한 CG로도 애국심 고취로 1000만을 넘었나? ‘디워’는 애국주의 마케팅이 맞았나?

모두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위 세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경제 불황기 특유의 마이너리티 정서 자극이다. ‘국가대표’는 밑바닥 인생들이 스포츠 권력과 스포츠 강대국에 핍박당하며 분투한다는 내용이고, ‘해운대’ 역시 부산 서민들의 애환과 개발주의 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디워’는 감독 심형래 본인이 뛰쳐나와 비충무로 마이너리티로서 겪은 설움을 토했다. 민족주의 정서에 크게 기댄 ‘한반도’도 사실상 ‘애국’이라기보다 ‘분노’를 팔았다. 경제 불황기에 가장 잘 팔리는 정서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되짚어보면, 지난 수년 간 애국주의로 팔린 대중문화 상품은 하나도 없다는 결론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아바타’는 결국 국내에서 불가능하리라던 ‘해외영화 1000만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전까지 1000만 관객이란 ‘애국주의’라는 철통같은 관문을 통과해야만 얻어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늘 한국영화만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그러나 이 문은 사실상 이미 오래전부터 열려 있던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대중에게 확실한 충격을 줄 만한 경이로운 기술력으로 활짝 열어젖혔다.

‘애국심’이라는 마지막 방어선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이제 한국영화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던대로 마이너리티 정서를 한껏 자극시키는 자학적 블록버스터로 밀고 나갈 것인가. 3D 기술을 못 따라잡아 블록버스터로는 한 동안 승산이 없으니, 울고불고 가족애와 자기연민을 휘감아내는 중급 멜로영화들로 틈새시장을 칠 것인가. ‘아바타’ 성공과 그에 따른 대중의 집단주의적 신봉이 제시하는 진정한 화두는, 이처럼 ‘아바타’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영화계의 미래 생존 비전에 놓여있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캐네디언 로키를 본 순간 숨이 탁 막혔다

캐나다여행 2010/02/15 13:43 삐딱이

   ▲ 에어버스(Airbus) 320을 타고 밴쿠버에서 캘거리로 이동하는 도중 상공에서 바라본 밴쿠버 시내.

캐네디언 로키(Canadian Rocky Mountains). 북미 대륙 서부를 관통하는 로키산맥의 캐나다쪽 영토를 뜻한다. 지리상으로는 북쪽 로키산맥인 샘이다. 캐나다 서부 관광의 핵심 축이다. 알버타(Alberta)주의 왼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와 서쪽 경계, 미국과는 남쪽 경계를 이룬다.

캐네디언 로키에 있는 밴프(Banff)·재스퍼(Jasper) 국립공원과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 등은 세계 각지로부터 관광객들이 사시사철 모여든다. 봄·여름·가을에는 만년설의 로키산맥을 병풍처럼 하고 달리는 최고의 드라이빙 코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Icefields Parkway, 밴프~재스퍼)'와 맑은 청록색 물빛이 매혹적인 레이크 루이스 등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겨울철에는 레이크루이스 마운틴 리조트·선샤인 빌리지·마운트 노퀘이 등 '샴페인 파우더'를 자랑하는 빅3 스키장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1996년 여름 BC주 크랜브룩(Cranbrook)에 가려다가 시차 계산을 잘못해 캘거리까지 넘어갔다. 그 때 상공에서 캐네디언 로키를 처음 봤다. 14년 후인 2010년 2월 초 캐네디언 로키를 다시 찾았다. 지난해말 캐나다관광청알버타관광청이 주최한 '끝.발.원정대(끝없는 발견)' 제2기로 선발돼 알버타주 여행을 하게 된 덕분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불과 며칠 앞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진은 평소 갖고 있던 똑딱이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펜탁스로부터 협찬받은 DSLR 펜탁스 K-X로 찍었다.

다행히도 주봉 3000m가 넘는 산들이 어깨동무하듯 몇백km로 늘어선 캐네디언 로키를 한 눈에 보기 좋은 날씨였다. 상공에서 웅장한 캐네디언 로키를 본 순간 진짜 숨이 탁 막힐 정도였다.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만큼 장관이었다. 내 짧은 사진 실력으로는 도무지 원본의 감동을 살릴 자신이 없다. 다만 그 느낌의 일부만이라도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 글은 끝.발.원정대로 선발돼 지난 2월 5일부터 7일5박 일정으로 다녀온 밴프와 레이크 루이스, 캘거리 여행기의 서문 격이다. 앞으로 더욱 자세한 겨울철 캐네디언 로키 여행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 밴쿠버발, 캘거리행 에어 캐나다의 에어버스(Airbus) 320 기내.

[ESSAY] 저는 독일인, 한국 활 초단입니다

코흐 조헨 한국 이름 고요한·독일 자동차페인팅 한국회사 사장

射臺에 서면 "활 배웁니다"라며 과녁을 향해절을 한다.
활은 생명에 대한 감사와 恒心을 배우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380년 역사의 남산 궁도장을
문화재로 보존하지 않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독일인이다. 세상 누구나 애국심이 있듯 나 역시 독일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런 내가 매일 활을 쏜다. 한국의 전통 활인 국궁(國弓)이다. 서울 남산의 활터 석호정(石虎亭) 정식 멤버로서 국궁 공인 초단(初段)이기도 하다. 석호정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유단자 명단에 'Koch'라는 명패가 스무 명의 한국인들과 함께 섞여 있음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눈 내리는, 비 내리는, 바람 부는 날에도 나는 남산 활터 석호정에 있었다. 어느 날 수녀님 두 분이 들러 나를 보고 "표정이 참 밝으시네요"라고 어린이 칭찬하듯 말씀해주셨다. 외국인이 한국의 전통 무예를 하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또 어떤 날은 세 분의 스님이 구경을 한 뒤 나에게 "활 쏘는 분들 얼굴이 모두 맑으네요"라고 덕담을 해주셨다.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활은 비움의 철학을 배우는 것이다. 과녁에 맞히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육체적으로는 가슴을 비워야 화살이 곧게 날아간다. 진정한 궁사들은 '내가 과녁을 맞히었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과녁이 나의 화살을 받아주셨다'는 감사의 마음을 목례로 표시한다. 선궁일체(禪弓一體·참선의 과정과 활쏘기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활은 마음으로 쏘는 것'이라는 격언이 생긴 이유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활은 성실·겸손을 배우는 것이다. 활을 쏘는 사람들은 몇 개의 화살을 맞히었느냐는 것보다 예의범절을 우선시한다. 사대(射臺)에 서면 "활 배웁니다"라며 무겁(과녁이 있는 언덕)을 향해 절을 한 뒤 시위를 당긴다. 전국 360여개의 활터는 모두 국궁 도량이며, 활 쏘는 모든 과정을 도(道)로 여긴다.

활은 생명에 대한 감사와 항심(恒心)을 배우는 것이다. 하늘을 향해 활을 들고, 발시(發矢·화살을 놓음)를 한 뒤까지의 들숨과 날숨은 생물로서의 존재 확인 과정이다. 겉보기와 달리 활쏘기에는 몸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넘실거린다. 양쪽 발톱은 호랑이 발톱처럼 땅에 콱 박아야 되며, 두 다리는 쇠기둥처럼 굳건히 버티고, 항문에는 호두를 넣어 으깨듯 힘을 주는 자세가 전제조건이다. 볼거름(단전)에 기를 모으기 위함이다.

들숨을 멈추고 텅 빈 가슴으로 양팔을 당긴다. 마치 활의 줄이 끊어질 듯싶으면 과녁은 겨냥하되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화살을 놓는다. 활쏘기의 '위대한 가르침'인 이 과정은 독일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Eugen Herrigel·1884~1955)과 그에게 활을 가르친 일본인 스승의 대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오이게 헤리겔 '활쏘기의 禪')

"어쩔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활을 당기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진정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눈이 쌓이면 대나무 잎은 점점 더 고개를 숙이게 되지요. 그러다가 일순간 대나무 잎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데도 눈이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화살은 궁사가 의도하기도 전에 마치 대나무 잎에 쌓인 눈처럼 활을 떠나가야 합니다."

내가 활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96년 12월부터이다. 쌍용자동차 기술고문으로 서울 근무를 한 덕분이다. 내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려면 무엇을 배우면 좋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나의 귀여운 한국인 아내는 거침없이 "국궁을 배우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바로 석호정으로 가서 활을 배우기 시작했다. 석호정은 조선조 인조~현종(1623~1674) 사이인 1630년 무렵 창건되어 380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궁도장이다. 역사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이 그런 궁도장을 서울시 문화재로 보존하지 않는 이유를 아직 모르겠다.

석호정은 한국의 올림픽 양궁 6연승의 요람이기도 하다. 석호정에서 활을 쏘던 석봉근씨가 올림픽을 내다보고, 1970년대 초 미군 장교와 함께 고교생들에게 국궁을 바탕으로 양궁을 가르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30~50여명의 초등학생들이 활터로 와서 재잘거렸다. 석호정이 2004년부터 전통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무료로 2시간 동안 국궁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2008년까지 모두 5000여명을 교육시켰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석호정에는 나 이외에도 미국인 제시, 독일인 젤리거, 아일랜드인 브랜든, 일본인 고카와 히로요시 등 한국의 전통 무예인 국궁에 빠진 외국인들이 많다.

2년 전 독일로 귀국한 나는 뮌헨 내 집에 석호정과 같은 크기의 과녁을 만들어 놓고 틈만 나면 국궁으로 심신 수련을 하고 있다. 제2의 고향인 한국에는 1년에 한번 잠깐 들를 뿐이지만 석호정 회원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자랑스러워 월회비는 아직도 납부하고 있다.

동·서양 모두 근대까지 각각의 활을 무기로 썼지만, 이를 스포츠로 가장 눈부시게 발전시킨 나라는 한국뿐이다. 전통 무예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한국인은 위대하다. 독일인인 나는 그래서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고 있다.

(이 글은 코흐 조헨씨가 독일어로 쓴 것을 한국인 지인이 번역한 것입니다.-편집자)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샐린저 타계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미국 소설가 J D 샐린저(Salinger).

지독한 은둔 생활… 45년간 소설 한 편도 발표안해

전 세계적으로 65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미국 소설가 J D 샐린저(Salinger·91)가 고향인 뉴햄프셔에서 27일 노환으로 사망했다고 29일 외신들이 전했다.

샐린저는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은둔 생활을 고집했던 작가로 유명하다. 딸들을 비롯한 가족으로부터 "억압적이고 불쾌한 괴짜"라는 비난을 들었고,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찾아온 스티븐 스필버그를 문전박대해 돌려보냈다. 지난해에는 허락 없이 원작을 모티브로 속편을 쓴 작가를 상대로 판매금지를 요구하는 법정 소송을 벌이느라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 45년간 한 편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았던 샐린저는 10년 전 한 인터뷰에서 "15권의 소설을 더 썼지만 나 자신을 위해 쓴 것이므로 발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19년 뉴욕에서 폴란드 출신 유대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샐린저는 1932년 뉴욕 맨해튼의 맥버니 중학교를 성적불량으로 퇴학당하고 2년 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이때의 경험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펜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사건의 바탕이 됐다. 1940년 '젊은이들'이라는 단편을 발표하며 등단한 샐린저는 2년 후 보병으로 2차 세계대전에 소집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고, 군 생활 중에도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1951년 발표한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그는 전후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주인공이 학교에서 퇴학당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48시간 동안의 방황을 그린 이 작품은 거침없는 비속어 사용과 학교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아 논란을 빚었다. 특히 1980년 비틀스 맴버 존 레넌을 살해한 마크 챕맨이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소설은 미국 중·고등학교에 따라 제각각 금서 목록과 권장도서 목록에 오를 만큼 찬반 논란을 빚었지만 지금도 해마다 30만부 이상 팔리며 청소년들이 가장 사랑하는 책으로 남아 있다.

카리스마 프레젠테이션 … 세계는 왜 잡스에게 열광하나 [중앙일보]

 
2010 아이콘 떠오른 스티브 잡스 내면탐구
지난달 27일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iPad)를 시연하고 있다. 극적인 무대 연출을 이끌기 위해 거실에서 책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로이터=뉴시스]
스티브 잡스(55)가 새로운 물건을 내놓을 때마다 세계가 들썩인다. 지난달 27일 아이패드(iPad)를 공개한 이후 정보기술(IT)·미디어 업계는 물론 출판·신문 업계까지 새로운 혁신의 바람이 일까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잡스의 창의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잡스가 신제품을 선보이는 발표회는 그 제품의 창조자인 잡스 자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편의 연극 무대와 같다. 지난달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패드를 발표한 현장 역시 마찬가지다.

#잡스 자신을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

무대 뒤 거대한 대형 스크린에는 첫선을 보이는 제품이 비춰진다. 잡스는 아주 단순하고 깔끔한 검정 소파에 다리를 꼰 채로 앉아 있다. 이제 그의 분신처럼 된 검정 터틀넥 셔츠에 허리띠 없는 청바지, 그리고 캐주얼 뉴발란스 운동화. 다른 소품이나 장치는 없다. 아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보는 사람마저 더 이상 편안할 수 없다. 누구라도 새 제품을 아무 불편함과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동시에 모든 시선을 뒤편의 신제품으로 집중시킨다.

동작들도 매우 절제돼 있으며 계획돼 있지만 자연스럽다.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인물과 소품, 조명은 어떤 각도로 어떻게 비춰져야 하는지까지. 물을 마시며 호흡을 조절하는 것과 미묘한 정적이 주는 효과를 본능적으로 사용할 줄 안다.

잡스는 발표 초반 숫자를 나열한다. 그간의 성과를 보여주는 각종 통계자료다. 새로 소개될 제품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순서다. 마음에 드는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가 없자 잡스는 직접 ‘키노트’라는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고 완성시켜 오피스 제품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편집증에 가까운 완벽주의다.

이날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아이패드 이상으로 잡스를 잘 설명해주는 소품은 소파다. 스위스 출신 아티스트 르 코르비제의 작품이다. 매우 절제된 단순함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르 코르비제는 “창의적인 사람은 수도자(修道者)다”라는 말을 남긴 금욕적 인물이다. ‘자연만이 진실’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건축가이자 근대 화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개념을 최초로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힌두와 불교 뿌리 찾아 인도 여행

조지 나카시마 의자 스티브 잡스의 거실에 있는 유일한 가구. 일본계 미국인 나카시마의 가구는 원목의 질감과선을 살린 자연스러움과 실용성이 뛰어난 명품이다.
잡스가 그의 소파를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잡스의 정신세계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미혼모의 아들로 가난한 집에 입양된 잡스는 젊어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가 정식으로 자신의 종교를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동양적인 사상, 특히 선불교적 철학에 심취했다. 리드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활자연구)를 청강하던 시절 밥을 얻어먹기 위해 하레 크리슈나 사원을 자주 찾았다. 힌두와 불교의 뿌리를 찾아 인도를 여행했다. 불교 승려가 결혼식을 주례했다.

잡스의 불교적 정신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은 2005년 스탠퍼드대 연설이다. 암 투병의 경험을 소개한 그는 “내가 (암으로) 죽음을 직면했던 경험은 이후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되었다. 왜냐면 죽음 앞에선 모든 것들, 실패의 두려움이나 부담감과 같은 것들이 의미가 없어지고,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잡스는 금욕적이고 은둔적인 삶을 사는 채식주의자다.

본질적인 것을 직시하고, 불필요한 것을 과감히 배제하는 절제의 미학이다. 잡스의 집 거실에 놓인 유일한 가구가 조지 나카시마의 의자 하나인 것도 같은 이유다. 일본계 미국인 디자이너 나카시마 역시 동양적 세계관을 원목가구로 구현해냈다. 단순하고 실용적이며 자연의 결을 그대로 살린 의자는 세계적 명품으로 평가된다.

#엔지니어 실용성과 아티스트 감성 갖춰

르 코르비제 소파 지난달 27일 잡스가 아이패드 프레젠테이션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브랜드의 의자. 르 코르비제는단순하고 절제된 작품으로 유명한 스위스 출신 건축가·화가.
잡스의 친구인 오라클 대표 래리 엘리슨은 “그는 엔지니어의 마인드와 아티스트의 감성을 겸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절제와 금욕의 철학이 미니멀리즘이란 예술적 감성이라면, 엔지니어의 마인드는 제품의 실용성으로 축약된다.

잡스는 지난달 프레젠테이션 말미에 “기술과 인문학(liberal arts)의 교차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기에 애플이 아이패드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용자들이 제품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사용자를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며 끝을 맺었다. 가장 단순한 명제이면서 하이테크 기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를 말한 것이다.

그는 애플을 창업한 1970년대부터 제품 내부 기판의 납땜 상태를 다듬어야 하고 배선을 줄여 소음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폰이 배터리를 교환할 수 없다는 불만에도 이음새가 없는 일체형을 유지하고 배터리 성능 향상에 공격적이었다. 많은 사람은 애플 제품의 성공 요인을 성능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사용 시간이 늘어날수록 제품 곳곳에 배어 있는 편의성을 느끼게 된다. 매뉴얼에는 없지만 사용하다 보면 사소한 부분에서 편리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 역시 의도된 설정이다. 이미 제품의 탄생 과정에서 수많은 질문이 오고 간다. 손가락을 돌려서 조작하는 아이팟의 클릭휠 인터페이스는 수만 곡 가운데 찾고 싶은 노래를 단 세 번의 클릭으로 고를 수 있다. 요즘에 회자되는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다.

애플 출신의 한 연구원은 “엔지니어가 잘난 체하며 많은 기능을 보여주면 잡스는 자동기능으로 만들라 합니다. 어려운 일이라 자동화는 실제로 80% 정도만 구현됩니다. 그러나 사용자는 그 정도로 만족한다는 걸 잡스는 안다”고 말한다.

잡스가 97년 애플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목적 없고 비전 없는 제품 라인을 줄이는 일이었다. 버튼이나 형태에 대한 질문을 최종 사용자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던진다. “과연 이 기능이 필요할까?” 당장 구현 가능한 기능이라 해도 편리한 사용법이 구현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다음 버전으로 미룬다.

잡스는 과거를 회상하며 애플사를 설립할 때 아이디어 하나에 매달렸다고 한다. 신제품이 출시되면 분석가는 수치적인 성능에 집중한다. 프로세서 속도, 카메라가 달렸는지, 디스플레이 방식은 무엇인지. 아이패드의 화면이 4:3에 가까운 비율이라 16:9 와이드 영상 비율이 아닌 점만 주목한다. 그러나 아이패드의 화면 비율이 보편적인 책의 사이즈와 같다는 점은 간과한다.

잡스는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도 혼신의 힘을 쏟아붇는다. 예술가적 완벽주의인 동시에 기술의 문제를 사용자 입장에서 고민하는 과정이다. 아이팟 뒷면의 거울 같은 표면 처리를 위해 일본의 장인들이 밀집해 있다는 니가타현에 의뢰해 완성시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다음에야 잡스는 자신 있게 대중 앞에 나서 외친다. “보세요. 우리 제품의 뒷면은 타사의 제품 앞면보다 아름답습니다.”

①1998년 스티브 잡스가 모니터와 본체가 일체형으로 디자인된 아이맥을 발표하던 모습. 아이맥은 기울어져 가는 애플을 되살린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②2005년 아이팟 비디오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음악시장이 활성화되자 뮤직비디오와 드라마, 영화를 추가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③2007년 가장 모범적인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평가받는 아이폰 발표 장면. 잡스는 이날 회사명을 ‘애플 컴퓨터’에서 ‘애플’로 바꾸고 통신 분야에 뛰어들겠다고 발표했다. ④2009년 4월 잡스가 간이식 수술을 받은 후 같은 해 9월 아이팟 나노 비디오를 가지고 대중 앞에 처음 등장했다. 수술 후 급격한 체중 감소가 일어났다. [중앙포토]
그의 새 창조품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열광한다. 동시에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조롱도 이어진다. 그러나 잡스는 이미 세 번, 매킨토시(1984년)·아이팟(2001년)·아이폰(2007년)의 성공신화로 자신의 천재성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IT 문화까지 바꿔놓았다.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아이패드를 두고 세계가 술렁이는 이유다.

남궁유 디자이너 (중앙일보 디자인센터)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