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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책이 지난 금요일(2010. 11. 19) 출간됐다.

첫 책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이 나온 이후 11년 만이다.

1999년, 나는 글쓰기에 대한 강열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열정의 실체에 대해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봐도 그렇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당시 나는 글을 쓰는 것보다 안 쓰는 게 더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이다.

한 묶음의 원고가 책으로 세상에 나온 뒤

나는 한동안 글을 계속 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이상 글을 쓴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 한 귄의 책에 이미 나는 내가 쓰고 싶던 대부분을 담았고,

더 이상 쓰려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글을 쥐어짜야했다.

더 이상 자연스럽게 글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회사를 창업하고 사업도 시작했다.

그렇게 11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소리 없이, 너무나도 빨리.

 

금년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습하고 더웠다. 몸은 지치고 쳐졌다.

문득 글이 쓰고 싶어졌다.

가벼우면서 무거운, 재밌으면서 의미가 담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습기와 더위를 피해

광화문 사무실 근처 단골 카페에서

저녁과 주말을 글을 쓰며 보냈다.

막상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

한 달이 지나자 원고분량이 꽤 됐다.

내가 그렇게 빨리 그리고 많이 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내용도 대부분 마음에 들었다.

글을 쓴 내가 반복해서 읽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럼 됐다.

중앙대 박철화 교수의 소개로 출판사 '마음산책'을 만났고,

나는 예쁜 책을 부탁했다.

그리고 약 6주 뒤, 책이 나왔다.

가벼우면서 무거운, 재밌으면서 의미가 담긴 한 권의 예쁜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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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과 삶]70여개국 누빈 청년 방랑자, 낡아서 더 정겨운 도심 주택 정착기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경향신문>
“내 쉴 곳은 고향집뿐이리”

▲ 여행자의 옛집… 최범석 | 마음산책

<여행자의 옛집>은 얼마든지 A4 용지 한 장의 수필로도 끝날 수 있는 이야기다. 아니, 그저 몇 줄로도 요약이 가능하다. 20여년간 전 세계를 떠돌던 청년이 어린 시절 살던 고향집으로 돌아와 낡은 집을 이리저리 고쳐 산다는 내용이다.

 
그 고향집은 뼈대 있는 가문에서 수백년 동안 내려온 고옥도 아니고, 그 집을 호화스럽게 리모델링한 것도 아니다.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처럼 도시와 단절된 곳도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 가까운 인왕산 홍제동 아파트 단지 안, 그것도 40년 전 부모님이 지은 집에 새로 페인트칠하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산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진돗개를 기르며 사는 총각이 쓴 자기 집 이야기가 너무나 아름답고 정겹고 뭉클하다. 심지어 ‘나의 존재감과 내가 진정 사랑하는 무엇’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내가 태어나 살았던 집의 구조, 마당에 심어진 나무들의 안부도 궁금해진다.

저자 최범석씨는 서울 인왕산 자락,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독일로 떠났다. 그후 학업과 일로 20여년간 세계 70여개국을 여행할 만큼 역마살이 가득한 사람이다. 1999년 귀국해 다시 여행병이 도질 때쯤, 방치로 거의 폐허가 된 생가를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세계의 유목민’을 자처하던 그가 도심이지만 섬같이 황량한 그곳을 ‘학소도(학이 머무는 섬)’라 이름짓고 로빈슨 크루소나 허클베리 핀 같은 모험과 도전을 하며 평화로운 쉼터로 만드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낡은 집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이다.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서점’이란 명소에서도 살았고,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등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곳에서도 살았으며 현재 글로벌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하는 그가 새로 가꾼 집. 그 집은 편리한 가구와 첨단 자재로 만든 것이 아니다. 집의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텃밭을 가꿔 채소를 길러 먹고, 온갖 나무를 심어 그 꽃들로 계절의 변화를 알고 그 열매들로 술을 담그는 ‘자연 그 자체’인 집이다. 때론 혼자 텃밭에서 따온 허브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가끔은 친구들을 초대해 자신이 수확한 재료들로 소박하지만 풍성한 식탁을 마련한다. 또 월드컵 중계를 볼 때도 서울 복판이 다 보이는 옥상에 올라가 단체응원을 해서 ‘학소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명소가 됐다.

도서관 사서, 서점 직원, 영어·독일어 통역, 대기업 해외지사 등의 다양한 직업이 말해주듯 그의 독서 편력도 다채롭다. 자기 집을 꾸민 이야기를 전하면서 오딧세이부터 밀란 쿤데라, 마크 트웨인은 물론 조선시대 선비의 글 등 고향과 집에 관련한 글도 풍성하게 인용했다.

수시로 재개발이며 뉴타운으로 변하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살던 고향집을 유지하는 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이 책이 말하는 ‘집’과 ‘고향’은 동구 밖에 큰 나무가 서 있고 자글자글 끓는 온돌방에서 고구마를 먹는 추억의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도심에서도, 황량한 회색의 아파트에서도 얼마든지 화분 하나, 추억 어린 그림 한 점 등으로 자연스럽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자기다운 삶’의 의미를 돌아보라고 전한다. “자기 집에서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다”는 독일 문호 괴테의 말처럼, 그는 어쩜 가장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비록 행복을 공유할 아내는 아직 못 만났지만….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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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책읽기> <문화일보>

‘도심 속의 별난 섬’ 홍제동 나의 집
여행자의 옛집 / 최범석 지음 / 마음산책

그는 태어나서 자란 곳,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아파트단지 안의 단독주택고향집으로 부른다. 서울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을 따라 독일, 미국서 학창시절을 보내다 20년 만에 돌아온 옛집에 당호(堂號)까지 붙였다. ‘학의 둥지가 있는 섬’이라는 학소도(鶴巢島)다.

해외생활 중 세계 70여개국을 여행하는 등 한곳에 머물지 않고 방랑하던 ‘신세대 유목민’은 그러나 대도시 서울에서 고향집의 추억과 평화에 빠져 11년여 살고 있다. 폐가 같던 홍제동의 낡은 집에 버려진 가구와 물건을 들여다 놓으며 삭막한 도심 속에서 별난 섬 같은 생활을 실현했다.

마당에 텃밭과 정원을 만들고 집에 직접 칠을 하고 매만져 특별한 공간을 꾸몄다. 회사일로 바쁜 일상 속에도 저자는 채소와 꽃나무를 키우고 개들을 기르며 자신만의 공간을 일궈냈다. 인왕산자락의 낡은 집을 따뜻한 비밀의 정원으로 바꿔 버린 사연에서 고향과 고향집을 만날 수 있다.

[한줄읽기] <조선일보>

여행자의 옛집(최범석 지음)=독일과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세계 70여개 나라를 여행한 저자가 20년 만에 자신이 태어난 서울 홍제동 옛집으로 돌아와 터를 잡고 살면서 깨달은 것들. 마음산책, 1만2000원.

일하는 뇌(데이비드 록 지음, 이경아 옮김)=왜 일 못하는 직장인은 출근하자마자 이메일부터 확인할까? 업무능력을 향상시키려면 '일머리'를 계발하라. 랜덤하우스, 1만3800원.

꿈PD 채인영입니다(채인영 지음)=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수많은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꿈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을 소개한다. 샨티, 1만3000원.

중앙SUNDAY


남회귀선
저자 박길룡
출판사 한길사
가격 2만2000원
라틴아메리카는 잉카와 마야라는 고대문명의 터전이자 스페인<20A9>포르투갈의 식민 통치를 겪어낸 토착 문화와 라틴 문화, 모더니즘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곳의 성모상은 백인 여인뿐 아니라 흑인도 있고 혼혈도 있다. 건축가 박길룡이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간 축 위에 유럽과 라틴아메리카를 잇는 문화 교차의 현장을 건축이라는 창으로 들여다봤다.


여행자의 옛집
저자 최범석
출판사 마음산책
가격 1만2000원
서울 도심 인왕산 자락의 낡은 집 ‘학소도’. 독일과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20대에 70개국을 여행한 ‘신세대 유목민’ 최범석이 20년 만에 돌아온 ‘고향집’이다. 장작으로 난로를 때고, 나무열매로 과실주를 담그며, 농부도 되고 시인도 되게 해주는 그의 집은 현실과 동떨어진 도피처가 아니라 밖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가장 솔직한 자아를 실현하는 공간이다.

고향집에서 발견한 기쁨과 깨달음
세계를 떠돌던 한 남자의 이색 '여행'
2010년 12월 06일 (월) 00:34:23 유현수 시민기자 hellogana@hanmail.net
   


[북데일리] “어떤 경로를 통해서, 어떤 형태의 합리성과 역사적 조건을 통해서 인간 주체는 그 자신을 지식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이것이 나의 질문이다. 주체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 주체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미셸 푸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대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놓치지 않으려고 움켜쥐고 있는 것들 가운데 나를 진정으로 나답게 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하루하루 허무한 굴욕들로 포장하며 살고 있지만 무엇을 위한 굴욕인가?

<여행자의 옛집>(2010, 마음산책)은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독일 본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전 세계 70여개국을 여행하던 한 남자가 자신이 태어난 집에 정착하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 에세이집이다. 저자 최범석씨는 20년 만에 돌아온 자신의 옛집에 학소도(鶴巢島)라고 하는 당호(堂號)까지 붙였는데 학의 보금자리가 있는 섬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에게 학소도는 종착역이 아닌, 새로운 출발이다.

“그렇게 많은 집을 거처 세계를 돌고 돌아 20년 만에 고향집으로 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중략) 운명이라 불러도 좋다. 중요한 건 내가 고향집에서 삶을 계속 이어간다는 사실, 그리고 이곳에서 계획에도 없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 P54

저자는 자신의 저택에서 정원을 가꾸며 흙으로부터 삶의 중요한 깨달음을 배워간다. 그가 부른 어느 작가 미상의 시에 그 깨달음이 잘 녹아있다. “발에는 흙을 / 손에는 연장을 / 눈에는 꽃을 / 귀에는 새소리를 / 코에는 풀 냄새를 / 입에는 미소를 / 가슴에는 노래를 / 피부에는 땀을 / 마음에는 바람을.” P127

여기까지 읽으면 저자는 그의 옛집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은 듯 보인다. 그러나 자아의 일부를 찾았을 뿐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자유라고 말하지만 결국 외롭다.

“지금 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꼽는다면 그건 아마도 자유가 아닐까? 그리고 자유의 그림자는 고독이다. 자유를 원하면서 외로움을 거부할 수는 없다. (중략) 최소한 내가 알고 있는 자유는 그렇다. 자유를 원하는가? 그럼 외로움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내가 20대 시절부터 스스로에게 던져온 말이다.” P180

정원이 딸린 집, 학소도는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섬이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가 땅을 파고 물을 부어 섬을 만든 뒤 이 땅은 내 땅이라고 선언한 격이다. 그 섬에서 죄수는 진정 자유를 얻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셸 푸코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의 규율, 권력을 탐구한 ‘감시와 처벌’이란 저서에서 ‘죄수의 첫 번째 의무는 탈옥’이라고 주창했다.

   

여행자의 옛집
   
   최범석. 마음산책. 1만2000원
   
   세계 70여개 나라를 여행한 방랑자의 귀거래사(歸去來辭). 15년가량 해외에 머물다 귀국한 1999년, 저자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서울 홍제동 옛집에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학소도’라는 이름을 짓고, 마당에 채소를 가꿨다. 대도시 안에서 자기 내면으로 떠난 또 다른 여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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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 탈북자 2만 시대 '하나원'

강철환·동북아연구소 연구위원 nkch@chosun.com

강철환·동북아연구소 연구위원

1992년 기자가 탈북할 당시 탈북자는 극소수였다. 일반 탈북자는 거의 없고 고위층이나 유학생, 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별도의 수용시설 없이 국정원 안가(安家) 같은 곳에 분산 수용돼 조사를 받고 사회로 나왔다.

당시 조사는 매우 엄격했고 정착 교육 같은 것은 따로 없었다. 그 기간도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렸다. 엄격한 조사와 그 안에서의 생활은 큰 스트레스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엄격한 생활이 오히려 자유 사회인 남한 생활에 적응하는 데 더 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북한 같은 통제사회에서 갑자기 자유사회로 오면 모든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책임지는 자유'라는 것을 인식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무법천지 사회에서 온 탈북자들이 법과 질서를 배워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2000년 초 하나원이 처음 생겼을 때 친구 면회를 간 적이 있었다. 기자 때에 비해 너무나 호화로운 환경이었다. 당시 하나원은 엄격하지 않았다. 밤마다 몰래 술판이 벌어졌고 남녀 간 연애 문제에 살벌한 싸움판이 하루건너 한 번씩 벌어지기도 했다. 시설은 좋았지만 이런 식의 교육은 탈북자들의 정착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나원 교육에 대해선 많은 도움이 됐다는 탈북자도 있고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기본적인 사회 교육과 컴퓨터, 영어, 운전면허 같은 교육은 사실 탈북자 생존을 위해 절실한 것이다. 하나원 교육이 도움이 됐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한국 사회에 빨리 적응한 편이었다.

하나원이 도움이 안 됐다는 사람들 일부가 하나원을 '감옥'이라 표현했다고 해서 물의가 일고 있다. 가족 간의 면회나 외출 등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그렇다 해도 감옥이란 것은 지나친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원에 문제가 없지는 않다. 탈북자 출신의 하나원 보조교사들이 한꺼번에 쫓겨났다. 남한 사람에게 말 못할 사연도 같은 동향 사람을 만나면 쉽게 터놓게 되는 장점 때문에 하나원 내 탈북자 보조교사들은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해고됐다.

지금 탈북자들이 하나원 교육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것은 장기간 외국에서의 도피 생활과 북한에서의 통제 때문에 하루빨리 자유를 누리고 싶은 욕망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를 얻기 앞서서 한국 사회를 하나라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 정착은 어려워질 수 있다. 하나원 교육은 탈북자 개인의 취향이나 요구보다 공공의 이익이 더 우선될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 제약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면회 정도는 사전 통보나 협의에 따라 허용해줬으면 한다. 먼저 정착한 선배들의 경험담도 새로 온 탈북자들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탈북자 2만명 시대를 맞아 하나원 교육 내용도 한 번쯤 점검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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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살육했던 한국 삽살개, 멸종위기 탈출"

  로이터통신 웹사이트 캡쳐

로이터통신 소개, "전래동화에도 나오는 충성스런 개"

영국의 로이터통신이 한국의 토종 ‘삽살개’(일명 삽사리)가 멸종 위기에서 벗어난 사연을 집중 조명했다.

16일 로이터통신은 ‘한국의 삽살개가 벼랑 끝에서 다시 회복했다’(Korean Sapsaree dogs bounce back from the brink)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민족 고유의 삽살개가 왜 멸종위기에 처했었고, 어떻게 다시 번식에 성공했는지를 소개했다.

기사를 쓴 로이터통신의 강형원 수석 에디터는 “삽살개는 충성심 강한 한국의 전통견으로, 한국인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면서 “그러나 일제 강점기때 일본군들이 만주지역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털많은 삽살개를 대거 도살해 겨울코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의 대대적인 도살과 광복 후의 가난했던 시기를 거치면서 삽살개는 눈에 띄게 숫자가 줄어들었다. 키 46~56cm에 몸무게 16~26kg 정도의 이 털많은 동물은 1980년대가 되자 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보기 힘들어졌다.

삽살개를 멸종위기에서 구한 사람은 경북대 생명과학부 하지홍 교수였다. 하 교수의 아버지는 1960년대부터 삽살개 보호를 위해 30여마리를 키워왔는데, 1980년대에는 고작 8마리만 남은 상태였다. 미국에서 유전학을 전공한 하 교수는 1985년 귀국 직후 사재(私財)를 털어 삽살개 복원에 나섰다.

“교수 월급으로 하기 힘든 일”이라는 아버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하 교수는 논밭을 다 처분하면서까지 삽살개 복원에 매달렸다. 그는 모든 삽살개로부터 DNA를 뽑아내 번식에 방해되는 형질을 없앴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1992년 삽살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서 자금을 대기 시작했다.

덕분에 현재 삽살개는 전국에 1200여마리가 살아갈 정도로 번식에 성공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하 교수는 지금은 ‘삽살개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사연을 소개하면서 통신은 “삽살개는 한국 전래동화에서 ‘주인을 구한 개’로 나올만큼 충성스러운 동물”이라며 “삽살개라는 이름은 ‘악귀와 불행을 막아준다’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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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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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과 창경군을 다녀왔다.

한국의 아름다움, 가을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1년에 4차례, 계절이 바뀔 때 마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진은 아이폰4로 찍었는데,

의외로 괜찮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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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