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去來辭(귀거래사) 陶淵明(도연명)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奚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僮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影翳翳以將入 영예예이장입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아,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박일봉 옮김)

 

중국 동진(東晋) ·송(宋)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의 대표적 작품. 405년 

405년(진나라 의회1) 그가 41세 때, 최후의 관직인 팽택현(彭澤縣)의 지사(知事) 자리를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서, 세속과의 결별을 진술한 선언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4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다른 각운(脚韻)을 밟고 있다. 제1장은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정신 해방으로 간주하여 읊었고, 제2장은 그리운 고향집에 도착하여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으며, 제3장은 세속과의 절연선언(絶緣宣言)을 포함,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았으며, 제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쓰는 동기를 그 서문에서 밝혔는데, 거기에는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나,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의 《도연명전(陶淵明傳)》에는, 감독관의 순시를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5말의 쌀, 즉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날로 사직하였다고 전한다. 이 작품은 도연명의 기개를 나타내는 이와 같은 일화와 함께 은둔을 선언한 일생의 한 절정을 장식한 작품이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파주에 있는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가

1번 국도를 타고 임진각에 갔다.

어릴 때 가족들과 간 이후 처음이 아닌가 한다.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별로 볼 것도 없었다.

아이폰으로 사진 찍고 앱으로 장난 좀 쳐봤다.

해외의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인기가 높은 사진이다. 제목은 “우리는 형제. 엄마가 달라요”. 형인지 동생인지 알 수 없지만 한 쪽이 다른 쪽의 머리통 크기밖에는 안 된다. 아버지는 같아 외모는 똑 같지만 엄마가 달라 크기만 다르다는 것이다. 코믹한 사진에 재미있는 설명이다.

[Why][김윤덕의 사람人] 현각이 한국을 떠난 까닭은?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명성 때문에 내 수행이 쇼가 됐다"
종교는 신앙 아닌 윤리로 가야…석가모니는 불자가 아니었고 예수도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형태일 뿐 베푸는 마음 실천해야 참종교다
지난달 경기도의 한 조계종 선원에 '와~' 하고 환호성이 터졌다. 푸른 눈의 외국인 승려를 향한 것이었다.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는 요청도 쏟아졌다. 무시한 채 문을 나서려던 승려가 돌아서서 버럭 소릴 지른다. "이 못생긴 미국 상놈 봐서 뭐해요? 거울에 비친 당신 자신, '참나'를 봐야지!"

이틀 뒤 승려는 서울 방배동 불교TV 법회장에 나타났다. 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를 성큼성큼 가로지른 승려는 높은 단상 위로 몸을 날리더니 눈 깜짝할 새 가부좌를 틀었다. 승려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세상에서 이 자세가 제일 편해, 정말 좋아요."

현각(玄覺·46). 하버드대 출신의 선승(禪僧)이라 하여 세상 이목을 집중시켰고, 28세 꽃 같은 나이에 삭발하고 출가한 사연을 적은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출간, 한국 불교계에 일약 '스타'로 떠오른 승려. 동그란 금속테 안경을 쓰고 참선하는 그의 사진(김홍희 작)은 일반에도 선명히 각인되어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국내든 국외든 그가 여는 법회에는 수백 명의 대중이 몰렸고, 법회가 끝나면 그를 친견하려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랬던 현각이 돌연 한국을 떠났다. 2008년의 일이다. 명분은 '유럽 만행(萬行)'이었지만, 스님은 "스승이신 숭산스님이 입적(2004년)한 날부터 한국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폭풍(perfect storm)처럼 몰아닥친 명성"이었다. "수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쇼'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요." 한국을 떠난 그는 유럽 만행을 거쳐 2009년 독일 뮌헨에 정착, '불이선원'이라는 선방을 개원했다.

G20 정상회의를 기념해 열린 '세계종교지도자대회' 참석차 지난달 서울에 온 스님을 만나 '만행' 이후의 이야기를 들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겼지만 20대 청년처럼 여전히 혈기왕성한 스님은 특유의 직설화법과 유머, 거침없는 제스처로 시원시원한 답변을 내놨다. 난처한 질문에는 '선문답'으로 응수했다.


"길[道]은 걸어가야만 높은지 낮은지 비로소 알 수 있다.”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그 보편적인 윤리의‘실천’으로 가야 참종교라고 강조하는 현각스님. 모처럼 한국에 온 스님의 하루는 바빴다. 스님을 찾는 곳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불교TV 법회가 끝난 뒤 간신히 촬영 시간을 얻었다. 스님은 웃지 않았다. 외로워지고 싶은 수행자의 생활이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탓이었을까.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참종교? 배고픈 자에게 밥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 주시라.”현각스님의 법회는 언제나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눈빛, 제스처, 거침없는 웅변은 불자는 물론 일반 대중들을 사로잡는다. / 이진한 기자
못생긴 미국 상놈 봐서 뭐해요?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서 말씀을 너무 짧게 하시더라. 모처럼 스님 말씀 들으러 온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선승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회에서) 프랑스에서 온 패널 한 분이 대단한 말씀을 하셨다. 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것. 맞는 말이다. 우리는 종교를 버려야 한다. 평화 대신 전쟁, 갈등과 환경만 파괴하는 종교는 이제 버려야 한다. 2010년이 되었는데 인간이 여전히 종교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스님 또한 불교에 몸담고 계시지 않나.

"이건 껍질일 뿐이다. 석가모니는 불자가 아니었다. 예수도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종교를 만들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개신교의 가르침은 많은 부분 예수 이후에 생긴 것들이다. 종교가 종교다워지려면 보편적 윤리, 사랑하고 베푸는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말은, 예수나 부처에 대한 신격화 혹은 숭배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형태일 뿐이다. 종교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생활에서 실천해 나갈 때 참종교가 된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씀은 '나의 말을 믿지 마라, 내가 말했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였다. 맹목적인 믿음은 종교의 독이다."

―왜 한국을 떠나셨나.

"아까 보지 않았나. 법당에서 기도하시던 분들이 연예인이 온 줄 알고 달려나오더라. 내 죄다. 애초에 내가 무슨 계획을 세워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만, 수행자로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매스컴을 통해 갑자기 유명해지니 법회, 특강, 주례,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회의가 들었다."

―하버드 출신이라는 것, 외모가 출중하다는 것이 폭풍인기에 한몫했다.

"그래서 창피했다. 수행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겉모습은 사람들에게 유혹만 주었다. 일본에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사랑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칼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했다. 내가 그 비구니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말라. 비슷한 심정이었다는 얘기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하셨나.

"2004년 숭산 스님 열반하시던 날. 바로 떠났어야 했는데 한국 불교의 세계화라는 은사 스님의 일이 안정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한국 불교계와 갈등이 있었나.

"그렇지 않다."

―일부에서는 현각을 마뜩잖게 여기는 한국 스님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더라.

"모르겠다. 만일 그랬다면 나의 스님답지 않은 언행,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회할 때 하도 요란스럽게 하니까 주위에서 '스님이 그러시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말했다. 나는 한국 스님 되려고 온 거 아니다. 참나를 찾으러 왔다." ―스님은 늘 한국 불교를 예찬만 하시더라. 떠나 계시니 이제 쓴소리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가르침만 받았다.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러지 마시고 한 말씀 해달라.

"당신이 미국 우리 집에 와서 2~3주 살다 나가면서 저 집은 이렇더라 저렇더라 흉보면 우리 가족은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선(禪)불교는 재즈다

폴 뮌젠이 본명인 현각은 미국 뉴저지의 보수적인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9남매 중 일곱째였던 현각은 예일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등 독일 철학에 심취했고 쇼펜하우어를 통해 불교를 처음 접했다. 하버드 재학시절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스님 물음에 할 말을 잃자, '하버드 학생이 당신 자신을 모른단 말인가?' 하며 껄껄 웃으시더라. 완전히 다른 세계, 다른 코드였다."

―'만행' 책에 보니 유달리 총명했던 아들에게 부모님 기대가 엄청났더라.

"삭발하고 처음 집에 들어간 날 부모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보단 불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지만 아쉬움은 여전하시다. 어머니가 그러더라.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그 뒤로 너의 동창 몇이 서 있더구나, 하고."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

"말썽꾸러기! 오늘날까지도. 난 반듯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공부는 잘하지 않았나.

"음…. 누가 그림을 잘 그리듯이 난 공부를 잘했을 뿐이다. 어렵지 않았다. 내겐 '재미'와 '도전'이 중요했다. 착한 아이들은 어른들 말씀대로 살지만, 난 넘어지고 다치면서 배우는 걸 좋아했다. 남들 기대에 따라 사는 것, 예측 가능한 결과는 얼마나 재미없고 무료한가."

―정치를 하셨어도 잘했을 것 같다. 선동가 타입?

"그런 말 많이 들었다. 글쎄. 정치를 했다면 나의 내면은 죽지 않았을까? 겉으로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내 안에서 과연 행복했을까? 지금 내가 어떻게 보이나?"

―즐거워 보이신다. 에너지 넘치고.

"보이는 대로다. 선불교는 재즈다. 선승의 생활은 재즈와 같다. 많은 종교들이 형식과 틀, 어떤 룰을 강조하는데 선불교는 다르다. 재즈처럼 자유롭고 즉흥적인 연주를 할 수 있다. 나는 선승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행복하다."

―불교가 재즈라니?

"히피로서도, 예술가로도 자유롭게 살 수는 있다. 불교의 자유는 다르다. '작은 나'를 벗어나 남을 위해 자유하는 것이 불교다. 미국에서 자유, 자유를 외치지만 기분 나쁘면 총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탕' 쏠 수 있는 자유들이 난무한다. 여기 포크가 있다. 이 포크는 나의 생각 방향에 따라 음식을 집어먹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찌를 수 있는 무기도 된다. 불교가 말하는 자유는 에고(ego)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 남을 위한 자유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결혼한다고 해서 '참선'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나.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오로지 '나'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해 유럽 가톨릭 교회들이 사제들의 '섹스 스캔들'로 비난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신부나 수행자들의 결혼을 금하는 것이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나왔다.

"나는 수도승이다. 그것이 나의 답이다."

30대의 현각스님 모습. 베스트셀러‘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표지 사진으로도 쓰인 이 사진은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아이 콘이 되었다. / 사진작가 김홍희 제공

나는 외로워지고 싶었다

외국인 승려 현각은 한국 불교의 세계화에 일익을 담당한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법정 스님이 '깨달음의 거울'이라는 책으로 우리말로 풀이한 것을, 2006년 영문으로 번역, '미러 오브 젠(The Mirror of Zen)'이라는 책으로 미국과 유럽에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서산대사가 후학을 올바른 수행의 길로 이끌기 위해 50여 종의 경론과 조사의 어록에서 요긴한 대목을 간추려 설명한 책으로 공부 방법과 화두, 수행의 경로 등을 밝힌 선의 명저다.

―법정 스님과는 어떻게 알게 됐나.

"2004년 봄, 스님이 나를 길상사로 부르셨다. '깨달음의 거울'이란 책을 주시며 영문으로 번역해달라 부탁하셨다. 고사했다. 난 학자도 아니고, 한자도 모르는 수행승이지 않나. 그런데 스님이 '네가 공부 열심히 한다는 소리 들었다, 번역할 자격이 있다' 하시더라. 서산대사가 조선시대에 쓴 책을 서양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직역보단 의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가 필요 없는 음악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법정 스님은 어떤 분으로 기억하나.

"모범 수자. 한 치 흐트러짐 없는 반듯한 수행자."

―'오두막에 살면서 수행정진 하고 싶다'고 하자 법정 스님이 '자네는 살 수 없다'고 하셨다던데.

"나처럼 키 크고, 코 크고, 얼굴 허연 승려가 와 있으면 이 마을 저 마을로 소문이 나니 조용히 살기 힘들 거란 뜻이었다."

―오두막에 살고 싶으셨나.

"물론이다. 잠시 산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런데 등산객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보더라.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숭산 스님은 영웅이자 원수

―하버드의 엘리트를 한국의 절간으로 불러들인 숭산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가끔은 아버지였고, 가끔은 어머니였다. 코치이자 트레이너였고, 영웅이자 원수였다."

―원수라고 했나?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식의 감동이 없는 사람, 드라마가 없는 사람은 스승이 아니다."

―많이 혼나셨다 보다.

"책(만행) 냈을 때. 나이도 어리고 수행 경험도 짧은 제자가 자기를 빨리 과시하려는 욕심으로 보이셨을 테니. 표지에 얼굴도 나오지 않았겠나. 하지만 내겐 스승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무엇인가.

"그때만 해도 숭산의 사상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자들로서는 이를 집대성할 사명이 있어서 이런저런 출판사로 타진하고 있었는데, IMF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모두 거절당했다. 그때 한 출판사가 내 출가기를 써주면 스승의 책도 함께 출판해주겠다고 했다. 솔깃했다. 고민 끝에 계약했고 6주일 만에 원고를 썼다. 탈고한 뒤 100일간 안거에 들어갔는데 마치고 나와 보니 난리가 났더라. 그 책 때문에 숭산 스님도 세상에 더 크게 알려졌다."

―오로지 스승의 책 때문에 '만행'을 출간했나?

"나는 한국인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과 철학이 있는지 일깨워주고 싶었다. 1990년대 초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자기의 좋은 전통을 버리고 미국 사람들 사는 대로, 입고 먹는 대로 쫓아가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양 세계는 동양의 정신과 철학을 배우려고 안달인데.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불교 서적을 읽는 것은 피어싱과 함께 젊은 세대들의 최신 트렌드였다. 당신이 구식이라고 버린 이 스카프를 다른 사람들이 주워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고 열광하면, 버린 스카프를 다시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나? 내 책이 그런 역할 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요즘 '만행' 책을 구할 수가 없더라.

"절판시켰다. 책 때문에 겪은 고통이 컸다. 일반인, 심지어 도반들로부터도 돈 많이 벌었겠다는 질문이 나오더라. 책을 내니 '아침마당'에도 나가야 하고, 라디오도 나가야 하고 특강도 해야 하고. 연예인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수행자로 살고 싶었다."

―'만행'이 수십만부 팔렸다. 인세는 어디에 쓰셨나.

"책의 마지막 장에 쓴 대로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숭산 스님의 큰 뜻을 이루는 데 기부했다."

―숭산 스님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산은 항상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왔다 가는 길이 아니요, 있었다 사라지는 길이 아니다. 자연 그대로일 뿐."

제일 좋아하는 불경은 '순간경'

―독일선방 얘기를 들려달라. 왜 뮌헨에 정착하셨나.

"유럽을 만행하면서 수행 정진할 자리를 찾던 차에 독일 불자들을 만났다. 수행 정진을 도와달라고 하여 뮌헨에 머무르게 됐다."

―한국 사찰의 모습은 아닐 텐데.

"작은 주택을 빌려 선방을 꾸몄다. 일반 수행자가 40명 정도. 절반은 한국 교포들이다."

―선방 이름이 '불이선원'이다.

"불이(不二)는 불교의 기본 사상이다. 당신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 인간의 본성은 하나라는 얘기다. 침, 오줌, 비, 눈, 눈물…. 모양과 색깔, 냄새는 다르지만 모두 H₂O다. 둘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둘을 만들어서 너는 틀리고 내가 옳다고 싸우는 거다. 한국의 젊은 개신교 신도들이 주도한 '봉은사 땅 밟기 사건'은 거기서 비롯됐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자살·폭탄테러도 마찬가지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독일과 여전히 둘로 나뉜 한국은 그래서 내게 각별하다. 분단이 지속될수록 배타성, 이질감만 커진다. 불교가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이 심심하진 않나. 한국처럼 다이내믹한 사회에서 살다 가셨으니.

"거제도에서 기암절벽을 구경하는데 배 안에 '뽕짝'이 쿵작쿵작 울려 퍼지더라. 선장에게 소리 좀 줄여달라 부탁했더니 뽕짝을 안 틀면 승객들이 심심해한다고 했다. 한국이 내게 준 가르침 중 하나가 센세이션과 자극이다.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고요와 평화, 여백을 즐길 줄 모른다. 카페에 가보라. 연인이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만 열심히 문질러대고 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리며 108배를 하는데 주머니에선 휴대폰이 쩌렁쩌렁 울려댄다. 걱정스럽다."

―한국에서 수행하던 때보다 힘든 일 많으실 것 같다.

"도반들, 한국 스님들이 많이 도와주시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다. 식당 접시닦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신도들이 수발해주시던 한국 생활이 그립지는 않나.

"그립지 않다."

―불교TV 법회 때 보니, 법문이 끝난 뒤 많은 신도들이 스님과 친견하려고 줄을 섰더라. 한국에 오면 그 인기를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유명해지는 것은 나의 계획도, 야망도 아니었다. 그것은 폭풍처럼 찾아왔다. 나는 그 유명세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최선의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명성은 또 다른 짐이자 고통이란 걸 알았다. 외로워지기 위해 유럽으로 갔다. 내가 거기에서 또다시 유명해진다면 나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다. 선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경허 스님도 자신이 유명해지자 자취를 감추었다. 몇년 뒤 그는 작은 시골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평상복에 긴 머리, 긴 수염을 하고서. 나도 언젠가 그런 모습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 상상한다."

―가끔 수행하기 싫을 때 있지 않나? 세상에 재미난 일이 많은데.

"진짜 그런가? 세속의 재미는 나타났다 사라진다. 권태에 빠져들기 쉽다. 수행자가 되기 전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좇는 삶이었다. 돈, 명예, 권력, 사랑…. 사람들은 달콤한 속세의 것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었느냐 묻지만 그건 꿀이 아니라 독이었다. 승려의 길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운이 좋았다."

―출가하신 지 20년이 되어간다. '참나'를 찾았는가.

"지금 마시는 이 커피의 향이 참 좋지 않은가."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기억하는 불자들이 많더라. 제일 좋아하시는 경은 무엇인가.

"순간경! 이 커피향을 맡는 순간, 재즈를 듣는 순간, 걷고 이야기하고 시장에 가는 모든 순간,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나누는 순간, 순간, 순간….


현각은

1964년 미국 뉴저지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학원 재학 중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해 1992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의 한국 선불교 본부 격인 참선 전문사찰 홍법원의 주지를 지냈고, 숭산의 설법집 ‘선의 나침반(The Compass of Zen)’과 ‘세계일화(The Whole World is a Single Flower)’,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을 영어로 번역했다. 97년엔 출가 사연을 적은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출간해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고, 2006년에는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영어로 번역했다. 2009년부터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불이선원’을 열고 있다.

'개념 상실' 신입사원? 욕해봤자 입만 아프다

"뇌 구조가 달라"… 신세대 직장인과 共生하려면
가르치려 하지 말고 칭찬하면서 '코치'를
'마마보이' 비난 대신 부모 입김 역이용… 회사 편으로 만들면 '가정 내 조언자'

#."팀장님 아무래도 일이 제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다른 길을 찾고 싶습니다. ㅠㅠ"

금융업에 종사하는 김모(35) 과장은 일한 지 몇 개월 안 된 부하 직원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로 사표를 통보받았다.

한 통도 아니고 일곱 통의 메시지가 연달아 왔다. 어이없어하는 김 과장에게 친구들이 하는 말.

"괘념치 마. 요즘 애들 다 그래." 김 과장과 친구들은 한때 '요즘 애들'로 통하던 X세대(1960년대 중반~70년대 말 출생)다.

#.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이모(36) 차장은 얼마 전 금요일에 휴가를 낸 부하 직원을 다음 주 월요일에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사이 성형 수술을 하고 온 것이었다. "이걸 세대 차라고 해야 할지…."

X세대 직원조차 "뇌 구조가 달라" 하며 두 손 들게 하는 신세대 직장인. 그저 '개념 상실'이라며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다. 어느덧 1980년 이후 태어난 직원이 조직의 23.8%(2008년 기준)에 달한다. 이제 그들과의 공생(共生)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신세대 직장인,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티칭(teaching) 하지 말고 코칭(coaching)하세요

삼성연구소에서는 신세대 직원을 '브라보(Bravo) 세대'로 설명한다. 업무 외에 다양한 관심사를 보이고(Broad network), 평가에 민감하고(Reward-sensitive), IT·글로벌 환경 등 새것에 빨리 적응하고(Adaptable), 감정에 솔직하고 상대도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해 주기를 바라고(Voice), 회사보다 개인 생활을 중요시 여기는(Oriented to myself) 세대라는 뜻이다.

세계경영연구원 최철규 부원장은 "신세대 직장인을 이해하려면 기성세대의 관점전환(perspective taking)부터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부모와도 상하 관계가 아닌 평등한 관계에서 친구처럼 지내왔던 세대를 가르치려 들었다간 반항심만 자극하게 된다는 얘기. 최 부원장은 "상하 관계에서 모르는 것을 가르치겠다는 '티칭(teaching)'보다는 수평적 관계에서 신세대 직원이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코칭(coaching)' 리더십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진현 수석연구원은 '칭찬의 기술'을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질책보다는 칭찬을 받고 자라난 세대이므로 칭찬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다른 세대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며 "업무에 구체적으로 피드백하고 결과뿐만 아니라 중간 과정에서 수고한 것을 칭찬하는 게 좋다"고 했다.

부모까지 덤으로 이용하라!

"부모님이 좀 더 좋은 직장을 원하셔서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강모(38)사장은 얼마 전 사표를 낸 신입사원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는 이후 정규직 채용에서 떨어진 한 인턴의 어머니로부터 "왜 우리 아이가 떨어졌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는 항의 전화도 받았다.

임상교육 전문가인 알리샤 티엘 미국 클라크대 부교수는 요즘 부모들이 '헬리콥터 부모'에서 '스텔스 폭격기 부모'까지 진화했다고 말한다. 부모가 자녀의 학교와 직장 주변에서 헬리콥터처럼 맴도는 걸 넘어 레이더망을 피해 적을 공격하는 스텔스 폭격기처럼 자식의 인생에 직접 개입한다는 것. 부모의 입김이 조직에 영향을 많이 끼칠 수밖에 없다.

신세대 직장인을 다룬 베스트셀러 '밀레니얼 제너레이션(millennial generation)'의 저자인 미국의 세대 전문가 린 C.랭카스터, 데이비드 스틸먼은 "부모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역이용하라"고 말한다. "밀레니얼 세대를 채용하면 그 부모까지 덤으로 따라오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과잉보호'라는 아니꼬운 시선을 걷어내고 보면 의외로 부모들이 전문성을 갖춘 조직의 훌륭한 외부 조언자가 될 수 있다. 직장 생활 1년차인 김홍준(27)씨는 "우리는 부모님이 직장 생활을 하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보면서 그들의 삶의 패턴에 익숙해진 세대"라며 "부모님이 간여를 많이 한다고 부정적으로 볼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가정에 있는 '직장 멘토'로 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진 연구원은 "신입 사원의 부모에게 감사 메일이나 회사 홍보 메일 등을 보내 회사에 대한 부모들의 충성도를 높여 젊은 직원의 이탈을 막기도 한다"고 말했다.

화내기 전에 알려주라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구세대의 말에 신세대는 항변한다. 직장 생활 2년차인 이모(26)씨는 "회사 들어올 때 서류 작성법 등 실무만 배웠지 조직 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은 교육받지 않았다"며 "눈치 보고 알아서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최 부원장은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는 신입 사원들에게 예절 교육을 많이 한다"며 "세대 차를 탓하기보다는 직장에서의 올바른 행동과 처신에 대해 미리 알려주라"고 충고했다. 진 연구원은 "회사의 미래, 장래성 등을 과도하게 말해 장밋빛 꿈을 심어주지 말고 회사 생활에서 부딪힐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현실적 직무 안내(real job preview)'로 신세대들이 조직의 룰을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사일언] '골드 미스'가 결혼 안 하는 이유

최경애·에스까다 코리아 지사장
최근에 '성공한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미혼율도 덩달아 뛰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도 외모·실력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데 아직도 미혼인 30·40대 전문직 여성이 많았다. 이들이 하는 말은 대개 비슷하다. "괜찮은 남자가 주변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비율은 1990년 13.3%였지만 2009년엔 30.1%로 늘어났다고 한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여성은 1995년 10.4%였지만 2008년엔 51.2%가 됐다. 동시에 미혼율도 가파르게 올랐다. 1985년엔 30~34세 여성 중 4.3%만 미혼이었지만 2005년엔 19%가 미혼이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자연스레 든다. '성공한 여자는 왜 결혼을 안 할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난 여성의 지위가 급작스레 올라갔음에도 결혼을 바라보는 남녀의 눈은 여전히 전근대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이제 경제적 안정을 갖췄고 따라서 본인보다 결혼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끌어올리는 소위 '양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여성은 '양혼'을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높아진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남자를 찾기가 더 어려운 건 당연하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배우자를 택할 때 자기보다 잘난 여자와 만나는 걸 기피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인생의 동반자를 찾기보단 그저 며느리·엄마로서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여자를 원하는 경우도 흔하다. 결혼은 못했지만 능력 있는 여자를 부르는 말이 '골드 미스'다. 어쩌면 '골드 미스'는 그렇게 화려한 말이 아니라 이렇게 사회가 변했는데도 우리가 결혼을 바라보는 눈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음을 알려주는 슬픈 단어는 아닐까.

Dec. 7, 2010, 1:00 a.m. EST

Schmidt: Leadership wanted in Europe

Former chancellor as blunt as ever in exclusive interview

By David Marsh, MarketWatch

Former German Chancellor Helmut Schmidt sits down for an exclusive interview with David Marsh, a MarketWatch columnist and co-chairman of the Official Monetary and Financial Institutions Forum. A Social Democrat, Schmidt was chancellor of West Germany from 1974 to 1982. He also served as finance minister, economics minister, and defense minister.

HAMBURG, Germany (MarketWatch) — Celebrating his 92nd birthday later this month, former German Chancellor Helmut Schmidt is as penetrating as ever in his political and economic judgments, as a long conversation with him in his Hamburg office shows.

The full interview is being published in the Monthly Bulletin of the Official Monetary and Financial Institutions Forum on Dec. 7. David Marsh is co-chairman of OMFIF and a columnist for MarketWatch.

David Marsh: For many years Germany had twin policies on parallel lines: commitment to financial and monetary stability on the one hand, commitment to European integration on the other. With the crisis in economic and monetary union, do you think that the two policies are no longer compatible?

Reuters

EXCLUSIVE
Schmidt: Europe needs leaders

In an exclusive interview, former German Chancellor Helmut Schmidt says Europe may lack the political will and leadership to defend the euro and the EU.
 

Helmut Schmidt: Let me give you an answer first about the general political environment. I don’t know about the British government — they are rather new in office and I do not know the leading people. So I exclude the British from my general answer. But I would say that, in general, Europe lacks leaders. It lacks people in high positions in the national states or in the European institutions with sufficient overview of domestic and international questions and sufficient power of judgment. There are a few exceptions such as [Prime Minister Jean-Claude] Juncker of Luxembourg, but Luxembourg is a bit too small to play a substantial role.

More specifically, I do not think that the Germans in general or the German political class in Germany have given up on stability. The circumstances in 2008-10 forced them — like almost everyone else in the world — to violate their stability ideals, but this was not an act of free will, it was the result of economic downturn. I would say that, in general, Europe lacks leaders. It lacks people in high positions in the national states or in the European institutions with sufficient overview of domestic and international questions and sufficient power of judgment.

Additionally, the present German government is composed of people who are learning their business on the job. They have no previous experience in world political affairs or in world economic affairs. German Finance Minister Wolfgang Schäuble is a man whom I wish well and for whom I have great personal respect. He well understands budgetary and taxation problems. But when it comes to international money markets or capital markets or the banking system or the supervision of banks or shadow banks, this is all new to him. The same goes for [Chancellor Angela] Merkel. This is not to say anything negative about Schäuble or anything negative about Merkel, but we need people in high office who understand the economic world of today.

Marsh: But some people would say the problem goes deeper than that. By going into a monetary union without political union, and without the perspective of a political union, some people would say that this was a fundamental birth defect.

Schmidt: This is what the Bundesbank have been repeating it for 30 years. In their innermost heart they are reactionaries. They are against European integration.

Marsh: Who do you mean precisely? Who are you thinking of, because people like [former Bundesbank President Hans] Tietmeyer are no longer playing an important role?

Schmidt: But his successors, more or less with one exception, are reactionaries with regard to European integration. They are not really characterized by liberal thinking. They tend to act and react too much under the aspect of national interests and haven’t understood the strategic necessity of European integration.

Marsh: There is this expression: Beim Geld hört die Freundschaft auf. [Friendship stops with money.]. One has the feeling that the Germans are now being asked as a collectivity to help the poorer states. And the Germans find this very difficult.

Schmidt: The mistake was made around the time of Maastricht, in 1991-92. At this time we were 12 member countries in Europe. They not only invited everybody to become a member of European Union but they also invented the euro and invited everybody to become a member of the euro area. And this was done without changing the rules or clarifying the rules beforehand. This was when the great mistakes were made. What we are suffering now is the consequence of that failure.

Marsh: Should the EU states have decided the euro /quotes/comstock/21o!x:seurusd (EURUSD 1.3379, +0.0079, +0.5938%)   just for a small group of countries? Merkel would like to correct this mistake, but her chances of prevailing are rather small, particularly because she is not a very smooth operator.

Schmidt: This is my view — and also they should have defined more strongly the rules on the economic behavior of the participants. The so-called Stability and Growth Pact is not an instrument of law. It’s just an agreement between governments. And it was not helpful that, early in this century, both France and Germany violated the rules of the pact. Merkel would like to correct this mistake, but her chances of prevailing are rather small, particularly because she is not a very smooth operator.

Marsh: In his heart of hearts, Hans Tietmeyer didn’t want the Italians in EMU. You criticized him in the mid-1990s for being a German nationalist because he said then that we should have a hard core. Aren’t you now backing the same argument?

Schmidt: In the meantime many things have happened, the globalization of speculation, the globalization of money and capital markets, the globalization of financial instruments. We have seen the failure of a draft for a European constitution. We have seen this complex Lisbon treaty, many things have happened, and at the same time figures who could lead have become scarce. One very important figure was [former European Commission President] Jacques Delors . He has been replaced by people whose name one doesn’t really know. And the same goes for permanent secretaries and the chairmen of various commissions and for prime ministers and — what is his name — [European Council President Herman] Van Rompuy? And he has a so-called foreign secretary — a British lady, her name is not necessary to know either. The same goes, more or less, for the European Parliament. The only figure who sticks out in the European institutions is [European Central Bank President Jean-Claude] Trichet. I’m not sure how strong he is inside the European Central Bank, But, as far as I can see, he hasn’t made a major mistake so far.

Marsh: But of course the clock is now ticking for him. His mandate runs out at the end of October and he cannot be renewed.

Schmidt: Yes I know. But of course he’s totally independent. In a way this could give him the freedom to speak up, but the question is who would listen to him now that he has to leave his office in less than 12 months or so. We are doing the same thing as the Chinese — the great difference is that the Chinese have their own currency and we haven’t.

Marsh: Greece and Portugal went into monetary union with a net foreign balance more or less of zero: their foreign assets and foreign debts were more or less equivalent. Then they ran current account deficits every year for around 10 years of 10% of gross national product. You don’t need to be a genius to work out that they now have a net foreign debt of 100% of GDP.

Schmidt: The question is: How come that no one took any notice — in Basel or in Brussels or in some statistical office? No one seems to have understood. By the way, for a long period the German political elite didn’t understand that we were recording surpluses on our current account. We are doing the same thing as the Chinese — the great difference is that the Chinese have their own currency and we haven’t. If we had our own currency it would have been revalued by now. To have kept the D-Mark, as Tietmeyer would have liked, would have led to speculation against the D-Mark at least once if not twice in the past 20 years in an order of magnitude worse than we have seen with Greece or Ireland. So far the idea of a common currency still has my full backing, even if the European leaders did fail to set the rules and made the enormous mistake to take in anybody.

Over the next 20 years, I think it is rather likely, at least 51% likely, that a hard core of the European Union will emerge. And it would comprise the French, the Germans, the Dutch — I’m not so sure about the Italians. I’m rather sure than the British would not be part of it, the same may come true of the Poles. It would not be a hard core in written paragraphs of paper but it would be a hard core de facto and not de jure.

Marsh: And of course the Benelux states would be part of this and Austria and probably Denmark and Sweden

Schmidt: Probably Austria, conceivably Denmark and Sweden. The Danes are very cautious — they would still look to London.

Marsh: I remember you saying many times, if the Germans keep the D-Mark we will make ourselves unpopular with the rest of the world; our banks and our currency would be the Number 1, all the other countries would be against us and that was why we should have the euro to embed us in a larger European undertaking. It’s all rather ironic, because people are saying that Germany has profited a great deal from the euro because the D-Mark has been kept down and this helps German exports.

Schmidt: I ask myself whether this profit really is a profit? I wonder whether running perpetual current account surpluses really amounts to a profit. In the long run it is not a profit…

Marsh: Because in the long run these assets will have to be written down because people won’t pay them back …

Schmidt: Yes … it means that you sell goods and what you get back is just paper money and later on it will be devalued and you will have to write it off. So you are withholding from your own nation goods that otherwise they would like to consume.

Marsh: Would you say that in 20 years, if we have a hard bloc, that the currency would be higher than now?

Schmidt: Not necessarily would this [the hard core] pertain to the field of currencies but it would probably pertain to the field of world policies whether vis-á-vis China, Iran, Afghanistan or a new coalition of Muslim states, which is one of the great dangers of the 21st century, that you get a coalition of Muslim states. If there was a president in Washington and he wanted to drop the atomic bomb on Tehran, the Europeans would be strong enough to say: “We are not part of it.” Right now, no one is strong enough in Europe to be in that position. When I was in power, I would always let the French march ahead on the red carpet. I never appeared as the leader...

Marsh: And what about France? They are always torn both ways — to the south but also to Germany. Do you think it’s irrefutable that France will always opt to go along with Germany in a smaller core monetary union?

Schmidt: It’s difficult to say. I said the probability would be 51% — that makes 49% left. I am not a prophet. I don’t know. It depends very much on the behavior of the Germans. When I was in power, I would always let the French march ahead on the red carpet. I never appeared as the leader, apart from once — over medium-range nuclear missiles that were targeted against German cities — and in the end that cost me my office.

Marsh: And of course [French President François] Mitterrand came to Bonn in January 1983 after you had left office — the invitation came from you when you were chancellor. He made his great speech [supporting West Germany on medium-range missiles] and [Chancellor Helmut] Kohl reaped the benefits of that French solidarity. It is ironic how history turns out….

Schmidt: Yes, but this has had a good effect, since in 1987 they abolished all these weapons on both sides.

Marsh: People always said: “We don’t want a German Europe but a European Germany.” However, there is now a belief that, because of Germany’s power as the greatest Europe creditor nation, it is throwing its weight around too much in Europe.

Schmidt: My feeling is that Merkel doesn’t know she does it. This is what we are doing now in Europe, muddling through.

Marsh: Maybe if you are a creditor, maybe you’re vulnerable, you feel that your assets are going to be written down. Maybe it’s not good to be a creditor because it makes you unpopular. Maybe it also means that your bank balance, your reserves are always going to be less high than you thought they would be, because people are not going to be able to repay their debts …

Schmidt: It goes far beyond the question of currencies and currency reserves. And therefore it applies to psychology … I am speaking of the psychology of nations and their public opinions and their published opinions. [Because of the Nazis and the Second World War] Germany will remain in debt for a long time — for all of the 21st century, maybe even for the 22nd century too. The Germans indeed sometimes behave like the strongest nation, they tend to give lessons to everybody. In fact they are more vulnerable than they think.

Marsh: But the Germans themselves don’t feel strong, the man in the street feels, I think, somewhat uncertain; the wages in real terms have been under pressure for many years. The average Germans don’t feel strong and confident, I think.

Schmidt: That is probably correct. But that does not include the political class. That does not necessarily include the right wing of Christian Democrats. And it doesn’t necessarily include the extreme left. You can divide mankind into three categories. In the first category are normal people like you and me. ...Then secondly you have a small category of people with a criminal character. And thirdly you have investment bankers.

Marsh: Europe thought it could put crises behind us by getting rid of its internal exchange rates and forging monetary union. But it now seems that, because of the globalization of finance, the speculators will now attack the spreads [between different countries’ bond yields]. Before they attacked the currencies, now they attack the bond markets.

Schmidt: One of the weakest points in the global economy is that there is no control of the behavior of financial managers. You can divide mankind into three categories. In the first category are normal people like you and me. We may have once stolen an apple from a neighbor’s trees when we were boys, or we may have taken a bar of chocolate from a supermarket without paying for it. But otherwise we are dependable, normal human beings. Then secondly you have a small category of people with a criminal character. And thirdly you have investment bankers. That includes all the dealers and the deal makers. They all sail under different names, but they’re all the same.

Marsh: What about Britain? You had a very good relationship with [former Prime Minister James] Callaghan but he didn’t join the European Monetary System. Do you think we did right to steer clear of monetary union? I know you think we will be outside for a long time and I think you’re right. Do you think that was fundamentally the correct decision?

Schmidt: Fundamentally I think [French President Charles] de Gaulle was right — long before the European Monetary System

Marsh: You mean he was right in believing that the U.K. would always choose the U.S. over Europe?

Schmidt: I used to believe in British common sense and the British state rationale. I was brought up in a very Anglophile way. I was a great supporter of Edward Heath who brought Britain into the European community. But then we had Harold Wilson and Margaret Thatcher, who didn’t always behave so sensibly. and then we had Tony Blair who brought himself into a position of far too great a dependence on America. You can’t have this dependence on America and at the same time play a responsible role in Europe. The British have always been good, though, at muddling through — and this is what we are doing now in Europe, muddling through.

COPYRIGHT OMFIF 2010

David Marsh is co-chairman of the Official Monetary and Financial Institutions Forum, and is a MarketWatch columnist.

[Why] '월드컵 유치 홍보 동영상' 한국처럼 만들면 실패한다

 보여주려는 쪽 생각만 담고 '자랑'만 나열해 대통령 얼굴 넣어 '자책골'
"여기저기서 간섭·주문…사공이 많아 산으로 간 경우"
50도에 육박하는 혹서의 날씨, 우리나라 경기도 만한 국토, 월드컵 본선에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축구 변방국 카타르가 지난 3일,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됐다. '미스터리'라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을까? 석유 판 돈으로 사들인 월드컵이라는 혹평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 카타르의 월드컵 유치 홍보 동영상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한국의 동영상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광고인들은 "동영상으로만 판단한다면 한국의 완전한 참패"라고 입을 모았다.

감동드라마 vs 지루한 홍보물

카타르의 동영상은 국가 홍보 영상과 스토리 영상으로 구성됐다. 특히 스토리 영상은 이란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같은 유의 서정적 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동네 놀이터에서 맨발로 공을 차는 아이들, 개최지를 발표할 시간이 오자 서둘러 집으로 뛰어간다. 일하던 동네 할아버지,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청년들의 눈도 모두 TV를 향한다. '월드컵엔 이스라엘 팀도 오고, 아랍 팀도 와서 함께 경기를 하겠지.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 하는 어린이의 말이 자막으로 흐른다. 중동에서의 월드컵이 왜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 감성으로 설득한다. 이슬람 전통의상을 입고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 뒤로 흰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반면 한국의 동영상은 말 그대로 국가 홍보물이다. '모어 댄 어 게임(More than a game)'이란 슬로건을 걸고 나온 영상물은 6·25 전쟁을 딛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가 핵심 콘셉트다. 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악마들의 모습이 보이고, G20 정상회의에 모인 주요 국가들의 원수들과 우리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이 부각된다. U-17 여자월드컵에서 한국팀이 우승하는 장면도 나온다. 기와집, 탈춤도 빠지지 않는다. 어디서 많이 보아온 영상물의 병렬조합. 감동이 없다.

스토리도, 감동도 없다

국내 광고업계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가 화법. 한국 영상이 보여주려는 쪽의 생각만 담은 '메이커 보이스(maker's voice)'라면 카타르 영상은 보는 사람을 염두에 둔 '커스터머 보이스(customer's voice)'라는 것이다. "카타르의 작품이 월드컵 유치의 간절함을 대중들 눈높이에서 '가슴'으로 느끼게 한 드라마였다면, 우리 것은 월드컵 유치의 당위성을 관료들 눈높이에서 '주장'으로 일관한 지루한 영상물"이었다는 뜻이다. 둘째는 콘텐츠다. "카타르가 월드컵에 대한 염원을 중동 평화를 향한 어린아이들, 국민의 간절한 눈빛으로 교차해 승화시켰다면, 한국은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일궈온 것들에 대한 '자랑'으로 채웠다"는 것.

A광고회사의 크리에이터는 "국가를 홍보하는 영상물에 국가 지도자들이 등장하면 오히려 개발도상국의 이미지를 안겨준다"고 지적한다. 한국관광공사가 일본, 중국, 구미주를 상대로 '정(靜)','흥(興)','기(氣)'라는 각각의 테마로 제작한 '코리아 비 인스파이어드(Korea be inspired)' 시리즈는, 정확한 타게팅과 더불어 국가 관광 홍보물에 대통령이 등장하지 않아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영상물 제작에 '사공이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B광고회사의 디렉터는 "이번 월드컵 유치 동영상을 제작한 업체가 국내 최고 수준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인 곳인데, 이 정도의 영상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기저기서 간섭과 주문이 많았던 탓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G20도 들어가야 하고, 조선소도 들어가야 하고, 축구장도 들어가야 하고 뭐 그런 식이죠." 제작사인 이노션 측은 "주위의 어떤 간섭도 없었다. 모두 우리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다. G20 정상회의에서의 각국 대통령이 등장하는 화면에 대해서도 "전략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악수하는 정상들이 러시아, 영국, 일본, 브라질 등 이번 투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집행위원들의 국가 지도자였다"는 설명이다.

깜빡 잊고 있다가 문득 12월이란 생각이 들어

지하실에 있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거실에 설치했다.

일년에 기껏 한 두 달 볼 수 있는 장식이라

설치하고 보니 나름 괜찮아 보인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