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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이명박 박근혜 안상수 세 사람에게 묻는다

양상훈 편집국 부국장

46명 죽인 가해자의 축구팀 응원한 대통령
범인을 정면으로 보지 않는 박 전 대표
11년간 병역기피하고 출세한 안 대표

먼저 이명박 대통령에게 묻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월드컵 축구에서 북한브라질에 1 대 2로 패한 것에 대해 "북한이 2 대 1로 이겼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참모들은 이 이야기를 기자들에게 전하면서 "천안함 침몰로 남북 간 대립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이 같은 민족에 대한 동질감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평상시였다면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은 기사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에 타고 있던 우리 군인 46명이 북한 공격으로 떼죽음을 당하고, 구조 과정에서 다시 10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있은 직후였다. 천안함이 공격받았어도 남북 관계가 영원히 끊어질 수는 없다. 언젠가 다시 협상도 해야 한다. 대통령이 굳이 대북 정책에 대해 말하려면 그렇게 정면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북한이 이겼으면…"이라고 한 것은, 옆집 남자에게 제 자식이 맞아 죽었는데 다음 날 그 아버지가 "그래도 그 옆집 아들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한 것과 같다.

지금 이 나라에는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은 그 사람들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몰표를 주어 한나라당에 패배를 안겼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그들에게 "북한이 이겼으면"이라고 영합하려 한 것 아닌가. 천안함이 이제 '인기' 없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 두 동강 난 군함이 그대로 있고, 죽은 부하들의 뼛가루가 아직 썩지도 않았고, 유가족들의 통곡이 채 멎지도 않은 지금, 군 통수권자가 제 부하들을 죽인 가해자의 축구팀을 응원했다는 사실을 일부러 공개하는 것을 보면서 달리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다.

우리 군인들은 개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유엔 안보리 성명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국민의 20~30%가 범인을 눈앞에 두고서도 보지 않으려 하고, 배웠다는 사람들은 그러는 게 마치 잘난 것인 양하고, 사회는 불과 몇 달도 지나지 않아 군인들의 죽음을 까맣게 잊어가고 있다. 이런 나라는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묻는다. 박 전 대표가 천안함 사태에 대해 한 말은 많지 않다. 그는 천안함이 침몰하자 먼저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그다음엔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어야'라는 글을 썼고, 국제합동조사단 발표가 나오자 "대통령께서 판명이 난 다음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의 입에서 '북한'이 나왔는지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박 전 대표가 국민 앞에서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은 사죄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박 전 대표도 온갖 괴설(怪說)들을 마음 한편에 두고 있는가, 그렇게 믿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나, 아니면 대통령 된 다음에 정상회담 할지도 모르는 김정일을 의식하는 건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에게 묻는다. 안 대표는 11년간 병역을 피하다 결국 군 면제를 받았다. 이것은 다른 군 면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가 입대 영장을 피하며 도망 다닌 이유는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선 공직(公職)에 나가기 위해 '빽'까지 써서 아픈 몸을 속이고 전쟁에 참전하고, 공직에 나가기 위해 시력검사표를 달달 외워 근시를 속이고 입대하는데, 이 나라에선 공직에 나가기 위해 입대 영장을 피해 도망 다닌다.

공직은 공공(公共)을 위해 일하는 자리다. 공공을 위해 일하는 최고가 병역이다. 그렇다면 안 대표가 11년간 병역을 피하면서 추구한 공직은 어떤 자리인가. 안 대표에게 공직이란 개인의 일신 영달을 위한 자리 아닌가.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은 6·25가 발발했을 때 20대 중반이었는데도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다. 듣도 보도 못한 부대에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상의 병역 기피다. 이들은 몸을 피하고 있다가 제 또래가 전쟁터에서 죽어가며 나라를 지키자 나중에 나서서 대통령이 됐다. 군사정권 이후 대통령 4명 중 군에 간 사람은 1명뿐이다. 그나마 군에 간 사람도 군을 사람이 썩는 곳으로 생각했다.

누가 이런 사람들을 대통령으로 뽑았는가. 국민이다. 국민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군에 안 가려고 제 손가락을 자른 것으로 알려진 사람을 도지사로 당선시켰다. 그리고 이번에 한나라당 대의원들은 안 대표를 1등으로 뽑았다.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정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고,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양상훈 칼럼] 어느 재벌가의 원정 출산

양상훈 논설위원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더 필요해 이렇게까지 하는가
이들 탐욕스러운 일부 상류층이야말로
자유민주 최대의 적(敵)

국내 최대 재벌가의 한 사람과 TV 유명 여자 아나운서 출신 부부가 첫째 아들에 이어 둘째 아들까지 미국에서 낳았다. 첫째 아들은 결혼 후 유학차 미국에 가서 낳았다. 얼마 전 둘째 아들을 낳을 때는 출산 두 달 전에 미국에 갔다고 한다. 원정 출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원정 출산을 하는 것은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자는 것이다. 재벌가 부부가 미국 시민권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이 탐나서 원정 출산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들의 자식이 미국 시민권으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를 지키려 모인 젊은이들이다. 6·25 전쟁 때 맨몸으로 적을 막다 쓰러져 이 땅 어딘가에 뼈를 묻은 20만 장병의 손자들이고, 나라의 부름에 따라 이역만리 월남 땅에서 목숨을 바친 5000여 청춘의 아들들이고, 서해 바다에 피를 뿌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의 동생들이다. 국군은 병역을 피하려 미국 시민권을 얻는 사람들은 필요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들 부부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 상류층 일부의 탐욕과 이기심, 교활함, 그 천박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부가 첫 아이를 낳은 뒤 얼마 안 돼 귀국했고, 이번 둘째 때도 곧 귀국한다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 살 생각은 없는 듯하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만약 대한민국이 위험하게 된다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이 부부일 것이다. 이 부부의 그 많은 것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 바로 국군이다. 그저 남자로 태어나서, 나이가 차서, 신체가 건강해서,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따져보지도 않은 채 군에 들어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 부부의 그 '많은 것'들을 지켜주고 있다. 이 부부는 제 재산과 생명은 국가에서, 국군에게서, 남의 집 아들들에게서 보호받으면서 자신들이 나라에, 국군에, 다른 사람들에 해야 할 의무는 지지 않으려 만삭에 비행기 타고 미국까지 가서 아이를 낳았다. 무엇을 더 챙기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가.

남편은 최대 재벌 계열사의 대표이고 부인은 한때 큰 인기를 얻었던 유명인이다. 이 공인(公人)들이 미국 가서 아이 낳으려고 계산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역겹기에 앞서 어떻게 이토록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지가 더 놀랍다. 공적인 의무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런 책임감 따위는 느껴본 적도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용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면 유력 대통령 후보의 자식도 원정 출산 논란에 휘말리고 전직 국방장관과 최고위 외교관의 손자들도 병역 비리에 연루되는 판에 뭐가 어떠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일부 상류층의 돈에 대한 탐욕도 끝이 없다. 어느 또 다른 재벌가 3형제가 투자한 회사의 주식 가치가 8년 만에 100배가 됐다고 한다. 같은 그룹 내 다른 계열사가 돈 되는 사업을 집중적으로 넘겨줬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나돈다. 땅 짚고 헤엄치기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작년엔 국내 여러 재벌들의 2세, 3세, 4세들이 주식 장난을 벌이다 모처럼 그 꼬리가 드러났다. 이들은 미공개 정보 이용, 허위 사실 유포, 치고 빠지기 등 갖은 방법으로 작게는 몇 천만원에서 크게는 수십억원까지 벌었다. 주식시장에선 재벌 자식들이 어느 기업에 투자했다는 소문만으로 주가가 몇 배가 뛴다. 두 재벌의 2, 3세가 투자했다는 철강회사의 주가는 한 달 만에 16배 뛰었다. 재벌로도 모자라 그 위세까지 이용해 돈을 번다. 무엇이 더 필요해 이렇게까지 하는가.

원정 출산 부부에 관해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 중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돈 있으면 나도 하겠다." 이 사람이 실제 원정 출산을 바란다기보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야유로 들렸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외고 문제를 제기한 이후 그의 홈페이지에 1만개의 댓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정 의원은 그중 하나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외고에 가고 싶다고 하자 아내가 '우리 집은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돈 있으면 나도 하겠다"고 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 그 반대편에서 일부 상류층은 이 정직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999섬도 모자라 1섬까지 더 가지려 갖은 수를 쓰고 있다. 이 것이 우리 사회 불안의 근원이다. 이들 탐욕스러운 일부 상류층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최대의 적(敵)이다.

 

 

[양상훈 칼럼] 코리안 '이불 속 만세' 언제까지

양상훈 논설위원

국제사회 시선 아랑곳 않는 코리안 스타일
우리끼리 아무리 만세 불러도 결국 돌아오는 건 손해

수년 전 한 외국 공항에서 겪었던 일이다. 외국 항공사 여객기가 활주로에서 되돌아오더니 비행기에 문제가 있다며 승객들을 다시 내리게 했다. 몇 시간이 지나도 항공사측에선 별 설명이 없었다. 그때 큰 소리가 나 돌아보니 카운터에서 승객 몇 사람이 항공사 직원들과 싸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국 사람들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한국 사람들이 모였고 한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본다. 떠들어야 한다"고 했다. 몇 사람 더 싸움에 가세하면서 한국인들이 집단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됐다. 필자도 용기가 없어 데모를 못했을 뿐 화가 난 정도는 그들 못지 않았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승객들은 자리에 앉거나 가방을 베고 바닥에 누운 채로 이 떠들썩한 구경거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대기 중이던 승객들이 어느 새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비행기가 이륙을 못하게 되자 항공사측이 승객들을 불러 호텔 숙박권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보니 남은 승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었다. 항공사가 코리안들을 맨 뒤로 제쳐놓은 모양이었다.

텅 빈 대합실에 한국 사람들만 남아 있던 그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것이 국제 사회 속에서 우리 코리안들의 모습인 듯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왠지 독도 사태광우병 사태도 그 공항 대합실 장면과 겹쳐져 보인다.

1995년 우리 정부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다"면서 독도에 각종 초강경 조치를 취하자 온 국민이 환호했다. 그때 홍콩의 한 신문사가 아시아 지역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본 입장을 지지하는 응답이 60%가 넘었다. 그 이유는 "한국이 말썽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만세를 불렀지만 세계에 독도가 한·일 간 분쟁지역이라고 광고를 한 꼴이었다. 미국 지명위원회의 독도 표기 변경은 이런 광고가 쌓이고 쌓인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 역대 정부와 정치권은 앞뒤 재지 않고 흥분하는 국민 감정에 영합하고 심지어 이를 이용하면서 일본에 말려드는 길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국제통화기금(IMF) 2007년 조사에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국가 위상은 GDP의 2.24배이고 한국의 위상은 GDP의 0.29배였다. GDP는 일본이 한국의 4.5배이지만, 국가 위상은 35배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 표기를 일본에 유리하게 바꾸게 만든 근본 요인도 결국은 이 엄청난 국가 위상의 차이일 것이다.

일본의 위상이 GDP보다 두 배나 높은 것은 '재패니즈 스타일'을 좋아하는 세계인이 그만큼 많고, 한국의 위상이 GDP만큼도 아닌 그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은 '코리안 스타일'을 싫어하는 세계인이 그렇게 많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 국무부에서 한국과장과 일본과장을 모두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한국의 독도 점유는 유지된다"며 "그러나 한국 시위대가 일본 총리의 사진에 피를 바르며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치면 한국인들의 이미지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다. 코리안 스타일로 무슨 득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국제 사회는 그런 생각조차 않는데 유독 한국 사람들만은 절반 이상이 "미국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죽게 됐다"고 울먹이고, 대규모 시위가 연일 벌어진다. 어느 외국 경제인은 "우스꽝스럽다"고 했다지만, 속생각은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가 국제 사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식대로 길 막고, 드러눕고, 데모하고, 소리지르고, 때려부수고, 혈서 쓰고, 삭발식·화형식 하면서 살겠다면 국제 사회가 독도를 어떻게 표기하든 상관 않겠다는 각오도 같이 해야 한다. 그러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00년간 세계의 가장 변방이었던 우리가 국제 사회로 나아가자 40년 만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끼리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르는 지금의 이 사고방식, 행동양식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만 같다. 어느 날 공항 대합실에 우리만 남게 된 것을 알게 됐을 때는 선진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이미 치워진 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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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도사 문어 [중앙일보]

문어의 자식 사랑은 지극하다. 후손을 잇기 위해 딱 한 번 사랑을 나누고 3~4년의 짧은 삶을 마친다. 짝짓기를 한 암놈은 수천~수만 개의 알을 낳은 뒤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며 알을 노리는 적들을 물리치다 힘을 잃고 숨을 거둔다. 수컷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쇠약해져 죽는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문어(文魚)란 이름에 ‘글월 문(文)’ 자를 달아줬다. ‘글 좀 읊을 줄 아는, 즉 양식 있는 물고기’라는 뜻이리라. 큼직한 머리는 두뇌를 상징하고, 위협을 느낄 때 내뿜는 먹물을 탄소 가루 성분의 붓글씨용 먹물과 연관 지었을 수도 있다. 중국에서 장위(章魚)라고 부르는 문어는 우리의 고유한 작명이다. 제사상에 문어를 올려 부모를 공경하려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유교문화의 본고장인 안동 지방에선 불천위(不遷位) 제사(4대를 넘겨도 후손 대대로 제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제물로 올리는 탕(湯)·포(脯)·적(炙)에 문어를 꼭 쓴다.

서양에서는 문어의 발 8개를 의미하는 ‘oct(8)’에서 따와 그저 Octopus로 부른다. 근래 들어서야 문어의 영특함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문어가 장·단기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며,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 해결을 익힌다고 한다. 심지어 장난을 칠 정도로 영리하다고 미국·캐나다 학자들은 1988년 과학잡지 ‘디스커버(Discover)’에서 주장했다.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난 남아공 월드컵에서 ‘도사(道士) 문어’ 파울이 최대 스타로 떠올랐다. 독일의 한 수족관에 사는 파울은 독일의 예선전부터 결승전까지 모두 8경기에서 승리 팀을 ‘점지’하는 신기를 발휘했다. 확률로 계산하면 256분의 1로 0.39%에 불과하다. 어느 도박전문가도 따라올 수 없는 신통력이었다. 언론들은 ‘문어 신탁’ 장면을 생중계하고, ‘학습효과’라는 등 예지력의 비밀을 캐느라 법석을 떨고 있다. 생후 2년7개월 된 파울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고 있어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의 점괘를 보기는 어렵다. 그의 초능력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공산이 크다.

오래전에 문어의 능력을 간파한 우리 조상의 혜안이 새삼 존경스럽다. 스페인에선 올리브 오일을 뿌린 삶은 문어 요리, 풀포(pulpo)가 유명하다. 우리의 문어 찜과 거의 비슷한 게 일품이다. 혹시 스페인 팀이 문어를 먹고 머리가 좋아져 ‘예술 패스’로 우승을 일궈냈던 건 아닐까.

고대훈 논설위원

 

[Around the World] '월드컵 족집게' 문어, 신통력의 비밀은?

2010 남아공월드컵 기간 장외(場外) 최고의 화제를 몰고 온 이는 '점쟁이 문어' 파울(Paul·사진).

독일 해양생물센터 수족관에서 사는 파울은 이번 대회 동안 결승전 포함해 여덟 경기의 승패를 족집게처럼 알아맞혔다. 파울의 점치기는 경기할 국가의 국기가 그려진 2개의 유리상자 중 어느 상자 속에 들어 있는 홍합을 집어 먹느냐로 이뤄졌다. 파울의 신통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CNN 방송은 해양생물학자들의 말을 인용, "파울이 특별한 재능이나 예지력을 타고난 것은 아니며 학습을 통해 독일 국기를 인식하게 된 것 같다"고 보도했다. 학자들은 문어가 가장 지적인 해양생물이며,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훈련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문어는 시력은 좋지만 '색맹(色盲)'이어서 국기에 그려진 색깔에는 관심이 보이지 않는 대신 국기 모양과 수평으로 된 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파울이 독일과 스페인 4강전에서 스페인의 승리를 점친 것은 스페인 국기가 독일과는 달리 가운데 노랑 띠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으로 커 이 모양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파울은 결승전 승자를 점치면서도 네덜란드 국기가 독일처럼 3등분(빨강, 파랑, 흰색)돼 있어 스페인을 승자로 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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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박사’ 최창조가 들려주는 재벌과 풍수

[신동아]



의외였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풍수이론가 최창조(崔昌祚·58)씨가 서울 구로동에 살고 있다는 것이. 풍수의 대가답게 배산임수(背山臨水), 즉 ‘산에 등을 기대고 앞에 물을 향하는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 줄 알았다.

최창조가 누구인가. 풍수를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겠다고 1992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자리를 박찬 그가 아닌가. ‘자생풍수’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풍수를 대중화한 주역이다. 그간 ‘한국의 자생풍수’(1997), ‘북한 문화유적 답사기’(1998), ‘땅의 눈’(2000), ‘풍수잡설’(2005), ‘닭이 봉황 되다’(2005) 등 15권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최근 그는 ‘도시풍수’라는 책을 통해 “나 이제 풍수를 떠나야겠다”고 말했다. 풍수에 미쳐 잘 가꾼 정원 같은 대학사회를 나와서 들판의 잡초 바닥을 샅샅이 돌더니 불현듯 ‘명당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를 만나러 가는 6월11일은 초여름을 알리듯 태양이 뜨겁게 작열했다. 신도림역에서 내려 구로5동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내 의문스러웠다. 풍수의 대가께서 왜 이토록 복잡한 시가지, 그것도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걸까?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의문이 사라졌다. 거실은 난초로 빼곡했다. 그가 “단칸방에서도 명당을 찾을 수 있다”면서 “거울이나 커튼, 화분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걸 놓고 정을 붙이고 살면 그곳이 바로 명당”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땅의 氣는 나무가 자라는 만큼 올라가

▼ 베란다 쪽으로 나무가 보여서 아파트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드는 군요.

“(아파트) 1층의 장점이죠. 대체적으로 땅의 기(氣)가 나무가 자라는 만큼 올라가요. 잠실에 있는 아시아선수촌아파트는 나무들이 키가 커서 5층까지 올라가더군요. 땅의 기운이 좋은 거죠. 요즘은 전통적 풍수개념으로 해석할 수 없어요. 생활환경이 그만큼 달라졌잖아요. 고전적 풍수의 이상향인 영월이나 삼척에 가서 살면 좋겠지만 저 역시 못 견딜 걸요(웃음).”

▼ 구로를 선택한 건 의외입니다.

“구로가 어때서요. 구로(九老)는 ‘아홉 노인네가 장기를 두고 있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할 일 없는 노인들이 모여서 장기를 두는 곳이니 ‘별 볼일 없는 동네’라는 의미였어요. 공단이 할 일을 만들어준 셈이지요. 제가 ‘구로’를 선택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예요. 돈이 부족했거든요. 돈에 맞춰서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른 셈이죠. 그런데 와보니 좋았어요. 제겐 명당입니다.”

도시 속에서 명당 찾을 때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를 그만둔 이후인 1993년, 그간 살던 112평 단독주택을 팔아서 관악산 바로 아래 빌라를 샀다고 한다. 당시 2억9000만원. 8년 후 구로 쪽으로 이사하기 위해 이 빌라를 1억8000만원에 팔았다. 서울에서 8년 만에 집으로 1억원을 손해 본 셈이다. 풍수를 대중화했는지는 몰라도 ‘집테크’와는 거리가 먼 인생인 듯했다. 그는 “8년간 살았으니 땅값을 치렀다고 생각한다”면서 천상병의 시 ‘땅’을 읊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

“천상병 시인은 ‘땅을 가지고 싶지만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했어요. 땅에 대한 정의를 이토록 정확하게 말한 시가 없어요. ‘땅을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건 정말 명언입니다. 욕심이 없기로 소문난 시인이 왜 땅을 가지고 싶었을까요. 복 받고 싶어서가 아니었어요. 나무 가꾸고 꽃을 심겠다는 소망 때문이었죠. 이것이 본래 인간이 땅을 가지려는 이유입니다.”

풍수 용어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배산임수’다. 그는 배산임수를 “터를 가림에 있어서 반드시 그 풍기(風氣·지세의 기운)가 모이고 전면과 배후가 안온하게 생긴 곳”이라고 설명했다.

“도시화로 풍수는 이제 의미가 없어요. 작년에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도시화 비율이 80.8%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전 국토의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거죠. 전통적 풍수는 농촌을 대상으로 생겨난 땅 개념입니다. 요즘은 개발로 백두대간이 다 끊어지고 갈라졌잖아요. 자고로 ‘군자가 되면 시장 속에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시 속에서 명당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 명당이 도시화로 다 파괴됐다는 건가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는 거죠.”

▼ 답답한 결론이네요. 그래서 풍수를 떠나겠다고 하신 건가요.

“전통적 명당 찾기를 떠나겠다는 겁니다. 풍수는 객관화할 수 없어요. 사람마다 기분이 다르고 기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애매하면 기로 설명하는데 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긴 참 어렵습니다. 땅과 기운을 주고받는 건 사람마다 달라요. ‘안온하면서도 기운이 서린 곳’이 풍수가 찾고자 했던 땅입니다. 그런데 ‘안온하다’는 건 객관적일 수 없잖아요. 개인의 직관입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라는 노래가 있어요. 상식적으로 ‘기찻길 옆에서 아기가 잘 수 있나’ 싶겠지요. 하지만 아기한테는 그곳이 명당인 겁니다.”

명당은 자궁 같은 곳

그는 “땅을 사람 대하듯 해야 한다”면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입지조건 외에 왠지 마음을 잡아끄는, 혹은 떠미는 듯한 땅이 있다”고 했다. 그런 땅을 사서 마음의 평온함을 찾고 자신감을 얻는다면 그 땅이 바로 자신에게 명당이라는 논리였다.

“명당은 여성의 자궁 같은 곳입니다. 그런 땅에서 살면 마음이 편해지고 가족이 행복하게 되니까 다 잘된다는 이치입니다. 땅 고르는 것이 배우자 고르는 것과 흡사해요. 눈에 딱 들어오는 땅이 있거든요. 또 자신에게 맞는 땅이 있어요. 마음에 드는 거죠. 요즘 사람들,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집 사고 땅 사잖아요. 결코 평온할 수 없습니다.”

그는 또 “전통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의 의미가 요즘도 적용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했다.

“조선시대 실학자 홍만선은 ‘청룡(남향을 기준으로 동쪽)에 물, 백호(서쪽)에 길, 주작(남쪽)에 연못, 현무(북쪽)에 언덕이 있는 곳이 좋은 터’라고 했어요. 풍수의 교과서인 ‘금낭경(錦囊經)’에서는 청룡(동쪽)엔 뱀이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모양의 완만한 산이, 백호(서쪽)엔 호랑이가 사납지 않게 비굴하리만큼 납작하게 엎드린 정도의 산이 있는 것이 명당 형세라고 했어요.

일리가 있습니다. 청룡(東) 쪽 산이 백호(西)보다 높고 웅장할 것을 요구하는 표현인데, 해뜰녘 햇살은 여름철에도 그리 강렬하지 않으니 차단해줄 산세가 필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해질녘 서쪽 태양이 매우 뜨거워서 그 햇살을 가려줄 정도의 백호세가 필요한 거죠. 요즘 사람들도 참고할 만해요.”

▼ 전통적인 풍수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명당 자리는 어딘가요.

“삼척 대이리 골말이 명당에 해당하지요. ‘정감록’에 ‘태백산에는 삼재(전쟁, 가뭄, 돌림병)가 들지 않는 궁해염지라는 이상향이 있다’고 적혀 있어요. 골말 마을을 두고 한 얘기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승지의 땅이죠. 험준한 산악지대라서 논은 없고 옥수수, 감자를 부쳐 먹던 화전민의 마을이었어요. 대이리 입구에서 산허리를 꼬불꼬불 돌아 30리를 들어가면 폭 패인 땅이 있어요. 바로 골말입니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 같은 모양의 땅이죠. 제가 세상에 알려 관광지가 돼버렸어요. 큰 실수를 했어요.”

▼ 명당이라면 골말 마을에서 인재를 많이 배출했겠군요.

“그렇지 않아요. 땅으로 부(富)와 권력을 욕심 부려선 안 됩니다. ‘인재가 많이 나왔다’는 마을은 심리적인 영향 때문입니다. 어떤 마을에선 판·검사가, 어떤 마을에선 장군이 많이 나올 수 있어요. 한 사람이 고시에 합격하면 자극을 받겠죠. 옛날에는 더욱 그랬을 겁니다. 요즘 강남이 그런 식이지요. 골말 마을에서 인재를 가장 많이 배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땅도 사람 잘 만나 팔자가 달라질 수 있어요. 부자가 모이면 부(富)한 땅이 되는 거죠. 전통적 풍수이론이 결과를 놓고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어요. 명당과 인재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어요. 출세는 사람이 할 일이지 땅이 도와주는 건 아닙니다.”

압구정동은 ‘변기’에 해당



▼ 대통령이나 기업인이 태어난 생가는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하잖습니까.

“그렇진 않아요. 다만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의 장소가 어디냐’의 문제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진 않았지만 영향을 받아요. 좋은 땅, 나쁜 땅은 없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인생의 가치관이 다를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고관대작이 꿈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고 싶을 수 있는 거죠.

땅의 기(氣)에 따라 사람의 성향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요. 기가 센 땅에선 권력지향적인 사람이 태어나고, 온화한 땅에서는 문학 쪽 인재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자들은 기가 요동치는 땅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집터인들 아기 낳을 엄마 심리보다 더 중요하겠습니까. 엄마가 행복했던 순간 잉태되는 게 가장 좋은 거죠. 만약 시댁에서 피곤하고 기분이 안 좋은데 잉태됐다면 안 좋겠지요. ‘하필이면 거기서?’ 하고 생각한다면 최악의 선택이 아닐까요.”

그는 “땅이 사람의 몸 구조와 흡사하다”고 했다.

“서울의 지세가 전형적인 풍수 모양입니다. 서울의 명당수가 청계천이에요. 청계천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입에서 항문까지로, 통로로 볼 수 있어요. 청계동천이니 옥류동천이니 하는 발원지는 바로 입(口)에 해당됩니다.

정부청사, 광화문, 미 대사관, 무교동 일대가 상류입니다. 위와 소장에 해당됩니다. 하류는 예전의 세운상가에서부터 청계 6, 7, 8가로 대장에 해당돼요.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하는 뚝섬 인근은 항문에 해당됩니다.

강 건너 압구정동은 변을 받아내는 변기에 해당되는 셈이죠. 땅의 성격과 사람의 쓰는 기능이 똑같아요. 정부청사와 대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상류에서 영양분이 집중적으로 흡수되는 식입니다. 하류로 내려오면서 중고품상 헌책방 등 싼 물건을 팔고 있고 항문 부근에는 하수처리장이 자리를 잡고 있어요.”

그는 풍수에서 땅만큼이나 집 안의 구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통적 풍수에서 음택, 양택, 양기 등을 중요시했다면 요즘은 인테리어 풍수가 뜨고 있다. 환경심리학적 면을 고려한 건축학, 조경학 등이 바로 이에 해당된다.

“인테리어 풍수도 객관적일 수 없어요. 유행에 목매지 말고 각자 취향대로 꾸미면 됩니다. 특히 아이의 특성을 최대한 존중해줘야 해요. 어질러놔야 하는 성격이 있고 정돈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있어요. 손님을 위한 공간을 제외하곤 각자 스타일대로 꾸미도록 해야 합니다. 어질러놔야 하는 아이는 혼란함 속에서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체질에 따라 일하는 시간대가 다르듯이 집 구조도 주관적 명당론에 맞춰야 해요.

사람들이 모두 산을 좋아하지는 않잖아요. 산에 올라가는 무리가 있고, 올라가지 않고 산 밑 주막촌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싶어하는 무리가 있어요. 취향대로 마음의 평온을 찾아다니게 되거든요. 자주 가는 식당이 있어요. 그곳이 자기와 맞는 곳입니다.”

“후손이 뭘 하는지 파악하라”

▼ 집 인테리어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건축가 김중업씨는 ‘집구석에서 울 곳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몸에 대소변 배설구가 있듯이 집에도 배출구가 있어야 해요. 옛날엔 다락방이 그런 공간이었어요. 아이들은 야단맞으면 방으로 가면 되지만, 요즘 남자들, 거실로 베란다로 쫓겨나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어. 안방은 아내의 전용 공간이 돼버렸어요.”

▼ 조선시대 가옥에선 사랑방이 남성의 전용공간이었지요.

“조선시대 가옥구조를 보면 여성이 명백히 상위였어요. 운현궁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대부인(민씨)이 머물던 안채가 대원군의 사랑채보다 더 높아요. 안채의 돌계단이 사랑채보다 한 계단 더 높거든요. 조선시대 안주인들은 곳간 열쇠를 쥐고 있어서 재산권에서도 우위였어요.”

▼ 집 인테리어를 할 때 오행(五行)을 참고하면 좋다고 하던데요.

“도움이 된다면 되는 거죠. 오행은 천지조화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중요 도구입니다. 서양인은 오행을 다섯 가지 요소로 해석하는데, 잘못된 거예요. 계절은 변화하고 공간은 주체에 따라 좌우상하로 변질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것이 불변의 요소가 아니라 움직임인 행(行)이지요. 인테리어를 할 때 각자 오행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수(水)가 부족하면 어항을 둔다거나 목(木)이 부족하면 나무를 심는 식이죠.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믿음이 생기면 하라고 권해요.”

최창조씨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최창조씨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명당을 논할 때 묘터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음택 풍수 저변에는 발복(發福)을 기대하는 미신이 자리잡고 있다. 최창조 교수는 산소 자리잡기 풍수를 완강히 부정했다.

“‘묘터를 잘 써서 자식이 잘 된다’는 건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지관들의 후손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조사해보면 알 수 있겠지요. 장관과 부자가 수두룩하게 나왔을까요? 그렇진 않아요. 조선 영조 때 성호 이익 선생이 전주 감찰사로 부임해 민묘를 이장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난리가 났죠. 이익 선생이 지관을 모아놓고 ‘후손이 뭘 하고 있는지 파악하라’고 지시를 내렸어요. 실학자들은 실증적 자료에 의거했던지라 좋은 산소를 쓴 사람들의 후손을 파악하고자 했던 거죠. 그 결과 자손이 적어도 참판을 해야 할 묏자리인데 손자가 종적을 감췄고, 묘가 안 좋아서 대(代)가 끊겨야 하는데 멀쩡하게 벼슬을 하고 있더랍니다. 풍수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려주는 얘기지요.”

시신은 빨리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 묘를 잘못 쓰면 시신이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일이 있다고 들었어요.

“귀신이 곡할 일이 벌어집니다. 심하면 시신이 뒤집혀버리거나 돌아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건 묘를 잘못 써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땅이 그런 거죠. (우리나라 땅은) 표토가 깊지 않고 매스 웨이스팅(mass wasting·토지가 이동하는 현상)이 심해요. 시신을 매장한 이후 땅속이 움직여 묘 봉분 밑에 있지 않고 도망가거나 곽이 뒤집히는 걸 ‘도시혈(逃屍穴)’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침수지형이라 풀이나 나무뿌리가 잡아주지만 토양이 4면 이동을 할 수 있어요. 토양 입자 하나하나의 운동이 달라서 소용돌이가 되는 경우도 있고…. 어디에서든 약간의 움직임이 있어요.”

▼ 왕릉에 묻힌 시신들은 움직이지 않잖아요.

“깊게 파서 그렇습니다. 임금 왕(王)자에 열십자가 있잖아요. 풍수지리설에 따라 북현무, 남주작, 좌청룡, 우백호로 둘러싸인 곳 끝머리에 황룡이 있는 곳이 왕릉터였어요. 보통 자기 키 정도 깊이로 묘터 땅을 파는데 왕을 묻을 땐 5~6자 이상 파 들어가요. 자기 키 이상 들어가면 잘 안 썩거든요. 흉당으로 벌레가 나오는 ‘충렴’, 수맥이 흐르는 ‘수렴’, 시체가 없어지는 ‘도시혈’을 들 수 있어요. 흉당이기보다 땅을 얕게 팠기 때문입니다. 얕게 파면 물이 스며들고 벌레가 모입니다. 왕릉은 깊게 팠기 때문에 시신의 부패 속도가 느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 일반적으로 묘터로 좋은 땅은 어떤 곳입니까.

“원칙적으로 좌우 앞을 아늑하게 감싸주는 곳이죠. 남향을 원하고 수맥을 피하죠. 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장묘 문화에 반대해요. 한번이라도 이장(移葬)하는 걸 본 사람은 화장을 원해요. 정말 끔찍하거든요. (시신은) 인공을 가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좋아요. 그런 의미에서 수목장을 권하고 싶어요. 화장을 해서 유골을 나무나 꽃 밑에 묻는 겁니다. 영국에서는 주로 꽃에, 독일과 스위스는 나무에 시신을 묻는다고 해요.”

▼ 일전에 고(故) 정주영 회장의 묘터인 경기 하남시 창우동 장지가 명당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말한 적 없습니다. 가보지도 않았어요.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자들이 그냥 제 이름을 넣어 썼겠지요.”

“워커힐은 풍수지리적으로 안 좋아”

▼ 유명 기업인들이 묘터 봐달라고 연락하지 않습니까.

“기업인들은 묘터에 별로 안달하지 않아요.”

그는 풍수지리에 아랑곳하지 않는 재벌가로 SK그룹을 꼽았다.

“최종현 회장은 제가 서울대를 그만뒀을 때 처음으로 저를 도왔던 분입니다. 처음에 재벌이 만나자고 하기에 ‘뻔한 일’인 줄 알았어요. 산소 자리 봐달라고 하겠지 싶었어요. 손길승씨가 저를 찾아왔더군요. 자연스럽게 SK그룹에 강사로 초빙됐어요. 최 회장과 인연이 닿아 그 집에 가보았어요. 최 회장이 살던 워커힐호텔 구내에 있는 빌라는 풍수지리상 별로 좋지 않은 터였어요.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광나루 쪽을 찌를 듯 달려드는 살벌한 곳이었어요. 본래 큰물이 집 쪽으로 쏟아질 듯이 몰려오면 기가 너무 세거든요. 젊은 사람도 이기질 못합니다. 심리적으로 공포감이나 두려움을 유발할 수 있어요. 그때 최 회장은 암 투병을 하실 때였어요.”

최 교수가 “집터가 좋지 않다”고 말하자 최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을 데리고 일합니다. 풍수 때문에, 그것도 물 때문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제일 귀한데 어찌 땅과 물의 기운에 눌릴 수 있겠습니까.”

“최 교수가 안 된다면 안 된다”

일반인도 ‘집터가 좋지 않다’고 귀띔하면 찜찜해서라도 집을 옮길 법한데, 최 회장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기 수련을 좋아한 분이라 풍수에 귀기울이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군요. 그분은 ‘집이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며 ‘유목민의 이동식 천막’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만일 제 말을 듣고 이사했다면 그분을 존경하지 않았을 거예요. 산소호흡기를 달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하니 참 존경스럽더군요.”

▼ 그렇다면 최 회장은 집터 때문에 사망했다고 봐야 하나요.

“그렇진 않아요. 최 회장은 그 집안에서는 꽤 장수한 편에 속했어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풍수이론을 직원들을 위해 참고하는 편”이라고 한다. ‘터가 안 좋다고 소문나면 직원들이 잡생각을 하고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는 것.

“이건희 회장과 몇 번 공장 부지를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이미 결정된 부지인데 제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와버립니다. 임직원들이 회장이 온다고 잔칫상을 준비했는데 저로선 정말 난감한 일이었죠. 이 회장은 ‘최 교수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는 식이었어요.”

▼ 이건희 회장은 공장 부지를 고를 때도 명당을 찾았다는 얘기군요.

“명당이다, 아니다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터가) ‘안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 직원들의 심리에 나쁜 영향이 미칠까 걱정해요. 평온함을 찾는 것이 명당론이라면 이 회장은 정확하게 생각하는 거죠. (터가 안 좋다는) 소문이 나면 공사하다가 인부가 다칠 수 있거든요.”

▼ 삼성가(家)의 가족모임에 자주 초대받으신다고 들었어요.

“서너 번 갔다 왔어요. 주로 평창에 있는 피닉스파크 이 회장 방에서 식사를 했어요. 이 회장은 임직원들이 술 마시는 건 싫어하는 편인데 저에겐 포도주를 권하더군요. 저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와인을 막걸리 마시듯이 비워냈어요. 그랬더니 종업원이 아예 제 뒤에 서서 따라주더군요. 제가 불편해하니까 부인 홍라희 여사가 ‘그러지 마세요. 저분에겐 직업입니다. 거절하면 자리를 잃는 거예요’라고 했어요. 늘 헬기를 타고 서울까지 왔어요. 잠실에 전용 헬기장이 있어서인지 주로 헬기를 타고 다니더군요.”

그는 성격이 좋은 기업인으로 LG 구본무 회장과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을 꼽았다.

“이건희 회장의 성격은 ‘도무지 모르겠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블랙홀’이라고 말하죠. 구 회장과 현 회장은 화통해요. 구 회장은 파주 LCD 생산공장 현장에서 사고가 났다면서 저를 불렀어요. 터에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대체적으로 기업인은 분명하고 명확한 성격입니다.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말을 둘러대지 않아요. 만일 정치인이 제게 강의를 맡긴다면 ‘민족문화 창달을 위한다거나 우리문화 독창성을 계발하기 위해 박사님을 지원하겠다’고 거창하게 말할 겁니다. 하지만 기업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임직원들에게 우리나라 문화를 알려줘서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해요. 기업인들은 ‘이익이 있는 곳에 투자를 한다’고 분명히 말하더군요.”

인천공항에 세운 위지령비

그는 “기업인들은 대체로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풍수이론을 이용한다”면서 SK그룹 사옥에 얽힌 일화를 들려줬다.

“을지로에 있는 SK 건물이 독특해요. 해외 건축가가 설계한 빌딩인데 건물이 휘어져 있어요. 3년 전이었어요. 최태원 회장이 감옥에 가 있을 무렵이었어요. 김진배 사장이 경기고등학교 후배인데,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본사 건물 구조가 나빠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걱정을 해요. ‘은행장들까지 수군거린다’고 하더군요.

손길승 회장이 본사 건물 도면을 제게 보여주면서 어느 건물이 좋은지 묻더군요. 하나는 고전적인 건물이었고 하나는 독특한 건물이었어요. 제가 ‘오래 살아야 하니 단순하고 유행 안 타는 건물로 지어라’고 했어요. 손 회장은 사내 투표를 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건물 짓는 건 전문가가 결정해야 할 문제지 왜 투표로 하냐’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과도기에 손길승 회장이 맡았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 정말 건물이 안 좋았나요.

“소문인 거죠. (건물을) 헐 수도 없고 세를 준다고 해도 안 되잖아요. 비보책(裨補策)을 쓰자고 제안했어요. ‘옛날 풍수에서 효과가 있었으니 써봐라’고 했어요. 직원들에게 ‘SK그룹은 휴대전화 만드는 회사라 건물이 휴대전화처럼 생겼다’고 슬쩍 흘리고는 건물 끝에 대롱 같은 것을 달고선 ‘이렇게 문제를 극복했다’고 소문을 내라고 했어요. 예상대로 자연스럽게 마무리되더군요. 이걸 풍수에서 상징조작이라고 해요. 도시풍수의 한 방법이죠. 심리를 이용하는 거죠.

포스코 본사 건물도 위쪽이 휘었어요. 건물이 휘면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게 돼요.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빌딩이 무너질 것 같거든요. 제가 멀리서 포스코 건물을 오랫동안 관찰했더니 상당히 많은 사람이 피해서 걸어가더군요.”

▼ 인천공항 부지를 최 교수께서 봐주셨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다 결정되고 난 뒤에 제가 갔어요. 강동석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은 제가 낙원동 허름한 2층 건물에서 강의할 때 와서 들었던 양반이었어요. ‘인천공항을 짓느라 산을 너무 많이 없애서 괴롭다’고 하더군요.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산을 많이 손상시키고 끊었기 때문에 죽어야겠다’고 했던 진나라 관리처럼 강 장관도 괴로웠던 모양이에요. 저와 배를 타고 답사 다녔어요. 결국 ‘위지령비(慰地靈碑)’를 세우는 것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산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위지령비를 세운 것이었지요. 지금 공항 골프코스에 있어요. 외국인들에게 신선해 보이도록 비문을 영문으로도 적어놓았어요.”

그는 기업인에 대해 얘기하다가 최근 보복폭행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화 김승연 회장 얘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김승연 회장은 풍수에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고등학교 때부터 김승연 회장과 친했어요. 우리 셋 다 경기고 동문이거든요. 10년 전쯤 홍 회장이 ‘(김 회장) 가정문제가 심각하니 가서 이야기 좀 해줘라’고 권하더군요. 김 회장은 스물아홉 살에 회장이 돼 주위에 친구가 없었어요. 나이에 비해 폼을 잡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젊은 나이에 회장을 해 폼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부터 머리에 기름 바르고 말도 느릿느릿하게 해서 이젠 버릇이 됐다’고 하더군요.

청와대 터 안 좋아 대통령 독선

김 회장은 가족을 끔찍하게 생각해요. 아주 섬세하고 자상한 편이지요. 저에게 ‘최 교수를 반드시 멋쟁이 만들겠다’고 평소에 말했어요. 한번은 외국을 갔다 오면서 구두를 사왔더라고요. ‘발 문수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제가 화장실 간 사이에 신발 밑창을 봐뒀다고 하더군요. 다 좋은데 성격이 급한 게 단점이에요.”

▼ 건물에도 기가 있다면 명당론 관점에서 청와대는 어떠한가요.

“김대중 정권 때 두 번 들어가봤어요. 샅샅이 둘러봤죠. 왜 여기만 들어오면 독선적이 되는지 짐작이 되더군요. 북악산은 동산처럼 조그마한 산인데, 청와대에서 보면 웅장하고 아름다워요. 또 서울시내 고층 빌딩들 때문에 앞이 막힐 줄 알았는데 전혀 안 그렇더군요.

광화문 사거리만 나와도 북악산은 왜소하고 인왕산이 덩치가 좋은데 청와대에선 그렇지 않은 거죠. 환경심리학적으로 청와대에 있으면 세상에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세상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사람은 환경심리적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 이유로 ‘청와대 자리를 옮기면 좋겠다’고 제안한 거죠.

풍수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든 일해재단 자리가 참 좋아요. 제가 1994년 성남에 있는 일해재단을 답사한 적이 있어요. 전두환 정권 때 지하시설까지 다 만들어놨기 때문에 (청와대 이주에) 돈이 별로 안 들겠다 싶었어요. 무엇보다 땅이 다른 곳보다 높지 않아서 좋아요.”

그는 “국회의사당 자리는 뱃사람이 몰려 있는 형국”이라면서 “여의도가 ‘행주섬’이라고 해서 배 모양의 섬인데, 국회의사당 자리가 뱃머리에 해당되니 사공이 뱃머리에 몰려서 떠들어대는 꼴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론적으로 “땅은 평등하지 않다”고 했다.

“한 자만 달라도 기운이 달라집니다. 전국이 도시화돼 평등한 것처럼 보일 뿐 땅만으로 보면 평등하지 않은 거죠. 전 아직 이 부분에 대해 정리를 못하고 있어요. 땅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지만 인간도 땅에 영향을 줍니다. 인간이 땅의 팔자를 바꾸어놓았잖아요.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이런 것이죠. 명당의 개념을 현실적으로 정리하고 싶어요. 그런데 법안(法眼)에서 도안(道眼)으로 넘어가는 건 참 쉽지 않네요(웃음).”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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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형 인간이 아침형 인간보다 창의적이다

김석진 교수의 ‘Hot Issue & Cool Answer’ (30)



시대가 변하면서 바람직한 인간형의 정의도 함께 변한다. 아침형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형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발간될 정도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은 단연 아침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인간이다.

하지만 당신이 저녁형 인간이라면 이 시대가 규정하는 나의 가치가 조금은 불공평하다고 느껴본적은 없는가?

본인은 아침형 인간이 시대와 무관한 가장 이상적 인간형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람마다 다양성과 개성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이 더 이상적이고 건강한 사회라고 본다. 이번 칼럼에서는 저녁형 인간이 아침형 인간보다 어떤면에서 더 우월하다는 흥미로운 논문들이 있어 이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2007년 이태리에서 진행된 연구는 저녁형 인간이 아침형 인간보다 더 창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120명의 연구대상자를 그들의 습성에 따라 아침형, 저녁형 혹은 중간형으로 나누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극단적인 아침형 혹은 저녁형 인간이라기 보다는 중간형으로 구분이 되었고 이 중 소수만이 아침형과 저녁형 카테고리에 해당되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창의력 테스트를 진행해본 결과, 저녁형 인간의 성적이 아침형 혹은 중간형 인간들 보다 월등함이 보여졌다고 한다. 특히 창의성은 나이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2009년에 캐나다에서 발표된 논문에서도 이 두 부류의 인간들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 근력테스트와 신경테스트를 실시해본 결과, 아침형 인간은 오전에 근력이 최고치를 보이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약화되는 반면 저녁형 인간들은 저녁 9시경에 근력이 최고 수치를 보였고 신경의 활동력도 저녁시간에 가장 활발함을 보였다고한다.

아침형 혹은 저녁형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인 요소가 강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아침에 업무의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저녁형 인간들을 게으르다거나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들로 바라보는 고정된 시각을 버리고 사람마다의 개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직업환경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저자의 이웃 중 미국의 한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연구원이 있다. 그 친구는 항상 새벽 4시에 출근하고 오후 일찍이 집으로 퇴근을 한다. 그에 말에 따르면 그가 근무하는 연구소는 출퇴근 시간이 자유라고 한다. 근무표에 하루 8시간 동안 근무하였다는 기록만 있으면 근무시간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친구는 아침형 인간 중에서극단적인 예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연구소에는 남들이 퇴근한 저녁시간에 커피한잔을 들고 출근하는 올빼미족들 또한 상당히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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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꿈의 효과

다음 중 꿈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

A. 엘리아스 아우이의 ‘재봉틀’
B.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C. 비틀즈의 ‘Yesterday’
D. 아르키메데스의 ‘밀도(질량/부피)’


답은 D다.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착안한 곳은 목욕탕이었다고 한다. 발견의 기쁨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옷도 걸치지 않고 길거리로 뛰어나와 “유레카 (바로 이거야)!”라고 외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나머지 3개는 전부 꿈에서 얻은 영감을 통해 이루어낸 것들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그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착안을 하였고 그 유명한 비틀즈의 ‘Yesterday’도 폴 매카트니가 꿈속에서 악상을 얻었다고 한다. 발명가인 엘리아스 하우이는 식인종에게 잡히는 악몽 속에서 그들이 들고있는 창날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보고 바늘을 고안함으로서 지금의 재봉틀이 만들어졌다. 바늘구멍이 바늘의 뒷쪽에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그 구멍을 바늘의 앞쪽에 위치시킨다는 생각은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이 알고보면 간단하면서도 평범한 사고를 뛰어넘는 발상임에 틀림이 없다.

이처럼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유명한 발명들과 원리들이 꿈 속에서 착안된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

실제로 우리가 꿈을 꾸는 동안 뇌신경의 활동이 활발히 일어난다고 한다. 특히 ‘논리’를 이용하는 뇌영역 보다 ‘상상력’을 이용하는 부위의 활성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이는 깨어있을 때는 우리가 주로 상식에 근거한 사고를 하는 반면 꿈 속에서는 심지어는 황당할 정도의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해 본다는 것이다. 바늘 구멍 위치를 뒤쪽에서 앞으로 옮긴다는 생각을 꿈이 아니었다면 과연 상상할 수 있었을까?

The Journal of Current Biology에서 꿈을 통한 학습효과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되었다. 보스턴에 있는 한 연구소에서 진행된 이 실험은 참가 대상자에게 컴퓨터를 이용하여 미로(길찾기) 시험을 진행한 후 일부는 수면을 취하게 하였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5시간 후에 반복된 실험에서 휴식만 취했던 사람들은 두 번째 테스트 결과가 처음 테스트와 비교하여 차이를 보이지 않았거나 오히려 감소됨을 보였고, 잠은 잤지만 꿈을 꾸지 않은 사람들도 두 시험결과가 큰 차이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면 중 미로에 대한 꿈을 꾼 4명은 게임을 완료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반으로 줄였고 이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성적 차이는 꿈을 꾸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10배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 실험은 우리는 잠을 자면서도 계속 생각을 하며 꿈을 통해 학습효과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뇌를 얼만큼 잘 활용할 수 있는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특히 창의적인 생각의 가장 큰 기본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뇌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담당하는 영역은 특히 우리가 백일몽에 빠져있을 때나 잠을 잘때 왕성한 활동을 한다고 한다.

영어표현에 “There is a solution for every problem”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모든 문제에는 해결방법이 있다’ 라는 뜻으로, 문제에 닥쳤을때 ‘나는 안된다’는 생각보다는 ‘나는 꼭 극복할 수 있어’라는 사고가 중요함을 의미한다. 나의 뇌는 내가 믿어주는 만큼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는 특히 수험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김석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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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시체 꽃'... 지구촌에 재앙 예고?

 

[유코피아닷컴=김성은 기자, ukopia.com]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시체꽃'으로 흔히 알려진 '타이탄 아룸'(Titan Arum)이 6일(현지시간) 활짝 펴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죽은 쥐나 시체 또는 고기 등이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시체꽃(corpse flower)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이날 처음으로 개화, 방문객이 쇄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체꽃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중부의 적도 강우림 지역이 원산지다. 6, 7년마다 한 번 필까 말까할 정도로 어렵고 또 피어있는 시간도 48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꽃은 높이가 1~3m에 이르고 하루에 10cm까지 자랄 수 있으며, 특히 구근은 크기가 보통 감자의 400배에 달해 무게가 100kg이 넘는다. 꽃잎의 직경도 무려 84cm에 이른다.

시체꽃은 전세계에 약 100여 개만 남아있어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식물이다. 대부분 버클리 대학 식물원에서 자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식물원 직원들조차 마스크를 써야할만큼 냄새가 고약해 방문객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꽃을 감상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계속 냄새가 나지 않고 몇시간에 한 번씩 냄새를 발산한다는 점이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시체꽃은 파리가 꽃가루를 옮긴다. 고기 썩는 냄새로 인해 벌 대신 파리떼가 몰려들기 때문이다.

일부 방문객들은 만개한 시체꽃을 보며 혹 불길한 징조가 아니냐는 우려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이 꽃이 재앙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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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노무현은 '거울', 이제 그 거울을 깨라"

[고성국의 정치in]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진보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를 만난 곳은 그의 제자 박상훈 박사가 운영하는 후마니타스 출판사였다. 서교동에 있는 후마니타스 출판사는 요즘 추세와는 달리 공간도 넓고 한가하다고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평생직장이었던 고려대학교를 2년 전에 퇴임한 후 조용한 '은퇴생활'을 즐기던 최장집 교수는 얼마 전부터 다시 사회적 발언을 시작했다. 평생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문제를 붙잡고 씨름해 온 노교수가 다시 사회적 발언을 시작한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민주 정부들이 실패한 반작용의 결과가 이명박 정부"

"한국 현대사에서 이명박 정부의 '좌표'는 어디쯤 있다고 보나?"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 이후 민주정부들의 실패의 결과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와 같은 세대 사람이다. 내 세대는 권위주의적 가치를 통해 성장하고 그것을 내면화한 세대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지만,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옛날 사람'이다. 이번 선거 결과도 젊은 세대들의 반대 때문이다. 그런 태도는 지금 시대에 잘 맞지 않는다."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하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한국 민주주의를 실제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역할을 했어야 했다. 그 분들이 체계적으로 일을 잘했더라면 지난 대선, 총선에서 저렇게까지 참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 보수 세력들도 민주적 변화에 적응했을 것이다. 재벌 중심의 성장 정책이나 민주사회 속의 권위주의적 구조와 행동 양식, 가치관까지 변화했을 것이다. (보수가) 그렇게 변화한 위에서 보수, 진보가 경쟁을 했다면 훨씬 더 질 높은 정치가 이루어지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데 실패했다. 그 실패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고, 뭐가 잘못됐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대안 세력들의 미래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중요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민주화가 짧은 시간 안에 이뤄졌다. 반대로 해방, 분단으로 시작해 산업화를 거치고, 민주화에 이르는 긴 시기 동안 한국 사회의 구조의 틀이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 진보를 대표했던 정부들이 이런 한국 사회의 구조를 면밀하게 자각한 위에서 정책을 심도 있게 펴 나갔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화라는 충격이 보수 세력에 오히려 경각심을 주고 그게 강화되는 '역진(backlash)' 현상이 생긴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역사적으로 볼 때 앞선 민주화 정부들이 오랜 야당생활로 정부운영의 경험이 미숙하고 여러 가지가 부족했던 까닭에 보수 세력의 반작용으로 태어난 정권이다.

그러나 보수 세력, 이명박 정부도 보여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점에서 현재의 보수정부와 앞선 정부들의 관계는 하나의 거울이미지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야당이 실패한 것은 보수 세력에 대한 안티테제만 추구했던 결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명박 정부를 보면,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반대하는 것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 "보수정부 출현, 지금 보수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통치의 내용과 방식을 보더라도, 한국정치는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그 결과 사회의 모습도 그렇다. 지금 보라. 냉전 시대의 이념과 언어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 ⓒ프레시안(최형락)

보수정부가 출현한 것도, 지금 보수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통치의 내용과 방식을 보더라도, 한국정치는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그 결과 사회의 모습도 그렇다. 지금 보라. 냉전 시대의 이념과 언어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달라진 게 없다. 아직도 보수는 진보를 비판할 때 좌파나 빨갱이라는 말을 쓴다. 분단국가와 냉전체제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나 사회는 눈부시게 변했는데,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언어, 사회제도의 운영방식, 모든 면에 있어서 50~60년대의 그것과 달라진 것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실용주의를 내세우면서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했는데 최근에는 다소 떨어져서 30% 대를 기록하고 있다. 중도실용주의를 어떻게 평가하나?"
"친 서민 중도실용주의는 촛불 시위나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 정국 등을 경험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여론에 반응한 하나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레토릭으로 끝났다.(그는 '레토릭이었다'가 아니라 '레토릭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보여주는, 사회경제정책, 산업, 금융정책, 고용, 교육 등 모든 정책수준에서 친 서민 중도실용주의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중도실용주의를 천명했음에도 경제사회 환경은 더 악화됐다고 보나?"
"악화됐다고 볼만한 지표나 경험적 자료는 가지고 있지 않다. 세계경제의 차원에서 볼 때 한국경제는 잘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장과 발전의 혜택은 상층에 편향돼 있다고 본다."

"야당도 사회적 소수자를 적극적으로 대표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일차적으로 야당이 개혁되기를 바란다. 어쨌든 신자유주의 이후, 지난 민주 정부 10년간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 오기까지 경제 상황은 서민들에게는 지속적으로 나쁜 방향으로 진행됐다. 신자유주의 효과가 정치적인 방법으로 완화되는 과정을 갖지 못해 소외 계층이 피해를 봤다. 소득 분배 구조도 악화됐다. 이른바 진보적인 정부 하에서 노동을 배제하고, 분배구조를 비롯하여 고용, 복지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이렇다 할 중요 결정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적인 군소정당들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우므로 민주당이 개혁되길 바라는데, 현 시점에서 민주당이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민주당이 어떻게 변할지…."

"비전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아닐까? 비정규직을 옹호하고 대변해봤자 어차피 선거는 지역구도 혹은 중간층 확보에서 결정 난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그렇다.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당을 끌어가는 주요 정치인들의 신념이나 가치, 정치적 비전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남북간 평화공존 위협, 민주주의 역진 우려에 대한 견제"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어떻게 보나?"
"정부의 권력이 굉장히 비대하고 견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권력의 행사에서 권위주의적인 요소가 많이 나타나면서 민주주의가 역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견제'다. 한국 투표자들은, 권력이 권위주의화하면서 오만해지거나 독선적이 되는 것을 수용하지 않는 전통이 있다. 큰 이슈도 많았다. 세종시 문제, 4대강 사업, 그리고 최근 천안함을 둘러싼 대북 정책, 남북관계 악화 등이다. 특히 천안함 문제와 관련해 지나친 대북 강경책으로 전쟁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불안감이 커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래로 남북관계에서, 대북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평화공존, 화해협력은 보이지 않는 넓은 컨센서스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러한 콘센서스가 위협받고 있으며, 그것은 국민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게 됐다. 선거는 이런 요소들이 합쳐진 결과로 보인다. 야당이 제 힘을 가지지 못하고 견제력을 상실할 때, 다음 선거에서 국민들 스스로가 투표를 통해 견제력을 만들어내는 굉장한 반작용이 온다는 점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는 '야당의 문제'와 별개로 과도한 권력집중에 대한 반작용을 보여주는 국민의 '속성'이다. 지난날 투표의 결과를 되돌아볼 때, 일종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된다."

"그런 '전통'이 다른 나라와 다른 한국정치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나?"
"우리나라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국가가 강하고, 제도권 안에서 승자의 권력독점이 강하다. 제도권 안에서 엘리트층을 분열시키고, 소외 시킬 때 소외된 엘리트들이 제도권 밖의 대중들의 불만과 결합하여 정부에 저항하는 현상이 줄 곳 나타났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우 선거결과는 주로 경쟁하는 정당들 사이의 정책내용과 정책수행의 효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책내용에 대한 평가보다도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선거경쟁의 중심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양상은 그동안의 역사를 통해 상당히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한국에서는 정책내용에 대한 평가보다도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선거경쟁의 중심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양상은 그동안의 역사를 통해 상당히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프레시안(최형락)

"조금 전에 남북 평화 공존의 '컨센서스'를 언급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국민적 컨센서스에 반하는 대북 정책을 썼다고 보나?"
"국민들의 판단은 무척 합리적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도 현재 세계정치의 조건, 동북아 지역 내의 힘의 관계,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남북한 대립의 역사를 볼 때 평화 공존 이외에 어떤 대안이 있겠는가?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보수적인 대북정책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대안이 유효하지 않는 한, 평화 이외에 다른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탈냉전시대의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냉전시기의 담론과 수사를 다시 불러오고 대북강경정책을 통해 북한을 고립시킨다고 할 때, 그리고 지금처럼 전쟁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말한다고 할 때, 국민들이 탈냉전 시대에 웬 전쟁이냐고 반문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한 사고와 정책이 시대에 맞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평화공존,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문제는 시대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유엔 안보리 멕시코대표가 '남북 모두 긴장 고조를 자제하라'라고 권고하는 것도, 전체 국제 정치의 방향이 그렇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부분에 대해 중국 정부는 비교적 명확한 것 같다. 미국은 어떤가?"
"미국도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불안한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 대외 정책의 우선순위는 대 아프가니스탄, 대중동, 대이스라엘 정책이다. 그밖에 다른 곳에서 불안과 위험요소가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하거나 누그러뜨리지 않을 경우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나?"
"고립될 수 있다. 국제 정치가 필요로 하는 지배적인 정책 방향과 모순되거나 충돌할 때,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한국이 당사자인데, 이런 기조 (평화 기조)에 반대되는 것을 하게 되면 외교의 이니셔티브를 가질 수 없다."

"MB정책의 '찬반' 투표가 지역주의를 억제"

최 교수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 문제를 사회경제적 맥락과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한 최초의 정치학자였다. 지역주의라는 특수성도 사회경제적, 정치적 보편성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소속 김두관 후보가 한나라당 텃밭경남에서, 민주당 이광재 후보가 역시 보수 성향이 강한 강원도에서 당선됐고, 한나라당 후보들도 전남에서 두 자리 수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역 구도가 상당히 완화됐다고 봐도 될까?"
"그런 면이 있다. 지역구도라고 하는 것은 사회의 갈등이나 균열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주요이슈들, 즉 사회경제적 이익갈등을 둘러싼 문제들이 기존의 정당체제를 통해 제대로 표출되고 대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사회 경제적 문제가 정당을 통해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환경 하에서 민주화이후 한국적 특수성이라고 할까, 민주화투쟁과정에 기원을 갖는 지역 간 갈등, 지역 간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민주화 이후 정치경쟁이 본격적으로 개방되었을 때,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동원하고 조직할 수 있었던 대립축이 이른바 지역갈등이다.

민주화 된 이후 이른바 지역구도는 지역 간 대립을 넘어서는 갈등축, 중요한 정책 이슈들이 표출될 때 약화되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권력의 독점과 권위주의적 경향을 드러내는 정부 여당에 대한 견제, 이 정부가 추구했던 공공연한 상층 편향적인 정책, 대북이슈 등 분명한 찬반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특별한 이슈들이 있었던 점이 지역 구도를 억제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슈를 중심으로 투표가 이뤄졌다. 이렇게 보면 지역구도를 상수로 놓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보다 보편적인 이슈들이 어떻게 선거의 경쟁축이 되는가에 따라 영향 받는 종속변수라고 본다." 

"촛불 경험한 젊은이들, 투표장에 나와 선거에 '큰 충격' 줬다"

"이번 선거가 '촛불 민심의 발현'이라는 말도 있다."
"촛불 시위는 이명박 정부 초기, 대선 승리 직후 만들어진 인사나 정책 결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성격, 특히 한미쇠고기 협상이 독선적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대의 표명이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들이 짧은 시간에 많은 반대자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가 촛불이었다. 그 이상, 그것을 과도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야당이 궤멸되다시피 했을 때 정책에 반대하고 권력을 견제하는데 운동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광장 민주주의라는 평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런 평가에 대해서는 나는 일관되게 비판적이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촛불시위에 대해 논평할 때, 촛불집회로 나타난 시민적 항의를 문제 삼았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식인들이 현존하는 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촛불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 그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방법을 비판적으로 말한 것이다. 지식인들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촛불시위에 대해 언급했던 내용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현실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촛불시위를 경험한 젊은 세대들이 투표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투표장으로 나왔고, 그것은 선거에 큰 충격을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 "지방선거에서 투표율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절반 가까이 투표하지 않고 있다. 적극적 참여를 유발할만한 정당체제가 강화되지 않는다면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프레시안(최형락)


"촛불시위를 시위의 형태를 갖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시위는 비용이 많이 들고 개인적 희생도 많이 따르기 때문에 좌절감과 실망이 더 클 수 있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지방선거를 볼 때, 촛불 시위의 영향이 투표장으로 젊은 세대들을 끌어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의 힘으로서 보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투표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투표장으로 나오는 힘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투표 행동이 앞으로의 추세로 이어질까?"
"다음 총선, 대선에서는 투표율이 일정 부분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투표율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절반 가까이 투표하지 않고 있다. 적극적 참여를 유발할만한 정당체제가 강화되지 않는다면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야당의 승리, '반MB' 이상의 의미가 있느냐"

이번 선거에서 야권의 승리 요인은 '반MB연대'로 설명되는 일종의 '정치 연합'이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최 교수는 '거기에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비판적으로 말했다. 매우 논쟁적인 대목인데 그의 논지를 따라가 봤다.

"'반MB' 담론 내지는 전략을 통해서 야당은 선거를 치렀고, 일단 승리를 거두었다. 나는 야당의 승리가 '반MB' 이상을 넘어 얼마나 의미가 큰 것인지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권력을 제도 안에서 견제한 것까지는 국민이 아주 현명한 판단을 했다. 이번 선거에서 제일 기분 좋았던 것은 젊은 사람들이 투표를 많이 했고, 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당선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안희정, 이광재 같은 젊은 세대들이 진출했다는 점이다. 나는 강원도출신인지라, 관심을 갖게 되는데, 투표성향이 굉장히 보수적인 강원도에서 한나라당이 아닌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당선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반MB'가 통했다고 했는데 또 다른 측면은 없나?"
"이런 문제도 있다. 정책 문제로 비판을 해야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을 너무 악마처럼 생각한다고 할까. 그런 태도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동기가 문제라고 본다. 정책 비전이나 대안아이디어를 가지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진영 대 진영으로 나눠,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가급적이면 강한 공격적 언어로 비판하는데, 이런 정치대립에 대해 나는 비판적이다. 과거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 보수언론들이 반DJ, 반노무현을 내걸고 격렬하게 공격했을 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이른바 진보언론들이 대통령을 그렇게 몰아세우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정치가 되풀이되면, 아무리 선거에서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해도 한국 정치의 질적인 발전을 가져오기는 어렵다."

"야당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정당들이 어떻게 통치할 수 있는 대안세력이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나, 정책에 있어 어떤 대안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다음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가 결정될 수 있었으면 한다."

"권위 자임하는 시민운동, 정당 제도 안으로 들어가 책임 져야"

최 교수는 이른바 '5+4' 테이블(후에 진보신당의 불참으로 4+4가 됐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특히 시민단체가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운동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싶다. 시민운동으로 표현되는 운동의 역할은 민주화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정치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시민운동은 스스로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선거연합을 추진했는데, 이런 점은 비판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한 역할을 하기위해서는 운동이 정치로 들어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운동의 활동가들, 원로나 지도자들은, 그들의 정치적 행위나 권위에 대해 누구로부터 그것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 밖에서 또는 정치위에서 정치의 향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왜 그런가?"
"이들은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도덕적 권위를 갖는다고 자임한다. 이들은 여론에 큰 힘을 미치고 정당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말하자면 실제로 정당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정치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중요 정책, 선거를 앞둔 정당들의 전략, 정책, 이런 것에 개입하고 발언한다. 정치행위는 책임이 뒤따른다. 여기에서 책임지지 않는 정치행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운동이 정당이 되든가, 정치 안에 들어와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발전한다. 정치와 정당 밖에서 높은 도덕적 지위를 자임하면서 훈수하는 정치. 이것은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행위는 제도 안으로 들어와서 하고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운동의 영역을 지키라는 말인가?"
"운동이라고 하는 게 두 가지 성격이 있다. 하나는, 특정 이익이나, 이슈를 대표하는 자율적 결사체를 구성 하는 것이다. 이는 긍정적 행위자다. 그게 정당의 하부 기반을 만든다. 다른 하나는,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자임하며 정당정치의 상위에서 그리고 밖에서 국민과 정치인들에 대해 훈계하는 운동이다. 이런 방식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자임하며 정당정치의 상위에서 그리고 밖에서 국민과 정치인들에 대해 훈계하는 운동의 방식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결국 다시 '정당의 문제'로 돌아왔다."
"정당이 제대로 작동 안 되고 약하면 제대로 된 대표를 선출하기도 어렵고, 좋은 정부를 구성하기도 어렵다. 또 집권했을 경우에도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통치행위와 권력행사에 대해 책임을 묻기도 어려워진다.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으려 해도 이미 그 정당이 없어졌거나 대통령이 탈당을 하는 등 애매한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게 하기 위해서는 정당을 강화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당이 허약한 상황에서 의회 중심주의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의회주의의 장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 역사적인 사례가 많다. 당장 한국의 제2공화국이 그랬고, 프랑스 3,4공화국,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그랬다."

"정당이 허약하다, 강하다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간단히 말해서 정당은 제도다. 사회의 여러 갈등이나, 경쟁하는 이익에 기반을 두고 이 세력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다수당이 됐든 소수당이 됐든 대표성을 가져야 하고 그것이 존중돼야 한다."

"현대 정치에서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 대중정당화를 지향하게 되니까 어려운 문제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유럽의 정당은 계급적인 경쟁과 대립으로부터 기원을 갖는다. 미국의 정당도 이익결사체나 여러 세력, 조직들을 취합해서 당 전체의 플랫폼을 만든다. 한국의 경우는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너무 약하고 협소하기 때문에 '제도권'이 너무 빈약하고 허약한 것이다. 이를테면 투표를 안 하는 기권층이 절반에 이르는데, 그것은 기존의 제도권의 '대표성의 부재'를 말해주는 것이다. 정당 체질을 강화시키면 변화가 가능하다."

"현존하는 정당 중에서 세력 대표성이나 계층 대표성에서는 한나라당이 앞서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나."
"글쎄, 앞서간다?"

"한나라당은 보수 대표성이 상당히 있는 것 같은데, 민주당은 중도 대표성이나 진보 대표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가."
"비교하자면 그런 면이 있다. 당의 하부기반도 민주당보다는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이 더 튼튼한 것 같다. 바꿔 얘기하면 민주화 이후 야당들이 사회 기반에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다."

"민주, 한나라와 큰 차이 없어…소외 계층 적극 끌어안아야"

"민주당이 실패했다면 그 원인이 뭔가?"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한데, 민주화가 된 후에 정당 체제가 개혁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그 때 과거 정당 구조의 틀을 넘어섰어야 했다. 과거 정당은 민주화 이전의 냉전 반공주의라고 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틀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은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볼 때 정당의 틀이 너무 좁아서, 중간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도 존립하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계기가 있었지만 신자유주의가 밀려왔다. 그래서 이른바 한국의 '보수 야당'이 한나라당과 큰 차이가 없어졌다. 사회 정책을 다루고 중요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념적인 기반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진보적인 군소정당들도 이데올로기의 지형을 뚫지 못했다. 이런 것이 지속된 결과다."

"열린우리당의 실험은, 어떻게 평가하나?"
"나 역시 판단하기 어렵다. 두 개의 보수적 정당으로는 대표되지 않는 영역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런 영역을 잘 판단해서 현실적인 정당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았겠는데, 불행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아주 축약해서 얘기하면 너무 남북문제, 민족 문제, 즉 보수적 헤게모니가 강한 이데올로기 영역에만 집중하지 않았나.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이 해야 할 제일 중요한 것, 우리 사회에서 대표되지 않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대표하는 것이 소홀해졌다. 그래서 내용적으로 뚜렷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뉴민주당 플랜을 보면 반대방향으로 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뉴민주당 플랜의 내용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있다. 영국의 보수당은 야당 생활을 14년 했는데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섰었다. 대처리즘을 계속 유지하면서 보수 가치를 강화하느냐, 진보가치를 끌어안느냐, 공화당이 중간층의 지지를 추구하는 보수온건노선을 취하느냐, 아니면 중간층의 지지를 포기하더라도 '티 파티' 그룹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극도의 경제적, 재정적 보수주의노선을 취하느냐 하는 선택이다. 극단적 보수노선을 취할때 다가오는 중간선거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외국의 사례들은 한국의 민주당 노선 결정에 있어서 하나의 준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과 차이가 별로 없었는데,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민주당은 그동안 대표되지 않았던 중도 계층과 서민들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일관되고 신뢰할 만하면서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발굴해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선택이 될 수 있지 않겠나. 그 점에서, 이광재, 안희정, 송영길 등, 젊은 세대, 차세대의 리더군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 교수의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기륭전자 노동자들과 단식을 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진정성은 있지만 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무기력했던 소수파의 한계 말이다. 만약 민주당이 그런 진정성을 보였다면 적어도 민노당의 한 여성 의원의 투쟁과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의 50% 이상이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고통 받고 있는데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껴안지 않고 민주당이 집권을 얘기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반MB' 담론은 민주당에 유리…진보정당 존재 목적 존중돼야"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선택한 길이 많이 달랐다. 민노당은 처음부터 반MB연합의 길을 걸었고, 진보신당은 독자성을 고수했다. 그 바람에 '노회찬 때문에 이길 선거를 졌다'는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노회찬 때문에 졌다. 심상정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라는 식의 평가는 설득력이 없다. 이것을 말하기 전에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서 만들어진 지배적인 담론인 '민주대연합'이 먼저 언급될 수 있다고 본다. 이른바 '반MB연대'는 한국 정치의 힘의 관계를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눈 진영 간 논리다. 이것은 기존 제도 안에서 유리한 지위를 선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담론이 된다.

그러다보니 군소정당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무조건 승리'를 위한 연합이 된 것이다. 앞서 말한 '권력 견제에 대한 한국적 전통' 그 이상이 아니다. 정치경쟁에서 정치연합, 선거연합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유럽 의회중심체제에서는 연합해서 집권하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치연합에 있어 중요한 것은 군소 정당의 목적의식, 존재 이유가 존중돼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선거처럼, 선거연합이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지지 않았고, 선거연합과정에서 정책을 둘러싼 정당 간 '협상'의 모든 과정이 생략되고 '이겨야 한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이 분위기와 심리에 굴복해 군소 정당 후보들이 사퇴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끝까지 경쟁에 남아서 독자성을 견지한 것이 여론의 지탄 대상이 되는 현상이 민주주의와 정당발전을 위해 얼마나 긍정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선거 제도가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제 하에서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다. 큰 정당들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이를테면 유럽의 의회중심제나 프랑스의 결선투표제는 군소 정당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 투표자들이 일단 전략적 투표를 하지 않고, 가장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한 다음에 2차 투표에서는 전략적으로 할 수 있다. 이 연합과정에서 이념적 거리가 가까운 정당들 사이의 연합이 일반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연대과정은 '연대하기 위해 어떤 정책은 우리 것을 수용하고 장관은 누가 돼야 한다'는 정치적인 협상을 포함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론조사에서 이길 확률이 많으니까 지지율이 적은 사람은 들어가라는 식인데, 이런 방식이 얼마나 좋은 선택이 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투표 행태가 정략적인 선택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뜻인가?"
"투표 제도만 보면 그렇다."

▲ 정치가 잘못됨으로 인해 사회의 가치, 교육, 문화 이런 것들이 너무나 낡은 틀 속에서 기득권의 구조를 재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악순환의 틀을 깨야 한다. 거울을 깨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원희룡, 안희정, 송영길 등 나서야…박근혜? 실체가 없는 것 같다"

교수는 "젊은 세대의 정치인, 차세대 리더군이 나서야 한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젊은 세대'에 희망과 기대를 강하게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정치인에 평가를 부탁했다. 최 교수는 민감한 문제임에도 피하지 않고 실명을 거론하며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오래 생각해온 문제였음이 분명해보였다.

"지난주 세미나를 갔을 때 한나라당의 원희룡 의원 등 여러 사람들이 나왔는데, 그와 얘기를 해보니 아주 똑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사람도 잘되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민주당 사람들도 잘되면 좋다. 민주당에는 천정배 의원이 나왔다. 양당에서 주요인물들이 나왔다. 이광재 씨가 개인적인 (재판) 문제가 걸려 있던데, 그 점은 논외로 하고, 개인적으로 강원도민들이 야당 인물을 선출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안희정 같은 사람도, 노무현 정부에서 큰 혜택도 못 받고 고생을 많이 했는데, 당선돼서 잘 된 것 같다. 안희정 씨는 잠재력이 큰 사람이라고 평소에도 보고 있었다.

송영길 같은 사람도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 나온 김에 언급하고 싶은데, 당선된 이후에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가 '나는 좌파가 아니다. 나를 좌파로 보지 말라'고 발언했다는 것을 신문에서 봤는데, 그럼 발언은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 나도 모르고 있는데, 느닷없이 '나는 좌파가 아니다'라고 말해야하는 그런 심리적 상태랄까, 정치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이라고 할까, 그런 게 마음에 걸렸다. 젊은 세대 정치인들은, 그런 이데올로기적 구속에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을 했으면 좋겠다."

"박근혜 전 대표는 어떻게 평가하나?"
"글쎄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는 이미지가 별로 없다. 뭐라고 평가할 내용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 정도 중요한 차기 대통령 후보자군의 한 사람이라고 하면 뭔가 자기의 이념이 있고 비전이 있고 말하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리고 한국사회의 주요문제들에 대해 뚜렷한 자기관점과 입장이 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런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현실 문제에 대한 본인의 판단을 국민이 알 권리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그분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한테는 실체가 없고 허상 같은 느낌이 든다. 현실 같지가 않다."

"차세대 지도자들,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깨라"

"앞서 '운동도 정치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5+4(4+4) 모임에 참여했던 시민단체들이 굉장히 반발할 지도 모르겠는데….(웃음)"
"반발해도 상관없다. 고성국 박사가 나보고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슨 얘기든 다 하라'고 해서 한 것이다.(웃음) 정치를 보는 입장이라고 할까. 내가 DJ 정부 때 정부에 참여해서 정책자문위원장을 했는데, 그 때만 해도 정치에 많은 기대를 했고, 나도 현실정치에 참여해 기여를 할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와 희망도 가졌다. 그러나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내가 현실정치에 기여할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이후에는 주로 학문적인 방법으로, 객관적으로 한국 정치 현실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이해를 심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싶었다. 한국 정치 현실을 보는데 있어 현재의 당파적 관점이나 이해관계를 벗어나서 사고하고 말하고 싶다. 나는 민주주의의 '감시견'으로서 한국 민주주의가 잘되는지 못되는지 객관적,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걸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나는 특정 정당의 이념을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입장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나는 나를 자유롭게 놓아두면서 파당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문제를 보고 싶다." ⓒ프레시안(최형락)
"보수, 진보 모두에서 '환영' 받기 어려울 것 같다.(웃음)"


"평소 이명박정부에 대해서 비판하는 강도가 약하다고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에는 내가 이명박 대통령과 무슨 동창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특정 정당의 이념을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입장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나는 나를 자유롭게 놓아두면서 파당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문제를 보고 싶다."

"지금까지 30년을 활동했다. 그런데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쳇바퀴 같은 현실'을 목도하게 되거나, 앞서 언급했지만 민주정부 10년 동안 역사발전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것을 목도하면 절망스럽거나 화나지 않나?"
"앞에서 나는 '거울이미지'라는 표현을 썼다. 왜 사람들이 거울로 되돌아가서 다시 이미지를 만들고, 그 허상에 얽매여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안타깝다. 젊은 사람, 차세대 지도자라고 한다면 이것을 깨야 한다. 새로운 넓은 시대가 있고,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상상력, 좋은 이미지와 좋은 가치가 있는데 왜 이런 좁은 틀에 스스로를 묶어두느냐는 말이다. 밖을 보라.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세계의 경제선진국의 반열에 들어갔고,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왜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 지금 남북관계 문제에 있어서도 당장 유엔에서도 대접을 못 받고 있다. 왜 그럴까? 기본적으로 정치가 잘못돼 있고, 정치가 잘못됨으로 인해 사회의 가치, 교육, 문화 이런 것들이 너무나 낡은 틀 속에서 기득권의 구조를 재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악순환의 틀을 깨야 한다. 거울을 깨야 한다."

젊은 세대의 역할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최 교수는 물을 마셨다. 이례적이다 싶을 만큼 강하게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비판적 담론을 편 최 교수의 표정에서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노학자의 열정이 느껴졌다. 나는 "건강하시고 계속 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인사드리고 헤어졌다. 인사말에 실린 심정이 필자만의 것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최 교수의 건강과 원숙한 연구활동을 기대하고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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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실 창밖에 거대한 지어진 거미집 - 지름이 2미터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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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피부로 정자 생산 ♂은 이제 꺼지세요 [조인스]

 
동성 커플도 임신… 5년 내 가능한 기술이지만 윤리문제 걸려
김형근의 미래, 미래사 이야기 | 남자 종말론
이탈리아 북부 만토바에서 발굴돼 ‘5000년간의 포옹’으로 불리는 남녀의 유골.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번식만을 위해서라면 남자와 여자가 모두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월간중앙단순히 섹스라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여자에게 반드시 남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이용 가능한 현실이 너무나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남자 없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많다. 그러니 왜 남자가 필요하겠는가. 인공정자를 통해 임신하고 자손을 만들 수 있다면 말이다. 남성의 종말을 예견하는 학자가 많아지고 있다.

남성의 종말! 으스스한 이야기다. 왜 흔히 듣던 인류의 종말이 아니라 유독 남성의 종말인가? 왜 여성의 종말은 아닌가? 고대 그리스의 전설에 나오는 아마존 시대라도 온다는 말인가?

원초적이면서도 큰 질문을 해보자. 남자와 여자는 왜 만나는가? 그리고 왜 서로 몸을 나누는가? 사랑, 그리고 섹스를 통해 희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희열만을 위해 섹스를 하는가? 아니다. 그 희열을 통해 궁극적 목표인 2세를 양산하려고 섹스를 한다. 사람은 사랑 속에서 희열을 느끼고, 희열 속에서 자손을 원한다. 종족 유지는 모든 생명체의 최상 과제이자 본능이다.

때문에 아무리 상대방이 섹시하게 생겼다 해도, 그리고 2세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해도 남자의 경우 무정자증, 여자의 경우 불임이라는 딱지가 붙는다면 결코 상쾌하지 않을 것이다. 섹스를 할 맛도 사라질 것이다. 전문적인 바람잡이 남자와 여자에게는 축복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르가슴은 인간 진화의 산물이다. 섹스 속의 환희는 자손 번식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큰 질문을 해보자. 유사 이래 여자가 남자에게 예속된 채 살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이라는 정글의 법칙 때문이다. 남자는 힘이 세다. 여자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남자의 지배가 가능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밖에서 돈을 버는 것은 남자다. 집에 못이라도 박아야 하고, 전등이라도 갈아 끼우려면 남자가 필요하다. 남자가 그런 일을 맡는다. 남자가 늙고 힘이 떨어지면 여자에게 구박을 받는다는 말도 이런 상황에서 나왔을 것이다. 다시 좀 유식한 차원으로 돌아와 보자.

정말 여자가 남자에게 예속당하는 것이 과연 육체적 힘이 없어서인가? 그래서 남자에게 기대는가? 생물학적 차원에서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남자는 씨를 뿌린다. 그 씨를 거둬들이는 것은 밭인 여자다. 다시 말해 여자는 진화와 종족보전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속성 때문에 씨를 받기 위해 남자에게 예속되는 것이다.

섹스는 일차적으로 즐기기 위한 유희다. 그러나 근본 목적은 2세 양산이다. 그런데 남자의 그 대단한 씨를 남자와의 육체적 관계가 아니라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면 과연 여자는 남자를 필요로 할까? 여자에게 남자가 필요 없다면 이는 곧 남자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잘생긴 할리우드의 남자배우나 건장하고 섹시한 아메리칸풋볼 선수의 냉동정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같은 후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피부 세포로 정자 생산 가능

쉽게 말하자. 당신이 만약 여자라면 당신의 피부에서 추출한 세포에서 줄기세포를 만들어 남자의 정자를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생물학적으로 여자인 당신의 정자를 만들 수 있다. 냉동정자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여자가 자신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유전자를 통해 ‘자신의 정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 이 정도라면 여자에게 남자가 왜 필요하겠는가? 짧은 시간의 극적인 섹스의 흥분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단순히 섹스라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여자에게 반드시 남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이용 가능한 현실이 너무나 많다. 남자 없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즐비하다.

그러니 왜 남자가 필요하겠는가? 인공정자를 통해 임신하고 자손을 만들 수 있다면 말이다. 남성의 종말을 예견하는 학자가 많아지고 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과학면에서 보도한 내용을 잠시 들어보자.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의 레니 레이조 페라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은 체외수정(IVF·In Vitro Fertilization) 치료 후 남은 여분의 인간 배아로부터 추출한 줄기세포를 이용해 ‘원시상태의(primitive)’ 정자와 난자 세포를 만들어냈다.

강조할 부분은 ‘원시상태’라는 데 있다. 이는 연구진이 만들어낸 세포가 정상적으로 수정에 관여할 수 있는 성숙한 정자와 난자처럼 완벽한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세포는 더욱 발달해야 최종적으로 정자와 난자로 자랄 수 있다. 과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미숙한 세포인 ‘생식세포(sperm cells)’다. 물론 연구진은 순수한 동기에서 이러한 연구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생명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정자와 난자의 형성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물학적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진이 이룩한 이러한 과학적 정보와 기술을 이용한다면 결국 소위 ‘시험관 생식세포(in vitro-derived gametes)’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설명하자면 ‘인조 정자와 난자(synthetic sperm and egg)’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과학적 업적은 자신만의 생식세포를 생성해내지 못하는, 다시 말해 가임 능력이 없는 남성과 여성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인조 생식세포’로 인해 불행한 사람에게 생물학적 자식의 부모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가 얻은 기본적인 과학적 정보들은 인간의 정자와 난자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줄 것이다. 또한 남녀의 불임에 대한 새로운 치료기법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정자증(azoospermia)은 정액을 검사했을 때 정자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의 1%에서 발견되며 불임남성의 10~15%에서 발견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따르면 정자 농도가 20×106/ml 이상이 돼야 정상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 이하인 경우 감정자증(spermatozoa)으로 정의한다. 남은 IVF 배아로부터 정자와 난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곧 시험관 내에서 인조 생식세포를 생성해내는 일이 실행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불임인 사람의 피부 세포로부터 추출해 복제한 인간배아에도 똑같은 일을 진행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꼭 IVF 배아가 아니라 피부 세포 한 조각이면 생식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불임남성들이 자신의 정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불임여성의 경우 역시 자신의 난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남성이 난자를 생성할 수 있고, 여성은 정자를 생성할 수 있게 해준다. 동성 커플의 자녀도 각각의 게이 부모로부터 똑같이 유전형질을 물려받을 수 있다. 생물학적 자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녀의 생식세포는 인간 배아의 초기 상태에서 발달을 시작한다. 청소년기, 심지어 출생보다 훨씬 전이다.

과학적 내용이어서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연구팀의 내용을 좀 더 소개해보자. 레이조 페라 교수와 동료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IVF 배아세포들 가운데 앞으로 생식세포가 될 세포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정자와 난자를 만들도록 예정된 배아세포 내에서만 발현되는 초록형광표지유전자(green fluorescent marker gene)의 도움으로 이 생식세포가 될 운명을 가진 배아세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정자가 될지 난자가 될지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페라 교수 연구팀은 생식세포의 발달에 관여한다고 생각되는 약간의 유전자를 조작해 생식세포가 난자나 정자 세포로 성숙하는 데 필수적인 세 가지 유전자를 발견했다. 바로 DAZ, DAZL, 그리고 BOULE라고 이름 붙인 유전자다. 연구진은 우선 DAZL 유전자가 배아줄기세포를 생식세포로 변형시키는 데 필요한 유전자라는 것을 알아냈다.

나머지 두 유전자는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데 중요한 감수분열(meiosis)로 알려진 세포분열과 같이 후기 발달 단계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오랜 시간에 걸쳐 감수분열로부터 성숙한 정자 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난자 세포들은 불완전한 감수분열로 성숙이 덜 된 단계였다.

감수분열이 무엇이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까? 정상적으로 세포가 두 개로 분열할 때 그들은 각각의 ‘딸’ 세포에 같은 수의 염색체를 남긴다. 그러나 정자와 난자의 독특한 특징은 그들의 염색체 수가 반이라는 것이다(인간은 23개).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생식세포가 수정 과정에서 합쳐질 때 수정된 난자의 염색체는 인간에서는 46개인 정상적인 수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주선의 달 착륙 장면처럼 보이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 순간.

“남자는 필요 없다” 외치는 여성

다시 말해 감수분열은 ‘모세포’의 염색체 수가 반으로 분열하도록 해주는 세포분열의 한 형태다. 그래서 실험실에서 합성 생식세포를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감수세포 분열을 자극해 결과적으로 합성된 정자와 난자가 각각 23개의 염색체만 갖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배아줄기세포로부터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것이 심근이나 뇌세포와 같은 다른 특수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유다.

“우리의 목표는 난자와 정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번식·발달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지만, 이번 연구로 그 발달과정을 조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불임부부를 돕는 것입니다. 10~15%의 부부가 불임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 연구와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평을 종합하자면 자신의 유전자가 담겨 있는 인공정자를 만들어내는 일은 수월하다. 앞으로 5년만 주어진다면 말이다. 그러나 인공난자는 어려움이 상당히 많다는 내용이다. 사실 쥐를 실험한 다른 연구에서도 인공정자를 생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러나 인공난자를 만들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윤리적인 부분을 고려하자면 영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가 현재 IVF 치료에서 합성생식세포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안전성이 확보되고, 또는 적어도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정자와 난자 정도로 안전하다면 남성과 여성의 불임을 치료하는 데 그들의 사용을 반대하는 집단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동성 커플이 그들만의 생물학적 자손을 갖기 위해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인디펜던트>는 이러한 인공정자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찬성 의견 : 이것은 불임부부에게 아이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준다. 비록 과학자들이 정자와 난자를 실질적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불임에 대한 이해는 진전될 것이다.

언젠가 동성 커플에게 그들만의 생물학적 자손을 만들도록 해줄 것이다. 반대 의견 : 이 연구는 인간 배아를 다루는 연구에 기초하며 비윤리적이다. 이 분야에서 많은 사람이 환영하지 않을 미래의 발견들로 이끌 것이다. 이것은 자연을 어설프게 손보는 것이며, 어느 경우든 세계는 이미 인간의 과밀화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는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는 순수과학인 물리학에서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 나왔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현미경을 통해 보는 아름다운 모습의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생물학이 바이오 테러에 원천적 기술을 제공한다는 것을 안다. 과학은 그야말로 인간이 다루기 나름이다.

인공정자가 우리에게 축복인지 재앙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인간이다. 어쨌든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남자의 정자인 벌레를 만드는 일은 쉽다. 그렇다면 남자의 종말이 오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남자의 필요성이 사라지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남자임을 으스대면서 그저 지배하려고 화만 버럭버럭 내는 남자를 어느 여성이 받아들이겠는가. 여성들은 이렇게 외치게 될 것이다.

“남자는 필요 없다. 오직 내 피가 섞인 정자만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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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맞은 소설가 이외수·화가 김점선씨
 
 

소설가 이외수와 김점선 화백. 1946년 경향신문이 창간되던 해 태어난 2명의 ‘괴짜’ 예술인들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 소설과 그림만으로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작품만으로 외부와 소통해 온 은둔형들이다. 간혹 영화에 잠깐 얼굴을 내밀고, TV교양프로그램 진행자로 나선 것이 대외활동의 전부다. 따라서 두 사람이 마주 앉은 것도 최초였다. 동갑내기 예술가들은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남달랐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가고 싶은 데도 없다’고 자서전에 썼던 김화백은 전시회 개막 행사 일정까지 팽개친 채 강원도 산골을 찾았다. 이작가도 대담자가 김화백이라는 소개를 받고 흔쾌히 일정 모두를 비웠다.

이들은 지난 15일 강원 화천군 ‘감성마을’ 이외수씨의 집 서재에서 만났다. 이순(耳順)의 나이가 된 이들은 자신의 예술혼을 이해받지 못할 때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또 “노(老)했으되 쇠(衰)하지 않았다”며 향후 인생설계를 털어놓는 등 청년 못지않은 열정을 자랑했다. 두 예술가가 맞는 60세는 어떤 의미일까?



◇인생 60년의 의미

김점선(이하 김)=어느새 우리도 환갑을 앞두고 있네요. 오십견이 생기면서 장시간 그림 그리기가 힘들어졌어요. 나이 들면서 몸이 성치않은 것은 어쩔 수 없겠죠. 제가 아직 젊었다면 이선생 뵈러 이곳 첩첩산중을 배낭 하나 메고 걸어왔겠지만 이젠 어렵죠. 하지만 오히려 남의 차 얻어타고 이선생 뵙게 되듯, 나이 핑계로 이런 저런 도움을 받아 생활할 수 있는 점을 보면 오히려 내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죠. 다른 일 벌일 기회가 더 많아진 것같아요.

이외수(이하 이)=흔히 나이 먹으면 ‘노쇠하다’는데 그런 생각은 수용 못해요. 우리가 ‘노’는 몰라도 ‘쇠’는 아닙니다. 체력적으로 일이 힘에 부치긴 해도 열정은 아직 그대로니까요. 문제는 육체가 아닌 정신에 있는 것이니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죠.

김=동양철학에서는 10간과 12지를 엮어 해(年)를 60가지까지만 나누죠. 갑자(甲子)에서 계해(癸亥)까지 특성이 다른 60해를 다 살았으면 각각의 해에 담긴 액운과 횡재를 전부 겪었다는 것일 테죠. 그러니까 60살은 모든 삶의 경험을 전부 해봤다는 의미겠네요.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골라먹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나이가 60살일까요.

이=60년 간의 모든 액운을 다 견디고 용케 살아남았다는 의미도 되겠네요. 요즘 ‘인생역전’이란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더군요. 젊은이답지 않아요. 역전이라는 것은 적어도 치열하게 삶의 목표를 좇다 한 60살쯤 돼 다른 길을 생각해볼 때 해야 하는 말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입에 담는 인생역전이 복권당첨처럼 물질에 집중되는 점도 아쉽습니다. 그토록 집착한 물질이 부질없음을 깨닫는 나이가 60살일 겁니다.



◇인생 후배들에게

이=요새 출산율이 계속 떨어진다는데 부부만의 삶을 위해 가족으로서의 책임을 버리는 탓입니다. 물론 살기 빠듯하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모는 살기 넉넉했을까요. 젊은 세대들 자식 못낳겠으면 우리가 낳아주겠다고라도 하고 싶네요. 우리는 부모 공양하고 자식 키우면서 겪는 온갖 애환을 삶의 맛과 멋으로 알았는데…. 나만 편하려 하는 것은 이기적이에요. 주체적이지 않은 삶에 따라 사람들 스스로 사회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겠죠.

김=이제는 작가들이 사랑을 논하지 않는다더군요. 요새 사람들은 정말 자기에만 미칠 뿐, 남에게 미치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랑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거지 이성에게 눈 멀지 않는 세상인가 봐요. 이러다 먼 미래에는 체외수정으로만 아이를 낳는 게 아닐까요. 후손들은 ‘옛날 사람들은 애를 낳았대. 어쩜 그리 동물적이냐’ 하고 비아냥거릴지도 몰라요.

이=물질만능 풍조 탓에 사람들은 오직 자기 육신의 안위만 찾아요. 너무 삭막해요.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평생을 불붙이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양초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촛불이란 자신이 타면서도 어둠을 밝히는 데 그 존재가치가 있어요.

김=어린 아이 상태로 죽을 때까지 살다 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20대에 멋진 겉모양새를 추구하지만 나이 먹으면 합리적 체념을 하게 되죠.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유혹에 흔들림이 없어지고, 다 겪어보면 외양은 아무 의미 없다는 것 스스로 알게 되겠죠. 지금 당장 이런 말 해봐야 젊은이들에게는 잔소리죠. 이와 달리 우리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컴퓨터와 인터넷 등 가르침을 받고 있어요. 이선생님이 79년생 둘째 아드님께 컴퓨터 배워 활용하듯 저도 동갑내기 아들한테 컴퓨터 그래픽 등을 배웠어요. 오히려 나이든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계발과 소통에 힘쓰고 있죠.



◇일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

김=돌이켜보면 가난이 가장 힘겨웠어요. 안티팬 가운데 ‘당신이 굶는 사람의 고통을 아느냐’는 이유없는 비난을 하기도 하는데 저도 젊을 때 엄청나게 굶었어요. 어렵던 시절 친구들조차 가난하다며 저를 피했고, 미술 공부한다고 일탈만 일삼던 제게 부모님은 땅 한뙈기 안물려주셨죠. 예술이 하고 싶을 뿐인데 금치산자 취급이었어요. 고생이야 했지만 한편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영원히 남에게 빌붙어먹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겠네요.

이=가난이 고통이라는 점에 동감합니다. 돈 없으면 사랑할 자격도 없는 세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행복의 기준이 물질적 풍요입니다만, 예술하는 사람한테는 이게 안맞아요. 예술가는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인데 이 혼(魂)을 인정받지 못하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따돌림 속에서 예술가의 외로움은 남들의 몇배가 되죠. 외국의 어떤 천재적인 예술가라도 우리나라에서 살았다가는 3년 안에 죽고 말겁니다. 사인은 둘중 하나죠. 자기 예술을 이해 못받아 복장 터져서 죽거나, 벌이가 안돼 굶어 죽는 것이죠. 예술이 도외시되는 이 땅에서 60살까지 예술하고 살아왔으면 우리는 대성공경우죠.

김=대성공 맞습니다(웃음). 어렵던 때는 그렇게 무시하다 나중에 친한 척하는 사람들은 얄밉기도 해요. 이들은 엄청난 노력 끝에 만들어 낸 작품이 아닌, 아무렇게나 손가는 대로 만든 것을 보고도 지나친 칭찬을 하죠. 나이 먹고 유명해지면서 가식적인 칭찬을 듣는 것도 씁쓸하네요.

이=가난과 외로움 말고도 이유없는 오해를 사는 경우도 아픈 기억입니다. 몇년전 당대의 악플러(악의적인 내용의 댓글로 인신공격을 일삼는 네티즌) 10여명이 제 홈페이지에 “특정 집단만 옹호하는 당신을 징벌한다. 오늘밤 0시를 기해 일제히 공격하겠다”고 통보한 적이 있죠. 근거없는 주장이라 만류했지만 그들은 강행 의사를 꺾지 않더군요. 저는 “그럼 내가 시범을 보일 테니 나보다 더 창의적으로 할 수 있으면 실천하되 자신 없으면 물러나라”고 통보했어요. 저는 직접 제 홈페이지에서 2시간 동안 혼자 도배질(끊임없이 글을 게시하는 것)을 하면서 네티즌들의 구경거리를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사과하고 물러났죠.



이후 인생 계획

김=아직 계획이 구체적이진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교도소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싶어요. 문화와 예술은 사람들의 정신이 교류되는 장이죠. 부자든 빈자든 정신적 공유와 소통이 사회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면 이 사회에서 가장 그늘진 곳으로 문화가 침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고아원, 빈민촌, 교도소 등 제일 나쁜 환경 속으로. 특히 저는 교도소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범죄자로 낙인 찍힌 이들은 악마가 아니라 제도 교육, 강요된 사회 규범 등 주어진 틀에 갇히기를 거부한 사람들이죠. 그들이 억제 못하고 분출한 에너지를 예술이란 방향으로 승화시키게 돕고 싶습니다.

이=요새 순수문학 사망설이 대두되고 있는데, 저도 많은 젊은이들이 문학에 관심갖도록 하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이 집을 사람들의 문학적 감성을 적셔줄 공간으로 꾸밀 겁니다. 문학도든 아니든 누구나 찾아와서 문학이라는 것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 공간을 계속 만들어 나갈 겁니다. 올해는 일단 독자사랑방, 맨발 산책로, 999개 돌에 시를 새겨 꾸밀 시성림(詩盛林) 등을 만듭니다. 시성림은 세계의 좋은 시 가운데 교과서 밖에 있는 것들로 엄선됩니다. 나도 괴짜였지만 시성림은 이외수 버전의 교과서쯤 되겠군요.

두 사람의 인생과 예술 얘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마치 스무살 청년들처럼 살아갈 날들에 대한 설렘을 얘기하기도 했다. 실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화가 김점선

1946년 경기 개성시 출생. 홍익대 미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72년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로 선정됐다. 83년 첫 개인전을 연 뒤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한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87·88년 평론가협회 선정 미술부문 ‘올해 최고의 예술가’로 선정됐다. 90년대 후반 오십견으로 손 쓰기가 어려워지자 컴퓨터 작업으로 작품을 내기도 했다. 98년 수필집 ‘나 김점선’, 2002년 컴퓨터로 그린 그림을 넣은 ‘10㎝ 예술’ 등을 출간했으며 ‘김점선이 간다’라는 TV 교양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소설가 이외수

1946년 경남 함양군 출생. 춘천교대 중퇴. 전후인 58년 강원 인제군으로 이주하는 등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거듭하다 최근까지 춘천에서 지내며 작품활동을 펴왔다. 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견습 어린이들’로 당선했으며 소설 ‘들개’(81), ‘칼’(82), ‘벽오금학도’(92), 괴물(2002) 등에 이어 지난해 7번째 장편소설 ‘장외인간’을 냈다. 90년 마광수교수 등과 ‘4인의 에로틱 아트’전을 열고 영화에도 반짝 출연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중이다. 현재 강원 화천군의 지원을 받아 다목리 감성마을에 ‘이외수 문학관’을 건설하고 있다.


〈정리 장관순·사진 박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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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강물, 새, 나무…
송광룡
 
 

 `홍길동전’의 저자인 교산(蛟山) 허균(1569∼1618)은 `한정록’에서 “옛사람이 세상을 버리고 숨어 사는 것은 이름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오래도록 속세를 떠나 한가하게 머물며 그 숨어 사는 즐거움에 이르려 하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을 지은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는 그의 나이 51세 때 지금의 완도군 보길도에 은둔하면서 그 속내를 이렇게 털어 놓았다. “동서남북에 이미 갈 만한 곳이 없으니 큰 강과 바다와 산림이 있을 뿐입니다. 옛 사람이 이른바 `천하가 어지러울 때에 선비가 몸 둘 곳은 조정이 아니면 곧 산림이다’라고 함은 이것 아니겠습니까? 공자가 이르기를,`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서 살지 말며,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오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고 하였습니다.”

 윤선도는 자신의 포부를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등지고 자연으로 들었다. 그가 `오우가’에서 물과 돌, 솔과 대, 달을 다섯 친구로 노래한 것은 그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 곧 도의 표상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보다는 도를 구현하는 매개로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은 유교를 숭상하였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은둔하지는 않았으되, 자신의 집에서 꽃과 나무를 즐겨 길렀던 조선 세종 때의 문신 인재(仁齋) 강희안(1417~1464)은 꽃과 나무를 심고 옮기고 기르는 법을 적은 `양화소록’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아! 화초는 한낱 식물이니 지각도 없고 운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양하는 이치와 거두어들이는 법을 모르면 안 된다. 메마르고 축축한 때와 춥고 더운 때를 알맞게 맞추지 못하고 그 천성을 어기면 반드시 시들어 죽을 것이니 어찌 싱싱하게 피어난 참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랴? 하찮은 식물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랴! 어찌 그 마음을 애타게 하고 그 몸을 괴롭혀 천성을 어기고 해칠 수 있겠는가? 내 이제야 양생(養生)하는 법을 알았다.”

 화초 기르는 법을 빗대어 강희안은 사람살이를 꼬집고 있다. 한 개인으로부터 사회 전체에 이르기까지 “어찌 그 마음을 애타게 하고 그 몸을 괴롭혀 천성을 어기고 해칠 수 있겠는가?”하고 말이다. 천성을 어기면 반드시 죽을 것이니! 강희안은 화초를 기르면서 생명을 북돋우는 법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일찍이 소심하여 은둔의 즐거움을 누려보지는 못했으나 주말이면 가끔 자연으로 나가 눈을 씻는 즐거움만은 누려보던 처지다. 하지만 이제 그마저도 접어야 할까보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산과 산 사이를 굽이돌며 들판을 넉넉히 적셔오던 강물들에게, 새와 나무, 모래톱과 물고기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저 강물 곁에 함께 서거나 근교의 작은 텃밭을 가꾸거나 꽃과 새·곤충 등을 찾아 생태여행을 떠나는 식으로는 더 이상 면목이 없게 되었다.

 강의 속살을 파헤쳐 온통 붉은 산하 위에는 `이름을 내기 위한’ 망령들로 가득하다.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은 `자소집’의 머리글에서 “예법을 잃어버리면 시골로 가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제 시골에 가 봐도 `예법’을 찾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허균의 율도국, 윤선도의 보길도, 강희안의 화초들도 그 대상이 온전해야 깃들 수 있을 터. 깃들 곳이 사라진 다음이라면 `숨어 사는 즐거움’ `변하지 않는 진리’ `양생하는 법’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시인·`문학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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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10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책은?
[오마이뉴스-예스24 공동 기획] 전문가·시민기자·누리꾼이 뽑은 '지난 10년 최고의 책'
 
10.07.23 13:53 ㅣ최종 업데이트 10.07.23 15:34 이한기 (hanki) / 김동환 (heaneye)
 
 
  
오마이뉴스와 예스24가 공동으로 진행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에 선정된 10권의 책. 전문가와 시민기자, 누리꾼 투표를 거쳐 뽑힌 책이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10년 최고의 책

 

"한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책 10권을 선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오마이뉴스>와 예스24가 공동으로 진행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선정자문위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고명섭 <한겨레> 책·지성팀장은 '그런 어려운 작업을 왜 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누가 보느냐,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 어떤 태도로 보느냐에 따라 선정의 잣대는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며 "최고의 책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최고의 책을 선정한다는 것은 애초 무리였고, 한계가 있는 작업이었다. 전문가 패널로 위촉받은 사람 가운데 일부는 '책마저도 성적순이냐', '또다른 줄세우기 아니냐'고 지적했다. 의미있지만 어려운 일, 의도와는 달리 오해받기 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개월에 걸쳐 '10년 최고의 책' 선정 작업을 진행한 까닭은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의 흐름을 되짚어보고 싶어서였다. 책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한계는 겸허하게 인정하되, 의미를 포기하지는 말자는 취지였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지난 10년 동안 빠르게 변해 온 한국 사회의 풍경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는 책은 무엇일까. 올해 창간 10주년을 맞은 <오마이뉴스>는 인터넷 서점 <예스24>와 함께 '지난 10년 최고의 책'을 선정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에게 추천 받은 276종의 책 중 35권을 뽑아 누리꾼 투표와 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친 결과, 다음과 같은 10권의 책이 뽑혔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지음, 부키, 2007)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 2007)

<강의>(신영복 지음, 돌베개, 2004)

<칼의 노래>(김훈 지음, 생각의나무, 2007)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지음, 푸른숲, 2005)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창비, 2008)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노무현·오연호 지음, 오마이뉴스, 2009)

<대화>(리영희·임헌영 지음, 한길사, 2005)

<한강>(조정래 지음, 해냄, 2003)

<당신들의 대한민국>(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사, 2001)

 

지난 2000년 1월 1일에서 2009년 12월 31일 사이에 나온 한국인 저자의 책을 대상으로 진행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선정 작업에는 각 분야별 전문가 100명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00명, 누리꾼 6583명과 10명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했다.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선정은 3단계로 진행됐다. 우선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각 분야별 전문가 100명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00명이 추천한 276종의 책 가운데 많은 추천을 받은 35권을 후보로 선정했다. 2단계로는 이들 후보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 24일부터 6월 11일까지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이 기간 동안 6583명의 누리꾼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들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추천 점수는 각각 40점으로, 누리꾼들의 온라인 투표 점수는 20점으로 환산하여 세 집단의 합계가 100점이 되도록 집계했다. 집계된 결과는 마지막으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쳤다. 전문가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누리꾼이 뽑은 집단 별 순위 및 종합 순위, 추천된 책들에 대한 추천사는 '10년 최고의 책' 선정 결과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회를 보는 프리즘

 

'지난 10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10권의 책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10년 최고의 책 자문위원들은 이번에 뽑힌 책들이 대체로 지난 10년 동안의 한국 사회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다음은 자문위원 여섯 명이 보내준 10년 최고의 책 선정 결과에 대한 총평과 별도로 추천한 세 권의 책 목록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 한기호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나는 1981년부터 2010년까지 베스트셀러 30년을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 정리해본 바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개인은 '성공'에서 나만의 '행복'으로, 일과 개인생활에서 철저하게 이기적인 성향을 띠는 '현명'으로, 살아남은 자의 마지막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자기치유(self-healing)로 점차 자신의 꿈을 좁혀왔다. 2009년에는 진정한 소통을 꿈꾸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2000년대의 첫 10년은 이렇게 절대 고독의 개인이 발견되는 여정이었다. 그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전통적 가치들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수많은 기업들이 직원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탐욕스런 조직으로 변해가면서 개인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독해질수록 개인은 세상과의 소통을 꿈꾸었다. 그런 욕구가 사회적인 어젠다를 제시하는 책을 찾게 만든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10권의 책은 대부분 그런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다. 따라서 이 책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천착한 책들이라 할 수 있다."

 

한기호 소장이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창비, 2008),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지음, 푸른숲, 2005), <헌법의 풍경>(김두식 지음, 교양인, 2004)이다.

 

고명섭 <한겨레> 책·지성팀장.
ⓒ 한겨레

고명섭 <한겨레> 책·지성팀장 "선정된 책들은 우리 사회가 지난 10년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나름대로 요령 있게 보여준다. 전문가, 시민기자, 네티즌이 함께 만든 집단지성의 효과일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가 우리 시대의 극복해야 할 장벽임을, <88만원 세대>는 젊은 세대의 취업난이 사회적 난제임을,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우리 내부의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시대의 화두임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는 '노무현 시대의 명암'이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엄마를 부탁해>, <칼의 노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같은 책들은 선정 기준이 대중성이나 사건성에 다소 치우친 것 아니냐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경우도 이 책에 관련된 사건(국방부 불온도서)의 파장을 빼놓는다면, 같은 저자의 첫 번째 한국어 책 <사다리 걷어차기>에 마땅히 더 관심이 기울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더라도, 이번에 공들여 뽑은 '지난 10년 최고의 책'은 범람하는 이런저런 '선정도서'의 선정 기준과 비교하면 공정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지난 10년 최고의 책'이 보여주는 풍경은 <오마이뉴스>가 창립 후 통과해온 역사의 풍경과 겹칠 터인데, 그 풍경들을 통해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작업이 낳은 가외의 소득이 아닐까."

 

고명섭 팀장이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최장집 지음, 후마니타스, 2002), <노마디즘1, 2>(이진경 지음, 휴머니스트, 2002), <대한민국사>(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 2003)다.

 

이한우 <조선일보> 출판팀장
ⓒ 한국기자협회보

이한우 <조선일보> 출판팀장 "<오마이뉴스>와 <예스24>가 공동으로 선정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명단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분명 새천년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 강한 지적 영향을 미친 책들임이 분명하다. 일부 좌편향 서적들이 있지만 그것은 젊은 세대와 독서세대의 취향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어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다시 한번 과연 이 책들이 지난 10년 동안 국내 저자나 작가들이 쓴 '최고의 책'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사회나 정치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런 시도가 처음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이념의 편향성 문제는 또 다른 입장에서 비슷한 시도를 통해 보완될 문제이지 이번 <오마이뉴스>와 <예스24>의 선정이 그런 시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책과 멀어지고 있다는 젊은 세대들이 좀 더 다양한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독서 분야의 권위 있는 지표로 자리 잡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한우 팀장이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현상학과 해석학>(이남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대서양문명사>(김명섭 지음, 한길사, 2001),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이삼성 지음, 한길사, 2009)다,

 

김민웅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 권우성

김민웅 성공회대 NGO학과 교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일방적 신화를 벗겨내면서 우리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하게 만들었으며, <88만원 세대>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좌절을 정면으로 고발하여 이 시대가 미래세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일깨웠다.

 

<강의>는 고전이 외면되는 시대에, 현상적 추세를 쫓기 바빴던 우리 사회의 정신적 차원을 보다 깊은 본질적 질문과 마주하게 했으며 <칼의 노래>는 역사의 한 특수지점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정교해야 하는지 짚어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관성적으로 이해된 세계의 이면에 대한 여정을 펼쳐 보임으로써 우리의 사유지도에도 돌파의 용기와 의지를 북돋아주었고, <엄마를 부탁해>는 희생적 존재로 사회화시켜 더욱 희생의 늪 속에 빠뜨려온 '엄마'의 인간적 갈망과 이에 관련된 우리 자신의 윤리적 범죄를 재조명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는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비극적 결말로 삶을 마무리한 한 시대의 지도자가 자신을 모두 던져 추구하고자했던 진정한 역사적 가치와 정치적 목표를 복원하여 노무현 이후의 미래를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대화>는 온 몸으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현실과 치열하게 마주해 싸워온 한 시대의 스승으로서의 지식인이 통과해온 자전적 지성사이자, 우리 사회의 전기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한강>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가 걸어온 길의 역사적 진면목과 그 과정에서 변모를 겪은 인간군상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이자 문학적 성찰이며,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이국의 진보적 지식인이 냉철하게 들여다 본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가치에 대한 반성적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김민웅 교수가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고대문명교류사>(정수일 지음, 사계절, 2001), <여운형 평전>(강덕상·김광열 지음, 역사비평사, 2007),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이삼성 지음, 한길사, 2009)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권우성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를 관통한 화두는 '변화'와 '불안'이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변화에의 열망과 그 속에서 점차 확산돼 온 불안에 대한 자각이 우리 사회의 내면 풍경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선정된 10권의 책에는 바로 이런 변화와 불안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88만원 세대>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변환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목하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사회의 최대 과제 중 하나인 청년실업 문제를 <88만원 세대>는 다루고 있다. 문제는 미래다. 지난 10년간 바람직한 변화를 모색하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고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전환의 문턱 위에서 망설이며 서성거리고 있다. 현실에 든든히 뿌리박은 지식인은 물론 대중의 더욱 치열한 지적 도전이 요구되고 있다."

 

김호기 교수가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강의>(신영복 지음, 돌베개, 2004),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백낙청 지음, 창비, 2006),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최장집 지음, 후마니타스, 2002)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 남소연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전문가, 시민기자 및 누리꾼들의 합동 노력으로 선정된 '지난 10년 최고의 책'은 의미 있는 콘텐츠와 적정한 대중성이 적절하게 융합된 책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들은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고, 또 우리를 눈물짓게 했으며 행복하게 해주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민주공화국이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변모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저녁 무렵 <한강>에 앉아 그 수천년의 유장한 흐름을 생각하며 각자 자신만의 <칼의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88만원 세대>의 일원으로 또는 이 세대의 선배, 부모로서 앞날은 불안하다. 그러나 역사와 <대화>하며 긴 호흡을 배우고, 선인의 <강의>에서 시공을 넘어 살아 있는 지혜와 통찰을 얻고,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성과와 한계를 직시한다면 우리는 버틸 수 있고, 또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 겹겹이 묶여 있지만 우리는 가끔 만이라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고 외치며 더 큰 세상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국적과 인종을 넘어 인간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이 땅의 소중함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속을 남김없이 뽑아 먹어 쭉정이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엄마를 부탁해>라고 속삭여 보자. 세상일의 해결을 가족애로 축소시키는 이데올로기가 싫다고 하더라도."

 

조국 교수가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복지국가혁명>(복지국가 SOCIETY 정책위원회 지음, 밈, 2007), <지식e>(EBS 지식채널 e 지음, 북하우스, 2007), <일어나라 인권 OTL>(한겨레21 편집부 지음, 한겨레출판, 200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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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갑부의 절약습관 "집부터 검소하게…"

  

미국의 주식 전문 사이트 인베스토피디아가 5일 '억만장자들의 6가지 검소한 습관'을 선정해 소개했다.

1. '집부터 검소하게' 자산규모 606억달러로 세계 최고 부자인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은 30살 때 구입한 집에서 40년째 살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1957년 고향 오마하에서 사들인 방 5개짜리 단독주택에 산다.

2. '통근시 대중교통 이용' 영국 코드웰그룹의 수장 존 코드웰은 매일 자전거로 회사에 출퇴근한다. 코드웰은 "건강, 환경, 비용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3. '실용적인 옷차림' 이케아(IKEA)의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항상 청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다닌다. 코드웰은 새 옷 대신 기성복만 고집한다.

4. '외모에 과한 투자는 사치' 구글에 투자해 막대한 돈을 번 데이비드 체리튼은 집에서 부인이 머리를 깎아준다.

5. '차(車)도 검소하게' 세계 최대 기업 월마트의 짐 월튼 사장은 15년째 똑같은 픽업트럭을 직접 몰고 다닌다. 인도 2위의 재벌 아짐 프렘지의 애마(愛馬)는 소형차인 도요타 코롤라다.

6. '명품을 멀리하라' 버핏은 명품에 대해 "그런 장난감은 귀찮기만 하다"고 말한 바 있다. 최고의 갑부 슬림은 개인용 비행기나 요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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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보·좌파·극우란 말 아무렇게나 쓰면 안 돼

 
정용석 단국대 명예교수
우리나라 학계·언론계·정치권에서는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극우 등의 어휘를 정확한 개념과 다르게 함부로 쓴다. 진보와 좌파를 같은 개념으로 혼용하는가 하면, 보수와 극우도 구분 없이 토해낸다.

보수주의는 17~18세기 존 로크, 애덤 스미스, 에드먼드 버크 등에 연원한다. 그들은 생명·자유·재산을 불가침의 권리로 보았고 자유방임을 신봉했다. 현대 보수주의는 미국 공화당과 영국 보수당이 대표한다. 국가 권력 행사의 최소화, 개인자유 극대화, 자유 시장경쟁, 엄격한 법질서, 낙태 반대, 사형제 존속, 철저한 반공 및 강한 대외노선 등을 대체로 표방한다. 보수는 수구(守舊)가 아니고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전통과 기존 제도를 소중히 여긴다.

진보주의는 19세기 영국의 '페이비언 소사이어티(Fabian Society)'와 조지 버나드 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평화적인 개혁을 통한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하면서도 공산주의 폭력혁명을 거부하였다. 오늘의 진보는 국가 권력을 통한 경제 규제, 부의 평등적 배분, 느슨한 법질서, 낙태 합법화, 사형제 폐지 등을 주장한다. 영국의 노동당과 북유럽의 사회민주당들이 이에 속한다. 진보는 평등을 강조하는 데 반해 보수는 자유를 역설하면서도 둘은 다 같이 자유민주체제 내에서의 변혁을 추구한다.

한편 우익(우파)과 좌익(좌파)의 근원은 프랑스 혁명 당시인 1792~95년 '국민공회'에 유래한다. '국민공회' 때 좌측에 자리 잡은 쟈코뱅을 좌익으로, 우측의 지롱드를 우익이라고 불렀다. 좌익의 쟈코뱅은 근로민중·소시민 보호, 재산권 통제, 왕권체제 폐지 등 급진적이었다. 현대 좌익에는 급진적 사회 혁명,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추종자들이 속한다. 우익의 지롱드는 지주 및 상공인 보호, 자유시장 경제체제, 입헌 왕정제 존속 등을 표방하였다. 작금의 우익은 점진적 개혁, 자유시장 경제체제, 엄격한 법·질서 유지, 반공 및 강한 대외정책 등을 지향한다.

극우는 우익과는 전혀 다르다. 극우로는 독일 히틀러의 나치와 프랑스의 장 마리 르펜 등을 꼽을 수 있다. 르펜은 단일 유로 통화 반대, 보호무역, 나치의 유대인 학살 미화, 폭력과 전쟁 수단 의존, 자본주의와 국제화 거부, 반미(反美) 등을 외쳐댔다. 우익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극우를 철저히 배격하였다.

한국에는 히틀러나 르펜 같은 극우는 물론 없다. 한국의 우익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옹호, 국제화 지지, 자유무역, 엄격한 법·질서, 반공 및 강한 대외정책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남한 좌익 세력은 우파를 극우라고 부른다. 어감이 좋지 않은 딱지를 붙여 국민의 반감을 유발코자 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와 우익은 서로 겹치는 데가 많아 거의 같은 의미로 보아도 된다. 하지만 진보와 좌익은 엄격히 다르다. 한국에서 진보라 불리는 세력 중에는 보편적 진보의 의미를 벗어나 친북·종북(從北)으로 기운 사람이 많다. 그들은 북한의 6·25 남침을 '해방전쟁'이라고 부르고, 천안함 공격에는 '북한 소행의 확증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유민주체제 내에서의 진보가 아니라 한국을 부정하며 북한을 섬긴다. 진보의 가면을 쓴 것뿐이다. 언론·학계·정치권도 진보와 좌익을 확실하게 구분해 '좌파'는 '좌파'라고 지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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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산을 모르면 함부로 오은선을 말하지 말라

  김영도

등산의 세계는 生과 死가 공존하는 별세계다
등산은 과학이나 증명이 필요한 게 아니고
육체적 노동을 거쳐 도달하는 정신적 고양의 세계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기분이 착잡해진다. 남다른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60년 전 9월 14일은 학도병 중대 분대장으로 당시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경주의 북방 형제산을 공격하다가 친구들 60명 가운데 40명가량이 숨진 날이고, 33년 전 9월 15일은 내가 이끈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고상돈 대원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태극기를 날렸던 날이다. 형제산은 높이 285m의 야산인데, 여기서 말 그대로 생지옥을 체험했으며, 에베레스트에서는 인생 최고의 환희에 젖었다. 그러나 6·25는 이제 사어(死語)가 되었고, 에베레스트는 평범한 고산의 하나로 평가절하됐다. 그토록 '접근 불허'라던 히말라야 요새가 요즘에는 하루에 100여명이 오른다니 할 말이 없다. 어느 산악인이 "에베레스트는 이제 산악인의 산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에베레스트는 과연 그런 곳일까.

30여년 전 에베레스트에서 돌아오니, 전국 각 신문이 연일 우리의 세계 최고봉 등정을 대서특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참사라도 있기 전에는 에베레스트 관련 기사를 좀처럼 보기 어렵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최근 들어 언론에서 오은선 기사를 자주 다루고 있다. 히말라야 자이언트 14봉을 우리나라 여성이 세계 최초로 올랐느냐,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알피니즘이 무엇인가 아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는다. 등산이 무상(無償)의 행위이며, 경주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은선의 히말라야 오디세이는 순수한 개인의 문제다. 등산가로 자기가 꿈꾸는 이상을 향해 가는 길이며 인생의 과정이다. 그가 여성으로 누구보다 앞서 그 8000m 고소, '죽음의 지대'를 14회나 체험했다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며 높이 평가할 만하다. '죽음의 지대'가 어떤 곳인지는 가본 사람 아니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세계 최고의 등산가로 16년에 걸쳐 히말라야 자이언트 14봉을 역사상 처음으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네팔 카트만두에서 오은선과 만나 그녀의 성취를 주저 없이 축하했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며 메스너의 모습을 머리에 그렸다. 1978년 그는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른 뒤 하산 길에 8000m 사우스콜에서 설맹(雪盲)과 추위, 피로를 견디다 못해, 파트너인 페터 하벨러에게 울며 매달렸던 일이 있다. 그러한 체험이 있었기에 오은선을 바라보는 메스너의 감회는 남달랐으리라고 나는 본다.

알피니스트는 휴머니스트여야 한다. 죽음의 지대에서 자기의 한계 상황과 대결하는 인간이라면,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을 인식하고 동정하며 관용할 줄 알아야 한다. 불세출의 알피니스트 헤르만 불이 1953년 낭가파르바트봉을 단독으로 첫 등정하고, 가까스로 고소(高所) 캠프로 돌아오자, 그를 기다렸던 친구가 불을 껴안고 울었다. 등정 여부는 묻지도 않았다. 다만 살아 돌아온 것을 기뻐했던 것이다. 헤르만 불이 남긴 '8000m 위와 아래' 책에 나오는 눈물겨운 장면이다.

등산의 세계는 경쟁과 관계없이 생(生)과 사(死)가 공존하는 별세계다. 오은선의 문제를 놓고 지금 국내·외가 제법 시끄러운 모양인데, 나는 여기서 철학의 빈곤을 본다.

등산은 과학이 아니며, 증명이 필요한 세계가 아니다. 육체적 노동을 거쳐 도달하는 정신적 고양(高揚)의 세계다. 그렇지 않고서는 250년의 세계 등산사 속에 부침(浮沈)한 위대한 선구자들의 의식과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다.

전세기 중엽은 등산계의 거인들이 운집했던 보기 드문 시대였다. 하인리히 하러, 리카르도 카신, 헤르만 불, 발터 보나티, 리오넬 테레이 그리고 가스통 레뷔파 등, 이 기라성 같은 존재들은 모두 떠나고 지금 보나티만 남았다. 그런데 그는 당시의 산악계가 시기와 질투로 남을 비방하고 폄하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1965년 마터호른 북벽을 겨울철에 첫 단독 등정하고 알피니즘의 세계를 영원히 떠났다.

나는 오은선의 히말라야 오디세이를 완벽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사실 세상에 완벽은 없다. 서구사회에서 꼬집는 알파인 스타일 등반 문제는 그쪽의 주장이 옳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와 조건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진 등산국과 후진 등산국인 우리 사이에는 넘어야 할 갭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4000m의 알프스가 있는데, 우리는 2000m도 안 되는 야산밖에 없다. 오은선은 여기서 자랐다.

1977년 에베레스트에 갔을 때,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000달러 정도였고, 등정하고 돌아오니 수출고 100억달러를 달성했다고 국내가 떠들썩했다. 일본의 경우 1956년 그들이 히말라야 자이언트의 하나인 마나슬루(8156m)를 세계에서 처음 등정했을 때 역시 수출고가 100억달러였다.

우리가 오은선 문제를 놓고 시시비비하기보다는, 세계 250년 등산의 역사 속에서 뒤늦게 출발한 우리 한국이, 고미영오은선이라는 뛰어난 여성 등반가를 세계무대에 내세우게 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인식을 새로이 갖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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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에서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게 마련이다."

- 괴테 Johann Wolfgang Goethe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