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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이 만난 거인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일요신문 | 입력 2010.01.15 10:19

김운용 전 IOC 수석부위원장


[출처]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10&newsid=20100115101913431&p=ilyo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하면 누구나 차기 대선 후보 1순위로 꼽는다. 새해 초 모 일간지의 차기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 조사 결과 박근혜 전 대표가 32%, 2위가 9%였다.

 

 

얼마 전 일본 게이오대학 법대의 유명한 한국전문 석학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를 만났을 때 한국 정치 지도자 중 누구를 만나고 싶으냐고 물은 바 있다. 그런데 거의 노타임으로 "다른 사람은 제쳐놓고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놀랐다. 오코노기 교수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가 BBK 등으로 몹시 시달릴 때도 이번에는 당시 야당(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언을 한 사람이다. 오코노기 교수와 담소를 나눌 때 옆에는 게이오대학 한국연구소의 니시노 준야 교수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알려지기로는 대한민국의 유명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말로 인한 잡음이 없었으며 부패에 연루된 전력도 거의 없었다. 박 전 대표의 밸런스 있고, 강직한 그리고 신중한 태도는 안정적으로 한나라당을 이끄는 데 기여했고 '선거의 여왕'이라는 이명을 얻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1974년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8·15 경축식장에서 저격당하기 전에 서강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프랑스의 그르노블(Grenoble)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됐고, 이때는 비서실이 아닌 경호실장(박종규)과 청와대 보좌관(차장)인 내가 직접 주불대사관 노영찬 참사관과 협력해 동경을 경유해 안전하게 그르노블까지 가도록 안내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김포비행장까지 전송을 나왔는데 육영수 영부인과는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르노블에 있는 동안 어쩌다가 육 여사가 딸에게 전화를 걸려고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청와대 내에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육 여사가 나한테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는데, 나도 그 당시에는 프랑스어 실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 힘들게 전화를 걸어보면 어떤 프랑스 여인이 "박근혜 씨는 외출 중"이라고 말해줬다. 시차도 있고 하여 서울의 오후는 그르노블의 아침이라 등교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외출 중입니다"라고 보고하고 나도 퇴근했던 기억이 몇 차례 있다. 부족했던 불어 실력이 탄로가 안 나서 다행이었다. 불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때 국제전화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거는 것 자체가 복잡했고, 통화음질도 나빴다. 겨우 거는 수준이었다.


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8·15경축식전에서 육 여사는 저격당했고 병원에서 운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다행히 연단 밑에 몸을 숨겨 문세광의 총탄을 피할 수 있었다. 이때 단상에는 정일권 국회의장, 양택식 서울시장, 김정렴 비서실장, 조상호 의전비서관, 박종규 경호실장이 있었는데 저격이 발생하자 박종규 경호실장만이 권총을 뽑고 응사했다. 이때 모든 조명이 무대를 향해 있어서 무대에서 관중석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 후 박종규 경호실장한테 내가 그와 같은 상황에서 응사하게 된다면 지그재그로 뛰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총탄에 맞는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 무렵 김종필 총리는 서산에서 휴가 중이라 서울에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당시 대통령의 연설대다.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총탄은 연설대에 맞았다. 그때만 해도 대통령 연단은 보통의 허술한 나무로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데 한 해 전인 1973년 박종규 경호실장과 필자가 닉슨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갔을 때 투명유리로 된 연단을 보았다. 모든 각도에서 사격을 해도 안 맞게 돼 있는 방탄유리라고 해서 마냥 부러워했었다. 당장 도입하고 싶었지만 그때 가격이 10만 달러나 돼 예산이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대통령 연단 속에 그냥 철판을 깔았는데 이것이 결국 문세광의 총탄으로부터 박정희 대통령을 보호해준 셈이 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연단 밑에 몸을 숨겼다가 다시 일어서서 연설을 마쳐 그 의연한 태도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역사는 아주 작은 것 하나로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든 8·15 사고 이후 청와대는 곧 프랑스로 박근혜 영애의 귀국을 타전했고 박근혜 영애는 둘째 날 이후부터 조문객을 맞이했다. 당시 귀국 직후 박근혜 영애가 한 "휴전선은 이상 없습니까?"라는 질문은 그의 애국심을 높이 평가하게 하는 일화가 됐다. 장례식 날에는 많은 청와대 직원들이 눈물을 터뜨렸다. 마당에서 경호실과 비서실 직원이 합동 추모식을 가진 후 정문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두 줄로 배웅을 했다. 박종규 경호실장은 대통령을 수행했다. 그래서 경호실은 내가 제일 앞에, 비서실은 다른 수석이 앞에 섰는데 이때 대통령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참고로 저격사건이 난 8월 15일은 경축행사, 지하철 개통식 등 대통령이 다섯 군데나 행사에 참석하도록 스케줄이 짜여 있었다. 이를 경호실은 행정요원까지 총 200명으로 감당해야 했으니 결국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그 후 박근혜 영애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영국의 앤 공주가 아동구호기금을 운영했듯이 새마음재단을 운영하여 불우이웃돕기에도 힘을 썼다. 개인적으로 몇 차례 만난 바 있는 미국의 클린턴 여사가 퍼스트레이디 때 수업한 경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상원의원, 대통령 후보, 국무장관으로 이어진 것과 흡사한 느낌이다.


1974년 저격사건은 내 개인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그날 나는 청와대 경호실의 상황실에서 근무했다). '피스톨 박(실제로 대한사격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으로 유명한 박종규 경호실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면서 나도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당시 사표를 수리하던 박 대통령은 "임자는 (청와대를) 나갈 필요가 없는데…, 좀 쉬고 있어"라며 전별금 봉투를 건네줬다. 제법 '두툼한' 액수였다. 어쨌든 청와대를 나오면서 태권도와 스포츠외교에 전념하게 됐으니 새옹지마라고 할 수 있겠다.


1979년 박 대통령 서거 후에 신당동 사저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그때도 흐트러짐 없이 육 여사처럼 당당하고 고매한 인상을 주었다.


2000년 내가 국회에 입문하면서 다시 박근혜 '의원'을 만났다.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2년간 함께 활동했다. 언제나 준비되어 있고, 밸런스가 있고, 무게가 있음을 느꼈다.


다음해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에 박근혜, 한승수, 유재건, 필자가 공식 대표로 참석했다. 박근혜 의원이 워싱턴의 의사당 광장에서 무척 피곤한 모습을 보여서 유재건 의원과 대사관 차를 불러 호텔로 안내한 일이 기억난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모든 행사에 한복으로 일관했다. 여자 혼자라 외롭고 조심스러웠을 것으로 생각됐다. 그 와중에도 늘 미국의 강대국 정치를 공부하는 듯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또 2001년 국정감사 때 미국과 캐나다에 김종하 부의장과 박근혜 의원 등과 함께 동행한 바 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늘 확증에 의한 적절한 질문, 적절한 지적 그리고 적절한 몸가짐, 적절한 의연함을 보여줘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때도 지금 못지않은 카리스마도 갖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따라 평양의 남북정상회담(2000년)을 수행했는데 당시 만찬석상에서 한철해, 조경석 대장 등 북한의 군사위원회 의원들에게 한국 역대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독재는 했지만 경제개발과 근대화를 이룩하여 재평가합네다"라는 예상외의 긍정적인 답변이 나와 깜짝 놀랐다. 그 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002년 5월에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회담을 하였다고 들었다. 우연은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곤욕을 치르고 나온 필자에게 2008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복권이 발표됐다. 그 직후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려울 때 못 도와드려 죄송합니다"라고.


그리고 지난해 8월 5개월간의 < 중앙일보 > 연재를 끝내고 "미련한 사람은 자기경험에서 길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 길을 찾는다"라는 단행본을 발간하게 돼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지인들을 초대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한병기 전 대사 내외였다. 한 전 대사는 당초 강원도 속초에 갈 일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그날 갑자기 속초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못 온다더니 웬 일이냐"고 물었더니 "박근혜 전 대표가 이틀 전에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유럽으로 떠나면서 자기는 (출판기념회에) 참석을 못하니 대신 좀 참석하는 게 어떠냐고 해서 올라오는 중"이라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까지 꼼꼼히 챙기는 섬세함을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한다.


박 전 대표는 말이 많지 않고, 아주 신중한 사람이다. 얼마 전 체육계의 한 후배로부터 박 전 대표가 어떤 호칭으로 나를 부르냐는 질문을 받았다. 잘들 몰라서 그러는데 박근혜 전 대표는 워낙에 말수가 적다 보니 상대의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는 굳이 호칭을 써야 할 상황에서는 함께 의원생활을 했기에 "김 의원님"이라고 한다. 또 거의 40년이 다 돼가는 1970년대초 청와대 시절에도 호칭 사용은 많지 않았고, 필요할 때는 직함(보좌관)과 영애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박근혜 영애'라는 표현을 써보니 느낌이 새롭기만 하다. 그의 조국을 위한 긴 여정에 행운과 성공이 있기를 빈다.

김운용 전 IOC 수석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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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100세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의 장수 비결[중앙일보] 입력 2010.11.13 00:12

‘건강한 신체서 건강한 정신’은 옛말 마음의 건강부터 유지하세요

 
의료의 발달로 사람의 수명이 대폭 늘어났지만 100세까지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물며 100세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런 점에서 일본 성누가국제(聖路加國際) 병원의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100) 이사장은 ‘수퍼 할아버지’다.

 오전 6시30분 기상, 오전 8시 출근 후 각종 회의, 오후에는 강연·회진·특별외래, 저녁 6~9시 귀가, 밤 11시~새벽 2시까지 서류 정리나 글쓰기. 히노하라 이사장의 하루 일과다. 여기에다 지금도 국내외에서 연간 100건 이상 강연하러 다닌다. 게다가 2시간 가까이 꼿꼿이 서서 강연한다. 최근 가천의과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한국에 온 그를 인천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정정한 모습이었다. 기자가 “타고난 체력이 대단하시네요”라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나이로 보면 올해 10월 4일로 100세가 됐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매우 허약해 내가 100세까지 살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지요.”

● 정말 의외인데요.

 “어릴 때는 운동을 좋아했는데 열 살 때 신장염을 앓아 모두 포기했어요. 의대에 들어간 후에는 결핵에 걸려 몇 년간 요양했어요. 그래서 남들은 내가 의사를 못 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지요.”

● 그런데 어떻게 지금은 이렇게 건강하시지요.

 “체질도 변해요. 특히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따라 건강이 달라져요. 저는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해선 식사, 습관, 마음의 삼위일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식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요.

 “음식을 검소하게 먹는 것이 좋아요. 당뇨와 같은 성인병은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나쁜 식사 습관은 어떤 질병보다 치명적이에요. 동물성 지방, 설탕, 소금 섭취는 가능한 한 줄이고 우유나 정어리 등 작은 생선, 콩류, 야채 등을 매일 먹는 것이 좋아요.”

● 좋은 생활습관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잘 움직이기’ ‘잘 먹기’ ‘잘 쉬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운동부족은 노화의 지름길이에요. 걷기는 근육을 단련시키고, 심장과 폐의 기능을 강화해 주고, 뇌의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요. 저는 1주일에 1~3회 출장을 가는데, 역이나 공항에서 6~8㎏의 짐을 들고 항상 걸어갑니다. 집에선 한쪽 다리로 바지를 입기도 하지요. 복식호흡, 음악감상, 명상, 일기나 편지 쓰기 등도 권하고 싶어요. 또 자신의 나쁜 습관을 알아보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 선생님은 나이가 들수록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는데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노화와 장수 비결을 관찰했더니 신체와는 관련이 적고 마음의 건강이 영향을 미쳤어요.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는 말은 옛말입니다. 의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요. 앞으로 장수 비결은 신체보다 정신건강 유지에서 찾아야 합니다.”

● 정신건강은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저는 2000년 일본에서 ‘신노인운동’을 시작했어요. 현재 회원이 1만2000명이에요.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의 나이에 대한 정의를 65세 이상에서 75세 이상으로 연장하고, 노인들도 자신의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였어요. 노인이 사회의 보호를 받는 대상에서 사회에 봉사하는 주체가 되자는 것이었어요. 또 노인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사랑 주고받기, 도전하기, 인내하기’를 실천하자고 강조했어요. 노인들 스스로 ‘올드(old)’라는 부정적 의미보다는 존경의 의미가 있는 ‘엘더(elder)’로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 도전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은퇴 후에 갑자기 확 늙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현역에서 물러나면 새로운 일을 해보세요. 신노인회 회원 중에는 70~80세에도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일을 배우고, 학교에서 자원봉사하면서 어린애들과 어울리는 사람이 많아요. 나이를 먹을수록 정열, 꿈,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스트레스가 없는 평온한 노인이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니에요. 적절한 수준의 ‘좋은 스트레스’는 종종 필요해요. 저는 마감일에 쫓겨 새벽까지 원고를 쓸 때가 많아요. 피곤함보다는 달성감으로 몸과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공항에선 움직이는 벨트 옆을 빨리 걷습니다. 숨이 차기도 하지만 벨트 위의 사람들을 추월하면 ‘해냈다’는 달성감에 흥분됩니다. 또한 누군가에게 칭찬하고, 인사를 받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모두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힘입니다.”

● 나이가 들면 병에 많이 걸리고, 가족 문제 등 어려운 여건에 처하기도 하는데요.

 “흔히 사람들은 중병에 걸리면 온종일 그 병만 생각하고 공포로 인해 병이 악화됩니다. 이럴 때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60대 중반의 암환자가 있었어요. 너무나 무서워하기에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했어요. 그랬더니 병도 좋아지고 10년 뒤에는 화가가 됐어요. 병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요. 나도 정밀검사를 받으면 심장에 동맥경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건강하다고 생각하니까 큰 문제 없어요. 혈당치, 콜레스테롤, 혈압 등의 수치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세요. 건강은 자신이 받아들이는 ‘건강한 느낌’과 어떤 환경에도 잘 순응하는 ‘적응력’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파랑새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거예요.”

● 그래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긴 힘들지 않습니까.

 “누구나 죽습니다.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칠 수 있어요. 매년 1년 후에 죽는다고 생각한 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정해서 행동해 보세요. 오히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후회하지 말고 미리 죽음을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59세 때 일본 적군파가 비행기를 납치해서 북한으로 갔던 요도호 사건을 직접 겪었어요. 그때 4일간 억류됐다가 김포공항에 내려 땅을 밟을 때 느꼈던 감촉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그때부터 죽었던 삶을 새로 산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그리고 누구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 좋아요. 통증 완화를 위해 모르핀을 투여한 혼수상태로 죽음을 맞기보다는 건강한 마음으로 미리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지요.”

오대영 선임기자

히노하라 박사 약력

● 1911년 일본 야마구치현 출생

● 1937년 교토대학 의학부 졸업

● 1992~96년 聖路加(St. Luke) 국제병원 원장

● 2009년 현재 (재)라이프 플래닝 센터 이사장
聖路加(St. Luke) 국제병원 이사장 겸 명예원장

● 2005년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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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은사님이신 최명 선생님(서울대 명예교수)이 선배들과 학소도에 오셨다.

옛 생각도 많이 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애주가이신 선생님이 학소도의 '스마일주'를 특히 좋아하셔서

대접도 별로 못해드렸는데 그나마 약간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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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