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스타 <배롱나무>의 꽃

 

<배롱나무>의 허물벗기

벗겨나간 껍질 속에 사람의 살결 같이 매끈한 새로운 수피가 신기하다

재작년에 심은 <사과나무>가 아직 어린대로 불구하고

금년에 스무 개가 넘는 열매를 맺었다

짠! 금년에 수확한 사과와 나무에서 떨어진 대봉감 두 개

기적의 사과인지는 모르겠지만,

100% 무농약, 유기농 사과이다

참외 - 비가 많이 오고 일조량이 적어서 몇 개 열리지 않았다

감도 대부분 떨어지고 몇 개 못 따먹을 것 같다

2~3년 전 아주 어린 녀석들을 텃밭 가상자리에 심었는데

금년에 드디어 멋진 <참나리>가 무척 많이 피었다!

<타래난초>

식물정보 이미지

타래난초 백과사전 바로가기

학명
Spiranthes sinensis (Pers.) Ames
분류
현화식물문 > 외떡잎식물강 > 난초목 > 난초과
형태
여러해살이풀
자생지
잔디밭, 논둑, 산지의 양지바른 풀밭
분포지
한국일본대만인도중국
국내분포지
전국
원산지
한국
꽃말
추억소리
꽃색깔
분홍색
개화시기
5~8월
개화계절
봄~여름

꽃생김새

나선상으로 꼬인 수상화서로 밑에서부터 피어 올라감. 꽃받침잎은 피침형이고 꽃잎은 꽃받침보다 다소 짧으며 끝이 둔함. 순판은 도란형으로 끝부분이 다소 뒤집히며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음. 간혹 꽃차례가 전혀 꼬이지 않고 일렬로 피는 개체도 있음.

특징

줄기는 10~40cm 정도로 곧게 서며 피침형의 뿌리잎은 모여나 기부가 줄기를 감싼다. 줄기잎은 피침형으로 1~3개 정도가 달린다. 5~8월에 분홍색의 꽃이 나선상으로 꼬인 수상화서로 밑에서부터 피어 올라간다. 꽃받침잎은 피침형이고 꽃잎은 꽃받침보다 다소 짧으며 끝이 둔하다. 순판은 도란형으로 끝부분이 다소 뒤집히며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다. 간혹 꽃차례가 전혀 꼬이지 않고 일렬로 피는 개체도 있다. 삭과인 열매는 잔털이 있다.
전국 각처의 잔디밭이나 논뚝 근처, 산지의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라는 다년초이다. 원산지는 한국으로 일본, 대만, 중국, 인도 등지에 분포한다.

본 정보는 국립중앙과학관두산백과사전사단법인 무지개세상에서 제공합니다.

<도라지>의 꽃

 

“곤충은 바이오 자원 보물창고” … 10년 뒤 7000억원 시장 기대

 

5일부터 시행된 곤충산업법, 벌레가 돈 되는 시대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농진청 양잠 시험장에서 노란 비단실을 뽑는 품종의 누에가 고치를 지은 모습. 군데군데 흰 비단실로 지은 고치도 섞여 있다.

이달 초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실험실. 15년 동안 누에 연구에 전념한 ‘누에 박사’ 이희삼(농학박사) 연구관이 해부용 가위로 누에의 아랫배를 가르고 있다. 사람과 달리 적혈구가 없는 누에에선 ‘누런 피(체액)’가 스며 나온다. 실험용 탁자 위에 있는 바구니 속엔 10~15㎝ 길이의 누에 수백 마리가 꿈틀거린다. 그 옆엔 얼음을 가득 채운 스티로폼 상자가 놓여 있다. 이 박사는 능숙한 솜씨로 누에 체액을 방울방울 뽑아내 얼음 상자 가운데 끼워둔 유리컵에 담는다. 체액 속 단백질이나 철분 같은 성분이 더운 날씨에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누에의 체액에는 세포 증식을 촉진하는 물질이 들어있어 기능성 화장품의 원료로 가치가 높다. 현재 민간 의과대학과 함께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화장품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또 체액을 짜낸 누에의 배를 길게 갈라 실샘을 분리한다. 투명하고 끈적한 실샘을 핀셋으로 콕 집어내는 손길이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실샘은 유리컵에 따로 모아 원심기로 빠르게 돌린다. 가만히 놔두면 금세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날 해부한 누에에선 노란 실샘과 하얀 실샘이 동시에 나왔다.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될 때 노란 비단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품종이라서다. 그는 “누에 실샘도 세포 증식 효과가 있어 화장품 원료로 연구 중이다. 필름이나 스펀지 형태로 만들어 반창고 같은 의약품 소재로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샘의 비단 성분은 사람 피부에 매우 친화적이다. 수술 후 외상에 파스처럼 붙이면 회복이 빠르고 후유증이 적다”고 덧붙였다.

실험실 한쪽의 정제기에선 누에 분말을 이용해 당뇨병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인 데옥시노지리마이신(Deoxynojirimycin·DNJ)이란 물질을 뽑아내고 있다. DNJ는 당 성분이 천천히 분해되도록 작용한다. 음식을 먹은 다음 혈당이 갑자기 상승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원래 뽕잎에 있던 성분인데 뽕잎을 먹고 사는 누에의 몸 속에 고농도로 축적돼 있다. 누에 2만 마리(약 5㎏)에선 대략 20g의 DNJ가 나온다. 이 박사는 “누에를 냉장고에서 급속 동결해 가루로 만들어 정제하면 DNJ 성분을 추출할 수 있다. 이미 관련 특허를 취득해 의약품으로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혈당강하제·동충하초도 누에로 만들어

▲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실험실에서 ‘누에박사’ 이희삼 연구관이 핀셋으로 누에를 들어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이희삼 연구관이 누에를 해부해 비단실을 뽑아내는 실샘을 채취하고 있다. 누에 실샘은 세포 증식 효과가 있어 화장품이나 의약품 소재로 쓰인다.신인섭 기자

국내에서 누에 치기(양잠)의 역사는 3000년 전 고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후한(後漢) 시대에 쓰인 '한서 지리지'는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무왕 때 기자(箕子)가 고조선에 누에를 가져왔다고 전한다. 이후 삼국시대와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1980년대까지 비단실을 뽑는 누에 치기는 국가적으로 장려하는 산업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누에의 번데기는 서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90년 대 초반이 고비였다. 시장개방으로 값싼 중국산 비단이 몰려오면서 국내 누에 치기 산업은 순식간에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누에의 변신은 화려했다. 95년 누에 분말이 혈당 조절에 효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 누에로 만든 기능성 식품이 각광을 받았다. 누에가루·누에차 등이 속속 건강기능식품으로 개발됐다. 항암 효과가 있다는 ‘누에 동충하초’, 성기능 강화에 도움을 준다는 ‘누에그라’ 등도 나왔다. 비단실을 뽑기 위한 ‘입는 누에’에서 건강식품의 원료가 되는 ‘먹는 누에’로 진화한 것이다. 누에를 활용한 화장품·비누 등도 잇따라 출시되며 ‘바르는 누에’로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최근에는 한술 더 떠 바이오기술(BT) 산업의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치료하는 누에’의 시대다. 지난해 말 농진청은 한림대 의료원과 공동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누에에서 인공고막 소재를 개발했다. 누에고치의 실크 단백질을 부드럽고 투명한 막으로 만들어 고막 재생에 활용하는 동물실험도 성공했다. 미국·일본 등 5개국에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강필돈(농학박사) 농진청 연구관은 “인공 고막의 세계 시장은 25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10%만 누에 소재로 대체해도 국내 농가와 관련 업체의 수입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인공고막에 이어 누에고치로 인공뼈를 만드는 연구도 한창 진행 중”이라며 “인공뼈의 세계 시장은 5조원대에 달해 성공하면 경제적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광길 농진청 잠사양봉소재과장은 “누에는 바이오 자원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체에 유용한 성분을 다양하게 갖고 있다. 누에치기는 더이상 사양 산업이 아니며 첨단 산업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곤충산업, 처음으로 법률로 규정

벌레가 돈이 되는 시대가 활짝 열렸다. 곤충을 국가적인 산업의 대상으로 키우겠다는 법률도 최근 시행에 들어갔다. 이달 5일 발효된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곤충산업법)’이다. 인간에게 이로운 곤충이나 곤충 관련 물질을 연구·개발해 산업적으로 적극 활용하자는 취지다. 곤충을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블루오션’의 자원으로 주목한 것이다. 이 법은 곤충산업을 ‘곤충을 사육하거나 곤충의 산물 또는 부산물을 생산·가공·유통·판매하는 등 곤충과 관련된 재화 또는 용역을 제공하는 업’으로 정의한다. 곤충산업을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은 처음이다.

농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곤충시장의 규모는 1000억원에 달한다. 2015년엔 3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앞으로 10년간 농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담은 ‘비전 2020’에서 곤충산업을 농업 분야의 5대 신성장 동력 중 1순위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20년 곤충시장의 규모를 지난해의 일곱 배인 7000억원 수준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도 내놓았다.

곤충산업법에 따르면 농식품부 장관은 5년마다 곤충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종합계획을 세우고, 농진청장은 해마다 세부 시행계획을 마련해 실천해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곤충 농가와 관련 업체에 자금과 기술을 지원하고 우수한 곤충 전문인력을 길러낼 계획이다. 김배성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지구상에 서식하는 곤충은 총 500만~1000만 종으로 추산되고, 이 중 1만5000여 종이 인간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이처럼 곤충은 풍부한 종 다양성으로 21세기 최대 미개발 생물자원으로 주목받는다”고 강조했다.

쇠똥구리에서 내성 없는 항생제 연구

곤충산업은 크게 ▶누에처럼 바이오 신소재 개발에 유용한 식·약용 곤충 ▶병해충을 퇴치하는 천적 곤충 ▶열매를 맺게 하는 꽃가루 매개 곤충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환경정화 곤충 ▶나비축제 같은 행사용이나 학습·애완용 곤충 등으로 나뉜다. 특히 곤충을 활용한 바이오 의약품은 미래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분야다. 현재 누에 외에도 쇠똥구리·굼벵이·벌·무당거미·딱정벌레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의학에선 오래전부터 의약적 효능을 지닌 곤충을 약제로 써왔다. 대표적으로 허준의 '동의보감'은 95종의 약용 곤충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엔 서양 의학에서도 신약 개발을 위해 곤충에서 추출한 물질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미래학회가 제시한 20년 후 유망한 10대 미래 기술에도 곤충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 포함됐다.

농진청은 쇠똥구리 애벌레에 있는 고기능성 항균 물질인 ‘펩타이드’를 연구 중이다. 펩타이드는 기존 항생제와 달리 병원균이 자기 방어를 위한 내성을 지니기 어렵게 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신약 개발에 성공할 경우 1928년 페니실린 발견 이후 가장 획기적인 항생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수풍뎅이 애벌레인 굼벵이에선 간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인 물질이 발견되기도 했다.

동성제약은 지난달 초 농진청과 공동 연구를 통해 벌침액(봉독)을 이용한 여드름 전용 화장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벌침액의 항균력은 피부에 여드름균 등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농진청의 설명이다. 이 소식으로 동성제약의 주가는 6월 말 1200원대에서 지난달 말 2000원대까지 뛰어올랐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화장품으로 허가받은 제품이지 치료 효과가 입증된 의약품은 아니다”고 소비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진디혹파리·무당벌레로 진딧물 제거

현재 곤충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는 천적 곤충이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병해충을 천적을 활용해 제거하는 것이다. 예컨대 진딧물이 생기기 쉬운 참외·수박·오이·상추나 장미·국화 등을 재배할 때 진디혹파리·무당벌레 등을 뿌리면 효과적이라고 한다. 가격은 진디혹파리 1000마리에 3만원, 무당벌레 100마리에 4만원 정도다. 농약보다 다소 비싸지만 독성과 부작용이 없어 친환경적이란 이유로 천적 사용은 급증하는 추세다. 같은 종류의 농산물이라도 무농약이나 유기농 인증을 받으면 평균 30% 정도 비싼 값에 팔리기 때문이다. 농진청에 따르면 98년 3만㎡에 불과했던 천적 보급 면적은 2008년 2114만㎡를 기록했다. 10년 만에 70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현재 천적 곤충 시장에선 코스닥 상장기업인 세실을 비롯한 7개 사가 연간 2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특히 세실은 세계 3위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농진청은 평가했다. 이 업체는 ‘우리천적’이란 브랜드로 31종의 천적 곤충을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해 천적 제품 매출액은 176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2013년까지 전체 시설원예 면적의 절반 수준인 2억㎡에 천적 곤충을 보급할 계획이다.

꽃가루 매개용 벌을 쓰는 농가도 늘어나고 있다. 꿀을 모으기 위해 돌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기는 벌은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없어선 안 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기상 이변으로 벌의 개체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벌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에 농약을 집중 살포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벌이 없으면 사람이 일일이 꽃가루를 묻혀주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로 여의치 않다. 이런 경우 꽃가루를 옮기는 수정벌을 사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토종 호박벌보다는 서양에서 들여온 뒤영벌이 꽃가루를 옮기는 기능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뒤영벌의 봉군(벌떼) 제품은 여왕벌 1마리와 일벌 50~80마리로 구성된다. 가격은 봉군 1개에 8만원 정도며 농장 면적 1000㎡(약 300평)당 평균 1.6개의 봉군이 필요하다. 현재 토마토·사과·딸기·고추·수박 등을 재배하는 시설원예 농가에서 주로 활용하며 시장 규모는 연간 100억원대에 달한다. 2002년까지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으나 농진청이 연구개발에 성공하면서 2007년 이후에는 70% 이상을 국내 생산으로 대체했다.

등애등에 1마리가 음식물 쓰레기 2g 처리

지역축제 등 각종 행사용과 학습·애완용 곤충은 연간 800억원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전남 함평 나비축제(112억원)와 전북 무주 반딧불축제(150억원) 등이 곤충을 활용한 대표적인 지역축제다. 학습용 곤충은 일부 대형 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됐다. 곤충 전문점 장풍이닷컴의 신영식 사장은 “주고객층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아이들이고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를 주로 사간다”며 “왕사슴벌레는 길이 1㎜ 차이에도 가격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우람한 집게발을 가진 왕사슴벌레 수컷의 경우 길이 7㎝가 넘는 대형은 10만원대에도 팔린다. 일본에선 길이 8㎝짜리 왕사슴벌레가 1억원에 팔린 적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왕귀뚜라미를 애완용으로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환경정화 곤충도 유망한 분야로 꼽힌다. 특히 파리의 일종인 등애등에는 ‘청소부 곤충’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등애등에 애벌레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 치워 친환경적으로 분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한 마리가 평균 2g의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고 한다. 등애등에 애벌레 1000마리로 음식물 쓰레기 2㎏을 처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제주 동부농업기술센터의 경우 현재 12곳에서 등애등에를 활용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냄새도 없고 친환경적이어서 농민들의 반응이 좋다. 등애등에의 배설물을 퇴비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수원=주정완 기자, 장희재·홍성환 인턴기자

  
오마이뉴스와 예스24가 공동으로 진행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에 선정된 10권의 책. 전문가와 시민기자, 누리꾼 투표를 거쳐 뽑힌 책이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10년 최고의 책

"한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책 10권을 선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오마이뉴스>와 예스24가 공동으로 진행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선정자문위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고명섭 <한겨레> 책·지성팀장은 '그런 어려운 작업을 왜 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누가 보느냐,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 어떤 태도로 보느냐에 따라 선정의 잣대는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며 "최고의 책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최고의 책을 선정한다는 것은 애초 무리였고, 한계가 있는 작업이었다. 전문가 패널로 위촉받은 사람 가운데 일부는 '책마저도 성적순이냐', '또다른 줄세우기 아니냐'고 지적했다. 의미있지만 어려운 일, 의도와는 달리 오해받기 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개월에 걸쳐 '10년 최고의 책' 선정 작업을 진행한 까닭은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의 흐름을 되짚어보고 싶어서였다. 책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한계는 겸허하게 인정하되, 의미를 포기하지는 말자는 취지였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지난 10년 동안 빠르게 변해 온 한국 사회의 풍경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는 책은 무엇일까. 올해 창간 10주년을 맞은 <오마이뉴스>는 인터넷 서점 <예스24>와 함께 '지난 10년 최고의 책'을 선정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에게 추천 받은 276종의 책 중 35권을 뽑아 누리꾼 투표와 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친 결과, 다음과 같은 10권의 책이 뽑혔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지음, 부키, 2007)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 2007)

<강의>(신영복 지음, 돌베개, 2004)

<칼의 노래>(김훈 지음, 생각의나무, 2007)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지음, 푸른숲, 2005)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창비, 2008)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노무현·오연호 지음, 오마이뉴스, 2009)

<대화>(리영희·임헌영 지음, 한길사, 2005)

<한강>(조정래 지음, 해냄, 2003)

<당신들의 대한민국>(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사, 2001)

 

지난 2000년 1월 1일에서 2009년 12월 31일 사이에 나온 한국인 저자의 책을 대상으로 진행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선정 작업에는 각 분야별 전문가 100명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00명, 누리꾼 6583명과 10명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했다.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선정은 3단계로 진행됐다. 우선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각 분야별 전문가 100명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00명이 추천한 276종의 책 가운데 많은 추천을 받은 35권을 후보로 선정했다. 2단계로는 이들 후보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 24일부터 6월 11일까지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이 기간 동안 6583명의 누리꾼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들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추천 점수는 각각 40점으로, 누리꾼들의 온라인 투표 점수는 20점으로 환산하여 세 집단의 합계가 100점이 되도록 집계했다. 집계된 결과는 마지막으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쳤다. 전문가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누리꾼이 뽑은 집단 별 순위 및 종합 순위, 추천된 책들에 대한 추천사는 '10년 최고의 책' 선정 결과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회를 보는 프리즘

'지난 10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10권의 책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10년 최고의 책 자문위원들은 이번에 뽑힌 책들이 대체로 지난 10년 동안의 한국 사회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다음은 자문위원 여섯 명이 보내준 10년 최고의 책 선정 결과에 대한 총평과 별도로 추천한 세 권의 책 목록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 한기호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나는 1981년부터 2010년까지 베스트셀러 30년을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 정리해본 바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개인은 '성공'에서 나만의 '행복'으로, 일과 개인생활에서 철저하게 이기적인 성향을 띠는 '현명'으로, 살아남은 자의 마지막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자기치유(self-healing)로 점차 자신의 꿈을 좁혀왔다. 2009년에는 진정한 소통을 꿈꾸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2000년대의 첫 10년은 이렇게 절대 고독의 개인이 발견되는 여정이었다. 그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전통적 가치들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수많은 기업들이 직원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탐욕스런 조직으로 변해가면서 개인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독해질수록 개인은 세상과의 소통을 꿈꾸었다. 그런 욕구가 사회적인 어젠다를 제시하는 책을 찾게 만든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10권의 책은 대부분 그런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다. 따라서 이 책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천착한 책들이라 할 수 있다."

한기호 소장이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창비, 2008),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지음, 푸른숲, 2005), <헌법의 풍경>(김두식 지음, 교양인, 2004)이다.

고명섭 <한겨레> 책·지성팀장.
ⓒ 한겨레

고명섭 <한겨레> 책·지성팀장 "선정된 책들은 우리 사회가 지난 10년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나름대로 요령 있게 보여준다. 전문가, 시민기자, 네티즌이 함께 만든 집단지성의 효과일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가 우리 시대의 극복해야 할 장벽임을, <88만원 세대>는 젊은 세대의 취업난이 사회적 난제임을,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우리 내부의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시대의 화두임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는 '노무현 시대의 명암'이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엄마를 부탁해>, <칼의 노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같은 책들은 선정 기준이 대중성이나 사건성에 다소 치우친 것 아니냐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경우도 이 책에 관련된 사건(국방부 불온도서)의 파장을 빼놓는다면, 같은 저자의 첫 번째 한국어 책 <사다리 걷어차기>에 마땅히 더 관심이 기울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더라도, 이번에 공들여 뽑은 '지난 10년 최고의 책'은 범람하는 이런저런 '선정도서'의 선정 기준과 비교하면 공정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지난 10년 최고의 책'이 보여주는 풍경은 <오마이뉴스>가 창립 후 통과해온 역사의 풍경과 겹칠 터인데, 그 풍경들을 통해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작업이 낳은 가외의 소득이 아닐까."

고명섭 팀장이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최장집 지음, 후마니타스, 2002), <노마디즘1, 2>(이진경 지음, 휴머니스트, 2002), <대한민국사>(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 2003)다.

이한우 <조선일보> 출판팀장
ⓒ 한국기자협회보

이한우 <조선일보> 출판팀장 "<오마이뉴스>와 <예스24>가 공동으로 선정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명단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분명 새천년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 강한 지적 영향을 미친 책들임이 분명하다. 일부 좌편향 서적들이 있지만 그것은 젊은 세대와 독서세대의 취향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어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다시 한번 과연 이 책들이 지난 10년 동안 국내 저자나 작가들이 쓴 '최고의 책'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사회나 정치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런 시도가 처음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이념의 편향성 문제는 또 다른 입장에서 비슷한 시도를 통해 보완될 문제이지 이번 <오마이뉴스>와 <예스24>의 선정이 그런 시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책과 멀어지고 있다는 젊은 세대들이 좀 더 다양한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독서 분야의 권위 있는 지표로 자리 잡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한우 팀장이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현상학과 해석학>(이남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대서양문명사>(김명섭 지음, 한길사, 2001),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이삼성 지음, 한길사, 2009)다,

김민웅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 권우성

김민웅 성공회대 NGO학과 교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일방적 신화를 벗겨내면서 우리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하게 만들었으며, <88만원 세대>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좌절을 정면으로 고발하여 이 시대가 미래세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일깨웠다.

<강의>는 고전이 외면되는 시대에, 현상적 추세를 쫓기 바빴던 우리 사회의 정신적 차원을 보다 깊은 본질적 질문과 마주하게 했으며 <칼의 노래>는 역사의 한 특수지점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정교해야 하는지 짚어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관성적으로 이해된 세계의 이면에 대한 여정을 펼쳐 보임으로써 우리의 사유지도에도 돌파의 용기와 의지를 북돋아주었고, <엄마를 부탁해>는 희생적 존재로 사회화시켜 더욱 희생의 늪 속에 빠뜨려온 '엄마'의 인간적 갈망과 이에 관련된 우리 자신의 윤리적 범죄를 재조명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는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비극적 결말로 삶을 마무리한 한 시대의 지도자가 자신을 모두 던져 추구하고자했던 진정한 역사적 가치와 정치적 목표를 복원하여 노무현 이후의 미래를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대화>는 온 몸으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현실과 치열하게 마주해 싸워온 한 시대의 스승으로서의 지식인이 통과해온 자전적 지성사이자, 우리 사회의 전기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한강>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가 걸어온 길의 역사적 진면목과 그 과정에서 변모를 겪은 인간군상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이자 문학적 성찰이며,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이국의 진보적 지식인이 냉철하게 들여다 본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가치에 대한 반성적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김민웅 교수가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고대문명교류사>(정수일 지음, 사계절, 2001), <여운형 평전>(강덕상·김광열 지음, 역사비평사, 2007),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이삼성 지음, 한길사, 2009)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권우성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를 관통한 화두는 '변화'와 '불안'이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변화에의 열망과 그 속에서 점차 확산돼 온 불안에 대한 자각이 우리 사회의 내면 풍경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선정된 10권의 책에는 바로 이런 변화와 불안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88만원 세대>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변환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목하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사회의 최대 과제 중 하나인 청년실업 문제를 <88만원 세대>는 다루고 있다. 문제는 미래다. 지난 10년간 바람직한 변화를 모색하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고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전환의 문턱 위에서 망설이며 서성거리고 있다. 현실에 든든히 뿌리박은 지식인은 물론 대중의 더욱 치열한 지적 도전이 요구되고 있다."

김호기 교수가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강의>(신영복 지음, 돌베개, 2004),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백낙청 지음, 창비, 2006),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최장집 지음, 후마니타스, 2002)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 남소연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전문가, 시민기자 및 누리꾼들의 합동 노력으로 선정된 '지난 10년 최고의 책'은 의미 있는 콘텐츠와 적정한 대중성이 적절하게 융합된 책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들은 지난 10년간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고, 또 우리를 눈물짓게 했으며 행복하게 해주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민주공화국이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변모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저녁 무렵 <한강>에 앉아 그 수천년의 유장한 흐름을 생각하며 각자 자신만의 <칼의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88만원 세대>의 일원으로 또는 이 세대의 선배, 부모로서 앞날은 불안하다. 그러나 역사와 <대화>하며 긴 호흡을 배우고, 선인의 <강의>에서 시공을 넘어 살아 있는 지혜와 통찰을 얻고,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성과와 한계를 직시한다면 우리는 버틸 수 있고, 또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 겹겹이 묶여 있지만 우리는 가끔 만이라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고 외치며 더 큰 세상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국적과 인종을 넘어 인간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이 땅의 소중함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속을 남김없이 뽑아 먹어 쭉정이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엄마를 부탁해>라고 속삭여 보자. 세상일의 해결을 가족애로 축소시키는 이데올로기가 싫다고 하더라도."

조국 교수가 추천한 지난 10년 최고의 책 세 권은 <복지국가혁명>(복지국가 SOCIETY 정책위원회 지음, 밈, 2007), <지식e>(EBS 지식채널 e 지음, 북하우스, 2007), <일어나라 인권 OTL>(한겨레21 편집부 지음, 한겨레출판, 2009)이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불편한 진실

[신동아]

오은선씨가 4월27일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사진은 등반을 동행한 KBS 정하영 촬영감독이 오은선 대장의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8000m가 넘는 봉우리는 얼마나 오르기 어려운가.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저명인사로 급부상한 국내 여성 산악인 오은선(44)씨가 4월27일 마지막 남은 봉우리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해발 8091m)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일반인에게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게 했을 법했다. KBS가 이 과정을 생방송으로 보도한 덕분이다.

오씨가 정상까지 불과 수십 미터를 남겨두고 힘겹게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해 내딛는 동안 함께 동행한 셰르파 한 명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메라 앞을 왔다, 갔다 하지 않았던가. 고산 지대가 원래 삶의 터전인 셰르파들이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전문 산악인 출신도 아닌 KBS 카메라맨도 오씨와 함께 정상에 오르지 않았나.

탐욕으로 얼룩진 에베레스트 등정

그럼에도 8000m가 넘는 봉우리를 오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종종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기자는 2년 전인 2008년 5월 산악인 박영석씨를 따라 중국 쓰촨성 간쯔자치주 신싱향의 궁가산 일대 6000m급 미답봉 등반을 따라가 고산 등반의 어려움을 생생히 체험한 적이 있다.

체력적으로나 운동 능력으로나 또래 평균치보단 위쪽에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해발 3900m에 세운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심한 고소증세로 고생했다. 높은 곳으로 갈수록 공기 중 산소량이 희박해져 신체의 신진대사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사람마다 고소증상이 다른데 몸살감기를 앓을 때의 심한 오한을 동반한 두통이 그중 흔한 증상이다. 식욕은 떨어지고 오줌은 전립선 비대증에 걸린 것처럼 찔끔찔끔 나온다. 대사능력이 떨어져 몸 안에 쌓이는 배설물 배출이 어려워진 것이다. 침낭을 둘둘 말고 마냥 누워만 있고 싶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을수록 고소증상이 더 악화되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고소에 적응하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어느 정도 몸이 좋아진 기자는 해발 5200m에 세운 캠프1까지 기세 좋게 따라갔다가 죽는 줄 알았다. 올라가는 동안 호흡이 점점 가빠지더니 나중엔 두 걸음마다 멈춰 쉬어야 할 정도가 됐다. 캠프1의 텐트에서 고통스러운 하룻밤을 보내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해가 뜨기도 전에 혼자 설사면을 기다시피 해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니 오씨가 최초로 8000m가 넘는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오씨의 14좌 완등으로 한국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를 4명 보유했다.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오은선. 세계에서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사람은 20명이고 이 중 한국이 완등자가 가장 많다. 한국 다음은 14좌 최초 완등자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나라 이탈리아로 메스너를 포함해 3명이다. 우리보다 고산 등반을 먼저 시작한 일본은 14좌 완등자가 1명도 없다. 일부 국내 언론은 이런 얘기를 하며 ‘한국이 산악 최강국’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쇼트트랙 강국 한국’이 ‘동계 스포츠 강국’과 같을 수 없듯 14좌 완등자 최다 배출이 곧 산악 강국과 같은 의미일 순 없다.

트로피(trophy)를 위한 고급 관광지

세계 산악계가 히말라야 등정 자체에 큰 가치를 두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는 1977년 고상돈(1979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봉 등반 중 실족사)이 한국인 최초로 올랐던 당시의 에베레스트가 아니다. 여전히 등정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일반인에게조차 불가능의 영역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왼쪽)씨가 4월4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에두르네 파사반(스페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시 파사반은 오씨와 친밀한 모습을 보였으나 오씨가 안나푸르나에 오르기 직전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을 제기했다.

이젠 고인이 된 산(山) 전문 전창 기자는 5년 전 동아일보에 쓴 한 칼럼에서 국내에서 불고 있는 에베레스트 등반 열풍에 대해 “에베레스트 정상이 설악산 대청봉(1708m)만큼이나 한국인들로 북적거리겠다”는 원로 산악인의 말을 인용해 꼬집었다. 이듬해 에베레스트 등반을 추진하는 국내 전문 산악팀이 9개나 된다는 것이었다. 많다는 게 문제가 아니고 단지 명예나 기업이나 단체 홍보를 위해 팀을 꾸린 경우가 많은 것이 볼썽사나웠다. 2005년 5월 유럽의 우주항공기업 ‘유로콥터’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처음으로 헬리콥터를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고 1인당 1만5000달러(약 1551만원)씩 받고 관광객을 정상에 내려주는 관광 상품도 선보였다. 그만큼 등정 자체가 쉬워진 것이다.

1977년 고상돈 에베레스트 등정 당시 원정대원이던 김병준씨는 2005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방문한 뒤 “진정한 산악인이라면 이제는 에베레스트말고 다른 산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미국 ‘하트퍼드쿠런트’ 기자인 마이클 코더스가 2008년 펴낸 ‘에베레스트의 진실’이라는 책은 사람들의 탐욕으로 얼룩진 에베레스트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코더스는 이 책에서 ‘오늘날 에베레스트는 8000m급 고봉 중 사실상 가장 오르기 쉬운 산이라 한다. 기술적인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사다리나 고정로프 덕분에 매듭짓는 법조차 잘 모르는 초심자도 고소에서 생존 가능한 유전적 자질과 지상에서 가장 높은 지점까지 부지런히 양발을 옮길 수 있는 체력만 갖고 있으면 등반할 수 있다’고 썼다. 책에 따르면 2003년 한 해 동안 264명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랐지만 2007년에는 등정자가 600명에 육박했다.

사실 세계 최고봉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에베레스트가 가장 먼저 돈 많고 건강한 사람들의 일종의 ‘트로피’를 위한 고급 관광지로 전락했을 뿐이지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에베레스트의 전철을 따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산악인들의 성지(聖地)이던 히말라야가 상업 등반대와 ‘아마추어’들로 난장판이 되자 저명한 산악인들은 2002년 9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회의를 열어 산악 등반의 가치와 행동원리를 담은 개념을 재정립해 이를 문서화했다. ‘티롤선언’으로 불리는 것이 이 회의의 결과물이다. 티롤 선언은 △개인의 책임 △팀 정신 △등반과 산악 활동 공동체 △외국 방문 △산악 가이드와 그밖의 리더의 책임 △위급 사태, 죽음을 앞둔 상황 △입산과 자연보호 △스타일 △초등 △스폰서 제도, 광고 및 PR이라는 주제로 각각 행동지침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피크 헌터(peak hunter)

다시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이번 오씨의 14좌 완등에 대해 그동안 산악계를 오염시켜왔던 ‘업적주의’가 또 한번 확산될까 우려하는 산악인이 많다.

한 등산 관련 월간지 대표는 “그동안 양적으로 팽창했으니 이제 질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14좌 완등 경쟁을 벌이며 양적 팽창의 시기를 주도했고 또한 명성도 얻었다. 하지만 이들은 유명한 산악인일 뿐 존경받는 산악인이진 못했다.

이들의 14좌 완등 기록을 살펴보면 앞서 14좌를 완등한 서구의 산악인들과 확연히 비교된다. 산악 등반, 특히 고산을 오르는 행위는 모험과 도전 정신을 그 가치로 한다. 따라서 모험성이 더 높은 등반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계 산악계에서 인정하는 등반 순위를 매겨 보면 맨 위에 초등이 있다. 그 다음 새로운 루트 개척, 동계 등반,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이 뒤따른다.

최초의 14좌 완등자 메스너와 두 번째로 14좌를 완등한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1989년 히말라야 로체 등반 중 사망)를 산악 전문가들이 위대한 산악인으로 꼽는 이유는 1, 2위로 14좌 완등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등반의 질 때문이다. 이번 오씨의 14좌 완등 과정에서 일반 독자에게도 알려진 미국인 엘리자베스 홀리(86) 여사의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메스너는 14개 봉우리 가운데 6개 봉우리를 새로운 루트로 등정했다. 모든 봉우리를 산소통의 도움 없이 올랐다. 쿠쿠츠카는 9개 봉우리를 새로운 루트로 올랐으며 4개 봉우리는 겨울 등반으로 올랐다.

오은선 이전 14좌를 완등한 19명의 산악인 중 한국인 3명의 등반 질이 상대적으로 가장 떨어진다. 3명 모두 새로운 루트 개척은 없었고 산소통에 의지한 등정도 엄홍길 3개, 박영석 5개, 한왕용 3개로 14좌 완등자 전체 19명 중 가장 많다. 겨울 등정은 박영석만 한 번 있다.

그래서 이들을 ‘피크 헌터’라고 비꼬아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정상 사냥꾼’이다. 등반 방식이야 어찌됐든 정상을 밟는 데 목적을 둔다는 의미다.

곱지 않은 시선

스폰서가 붙는 상업 등반은 등반 질을 더욱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다. 8000m급 고산 등반은 경비가 만만치 않게 든다. 히말라야 8000m 고봉은 입산료만 1인당 1000만원 가까이 필요하다. 대규모 원정대를 꾸린다면 수억원이 든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론 마련하기 힘든 액수다. 기업 후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전폭적 후원을 받는 원정대는 성공에 대한 압박감을 심하게 받아 쉬운 등반 코스로 오르는 것을 택하기 십상이다. 기상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위험을 무릅쓴 무리한 등반을 하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한편으로 국내 아웃도어 용품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는 처음으로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윈코리아의 노스페이스 브랜드의 올해 매출 목표는 4700억원이다. 코오롱스포츠는 3800억원, K2는 2600억원 등이다.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팽창하다보니 각 브랜드에서 자체 산악팀을 운영하거나 특정 산악인을 내세워 등반을 지원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산악인들에게 더 많은 해외 원정 등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좋지만 그만큼 상업적인 등반이 많아지는 반대 측면도 있다.

후원 기업들은 시장에서 경쟁자 관계이다보니 이들 기업이 지원하는 산악인들도 덩달아 경쟁체제에 놓이게 된다. 심하게는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말 코오롱스포츠 소속의 고미영(2009년 낭가파르바트 등정 중 실족사)씨와 블랙야크 소속의 오씨가 14좌 완등 경쟁을 벌인 것이 최근의 대표적인 예다.

오씨의 14좌 완등을 바라보는 해외 언론과 산악계의 시선은 별로 곱지 않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4월27일자 기사에서 오씨의 14좌 완등을 한국 스포츠계에 퍼져 있는 ‘애국주의’의 산물이라는 뉘앙스로 전했다. 메스너의 등반 파트너였던 이탈리아의 한스 카머란드는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한 인터뷰에서 “오은선에게 어떤 축하도 할 수 없다. 팀이 그녀를 정상에 데려다줬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산에 오르는 것을 더는 등반으로 볼 수 없다.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도로 일주 사이클 대회)에 출전한 선수가 오토바이를 타는 것과 같았다”고 비판했다.

14개 봉우리 중 2004년 에베레스트와 2007년 K2를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등정했고 2008년 4개 봉우리를 등정하면서 헬기로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는 편법을 쓴 적이 있는 오씨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등반가 개인의 선택이지 논란의 대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사다리, 고정로프 덕분에 에베레스트 등반이 수월해졌다.

하지만 오씨 스스로도 2008년 6월 14좌 봉우리 중 7개째 봉우리인 마칼루(8463m)를 오르고 귀국해 이뤄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14좌 완등 경쟁자였던 고씨에 대해 “그를 진정한 산악인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경쟁자로도 보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매니저에게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게 이유였다. 항상 고씨와 함께 등정한 산악인 김재수씨를 두고 한 말이었다. 스포츠 클라이머 출신인 고씨는 등정한 8000m 11개 봉우리 중 6개 봉우리를 오를 때 산소통을 사용했다.

알파인 스타일

이렇듯 업적 위주 원정이 주를 이루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등반 기술을 갖추고 의미 있는 등반을 하는 산악인들은 가려졌다. 오씨가 14좌 완등 도전에 나선 동안 안나푸르나 인근 마나슬루 등반에 나섰다가 실종된 2명의 산악인 중 1명인 윤치원(40)씨가 그런 경우다. 이 사건은 국내 언론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또 국내 산악계에서 최고의 알피니스트로 인정받는 김창호(41)씨도 등반 기술과 성과에 비해 일반인에겐 덜 알려졌다.

일부 전문 산악인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한국 산악계가 굉장히 활기를 띠고 있다는 착시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산악계는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젊은 산악인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탐험과 고산 등반 선진국인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난 뒤 국민의 사기 진작을 위해 탐험과 모험을 독려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 에베레스트 등정이 우리보다 7년 앞섰다. 하지만 일본에서 ‘탐험의 시대’는 저물었다. 산악인을 길러냈던 일본 대학의 산악부는 학생들에게 기피 대상이 됐다. 1970년 일본의 에베레스트 초등 당시 최연소 대원이었고 1980년 원정대장으로 세계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북벽을 오른 간자키 다다오(70)씨는 2008년 2월 기자에게 “일본 산악회 회원의 평균 연령이 65세”라고 소개하면서 “젊은 산악인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탄했다. 그는 당시 일본 산악회 실무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국내를 대표하는 산악 단체인 한국산악회도 회원 평균 연령이 47세까지 올라갔다. 최근 몇 년간 각 대학 산악부는 1년에 신입 회원 1명을 받기도 힘든 실정이다. 국내 산악계가 예전의 순수함과 활기를 회복하기 위해선 스타 산악인들이 질적인 등반에 눈을 돌리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5월12일 현재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진재창(44) 부대장, 신동민(36), 송준교(37) 대원과 함께 알파인 스타일의 등정을 시도하고 있는 박영석씨의 도전은 성공 여부를 떠나 신선하다.

한국인의 8000m급 봉우리 알파인 방식 등반은 시도한 적도 거의 없고 성공한 적도 없다. 알파인 방식은 셰르파나 짐꾼 없이 등반에 필요한 모든 식량과 장비를 대원들이 짊어지고 가는 최고 수준의 등반 방식이다. 고정 로프도 사용 못하고 산소통도 못 쓴다. 소규모 인원 등반이라 원정 비용도 적고 빠른 시간에 등정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적다.

이제 국내 산악인들이 ‘타이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성공한 산악인보다는 존경받는 산악인이 많은 나라가 진정한 산악 강국이다.

김성규│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조선데스크] 한국 맥주도 맥주 맛 나려나

박순욱 경제부 차장대우

이제 많은 사람이 외국 술과 국산 술을 비교하게 됐다. 직접 비교하기 가장 좋은 술이 맥주다. 그런데 우리 맥주가 맥주의 본고장이라는 독일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중국, 심지어 필리핀 맥주보다 못하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국내 외국인들은 "한국 맥주는 물 같다"고 하고, 양조 기술자는 "한국 맥주 맛은 서로 구별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 업체들이 맥주를 제대로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맥주의 기본 원료는 맥아다. 일본에서는 맥아 함량이 최하 66.7%는 돼야 맥주라고 한다. 독일은 더 엄격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세법상 맥아 함량이 10%만 넘어도 '맥주'다. 우리 업체들은 자기 맥주에 맥아 함량이 얼마인지 밝히지도 않는다. 이러는 이유는 맥아가 비싸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하고서도 이 업체들이 돈을 버는 것은 술 관련 규정이 기존 2개 업체 외에는 맥주 시장에 진출하기가 어렵게 돼 있기 때문이다. 현행 규정으로는 연간 생산규모가 500mL짜리 기준으로 최소 370만병을 만들 수 있어야 맥주 생산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설비를 갖추려면 수천억원대 투자가 필요한데, 자본력이 없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 이런 규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 결과로 2개 업체의 점유율은 98%다. '땅 짚고 헤엄치기' 경영을 하는데 '맥주 맛'에 사활을 걸 이유가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맥주·소주의 제조시설 용량기준 완화는 주류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춰 장기적으로는 우리 술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동안 맥주·소주 같은 대중 술의 제조시설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중소업체의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자연히 소비자들은 다양한 술을 접할 수 없었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이런 잘못된 현상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1994년에 맥주의 연간 최저생산량 기준을 대폭 낮춘 결과, 현재 270여개의 맥주 제조사가 활발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독일 역시 미니 맥주 업체가 전체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술 진입 문턱을 높게 유지한 것은 '술 산업'을 '주류산업 진흥'보다는 주로 '세수확보' 차원에서 다뤘기 때문이란 말도 있다. 그러나 맥주 업체가 많다고 세금을 못 걷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부가 좀 불편할 뿐이다. 정확히는 정부가 지방 곳곳에 퍼져 있는 영세한 술업체들을 일일이 상대하기가 귀찮아서 이상한 규제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맥주시장 진입 문턱을 크게 낮춘다고 해서 중소업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신제품들을 내놓지는 못할 것이다. 맥주는 생산규제 못지않게 전국적인 유통망 구축이 중요한데, 여기에 들어가는 돈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행 초기에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내에만 주로 유통할 목적으로 맥주를 소량생산하는 형태가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제주도청은 지역 맥주 제조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의 맑은 물과 보리를 원료로 한 제주 맥주는 앞으로 외지인이 제주를 찾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린 우리 맥주들이 '국내 예선'을 거쳐 해외시장에서도 호평받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예외는 없다! '하루키 월드'의 노예가 되든가 혹은…

[프레시안 books] <상실의 시대>에서 <1Q84>까지, 당신의 선택은?

1978년 4월, 도쿄의 진구(神宮) 야구장. 29세의 청년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외야에 앉아 야쿠르트와 히로시마의 경기를 관전하며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찰나였다. '소설을 쓰고 싶다'. 그 강렬한 욕구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하늘에서 깃털이 내려와 앉는 것처럼 그의 머릿속에 들어섰다고 한다.

학생 시절 '1968년'을 경험하고 이른 결혼을 한 후엔, 생활비를 벌기 위해 20대의 대부분을 육체노동으로 보내야 했던 그였다. 그때까지 소설가가 될 생각은커녕, 자신에게 소설을 쓸 능력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던 그는, 이듬해 첫 번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발표하고 '소설가'가 된다. 1979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작이었다.

그의 등장은 일본 문학계에 강렬한 신선함과 불편한 이질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하루키에게 군조(群像)신인문학상을 안겨준 일본의 문단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지게 될 질문을 품게 된다. '하루키의 소설은 문학인가'. 한눈에도 미국 문학의 세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번역체에 가까운 문체, 일본 문학의 전통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의 전개, 지극히 사적인 감수성과 세계관은 분명 기존의 '쇼와(昭和) 문학' 혹은 '전후(戰後) 문학'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제 소설이 미국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미국 소설의 영향을 받으면 왜 안 되는 거지, 싶고요." (무라마키 하루키, 무라카미 류와의 대담집 <walk, don't run>, 1981년)

그렇게 하루키는, 1976년에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등장한 무라카미 류(村上龍), 1980년에 데뷔한 <어쩐지 크리스털>(1980년대 한국에서 여러 종류의 해적판이 출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의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 등과 함께, 일본 근대 문학의 종말을 앞당긴 '새로운 문학 세대'로 분류되며 문단의 주목과 외면을 한 몸에 받게 된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 하루키는 <1973년의 핀볼>(1980년), <양을 쫓는 모험>(1982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년) 등을 잇따라 발표한다. 문단의 평가는 여전히 그다지 높지 않았으나, 기존의 문학이 유지해온 경계를 거부하는 그의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추럴한' 문장은, 일종의 '서브컬처'적인 세계를 구축하며 충성도 높은 독자층을 꾸준히 확보해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연합뉴스
그러던 '문제적 작가' 하루키의 소설가로서의 인생은 1980년대 말을 기점으로 크게 변화하게 된다. 1987년, <상실의 시대> 즉 <노르웨이의 숲>이 출간된 것이다. 어떤 의미로든 그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기억될 이 작품은 상, 하권 합쳐 430여만 부가 팔려나갔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 '100% 연애 소설'(당시의 선전 문구였다)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문체, 그리고 그것들이 뿜어내는 '쿨함'에 열광했다. 너나 할 것 없이 하루키의 책을 끼고 다녔다. 그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패션이기도 했다. 하루키라는 이름은 그렇게 문학의 울타리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저널리즘'의 세계에 등장했다.

그러나 '하루키 현상'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편(어쩌면 본편)이 예상치 못한 형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중국, 타이완 등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그의 소설에 열광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하루키 세대'라는 말이 생겨났고 타이완에서는 '비상(非常)무라카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무라카미광'이 출현했다.

일본 문학의 틀을 넘어 아시아로 확장된 1990년대의 '하루키 현상'을 보면서, 많은 일본인들은 '그들은 왜 하루키에 열광하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에서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로 제목을 바꿔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아시아에서의 하루키 현상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분석들이 '하루키 현상'의 역사적 맥락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 냉전 체제의 붕괴, 자본주의 시스템글로벌화 등에 주목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바뀌거나 사라지거나 무너지던 때였다. 그 안에서 허무와 불안, 상실감을 느낀 젊은 세대가 하루키의 소설이 세련되게 그려내는 이국적인(정확히는 미국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고, 국가나 가족이 아닌 오직 '나'로 시작해 '나'로 돌아오는, '타자'도 '외부'도 없는 하루키적 세계에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1990년대를 거쳐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하루키 현상'은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며 일종의 '글로벌'한 성격을 획득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양적인 문제는 아닌 듯하다. 소련이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시기에 유럽에서 그의 글이 가장 많이 팔려나간 곳은 러시아와 독일이었다. 하루키에 대해 미국의 젊은 세대가 열광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역시 '9·11' 이후였다. 즉 'HARUKI MURAKAMI'의 소비는 전 세계적으로 전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상실감'을 동력으로 하고 있는 문화 현상인 것이다.

"1993년부터 95년 사이만 해도 하루키 씨의 강연이 열린 건 미국 각 대학에 있는 일문학과가 초청한 15~40여 명 정도의 조촐한 모임이었어요. (…) 그랬던 것이 작년(2005년) MIT에서의 강연에서는, 500명 규모 강당이었는데 1300여 명이 되돌아갔어요. 그래서 하버드대에서는 일부러 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을 마련했는데, 역시 500여 명이 입장하지 못했죠. 믿기지 않는 변화였어요." (제이 루빈(Jay Rubin), <세계는 하루키를 어떻게 읽는가>, 2006년)

그렇게 20여 년간 세계 곳곳에서 '이즘(ism)'으로, '패션'으로, '라이프스타일'로 소비되어온 하루키의 위상은 다시 일본으로 역수입되었다. 1989년 이후 20년 만에 판매 수입이 2조 엔 아래로 내려앉은 2009년 출판계의 불황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변함없는 '문화 현상'이었다.

옴진리교 지하철 독가스 테러 사건을 테마로 한 <1Q84> 1, 2권은 한 해 동안 224만 부가 팔려 나갔다. 올해 발간된 3권 역시 기록적인 판매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2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고르게 분포된 독자층은 그에게 '국민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30년 전, 이전에 없던 이질감을 안겨주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탈일본화'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HARUKI MURAKAMI'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지금 일본인 작가로서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동아시아와 유럽=미국, 양 문화권을 이어줄 수 있는 연결 지점 같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 한 사람의 일본인 작가로서 주어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몽키 비즈니스>, 2009년)

오랫동안, 한국과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작가는 하루키'라는 말은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금기어'에 가까웠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하루키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어도 그 세계관에 공감할 수 없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것은 어쩌면 '하루키의 소설은 문학인가'라는 질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30년 전 던져진 그 질문은, 단순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기성 문학계가 새내기 젊은 작가에게 던진 꼴사나운 질문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학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자 문학이 가지는 사회와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하루키의 소설이 그 문학의 경계 밖으로 내밀리지도, 안으로 끌어당겨지지도 않은 채 '방치'되어 온 것 역시 사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HARUKI MURAKAMI'가 되고, '문제적 작가'에서 '국민적 작가'로 '격상'되는 사이에 일어난 변화 중 하나는, 하루키의 소설과 '대면'하는 비평가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비아냥거림이 아닌 신랄한 비판이, 어정쩡한 외면이 아닌 성실한 비판이 하루키를 읽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은 2000년대 이후에 특히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일본 문학자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가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상처받은 자들에 대한 치유와 재생이 아닌 독자들의 사고를 정지시켜 버리는 역사 은폐"라고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짧은 감상평이 아닌 성실한 한 권의 '무라카미 하루키론'을 통해서였다. 대표적인 하루키 비평가인 가토 노리히로(加藤典洋)나 카와무라 미나토(川村湊)와 같이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꼼꼼히 분석하고 비판하는 비평가 역시 늘고 있다.

"이러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적 태도를 '일본적(문학적) 스노비즘(snobbism : 속물근성)'이라고 부르는 건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본질적인 갈등이나 대립, 대결은 배제된 채, '공허한 형식적 게임'으로서의 이야기 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1990년대 세계의 글로벌라이제이션 경제와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적인 붐을 불러일으킨 건, 이러한 '공허한 형식적 게임'으로서의 글로벌 시장 경제가 세계를 석권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카와무라 미나토(川村湊), <무라카미 하루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2006년)

▲ <1Q84>(전3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1Q84>가 출간된 2009년, 한 인터뷰에서 하루키는, "작가의 역할이란, 원리주의나 신화성 같은 것들에 대항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시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야기가 힘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1995년에 일어난 옴진리교 사건에 충격을 받은 그는, 1년 9개월간 사건의 피해자와 관계자 62명의 인터뷰를 토대로 완성한 논픽션 <언더그라운드>(1997년)와 교단의 신자 8명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 <약속된 장소에서>(1998년)를 엮어 냈었다. 그 경험들을 녹여낸 <1Q84>는, 현실에 존재하는 (역시 그의 표현을 빌리면) '압도적인 폭력'에 대한 하루키식 대항인 셈이다.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일본 근대 문학은 죽었다"고 지목한 1980년대는 '하루키의 시대'가 시작된 그 80년대였다. 30년. '무라카미 하루키'가 'HARUKI MURAKAMI'가 되는 사이 그도 변했고 세상은 더 많이 변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은 '하루키의 소설은 문학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하고 있다.

일본의 문학은 하루키에 의해 죽었고, 하루키에 의해 여전히 살아있다.
 

/김성민 도쿄대학교 대학원 정보학환 Assistant Professor

 

 

 

[주간조선] [르포] 중년 남성들의 새 탈출구 대화방에선 어떤 일이…

 

<이 기사는 주간조선 212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8월 16일 저녁 9시. 서울시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 골목길에 위치한 간판들의 불빛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퇴근 후 식사를 마친 중년 남성들이 골목 구석구석을 메우고 있는 술집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들어갔다. 강남 번화가 뒷골목에서 흔히 벌어지는 광경이다. 그런데 시끌벅적한 골목 속 한 5층 건물에서 희한한 풍경이 연출됐다. 20~30분 간격으로 회사원 복장의 남성들이 동료도 없이 홀로 같은 출입구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딘가 기운 없어 보이던 그들의 뒷모습은 활기찬 밤거리의 풍경과는 사뭇 대조돼 보였다.

그들을 따라 이 건물 2층에 위치한 업소 ‘G’바의 문을 열었다. 100㎡(약 30평) 남짓 될 것 같은 공간에 의자 2개가 겨우 들어갈 만한 비밀스러운 방이 7개. 방문은 커튼으로 되어있었고 모든 방의 천장은 뚫려 있었다. 이미 3~4곳의 커튼이 닫혀 있는 걸로 봐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옆방에 앉아 귀를 기울여보니 뚫려있는 천장을 넘어 나지막한 남녀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기러기 아빠·돌싱남이 주요 고객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는데 부인이 옛 남자를 만나고 있는 거야. 그때 벌써 애가 둘이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했어?”

“돌려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 이혼했지. 애도 내가 키우려고 했는데, 엄마 자리를 내가 채워줄 수 없겠더라고. 지금은 생활비 보내주고 있고. 애 보고싶을 때 찾아가서 보고.”

“어휴. 못됐다.”

바에서 흘러 나오는 잔잔한 음악소리에 섞여 대화내용이 조금씩 들려왔다. 남자는 상대 여성에게 자기의 치부를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이곳을 마치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나오는 숲속 구덩이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30여분이 더 지나고 커튼 밖으로 두 사람이 나왔다. 정장을 한 모습으로 보아 근처 회사원일 것 같은 40대의 남자와 어림잡아 175㎝는 될 것 같은  늘씬한 20대 여자였다. 남자가 곧바로 계산대로 가더니 10만원을 주고 나갔다. 여자는 남자에게 “또 봐”라고 인사한 후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맞은편 방에선 막 나간 회사원 차림의 남자보다 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고 축 늘어져 있었다.

“…그래서 여자친구랑 헤어졌는데, 갑자기 첫사랑이 생각나는 거야. 걔는 참 성격이 나랑 잘 맞았는데.”

“그럼 걔랑 결혼하지 그랬어.”

“어떻게 첫사랑이랑 결혼하냐? 사정도 있었지.”

한 시간 동안 누가 들을 새라 숨을 죽이며 얘기하던 이 남자, 나중에 얼굴을 보니 30대 후반쯤이나 됐을까. 최근 결혼에 실패한 사람인 것 같았다. 첫사랑부터 마지막 사랑까지 구구절절이 읊었다. 얘기 중간중간 여자가 맞장구를 치거나 짧은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남자 역시 작은 방에서 여자와 대화를 마치고 계산대에10만원을 내고 나갔다. 축 처져있던 어깨가 조금 올라간 듯했다. 갈 곳 없는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이른바 ‘대화방’의 풍경이었다.

지난 7월 초 서울 강남 논현역 인근에 문을 연 이 신풍속의 술집은 대화에 목말라 하고, 심지어 외로움에 자살까지 하는 2010년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들을 위한 곳임을 표방하고 있다. 술을 팔지만 술보다는 대화에 목말라하는 남성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 술집 대표 노모(41)씨를 만나봤다. 그는 “이제 문을 연 지 두 달이 다 돼가는데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싱글’들로 예약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2명 이상의 단체손님은 정중히 거절해 돌려보내고 있다”고 했다. 업소가 당초 목표로 한 손님들이 대화를 원하는 나홀로 남성이고,  잔잔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하는 대화방 성격상 손님이 2인 이상이 되면 분위기가 흐트러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어떻게 ‘대화방’을 생각해냈을까.

“사실 전 기러기 아빠였습니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 부인과 함께 필리핀에 보냈죠. 가족을 떠나보내고 처음 혼자 남겨졌을 땐 외로움에 안 해본 게 없습니다. 술값으로 한 달에 1000만원 이상을 날렸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하는 생각에 허무함이 밀려오더라고요. 남는 것도 없었고, 마음은 뻥 뚫려갔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다’고.”

그는 기러기 아빠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지독한 외로움을 겪을 당시에는 부끄러움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외롭다’ ‘괴롭다’는 얘기를 차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화방은 이렇게 기러기 아빠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가 딱히 예상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손님의 절반 가량이 역시 기러기 아빠라고 한다.

“손님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의 기러기 아빠와 ‘돌싱남(이혼남)’이죠. 하루에 20~30명 정도씩 옵니다. 해외에서 자녀들을 돌보느라 무심한 아내, 혹은 헤어진 연인에게 할 말이 많겠죠. 그걸 대화녀들에게 털어놓는 겁니다.”
 
1시간 10만원… 스킨십 금지, 오직 대화만

노 대표는 손님의 대화를 들어주는 이른바 ‘대화녀’들을 ‘파트너’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들과 노 대표는 계약고용관계가 아니다. 대화방에서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했을 때 손님이 지불하는 돈은 10만원. 이 돈에는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안주와 맥주 값이 포함된다. 대화녀들은 매주 자신이 일한 대화 시간을 정산해 노 대표와 수입을 나눠 갖고 있었다.

“기러기 아빠나 돌싱남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어요. 용기를 복돋워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파트너들을 뽑을 때 외모를 가장 많이 봤습니다. 예쁜 여자들이 열심히 얘기를 들어주고 계속 맞장구를 쳐주면 기가 살거든요. 슬픈 얘기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노 대표를 따라 대화방에 들어가 봤다. 8㎡(약 2.5평) 남짓되는 작은 공간에 남자와 여자가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의자 2개, 가운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다였다. 남자의 시야에 들어오는 맞은편 테이블 주변은 모두 거울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자가 방 전면에 거울을 배치한 이유를 묻자 노 대표는 “우리는 신체적 접촉이 금지돼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만질 수 없기 때문에 거울을 통해 시각적인 만족감을 높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해놓으면 마주 앉아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 정면만 바라보고 대화하는 게 아니라 거울을 통해 대화녀의 측면, 뒷면 등을 빠짐없이 바라보며 대화하게 됩니다. 심리적 각성효과도 있지요. 1시간 동안 술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데 그 안에 취해서 주사를 부리면 안되잖아요. 맥주를 마시다가 문득 거울을 보면 본인의 얼굴이 달아올라와 있거든요. 그럼 취중에도 정신이 확 드는 거죠.” 노 대표의 설명이다.

그와 얘기하는 중간중간 그의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대화녀 면접을 보고싶다는 전화와 예약문의 전화였다. 어느덧 11시가 되자 5개의 방이 찼다. 이 시간부터 새벽 1시가 가장 바쁜 시간이라고 했다.

기자가 “중년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은데 대화녀로 하루 일해보면 안되느냐”고 묻자 그가 정장을 한 기자의 모습을 위아래로 한번 훑더니 “손님이 단신으로 오기 때문에 개인적 취향이 강하다. 자기 취향이 아니면 (대화녀를) 거절할 수도 있다. 마음 상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기자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에둘러 얘기했다는 직감을 받았다. 손님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인지 복도를 오가는 대화녀들이 기자를 흘낏흘낏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고 발길을 돌렸다.

속마음 털어놓고 고민 상담도 

다음날 출근길 가방에 여벌의 옷을 담았다. 저녁 7시쯤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출발해 여의도 9호선 환승역 화장실에서 점잖은 정장을 벗고 ‘대화녀’에 어울릴 만한 다소 ‘야한’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했다. 8시쯤 대화방에 도착해 노 대표를 다시 만났다. 그가 “이 정도면 괜찮겠다”며 오케이 사인을 해보였다. 이날 출근한 ‘대화녀’는 모두 5명. 9시부터 손님이 조금씩 들어왔고 단골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주일에 2~3번은 방문한다는 이들은 자신의 신상을 꿰고 있는 고정 파트너를 하나씩 두고 있었다. 어떤 손님은 8시부터 일찌감치 나와 10시에 출근한다는 대화녀를 1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했다. 대화방에 일주일에 3번씩 들른다는 그는 왜 대화방을 끊지 못하고 있을까.

“손님 입장에서는 매번 자기 신상을 설명하는 게 스트레스죠. 이제 만나면 ‘아 저 사람은 기러기 아빠고, 애가 캐나다에 있고, 부인과 사이가 어떻고’ 정도는 꿰고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1시간에 10만원인데 자기소개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면 좋겠어요?” 대화녀 중 한 명인 지아(22·예명)가 말했다. 그가 “거기다 그 손님은 언변에 자신이 없어서 말로 여성의 환심을 사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화방에서 한 달이 넘게 대화녀로 일하고 있는 그에게 “어떤 얘기를 주로 하느냐”고 물었다.

“다양해요. 처음에는 단순한 화젯거리로 시작하지만 계속 오는 사람들은 점차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솔직해지자는 듯 모든 얘기를 다해요. 정말 진지하게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땐 심리치료사라도 된 기분이 들어요.”

저녁 10시. 손님이 뜸하자 대화녀들이 바에 ‘술상’을 차렸다. “이 시간쯤 오는 손님들은 이미 한잔 하고 오기 때문에 우리도 분위기를 비슷하게 맞춰줘야 한다”는 것이 ‘술상’을 차린 이유다. 다섯 명의 대화녀들과 바에 앉아 술을 마시며 “힘들지 않냐”고 묻자 대화녀 중 한 명인 규리(27·예명)가 “주점과는 달라 ‘진상 손님(종업원을 괴롭히는 손님)’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손님의 말에 맞장구 쳐주고 경청하면서 대화를 잘 이끌어 2시간으로 연장하는 게 기술”이라며 “손님이 대화방의 콘셉트를 모르고 스킨십을 요구하면 ‘오빠랑 대화하는 거 재미없어’ 하고 나와버린다”고 말했다.
기자가 “기러기 아빠와 대화해보고 싶다”고 말하자 “기러기 아빠들의 특징은 기러기가 아닌 척한다는 것”이라며 “세 번 이상 대화하기 전엔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방학 땐 비수기… 가족 떠난 9월이 피크

18일 저녁 9시. 대화방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출발 전 노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단골 기러기 아빠 손님들에게 전화를 넣어달라”고 부탁했지만 “지금 기러기는 ‘비수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평소 자주 오는 손님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방학이라 처자식이 한국에 들어와 있어 집 밖을 떠날 생각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노 대표가 “아이들이 개학을 앞두고 돌아가는 9월 초는 돼야 기러기 아빠 손님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서울 일대엔 장맛비가 쏟아졌다. “빗방울이 굵어 손님이 없을 것 같다”고 하자 노 대표가 웃으며 “아직 남자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와보면 알 것”이라고 했다. 이날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 기러기 아빠 이모(38)씨를 대동했다. 중년 남성의 입장에서 본 대화방의 느낌을 듣고 싶어서였다.

느지막이 도착한 대화방. 이상하게 음악소리가 크고 시끌벅적했다. 각 방이 꽉 들어차 있었고 대화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격양된 듯했다. 노 대표의 ‘와보면 알 것’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듯했다. 기자가 “손님이 많다”고 하자 노 대표가 “비가 오지 않느냐. 집에 가면 혼자인 사람들은 외로움이 두 배가 되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이날은 오히려 대화녀들이 부족했다. 어제까지 함께 술을 마시던 5명의 대화녀들은 다 커튼 속 방으로 들어간 후였다. 노 대표가 “오늘은 1시간만 하고 가는 손님들이 없다. 다들 연장했다. 오늘은 30명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좁은 방에 기자와 이씨가 나란히 앉았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그에게 “기러기 생활을 하며 가장 슬펐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이씨가 말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죠. 부인과 7살된 딸이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예기치 않게 내가 사고를 당했어요. 몇 달 동안 목발을 짚고 다녔는데, 오랜만에 애가 왔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놀이공원을 같이 가줄 수가 없는 거예요. 개학이 다가왔고, 그때도 목발을 짚고 있었죠. 운전은 가능한 상황이라 차로 공항에 데려다 주는데 공항에서 휠체어를 빌려주더라고. 휠체어를 타고 아이에게 손을 흔들고 나서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데 인천공항이 얼마나 넓던지…. 30분 동안 목발을 짚고 차로 돌아오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집안에서는 목발을 사용 안하니까 혼자 기어다녔고….”

“안 울었어요?”

“눈물이 핑 돌더라고.”

1시간 반쯤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노 대표가 커튼을 열고 들어왔다. “이제 막 일이 끝난 진짜 대화녀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는 “아무래도 더 얘기하면 (슬퍼서) 안될 것 같다”고 했다. 이씨와 함께 대화방을 나왔다. 그가 “속이 좀 후련해졌다”고 말했다. 

중년남성, 왜 대화 찾아 나서나
부인·자녀 역할 변화로 가족들과 소통불능

‘대화방’ 술집까지 등장한 세태와 이곳을 찾는 대한민국 중년남성들의 심리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아버지의 실종’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오늘날 중년남성들의 외로움과 방황은 가족 안을 깊게 들여다보면 원인이 있다”며 “부인과 자녀들의 입장과 역할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과거 가족은 하나의 준거집단으로 각자의 역할 모델이 분명했다. 그중 ‘아버지’라는 존재는 집안의 권위를 상징했다. 아내는 남편을 인정하고 존중했고, 그것을 보고 자란 자녀들도 아버지를 역할모델 삼아 따랐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권위를 인정받는 아버지는 드물어졌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고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는 현실에서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의 권위는 반토막이 났다. 과거 아버지들은 집안을 먹여살리기 위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권위를 누리는 만족감을 맛봤지만, 요즘의 아버지들은 생활고는 생활고대로 시달리면서 외로움까지 겪는 ‘이중고’에 허덕이는 경우가 많다. 21세기형 ‘남자 열녀’로까지 불리는 우리 사회의 기러기 아빠들이 대표적이다. 조기퇴직, 연로해지신 부모님의 뒷바라지, 자녀들의 대학진학과 결혼 등으로 경제적 압박감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자신의 지위에 대한 상실감이 커지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요즘의 아버지들이다.

여기다 갈수록 남성호르몬이 증가하는 중년의 마누라는 자기 주장이 강해져 더 이상 남편을 감싸주지 않고, 다 자란 아이들은 세대 차이의 벽 속에 갇혀 권위를 잃은 아버지와 말을 섞지 않는다. 얼마전 한 예능프로에서 자신을 기러기 아빠라고 밝힌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45)씨는 “집에 과일을 오래 뒀더니 날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녔다. 그런데 외로워서 차마 그걸 죽일 수 없었다”며 기러기 아빠의 절절한 고독함을 토로해 동감을 샀다.

결국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소통불능자가 된 이 땅의 중년 남성들은 ‘대화’라는 원초적인 욕구불만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탈출구’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그림 변기현>

[만물상] 오은선과 칸첸중가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는 8000m 넘는 히말라야 열네 개 봉우리를 세계 두 번째로 모두 오른 뒤 기록을 의심받았다. 1981년 마칼루 등정 사진을 못 찍었기 때문이다. 등반대에 참여했던 네팔 연락장교도 그가 정상을 밟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그를 궁지에서 구해낸 이가 허영호다. 허영호는 이듬해 마칼루에 올랐다가 쿠쿠츠카가 남긴 무당벌레 모양 마스코트를 발견해 의혹을 씻어 줬다.

▶1989년 한 산악인이 한국인 최초로 초오유를 산소통 없이 올랐다고 해 정부의 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맑은 날 정상에서 찍었다는 사진에서 남쪽 에베레스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6년 뒤 초오유 등정이 거짓이었다고 고백했다. 세계 산악계에 등정 의혹과 조작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산의 숫자와 높이에 집착하는 성과주의,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등정주의 탓이다.


미국 기자 마이클 코더스는 책 '에베레스트의 진실'에서 돈에 오염된 히말라야를 까발렸다. 베이스캠프엔 텐트 500채에 1000명이 북적인다. 음식과 술을 팔고 마약에 매춘까지 이뤄진다. 2억원을 내면 대행사가 팀 구성, 장비 운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준다. 이렇게 해마다 500여명이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코더스는 등반이 상행위로 전락했고 에베레스트는 '인간성의 무덤'이 됐다고 개탄했다.

▶대한산악연맹이 오은선의 14좌 완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 됐던 칸첸중가 등정 사진 속 지형이 실제 정상엔 없는 것이라고 판정했다. 오은선의 여성 최초 14좌 완등 기록이 국제적으로도 흔들리게 됐다. 스페인 경쟁자 에두르네 파사반은 오은선보다 열하루 늦게 14좌 등정을 달성했다.

▶산악계는 오은선이 적어도 등정 사진을 확실히 남기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가 셰르파 말만 믿고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00년까지 14좌를 모두 오른 엄홍길은 시샤팡마와 로체 등정에 시비가 일자 이듬해 두 봉우리를 다시 올랐다. 오은선은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당당하게 칸첸중가 재등정에 나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산악계는 산을 오르는 '태도(attitude)'보다 '높이(altitude)'를 중시하는 상업주의를 되돌아볼 일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 1985년, 유니버설)
음악: 존 배리(John Barry)
감독: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
원작: 카렌 블릭센(Karen Blixen, 이명: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
주연: 로버트 레드포드, 메릴 스트립,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

그대가 고향에 승리를 안겨주었을 때,
우리는 그대를 의자에 올려 앉히고 장터를 돌았지.
어른 아이들 일어서서 환호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대를 어깨에 올려 앉히고 집으로 갔네.

명민하였다 젊은이여, 영광은 금방 지나가고
더 이상 벌판에 머무르지 않네.
월계수는 일찍 자라지만,
장미보다 빨리 시들어버리는구나.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포스터. 덴마크의 여성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시(詩)를 듣는다. 누구였을까, 일찍 시들어버려 시인을 애통케 한 이 젊은이는?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는 비행기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카렌(메릴 스트립)은 묘지 앞에서 그를 추모하는 시를 낭송한다. 재능 넘치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영국 시인 A. E. 하우스먼(Alfred Edward Housman)은 보어 전쟁에서 죽어나간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하며 이 시를 썼다. 조국을 위한 영광을 누렸으나 젊은 나이에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그들을 한 편의 시로 추모했던 것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배경이 된 1차 대전 중에 이 시는 더욱 사랑을 받았다. 전투는 치열했고, 젊은 사상자들은 사람들에게 애끓는 비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전쟁 때문은 아니지만, 데니스도 이른 나이에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아직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카렌은 하우스먼의 시를 읽으며, 낡은 시집을 가슴에 안고 슬픈 눈동자로 먼 곳을 바라본다. 데니스와 함께했던 자리, 아프리카 초원의 나무와 풍경은 그대로이다.

카렌은 데니스와 함께 사파리를 떠난다. 지프를 몰고 둘이 떠난 여행은 아름다웠다. 아프리카의 정경이 두 사람의 것이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제대로 씻지 못한 그녀의 머리는 엉망이 된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힘들게 빗고 있을 때 데니스가 다가온다. 카렌을 의자에 앉히고 하얀 거품을 일으키면서 머리를 감겨준다. 이 영화에서 여성 관객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아무것도 없는 아프리카 오지의 밀림 속에서 핸섬한 연인이 머리를 감겨준다는 게 현실의 일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거기서 데니스는 새뮤얼 콜리지의 시를 암송한다. “하하 웃으며 그는 말했지. 모든 게 잘 보이는군. 악마는 노를 저을 줄 알지. … 잘 있어요, 안녕히. 그러나 그대와 결혼 축하객들에게 하는 말이라오.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 기도도 잘 한다오. 그건 사람이나 새나 동물들도 마찬가지이지.”

시를 다 들은 카렌이 몇 구절 빼먹었다고 이야기하자, 데니스는 지루한 부분을 뺐다고 말한다. 연인에게 다감한 배려를 할 줄 아는 남자. 그가 하얀 물병에 담긴 물로 머리를 헹구어주자 카렌의 얼굴이 밝게 빛난다. 그녀 앞에 서서 미소 짓는 데니스의 얼굴 뒤로 아프리카의 찬란한 태양이 넘실거린다. 이 장면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본 모든 여성들로 하여금 사랑을 꿈꾸게 하고, 당장이라도 연인과 이국으로 떠나고 싶게 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와 카렌(메릴 스트립)

만일 무인도나 혹은 아프리카의 오지로 떠나게 될 경우 몇 장의 음반을 가져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음악을 선택할 것인가. 데니스의 선택은 모차르트였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에 작곡했다는 그의 마지막 협주곡이자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K.622)이다. 영화는 특히 2악장 「아다지오」의 느린 선율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클라리넷이 만들어내는 서정적 아름다움은 영화의 이미지를 잘 반영한다. 느리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을 상징하며, 그와 대비되는 클라리넷의 목가적인 소리는 아마도 데니스일 것이다. 아프리카와 데니스는 오케스트라와 클라리넷처럼 조화를 이룬다.

오케스트라의 넉넉한 품 안에서 클라리넷은 느리거나 빠르게, 혹은 높거나 낮게 노래하며 작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한다. 데니스는 거대한 아프리카에서 뛰놀아야 마땅한 영혼인 것이다. 심지어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소리는 부드럽고 목가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무쌍하다. 저음에서 고음으로 옮겨가며 음색과 표현의 폭이 달라진다. 데니스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독서하고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꿈을 꾼다. 그러나 클라리넷은 오케스트라의 음향과 맞서거나 자신의 소리를 과장하지 않는다. 자유를 구가하지만, 데니스의 삶에 배인 쓸쓸함과 처연한 아름다움까지 군더더기 없이 섬세하게 그려낸다. 클라리넷의 우수는 만년의 모차르트와 그의 죽음, 자유로운 영혼 데니스의 죽음까지도 암시하는 듯하다. 슬픔은 딱 거기까지, 더 지나침이 없지만, 클라리넷 소리는 아프리카의 우수를 남김없이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마음 아리게 한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만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음악을 채우는 전부는 아니다. 확실히 모차르트의 음악은 주인공이다. 하지만, 존 배리의 음악이 다른 주연 혹은 조연들처럼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의 영상을 채운다. 그의 메인 테마를 듣고 있노라면 끝없이 펼쳐진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초원이 떠오른다. 지평선은 끝이 없고 동물들이 떼를 지어 달려간다. 이 테마 음악에는 「I Had a Farm in Africa」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존 배리는 장엄한 대륙의 이미지를 견고하고 웅장하게 묘사한다. 이 음악 속에서 카렌이나 데니스는 거대한 자연의 일부가 된다. 아프리카의 위대한 자연 속에서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카렌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하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한 자유로운 영혼에 바친 영화다.

존 배리는 여러 스코어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카렌의 감정을 포착해내고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원작자인 카렌 블릭센(이자크 디네센)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프리카이다. 영화도 음악도 이 이야기는 그녀의 경험이자 삶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래서 「Karen’s Theme」는 그녀의 감정 변화를 담아내며 다양하게 변주된다. 데니스의 방에 가득 꽂힌 책들,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던 데니스의 모습, 나침반을 건네주던 그의 다정함이 카렌의 기억을 통해서 드러난다. 카렌에게 사자가 다가올 때 데니스는 총을 함부로 쏘지 않았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던 카렌은 살아났다는 사실조차도 믿기 어려웠다. 음악은 그런 카렌을 따라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비행기를 탄다. 온 세상이 눈 아래 펼쳐진다. 「Flying over Africa」에는 데니스와 함께 아프리카의 창공을 날면서 대륙을 내려다보는 경이로운 느낌이 잘 살아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OST LP

카렌의 아프리카는 이렇게 존 배리의 음악을 통해서 위대하지만 낭만적인 공간, 데니스와의 기억으로 충만한 공간이 된다. 카렌은 사랑했던 남자 데니스를 회상하면서 가슴 아파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를 소유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가 마사이 족에 대해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데니스 자신에 대한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마사이는 절대 길들여질 수 없어요. 만약 감옥에 가둔다면 곧 죽고말 거예요. 현실에만 충실하기 때문이죠. 미래라는 개념이 없어요.” 아프리카의 초원에까지 축음기를 가져가 모차르트를 감상하던 남자 데니스. 시와 자연, 그리고 자유를 사랑했던 그의 삶이 카렌의 눈을 통해 아름다우면서 애잔하게 펼쳐진다.

원작자 카렌 블릭센(아이작 디네센, 1885~1962)
[Tip 1] 카렌이 데니스의 장례식에서 읊는 시는 A. E. 하우스먼의 시집 『슈롭셔의 젊은이』에 실려 있는 「젊어서 죽은 운동선수에게」이다.

[Tip 2] 데니스가 카렌의 머리를 감겨주면서 암송하는 시는 새뮤얼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산문시 「늙은 선원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이다. 어느 결혼식에 나타난 늙은 선원이 한 하객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주는 내용으로, 암송하는 부분은 카렌의 말대로 시 전편 중 마지막 장의 극히 일부이다. 콜리지와 윌리엄 워즈워스가 함께 펴낸 시집 『서정가요집』(Lyrical Ballads)에 실려 있다.

[Tip 3] 존 배리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훨씬 앞선 1960년대부터 <007 시리즈>의 음악을 맡아 유명세를 올린 음악가이다.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은 1966년 작 <야성의 엘자>였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존 배리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제가상과 작곡상을 받았다. 그 밖에도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 <킹콩>(1976), <늑대와 춤을>(1980) 등 빼어난 음악을 들려준 영화들을 여럿 맡았으며,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포함해서 아카데미 작곡상을 세 번 더 받았다.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시(詩)를 듣는다. 누구였을까, 일찍 시들어버려 시인을 애통케 한 이 젊은이는?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는 비행기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카렌(메릴 스트립)은 묘지 앞에서 그를 추모하는 시를 낭송한다. 재능 넘치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영국 시인 A. E. 하우스먼(Alfred Edward Housman)은 보어 전쟁에서 죽어나간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하며 이 시를 썼다. 조국을 위한 영광을 누렸으나 젊은 나이에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그들을 한 편의 시로 추모했던 것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배경이 된 1차 대전 중에 이 시는 더욱 사랑을 받았다. 전투는 치열했고, 젊은 사상자들은 사람들에게 애끓는 비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전쟁 때문은 아니지만, 데니스도 이른 나이에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아직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카렌은 하우스먼의 시를 읽으며, 낡은 시집을 가슴에 안고 슬픈 눈동자로 먼 곳을 바라본다. 데니스와 함께했던 자리, 아프리카 초원의 나무와 풍경은 그대로이다.

카렌은 데니스와 함께 사파리를 떠난다. 지프를 몰고 둘이 떠난 여행은 아름다웠다. 아프리카의 정경이 두 사람의 것이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제대로 씻지 못한 그녀의 머리는 엉망이 된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힘들게 빗고 있을 때 데니스가 다가온다. 카렌을 의자에 앉히고 하얀 거품을 일으키면서 머리를 감겨준다. 이 영화에서 여성 관객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아무것도 없는 아프리카 오지의 밀림 속에서 핸섬한 연인이 머리를 감겨준다는 게 현실의 일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거기서 데니스는 새뮤얼 콜리지의 시를 암송한다. “하하 웃으며 그는 말했지. 모든 게 잘 보이는군. 악마는 노를 저을 줄 알지. … 잘 있어요, 안녕히. 그러나 그대와 결혼 축하객들에게 하는 말이라오.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 기도도 잘 한다오. 그건 사람이나 새나 동물들도 마찬가지이지.”

시를 다 들은 카렌이 몇 구절 빼먹었다고 이야기하자, 데니스는 지루한 부분을 뺐다고 말한다. 연인에게 다감한 배려를 할 줄 아는 남자. 그가 하얀 물병에 담긴 물로 머리를 헹구어주자 카렌의 얼굴이 밝게 빛난다. 그녀 앞에 서서 미소 짓는 데니스의 얼굴 뒤로 아프리카의 찬란한 태양이 넘실거린다. 이 장면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본 모든 여성들로 하여금 사랑을 꿈꾸게 하고, 당장이라도 연인과 이국으로 떠나고 싶게 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와 카렌(메릴 스트립)


만일 무인도나 혹은 아프리카의 오지로 떠나게 될 경우 몇 장의 음반을 가져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음악을 선택할 것인가. 데니스의 선택은 모차르트였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에 작곡했다는 그의 마지막 협주곡이자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K.622)이다. 영화는 특히 2악장 「아다지오」의 느린 선율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클라리넷이 만들어내는 서정적 아름다움은 영화의 이미지를 잘 반영한다. 느리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을 상징하며, 그와 대비되는 클라리넷의 목가적인 소리는 아마도 데니스일 것이다. 아프리카와 데니스는 오케스트라와 클라리넷처럼 조화를 이룬다.

오케스트라의 넉넉한 품 안에서 클라리넷은 느리거나 빠르게, 혹은 높거나 낮게 노래하며 작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한다. 데니스는 거대한 아프리카에서 뛰놀아야 마땅한 영혼인 것이다. 심지어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소리는 부드럽고 목가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무쌍하다. 저음에서 고음으로 옮겨가며 음색과 표현의 폭이 달라진다. 데니스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독서하고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꿈을 꾼다. 그러나 클라리넷은 오케스트라의 음향과 맞서거나 자신의 소리를 과장하지 않는다. 자유를 구가하지만, 데니스의 삶에 배인 쓸쓸함과 처연한 아름다움까지 군더더기 없이 섬세하게 그려낸다. 클라리넷의 우수는 만년의 모차르트와 그의 죽음, 자유로운 영혼 데니스의 죽음까지도 암시하는 듯하다. 슬픔은 딱 거기까지, 더 지나침이 없지만, 클라리넷 소리는 아프리카의 우수를 남김없이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마음 아리게 한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만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음악을 채우는 전부는 아니다. 확실히 모차르트의 음악은 주인공이다. 하지만, 존 배리의 음악이 다른 주연 혹은 조연들처럼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의 영상을 채운다. 그의 메인 테마를 듣고 있노라면 끝없이 펼쳐진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초원이 떠오른다. 지평선은 끝이 없고 동물들이 떼를 지어 달려간다. 이 테마 음악에는 「I Had a Farm in Africa」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존 배리는 장엄한 대륙의 이미지를 견고하고 웅장하게 묘사한다. 이 음악 속에서 카렌이나 데니스는 거대한 자연의 일부가 된다. 아프리카의 위대한 자연 속에서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카렌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하다.

출처: <고형욱의 OST 오디세이> http://www.yes24.com/chyes/ChyesColumnview.aspx?title=005029&cont=4842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한 자유로운 영혼에 바친 영화다.

존 배리는 여러 스코어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카렌의 감정을 포착해내고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원작자인 카렌 블릭센(이자크 디네센)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프리카이다. 영화도 음악도 이 이야기는 그녀의 경험이자 삶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래서 「Karen’s Theme」는 그녀의 감정 변화를 담아내며 다양하게 변주된다. 데니스의 방에 가득 꽂힌 책들,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던 데니스의 모습, 나침반을 건네주던 그의 다정함이 카렌의 기억을 통해서 드러난다. 카렌에게 사자가 다가올 때 데니스는 총을 함부로 쏘지 않았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던 카렌은 살아났다는 사실조차도 믿기 어려웠다. 음악은 그런 카렌을 따라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비행기를 탄다. 온 세상이 눈 아래 펼쳐진다. 「Flying over Africa」에는 데니스와 함께 아프리카의 창공을 날면서 대륙을 내려다보는 경이로운 느낌이 잘 살아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OST LP

카렌의 아프리카는 이렇게 존 배리의 음악을 통해서 위대하지만 낭만적인 공간, 데니스와의 기억으로 충만한 공간이 된다. 카렌은 사랑했던 남자 데니스를 회상하면서 가슴 아파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를 소유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가 마사이 족에 대해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데니스 자신에 대한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마사이는 절대 길들여질 수 없어요. 만약 감옥에 가둔다면 곧 죽고말 거예요. 현실에만 충실하기 때문이죠. 미래라는 개념이 없어요.” 아프리카의 초원에까지 축음기를 가져가 모차르트를 감상하던 남자 데니스. 시와 자연, 그리고 자유를 사랑했던 그의 삶이 카렌의 눈을 통해 아름다우면서 애잔하게 펼쳐진다.

원작자 카렌 블릭센(아이작 디네센, 1885~1962)

[Tip 1] 카렌이 데니스의 장례식에서 읊는 시는 A. E. 하우스먼의 시집 『슈롭셔의 젊은이』에 실려 있는 「젊어서 죽은 운동선수에게」이다.

[Tip 2] 데니스가 카렌의 머리를 감겨주면서 암송하는 시는 새뮤얼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산문시 「늙은 선원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이다. 어느 결혼식에 나타난 늙은 선원이 한 하객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주는 내용으로, 암송하는 부분은 카렌의 말대로 시 전편 중 마지막 장의 극히 일부이다. 콜리지와 윌리엄 워즈워스가 함께 펴낸 시집 『서정가요집』(Lyrical Ballads)에 실려 있다.

[Tip 3] 존 배리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훨씬 앞선 1960년대부터 <007 시리즈>의 음악을 맡아 유명세를 올린 음악가이다.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은 1966년 작 <야성의 엘자>였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존 배리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제가상과 작곡상을 받았다. 그 밖에도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 <킹콩>(1976), <늑대와 춤을>(1980) 등 빼어난 음악을 들려준 영화들을 여럿 맡았으며,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포함해서 아카데미 작곡상을 세 번 더 받았다.

 

 

[잠깐! 이 저자] "풍수 덕 볼 생각 마시오 자연과의 조화가 풍수 핵심"

 [잠깐! 이 저자] '조선풍수, 일본을 논하다' 쓴 김두규 교수
日 도읍지·천황릉 짚으며 한국 풍수 이야기 풀어내"내 학문적 처지가 우리나라 풍수(風水)가 처한 상황과 비슷합니다. 오라는 곳은 많은데 정작 내 소속은 불분명하거든요."

독일에서 독문학 박사를 마치고 귀국해 풍수의 세계에 뛰어든 김두규 교수(51)는 전주 우석대 교양학부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그곳에 풍수학과는 없다. "딱 한 번 철학계에서 '직관(直觀)'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 불러준 적이 있고 그밖에는 주로 조경학회에 나가 풍수학의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김두규 교수는“간혹 권력을 꿈꾸는 자들이 사람을 시켜 명당을 물어올 때마다 그런 명당을 알면 나부터 내 조상묘를 그곳에 쓰겠다고 면박을 줘서 보내버린다”며“풍수의 오용(誤用)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김 교수는 자신과 의형제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60)가 일으켰던 풍수 열풍이 실패로 끝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서구적인 사고방식과 과학관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충분한 방법론적 설명 없이 풍수를 내세웠으니 일반인들도 처음에는 큰 호기심을 가졌다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며 실망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 교수는 '한국 풍수의 허와 실' '우리 땅 우리 풍수'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의 풍수학이 처한 현실을 짚는 한편,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한반도 풍수학 사전' 등의 저서를 통해 조선의 풍수이론과 개념부터 정리했다. 조선시대 때 풍수인(風水人)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에 사용된 교재들도 쉬운 우리말로 번역했고, '김두규 교수의 풍수 강의'라는 현대인을 위한 입문서도 집필했다.

"풍수를 둘러싼 신비주의부터 벗겨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풍수는 장수들이 전쟁을 할 때는 '군사지리학'이었고, 도성을 건설할 때는 '인문지리학'이었습니다. 철저하게 풍수에 입각해 도읍지를 정하고 궁궐을 건설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조상들입니다."

김 교수가 이번에 펴낸 '조선풍수 일본을 논(論)하다'(드림넷미디어)는 우리 풍수를 더욱 잘 알기 위해 일본의 도읍지와 천황릉의 풍수를 짚어본 것이다. "우리처럼 모호한 이론이 난무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은 풍수를 철저하게 일본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신(四神:현무·청룡·백호·주작)을 사산(四山)으로 보는 데 비해 일본은 주산(主山)인 현무 외에 나머지 삼신은 연못(주작), 흐르는 물(流·청룡), 큰 길(백호)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주산은 적어도 200m 이상 되는 산인 데 반해 일본은 야트막한 언덕을 주산으로 삼는 것도 특색이었다. "우리와 일본이 산에 대한 관념이 그만큼 다르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김 교수는 이 책을 펴낸 진짜 뜻은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풍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있었다"는 점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책에 일본 풍수 못지않게 우리 풍수 이야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인 듯했다. "불교 색채가 강했던 고려의 풍수는 국토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면서 전 국토를 명당화하려는 목표가 강했던 데 비해, 유교국가 조선의 풍수는 효(孝)사상 차원에서 조상들의 묏자리 쓰는 데 집중한 듯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조선의 풍수학 수준이 낮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 때 수준을 못 따라 잡을 뿐이지요."

4대강이나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풍수학적 설명을 물어보자 김 교수는 말을 아꼈다. 다만 "세종시는 풍수적으로 보면 돈을 버는 땅이 아니고 쓰는 땅입니다. 풍수에서 물은 곧 재물의 길인데 그곳은 돈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 나가는 곳이지요"라고 말했다. 풍수에 관심있는 기업이라면 그곳에 가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 그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풍수로 덕을 보려 하지 말고 풍수의 도움을 빌려 자연과 도시를 잘 가꾸려 해야 합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이게 풍수철학의 핵심입니다."

 

“길상사는 박헌영 비자금으로 지었다”
박헌영 아들 원경스님 주장 “되돌려 준다던 요정 대원각 주인 자야 약속어기고 ‘무소유’ 법정스님에 시주”

서울 성북2동 길상사는 익히 알려졌듯 ‘아름다운 사연’이 깃든 불교 사찰이다. 길상사는 원래 요정 대원각이었다. 한데 대원각 주인 자야(본명 김영한·1916~99)가 법정 스님의 에세이집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은 뒤 당시 시가 1000억원이 넘는 약 2만 4000㎡(약 7000평) 규모의 대원각을 선뜻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다. 월북 시인 백석에 대한 자야의 순애보가 알려지면서 대원각 스토리는 세간에 무던히도 오르내렸다.

▲ ① 대원각(현 길상사)이 박헌영의 정치 비자금으로 지어졌다는 원경 스님의 주장으로 파문이 일 전망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박헌영(원 안 왼쪽부터)과 자야, 법정 스님 등이 모두 세상을 떠나 진실은 미궁에 빠지게 됐다.

여기에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간’ 박헌영(1900~55) 사연까지 더해진다. 박헌영은 ‘조선의 레닌’으로 불렸던,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은 비운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남쪽에서는 남로당을 이끌고 월북한 공산주의 수괴로 낙인 찍혔고, 북쪽에서는 ‘종파주의자’ ‘미제 간첩’ 등의 혐의로 내몰리다가 끝내 처형당했다.

자야와 백석, 그리고 법정, 여기에 박헌영까지 얹고 나선 이는 다름아닌 박헌영의 남한 내 유일한 혈육인 원경(70) 스님이다.

경기 평택 만기사 주지인 원경 스님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요약하면 이렇다.

▲ ② 현재 길상사 땅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소유권이 1955년 ‘조용구’의 집안 사람인 ‘조봉희’(왼쪽 점선 원)에서 ‘김영한’(기명 자야·오른쪽 점선 원)에게 넘어간 것으로 돼 있다.

●백석 흠모한 자야 모종의 거래

요정 대원각은 원래 박헌영의 비자금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모 인사가 항일독립운동에 써달라며 박헌영에게 거액을 기부했고, 박은 이 돈으로 대원각을 지었다. 자야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원각을 되돌려주겠다고 원경 스님에게 누차 약속했다.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하기 전인 1989년쯤에도 원경 스님에게 이 같은 뜻을 두어 차례 밝혔다.

스님은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주변 지인들에게 “대원각을 돌려받으면 사찰을 세워 한국전쟁 때 희생당한 혼령들을 달래고, 한 쪽에는 시민학교를 세우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야는 1997년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덜컥 시주해버렸다. 한사코 거절하던 법정 스님은 결국 시주를 받아들이면서 일정액, 정확히는 50억원을 떼 자야가 평생 흠모한 백석의 기념사업에 내놓기로 했다.

원경 스님이 더러 사석에서 대원각이 자신의 아버지(박헌영) 소유라는 말은 종종 했지만 “(박헌영) 비자금으로 지어졌다.”며 구체적 내용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과연 원경 스님의 ‘충격 증언’은 사실일까. 비자금의 특성상 기록이 남아 있을 리 없지만 일단 추적해보기로 했다. 첫 힌트는 1915년 박헌영의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 입학 학적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박헌영의 신원보증인으로 ‘조용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양반’이며 ‘관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용구는 가난하고 집안도 변변치 않은 충남 예산 시골 출신 박헌영이 경성고보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후 내내 정치적 후원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전쟁 뒤 몰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 힌트는 길상사 등기부 등본이었다. 등기부에 따르면 자야가 길상사 땅을 취득하기 전 소유주는 ‘조봉희’라는 사람이었다. 원경 스님은 “조봉희가 바로 (박헌영의 후원자였던) 조용구 집안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자야가 대원각 땅을 취득한 시기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으로 몹시 혼란스러울 때였다. 당시 그녀는 정계 실력자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이 모든 정황을 감안하면 박헌영이 자기 사람(조봉희)을 가짜 명의로 내세워 대원각을 지은 뒤 자야를 비자금 세탁창구로 이용했다는 원경 스님의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법정스님 입적후 미궁속으로

하지만 진실의 한 끝자락을 쥐고 있을지 모를 법정 스님이 지난 5월 입적하면서 대원각 미스터리는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자의반타의반 어린 시절 출가(出家)한 원경 스님은 “그 땅(대원각)을 운용하지 못한 것도 인연이자 업보”라면서 “나의 작은 그릇에 담기 어려운 큰 내용이 오려고 하자 인연이 일부러 뒤틀린 것 같다.”고 무심하게 말했다. 어찌됐든 대원각을 둘러싼 그간의 미담과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에 개운치않은 뒷맛이 남게 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앨튼 존에게 ‘소나무’를 팔다



[한겨레] 배병우(58)는 세계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한국의 사진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 주제는 소나무, 바위, 오름, 바다지만, ‘소나무 사진가’로 가장 이름이 높다. 가수 엘튼 존이 그의 작품을 사면서 화제에 올랐고, 지금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미술품 경매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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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척 보면 출신지역을 알아

그가 찍은 소나무는 수묵화 같다. 소나무 핀 솔숲은 안개에 머문다. 그리고 햇빛은 안개를 찌르고 들어오고, 배경은 뿌옇게 사라진다. 곧이어 프레임은 흑백의 세계로 전화된다. 이제 안개와 빛은 화선지가 됐고, 소나무는 주인공이 됐다. 배병우의 사진을 보는 사람은 소나무의 곡선과 질감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파주 헤이리 작업실에서 만난 배병우는 갑자기 겸재 정선의 화첩을 꺼냈다.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보세요. 100그루 가운데 99그루가 소나무에요.”


예부터 한국에서 소나무는 관솔불로 어둠을 밝힌 서민 생활의 도구이자, 절개를 중시하는 사대부의 예술적 소재였다. 심지어 조정은 소나무에 벼슬을 내리기도 하지 않았나. 배병우 또한 소나무를 한국적 특성을 잘 살리는 오브제로 생각한다. 그가 얻은 세계적 명성도 이에 힘입은 바 크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군집한 소나무는 프레임의 상하를 수직으로 가로지른다. 대나무의 수직 프레임과도 같지만, 아래위를 구불구불 잇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건 흡사 몰려든 군중 같다. 비틀거리는 사람, 비틀거리는 사람을 부축하는 사람, 싸우러 가는 사람, 늙은 어미를 돌보는 사람. 그러함에도 소나무의 곡선은 한없이 강인해 보인다. 아마도 곡선이 직선보다 강하다면 불규칙한 소나무의 곡선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소나무는 그 나라, 그 지역 사람을 닮았죠.”

배병우는 이렇게 말을 받았다. 한국 사람과 유럽 사람이 다르듯 한국 소나무와 유럽 소나무가 다르다. 뭍사람과 바닷사람이 다르듯 금강송과 해송이 다르다. 바닷가 소나무는 까맣고 거칠고 뒤틀렸다. 내륙의 소나무는 곧고 밝다. 같은 내륙의 소나무라도 해의 위치·토양·지형에 따라 생김새가 다르다.

그는 1980년대부터 전국의 솔숲을 샅샅이 뒤졌고, 84년부터 소나무를 작업 소재로 선택했다. 그래서 그는 안면도 송림과 울진 소강리, 경주 남산의 소나무 한 그루만 봐도 한눈에 출신지를 구분할 수 있다. 가로세로 비율인 1대2인 린호프 카메라를 들고 그가 최종적으로 매달린 건 경주 남산의 소나무다. 그는 “남산의 소나무는 왕의 영혼이 하늘에 올라가도록 도와주고, 더 이상 왕이 세상 일에 관심 갖지 않도록 막아준다”고 말한다.

배병우는 스페인 문화재국의 의뢰로 계절마다 한 번씩 2주 가량 안달루시아 알람브라 궁전에서 머물며 작업한다. 내년 봄 쯤 작업을 마칠 예정이다. 스페인이 낯선 동양 사진가에게 알람브라를 내준 이유는 정원 한가운데 소나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그가 속삭였다. “알람브라 뒤편 언덕길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솔숲이 나와요”


조선 산수화에서 세계적 보편성 획득

그가 찍은 모노톤의 소나무들을 바라봤다. 알람브라의 소나무는 직선으로 뻗었다. 유럽의 귀족이 나오는 흑백영화에 나오는 숲속 같았다. 경주 남산의 소나무를 둘러싼 안개를 보며 신라의 왕이 생각났다면, 알람브라의 소나무들은 서양의 영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달랐지만 같았다. 배병우는 “알람브라 작업이 끝나면 2년째 작업하는 창덕궁 소나무와 함께 ‘궁전의 소나무’를 주제로 기획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평론가 김승곤은 배병우의 사진은 “조선 산수화를 재현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오히려 배병우는 조선 산수화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적 산수화에서 착상한 배병우의 사진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긴 어렵진 않을 것이다. 아니, 이미 보편의 경지에 올랐는지 모른다. 크리스티, 소더비에서 이미 고가에 팔리지 않는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작품사진 배병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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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에서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게 마련이다."

- 괴테 Johann Wolfgang Goethe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