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식심사 후 직원들과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11월 한 달 간 '구서재'라는 특별 전시코너에 내 책과
내가 추천한 10권의 책이 전시된다고 해서....

먁상 내 사진과 책이 전시된 걸 보니 좀 쑥스러웠다.

거기다 함께 간 회사직원들이 사진을 집중적으로 찍고 있으니,

담당 직원이 와서 혹시 어떤 매체에서 오셨냐고 묻는 바람에....^^

출간된 책은 부모곁을 떠난 자식같아서,

일단 글쓴이의 손을 떠나 세상에 나오면 스스로의 운명에 놓이게된다.

12년 전에 처음 출간됐던 이 책이 아직 잘 살아있다는 게 기쁘고 대견하다.

매달 <구서재> 코너에는 특정 주제를 정해 10명의 저자를 선정하고

그들의 저서와 추천한 책들이 함께 전시된다.

2010년 11월의 주제는

젊은 예술가의 머릿속을 훔쳐보다

 

내가 추천한 책과 음악은,

추천도서

간단한 선정의 메시지

1

<인간의 굴레> 서머셋 모옴

인간은 꿈을 쫓아 모험을 선택하고 싶어하지만, 어쩌면 가장 평범한 삶이 곧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2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김화영 옮김

걷기, 여행, 사색, 삶 그리고 철학의 아름다운 조화

3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행복한 순간은 짧게 그리고 불행한 시간은 길게 느껴지는 이유..몰입의 정의와 적극적인 행복 찾기

4

<유희 [由熙]> 이양지

문화와 문화 사이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섬세한 묘사

5

<기적의 사과>

이시카와 다쿠지

“사과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만든다”는 자명한 진리의 실천 그리고 감동

6

<과학혁명의 구조> 토마스 쿤

인간에 의해 발전하는 지식의 한계를 일깨워주는 패러다임이론

7

<나를 돌려다오>

이용휴, 이가환 산문선

'상우천고(尙友千古)' 250 여 년 전으로 돌아가 친구를 만나듯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문장들

8

<마크 트웨인의 19세기 세계일주>

마크 트웨인

미국 문학의 아버지가 전하는 문학과 유머와 여행의 멋진 만남

9

<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

짐 로저스

현실 속에서 돈과 이상과 자유의 균형을 실천해가는 어드벤처

10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먼 북소리가 나는 곳으로 떠나게 한다

11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의문, 이성과 본성 사이의 대조

12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마르타 아르헤리치

러시아의 낭만주의와 아르헨티나의 정열을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작품

13

<Very Best of Supertramp Vol. 1, 2>

슈퍼트램프(Supertramp)

나의 사춘기적 반항 그리고 자유를 향한 갈증을 상기시켜주는 영원한 베스트 곡들

14

부나에 비스타 소셜 클럽 OST

1999년 떠났던 4주간의 쿠바여행 그 기억과 향수

15

서편제 OST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한국적인, 어쩌면 가장 동양적인 영화 그리고 음악

진돗개, LA 경찰견 조련 받는다<연합>
  •  
    한국의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돗개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경찰견이 될 길이 열렸다.

    로스앤젤레스경찰국(LAPD)은 20일(현지시간) LA 한인타운 올림픽경찰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돗개가 경찰견으로 적합한지를 평가하기 위해 경찰견 전문가 2명을 이달 25일 한국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경찰견 전문가들은 진도군을 방문해 진돗개 20∼30마리를 살펴본 후 경찰견으로 성장할 수 있는 3개월 미만의 진돗개 4마리를 미국으로 데려올 계획이다.

    이 진돗개들은 LAPD와 글렌데일경찰에 각 2마리씩 분배되며, 1년 뒤부터 경찰견 조련을 받는다.

    존 인콘트로 LAPD 메트로폴리탄 디비즌 책임자는 "우리는 최고의 경찰견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천연기념물인 진돗개를 훈련하고 경찰견으로 이용할 기회가 가지게 돼 아주 영광"이라고 말했다.

    진돗개명견화사업단(이하 사업단)과 진도군 관계자들은 지난 4월 LA를 방문해 LAPD와 글렌데일경찰국 등 경찰 관계자들을 만나 진돗개의 우수성을 설명한 후 경찰견 선정을 위해 지속적인 교류를 해왔다.

    사업단 관계자는 "LAPD와 글렌데일 경찰이 진돗개에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문에 이번 한국 방문에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미국의 경찰견으로 최종 선정되면 진돗개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돗개명견화사업단은 지난 2008년부터 지식경제부로부터 지역연고 육성산업 사업단으로 선정돼 체계적인 혈통관리, 전문인력 양성, 판로 확대를 위한 홍보, 진돗개 활용 방법 개발 등에 주력하고 있다.

광우병, 천안함, 그리고 타블로

진실에 귀 막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이버 세상… 그 괴담이 혼란을 불렀다
1년 가까운 논란 끝에… 경찰, 타블로 '스탠퍼드大 졸업' 확인
일부 네티즌들 아직도 "경찰 발표 믿을 수 없다"
익명성의 가면 뒤에 숨어 무책임하게 벌떼 공격… 표현자유 뒤 책임 따라야"자기들이 믿는 것만 맞고 나머지는 잘못이라며 증거가 나와도 '조작', 증인이 나와도 '매수'라고 몰아가는 자기 최면에 걸린 집단으로 보이네요."

인터넷 카페 '왓진요'에 8일 한 네티즌이 띄운 글이다. '왓진요'는 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한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카페 운영자 '왓비컴즈'(whatbecomes)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카페다. 이 네티즌은 "그들은 악플러, 일명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로 인터넷상에선 자기네들이 신(神)으로 알고 익명성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며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좋다지만 자유에는 분명히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했다.


8일 경찰 발표로 스탠퍼드대 졸업 사실이 확인된 가수 타블로(본명 이선웅)가 2년 전 4월 앨범발매 쇼케이스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타블로가 미 스탠퍼드대 출신임이 밝혀졌다는 경찰 수사 결과 발표로 학력 위조 논란이 일단락됐음에도 사이버 공간의 일부 네티즌은 여전히 '경찰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맞섰다. '타진요' 카페에는 이날도 '차분하고도 장기적으로 싸워나갑시다!' 같은 댓글이 올랐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이버 공간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검증되지 않은 자료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포장돼 인터넷 카페와 댓글에 오르고 일부 언론이 이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네티즌들은 의혹을 제기하는 댓글과 기사에 열광하고 그 내용을 실시간으로 퍼 나르며 '불신(不信)의 탑'을 쌓았다. 19만여명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 '타진요'와 '상진세'(상식이 진리인 세상) 등이 논란을 증폭시켰다.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신경정신과)는 "타진요 회원들은 비록 허구를 주장했지만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며 "타블로가 스탠퍼드대를 다니지 않았다는 믿음이 이들에겐 스스로를 존재하게 만든 한 이유가 됐다"고 분석했다. 하 교수는 "이들은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이버 공간의 명예훼손 사건은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따르면 2006년 4006건에서 2008년 5005건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지난 8월 현재 3712건이 발생했다. 일선 경찰들은 "남의 명예를 훼손하고도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옮긴 것이 무슨 큰 죄인가'라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거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며 발뺌하는 네티즌이 대부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익명성의 가면(假面)'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얼굴을 맞대지 않기 때문에 책임감이나 죄의식 없이 남을 비방하고 모욕을 준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향력만 과시하기 위해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하는 더 자극적인 글만 올리는 악플러들이 많은 실정이다.

지난 2008년 "화장품·생리대·우유·치즈 등을 통해서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광우병 괴담'(怪談)이 확산했고, 올해 들어서는 천안함 폭침(爆沈)사건에 대한 음모설이 인터넷 공간을 무대로 날개돋친 듯 퍼졌다. 그 배경에도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을 악용하는 일부 악성 네티즌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걸고 글을 쓰게 하는 인터넷 실명제와 '선플(아름답고 긍정적인 댓글) 달기'운동을 확산시켜 사이버 공간을 깨끗이 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섭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장은 "벌떼처럼 달려드는 네티즌들이 허위 사실을 퍼뜨려 단 5분 만에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시킬 수 있다"면서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된 '반(反)의사 불벌죄'인 만큼 작은 피해도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헌영 광운대 교수(법학)는 "미국에서는 명예훼손 사건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확립돼 수억원에서 수십억원대의 거액 배상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면서 "우리나라도 도입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타블로 학력의혹, 문제는 인터넷이 아니라 한국사회
보수언론 인터넷 비난 논리와 닮은 'MBC 스페셜' … 검찰-언론도 못 믿는 세상 누가 만들었나
2010년 10월 09일 (토) 05:00:16 임수정 기자

“네티즌이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권력이 하는 나쁜 짓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왓비컴즈의 언행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비슷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닌데 그 안에서는 탄탄한 논리인 것이다. 믿고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교주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8일 방송된  < MBC 스페셜 >의 ‘타블로와 대한민국의 온라인’은 지난주 타블로의 학력 검증에 이어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이하 타진요)의 행동과 그 의미를 분석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타진요’와 운영자 왓비컴즈의 비상식적 행태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인터넷 문화의 역기능만을 부각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타진요'는 교주 왓비컴즈 맹신 집단?

전문가들은 ‘‘타진요’’에 행태에 대해 “믿고싶은 것만 믿는다”며 “왜곡된 정의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이 마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신념이 있다. 인터넷 게시판 마녀사냥도 정의를 위한 것으로 인식한다. 정의라는 미명하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라고 분석했다. 또 ‘타진요’ 운영자 ‘왓비컴즈’를 사이비 교주에 비교하며 ‘타진요’를 사이비 교주를 추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서울신문도 9일자 사설 <‘타블로 파동’ 익명음해 책임 확실히 물어라 >을 통해 “익명의 누리꾼들이 퍼뜨리는 불신과 증오의 바이러스가 무섭게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인터넷 댓글 폭력의 희생자는 타블로뿐이 아니다. 최진실씨 등 많은 연예인들이 악의적인 인터넷 댓글 때문에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며 타블로 학력의혹이 인터넷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 8일 방영된 'MBC 스페셜' - 타블로와 대한민국의 온라인 ⓒMBC  
 
하지만 의혹을 제기한 모든 누리꾼이 ‘왓비컴즈의 허황된 주장에 선동당했다’ 라는 분석은 위험하다. 타블로의 학력의혹이 한국의 인터넷 문화 때문이며 ‘괴담에 선동당한 누리꾼’이라는 정형화된 공식은 미 쇠고기 광우병 파동때 촛불시위에 참여한 국민을 ‘선동당했다’고 표현했던 보수언론과 정부의 의견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보수언론은 인터넷 문화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며 실명제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정부도 맞받아 인터넷이 저질 선동의 장이 되고 있다며 강력한 규제를 추진했으며 그 결과로 방문자 10만명 이상의 사이트에는 회원 가입후 댓글을 달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한 누리꾼은 이번 학력의혹이 인터넷 문화의 잘못된 부분을 표출했다하더라도 그것이 누리꾼 전체의 문제로 호도되어서는 안된다며 “‘타진요’ 가입한 사람 모두가 왓비를 교주로 모시는 광신도 인가? 재갈을 물리려고 하지마라. 의혹이 사실이 된 예가 많았던 것을 잊었나. MBC PD 수첩에서 황우석 줄기세포 편 방영했을 때를 생각해 봐라”라는 의견을 남겼다.

또 다른 누리꾼도 “MBC는 주관적 시점으로 다수의 네티즌을 우매하고 악랄한 광신도로 만들어 버렸다” 고 비판했다.

다른 누리꾼은 이 사태를 기존언론과 인터넷 권력간의 세력 다툼이라 진단하기도 했다. “기존언론은 인터넷이 자기들 자리를 위협하는 게 불안한 것이다. 연예인 자살도 악플러 탓, 누리꾼의 입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고 의견을 피력했다.

   
  ▲ 8일 방영된 'MBC 스페셜' - 타블로와 대한민국의 온라인 ⓒMBC  
 
'인터넷 1인미디어' 블로터닷넷의 필명 ‘비전 디자이너’는 지난 3일 ‘타블로와 인터넷, 모두를 구하라’는 글을 통해 “인터넷은 하나의 고정된 성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인터넷에 ‘어떠한 성격’의 참여가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그 발전의 ‘성격’도 바뀐다”며 문제는 ‘인터넷’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한 ‘한국 사회’라는 의견을 피력했다.또 “이번 논란이 사람들이 좀더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트위터’에서 벌어졌다면 사건이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내비쳤다.

송경재 경희대 교수도 10월 6일 PD저널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악용하는 행위가 나쁜 것이다.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인터넷이 모든 책임이 있고,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네티즌이 다 문제라는 식의 접근법은 잘못되었다. 오히려 사회현상에 관한 구조적이고 맥락적인 접근과 해석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 없이 인터넷에만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인터넷의 구조와 동학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다”라며 “섣부른 인터넷 책임론을 경계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타블로 학력의혹이 정말 가리키는 것

배우 김태희를 가장 많이 수식하는 단어는 바로 ‘서울대 출신’ 이라는 단어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 뿐 아니라 지성까지 갖춘 보기 드문 연예인으로 평가받으며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타블로도 ‘스탠포드 출신의 엄친아’라는 꼬리표가 처음부터 따라다녔다. 

혹자는 ‘타블로가 음악으로 인정받았을 뿐 음악이 좋지 않았다면 스탠포드대 학력이 무슨 소용이었겠느냐고 말한다. 또 유수의 좋은 학력을 가진 음악인도 음악이 좋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타블로는 데뷔 때부터 학력을 홍보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는 언제나 ‘스탠포드를 3년 반만에 조기 졸업한 엄친아’로 언론에 홍보되었다.

   
  ▲ 8일 방영된 'MBC 스페셜' - 타블로와 대한민국의 온라인 ⓒMBC  
 
사실 이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방송이나 언론이 그를 ‘장사가 될 만하게’ 가장 좋은 포장지로 포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타블로와 기획사의 의도이건 언론과 방송사의 의도이건 간에 가장 큰 수혜자는 타블로 본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고질적인 학력 프리미엄의 병폐를 말한다.

‘타진요’에서 한동안 중앙일보 2008년 12월 20일자 기사 <조우석 칼럼- 책에게 길을 묻다 타블로의 아쉬운 ‘문학 외출’>이라는 글이 화제가 되었다. “힙합가수 타블로(28)가 펴낸 단편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을 읽으며 마음이 무거웠다” 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글은 “악문(惡文) 모음집 아니야?”싶은 수준의 문장은 차라리 모래를 씹는 맛이다. 스토리도 그랬다. 종합해 판단하자면 작품 이전이요, 습작 수준이 분명하다“ 라고 출간된 해 베스트셀러에도 오른 타블로의 소설집이 수준미달이라는 내용으로 조목조목 비판을 이어간다.

   
  ▲ 중앙일보 2008년 12월 20일자 21면.  
 
“그의 팬들은 좔좔 꿰겠지만, 타블로는 명문 스탠포드대 출신이다. 최우수 성적으로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석사학위도 받았다. “학벌로 치자면 가요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말도 나돈다... 어쨌거나 좋다. 그림도 그리는 가수라서 자칭타칭 화수(畵手)도 있는 판이 아니던가. 왜 문수(文手·문인가수)가 나오지 못하겠는가? 타블로가 그 주인공이 못 될 것도 없다. 단, 지금의 역량 가지고는 안 된다.“ 고 맺음되는 이 칼럼은 ‘타진요’에서 여러번 인용되었다. 회원들은 이 글을 타블로가 명문 스탠포드를 나올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또 출입국 기록을 요구하는 저변에는 ‘3년 반만에 명문 스탠포드의 학석사를 같이 마칠 수 없다’ ‘힙합도 하면서 명문 스탠포드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없다’ 라는 식의 ‘스탠포드 신화’가 깔려있다.

“이런 명문 스탠포드를 당신이 나왔을 리 없다. 당신은 스탠포드의 프리미엄으로 많은 것을 누렸다. 그것은 공익에 반하므로 파헤쳐 정의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공식이 밑바닥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후천적 이중국적은 성립될 수 없다?

< MBC 스페셜 >은 그간 논란이 되어왔던 타블로의 이중국적 보유 여부에 대해 법무부에 찾아가 대답을 구했다. 이미 법무부는 지난 9월 계속되는 누리꾼의 타블로 이중국적 의혹에 대한 질문에 “타블로는 92년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함과 동시에 한국국적이 없어져 이중국적이 성립되지 않는다. 또 타국 국적 취득을 바로 신고하지 않더라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방송에서도 같은 내용이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후천적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국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국적법 15조를 개정해 타블로 같은 후천적 시민권 취득자에게 이중국적 자격을 주어 병역 등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 8일 방영된 'MBC 스페셜' - 타블로와 대한민국의 온라인 ⓒMBC  
 
누리꾼들도 “법에 맹점이 있다”며 “있는 사람들이 누릴것만 누리고 의무 등은 피하기 위해 이중국적을 이용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이중국적이 성립이 안된다는 것은 기실 말장난”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타블로의 학력 의혹 저변에는 이중국적과 병역 이행 유무에 대한 반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타진요’에서는 타블로가 출입국관리 기록을 내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중국적을 위법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날까봐 공개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많은 동의를 얻기도 했다. 학력의혹을 전하는 기사에 단골로 달렸던 댓글은 ‘군대도 안가는 캐나다인’이라는 맹목적인 비난이었다.

8일자 < MBC 스페셜 > 에서도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타블로는 고학력자이면서도 대중문화에서 성공했고 우리나라 사람인 것 같지만 또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다"면서 "2007년 한차례 유명인의 허위학력문제가 논란이 된 후 타블로의 학력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특권층 비리로 여겨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타블로 집안이 사회 지도층, 부유층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며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권위주의에 대한 불신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하지 않았을까"하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검찰도 언론도 믿지 못하는 세상, 누가 만들었나?

‘타진요’는 8일 경찰이 발표한 타블로의 스탠포드 졸업확인에 대해 ‘공권력을 믿을 수 없다’며 부정적인 분위기다. 또 타블로의 학력 의혹등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는 ‘상식이 진리인 세상’(이하 상진세)도 한국의 검찰은 믿을 수 없으니 미국 FBI와 사설 탐정에 사건을 의뢰하자는 다소 황당한 의견의 다수 회원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이는 공권력의 권위가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삼성 장학생 검사’의 존재로 생긴 불신의 벽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올 4월 < PD수첩 >을 통해 폭로된 ‘스폰서 검사’는  국민들의 마음을 차갑게 얼게 했다. 또 지난 9월엔 국민 32%만  정부의 천안함 보고서를 믿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타진요’는 ‘광신도 집단’이 아닌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집약해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지난 4월 방영된 MBC 'PD수첩'-'스폰서 홍두식(가명), 지난 25년을 폭로하다' 화면.ⓒMBC  
 
또한 타블로 학력의혹은 언론의 기능을 의심케 했다. 언론은 ‘타진요’가 주장하는 의혹의 실체에 접근하려하기보다는 그대로 받아써 논란을 키우고 한편으론 타블로의 해명만 부각시켰다. 언론이 처음부터 ‘타진요’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그것이 왜 성립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주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의혹이 제기되면 그 의혹을 풀려고 노력하는 쪽은 언론이 아닌 다른 까페였다. 언론은 그 사이에서 그들의 공방을 받아쓰기 하는 쪽에 집중했다. 한 누리꾼은 “MBC 스페셜은 왜 언론에 대한 얘기는 쏙 뺐는지 궁금하다”며 “이미 확인이 된 타블로의 학력의혹을 계속 걸고넘어지는 ‘타진요’의 행태를 그대로 받아써 의혹을 키운 것이 일부 언론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다수 언론은 < MBC 스페셜 > 과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로 타블로의 학력의혹은 종지부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또 ‘타진요’의 운영자 ‘왓비컴즈’와 타블로가 기소한 19명의 누리꾼도 법의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이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하기는 어렵다. 타블로 학력의혹 사태에 대해 단순한 ‘광신도 집단의 소동’이라고 하기엔 그것이 가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그늘이 너무도 확연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역할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타블로 학력의혹에 관한 일련의 사태를 ‘악플러와 희생자' 라는 전형적인 구도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짚어주고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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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감미료 없이 천연의 단맛이 '상큼'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로 만든 스프
도쿄 유기농 식당'기적의 사과'라는 책은 퇴비조차 쓰지 않고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기무라씨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사과밭에 농약을 칠 때마다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보고 무농약, 무비료 재배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8년여간 시행착오 끝에 무비료 사과재배에 성공했다. 이 책에서 소개한 '기적의 썩지 않는 사과'로 만든 수프를 간판메뉴로 내오는 레스토랑이 있다. 도쿄에 있는 '쉐 이구치(che ziguchi)'인데 반년 후까지 예약이 다 찼을 정도로 인기다. 호텔 셰프였던 이구치씨는 자신이 원하는 재료로 요리할 수 없을 때가 많아 11년 전에 따로 레스토랑을 차렸다. 그는 식재료가 요리의 90%를 차지한다고 여기는 전국의 생산지를 찾아가 최고의 식자재를 구해온다. 기무라씨 사과도 그렇게 구했는데 반으로 쪼개 냉장고 위에 놓은 뒤 2년 동안 까맣게 잊었다. 우연히 발견한 그 사과는 썩지 않고 쪼글한 상태로 남아 있어 이구치씨를 놀라게 했다. 이것을 계기로 이구치씨는 '기적의 사과' 스프를 고정메뉴로 만들었다. 이구치 레스토랑은 점심과 저녁 각각 1팀만을 위해 요리하기 때문에 예약이 어렵다. 이구치씨 혼자서 음식을 만들고 아내는 서빙을 맡고 있다. 테이블도 한 개뿐이고 최대 10명이 앉을 수 있다. 이구치씨가 틈나는 대로 일본 전역을 샅샅이 훑으며 구한 농산물은 레스토랑 한쪽에서 전시·판매한다. 레스토랑 메뉴는 간단하다. 점심 7000엔과 10000엔 메뉴, 저녁 2만엔 메뉴가 전부다.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들을 사용해 그날의 메뉴를 직접 짠다. '기적의 사과 스프'는 사과를 껍질째 갈아 생크림과 유기농 시나몬, 사과 브랜디를 조금 넣어 만든다고 한다. 감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데 그 단맛이 놀라웠다. 자연 그대로의 단맛이 오히려 입안을 상큼하게 정리해주는 느낌이다.


일본 도쿄에 새로 문을 연 식당‘내추럴 하모닉’. 이곳에선 자연 농법으로 키운 야채로 만든 음 식을 판다.

도쿄 근교에 새로 문을 연 '레이크 사이드' 쇼핑몰에 입점한 '내추럴 하모닉'도 자연 농법으로 키운 야채로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이곳은 자연재배 농산물처럼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식품·식재료를 전문으로 다루는 유통회사로 소매점·레스토랑 납품과 함께 레스토랑도 직영하고 있다.

샐러드와 전채요리는 뷔페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입구에 마련된 샐러드바만 이용해도 되고, 메인 요리를 따로 주문해도 된다. 음료나 맥주, 사케 와인도 모두 자연 발효된 효모로 만든다. 샐러드바엔 원재료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붙어 있다. '자연재배인가?' '농약을 사용했는가?' '어떤 비료를 사용했는가?', '어떤 씨앗으로 재배된 채소인가?' 등에 대한 답이다. 옛날 방식대로 만들어진 간장과 식초를 쓰고 기름이나 조미료도 엄선한 것만 사용한다. 소금, 식초, 미소된장, 간장 등을 하나하나 직접 보여주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장면도 색다른 볼거리이다.

대개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는 가쓰오부시를 기본으로 만드는데 이곳에선 다시마로 우려낸 국물로 미소시루를 만든다. 자연 발효된 미소는 그동안 맛봤던 일본의 미소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된장에 더 가까웠다. 볏짚에서 자연숙성시킨 낫토도 향과 맛이 청국장과 가까웠다.

자연식이라 하면 왠지 야채만으로 소박하다 못해 까칠하게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술도 있고, 맛도 있고, 디자인도 세련돼 누구라도 가보고 싶은 레스토랑이다.

[김대중 칼럼]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 누구 눈치 보나

  •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이젠 나라 됨됨이 챙겨야 할 때
이승만 기념관 하나 없는 건 수치 좌파 눈치가 그렇게 두렵나

가난해서 삶이 어려웠던 집(家)이라도 여유가 생기고 먹고살 만한 정도가 되면 자신의 집안과 주위를 살펴 빚을 갚고 사람살이의 앞가림을 하게 되는 것이 세상사의 순리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어려웠을 때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이라도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성숙한 국민과 건강한 나라가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그것은 곧 대한민국 탄생의 '족보'를 정리하는 일이다. 오늘을 있게 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 그들의 기여와 희생에 대한 보훈의 뜻을 잊지 않는 것―그것이 곧 민족 됨됨이를 가늠하는 척도다. 6·25전쟁 60주년인 올해, 우리는 정말 어른스러운 일들을 했다.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준 자유세계인들의 노고와 희생을 잊지 않고 그들을 찾아가거나 모셔오고 또 추모하는 훌륭한 행사들을 치러냈다.

우리 내부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기운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공동체적 의식을 발전시켜 통일의 시대, 동북아시대를 열어가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도 '친서민'과 '공정한 사회'를 얘기하고 평등과 자유를 거론하는 등 '잘사는 나라' '체통 있는 나라'의 풍모를 한껏 풍기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나라 됨됨이 또는 나라다움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곧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지켜나가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건국의 역사, 건국의 인물들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을 통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에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은 나라의 수치다. 상징물로 보면 우리나라에 '조선'은 있어도 '대한민국'은 없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세종로를 지키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은 이 땅의 지난 500년 역사가 무의미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째서 우리는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 하나 못 만들고 있는 것일까? 우파는 이승만이 4·19를 촉발한 독재정치인이었기에 건국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말하고 있고, 좌파는 그가 분단의 주도자였고 그래서 통일을 저해한 사람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승만은 대한민국 헌법을 만들어 냈고 정부를 세웠으며 6·25를 이겨냈고 우리를 미국을 매개로 세계로 나아가게 만든 지도자였다. 그것은 이 민족을 살린 성공의 역사였다. 그가 없었으면 이 땅은 일찌감치 '공산국가'가 됐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지금도 땅을 치고 원통해하며 이승만을 배척하는 이유다.

이승만이 잘못한 것들, 또 좌파가 주장하는 '단독정부 수립'의 문제들은 기념관을 먼저 만들고 나서 그곳에 기록하면 된다. 기념관이라고 해서 누구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처럼 좋은 것만 전시할 수는 없다. 그것이 기념관의 객관성이다. 백범 김구의 기념관은 건평 3000평에 총사업비 180억원으로 2002년에 건립됐음에도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기념관이 없다는 것은 그 어떤 '정치적 궤변'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퇴임했거나 별세한 전직 대통령도 서너 분이 벌써 그럴듯한 기념관을 갖고 있는데 왜 이승만만 없을까. '건국'이 아니라 4·19가 문제라면 그보다 더한 문제를 야기한 전직들도 있는데 왜 그에게만 유독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인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은커녕 기념관조차 없는 것이 그가 보수·우파의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이라면 그럼 지금 이 나라는 무슨 나라인가?

작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 예산은 이승만 기념사업에 겨우 30억원을 배정하고 있다. 그나마도 민간단체인 기념사업회가 매칭펀드로 같은 금액을 모아야 집행할 수 있는데, 유족과 영향력 있는 추종 정치인들이 전혀 없는 이 박사의 경우 "모금액이 너무 미미해 밝히기가 부끄럽다"는 것이 사업회측 설명이다. 관련 부처인 행안부와 보훈청도 "아무 계획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고, 좌파가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국회와 건국의 역사에 무기력한 청와대가 발상을 바꾸지 않는 한, 이 땅은 장기간 '정치적 족보 없는'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 특히 대한민국 역사의 주역들인 이승만·박정희의 호칭에는 인색하면서 이미 '역사'가 된 지 오래인 북한의 김일성에게는 깍듯이 '주석'을 붙이고 김정일은 예외 없이 '위원장'으로 부르는 일부 언론에 익숙해 있는 풍토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사회에 기부가 많은 것은 환영할 일이다. 대기업들이 사회의 그늘진 곳에 유의하는 자세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족보를 바로 세우고 대한민국의 문패를 바로 달기 위해서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부터 우선적으로 세우는 일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승만 기념관 세우는 일에 결단을 내릴 수 없다면 어디 재벌 하나쯤 나설만도 한데 모두 좌파들 눈치가 그토록 두려운가? 정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이 직접 나설 때가 됐다.

8년간 대장암 12번 재발 … 이희대 교수의 ‘암 다스리는 법’ [중앙일보]

 

“희망이 최고의 약 … 나쁜 생활습관은 딱 끊어야해요”관련핫이슈

“암 전문의인데 설마 내가 암에 걸릴까 하는 교만한 생각을 했었죠.” 이희대(58) 강남세브란스병원 유방암센터장은 잘나가는 유방암 수술 명의였다. 하지만 2003년 1년부터 암 환자가 됐다. 혈변을 보고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더니 대장암 2기였다.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사 등 위험인자가 많았지만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대장의 절반을 들어냈지만 암은 간과 골반까지 번져 4기 판정을 받았다.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고 유서도 썼다. 현재 이 교수는 그를 찾는 유방암 환자를 수술할 정도로 건재하다. 적극적인 치료와 함께 생활습관을 개선해 암을 잘 관리한 결과다. 그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자신에 맞는 식·생활방식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암을 잘 다스리고 있는 이 교수의 노하우에 마법 같은 묘약은 없다. 암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열쇠였다.

제철 채소·과일, 현미 잡곡밥 즐겨

4기 대장암을 다스리고 있는 이희대 센터장은 “암을 예방하고 이겨내기 위해선 조기검진·병원치료·식생활습관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대장항문학회 제공]

이 교수의 주식은 현미에 흑미·보리·조 등을 섞은 잡곡밥이다. 반찬은 채소를 많이 챙긴다. 여름엔 상추·호박잎·치커리·근대 등에 된장을 올린 쌈밥을 즐긴다.

식탁에 올라오는 식재료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은 유기농을 고집한다. 기관지·위·소장·대장 등 소화기관, 인체에 혈액과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 등 우리 몸은 다양한 파이프로 연결돼 있다. 이 파이프들이 산화돼 막히거나 노화하면 건강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암도 발생한다.

이 교수는 “식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잔여 농약은 인체 파이프의 산화 작용을 촉진한다. 유기농 음식은 이런 산화를 줄인다”고 말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식이섬유를 보충하는 제철 과일 다섯 가지를 섭취한다. 저녁에 먹으면 칼로리가 높아져 체중조절이 힘들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량은 아침의 반으로 줄인다.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왕자처럼, 저녁은 거지처럼’이란 말이 있다.

육류 섭취는 일일 총칼로리의 20% 이하로 제한한다. 암은 고칼로리 음식을 좋아한다. 육류는 필수 영양소인 단백질 섭취에 도움이 되지만 지방도 함께 흡수해 칼로리를 높인다. 단백질은 두부·콩·생선·된장 등으로 보충한다.

암 환자는 대부분 식습관을 바꾼다. 우리 몸이 변화된 식습관에 적응하는 데 보통 두세 달이 걸린다. 하지만 이후에도 몸에 맞지 않는다면 방법을 중단하고, 주치의와 대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틈날 때마다 몸을 움직여라

이 교수는 보조용구가 없으면 걸을 수 없다. 대장암이 골반으로 전이돼 골반 뼈 일부를 떼 냈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땐 목발이나 지팡이에 의존한다. 먼 거리는 휠체어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틈만 나면 몸을 움직인다. 이 교수의 진료실에는 1.5㎏의 아령이 있다. 컴퓨터를 할 때면 한 손에는 마우스, 다른 손은 반사적으로 아령을 든다.

“많은 암 환자가 우울하고 식욕이 떨어져 기력이 약해지니까 그냥 누워 지냅니다. 결국 입맛이 더 떨어져 악순환이 되죠. 틈날 때마다 운동해야 합니다. 체력은 물론 면역력을 높이고, 밥맛을 돌게 해 암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 교수가 암 환자에게 추천하는 운동은 걷기와 등산이다. 공기가 좋고 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넘쳐나는 산은 암 환자에겐 최상의 체력 단련장이다. 산행하면서 먹는 과일과 채소는 대장에도 좋다. 운동은 약간 땀이 날 정도로, 노래하거나 대화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운동에 따른 적당한 피로감은 숙면을 돕고 면역세포를 증가시킨다. 다리가 불편한 이 교수는 진료실을 나와 화장실에 다려오려면 20분 이상 걸린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인다.

그는 ‘게으른 사람은 겨울에 얼어 죽는다’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몸이 불편해도 꾸준히 걷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더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암은 우리 몸에 들어온 세입자일 뿐

이 교수는 ‘희망’을 강조한다. 희망은 변화된 식·생활습관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면역세포를 증가시키는 화수분이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를 생각해보세요.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치료가 잘됩니다. 절망에 빠지면 결과가 나쁩니다.” ‘가짜 약’을 치료제로 알고 복용한 환자가 질병이 좋아지는 ‘플라시보(placebo) 효과’가 좋은 예다.

암이 재발해도 희망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암의 크기는 1㎤ 이상 돼야 영상에 잡힌다. 여기에는 암세포 1억 개가 있다. 암은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이 교수는 암의 ‘전셋집 이론’을 세웠다.

몸에 암이 있는 데도 증상 없이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이 교수는 “건강한 사람도 하루에 수백 개 이상 암세포가 생기는데 이는 면역세포가 싸워 이기고 있는 것”이라며 “암 환자는 우리 몸의 일부를 암에게 전세 내줬다고 생각하고 고혈압·당뇨병처럼 관리를 잘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희망을 잃지 않은 이 교수는 2007년 암이 재발했을 때 암세포 활동이 전년에 재발했을 때 보다 50% 이상 낮았다.

이 교수는 ‘지속적인 건강 관리’를 강조했다. 그는 “많은 암 환자가 치료 후 연간 한두 차례 정기검사를 받는 것 말고는 경각심을 늦춘다”며 “암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변화된 생활습관을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운하 기자

북경대 천재가 절에 간 까닭은?

  • 연합뉴스

  류즈위

美 MIT 유학 마다하고 절에서 수행
부모는 반대..네티즌 찬.반 양론

중국의 최고명문 베이징대를 졸업한 수학천재가 美 MIT 대학원 유학을 마다하고 절에 들어가 불교 수행을 시작,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7월 베이징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전액 장학금을 받고 MIT에 유학을 갈 준비를 하던 류즈위(柳智宇).

류즈위가 갑자기 베이징 하이덴(海錠)구 펑황링(鳳凰嶺)에 있는 불교사찰 룽취안스(龍泉寺)에 들어가 불교 수행을 시작했다는 글이 최근들어 베이징대 홈페이지에 오르자 경화일보(京華日報) 기자는 직접 이 사찰로 찾아가 사실을 확인했다고 8일 보도했다.

이 사찰의 한 여신도는 류지위는 키가 크고 말랐고 말수가 적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고 그는 2년전 노교수를 따라 이 절에 처음 온뒤 혼자서 불쑥 찾아오곤 했다고 전했다.

류즈위는 절 건물 공사를 할때 참여하기도 했으나 적응을 못해 학교 기숙사에 돌아간후 3-4일을 앓기도 하는 등 절 일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셴둥(賢棟) 스님은 류지위는 현재 속인인 거사신분이기 때문에 수행을 하고 있으나 계율을 지킬 필요는 없다고 밝히고 정식으로 불문에 귀의, 승려가 될지는 수년간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류즈위는 기자와의 면담을 완곡하게 거절했고 한 승려는 잠시 그를 내버려 두라고 권고했다.

류즈위의 부모는 아들이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절에 들어간데 대해 반대하면서 사회로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류즈위가 유학을 준비하던 도중 변고가 생겼다면서 마음이 아프기 그지없고 부인도 앓아 누었다고 전했다.

그는 류즈위가 방금 학교를 졸업, 사회 경험이 없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분석하고 누구를 원망할 생각도 없고 다만 무기력할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류즈위의 한 네티즌 친구는 류즈위는 IQ가 280이 넘는 천재라고 칭하고 그를 숭배한다고 말했다.

류즈위는 16살때 명문 화둥(華東)사범학교 부속중학의 학생과학원 원장을 지냈고 2006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만점으로 금메달을 따 베이징대학 입학이 일찌감치 확정됐다.

그는 베이징대 재학기간 불교클럽인 찬쉐서(禪學社)와 독서클럽인 겅두서(耕讀社)에서 활동했고 겅두서 회장을 지내면서 불교서적 독서에 몰두했다.

류즈위는 성격이 내향적이며 온화하고 다른 사람을 돕기를 좋아했다고 기숙사 동료들이 전했다.

20대 여성 작가인 장팡저우(蔣方舟)는 천재인 류즈위는 아직 이상주의자형이라고 말하고 그의 글을 보면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극단적인 방법밖에 없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의 선택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버렸다는 비난과 명리와 지위를 벗어던진 결단으로 공리주의에 치우친 현 세상에 대한 도전으로 찬성하는 쪽이 엇갈리고 있다.

'케네디家의 비운', 미국과 인류 향한 '악마의 저주'였다

[프레시안 books] <케네디가의 형제들 : 에드워드 케네디 자서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 집안은? 루스벨트? 부시? 케네디? 2009년 브루킹스 연구소는 정치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케네디 가문을 첫 번째로 꼽았다.

케네디 가문은 대통령 1명, 상원의원 3명, 하원의원 4명, 장관 1명을 배출했다. 케네디 가문을 1위로 만든 사람들은 재선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된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법무부 장관과 상원의원 출신의 로버트 케네디, 9선 상원의원을 지낸 에드워드 케네디 등 케네디 3형제였다.

기실 케네디 형제는 미국 정치의 산 증인이다. 그중 2009년 8월 25일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케네디는 1962년 상원의원이 된 이래 47년간 미국 민주당의 진보파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가난한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중요한 법안 제정을 주도했다.

1964년 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 1990년 장애인법, 2002년 낙오아동방지법 등 중요한 개혁 법안을 추진한 그는 명연설로 '상원의 사자(lion)'라고 불리기도 했다. '검은 케네디'라고 불린 대통령 오바마는 그를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자 "미국 민주당의 혼(soul)"이라고 불렀다.

케네디와 미국 정치

▲ <케네디가의 형제들 : 에드워드 케네디 자서전>(에드워드 케네디 지음, 구계원·박우정 옮김, 현암사 펴냄). ⓒ현암사

최근 출간된 <케네디가의 형제들 : 에드워드 케네디 자서전>(구계원·박우정 옮김, 현암사 펴냄)은 에드워드 케네디가 50여 년간 모아 둔 일기와 메모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책을 쓴 시간도 길다. 2004년부터 5년 동안 버지니아 대학교 밀러센터에서 자신의 생애에 관한 구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퓰리처 상 수상자인 작가 론 파워스와 긴밀하게 협력해 이 회고록을 완성했다. 이 책은 미국 의회와 백악관 구석구석의 정치 일화를 소개하면 미국 정치의 진면목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1960년 대통령 케네디가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무장 게릴라를 피그만에 보냈다가 참담하게 실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케네디는 "제가 정부의 총책임자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참모에게 "침공 작전에 대해 국방부 사람들을 너무 믿었다"고 말했다.

그가 의기소침해지자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당시 법무부 장관)는 형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아버지에게 전화하자고 제안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영국 대사를 지낸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 잘했다, 네가 모든 책임을 졌다. 그게 국민이 지도자에게 바라는 모습이다. 내 말 명심해라. 국민은 당당하게 책임을 지는 지도자를 좋아한다. 이 일은 틀림없이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그 후 18개월 뒤 미국이 쿠바 미사일 위기에 직면하여 핵전쟁의 가능성이 커졌을 때, 케네디는 군부의 조언대로 따르지 않았다. 피그만 참사로 교훈을 얻은 케네디는 평화적 해결방안을 선택했다. 이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영화 <13일간(Thirteen Days)>에 자세하게 소개된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다

1961년 대통령 케네디는 경제 원조, 문맹 교육, 사회 계획, 민주 정부를 위한 체계를 구축하고자 '진보를 위한 동맹'이라는 10년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의 젊은이들이 개발도상국에서 봉사하는 '평화봉사단'을 창립했다. 이러한 외교 정책은 공산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힌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케네디는 베트남에 미국 군사 고문단을 보내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케네디가 1963년 암살되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통킹 만 사건(1964년) 이후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지는 미지수이다. 아마도 에드워드 케네디는 베트남 전쟁의 책임이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있다고 믿는 듯하다.

1967년부터 케네디 형제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반전운동에 뛰어들었다. 셋째인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는 의회에서 "폭격을 중단하라. 그리고 북베트남과 평화 협상을 하라"고 주장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대통령 케네디가 남긴 유산이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968년에 단호하게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공약으로 내세우고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안타깝게도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은 "위대한 나라, 이타적인 나라, 인정 많은 나라"라고 선언하고서, 총탄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케네디 형제가 죽지 않았다면…

케네디가 진정 꿈꾸던 일은 미국인의 달 착륙, 핵무기 축소, 공민권 법안의 통과였다. 형의 이상을 실현하려던 로버트 케네디는 베트남 전쟁 반대, 빈곤과 불평등의 추방,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했다.

만약 이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도, 닉슨의 당선도,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도, 건강보험법의 연기도 없었을까? 역사를 가정하기는 어렵지만, 케네디 형제가 미국 민주당과 진보파에게 커다란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로버트 케네디는 미국의 어느 정치인보다 자신의 이상을 아름다운 문구로 탁월하게 표현했다. 그는 1968년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베트남 전쟁, 도시 폭동, 인종 불평등, 빈곤을 언급하며 사회 정의와 공동선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의란 단순히 국민총생산의 규모와 분배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도덕적 목적과 관련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이 당선되었어도 미국이 유럽 복지국가처럼 한 번에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련과 대립하는 냉전도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케네디 형제의 꿈과 이상은 미국 민주당의 정책이 되어 서서히 미국 사회를 바꾸는 추동력이 되었다.

케네디 형제의 꿈은 헛된 것은 아니었다. 먼저 미국 민주당은 인종차별을 폐지하는 역사적인 공민권과 투표권 법안을 통과시켰다. 저소득층 학생을 지원하는 연방 지원 프로그램인 '헤드 스타트(Head Start)'를 실행했다. 대통령 존슨은 '빈곤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복지국가를 향한 '위대한 사회'라는 목표를 추구했다.

클린턴은 1963년 학생 시절 '보이스 네이션(Boys Nation)'의 대표로 백악관을 방문해 케네디를 만나고 나서부터 정치인이 되는 꿈을 키웠다. 그는 대학생 시절 반전 운동에 참여해 징집을 거부했으며, 베트남 전쟁 이후 최초로 베트남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1995년 베트남과 미국은 공식적으로 수교했다.

두 형이 떠난 후에도 에드워드 케네디는 우물쭈물하는 미국 민주당을 진보적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레이건 정부의 군비 확대와 '스타워즈' 계획에 반대했다. 건강보험 개혁에 앞장서고, 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이라크 전쟁을 비판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라크 전쟁이 '애국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라크에 선제 행동을 취하는 예방 전쟁은 국제법 원칙에 위배"된다고 역설했다. 네오콘이 이끄는 부시 정부에 맞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념의 정치인이었다.

건강 보험 개혁에 앞장서다

2010년 3월 24일 미국에서 역사적인 건강 보험 개혁 법안이 통과되었다. 평생 의료 제도 개선의 대의를 위해 싸운 에드워드 케네디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의 일이다.

에드워드 케네디가 건강 보험 개혁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개인적 체험도 영향을 미쳤다. 1973년 에드워드 케네디는 자신의 아들 테디가 암에 걸려 투병하자 아동 병원에서 밤새 간호하며 다른 부모들을 만났다. 그는 보고 느낀 것을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다.

"대부분 세일즈맨, 비서, 노동자, 교사, 택시 운전사와 같은 근로자였다. 가족들은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빚을 졌다. 보험에 들지 않았거나 일부만 가입한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그 후 에드워드 케네디는 모든 관심을 그 투쟁에 쏟았다. 그는 평생 동안 건강 보험, 교육과 직업 훈련의 부담을 줄이려는 신념을 실천했다.

가족의 비극을 넘어서

▲ 케네디가의 형제들. 왼쪽부터 둘째 존 케네디, 막내 에드워드 케네디, 셋째 로버트 케네디. ⓒ현암사

<케네디가의 형제들>은 한 가족의 비극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두 형의 암살과 가족의 잇따른 사망 속에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부모님을 포함해 일곱 형제들의 죽음을 견뎌내야만 했다.

첫째 형 조 주니어 케네디가 제2차 세계 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하여 독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사했다. 둘째 누나 캐슬린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둘째 형인 대통령 케네디가 1963년 암살로 떠난 지 6년 만에 셋째 형인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로 목숨을 잃었다.

세상이 말하는 '케네디가의 저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 케네디의 아들 존 케네디 주니어와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데이비드 케네디, 마이클 케네디 등 조카들도 잇따라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큰누나 로즈메리의 정신 지체, 아버지의 뇌졸중, 자식의 투병을 지켜보아야 했다.

에드워드 케네디 자신도 비행기 추락 사고와 자동차 사고를 겪었으며, 스캔들과 이혼으로 많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케네디 가문의 기둥이 되어 가족을 돌보았으며 케네디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최후까지 노력한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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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와 한국의 민주화운동

에드워드 케네디는 그보다 1주일 전 서거한 전 대통령 김대중과 각별한 인연을 가졌다. 그는 1980년 김대중이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구명 운동에 앞장섰다. 훗날 김대중이 미국으로 망명하자 환영 리셉션을 열어주고 한국으로 다시 귀국할 때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1987년 군사 정부에 의해 투옥되고 고문을 당한 전 국회의원 김근태에게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여한 것도 그였다.

로버트 케네디는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념을 가진 정치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자서전 <케네디가의 형제들>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여 케네디 형제들의 정치적 이상과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려는 독자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20세기 파란만장한 국제 정세는 물론 미국의 선거운동과 정치 비사에 관한 사례도 흥미진진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736쪽의 두께가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김윤태 고려대학교 교수·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결혼 전, 싫더라도 꼭 기억해야 할 두 가지는?
내 사랑의 대가를 요구 말라…서로 다름을 인정하라
<스님의 주례사>,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청춘에 조언

'결혼은 포위된 요새이다. 밖에 있는 자들은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고, 안에 있는 자들은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중국 속담)

‘많은 여자들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제정신을 잃는다는 것. 그러니까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다.’(셰어)

누구와 결혼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결혼을 하고 나면 청혼했을 당시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과 함께 살게 되는 까닭에.’(조안 헨리에타 콜린스)

‘제짝이 나타날 때까지 결혼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녀들은 중고차를 고를 때보다 더 소홀하게 남편감을 고른다.’(헨리 루이스 맨켄)

‘사랑을 길들이려는 시도를 하는 결혼은 이혼을 내포하고 있다.’(프란츠 블라이)

결혼생활에서 로맨틱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부는 결혼하기 전처럼 살아야한다. 그러니까 따로 사는 것이 최고이다.’(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나는 결혼한 여왕이 되느니 차라리 결혼하지 않은 거지가 더 좋다. 결혼반지는 나에게 멍에와 마찬가지이니까.’(엘리자베스 1세 여왕)

‘기혼자들은 결혼했다는 그 멍청함에 대한 벌로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한다.’(귀스타브 플로베르)

'영국의 한 판사가 해결되지 않은 배우자 살해 사건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결혼생활 그 자체가 바로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살해 동기를 찾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매리 호팅어)

‘어떤 부부는 특별히 연기를 잘 하기 때문에 사이가 좋은 부부로 간주된다.’(바네사 레드그레이브)

‘행복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너무 늦다.’(피터 셀러스)

‘부부는 하늘이 맺어주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신은 그와 같은 부당한 일을 저지르지 않을 테니까.’(마가렛 폰 발로아)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들으면 나는 항상 군인들이 전쟁터로 나갈 때 연주되는 음악이 생각난다.’(하인리히 하이네)

법륜 스님이 쓴 <스님의 주례사>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는 것은 싱글족들이 늘어가고 있음에도 결혼에 대한 청춘남녀들의 관심이 지대하다는 얘기겠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위트명언사전(북로드 펴냄)의 결혼편을 살펴보았다. 현자들은 거기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까. 그런데 놀랍다. 위 글들의 대부분은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된장을 안담글 것인가’

이것이 청춘 남녀들이 고민이렷다. 데이트 커플 가운데 더 콩깍지가 강력히 씌인 쪽은 ‘그건 다 공부만 하느라고 결혼은 재미없었던 철학자들이나 결혼에 실패한 이들의 농간”이라며 달콤한 초콜릿을 내밀겠지만, 과연 그럴 것인가. 자고로 아름다워보이는 야생화가 독이나 가시를 감추고 있기 십상이고, 달콤하게 유혹하는 것일수록 독성을 내포하고 있는 법이니.

하지만 그렇게 골치 아프지 않은 논리 없이 그냥 그렇게 잘 살아가는 부부들도 이 세상에는 많다. 그러니 평범하고 당연한 것만큼 위대한 것도 없는 법이다. 남들 사는 만큼 살아가는 것이 그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만큼 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꿈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그것이 남들만큼 살아가기 어려운 이유다. 많은 이들이 젊은 날의 로맨스가 한평생 계속되기를 바란다. 서로 모든 게 찰떡처럼 잘 맞아 떨어지기를 바라는데서 나아가, 속내는 여자는 남자가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다면 잘 살아갈터이니 그다지 조언도 필요없겠지만,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법륜 스님이 <스님의 주례사>에서 기억하기 싫더라도 결혼 전에 기억해야할 두가지로 든 것은 다음과 같다.

1.내가 사랑하고 내가 좋아할 뿐이지 상대에게 대가를 요구하면 안된다. 내가 이만큼 좋아하니 너도 이만큼 좋아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에게는 사랑할 권리는 있지만 그 대가로 사랑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고 흔히 착각하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하다. 단지 내가 사랑할 뿐이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지, 내가 요구할 수 있는게 아니다. 다만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니 내가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만나 장사를 하고 거래를 하지만 부부지간에는 장사를 하거나, 이해득실을 따져서는 안된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부부가 된다.

2.안 맞는다는 것을 전제로 출발해야 한다. 부부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데 어떻게 다 맞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출발할 때는 양쪽이 맞는 건 10퍼센트고 안 맞는 게 90퍼센트에서 출발해서 점차 공통분모를 늘려가면 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크레디트스위스 '세계 富보고서'

절차탁마(切磋琢磨)


영웅을 만나기 위해선  
'시간'과 '정성'을 다 바치고
당신의 '자존심'까지 버리고 배움 앞에 인내할 수 있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자세가 필요하다.
병아리는 달걀에서 나온다.
하지만 단순히 달걀이 깨진다고 병아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달걀을 품에 안고
인내했을 때 병아리는 스스로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 김광호의《영웅의 꿈을 스캔하라》중에서 -  

[태평로] 독립문은 제자리 찾아줄 수 없나

  김태익 논설위원

서울시가 시내 곳곳의 고가차도를 철거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청계고가차도와 미아리, 원남동, 한강대교 북단, 혜화동, 광희동의 고가차도가 지난 몇 년 사이 차례로 헐렸다. 최근에는 퇴계로 회현 고가차도를 헐어 한국은행 쪽에서 바라보는 남산이 시원해졌다.

하나의 고가차도를 헐 때마다 안 그래도 막히는 서울 시내 교통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들이 많았다. 그러나 교통정체는 생각했던 만큼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들은 도시 곳곳의 흉물스러운 시멘트 덩어리를 걷어내는 데서 오는 심리적·시각적 해방감에 비할 때 다소 늘어난 교통정체 정도는 참을 만하다고 보는 것 같다.

청계고가차도를 짓던 1970년 무렵 서울의 자동차는 7만대였다. 그런데도 고가차도를 짓는다, 육교를 만든다 법석을 떨었다. 속도와 효율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시대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지금 서울시에 등록된 차량은 298만대다. 자동차는 수십 배 늘었는데 많은 시민은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쪽에 손을 들고 있다.

이처럼 달라진 시대 분위기를 볼 때마다 안쓰러운 것이 고가차도 건설로 인해 제자리에서 쫓겨난 독립문이다. 사적(史蹟) 32호 독립문은 1979년 성산대로를 건설하고 금화터널과 사직터널을 잇는 현저 고가차도를 만들 때 북서쪽으로 70m 떨어진 지금 자리로 옮겨졌다. 그 결과 의주로 한복판에 당당히 서 있어야 할 독립문은 서대문 쪽에서 보나, 무악재 쪽에서 보나 한쪽에 숨듯이 비켜서 있다. 고가차도로 인해 주변 경관은 망가졌다. 그러나 현저 고가차도는 서울시가 추진 중인 고가차도 철거 대상에서 빠져 있다.

독립문은 특히 원래 서 있던 위치가 생명과 같은 문이다. 조선시대 중국 사신(使臣)들을 맞으며 머리 조아리던 영은문(迎恩門)을 헌 자리에 자주(自主)와 자강(自强)의 상징으로서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영은문이란 이름은 중국을 '은총(恩寵)'을 베푸는 상전으로 받들라는 뜻으로 중국 사신이 지었다. 독립문 건립 주역 서재필은 "나는 고국에 돌아와 무엇보다 이 더러운 문, 부끄러운 문부터 없애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고 자서전에 썼다.

조선시대 국왕과 세자는 중국 황제의 승인을 받아야 즉위할 수 있었다. 구한말 스물여섯 나이로 서울에 왔던 원세개(袁世凱)는 '원대인' '감국대신(監國大臣)'으로 불리며 마치 총독처럼 조선 조정을 휘저었다. 이런 사정을 알았다면 영은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 것이 우리 5000년 역사상 얼마나 혁명적인 일이었는지 깨닫고 고가차도 건설을 이유로 독립문을 옮기는 것 같은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독립신문은 1896년 6월 사설에서 "이 문은 다만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러시아로부터, 그리고 모든 구주 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독립문이여 성공하라. 그리고 다음 세대들로 하여금 길이 잊지 않게 하라"고 외쳤다.

서재필이 오늘날 독립문 머리 위를 짓누르듯 달리는 고가차도를 보면 어떤 말을 할까? 서울시가 지금은 형체도 없는 돈의문(敦義門·서대문)을 원래 위치에 복원하겠다고 하면서 독립문 원상회복은 계획조차 잡지 않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10년, 20년 걸리더라도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주겠다는 의지로 방법을 연구했으면 한다.

 

'69일 드라마' 칠레가 세계를 감동시켰다

산호세 광산(칠레)=전병근 기자

지진 이어 광부 매몰에 침착한 대처…
국민통합 이끌어내며 위기를 기회로

광산이 무너졌던 자리. 2010년 지상 최고의 인간 드라마는 각본이 없었다. 아니 지난 69일 동안 철저하게 준비된 과학적·의학적·사회적 구출각본이 있었다. 12일 자정(한국시각 13일 정오) 무렵.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땅, 칠레 북부 아타카마사막 산호세 광산. 이곳은 우주선을 쏘아 올린 발사기지 같았다. 사방이 온통 칠흑인데 광산 주변에 자리 잡은 '희망 캠프'만 홀로 빛났다. 땅밑 622m 광부 33인은 이미 영웅이었다. 구조용 캡슐 설치대는 세계 33개국 취재진의 대형 라이트가 겹치며 대낮이었다. 한순간 모두 숨을 죽였다.

13일 0시 11분. 길이 4.5m 지름 55㎝, 칠레 국기를 상징하는 백-적-청색 몸뚱이의 철제 캡슐이 지상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불사조란 뜻의 '피닉스 2'호. 문이 열리자 녹색 작업복에 붉은색 특수헬멧을 쓴 사내가 걸어나왔다. 밤이지만 검정 선글라스를 썼다. "비바 칠레" "비바 칠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사방에서 환호와 함성이 터졌다. 밤하늘이 떠나갈 듯했다. 칠레 전역에서는 신에게 감사하는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첫 생환을 신고한 주인공은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 매몰 당시 부조장이었다. 지하에서 구조 캡슐에 몸을 실은 지 16분 만이었다. 식구들이 달려가 안겼다. 구조대원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도 차례로 얼싸안았다. 지켜보던 다른 가족들 눈가에 물기가 비쳤다. 누군가 폭죽과 오색종이를 날렸다. 칠레 국기 문양의 은박 풍선 수십 개가 하늘로 솟았다.

땅밑 622m에서 생환… 그리고 영웅이 되었다… 영원히 갇힐 뻔했던 지하 622m 갱도에서 탈출하는 기적이 69일 만에 일어났다. 13일 새벽 0시 11분(한국시각 낮 12시 11분) 33인의 광부 가운데 첫 번째로 구조 캡슐에서 내린 플로렌시오 아발로스(사진 가운데 왼쪽)가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대통령의 뒤에서 아발로스의 아들 바이론과 부인 모니카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작업이 순조로워 한국시각으로 14일 오전 1시까지 16명이 구조됐다. /AFP

피녜라 대통령이 구조 개시를 공식 선포한 지 1시간이 채 안 돼 거둔 첫 개가였다. 지난 8월 5일 구리·금광 매몰로 시작된 절망의 사투가 생존자 구조라는 기적 같은 드라마로 승화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국가를 선창했다. 이들의 합창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따라 부르지 못하는 외국인은 박수를 쳤다.

800명 가까운 가족 친지들, 각국에서 모여든 250개사 취재진 2500여명은 지상 최대의 드라마 앞에서 갑자기 숙연해졌다. 이 순간만은 모두가 칠레 국민이 된 것 같았다. 아직 지하에 남아있는 광부 알렉스 베가(32)의 사촌형인 아르놀도 플라사 베가(46)는 "이날이 올 거라고는 믿었지만 정말 현실이 될까 했었다"며 입술을 떨었다.

다음번 불사조를 타고 올라온 이는 마리오 세풀베다(39). 매몰 당시 전기 기술자였다. 지하 광부들이 지상으로 올린 동영상에 자주 등장했던 사내였다. 그는 땅 위로 올라와서도 특유의 쇼맨십을 발휘했다. 응원 단장처럼 구호를 선창했다. "치치칠, 렐렐레, 미네로스, 데-칠레(칠레, 칠레의 광부들이란 뜻)." 3-3-7 박수에 맞춘 구호였다. 칠레인들의 축구시합 응원구호를 변형한 것이다. 이날 희망캠프에서는 이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세풀베다는 기자회견장에서 가족과 함께 앉았다. "신과 악마가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이 승리했습니다." 세 번째 구조자 후안 일라네스(52)는 웃으며 "크루즈를 타는 것 같았다"고 구조 캡슐 탑승 소감을 밝혔다.

네 번째는 33인 중 유일한 볼리비아인 광부 카를로스 마마니(23). 이웃나라로 돈을 벌러 왔다가 출근 첫날 봉변을 당한 청년이다. 볼리비아 국기를 손에 꼭 쥔 아내 베로니카 키스페와 아기를 함께 부둥켜안았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마마니가 구조된 후 약 5시간30분 만인 산호세 광산에 도착, 임시 진료소에 있는 마마니와 만났다.

최연장자로 건강이 좋지 않아 구조대원들의 맘을 졸이게 했던 마리오 고메스(63)는 오전 8시쯤 9번째로 구조돼 부인·자녀·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침 햇살을 맞았다.

구조 작업은 순조로웠다. 희망캠프는 곧바로 축제의 장이 됐다. 바비큐 파티에 노래가 이어졌다. 대개 온도는 3도, 체감 온도는 영하를 오가는 날씨. 사람들은 몸이 시리지 않았다. 인간 승리의 드라마 현장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이었다. 그새 초반 구출자들을 실은 헬기가 코피아포를 향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모두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광부들은 여기서 남쪽으로 45㎞ 떨어진 코피아포시 병원으로 가서 이틀간 검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외딴 광산에서 펼쳐진 드라마는 경이(驚異)다. 낮에 보면 이곳은 달 어느 곳에 불시착한 것 같다. 차를 타고 가면 라디오도 끊긴다. 무선통신도 두절이다. 세상이 외면한 곳 같다. 구리와 금 같은 일확천금에 눈먼 사람만 올 것 같다. 그런 광산에 어느 날 암반이 무너졌고 땅밑에 33명이 갇혔다. 상황은 절망적이었지만 '기필코 살아 돌아간다'는 그들의 희망은 땅 위 가족·친지·동료들의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란 또 다른 희망과 조응했다. 그 후 희망캠프에서 '지상 최대의 구조작전'이 시작됐고, 69일 만에 희망은 꿈같은 현실이 됐다.

이날 구조 작업은 캡슐을 내려 보낼 플랫폼의 준비 상황과 땅 밑의 광부들 모습, 가족들의 표정이 나란히 3원 생중계됐다. 피녜라 대통령은 연설에서 "매몰된 광부들의 서사는 우리 국가의 영혼을 밝혀주었고 칠레 국민정신을 한층 강하게 했다"고 말했다.

 

 '비평가'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신경숙을 부탁해!'

[프레시안 books] 신경숙의 베스트셀러와 '비평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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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품을 말하기 전에 이 작품을 왜 읽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먼저 몇 마디.

한때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고 어쭙잖은 평론 비슷한 것을 몇 편 쓴 적도 있지만, 최근 몇 년간 나는 한국 문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문학 비평 이론을 가르치는 영문과의 대학 선생이 되었고 내게 주어진 선생으로서의 여러 일들을 감당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내 나름의 판단으로 한국 문학의 활기가 사라졌다고 느꼈던 것도 곁들인 이유였다.

한국 문학은 그렇게 내게는 '너무 멀어진 당신'이 되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문학 연구 모임 비슷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한국 문학을 좀 더 가까이 하게 되었다. 한국 문학 전공자들과 나 같은 외국 문학 전공자들이 섞여 있는 모임의 성격상 한국 문학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이 그야말로 중구난방 격으로 쏟아져 나오는 모임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중구난방 속에서 한국 문학 전공자들이나 비평가들은 언급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한국 문학의 징후들을 조금은 깨닫게 되었다.

여러 얘기가 가능하겠지만 그동안 많이 언급되어온 '주례사 비평' 혹은 '정실 비평'의 폐해를 실감하게 된 게 그 중 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주례사 비평'의 이론적 의미 따위를 논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한국 문학 비평가나 연구자들이 따져야 할 몫이리라. 다만, 외국 문학이긴 하지만 어쨌든 문학 작품과 비평 이론을 가르치는 문학 선생인 내가 보기에도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작품들이 평론가들에 의해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하나의 예만 먼저 들고 싶다. 현기영의 장편소설 <누란>(창비 펴냄)이다. 나는 어지간하면 읽기 시작한 작품은 끝까지 읽는 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끝까지 읽기가 고통스러웠다. 그만큼 엉망이었다. 현기영이 중견 작가이기에 그만큼 더 환멸감이 컸다. 여러 말이 가능하겠지만 내가 읽은 소감 몇 마디만 적자.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해주는 '인형'들이다. 살아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러니 사건도 필요 없다. 사건이 있어 보이지만 있으나 마나한 사건들이다. 사건의 필연성이나 서사의 필연성도 없다. 그리고 작품의 주제 의식에서 뭔가 새로운 걸 배우지도 못한다. 작가가 각 등장인물들, 특히 주인공 허무성을 통해 하는 얘기들이 독자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도 아니다. 꼼꼼하게 읽지 않더라도 대충 아는 얘기들이다. 어떤 부분은 읽기가 민망할 정도로 상투적이다. 인물들이 하는 말들이 내용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굳이 작가가 할 말을 그런 인물을 통해 얘기해야 하는 서사적 논거가 작품에 전혀 없으며, 그 말들이 새로운 인식이나 깨달음을 주지도 않는다.

혹시 작가는 1970년대, 80년대를 경험했던 나 같은 중년층이 아니라 그 시절을 모르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훈계'의 말씀을 전해 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품에는 허무성과 학생들이 나누는 지루한 대화 혹은 논쟁이 길게 실려 있다. 역시 재미없다. 각 시대는 각 시대 나름의 시대 경험의 양상이 있다. 그걸 무시하고, '너희는 왜 그렇게 사는가'라고 떠들어봐야 작품에 나온 표현대로 "꼰대" 짓에 불과하다. 작가가 "꼰대"가 되어서는 곤란하며, 하물며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서는 더욱 곤란하다. 오히려 작가는 "꼰대"질의 냉철한 비판자가 되어야 한다. 작가는 이렇게 적는다.

"절망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절망하여 그 밑바닥에 닿으면 거기에서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고 그때 우리는 바닥을 걷어차고 힘차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누란>, 300쪽)

멋진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정도의 "절망"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 절망을 통해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할 걸로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나는 이런 수준의 작품을 출판한 것은 작가의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품의 뒤에 붙인 추천의 말씀들은 듣기 민망할 정도이다. 이 소설이 "오래 아픈 사람들에게 깊은 안식을 줌은 물론 좋은 약이 될 것이 틀림없"단다. 나로서는 작품을 읽고서나 쓴 추천사인지 의심스럽다. 조심스러운 짐작이지만, 이런 질 낮은 작품을 나름의 명망을 지닌 출판사에서 낸 것은 작품의 '질'에 대한 엄격한 판단이 아니라 그동안 출판사와 작가가 쌓아온 '정실' 때문이리라. 한마디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정실주의'가 문학 판에도 자리 잡은 게 아닐까. 나는 환멸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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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신경숙. ⓒ백다흠
물론 이런 나의 독서 실감이 틀릴 수도 있다. 전문적으로 한국 문학을 읽고 분석하는 현장 비평가들은 다른 평가를 할 수도 있다. 그들이 보기에는 <누란>이 훌륭한 작품일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그렇게 평가하는 근거일 뿐이다. 그리고 단지 한편의 작품만을 갖고 한국 문학계의 '정실주의' 운운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런 식의 단정을 내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엄밀히 말해 비평의 객관성은 없다. 모든 읽기와 비평은 주관적이다. 비평의 객관성은 독자와 비평가들이 표현하는 다양한 주관적 견해들 사이의 대화와 논의를 통해 서서히 형성될 뿐이다. 영문학 연구자로서 내가 신뢰하는 비평가 중 한 명인 리비스(F. R. Leavis)가 비평의 키워드로 내세운 '공동의 모색(the common pursuit)' 개념을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비평의 객관성은 시민적 양식을 지니고 독서의 훈련을 거친(그래서 인문 교육이 중요하다) 독자 대중과 비평가들의 주관성들이 만나 어떤 객관성, 그러나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화하고 새롭게 형성되는 객관성을 형성하는 '공동의 모색'이다.

그러나 이런 공동의 모색에는 전제가 있다. 비평가가 비평가다워야 한다. 이 말은 분명 동어반복이다. 그러나 나의 독서 실감과 너무나 판이한 판단을 내리는 적지 않은 작품 평을 읽으면서 든 생각. 한국 비평이 비평의 본령인 비판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평소에 신뢰해 온 예민한 비평가조차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문학에 나름의 관심과 애정을 지닌 독자이자 외국 문학 연구자로서 나는 그 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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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서두가 길었다. 우선 내가 읽은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이하 <전화벨>, 문학동네 펴냄)에 대한 몇 가지 단평을 적겠다. 그리고 내가 앞서 언급한 비평가들의 '정실주의'와 '주례사 비평'의 몇 가지 사례를 다뤄보겠다. 그리고 왜 그런 '정실주의'가 작동하는지 그 이유를 나름대로 '추리'해보겠다.

나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이하 <엄마>, 창비 펴냄)와 <전화벨>을 앞서 언급한, 내가 참여하는 어느 문학 연구 모임에서 읽었다. 이 작품들이 모임에서 추천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 이유가 무엇이든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는 베스트셀러라는 것. 둘째, 작가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신경숙이라는 것. 내 소감을 당겨 말하자. 두 작품 모두 나는 실망스럽다고 느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두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좋게 평가해온 작가가 '성숙'의 길이 아니라 '퇴락'의 길을 걷는 게 아닌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두 편의 작품을 그가 쓴 다른 장편인 <외딴 방>(창비 펴냄)이나 <깊은 슬픔>(문학동네 펴냄)과 비교해도 그렇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몇 편의 관련 평론을 찾아 읽었다. 그러나 그런 평론들은 내 궁금증을 해명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부채질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실 비평'의 문제와 관련하여 뒤에 다시 논의하겠다.)

내가 보기에 신경숙은 본격 문학과 대중 문학의 경계(그 경계의 근거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에서 이제 대중 문학으로 완연하게 넘어갔다. 이것은 가치 판단이 아니라 사실 판단이다. 다시 말해 나는 대중 문학을 폄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대중 문학의 가치를 십분 인정하며 실제로 대중 문학의 다양한 장르 문학들을 즐겨 읽는다. 다만, 각자의 소임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작가가 실제로는 대중 문학을 하면서 자신이 본격 문학을 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그 점에서 일본 문학계에 던졌던 가라타니 고진의 아래와 같은 조언은 지금의 한국 소설계에도 유효하다. 그렇게 한국은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나는 작가에게 '문학'을 되찾으라고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가 오락 작품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 그것이 가능한 작가는 미스터리계 등에 상당히 있습니다. 한편, 순수 문학이라고 칭하고 일본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가라타니 고진, <근대 문학의 종언>, 도서출판 비, 65~66쪽)

나는 가라타니의 지적을 이렇게 읽고 싶다. "순수 문학이라고 칭하고 한국에서만 읽히는 통속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잘난 척을 해서는 안"된다. 신경숙의 많은 애독자들은, 신경숙 문학을 내가 자의적으로 대중 문학으로 폄하하는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엄마>나 <전화벨>은 분명 본격 문학보다는 대중 문학에 가깝다. 대중 문학과 본격 문학 사이에 만리장성이 놓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그 중 하나. 대중 문학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감수성에 호소하고 영합한다. 그러나 본격 문학은 대중의 감수성에 충격을 주고 불편하게 만든다. 작가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대중의 감수성에 충격을 주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대중의 감수성에 영합할 때, 그래서 얄팍한 인기를 얻고 책이 많이 팔리는 것에 만족할 때 작가는 통속 작가가 된다. 본격 문학과 대중 문학 사이에 만리장성이 없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작가가 항상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내가 보기에 신경숙은 그런 긴장을 잃고 있다. 이게 단지 까칠한 독자의 투정일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려 한국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에게 던지는 나의 까칠한 투정의 변명을 삼고 싶다.

"<노르웨이의 숲>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는, 이것은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상상을 넘어선 판매고에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1Q84>는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작업이고, 내용에 보람도 있었습니다. (…) 소설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시간에 의해 검증받는 것입니다. 시간의 혹독한 세례를 받는 것." ( '인터뷰 : 하루키를 말하다,' <문학동네> 64호(2010년 가을), 533쪽)

간단히 말해 제대로 된 본격 문학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이 많이 팔린다면 마냥 기뻐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혹시 자신의 작품이 대중의 감수성에 충격을 주기는커녕 영합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 작가의 길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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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문학과 대중 문학의 경계를 나누는 근거가 무엇인지 굳이 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 근거 중 하나는, 역시 애매한 말이지만, 현실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냉정함, 무자비함, 냉철함이다. 내가 이해하는 글쓰기의 '유물론'이다.

작가가 견지하는 시선의 냉철함은 <엄마>나 <전화벨>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신경숙 소설의 전매특허인 아름답게 포장된 미문의 '감상성'과는 거리가 멀다. 문체는 곧 사유의 표현이다. 신경숙 문체에서 때때로 느낄 수 있는 느끼할 정도의 아름다움은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표현이다.

신경숙 소설은 기본적으로 '천사표'이다. 생활인으로서 작가가 '천사'인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작품에 드러나는 작가의 '정신'이 천사의 시각에 머문다면 심각한 문제이다. 내가 아는 훌륭한 작가들은 적어도 그들의 작품에서는 천사가 아니라 악마에 가깝다. 우리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일이지만, 인간의 삶은 천사가 아니라 악마에 가깝다. 삶은 때로 아름답지만, 훨씬 더 자주 추하고, 혐오스럽고, 잔인하고, 역겹고, 위선적이고, 동물적이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의 그런 악마적 심성, 마성에 친숙해야 한다. 그걸 모르고서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다. 되풀이 말하지만, 이런 판단은 생활인으로서의 작가가 아니라 작품에 드러난 작가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작가 개인의 성품이 천사표인지 악마표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것은 비평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신경숙 소설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악한'이 없다. 모두가 선하다. 이것은 비단 신경숙 소설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읽은 최근의 한국 소설에서 나는 제대로 된 악한을 만난 적이 없다. (오히려 최근 한국 영화에서 그나마 '악한'들을 만난다.)

나는 이 점이 한국 소설이 처한 곤경을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라고 판단한다. 되풀이 말하지만 인간은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깝다. 인간은 모순적이고, 균열적이고, 위선적이다. 아무리 선해 보이는 인간도 그 내면에는 악마가 살고 있고, 아무리 악해 보이는 인간도 그 내면에는 한줌의 선함이 존재한다. 그게 인간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애초에 '선'과 '악'의 구분조차 그렇게 손쉽게 나뉘지 않는다. 일급의 작가들은 주어진 '선'의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선'이라고 주어진 것들이 과연 선한 것인지를 좋은 작가들은 따지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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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신경숙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전화벨>은 후일담 소설이다. 작품의 시간은 1980년대이고, 공간은 대학과 그 언저리이다. 이 작품의 공간과 시간은 나에게 낯익다. 나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인 윤이와 단이와 미루와 명서, 미래 등에 다른 누구보다 나는 공감을 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작품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에 대해 나는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의 동세대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지.)

작가는 이 작품을 후일담 문학이 아니라 일종의 성장 소설, 혹은 "청춘 소설"로 썼다지만, 후일담 문학이든 청춘 소설이든 핵심은 그들이 겪는 고통, 방황, 죽음, 성장의 깊이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아름답게 찍은 예술 사진이 연상되었다.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을 찍어 멋진 사진틀에 넣어서 우아한 공간에서 전시되는 예술 사진. 대개 그런 예술 사진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것은 반응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어떤 관객은 그런 예술 사진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런 사진들이 보여주는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에서는 재현(representation)의 윤리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사진작가가 아름답게 '재현'하는 것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가? 더 강하게 표현하면, 그런 재현 행위는 어느 선까지 '예술'의 이름으로 용서될 수 있는가? 나는 여기서 재현의 불가능성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신경숙이든 누구든 그만의 방식으로 그들이 겪은, 불같은 '청춘 시절'을 회고하고 재현할 수 있다. 다양한 현대 비평 이론이 밝혔듯이, 모든 예술적 재현 행위는(그것이 문학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그 본성상 불가능한 시도이다. 어떤 예술 작품이 실제 현실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가?

하지만 훌륭한 예술 작품은 재현의 불가능성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한다. 그래서 냉철해진다. 자신이 묘사하고 서술하는, 고통 받는 대상에 대해서나 그런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에 대해서나 한 치의 감상도 없이 무자비할 정도로 냉정하다. 그런 냉철함에 감상성이나 센티멘털리즘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어떤 훌륭한 예술 혹은 문학 작품치고 감상성에 사로잡힌 작품은 없다. 나는 소위 '리얼리즘'의 정신을 무자비한 냉철함으로 우선 이해한다. 모든 위대한 작품들은 무자비한 냉철함의 리얼리즘을 표현한다. 그것이 '양식'적으로 사실주의이든, 모더니즘이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냉철한 리얼리즘, 혹은 유물론의 '정신'이다. 신경숙의 <엄마>나 <전화벨>은 그런 작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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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은 신경숙 소설의 미덕으로 흔히 꼽혀온 요소들이 냉철한 '악마'적 현실 감각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어떻게 작품을 해칠 수 있는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신경숙은 그만의 고유한 문체를 가진 드문 작가이다. 그런 문체의 가치를 나는 십분 인정한다. 문학은 무엇보다 글의 예술이다. 그의 문체는 서정적이고 섬세하다. 그래서 때로는 감상성의 위험에 빠진다. 감상적 문체가 그가 그리는 대상에 대해 냉정하고 냉철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할 때, 현실을 관념으로, 관념을 전달하는 유려한 문체로 덮어버리게 된다. 아름답고 감상적인 문체가 효과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이 작품에 많은 고통이 그려지지만 많은 묘사들이, 적어도 내가 읽기에는 실감나는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신경숙은 고통을 고통스럽지 않게, 아름답게만 그린다.

나는 하나의 예로 언니 미래의 '투신'을 길게 묘사하는 미루의 설명을 들겠다. (<전화벨> 227~229쪽을 보라!)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점이 가장 불편했다.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이렇게 아름답게, 똑같은 서정적 톤으로 묘사하는 게 온당한가? 한마디로 신경숙은 '천사'의 눈으로만 현실을 본다. 그러니 그가 그리는 네 명의 주인공들의 삶과 고통, 방황 속으로 작가의 시선이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표피만을 그린다. 그러니 작중 화자는 다양해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작가의 목소리만을 전한다.

독자들도 쉽게 작품을 읽으면서 실험해볼 수 있다. 작품의 등장인물 이름을 가리고 그가 하는 말이 누가 하는 말인지를 맞혀보시라. 쉽지 않을 것이다. 인물은 각기 달라 보이지만 모두 작가의 '스피커'에 불과하다. 각 등장인물은 그들의 고유한 면모를 지니지 못하고, 작가의 '감상'과 '회고'를 전달하는 매개체에 불과하게 된다. 그 매개체들을 통해 표피적으로 전달되는 고통에 대한 연민, 동정, 눈물의 정서. 그런 감상성이 대중 소설의 미덕이다.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7

신경숙은 작가 후기에서 이렇게 적는다.

"청소년기를 앙드레 지드나 헤세와 함께 통과해온 세대가 있었다면 90년대 이후엔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청년기의 사랑의 열병과 성장통을 대변하는 것을 보며 뭔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어를 쓰는 작가로서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 있는 청춘 소설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374쪽)

신경숙 본인이나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이 작품을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 있는 청춘 소설"이라고 믿는다면 그건 그들의 자유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판단은 제대로 된 "품격 있는 청춘 소설"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아름다움은 미려한 문체로만 얻어지는 게 아니다. 고통을 그릴 때는 거기에 걸 맞는 끔찍할 정도로 냉정하고 냉철한 문체를, 아름다운 대상을 그릴 때는 거기에 걸 맞는 고양된 문체를 적절하게 선별하여 부릴 줄 아는 작가가 좋은 작가이다. 그렇게 내용과 형식은 분리될 수 없다. 아무 대상에 대해서나 '미문'을 쓰면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신경숙은 아마도 그녀가 자부심을 지니고 있을 그녀의 유려하고 서정적인 문체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녀는 지금 자기복제의 위험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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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엄마>와 <전화벨>이 내가 읽기에 훌륭한 소설이 아니라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가? 혹시 내 읽기와 판단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의 답을 찾아보려고 몇 편의 관련 평론을 구해 읽었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증은 해소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 작품들을 다루는 평론들이 1990년대 이후 한국 비평계의 고질병으로 지칭되어온 '주례사 비평'과 '정실 비평'의 좋은 예가 아닐까? 그런 의문이 다시 들었다. 그와 관련된 기억 하나.

<엄마>가 출간되고 나서 베스트셀러가 될 기운이 보이자, 작품 판매를 독려하려는 듯이 이 소설을 낸 출판사에서 내는 계간지에는 이 작품을 한껏 띄워주는 평론이 실렸다. 나는 지금도 묻고 싶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설령 <엄마>가 그 평론의 상찬대로 뛰어난 작품일지라도 그런 식의 자화자찬형 호평은 면구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내가 보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는 작품에 대한 호들갑은 아무리 먹고 사는 게 중요한 자본주의 출판 시장이고 그 출판사에 종속된 비평가라지만 정도를 넘어선 일이다. 내가 읽은 두 편의 평론을 다시 살펴보면서 그런 '정실 비평'의 문제를 가늠해보겠다.

먼저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위원이었던 임규찬이 쓴 <전화벨> 론인 '청춘을 향한 공감과 연민의 인간학'(<창작과비평> 149호(2010년 가을))을 보자. 임규찬은 <전화벨>은 "<엄마를 부탁해>와 함께 작가가 오랫동안 품고 있다가 때가 되어 차례로 탄생시킨 이란성쌍둥이 같았다. 무엇보다 '어머니'와 '청춘'이라는 식상하기 쉬운 소재에 남다른 소설적 육체와 창조적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야말로 신경숙의 능력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지"(449쪽)라고 고평한다.

<엄마>에 대해서는 뒤에 언급할 신형철의 글에서 논의하겠다. 내 질문은 이렇다. 과연 <전화벨>이 "'청춘'이라는 식상하기 쉬운 소재에 남다른 소설적 육체와 창조적 생기를 불어넣은" 작품인가?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임규찬은 이야기의 구조와 예의 서정적 문체를 근거로 든다.

"이 책은 확실히 문학적 수완이 돋보이는 신경숙 미학의 한 성채다. 작품의 모든 언어는 그만의 문체로 직조되었고, 이야기는 미학적으로 구조화되었다. 정윤과 명서의 사랑을 축으로 하여 이들에게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 단과 미루의 이야기를 끌어안고 있는 단순한 구조지만, 구체적 전개과정은 복잡하다" (450쪽)

핵심은 마지막 문장에 있다. 소설의 전체 구조는 단순하다. 그 단순함은 앞서 내가 지적했듯이, 소설의 구조를 지탱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입체적이지 못하고 작가의 '감상'을 전달하는 도구에 머문다는 데 있다. 그런데 임규찬은 이들이 펼치는 이야기의 "구체적 전개 과정은 복잡하다"고 토를 단다. 묻는다. 무엇이 복잡한가?

내가 보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과 같은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내가 보기에는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임규찬도 이 소설이 소설의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그의 지적대로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이다.

"대개의 소설이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데 비해, 신경숙은 확실히 공감과 연민의 인간학으로 하나의 멜로디를 지향하고 있음이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452쪽)

임규찬은 이런 지적을 칭찬으로 하고 있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이런 지적은 비판으로 읽혀야 한다. <전화벨>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작가가 전달하려는 "공감과 연민의 인간학으로 하나의 멜로디를 지향하고 있"다. 이 소설이 에세이에 가까운 이유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소설로서 실패했다. 그런데 임규찬은 오히려 그런 실패를 성공의 이유로 든다. 이해하기 힘들다. 임규찬의 결론이다.

"어쨌든 낯익은 청춘 소설을 거부하며 이렇게 대중적인, 어떤 의미에서 통속적이기조차 한 요소에 품격을 부여해, 적극적으로 우리말의 무늬를 새기고자 하는 교양 소설의 면모에서, 그리고 그의 연이은 문학적 성취를 생각하면 바야흐로 신경숙의 진경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453쪽)

나는 임규찬이 안목이 있는 비평가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실망했다. 정말 임규찬이 이렇게 생각하고 썼다면 그의 비평가적 안목이 의심스럽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쓴 것이라면 비평가적 정직성이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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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창비 펴냄). ⓒ창비
두 번째 평론으로 신형철이 쓴 '누구도 너무 많이 애도할 수 없다 : 신경숙의 소설과 애도의 윤리학'(<문학동네> 64호(2010년 가을))을 살펴보자. 미리 말해두자. 나는 신형철 평론을 즐겨 읽는 애독자이다. 나는 그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펴냄)를 근년에 읽은 가장 인상적인 문학 평론집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작품의 결을 세심하게 살피고, 독자와 대화를 나눌 줄 아는 글을 쓰는 좋은 비평가이다.

그런 기대를 안고 신형철이 쓴 신경숙 론을 읽었다. 그런데 그가 쓴 신경숙 론은 실망스러웠다. 먼저 <엄마>에 대한 그의 분석을 보자. 신형철은 <엄마>를 비판하는 비평들을 언급하면서 "이들 비판적인 논평들은 이 소설이 모성을 신비화하면서 모성으로부터 위안을 얻으려는 퇴행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평들은 "교과서적이어서 따분한 논법"(86쪽)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신형철은 예의 "무수한 대중들의 소박한 항변"(86쪽)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도 잘 알겠지만, 대중들의 소박한 항변이 엄격한 분석과 판단을 해야 하는 비평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영화 <디 워>를 둘러싼 논쟁은 잘 보여준 바 있다.

그렇다면 신형철은 왜 <엄마>를 높이 평가하는 걸까? 신형철의 독서 실감은 이렇다. "한국 특유의 가부장제 가족 구조가 근대화, 산업화 과정과 만나면서 어머니라는 존재의 고유한 내면성을 말소해온 맥락과 그 결과를 냉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게 독서의 실감이다"(87쪽). 그런가? 이런 정도의 답변은 한국 문학의 어머니상을 재해석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에서 이미 제기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의 '어머니들'도 그들만의 내밀한 삶이 있었다는 것. 그들도 남편이나 자식들과 같은 욕망을 지닌 인간이었다는 것. 이 작품이 이것과 다른 어떤 새로운 모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가? 이 질문의 답을 신형철은 이렇게 비껴 제시한다.

"어머니의 실종 앞에서 (가족들이 드러내는-인용자) 이 사소한 기억들은 거대한 죄의식으로 되돌아온다. 바로 여기가 핵심이다. 만약 이 소설을 읽고 모성에 대한 향수에 젖거나 모종의 위안을 얻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거의 불가사의한 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먼저 압도적인 죄의식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87쪽)

내가 보기에 신형철이 내세우는 "무수한 대중들의 소박한 항변"은 바로 이 모성과 관련된다. 신형철은 애써 부인하려 들지만 대중은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소박한, 그러나 이제는 사라져가는 모성에 대한 향수가 있기에 역으로 "죄의식"을 느끼는 거다. 신형철이 자주 기대는 정신분석학을 빌려서 말하자. 향수와 죄의식은 손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이 점이 <엄마>와 영화 <워낭소리>가 대중에게 호소력을 지녔던 이유이다. 그러나 되풀이 말하자면 <엄마>는 모성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인식도 독자나 관객에게 주지 않는다.

여기서 상세하게 논의할 수는 없지만, 굳이 비교하면 봉준호의 영화 <마더>가 좀 더 충격적인 모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많은 평자들이 <엄마>에서 재현된 모성성이 '퇴행적'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 있다. <전화벨>을 신형철은 '애도'의 시각에서 읽는다. 그답게 날카로운 분석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이 지닌 '회고'의 의미를 '애도'와 깊이 연결하지 않는다. 신형철은 애도의 (불)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예로 <전화벨>을 읽는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의 '애도'는 실패했다고 본다. 애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과거로의 퇴행, 과거의 신비화가 일어난다. 애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죽은 이들은 그들의 세계로, 산 사람은 삶의 세계로 각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도 행위의 목적은 언제나 살아야 하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워도 현재의 삶을 살아남은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한다. 과거를 회고하는 '후일담 문학'의 문제도 여기 있다. 회고되는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회고하는 현재가 문제이다. 현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과거가 신비화될 때 애도는 실패한다. 과거를 '과거'로 떠나보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현재의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게 된다. 많은 후일담 문학이 비판받는 이유이다.

<전화벨>도 예외는 아니다. 작품을 "애도의 서사"로 규정한 신형철도 이 점을 의식한다. 신형철의 지적대로 이 작품은 "애도의 서사"에 머물고, "애도의 윤리학"(95면)에 이르지 못한다. 굳이 지나간 1980년대의 "청춘"을 회고하는 작업이 지금, 이곳의 작가나 독자들에게 갖는 의미를 작품은 깊이 반추하지 못한다. 신형철도 그 점을 비판한다.

"두 가지 정도의 질문을 더 질기게 물어야만 애도의 서사가 애도의 윤리학에 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째, 애도 작업은 주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둘째, 그 주체를 위해 공동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전화벨>은 뭔가를 더 물어야 하는 그 순간 멈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96쪽)

날카로운 분석이다. 그런데 신형철은 더 "질기게" 묻지 않고 중단한다. 아쉽다. 그러나 이미 신형철은 그가 쓴 김훈 론에서 이 두 가지 질문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인간적인 것의 한 가운데에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어떤 것이 있다. 그것과 고통스럽게 대면하지 않는 모든 윤리학은 허위다, 라는 것이 정신분석학적 윤리의 공리다. 이런 논점들은 김훈의 반인간주의도 얼마간 공유하는 것들이다. 그는 '한국 문학의 거의 대부분은 인간에 대한 연민의 바탕 위에서 놓여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연민의 문학을 거절하는 까닭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을 명철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통념들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인간을 믿지 않고 연민하지 않을 때 역설적이게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가능해진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반인간주의는 역설적인 인간주의가 된다." (신형철,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 <몰락의 에티카>, 52쪽)

"자기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유물론에 대한 유일한 정의"라는 알튀세르의 언명을 인용하며, 신형철은 이것이 "김훈의 유물론"(60면)라고 요약한다. 나도 공감한다. 그는 김훈 소설의 핵심을 잘 포착하고 있다.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신경숙 소설은 얼마나 "반인간주의"에 가까운가? 신경숙 소설은 김훈이 비판하는 "연민의 바탕 위에서 놓여진" 소설의 좋은 예가 아닌가? 신경숙 소설은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통념들을 과감히 포기"하기는커녕 그에 공모하고 있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신경숙 소설은 "인간적인 것의 한 가운데에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어떤 것이 있다. 그것과 고통스럽게 대면하지 않는 모든 윤리학은 허위다, 라는 것이 정신분석학적 윤리의 공리"라는 것에 둔감하며, 그래서 "유물론"적 글쓰기에 매우 미달하는 작품이 아닌가? 그런데도 어떻게 <엄마>와<전화벨>이 좋은 소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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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이 있는 비평가라고 항상 공감할 만한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리고 임규찬이나 신형철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독할 대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읽기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내가 신뢰할 만한 비평가라고 여겨온 이들조차 납득할 만한 글을 못 쓰는 이유가 혹시 작품외적인 데 있는 것은 아닐까?

임규찬이 편집위원을 지냈던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 <엄마>를 냈고, 역시 신형철이 편집위원으로 일하는 출판사에서 후속 베스트셀러 <전화벨>을 냈다는 사실은 그들의 납득할 수 없는 신경숙 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비평의 위기'를 느낀다. 한국 문학 비평에서 제대로 된 비판, 혹은 예리한 독설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말을 나도 종종 들었지만, 이번에 신경숙 소설을 나 나름대로 읽고 관련 비평을 읽으면서 그 점을 실감한다.

많은 비평가들이 '공감의 비평'을 말한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작가 로런스(D. H. Lawrence)의 충고. "비평은 흠잡기가 아니다. 균형 잡힌 의견이다." 로런스의 말은 이렇게도 읽어야 한다. "비평은 주례사가 아니다. 균형 잡힌 의견이다." 균형 잡힌 의견을 개진하려면 아무 작품에나 공감을 표명해서는 안 된다. 공감할 수 없는 태작에 대해서는 내장을 후벼 파는 독설도 때로는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독일과 미국의 비평가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와 미치코 가쿠타니는 공감과 독설 사이의 균형이 무엇인지를 그들의 날카로운 분석과 판단으로 잘 보여준다. 말이 좋아 '공감의 비평'이지 실상은 '정실 비평' 혹은 '주례사 비평'이 계속 생산된다면 앞으로 한국 문학 비평은 '위기'를 넘어서 예고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독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비평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아무 작품이나 무조건 좋다고 하는 비평을 어떻게 믿어야 하나? 차라리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털어놓는 일반 독자들의 인터넷 독서 후기가 더 신뢰할 법하다. 이 눈치 저 눈치봐가면서 쓰는 비평은 이미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것이다.

되풀이 말하지만 비평(criticism)은 곧 비판(critique)이다. 공감과 비판 사이의 균형을 잃은 비평은 쓸 이유도, 읽을 이유도 없다. 이쯤 되면 이제 한국 문학 비평계에서도 알맹이 없는 고담준론이 아니라 자신의 감식력을 걸고, 툭 까놓고 작품에 대한 평가의 별표 매기기부터 해야 되는 게 아닌지. 그 정도의 서비스는 독자들에게 해줘야 최소한 비평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허튼소리 그만두고 이런 기본적인 서비스부터 비평가들은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묻는다. 우리시대의 비평가들, 당신들은 누구인가? 세간에 떠도는 말대로 출판 자본에 종속되어 수준도 안 되는 작품을 예쁘게 포장해주는 '문학 코디네이터'인가? 아니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비평가인가? 신경숙 소설을 읽으면서 뜬금없이 드는, 한 까칠한 독자의 질문이다.

/오길영 충남대학교 교수 메일보내기

 

[ESSAY] 사랑방 정신 이렇게 사라져도 되나요

  • 서수용 한국고문헌연구소장
 
서수용 한국고문헌연구소장

사랑방에는 먹 내음과 담배, 서책에서 풍기는 묘한 냄새가 어우러져 있었다
집안 어른이 자리하고 있던 그곳에서 우리는 공부를, 예절을, 법도를 배웠다
아파트로 사랑방이 없어진 지금 사랑방 정신마저 사라진 걸까

 ‘사랑방’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어느새 가슴이 뭉클해진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한문 선생님의 훌륭하신 품격이 눈에 선해서, 아파트 생활 속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바로 그 사랑방 추억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싸늘해졌던 사랑방의 아랫목이 다시 따뜻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우용(宇鏞·필자의 아명)아”라고 외쳤다. 그 소리에 즉시 일어나지 않으면 여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비몽사몽 간에 이불을 개고 소꼬리 빗자루를 설렁설렁 휘저어 방을 쓸고는 요강을 들고 나가 거름에 부었다.

세수를 한 다음 할아버지가 써준 글자를 놓고 그대로 흉내 내 서른 번 이상 쓰기 연습을 했다. 아침을 먹기 전에 끝내야 했다. 그러고는 “왜 그리 게으르냐”는 할아버지의 호통을 들으며 소학(小學)을 소리 내 읽곤 했다. 할아버지는 허리춤에 장도(칼)를 차고 계셨는데 어린 마음에도 너무 멋져 보였다. 상아로 장식된 장도는 호신용이기도 하지만 주로 밤을 치거나 종이를 마름질할 때 쓰시곤 하셨다.

밤이 되면 촉수가 낮은 전깃불 아래 누워서 할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이고 야야, 살인이 났나. 왜 이리 바람이 오늘따라 요란하노.” 한겨울 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문풍지를 흔들면 할아버지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시곤, 이내 자리를 고쳐앉으셨다. 무언가 세상의 기운이 잘못돼 바람이 세차진 거라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대학시절에 공부하러 찾아간 안동 양반가의 사랑방은 우리 집과는 그 격(格)이 달랐다. 내가 배웠던 선생님은 ‘어부가’를 지은 이현보 선생의 16대 종손으로 안동에서도 손꼽히던 명문가였다. 선생님께 자주 들었던 어구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었다. 유가(儒家)의 학문을 바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우환의식(憂患意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을 만든 가치관은 바로 ‘선비 정신’이다.

선생님은 약속을 하면 그보다 먼저 만나는 장소에 나가 계시곤 했다. 그리고 종가를 방문하는 이가 있으면 비록 손아랫사람일지라도 얼른 횃대에 걸어두었던 두루마기를 꺼내셨다. 상대가 먼저 절을 하면 급하게 두루마기를 어깨에 얹곤 맞절을 하며 예를 표하셨다. ‘일체경지(一切敬之)’. 모든 대상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태도로, 선비로서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사랑방은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예절을 배우는 곳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사상견례(士相見禮)’라고 선비 간에 서로 인사하는 예절이 있었다. 명절 전후나, 또 문사(文事)가 있을 때면 그 일을 논의하고 글을 부탁하기 위해 한 분 또는 여러분이 함께 선생님을 찾아뵈러 왔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나를 불러 “이 어른께 인사하게, 이 어른은 어디 계시는 어떤 선현의 후손일세”라고 이르셨다. 내가 절을 하면, 상대 어르신은 “나는 어디 사는 누구이로되 나이로 보나, 위치는 못할세(존댓말은 하지 못하겠다는 의미)” 하셨다. 이름만 아니라 조상의 내력까지도 소상하게 얘기하면, 듣는 사람도 함께 그 집안에 대한 공경의 뜻을 표하는 것이었다.

사랑방에서는 으레 위좌(危坐·꿇어앉는 것)가 기본이었다. 요즘은 어른 앞에서도 책상다리를 하는 정좌(正坐)를 하지만, 어른의 다른 말씀이 있을 때까지 그렇게 꿇어앉아 있어야만 했다. 할아버지는 꿇어앉는 게 몸에 배어서인지 온종일 그렇게 앉아 계셔서 감탄이 절로 났다. 안동의 글 선생님께서도 그렇게 앉아 계시면서도 내게는 “편케 앉게” 하며 사정을 보아주시기도 했다.

사랑방은 선비의 방이었다. 사랑방 중심에는 선비상이, 그 옆에는 지필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랑방에는 먹 내음과 담배, 그리고 서책에서 풍기는 독특하고 묘한 냄새가 났다. 문자향(文字香·글자의 향기) 서권기(書卷氣·책에서 풍겨나는 기운)라는 문자처럼, 선생님의 사랑방 바람벽에는 매화 족자 그림 한 폭이 걸려있었다. 난해한 고사(故事)를 들추며 유창하게 고문(古文)을 해석해 주시던 노(老)선생님의 자태는 흡사 그 매화 그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랑방은 제사를 받들던 신성한 공간이기도 했다. 절하고 잔을 올리며 축문을 읽는 모든 장면 장면은 참으로 경건했고 격조가 있었다. 음복할 때도 시중에 떠도는 잡다한 이야기를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더러 말을 하면 조상에 대한 일화를 잠깐 언급해 자손들에게 교육하는 정도였다. ‘예(禮)는 질서’라고 하듯이 정말 모든 게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다.

외지에서 온 대학교수 한 분이 선생님 집을 찾았다가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마침 선생님의 자제 중 한명이 객지에서 공부하다 집에 왔다. 한겨울 추운 날씨에도 문밖 툇마루에서 부친께 큰절하는 것을 본 것이었다. 양반가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예절이었다. 나는 일흔이 넘은 대기업의 회장이 퇴근해 100세 가까운 부친에게 방문 밖에서 절을 한 뒤 방안으로 들어가 그날 있었던 일을 길게 말씀드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바로 선생님 댁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장면이었다.

사실 나도 정월 초하룻날에만 사랑방 문밖(거실)에서 부모님께 절하는 정도이지만 예전에는 문외배(門外拜·문밖에서 절을 함)가 기본이었다.

생각해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부모님께 절을 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있다.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해서도 절하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렇게 된 것은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경보다는 ‘내가 누군데…’라는 교만함이 움터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전에 사랑방에서 수양했던 어른들은 ‘내가’라는 그런 의식이 없었다.

도시의 아파트는 하나는 안방, 나머지는 아이들의 방이나 옷방 또는 수납공간으로 쓴다. 집안의 어른이 자리하고 앉았던 사랑방, 그곳에서 우리는 공부를, 예절을, 법도를 배우고 익혔다. 이제 사라진 사랑방처럼, 곰팡내 나는 그 추억처럼 그 사랑방 정신은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만물상] 잡스의 독설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를 하러 연단에 섰다. 검정 가운 아래로 청바지가 드러나 보였다. 흔히 희망과 용기를 말하는 졸업식에서 잡스는 죽음을 이야기했다. "삶의 최고 발명품은 죽음이다. 죽음은 인생을 바꾼다." 그는 자부심에 가득 찬 명문 스탠퍼드 졸업생들 앞에서 "내가 내린 최고 결정은 대학 자퇴"라고 했다. 그는 북서부 오리건주 리드대를 한 학기 만에 그만뒀다.

빌 게이츠는 2007년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빈곤 퇴치, 환경 보호를 말했다. 도덕적이고 우아한 연설이었지만 사람들은 잡스의 거친 스탠퍼드 축사에 더 열광했다. 잡스는 미혼모 아들이라는 사실을 공개했고 애플에서 쫓겨난 아픔, 췌장암과 싸운 얘기를 했다. 그리고는 "항상 배고파하라, 바보짓을 두려워 말라(Stay hungry. Stay foolish)"고 맺었다.

▶잡스는 1983년 "평생 설탕물이나 팔 거냐"는 자극적인 말로 펩시 사장 존 스컬리를 애플에 영입했다. 그러나 3년 뒤 고집스럽고 자기중심적인 잡스에게 질린 스컬리에게 도리어 쫓겨났다. 2000년 포천지 기자가 쓴 '잡스의 재림(再臨)'은 그를 독설가에 불안한 자기도취증 환자로 묘사했다. 애플로 복귀한 그가 직원들에게 모욕 주기를 즐겼고 '공포정치'로 회사를 겨우 살려냈다고 했다.

▶잡스는 96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성공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사람들이 (MS의) 삼류제품을 산다는 게 화가 난다"고 했다. 2006년엔 "MS가 연구개발에 50억달러를 쓰면서 구글과 애플을 베끼느라 바쁘다"고 했다. 엊그제 그가 애플의 9.7인치 태블릿PC에 맞서 삼성과 대만·캐나다 업체가 내놓을 7인치 제품을 가리켜 "나오자마자 DOA"라고 했다.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이미 사망(Dead On Arrival)'이라는 의료 용어를 쓴 독설이다.

▶잡스는 지난봄엔 "포르노를 보고 싶으면 (아이폰 경쟁제품인)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을 사라"고 했었다. 7월엔 아이폰4의 수신 결함이 불거지자 "삼성을 포함한 전체 스마트폰의 문제"라며 경쟁사들을 끌고 들어갔다. 그는 세일즈 최전선에 서서 거친 입으로 휘저어댄다. 그런 잡스를 미워할 수 없는 건 상처와 고통, 좌절을 이겨낸 인생사(史)가 그의 뒤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