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배운다>

산을 떠나 6, 7년 시정(市井)의 절간에서 사는 동안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았다. 얻는 것이라면 이 어지러운 시대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면서 세상 물정을 몸소 보고 느낀 점이었고, 잃은 것은 내 안에 지녔던 청청한 빛이 조금씩 바래져갔던 점이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자기 내면에 지닌 빛이 바래져간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수행자가 빛의 기능을 잃는다면 자신뿐 아니라 그 둘레까지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게 마련이니까.

시정에서 뭣보다 아쉬웠던 것은 내가 기댈 만한 숲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그 그늘 아래서 사유하고 행동하던 울창한 숲도 날로 비대해만 가는 수도권에 침식을 당하고 말았다. 밖에서 밀려드는 소음이 너무 두려워 내 안에서 움터 나오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빛이 바래져갔던 것이다.

산승(山僧)의 본거지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숲이 있는 적정처. 지난해 가을 숲 속에 산거를 마련하여 훌쩍 귀환했던 것이다. 마치 한 마리 산짐승이 들에 나가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지친 몸으로 옛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온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뜻을 같이하던 동료들 곁을 떠나온 이안함의 무게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지만, 건강과 빛을 잃어가던 내 처지로서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숲에는 질서와 휴식이, 그리고 고요화 화평이 있었다. 숲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안개와 구름, 달빛과 햇살을 받아들이고, 새와 짐승들에게는 깃들일 보금자리를 베풀어준다. 그리고 숲은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을 할퀴는 폭풍우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것이 숲이 지니고 있는 덕인 모양이다.

숲으로 돌아오자 우선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흙을 만지고 나무들을 대하니 시정에서 묻은 때가 씻기어갔다. 맑은 바람을 쏘이고 시원한 샘물을 마실 때 시들었던 내 속의 뜰이 조금씩 소생하기 시작했다. 침묵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숲에 새로운 물감이 번지고 새들의 목청에 물기가 배자 나도 한 그루 정정한 나무인 양 온 몸에 푸른 수액이 돌았다. 외부의 소음에 매몰되어 들리지 않던 저 <바닥의 소리들>이 조금씩 들려오는 것이었다.

흙과 나무와 물로 이루어진 자연에는 거짓이 없다. 뿌리고 가꾼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 질서 앞에서는 억지나 속임수 같은 게 용납이 될 수 없고, 또한 그 세계 안에서는 아무것도 쇄신할 게 없다. 본래 갖추어진 그대로이니까. 그저 진실로써 대하면 진실의 응답이 있을 뿐. 끈기있게 기다리면서 길들일 줄 알면 되는 것이다.

지난봄 숲에 새 물감이 풀리고 있을 무렵 자연의 조화를 지켜보면서 나는 여려 가지로 배운 바가 많았다.

나무들은 저마다 가지 빛깔을 잎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그 어떤 나무도 자기를 닮으라고 보채거나 강요하진 않았다. 저마다 자기 빛깔을 마음껏 발휘함으로써 숲은 찬란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나무들이 한결 같은 빛깔을 하고 있다면 숲은 얼마나 답답하고 단조로울 것인가. 그것은 얼이 빠져버린 고사림(枯死林)이지 생명이 깃든 숲은 아닐 것이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허공에 가지를 펼치면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무들이기 때문에 자기답게 살려고 자신의 빛깔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자기 나름의 빛깔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찬란한 조화를 이룬 것이다. 날이 갈수록 그저 획일화로 치닫고 있는 오늘이 우리로서는 그 장엄한 조화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흙과 나무와 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정복의 대상은 아니다. 몇 시 간만 비를 내려도, 몇 치만 눈이 쌓여도 벌벌 기는 우리 주제에 정복이란 가당이나 한 말인가. 그 질서와 관용 앞에서 인간은 분수와 역량의 한계를 알고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인간의 배경은 피곤한 도시문명이 아니라 그대로 놓여진자연일 것 같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람답게 사는 법을 거듭거듭 배워야 할 것이다. 인류사랑 위대한 종교와 사상이 교실 아닌 숲에서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자연은 인간에게 영원한 모성(母性)인 것이다.

그런데, 요 근래 우리 둘레의 자연은 무슨무슨 구실로 말할 수 없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한번 파괴된 자연은 다시 회복될 길이 없다는 데에 안타까움이 더하다. 주말 같은 때 산사 주변을 살펴보라. 거기서 우리는 오늘 이 땅의 뒤뜰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 나라 국민의 자질은 수출고나 소득증대의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자연을 얼마만큼 아끼고 사랑하느냐에, 자질의 척도를 두어야 할 거라는 생각이다.

-   법정, 1976. 8

봄맞이 집 단장 2탄으로 이번엔 방문 페인팅

선택한 색상은 "Glad Yellow"

칠 작업이 다 끝나고 보니 정말 I am glad!

 봄비가 시원하게 내리던 5월 어느 밤

거실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벚나무의 잎이 너무 신선해보여

몇 커트 찍어보았다

"누군가 저희에게 자신 있느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특별한 선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닌 대한민국에는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료의 눈에도 보입니다. 붉은 악마의 함성에서도 들립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투혼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것을 팀이라고 부릅니다."

-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 주장 박지성

 

2010 FIFA World Cup South Africa - 대한민국 응원가 듣기

1. THE SHOUTS OF REDS I - TRANSFIXION

2. 국가대표팀의 테마(우리는 하나) - HAM

3. THE SHOUTS OF REDS II - BIG BANG & TRANSFIXION

제사상에는 여러 가지 음식이 올라간다. 제사상 음식이야말로 보수적이기 짝이 없어서 전통 명문 종가라면 지금도 수백 년 전통을 지키고자 애쓴다.

상차림이 그대로인 것은 둘째 치고 조리 방식도 요즘 식이 아닌 예전 그대로를 고집하며, 상 위에 올라가는 음식 재료에도 신경을 써서 가급적이면 수입품이 아닌 우리 재료를 쓰려고 한다. 그렇기에 제사상의 음식은 요즘 음식과 많이 다르다. 포나 적도 요즘과는 다른 방식이라 신세대들에게는 제사 때만 볼 수 있는 신기한 음식이 많다.

하지만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도 그럴까? 보통은 탐스럽고 먹음직한 사과나 배가 제사상을 떡 하니 차지하는데, 격식을 많이 따지지 않는 집이라면 오렌지나 바나나 같은 수입 과일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5대조까지 제사를 올리는 집이라면 5대조 조상님께서는 살아생전 요즘의 후지 사과나 신고 배를 맛보셨을까? 5대조면 대개 150년 전의 분이니 혹시 사과나 배는 맛보셨더라도 요즈음 과일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과나 배는 아니었을 것 같다.

세계를 한 바퀴 돌아 우리에게 온 사과

사과, 배, 포도, 귤, 참외, 수박, 감, 살구, 복숭아, 자두 등 많은 과일이 있지만 어떤 것은 너무 흔하기에 오래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흔하지만 외래종일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과는 오래되었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부터 대표적인 과일이기도 했고, 조금은 다르지만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능금 같은 야생종도 볼 수 있었다. 홍옥과 국광 같은 사과는 지금은 찾기 어렵지만 그래도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든다.

사과의 원산지는 서아시아지만 사과가 본격적으로 과일이 된 곳은 유럽이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 일대에 퍼진 사과는 성서에서 선악과를 대표하는 것으로 흔히 알려졌는데, 아마 가장 맛있게 생긴 과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사과가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종류들은 시고 떫은 맛 때문에 과일주의 원료밖에 되지 못했다. 이 사과가 다시 한 번 변신하게 된 것은 미국으로 건너가서였다. 18세기에 미국의 존 채프먼이라는 사람은 포대자루 같은 누더기를 입고 걸식을 해가면서 미국의 중서부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과나무를 심었다. 채프먼 덕분에 이 사과나무들이 서로 교배와 번식을 통해 새로운 사과로 거듭났다.

우리나라에 사과를 들여온 사람은 19세기 말의 선교사들이었다. 기독교와 함께 사과가 들어온 것이다. 이 사과가 퍼져나가 황해도의 황주와 대구가 이름난 사과 산지가 되었다. 그 이전에 있던 능금은 중국을 통해 고려로 전해졌는데, 서울의 자하문 밖, 지금의 세검정 일대와 황해도가 능금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지금은 흔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껍질이 푸르고 향기가 독특하며 맛이 단, '인도 사과'로 불리던 품종도 있었다. 이는 종자를 가져온 선교사의 고향인 미국 '인디애나 주'가 잘못 번역되어 '인도 사과'가 된 것이다. 여하튼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과수원은 거의 일본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고, 이 사과나무의 육종도 거의 다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후지나 홍로 같은 품종도 일본에서 들여왔다.

오래전부터 친숙했던 감과 참외

감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친근한 과일이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와 같이 시가에 등장할 만큼 친숙했다. 감을 말린 곶감은 설화에도 등장하는 단골 주전부리이기도 했다.

감과 인척 관계인 나무로는 고욤나무가 있다. 대개는 감보다는 고욤이 튼튼하고 잘 자라기 때문에 고욤나무에 감나무 가지를 접붙여 길렀다. 감물을 들인다 하여 감으로 염색을 하기도 하는데 염색에는 먹는 감보다는 이 고욤을 주로 썼다.

감이 흔한 과일이었다는 사실은 대추나 밤과 같이 떡의 보조 재료로도 널리 쓰인 데에서 엿볼 수 있다. 순창의 명물인 감떡은 이 지방의 특산물로, 떠서 먹는 떡인데 모양부터가 고추장과 비슷하다. 아마도 고추장의 제조법이 감떡으로 옮겨온 듯하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전래된 참외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과일이다(참외의 서양 판본인 멜론은 아프리카가 원산지다). 참외가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재배한 과일이고 예전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옛 그림의 참외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능금이나 돌배가 그다지 먹음직스럽지 않았던 시대에 이 참외의 값어치가 얼마나 대단했을지는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

노랗고 줄이 있는 것은 은천참외고, 줄이 없이 매끄러운 것이 황진주단참외다. 충청도 성환에서 나는 것을 성환참외라 하는데 이는 녹색에 얼룩이 있어 개구리참외라고도 한다. 참외는 날로 먹기도 했지만 박속처럼 된장 단지에 박아 넣어 장아찌로 먹기도 했다.

참외의 '외'자가 들어간 채소인 오이는 참외와 같이 인도가 원산지이지만 참외보다는 늦은 시기에 들어온 것 같다. 잎사귀나 줄기 모양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해 '외'라는 이름을 공유해야 했지만, 이전부터 있었던 '외'는 진짜라는 이름을 덧붙여 '참외'기 되었고 늦게 들어온 오이가 그 이름을 이어받아 '오이'가 되었다. 사실 오이는 대개 채 여물기 전에 먹으니, 호박의 예로 본다면 '애오이'로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늙은 오이가 맛이 쓰기에 차츰 어린 것만 먹게 되어 '외'라는 이름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귤과 배는 제대로 우리 과일이다

귤은 흔히 외국 과일로 생각한다. 예전에는 귤이 흔하지 않았거니와 대중화된 것도 오래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귤은 원래부터 제주도에 있던 과일이다. 지금도 제주도의 제주시와 광령리에는 토종 귤나무가 살아 있다.

물론 지금의 귤나무는 뒤에 들어온 온주밀감 계열로, 재래 귤과는 조금 다르다. 재래종 귤나무는 그보다 조금 작기는 했지만 귤이 열렸다. 예전에 조정에서는 제주도 귤이 진상품으로 오면 특별히 과거 시험을 치르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희귀품이었지만 먹을 수는 있었던 것이다. 모양이 귤과 닮기는 했지만 맛은 진저리가 날 만큼 신 유자는 비교적 흔한 과일이었다. 향기가 좋기는 하지만 너무 신 맛 때문에 꿀에 재워 유자청을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배도 능금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자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삼국시대의 기록에도 배가 나오며 봄꽃의 전령으로 배꽃을 읊은 시도 많으니 말이다. 달밤에 선연히 핀 흰 배꽃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놀라움이다. 하지만 이때의 배는 지금처럼 크고 먹기 좋은 배가 아닌 돌배였다. 지금도 야생하는 배나무에서는 돌배를 구경할 수 있다.

이 돌배가 일본에 건너갔다가 선진 육종기술로 다시 돌아온 것이 지금의 배다. '신고'나 '이십세기'와 같은 배의 품종은 모두 일본에서 개발되었다. 배는 우리의 기후와 토양에 잘 맞아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과일 상품이다.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도 우리나라에서 기르면 더욱 수분이 풍부하고 맛 좋은 배로 거듭난다. 이 때문에 우리도 뒤늦게나마 나주에 배 연구소를 세워 새로운 품종의 배를 개발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그림에도 등장하는 복숭아와 포도

복숭아와 자두, 살구와 매실은 나무와 꽃의 모양새가 서로 비슷하다. 중국과 동북아시아가 원산지라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자생하고 있었을 것이고 열매를 먹기도 했을 것이다. 민화에는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 그림이 나오는데 이는 서왕모가 기르는 천도복숭아를 그린 것이다. 이 복숭아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뜻이니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옛날에도 복숭아와 자두, 살구가 있기는 했지만 탐스럽고 맛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기록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크기가 요즘 것과 달리 작고 맛도 형편없고 시었으리라고 짐작하는 게 옳다.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자두가 볼품없다는 기록이 나온다. 요즘의 복숭아, 살구, 자두는 거의 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육종한 종을 들여온 것이다.

포도는 고려 시대의 도자기에도 무늬로 들어가 있으며 조선 시대의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한 송이에 알맹이가 많기에 다산을 의미하는 뜻에서 그려 넣었다. 포도의 원산지는 서아시아의 흑해 연안 지방이라고 하는데, 이 포도가 유럽에 전해져 지중해 유역의 대표적인 과일이 되고 과일주의 대명사인 포도주를 만들어냈다. 포도가 중국에 들어온 것은 장건의 서역 원정 이후라고 하니, 우리나라도 포도를 재배한 역사는 오래된 것 같고 산에서 자생하는 산포도인 머루도 있었다.

그런데 그림에 등장한다고 해서 다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려청자에 보면 여지(荔枝)라는 과일이 자주 등장한다. 양귀비가 이 과일을 특히 좋아해, 장안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이 과일을 날마다 파발마를 동원해 날랐다고 한다. 그런데 여지는 날이 더운 곳에서만 자라는 열대 과일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자랄 수 없다. 아마도 무역이 활발한 고려에서는 귀족들이 중국 남부에서 이를 수입해다 먹었던 것 같고, 그런 고급 과일의 이미지가 고려청자에 표현된 게 아닌가 하고 짐작한다.

조상님 전에 올린 과일

대표적인 여름 과일인 수박은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래도 고려 말부터는 자리를 잡았다.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추정되는 수박은 몽골이라는 거대 제국의 길을 따라 중국을 거쳐 고려에 등장한다.

조선의 풍운아였던 허균이 쓴 맛 기행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보면, 고려를 배신하고 몽고귀화고려인을 괴롭힌 홍다구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개성에다 수박을 심었다고 한다. 모양이 박과 닮았고 그 안에 시원한 물이 가득 찼으니 수박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처음 심은 사람이 누구였든, 더운 여름에 찬 냇물에 식혀 먹는 수박의 맛은 일품이었으니 여름 과일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앵두, 오디, 산수유처럼 알맹이가 작은 과일은 오래전부터 자생하고 있었지만 과육이 적어 상품화되기에는 부족하다. 딸기도 산딸기 같은 야생종이 자라지만 이를 과일이라 부르기는 좀 머쓱해진다. 무화과는 이름이 한자여서 꽤 오래된 듯하지만 실제로는 20세기에 이르러 아라비아 남부에서 도입되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예전 과일들은 지금의 과일전에 있는 과일들에 비하면 정말 먹을 만한 것이 많지 않고 볼품없었음을 알 수 있다. 과일 구실을 제대로 한 것은 기껏해야 감과 참외 정도였고, 귤은 높은 사람들만 맛볼 수 있는 진귀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제사상이나 잔칫상에 올리는 과일 대부분은 우리가 지금은 과일이라 부르지도 않는 마른 과일인 건과였다. 밤과 잣, 대추가 대표적인데, 대개 옛 제사나 연회의 상차림에 과(果)로 표기된 과실의 자리는 이것들이 차지했다. 밤과 잣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것으로, 예로부터 품종이 좋기로는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생산지였다.

대추도 가을에 수확하여 말린 것을 떡과 과자에 넣거나 상차림, 한약재로도 두루 썼다. 호두는 한나라 때 장건이 서역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고려 즈음에 들어온 것 같다. 고려 때 원나라에 사신을 갔던 천안 사람 유청신이 씨앗을 얻어 고향에 심었으니 천안이 호두 산지로 유명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천안의 호두는 1940년대에 일본인들이 호두 재배를 장려하면서 일본에서 가져다 심은 것이다.

혀끝에 느껴지는 육종학의 발달

요즘의 과일전을 둘러보면 정말 철 따라 많은 과일이 오른다. 늦은 봄에 먹던 양딸기는 한겨울에 나오고 정작 제철에 나오던 노지 딸기는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다. 여름철의 수박과 참외도 봄부터 시작해서 늦가을까지도 흔하고, 한겨울이라도 비싼 가격을 탓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키위, 바나나. 오렌지, 자몽 같은 외래 수입 과일도 흔하고, 칠레에서 들어온 탐스런 포도가 겨울철 과일전 좌판을 차지하는 것도 이제는 낯익은 풍경이다.

종류만 다양해진 게 아니라 맛도 아주 빼어나다. 예전에는 수박도 맛있는 것을 고르느라 먼저 삼각형으로 조금 잘라 맛을 보고 샀지만 이제는 웬만하면 맛없는 과일을 찾기 더 어렵다. 이만하면 조상님 제사상에 올리는 과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비록 조상님 살아생전에 이렇게 맛있는 과일들은 없었겠지만 영혼이라도 요즘의 뛰어난 과일을 맛보는 것을 어찌 탓하랴. 조상님들께서도 요즘 과일에서 현대 육종학의 발달을 본다면 마냥 신기해 할 것만 같다.

장인용 출판인

산림과학원, 국내 첫 꽃매미 천적 발견 [연합]

 
''벼룩좀벌''이라는 꽃매미 천적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뉴시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해충연구팀은 최근 급속히 번지고 있는 해충인 '꽃매미'의 천적을 발견했다고 18일 밝혔다.

중국에서 건너온 꽃매미는 포도나무와 버드나무, 가죽나무 등의 수액을 빨아 먹어 나무를 말라죽게 하거나 많은 양의 분비물 배설로 그을음병을 유발해 과실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해충이다.

지난 2007년 전국적으로 7㏊에 불과하던 꽃매미 피해 면적이 올해는 8천94㏊로 급증했다.

산림과학원이 발견한 꽃매미 천적은 '벼룩좀벌(Anastatus sp)'로 꽃매미의 알 속에 자신의 알을 산란해 꽃매미의 천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벼룩좀벌은 지난달 충북 청원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침입종인 꽃매미와 국내 토착종간의 천적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된다.

아울러 한 개의 알에 여러개의 알을 산란하는 다른 종들과는 달리 꽃매미 알 한개에 한개씩의 알을 낳아 천적으로써 효율성도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꽃매미의 천적으로 지목된 벼룩좀벌은 전 세계적으로 45속 907종이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서는 송충살이벼룩좀벌 등 2속 7종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산림해충연구팀 최원일 연구사는 "꽃매미 알에 기생하는 국내 토종 천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라며 "꽃매미 방제효과가 있을 경우 대량으로 증식해 방사하는 방법 등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우리 회사가 스폰한 

"2010 DJ World Festival"

한강난지공원, 토요일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

입장인원 약 5만 명.

우리 회사 부스도 참관할겸 해서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각에 도착했는데, 와우!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의 소위 신세대문화가 이렇게까지 발전(?)했는지 미쳐 몰랐는데,

그날 행사장에서 자주 눈에 띄던 스티커가 대변하듯,

I am _________

I want __________

"나"와 "내가 원하는 것"이 중심이되는

진정한 개인주의가 한국에도 점차 확단되는 듯하다.

어정쩡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개성이 강한 그리고 책임감 있는 개인주의가

나는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는데,

그날 약간은 낯설어 보이는 신세대 젊은 친구들의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도심 속에서 ‘일탈’을 즐기는 페스티벌이 열린다.

한강 난지지구에서 ‘서울월드DJ페스티벌’ 4번째 무대가 상상공장 주최로 8일 오후 2시부터 9일 새벽까지 개최된다.

이 행사는 야외 DJ페스티벌로 매회 이색적인 무대와 다양한 이벤트로 주목을 받아 왔고 DJ 뿐만 아니라 락,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 간에 음악적 교류이 장이 되어왔다.

이상은, ‘내귀에 도청장치’, ‘국카스텐’, SoulCompany, Soul Dive 등 국내 음악인과 Vandalism(호주), Fantastic Plastic Machine(일본) 등 해외 음악인이 참여한다.

올해는 ‘Silent Disco’ 프로그램이 주목된다. Silent Disco는 무선 헤드셋을 통해 들리는 DJ음악에 맞춰 각자 춤을 추는 것으로 헤드셋을 착용한 사람 이외에는 어떤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Silent Disco’란 이름이 붙여졌다.

또 한국과 일본 DJ 간에 이색적인 ‘겨루기 한판’도 펼쳐진다. ‘No Tricks Battle International League Korea vs Japan’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대회로 한국과 일본의 DJ가 한 자리에 모여 ‘스크래치’ 대회를 갖는다.

스크래치는 LP를 이용해 소리 샘플을 가지고 LP를 상하로 움직이거나 믹서를 이용해 컷팅을 해서 다양한 소리를 내는 기술이다

한일 DJ들의 DJ스크래치 예선전에서 승리한 최종 두 팀은 행사 당일 메인 무대에서 마지막 각축전을 펼치게 된다.

매년 열리는 ‘축제마을’ 프로그램은 평소 흩어져 있던 문화 집단 및 커뮤니티를 한 자리에 모아 마을을 형성해 다양한 단체간에 네트워크를 통해 돈독한 교류와 협력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하우스,일렉트로닉,시부야케이의 거장 DJ, F.P.M(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이 7일 이번 행사를 위해 내한 한다.

F.P.M은 아무로나미에,펫보이슬림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음악감독 및 프로듀서로 국내에선 한류 열풍의 주역들인 보아,동방신기의 음악감독 및 프로듀서로도 알려졌다.

<경향닷컴 손봉석 기자 paulsohn@khan.co.kr>

 

우리 회사 담당직원들

다가올 미래의 관건은 감성 커뮤니케이션의 여부에 달려있다.

[아이엠리치]며칠 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의 미래학자인 빌 할랄교수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엘빈 토플러 등과 함께 세계미래학자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미래기술혁명(Forcasting Technology Revolution)을 강조했다. 즉 “지식경제 이후, 새로운 문명 시대가 열리고 있다(Beyond Knowledge).” 는 요약된 외침이었다.

즉 빌 할랄교수는 “이제 농업과 산업, 그리고 서비스ㆍ정보(IT) 혁명에 이은 4번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며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단순반복적인 육체적, 정신적 노동에서 벗어나 꿈과 이상, 도덕, 철학 같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2008년 하반기 리먼 파산 이후 시작된 세계적인 불경기가 그 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시대를 포스트 지식경제, 즉 ‘Beyond Knowledge’라고 하며 큰 위기는 인류에게 새로운 비즈니스라는 기회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이나 발전된 IT 기술, 로보틱스 등은 인간을 단순 반복적인 육체, 정신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며 “이제 보다 정신적인 것, 도덕, 철학, 신념 같은 분야에 사람들이 매달리고, 이는 또 다른 차원의 문명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마트폰이니 하는 것도 금새 사라지고 더욱더 발달된 것이 생산될 것이고 더욱 빠르게 진화된 기기들에 의한 삶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기존의 폰으로도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다고 웃었다. 문제는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질이고 방법이지 기계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생활속에 로봇이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고 인간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아무리 진화된 기계라 할지라도 인간을 넘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있다. 바로 인간과 인간간의 감정. 의식. 마인드가 버무려진 말. 대화. 커뮤니케이션일 것이다. 더욱더 그 중요성은 커질 것이고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해질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콘텐츠와 스타일로 이루어진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하워드 가드너교수는 과학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이성을 지배하는 좌뇌가 작동한다. 하지만 최종 의사결정을 할때는 감성을 지배하는 우뇌가 작동한다.”고 한 바 있다.

생각은 논리로 하지만 구매 결정이나 이성적 결정이라고 부르는 결론에서는 반드시 논리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21세기를 드림 소사이어티라고 정의했다. 드림 소사이어티는 한마디로 꿈과 감성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는 또 1인당 국내총생산이 만 5천 달러를 넘는 나라의 소비자들에게 상품의 기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무슨 말인가? 결국 기업의 부는 상품의 기능적은 측면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함으로써 이룰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특별한 상을 제정해 수여하는 것도 다 스토리가 된다.

보랏빛 소가온다의 저자 세스 고딘은 신작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에서 마케터는 특별한 종류의 거짓말쟁이이자 탁월한 스토리텔러라고 했을 정도이다. 성공적인 마케팅이란 소비자들에게 그 상품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한 스토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뛰어난 마케터는 감각에 호소하면서 강력한 첫인상을 지닌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어야한다.

디지털시대에는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텔링파워가 크다.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일수록 스토리텔링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을 파고드는 이야기의 힘은 커뮤니케이션의 한 장르로서 지식경제 이후의 가장 큰 사람의 힘이 될 것이다.

[아이엠리치(www.ImRICH.co.kr) 이현정 칼럼니스트 / 방송인. 스피치&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