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15_6.gif

안녕하세요? 최범석입니다.

새해 첫 아침,
거실 창을 열었더니 앞뜰 중앙에 서 있는 자목련 나무 위에
까치 한 마리가 거실을 향해 앉아있더군요.
마치 내가 밖을 내다보기를 기다렸다는듯 말이죠.
뜻밖의 만남에 얼마나 반가왔는지,
까치를 흉내 내어 인사라도 건내고 싶었답니다.

학소도 뜰에 찾아온 까치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새해 2011년에도 반갑고 즐거운 만남이 많을 것같은 예감이 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만남들을 통해 즐겁고 행복한 한 해 보내시기 기원드립니다.

최범석 드림

http://www.haksodo.com
twitter @haksodo

출처: http://blog.naver.com/eijin8677?Redirect=Log&logNo=80114044818

pa15_6.gif

[Why] [이인식의 멋진 과학] 인간이 미래를 느끼는 증거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KAIST 겸임교수

개구리가 논에서 유난히 시끄럽게 울면 농부들은 큰 비가 내릴 것에 대비한다. 개구리의 몸이 대기의 습도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기상청보다 정확하게 일기예보를 할 수 있다. 생물 중에는 개구리 못지않게 훌륭한 일기 예보관이 수두룩하다. 예컨대 종달새가 저공 비행하면 날씨가 나빠지고 하늘 높이 비상할 때에는 날이 맑아진다. 해파리는 폭풍우가 올 것을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해안의 안전한 곳으로 서둘러 이동한다. 아침부터 나팔꽃이 피지 않으면 그날은 비가 오거나 흐린 하루가 된다. 사람이 기상을 예측하는 능력을 타고났다면 자연의 재난으로부터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공위성과 수퍼컴퓨터를 동원해도 번번이 엉터리 일기예보를 하기 일쑤다.

사람에게는 정녕 미래의 사건을 인지하는 능력이 없는 것일까? 심령 현상을 연구하는 초심리학(parapsychology)에서는 초감각적 지각, 곧 오감을 사용하지 않고 정보를 얻는 능력의 하나로 예지(precognition)의 존재를 확신한다. 예지는 미래의 사건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인지하는 능력이다. 예지로 알게 되는 사건은 대부분 죽음, 질병, 사고처럼 불행한 일이며 배우자, 가족, 친구 등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 관한 것들이다. 예지와 비슷한 심령 능력으로 예감(premonition)이 있다. 예지와 예감의 차이는 뚜렷하지 않지만, 예지가 특정 사건을 미리 인지하는 능력이라면 예감은 미지의 사건이 발생할지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능력이다. 이를테면 예감은 불길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알려주는 조기 경보의 성격이 짙은 능력이다.

1912년 4월 첫 항해 도중에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경우 승객 2207명 중 1502명이 죽었는데, 일부 승객의 운명이 예감에 의해 엇갈린 것으로 드러났다. 출항 전에 갑자기 예약을 취소한 사람들이 많아 탑승객은 58%에 머물렀다. 배가 난파되는 악몽을 꾸거나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 예약을 취소한 승객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6년 10월 영국의 한 탄광 마을에서는 학교가 매몰되어 116명의 아이와 28명의 어른이 죽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2주 전에 적어도 200여명의 주민이 재난을 예감하여 목숨을 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재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조기 경보를 수집하는 기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인간의 예지 및 예감 능력은 현대과학 이론으로 그 존재가 설명될 수 없는 심령현상이다. 심령현상을 연구하는 초심리학은 사이비 과학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예지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고 주장하는 최초의 논문이 공개되어 주목을 받았다. 미국 코넬대 심리학자 대릴 벰은 8년간 1000명의 대학생이 참여한 아홉 가지 실험결과를 '미래를 느낀다(Feeling the Future)'는 제목의 논문으로 내놓았다. 이 실험결과는 인간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처음으로 제시한 셈이다. 2011년 학문적 권위를 자랑하는 '인성과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월호에 게재될 예정이어서 심령현상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pa15_6.gif

(왼쪽부터 전동수, 정동혁, 임철순, 김주호, 남정숙, 김장실, 윤송이, 김정운, 차승재, 최범석,유남근, 박성택, 전해웅).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예술의전당은 15일 학계와 언론계, 광고계 등 각계 인사로 구성된 비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김장실 예술의전당 사장은 이날 오전 서울 예술의전당 비즈니스룸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예술의전당의 장기적인 비전을 담기 위해 개방적인 사고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창조적인 분들을 비전위원으로 모셨다"고 말했다.

13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앞으로 예술의전당의 중장기 사업방향 수립과 신사업 영역의 발굴 등 경영 일반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게 된다.

engine@yna.co.kr

pa15_6.gif

[전문]현각 스님 ‘참나를 찾아서’
선학원 중앙선원·불교저널 초청 법회서

2010년 03월 16일 (화) 19:06:24   ⓒ 불교저널(http://www.buddhismjournal.com)

김영석 기자 saetaemi@naver.com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가운데 생각보다도 더 빨리빨리 움직이는 이런 도시 생활 속에서 신앙생활과 수행해야 할 일을 잊지 않으며 여기 선학원으로 와주셔서 진심으로 제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소개해주셨듯이 요즘은 제가 유럽에서 활동을 많이 합니다. 독일 뮌헨이라는 도시에 아주 조그만 선원 하나 세웠습니다. 그 선원이름은 ‘불이선원(不二禪院)’, 둘이 아닌 선원이란 뜻입니다.

불이(不二)…석가모니불의 중요한 유산

물론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불교는 다른 종교들과 달리 ‘불이사상’이 기본입니다. 항상 우리가 절에 올 때 불이문으로 들어와 법당에 가서 참배 올리지만 이 불이문을 지나면서 불심의 제자들로서 불이가 얼마나 소중한 보배인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불이사상이 뭣인가, 불이사상이 참 어렵다고 합니다. 모든 종교도, 모든 정치당도, 나의 대부분도, 누나도, 사람들은 항상 둘을 만듭니다. 인간들이 고통 받는 여러 가지 행동들 가운데 첫째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습관적이게 항상 둘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불이사상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우리한테 남겨주신 굉장히 중요한 재산입니다.

우리가 자주 습관적으로 일으키는 생각들을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서 생각을 일으키면서 그 생각을 일으킨 생각이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생각과 그 생각 아닌 것으로 둘을 만듭니다. 내가 슬플 때 ‘나’ 슬프다고 생각하고, 나가 슬프다고 만들 때 ‘너’부터 만듭니다. 둘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분리된 마음으로 둘을 만듭니다. 분리해서 생각을 일으킬 때 생각 아닌 것, 나 나타날 때 너, 북쪽 나타날 때 남쪽, 오른쪽이라고 생각하면 왼쪽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한 생각을 만들어 현실에 드러낼 때 항상 갈등이 일어납니다. 모든 종교들이 갈등 나는 이유는 그런 둘을 만드는 습관 때문입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모든 종교에 있어 무엇보다도 제일 못된 일은 둘을 만드는 것입니다.

생각 멈추면 원성품

그런데 불교는 ‘불이’, 둘이 아닌 상태, 둘이 없습니다. 생각할 때만 둘을 만듭니다. 생각할 때만 안과 밖, 위와 아래, 좋다와 나쁘다, 깨끗하다와 깨끗하지 않다 등 둘을 만듭니다. 우리가 앉아서 절하고 진언하거나 나는 누군가, 나는 누군가, 나는 도대체 누군가 하면서 스스로 물어보면 불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경험이지 맹목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나는 누군가, 나는 누군가, 나는 도대체 누군가하면서 바로 보면 생각이 멈추어 불이가 됩니다.

생각이 멈춘 상태, 즉 다른 생각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오른쪽도 없고, 왼쪽도 없고,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고, 좋은 것도 없고, 좋지 않은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고, 깨끗하지 않은 것도 없습니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개념도 아니고 어떤 철학도 아니고 책에서 나온 말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스스로 일으키는 생각에 따라 고통을 받습니다. 그래서 불이사상은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 원성품, 있는 그대로의 지금, 결제하던 안하던, 머리 깍던 안 깍던, 불교대학 나오던 안 나오던, 기도 많이 하던 안 하던, 그 현실은 우리가 어쩔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이 순간에 완벽합니다. 모든 인간들이 있는 그대로 완벽합니다.

다른 종교들은 우리가 원죄(原罪), 원래부터 우리가 죄를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지만, 불교는 우리가 더 이상 필요없이 이미 완벽하다고 말합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 생각에 집착하는 것뿐입니다. ‘부족하다’ ‘이것도 필요하고 원하고’ ‘왜 그런가’하는 생각의 차이뿐입니다. 그래서 기도나 참선 등을 수행하면 그런 생각에 집착하는 마음을 줄이고 줄여 우리의 원래 완벽함으로 머무를 수 있습니다.

   

독일인도 불이사상 좋아해…남북통일 기원

독일에 불이선원 세운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기독교에 2천년동안 익숙한 유럽 사람들은 부처님이 가르친 불이사상을 들을 때면 너무 좋아합니다. 불교는 그 사상 덕분에 2천5백년 역사 가운데 한 번도 전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이사상을 모르거나 불이사상을 강조하지 않은 정파, 교파들이 둘을 만듭니다. 둘을 만드는 가운데 원수가 항상 있어야 되고 갈등이 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불교에서 2천5백년 역사 가운데 한 번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 한 번도 부처님 위해서 죽이는 일이 없는 이유는 불이사상, 우리가 둘을 안만들기 때문입니다.

또 한반도도 갈라진 둘이요, 독일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둘이었습니다. 독일은 20년 전에 한국 사람들이 원하는 통일이 돼 하나로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쪽에 선원을 세운 두 번째 이유는 그곳에 온 한국인들에게 불이사상, 부처님의 사상으로써 정치적으로 하나 된 그런 길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그 남북한 통일의 가능성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보여줄 수 있도록 둘이 아닌 나라에 간 것입니다.

불교적 체험 기대치 높다

2차대전을 겪은 독일 사람들은 큰 화두를 들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교를 이해하려고 공부하거나 깊이 하는 것보다도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숭산 큰스님은 “왜 서양에서 활동 많이 하시냐, 서양 사람들은 불교를 못 배운다. 왜 한국에 계시며 활동하지 않느냐”는 비판에 “한국 사람들은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많아 공부하지 않는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불교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실천만 해.”라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불교를 공부하는 것보다도,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것을 모아 놓는 것보다도 한두 마디 듣고 나서 바로 실천합니다. 절에 와서 친구나 가족문제 얘기하고 비판하고 소문내는 것보다는 이런 가르침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생기면 10~12시간 앉아서 정진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저와 가까운 도반 스님이 독일에 왔었는데, 그날 저녁에 시작해가지고 밤새 아침까지 정진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에게 이런 지극적인 한국 스님들의 수행 방식제도를 아직 가르치지 않아서 제가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선방이 꽉 찼고, 밤새 한 사람도 안 빠지고 앉아 정진하고 새벽에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자꾸 나한테 ‘언제 우리가 철야정진 다시 할 수 있느냐’, ‘한 달에 한두 번씩 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사람들은 공부하고 싶어 합니다. 불교의 대의명분에 대해서 논쟁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체험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법문보다 더 살아있는 법문의 의미?

왜 우리가 이런 얘기를 강조해야 되느냐? 이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합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지난주에 법정 스님이 가신 길로 엄청난 법문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이 세상을 통해서 원하는 것보다도 버리고 버리고 버리는 노력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일 행복하게 가시고, 제일 가볍고 준비 있게 가는 그러한 법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반성해 봅시다. 

이 세상은 우리한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합니다. 한 물건도 주지 못하고 영원한 즐거움도 주지 못합니다. 아무 것도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한 이런 세상 가운데 이런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공부에 노력하지 않습니다.

사실 뉴스방송은 큰 경전입니다. 깊이 보면 그것은 금강경만큼 영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실례지만 저는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2주일 전에 부산에서 어떤 중학생이 우리 모든 자식들처럼 나가서 안 들어왔습니다. 한순간 없어졌습니다, 자기집 100미터 거리 안에서. 우리가 깊이 볼 때 그것은 경전입니다. 우리 잠시 있다가 한 순간 모든 일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생긴 일이 나한테는 생기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나 생기는 일이지 나한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That happens to another people not to me”, 그것은 망상입니다. 무명(無明). 그런데 깊이 보면 언제나 우리한테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잠시적 즐거움, 잠시적 어떤 느낌을 얻기 위해서 한 사람에게 엄청난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세상입니다. 인간들이 날 때부터 어쩔 수 없는 우리 세상입니다.

법정 스님은 지금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분은 사회에 아주 큰 정신, 대단한 도인, 어떤 물건스런 존재였지만 지금 아무 것도 없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만큼 존재하지 않습니다. 금강경의 어려운 한자를 통해서 얻는 법문보다 더 살아있는 법문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실천해야 합니다, 당연히 노력하고 걱정하고 근심으로 싸워서 경쟁적으로 얻으려고 하는 그 모든 일처럼.

 

이해불교보다는 실천불교를


‘왔을 때 빈손으로 왔다가 갈 때도 빈손으로 갑니다’는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속담 중에 ‘수의는 다 주머니가 없다’는 것이 있습니다. 가져갈 일이 없기 때문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고 죽을 때도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물질주의보다도 우리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물건이 많거나 적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우리세상은 오직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공부는 나는 누군가 나는 누군가 나는 도대체 누군가로 귀결됩니다.

불교를 이해하려면 진정한 불교를 우리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법정 스님 같으신 분의 역할과 중요성, 우리한테 불교 그 자체를 강조하시기보다도 당신은 그것을 통해서 현대 삶을 비춰주시는 분이였습니다. 오늘 이렇게 선학원에 온 것도 굉장히 훌륭하고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불교 그 자체를 공부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철학적으로 지식적으로 천수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수경이 어디서 발생됐는지, 무슨 말인지,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무슨 의미인지, 옴마이반메흠이 무엇인지, 다 분석해서 볼 수 있지만 사실 천수경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글자, 어떤 철학적 의미보다는 그냥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사바하...” 등을 반복하는 일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불교도 똑같습니다. 이해하려고 공부하는 불교보다도 실천하는 불교, 그래서 나는 누군가, 나는 누군가, 나는 도대체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TV 볼 때나 신문 볼 때나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통해서 듣는 소식이나 사건들을 볼 때에 객체적으로 보지 말고 주체적으로 보셔야됩니다. 불교는 주체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객체 상태에서 공부할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한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객체의 세상을 강조하는 것보다도 주체, 이 세상을 보는 주체, 주인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불교의 제일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이 그 지혜를 주지 못합니다. 우리 각자가 노력해야만 찾을 수 있습니다.

화두는 바로 눈앞에 있다

저는 숭산 스님께 화두를 받지 않았습니다. 진제 스님이나 어떠한 스님도 저한테 화두를 주지 못합니다. 저는 ‘도대체 무엇입니까’라는 화두를 들고 살아 왔고 그 화두 때문에 불교를 택했습니다.

중국불교에서 내려오는 스토리만 화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도 중국불교 몰랐습니다. 그것은 오직 방편일 뿐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들이 들고 있는 화두는 태어나 있다는 것, 또 어느 날 죽어야 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며 갖고 싶은 모든 것들이 없어져야 됩니다. 부산에서 그 착한 중학생이 아무 욕심 없이 아무 나쁜 이유 없이 나가서 없어졌는데, 그것을 볼 때 우리의 모든 생각은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런 일의 경우처럼 우리 생각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는 상황, 그것이 바로 화두입니다. 어떤 질문 앞에 생각이 멈출 때, 그것이 화두입니다. 그것을 들고 나는 누군가, 나는 누군가, 나는 도대체 누군가 하면 그것이 살아있는 화두입니다. 경전이나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살아있는 화두의 바탕, 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는 질문, 스스로 묻는 대답뿐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볼 때 나의 존재 자체가 의심하는 생각으로만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화두입니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불교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북한의 강제수용소가 아닌 편안하고 따뜻하고 좋은 옷을 입고 앉아있으면서 나치들만큼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것이 화두입니다. 왜? 그러한 세상, 왜? 그러한 세상 무엇입니까? 내가 왜 여기 있는가? 그것이 화두입니다. 그래서 화두는 특별한 교리나 큰스님 만남이나 어떤 특별한 대담을 통해서 받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공부는 바로 이런 고민에서 시작하지 불교대학에서만 시작하지 않습니다.

   

참수좌의 길

그래서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쁜 가운데도 이 세상에 무엇을 얼마나 줄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죽을 때 빈손으로 가야 되는 가운데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갈등하는 근심을 가지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가운데 얼마나 우리가 그 질문을 들고 어떠한 노력을 하는가입니다. 집에서도 이런 수행 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도 화두 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108배하면서 나는 누군가, 나는 누군가, 나는 도대체 누군가? 옴마니반메흠하면서도 옴마니반메흠하는 나, 나는 도대체 누군가 스스로 묻는 것, 그리고 참선할 때 가볍고 자연스럽게 호흡 지키면서 생각이 왔다갔다하면서도 이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 생각 도대체 어디부터 시작하는가 하는 그 사람은 참수좌입니다. 우리 공부는 분명합니다. 스스로 묻는 나, 나에게 스스로 묻는 나, 나는 누군가, 나는 누군가, 나는 도대체 누군가? 모든 고승들, 모든 도인들, 모든 불보살도 그런 점으로 시작했습니다. 부처님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불교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더 이상 할 필요 없습니다. 무엇보다 실천해야 됩니다.

나의 오두막을 찾아

그런데 나는 누군가, 나는 누군가, 나는 도대체 누군가를 스스로 물을 때 모든 생각이 멈춰버립니다. 그 생각 멈출 때, 즉 다른 생각 일어나기 전에 그 순간에는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법정 스님처럼 못 삽니다. 법정 스님의 모범적인 길, 대단한 길은 우리 모두가 봐야 할 것을 알려 주신 겁니다. 우리도 각각 법정 스님처럼 할 수 있는 나름의 길이 있습니다. 물건을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하는 게 아니라 머리속의 필요 없는 잡생각, 필요 없는 관심, 필요 없는 습관을 그냥 버려두고 다시 나의 기본 오두막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향수병이 있듯이 모두가 기본적인 오두막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 오두막을 파악할 때 헤매고 헤맵니다. 사실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돌아갈 수 있도록 생각으로만 헤매고 있는 겁니다. 다른 종교들은 이러한 것을 강조하지 못합니다. 인간으로 그런 고향, 그런 완벽함으로 못 들어간다, 항상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불교는 이런 말 한 번도 안 합니다. 인간들은 부족한 게 아니라 이미 완벽합니다. 불교를 믿던 안 믿던 이미 완벽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미 완벽하고 부족한 점이 한 점도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 때문에 생각에 익숙해져서 헤매고 가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고향, 나의 오두막, 나의 주인공으로 가는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나는 누군가, 나는 누군가, 나는 도대체 누군가라는 기본적인 화두가 우리 고향으로 가는 고속도로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초하루에 선학원으로 와주신 게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사례 깊은 한국불교, 사례 깊은 석가모니 가르침과 우리 올바른 수행, 나는 누군가로 시작하는 수행을 하시기를 아주 깊이 부탁합니다.

〈끝〉

pa15_6.gif

“우리 함께 ‘자유시장 반란자’가 되자”
[Interview]‘더 나은 자본주의’ 주창하는 장하준 교수
[8호] 2010년 12월 01일 (수) 조계완 kyewan@hani.co.kr

장하준 교수(47·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가 최근 펴낸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이하 <그들이…>)가 국내 출판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출간 보름 만에 7만5천 부 판매를 돌파했다. 장 교수가 새 책 출간 즈음에 한국에 왔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지난 10월27일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장 교수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며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장 교수는 <이코노미 인사이트>의 ‘편집·기획자문 및 필진 네크워크’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장 교수는 한겨레신문사가 12월15~16일 여는 국제 심포지엄(‘2010 아시아미래포럼’)의 주요 연사로 참석할 예정이다(이 인터뷰 글은 인터뷰 다음날 장 교수가 출판담당기자 간담회에서 말한 내용을 일부 포함한다).

조계완 국내편집장

이번 새 책이 나온 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영국 노동당 당수에게 “장 교수에게 점심 한번 대접하라”고 했다는데 연락이 있었는가? 또, 한국 정부 등으로부터 경제자문 역할을 요청받았는가?
영국 보수자유당연립정부에서 나를 몇 번 불러 얘기를 듣긴 했지만, 정당 당수가 나 같은 사람을 초대하겠는가? 아직 그들과 점심은 먹지 못했다.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산업화를 어느 정도 하겠다는 나라의 정부에서 나를 초청하면 가끔 강연해주고 코멘트도 해준다. 남미 에콰도르에서는 그 나라 대통령이 나를 좋아해서 새로운 산업발전 계획에 대해 조언해준 적이 있다. 내 전공 주특기가 개도국의 중간 정도 되는 나라들의 산업·무역 정책이라서, 많이 초청해주는 나라가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남아공 등이다. 물론 전속으로 자문계약을 맺은 건 아니다. 한국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이정우 교수 등이 스티글리츠 교수를 위원장으로 해 나도 한 자리 끼는 국제경제자문위를 구성하려고 했는데, 그때 당선자 캠프 내부에서 스티글리츠를 얼굴마담 시키면 국제자본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이견이 제기돼 무산된 바 있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면 한나라당에도 영국 보수당에도 가서 강연할 용의가 있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학)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요즘의 세계경제 회복세를 어떻게 보는가?
심장마비 일으켜 죽을 뻔한 환자를 영양제 줘서 살려놓으니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는 형국이다. 죽어갈 때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제 식습관을 바꾸고 운동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지뢰가 많다. 지금 미국은 실업률이 독일보다 높고,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대규모 상업용 부동산 대출상환도 돌아오고 있다. 영국은 복지를 축소하고 재정지출을 크게 깎겠다면서 더블딥을 우려한다. 상황 종료라고 하는 건 오산이다. 미국은 가라앉던 주택시장이 주춤하고, 주택가격이 조금 회복되는 양상이다. 이는 위기 초반에 집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고, 정부가 집 사려는 사람에게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을 도입하고, 사람들이 20주 넘게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버텨온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약효가 다 끝나고 다시 경제가 나앉기 시작하면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주택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물론 경제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영국 노동당 당수와 아직 점심 못 먹었다”
이번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와 경제학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그동안 자유시장을 설교하던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들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 경제학계에서는 나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 세진 것 같다. 그러나 영미권이 학계와 세계경제의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경제를 보는 관점이 한쪽으로 크게 쏠려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렵다. 미국과 영국 모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처음에 충격받고 한 대 크게 얻어맞았지만, 빨리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금 다시 커지고 있지 않은가. 곳곳에 주류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가 워낙 깊이 퍼져 있다. 물론 앞으로 세계화 추진력은 어느 정도 제어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영미식 기업 지배구조와 금융 위주의 자유시장이 이번 위기로 일단 제동이 걸린 건 맞다. 그러나 진짜 힘을 받아서 그동안의 진행 방향을 돌려놓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금융개혁법에 따라 예전보다 투자은행의 행동반경이 줄어들 것이고, 점점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면 자유시장(이주노동 등)에 대한 통제 요구가 커지고, 보호무역 주장 등이 계속 나올 것이다. 조지 소로스가 펀딩하고 미국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와 영국의 로버트 스키델스키 교수가 주도하는 ‘새경제사상연구소’(Institute for New Economic Thinking)가 지난해 만들어져 경제학을 좀더 현실에 맞게 바꾸자고 제안하는데, 이번 새 책을 본 스키델스키가 나에게 이 연구모임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해왔다(워릭대학 로버트 스키델스키 교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이코노미 인사이트>에 매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전망은?
주류 시장주의 경제학의 경우 자기네 기존 프레임으로 어떻게 새로운 대안을 만들 수 있겠는가? 물론 넓은 의미의 주류 경제학에 속하지만 시장의 불완전성을 얘기하는 스티글리츠의 정보경제학이라면 다를 수 있으나, 신고전파 시장주의 이론은 시장 효율성이란 가정 아래서 어떠한 대안도 만들어낼 수 없다(스티글리츠를 ‘친구이자 정신적 스승’이라고 부르는 장 교수는 <스티글리츠와 세계은행: 그 내부 반란자> (2001)라는 책을 엮은 바 있다). 주류 쪽에서는 여전히 ‘아직 (자유)시장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위기가 왔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이는  신앙심이 부족해서 시장의 실패와 위기가 초래됐다는 식으로 시장 광신도들이 하는 얘기일 뿐이다. 잘못되면 정성이 부족해서라고 하는 광신도들 말이다(장 교수는 <그들이…>에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무슨 현상이든 그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널리 전파해왔다”(207쪽)고 말한다. 주류적 시각의 대다수 경제 분석은 ‘시장은 항상 효율적이고 균형을 달성한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이런 결론의 메시지는 ‘언제든 어떤 사회든 현재 상태가 가장 효율적이고 모든 구성원에게 최적’이라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함축하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최근 새로 펴낸 책(한국어판).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는 어떻게 보는가?
G20 기구가 세계경제에서 의미를 갖고 있긴 하다. 서구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인도·아르헨티나·브라질 등이 끼어서 상당히 의미 있지만 이 국가들의 참여는 상징적 의미다. 워낙 세계경제 지형도가 많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G20 틀이 아니더라도 이런 국가들이 세계경제 질서 모색에 참여하게 돼 있다. 내용이 있는 세계경제와 관련된 결정은 세계은행(WB)·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 그리고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등에서 정해지고 있다. G20이 세계 정부인 것도 아니고, (기존 G7 틀에 비춰볼 때 ) 한 발 더 나아갔다고 하지만 목적지에 다가간 건 아니다. G20 틀에 못 들어간 나라들의 이해는 누가 대변해줄 것인가? G20이 작고 약한 나라들을 제대로 대변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누가 아는가, (중국·인도 등이) ‘우리도 이제 조폭에 편입됐으니 저놈들(약소국) 때리고 살자’는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자유시장 신앙심이 부족해 금융위기 초래됐다?

시장과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은?
시장은 결코 민주주의적인 제도가 아니다. 19세기에 시장주의자들은 민주주의에 반대했다. (경제)민주주의를 도입하려면 세금을 더 많이 걷어 복지를 확충해야 하는데, 그러면 자본주의가 망하게 될 거라고 주장했다. 시장과 민주주의는 뿌리가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다. 민주주의는 ‘1인1표’인 반면 시장은 ‘1원1표’다. 냉전 시절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모순 없이 서로 상승작용한다’고 자꾸 왜곡해 선전했다. 정치적 독재를 오랫동안 겪은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정부 개입은 독재, 시장은 민주주의’라고 인식해왔다. 그러나 민주적이지 않은 시장에 정부가 개입해 민주주의적 요소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번 새 책 제1장의 주장이 바로 ‘자유시장은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정치의 산물이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이 말하듯, 여기까지는 시장과 경제가 맡아서 해야 하고 저기서부터는 정치가 맡아야 한다는 식의 자유시장주의적 구분은 잘못된 것이다. 순수 경제이론에서 보면 노예 시장이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즉, 인권·민주주의·사회 등의 측면은 무시된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에 개입해야 진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 안 그러면 뭐하러 민주주의를 하는가? 5년에 한 번씩 인기투표하는 데 불과하지. 더욱 중요한 건 경제가 곧 정치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경제 문제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발언이다.
경제학 유파 중에서 ‘제도학파’ 경제학자로 분류되곤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제도학파라고 말하는데, 사실 내가 무슨 학파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다. 세상은 굉장히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어떤 한 가지 이론만으로 경제와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케인스주의 학파가 경제학 유파 중에서 설명력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지만, 케인스는 경제의 장기적 관점이나 기술혁신 등은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왼쪽 마르크스에서부터 오른쪽 하이에크까지 다 읽고 공부해봤는데, 나름대로 취할 점이 다 있다. 어떤 사회가 가장 훌륭한지는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정책 사안별로 판단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신자유주의 사상은 케인스주의 혹은 조합주의적 경제가 한계에 달하면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측면도 있고, 노동자의 힘이 세지고 상대적으로 자본가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측면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보니 결과가 안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1950∼60년대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시대에 따라 규제방식이 달라져야 하지만 자본시장이 규제돼야 한다는 원칙은 확립돼야 한다. 1950∼60년대에는 이른바 ‘인내하는 자본’(Patient Capital)이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를 많이 했으나, 경제·금융 구조가 바뀌면서 지금은 단기주의로 가버렸다. 어떤 식으로든 투자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한국 정치권에서 요즘 복지사회를 부쩍 언급하면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있는데.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복지를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는 일단 비용이 싸다. 그러나 돈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빼앗아 거둬 저소득층에 나누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세금을 내는 사람은 불만이 생기게 된다. 받는 사람 쪽에는 무능력자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선진국 중 복지비 지출이 가장 낮은 곳이 미국인데, 복지에 대한 반감도 매우 높다. 많은 사람들이 수혜를 못 보고 있기 때문이다(즉, 선별적 복지는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반감을 초래한다). 누구든지 아프거나 실업자가 될 수 있고, 늙어서 일 못하게 된다. 그럴 때 갖다 쓰기 위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옛날에 했던 공동체 보험인 ‘계’(契)다. 형편에 따라 세금을 조금 더 내고 덜 내는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복지 세금을 내도록 해야 국민이 받아들이기 쉽고, 부자들의 반감도 적다.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이 40% 정도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세금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내야 한다. 보편적 복지에서 자신이 낸 세금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꼭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높은 세금을 기반으로 한 복지국가 스웨덴은 사실 미국보다 소득세를 20년 더 늦게 도입했다. 지금 당장 스웨덴처럼 조세부담을 55%로 높이자는 건 안 먹힌다. 그러나 국민을 설득하면서 장기적 방향을 잡아놓고 조금씩 높여간다면 길게 봐서 50년, 70년 뒤에 한국도 스웨덴처럼 될 수 있다.
 
“경제는 곧 정치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는 어떻게 보는가?
부자감세는 ‘시장주의적 스탈린주의’다. 투자할 사람들(자본가·기업가)에게 돈을 몰아줘야 파이가 커진다고 하지만, 그런 정책을 쓴 뒤에 오히려 투자와 성장이 떨어졌다. 증명된 바 없는 정책을 우리 정부가 하면 안 된다. 미국 상류층 1%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대 10% 정도였는데 지금은 23%다. 그런데 그동안 미국 경제는 투자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경제가 죽쑤고 있다. 투자도 안 하는데 고소득층에게 (부자감세를 통해) 돈을 몰아줄 이유가 없다. 사람들이 자유무역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복지’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복지병’ 어쩌고 하는데, 복지병에 시달렸다고 하는 영국의 1960∼70년대 경제성장률이 지난 20여 년간 성장률보다 높다.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의 성장 속도도 매우 빠르다. ‘복지’와 ‘성장’은 상충된다는 기존 통념은 뒤집어봐야 한다. 복지라는 말만 나오면 실업수당 타 먹고 일 안 하려는 게으른 사람만 얘기하는데, 이는 18세기적 시야에 갇혀 있는 발상이다. 실업을 당해도 사업이 망해도 보편적 복지를 통해 일단 밥 먹고 살게 해주면 국민이 직업을 선택할 때 더 진취적이 된다. 고용이 불안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 등 안전주의로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직장을 잃으면 의료보험이 상실되는 등 굶어죽을 위협만 있기 때문에 목숨 걸고 일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가 이뤄지면 죽자사자 직장을 지킬 필요가 없어지고, 사람들이 더 진취적이 된다.
   
2004년 5월 서울에서 장하준 교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미 컬럼비아대학)와 만나 대담을 하고 있다.

새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사람들이 경제학 하면 겁을 많이 먹는데, 경제학이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95%는 상식 수준의 얘기인데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것일 뿐이다. 나머지 5%도 기본적으로 누구나 알아들을 만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 ‘민주사회의 시민 되기’다.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요구 없이 제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다. 경제학자든 토목공학자든 신경외과 의사든 누구든지 민주시민이 되려면 자기 분야 외에 알아야 할 것이 굉장히 많다. 핵발전소 문제, 고령화 대책 등 온갖 것을 생각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해 어렵게 얘기하면 난 잘 모르는 얘기니까, 하면 안 된다. 어렵게 말하니까 그렇지 따지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얘기도 아니다. 전문가 정도 돼야 무슨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꼭 생물학자가 아니라도 식당이나 음식물 공장은 위생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파생상품 전문가가 아니라도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지나치게 복잡한 금융상품은 위험 역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너무 복잡한 건 규제하라는 정도만 민주시민으로서 얘기하면 된다. 뭐가 너무 복잡한지,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는 전문가에게 넘기면 된다. 그동안 금융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맡겨놓았다가 위기 터지고 망한 것 아닌가(비록 전문가 수준이 못 되더라도, 완벽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사회와 사람들에게) 말을 계속 꺼내고 던져야 한다”는 것이 장 교수의 지론이다. 장 교수는 2004년 어느 자리에선가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1960년대 무궁화표 세탁비누의 상표 도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경제학뿐 아니라 과학·추리·소설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정사 같기도 하고, 야사 같기도 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자신의 여러 책에 풍부하게 풀어놓고 있다.)
<그들이…>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 주장했는데.
앞으로 계속 그럴 거라는 건 아니고, 지금까지는 기술이 경제와 사람들의 노동패턴에 미친 영향 측면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더 컸다는 얘기다. 현재의 정보기술 발전과 비교해 과거의 기술 진보는 별것 아니라고 사람들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전보를 보자. 전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속도에서 굉장히 혁명적이었다. 미국에서 영국에 배를 통해 편지를 보내려면 2주일 이상 걸리던 것이 19세기 말~20세기 초 전보의 등장으로 20분 정도로 대폭 단축됐다. 최근 인터넷은, 물론 사진도 보낼 수 있고 서치엔진도 있지만, 30초 정도 걸리던 전보를 3초 정도로 줄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전보가 확산되면서 무역, 이민 등에서 지금보다 더 세계화가 진행된 적도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갑자기 시장 세계화의 수준과 규모가 뚝 떨어졌다. 각국 정부가 시장규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즉, 기술이 국가 간 경제의 구획선을 결정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어느 수준으로 갈 것인지는 ‘정책’의 문제다.
 
‘민주사회의 시민되기’ 어렵지만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모든 경제부처가 ‘규제 완화’를 정책목표로 내걸고, 경제 단체들도 규제를 없애라고 외치고 있는데.
기업 규제가 꼭 반기업 정책인 건 아니다. 유럽에서 아동노동 규제를 도입하던 당시 자본가들은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고 반대했다. 그런데 저임금 아동노동을 마구 사용하면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되고 건강도 나빠지고, 결국 경제 전체적으로 노동력 질이 떨어지게 된다. 아동노동을 아예 금지하면 나도 안 쓰고 남도 안 쓰게 되므로 경쟁 기업보다 임금경쟁력이 떨어지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된다. 규제가 개별 기업에는 나쁠 수 있으나, 산업 또는 경제 전체적으로는 좋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독점·공해·외국인투자 규제 등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규제는 나쁘다고 생각해 도입하지 않거나 없애려고 하는데,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항공산업 규제를 완화하면 승객들이 가려는 목적지에 비해 운행 비행기 수가 모자라게 되고, 공항에서 ‘지금 비행기 한 대가 목적지 두 곳 가운데 한 곳을 정해 떠나려 한다. 손들어봐라.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곳을 목적지로 정하겠다’는 풍경이 벌어지지 말란 법 있나? 규제가 별로 없는 듯하지만, 사실 잘 인식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을 뿐 우리 주변에는 규제가 엄청 많다. 주식시장도 규제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기업을 공개하려면 기업 정보를 제출하고, 이익규모를 충족해야 하고,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규제로 갖추고 있다. 어디부터 규제 대상이고 어디부터 아닌지도 애매하다. 아무튼, 기업에 너희들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는 것이 그 기업에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규제를 가하지 않으면 공부 안 하고 만날 게임만 할 것 아닌가? ‘탈규제’가 아이들에게도 좋은 게 결코 아니다.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선진국의 경제성장 신화 속에 숨겨진 은밀한 역사를 들춰냈고, 여러 책을 통해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설교는 ‘깨어진 약속’이었다는 점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폭로해왔다. 주로 자본주의 경제 역사에 집중하고 있는데, 경제학은 ‘경제과학’이 아닌 것인가?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라 가치관이 개입된 학문이다.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경제이론을 통해 다 밝혀지고 증명된 사실’이라고 말해온 많은 것들이 잘 들여다보면 사실이 아닌 게 많다. 논리적으로 또는 역사적 사실에서 왜곡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통해 내 자리에서 잘못된 통념과 왜곡을 자꾸 깨는 도전을 하는 것이고, 독자들도 이른바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를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한-미 FTA를 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망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이들이 수많은 사람에게 해로운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을 따지고 들어야 한다. 경제학 교수가 말하는 것이니 맞겠지, 하면 안 된다(장 교수는 <그들은…> 맺음말에서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것들은 모두 지난 30년 동안의 경제적 통념들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독자 여러분 중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고 말했다).
   
2008년 1월 미국 뉴욕의 뉴스쿨대학에서 장하준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물가관리를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이야 당연하지만 정부 경제정책 담당자들도 늘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데.
인플레이션은 1%만 올라가도 난리를 치는데, 실업률이나 비정규직 비율이 올라가는 건 일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로 인해 국민의 삶이 얼마나 어려워졌는가.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뭔가 정책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인플레이션 대응 정책(금리 인상이나 재정지출 축소 등)은 흔히 월급쟁이들에게 안 좋은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전통적인 필립스 곡선은 물가와 실업률의 상충관계를 보여준다). 1980년대 이후 많은 나라에서 인플레이션 잡는 것을 최우선 경제 과제로 삼았으나, 그동안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은 투자와 성장을 저해했다. 정책 담당자들은 ‘낮은 물가상승률로 세상이 더 안정적이 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안정과는 거리가 있다. 물가 안정은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제 안정의 지표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흔드는 가장 큰 사건은 일자리를 잃거나, 하는 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등이다. 물가상승률이 2%일 때와 4%일 때, 그 차이를 느낀다고 말할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장 교수는 <그들이…>에서 “낮은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금융자산 보유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입안된 것이다. 금융자산의 수익은 대부분 명목상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수익이 줄어들게 마련인데,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강박관념은 이제 잊어버리자. 인플레이션은 금융자산 보유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대중을 겁주려고 사용해온 ‘무서운 망태 할아범’에 불과하다.”(93쪽)고 말했다).
 
“독자들이여,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
‘글로벌 불균형’이 화두인데, 요즘의 환율전쟁은 어떻게 보는가?
중국으로서는 기가 찰 것이다. 중국만 환율 조작하는가? 넓은 의미에서 모든 나라가 환율을 조정하고 있다. 미국이 양적 완화로 돈을 마구 푸는 것도 결국 환율이란 가격에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내부적으로 정신분열증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월스트리트는 강한 달러를 외치는 반면, 한편에서는 달러를 펑펑 풀어 약한 달러를 만들고 있다. 통화팽창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 월스트리트가 일단 양적 완화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다른 때 같으면 인플레이션이 걱정된다고 난리쳤을 것이다. 글로벌 불균형을 풀려면 중국이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수를 늘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소비도 하나의 문화라 돈을 쓰라고 해도 쉽게 못 쓴다. 옛날에 안 먹고 안 입으며 돈을 모은 구두쇠 영감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읍내 나가서 돈을 흥청망청 썼다고 한다. 영감은 유일한 사치가 콩자반 해놓고 한 숟가락씩 떠먹는 것이었는데, 아들의 행태를 보다 못해 화가 나서 자신도 마구 돈 쓰겠다며 한 행동이 콩자반 두 숟가락을 먹는 것이었다고 한다. 소비를 늘리려면 소득분배, 소비자 금융, 복지제도 등이 다 바뀌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FTA와 금융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정부가 경제의 금융화를 추구하면서 모델로 언급해온 아일랜드나 두바이는 지금 다 망하고 있다. 귀찮은 제조업은 이제 그만 버리고 금융 쪽으로 가자는 정부 정책을 국민이 앞장서 막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제조업은 중국이 쫓아오니까 더 이상 전망 없다, 고부가가치 금융으로 가자’ ‘세계화 시대에 문 걸어 잠그고 살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정부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데 돌려보고 뒤집어봐야 한다. 한-미 FTA는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할 때 이를 핑계로 안 하면 좋겠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타격을 입을 것이고, 장기적으로 최첨단 산업 개발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한국 제조업 생산성은 미국에 비해 40∼50%에 불과하다. 과연 FTA 충격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준 차이가 나는 국가 간에 자유무역을 하면 반드시 후진국이 손해를 보게 돼 있다. 반에서 5등 하는 학생을 1등만 있는 교실에 보내면 열심히 해서 1등을 할 수 있겠지만, 15등 하는 아이를 그곳에 갖다놓으면 주눅들어 성적이 더 떨어질 수 있다. 전자 분야 등은 1등을 하지만, 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결코 5등짜리 국가는 아니다. 물론 경제 현실은 기득권 세력이 쥐고 있다. 기득세력이 판을 이미 다 짜놓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만 얘기하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들이 정책입안자들을 향해 계속 외치고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그러면 안 바뀔 것 같은 것도 바뀌게 된다.
2004년에 펴낸 <주식회사 한국 구조조정>에서 한국 경제의 전통적인 모델로 ‘국가-재벌-은행’의 연계시스템를 꼽으며 이 강점을 유지·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에 대한 생각은?
기업의 주주라는 것이 단기 이익을 요구하고 배당금을 많이 달라고 하고, 안 그러면 해당 기업을 적대적 인수·합병을 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사람들이다. 법적으로는 기업의 주인인지 모르지만 주인의식이 거의 없다.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주주가 하는 일이 뭔가? 삼성전자는 외국인 주주 비중이 50%를 넘는다. 그런데 삼성전자 오너 경영과 관련해 주주의 소액주주권 운운하지만 주주총회에서 발언하는 건 기관투자자들이다. 무서운 사람들은 그들이다. 기관투자자는 이건희 일가에 비해 약자일 뿐, 실제로 가진 재산은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런 주주들이 무슨 투사라고 소액주주 운동이니 주주 가치니 하면서 밀어주는가. 지금은 삼성전자가 잘나가니까 별 말이 없지만, 이재용이 경영권을 승계한 뒤 삐걱대면 이들이 즉각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을 제기할 수도 있다. 주주들이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 등을 앞세워 단기 실적을 요구하고 종업원을 자르고, 투자를 안 하면 장기적으로 기업은 골병들게 된다. 그래서 어느덧 망한 대표적인 기업이 GM이다. 단기 투기자본이 들어와 우리나라 어디에서 어떤 거품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이다. 파생상품이 하도 많아 거품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도 힘들다. 금융 자유화를 계속 밀어붙일 게 아니라 자본 통제를 해서 투기자본은 못 들어오게 하는 게 상책이다.
중국 경제의 부상과 패권에 대한 전망은?
중국의 소득 불평등 지수가 남미 하위권 국가 정도까지 치고 올라왔다. 남미는 지난 500년간 불평등을 안고 살아온 나라들인데, 중국은 갑자기 불평등이 사회·경제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중국에서 상당수 사람들은 여전히 모택동복(공산당 복장)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반면, 어떤 부유층은 백악관을 베껴서 지은 호화주택에 살고 있다. 경제가 고성장하면서 일자리가 생기고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나아지면서 불평등이 어느 정도 납득되었지만, 성장률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특정 이슈가 터져 사회 낙오자들이 큰 불만을 제기하면 격동이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어떤 자리에서 미래학적 공상으로 중국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중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옛날에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환율을 한 번에 4배 대폭 평가절상하면서 경제에 큰 거품이 발생해 나중에 그 거품이 폭삭 꺼지면서 망하고, 결국 전세계가 공황에 빠져들면서 중국 내부에서 진짜 공산당이 나와 무장투쟁한다’는 소설 같은 얘기였다. (웃음) 지금 중국 경제의 미래는 얼마나 충분히, 그리고 빨리 불평등 문제를 치유하느냐가 관건이다. 중국은 굉장히 복잡하고, 내가 중국 중앙과 지방 정부의 상호작용 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중국 경제에 대해 별로 언급을 안 해온 편이다(갈수록 세계적 이름을 얻는 장 교수이지만, 국내 대학원 강의나 몇 번의 식사 자리 등에서 만나본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겸손’이란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은 사람이다. 장 교수는 “그건 나도 잘 모르는 영역인데… 정확한 수치 데이터는 생각나지 않는데” 하면서도,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내놓는다. “나라고 해서 모든 것을 잘 알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면서).
 
한-미 FTA 하면 한국 경제 골병들 것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발언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
통일 비용을 고려할 때 통일은 점진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어느 정도 경제발전을 한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은데…. 북한은 갑자기 통일하면 견딜 수 없는 사회다. 내부에서 경제성장을 도모할 동력은 없는 것 같고, 남한이 가서 해주면 식민지화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독일이 옛 동독 지역에 주는 보조금이 국민소득의 5% 정도 된다고 한다. 남북한은 동서독에 비해 소득 격차가 더욱 크고, 인구도 서독 대비 동독에 비해 남한 대비 북한이 더 많다. 북한의 생활수준을 남한과 비슷하게 맞추려면 남한 국민소득의 25% 정도를 북한에 줘야 하는데, 현재 남한 조세부담률은 25%가 채 안 된다. 너무 빨리 통일하려고 나서는 건 위험하다. 
한국에서 일반 대중은 물론 기업, 정부 관리, 언론이 ‘장하준’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단지 주류 경제학자들만이 유독 ‘경제학자 장하준’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모르겠다. 그에 대해 내 귀에 대고 직접 말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하지만 (내 책을 보고) ‘이게 무슨 경제학이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제학 교수가 꽤 있는 것으로 들었다. 나를 ‘이단자’라고 부른다는 얘기도 들었다.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 많으니 그들 눈에는 내 말이 경제학으로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교수들이야 은퇴할 때까지 30년 종신고용인데, 자신이 공부해온 주류 경제학에 위기가 온다 해도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겠는가? 

pa15_6.gif

[발견이의 숲길 걷기여행] 개미마을과 인왕산길, 백사실계곡
기차바위에 오르면 사람의 터전과 자연의 조화가 보인다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과 함께 가볼 만한 길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단연코 인왕산을 가보시라고 일러준다. 북촌한옥마을도 좋고, N서울타워도 가볼 만하지만 지금의 서울을 단시간에 인왕산만큼 잘 보여줄 수 있는 길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외국인에게 추천하는 길이니만큼 서울사람이라면 의무감을 품고라도 가봐야 할 것이다. 예쁜 벽화가 기다리는 홍제동 개미마을과 백사 이항복 선생의 별장이 있었다는 백사실계곡은 여기에 주어지는 덤이다.


▲ 기차바위에서 바라본 장엄한 풍광.
외국인과 가볼 만한 서울 최고의 길로 강추

길은 지하철3호선 홍제역 2번 출입구(1)를 나오는 것으로 첫 발을 뗀다. 30m 앞에 있는 ‘주재근베이커리’ 빵집 앞에서 왼쪽으로 접어든다. 인도를 2분 남짓 걷다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 7~8분쯤 걷다 오른쪽에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 언덕길로 향한다. 문화촌교회를 끼고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문화촌현대아파트단지 길을 걷게 된다. 101동 아파트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는다.

5분 정도 단지 외곽 찻길을 걸어 올라가다 104동 아파트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등산로 출입문’이 보인다. 이 문을 나서면 곧바로 앞에 있는 공원을 통해 인왕산을 오를 수 있지만 그리로 가지 않는다. 개미마을로 향하기 위해 왼쪽 골목을 따라간다. 100m 조금 넘게 가면 골목이 나뉘므로 오른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곧바로 왼쪽 골목으로 돌아가면 개미마을 입구와 연결되는 편도 1차선 찻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홍제동 개미마을(2)을 알리는 ‘빛 그린 어울림 마을1호’라는 안내판이 녹색 울타리에 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푯말에 따르면 금호건설의 후원으로 건국대, 상명대, 성균관대, 추계예술대, 한성대 미대 학생들이 이 거대한 개미마을 캔버스에 아름다운 작품들을 그렸다고 한다.

▲ 청아한 물소리가 따라붙는 백사실계곡 길(위). 개미마을의 인기스타인 코스모스 돼지 모녀(아래).
개미처럼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왕산 기슭에 기대어 사는 이 마을은 서울에서 몇 안 남은 소위 달동네다. 회백색 일색이던 이곳 담벼락에는 미술학도들의 붓이 지나가면서 장미와 해바라기가 피어나고 나리꽃도 하늘거리며 쉼 없이 방싯거린다. 화려한 그림 꽃밭을 지나 언덕을 계속 오르면 이제는 그림 동물농장이다. 젖소가 긴 혀를 내밀며 친밀감을 표시하고, 눈웃음을 살살 치는 누렁이가 천진난만한 눈인사를 건네온다. 노랑코스모스를 꺾어 든 돼지 모녀가 창 밖으로 내다보는 모습에서는 아무리 심각한 사람이라도 함박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코스모스 돼지 모녀가 반기는 개미마을

지도에 표기된 개미마을길은 마을버스가 오르내리는 주요 진입로다. 진입로를 따라 10분 정도 언덕을 오르면 공중화장실이 있는 마을버스 회차지점에 닿는다. 여기서 몸을 돌려 올라왔던 길을 100m 정도 거꾸로 내려간다. 오른쪽으로 차 한 대가 간신히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포장길이 노란 철난간을 끼고 나 있으니 그리로 오른다. 5분 못 미처 걷다 나무계단 몇 개를 밟고 오르면 왼쪽으로 인왕산 숲길(3) 입구가 보인다.

나뭇잎에 가려 잘 안보이던 푯말에는 ‘기차바위 능선 300m’라고 쓰여 있다.

좁은 숲길 오르막을 올라 작은 능선에 올라타는 데는 5분이 걸린다. 확 트이는 전망에 기분이 한껏 고조되지만 이 길의 전망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북쪽으로 있는 집채만 한 바위 오른쪽으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유턴하듯 길을 잡아 간다. 울창한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기차바위 능선으로 향한다.

이 길을 3분 정도 가다 보면 홍심약수터에서 올라오면서 만나는 갈림길이다. 이곳 이정표에는 직진 방향으로 ‘기차바위 능선 650m’라고 쓰여 있다. 아까 인왕산 숲길 입구에서 본 푯말이 ‘기차바위 능선 300m’였으니 오히려 우리가 가 할 곳에서 멀어진 것은 아닌가 오해할 수 있다. 분명 두 개의 이정표 중 하나는 잘못된 표기일 것이다. 나중에 GPS 트랙 자료를 분석해 보니 나중에 만난 ‘기차바위 능선 650m’가 잘못된 것이었다.
이 푯말은 기차바위 능선을 따라 400m 정도 더 가야 나오는 ‘기차바위’ 위치를 지칭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당분간 정정되지 않을 것 같은 ‘기차바위능선 650m’ 이정표 방향으로 5분여를 더 간다. 길은 대체로 약간의 오르막이지만 험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인왕산 자체가 거대한 암봉임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평지 걷기보다는 난이도가 약간 있는 편이다. 기차바위 능선을 만나는 작은 T자 갈림길에서는 당연히 인왕산 정상 방면인 오른쪽으로 간다.

▲ 1 기차바위능선으로 향하는 솔숲길. 2 성곽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인왕스카이웨이 산책로와 만난다. 3 백사실계곡 하류의 현통사.
마사토 위에 높지 않게 자란 송림 사잇길을 걷는다. 길 왼쪽으로 북악산 성곽과 코스 후반에 지나게 될 창의문이 쳐진 솔가지 너머로 부감된다. 기차바위 능선을 걸은 지 7~8분 정도 됐을 때 왼쪽에 큰 바위가 나온다. 바위를 피해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개미마을로 다시 내려가게 되니 주의하자. 왼쪽의 큰 바위 위로 올라간다. 그 위로 불과 100m도 안 되는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면 루트를 따라 양옆으로 안전로프를 설치한 인왕산의 명물 기차바위다.

기차바위에서 뒤를 한번 돌아다보자. 북한산 연봉이 초원을 내달리는 야생마의 갈기처럼 물결치며 하늘과 땅의 경계를 이루는 모습이 경이롭게 펼쳐진다. 그 품으로 찾아든 평창동 마을이 소인국의 장난감마을처럼 아련하게 자글거린다. 숲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람 사는 집이 지붕을 얹었으나 산맥은 그마저도 제 안의 자식인 양 품 안에 끌어안고 우뚝 섰다. 기차바위 북쪽 전망은 이렇듯 인간의 터전과 자연의 조화로움이 빚어낸 하모니다. 반면 남쪽의 너른 벌판엔 섬처럼 떠 있는 남산을 빌딩 바다가 출렁이며 겹으로 포위망을 둘렀다.

기차바위를 지나 5분만 더 가면 인왕산 서울성곽이다. 성곽으로 오르는 철계단을 오르면 성곽 위에서 양쪽으로 길이 나뉜다. 초소가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오른쪽에 우뚝한 인왕산 정상까지 다녀올 것이다. 인왕산 정상은 완전히 암봉이지만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쇠붙이와 석재로 계단을 놓아 어렵지 않게 올라볼 수 있다.

10여 분 만에 도착한 인왕산 정상에는 삿갓을 엎어 놓은 듯하다 하여 삿갓바위라 불리는 정상석이 기다린다. 바위 위로 올라가기 편하도록 누군가 애써 정을 쳐서 홈을 파놓았다. 그 홈을 밟고 올라서면 지금껏 지나며 보아왔던 서울의 풍광이 다시 한 번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북쪽은 북한산이 주인이고, 너른 벌판은 사람들의 터전이다.

북한산 연봉이 스크린처럼 펼쳐지는 길

인왕산 정상에서 인왕스카이웨이 산책로까지는 인왕산 서울성곽을 따라 올라왔던 길을 되짚으며 내려가면 된다. 내려갈 때는 계단이 많으니 등산용 혹은 노르딕워킹용 스틱이 있으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인왕산 성곽만 따라가면 30여 분 만에 인왕스카이웨이에 닿는다. 지나는 자동차에 주의하며 건널목을 건너 왼편으로 꺾는다.

인왕스카이웨이 산책로는 찻길을 왼쪽에 끼고 있지만 폭신한 흙길로 나 있다. 5분 정도 가면 정자를 사이에 두고 길이 Y자로 갈라진다. 왼쪽길을 택하면 곧 윤동주 시인이 산책하며 올랐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하여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는 이름을 얻은 쉼터가 나온다.

▲ 인왕산 서울성곽길(위). 인왕산 정상 삿갓바위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전경(아래).
그곳을 지나면 곧 길은 찻길로 내려선다. 찻길에서 오른편으로 유턴하듯 돌아 인도를 100m쯤 걷는다. 길 건너편으로 1968년 1·21 사건 때 목숨을 잃은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보이고 그리로 건너는 건널목이 있다. 길을 건너 왼편으로 향한 계단을 오르면 고색창연한 창의문이 기다린다.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년) 때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쿠데타군이 한양으로 난입하기 위해 부수고 들어왔던 문으로 지금도 문루에는 반정공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창의문 오른쪽 북악산 서울성곽 입구에는 화장실이 있으므로 필요하면 다녀오도록 한다.

백사실계곡 가는 길은 창의문을 통과한다. 마을길을 만나면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곧 길이 Y자로 갈라지면 ‘산모퉁이’, ‘오솔길’ 푯말이 있는 왼쪽 길을 택한다. 동양방앗간이 있는 길에서는 약간 오르막길인 직진 방향이다. 걷기에 하등의 불편함이 없는 낮은 경사의 오르막을 이룬 부암동 골목길을 10여 분 정도 걷는다. 호젓한 골목길이지만 가끔 차가 지나므로 너무 넋을 놓지는 말아야 한다.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의 촬영지로 유명한 산모퉁이 카페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걷는다. 길은 여전히 약간의 경사를 이룬 오르막이다. 카페를 지나 100m쯤 갔을 때 길이 좌우로 갈라진다. 오른쪽 찻길로 간다. 70m 앞에서 다시 갈림길이므로 직진하듯 내리막길을 택한다. 옛 추억이 떠오를 듯한 아련한 골목길을 5분 정도 걷다 담뱃가게를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백사실계곡 숲길로 들어서게 된다. 

청와대 경비 목적으로 40여 년간 닫혀 있던 이곳은 이제 도롱뇽 서식지로 보호받고 있다. 또 드물게 멧돼지가 출몰할 정도의 성긴 숲이 길을 호위한다. 물길을 따라 난 큰 길을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백사 이항복의 별장터였다는 연못이다. 백사실계곡의 길은 빨리 걸으면 10분 만에 끝나버릴 정도로 짧다. 하지만 천천히 거닐면서 쉬어가면 몇 시간이고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이 연못터 주변으로 공터가 많으니 그곳에서 쉬어갈 것을 권한다. 

백사실계곡이 끝나는 곳에는 현통사라는 사찰이 있다. 계곡 물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 같은 사찰 안을 잠시 둘러보고 다시 사바세계로 발을 내딛는다. 이 몽환적인 길에서 우리를 끄집어내어 집으로 데려다줄 시내버스가 정차하는 세검정초등학교 버스정류장(7)까지는 현통사에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인터넷 『발견이의 도보여행』에서 연재코스, 북한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
    제주올레의 정밀 위성(항공)지도와 다양한 걷기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http://MyWalking.co.kr


/ 글·사진 윤문기 도보여행 전문가

pa15_6.gif

외모? 말년이 고독해질라…
[송년 특집] 싱글즈

 

   
 
유안 모레노
Juan Moreno <슈피겔> 에디터

 남자는 왜 여자를 필요로 할까? “여자한테는 좋은 냄새가 나니까, 욕실 장이 텅 비어서, ‘Youporn’(포르노 동영상 사이트)가 영구적인 문제 해결책은 아니니까, 평안한 내 인생이 지겨워서, 배터리 연결하는 것을 감탄하면서 봐주는 것은 여자뿐이니까, 아들을 낳고 싶어서, 몇 년 전부터 더블침대를 사두었기 때문에, 내 방이 알코올중독 치료소 병실처럼 무미건조하니까, 그것만이 인생의 진정한 의미이니까….” 여성 파트너를 찾고 있는 남성들은 이런 이유를 말했다. 그중 한 사람인 36살의 변호사는 금발머리에 늘씬한 체형을 가졌고, 그가 입은 양복도 값싼 제품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소 안내 여직원에게 데이트를 신청할까 말까 망설였다. 그녀는 멋진 몸매에 상냥한 미소를 짓지만, 얼마 전 쪽지에 ‘recherchieren’(조사하다)를 ‘recherchiren’이라고 썼다. 그 뒤 이 변호사는 맞춤법에 약한 여자와 함께할 수 있을지 자문했다. 그는 많이 웃고, 남의 말을 들을 때면 고개를 약간 돌리고 상대방을 한쪽 눈으로 쳐다보는 버릇이 있다. 그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위로 올라가는 선택을 한, 돈 많이 버는 좋은 남자다. 여자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 그는 여자친구를 원하고 나중에는 가정을 이뤄 자녀를 얻기 바란다. 그는 지금 쾰른의 아헨 거리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 있는 4년차 싱글 남성이다. 
   
 

 그는 안내 여직원이 자신과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는 빠져버린 ‘e’는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시회와 여행, 외식을 좋아하지만, 그녀는 ‘recherchiren’이라고 쪽지에 적는다. 여기에서 빠진 ‘e’는 그들 사이의 차이를 상징했고, 그것은 이 변호사가 타협해야 할 부분이자 첫 번째 불안감이다. 변호사는 그녀가 ‘Rhythmus’(리듬)의 철자를 어떻게 쓰는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가끔 지금의 생활과 바꾸고 싶은 커플을 알고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진짜로 행복한 커플 말입니다. 그런 커플은 본 적이 없어요. 그들은 나처럼 각각 자신의 삶에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지요. 다만, 그것이 남녀관계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만 다릅니다.”

맞춤법도 모르는 여성과 데이트를? 

 싱글 생활의 단점은? “35살까지는 단점이 없고, 50살 이후에는 모든 것이 단점이죠. 1년의 마지막 밤, 어머니와의 대화, 1인실 추가 비용, 휴가 계획, 빌어먹을 추위, 인터넷에서 여자를 찾아야 하는 것, 내가 왜 싱글인지 매번 설명해야 하는 것, 친구의 농담을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을 때, 냉소적이 돼가는 것, 나 혼자서는 영원히 철이 들지 않을 테니까.”   
 30∼50살의 싱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압박감’보다 더 큰 차이점을 만드는 요소는 없다. 여성은 압박감을 느끼고, 남성은 느끼지 않는다. 남성에게는 생체시계가 없다. 그들은 55살에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 그들은 ‘호호할배’가 되어서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 물론 아이를 팔에 안기엔 너무 힘들겠지만, 어쨌든 아이를 만들 가능성은 있다. 자연이 여성에게 생식력을 거둬가는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은 남성이 정신적으로 영원히 자라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협을 하느니 진정한 사랑이 올 때까지 혼자 기다리는 남성은 진정한 로맨티스트다.   
 독일은 아직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한 파트너 에이전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뮌헨에 사는 18∼59살 시민 중에서 28.8%가 싱글이라고 한다. 독신 가정도 늙은 할머니도 아닌, 싱글 말이다. 베를린은 28.6%, 함부르크는 25.4%, 프랑크푸르트는 24.8%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독일 대도시의 평균적인 싱글에 대해 명확한 그림이 그려진다. 남자가 많고, 중년 세대, 평균 이상의 교육, 평균 이상의 수입, 정치 성향은 약간 좌파, 스포티함, 넓은 집을 가졌고 방 3개짜리 집을 좋아한다.
 싱글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랑에서 그들이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사회학자는 ‘정착 의무’라는 것을 설파한다. 누구도 한 가정의 아빠에게 ‘왜 아빠가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다. 싱글은 왜 그가 싱글인지, 왜 관계가 잘되지 않았는지 답변해야 한다. 어쩌면 설명은 아주 단순할 수 있다. 지난 세월 동안 사랑에서 너무 성공을 거두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이전 세대가 이룩한 한 가지 위업을 든다면 그것은 사랑의 승리 행진이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허가되고 그와 동시에 다른 이의 마음에 드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사랑은 거기에 마치 점심 뷔페처럼 놓여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낼 수 있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TV 진행자 중 한 명은 레즈비언이고, 유명한 축구 심판은 그가 양성애자임을 고백했다. 외무부 장관은 게이고 여성 총리에겐 아이가 없다. 전 총리는 여러 번 이혼했다. 일부일처제, 무자녀, 편부모, 이성애자, 이혼, 게이, 동거 아니면 싱글. 이 모든 것이 사생활이다.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지에 교회·규범·부모는 더 이상 결정권이 없다. 오직 행복과 충만함과 사랑을 추구할 수 있다. 사랑만이 중요한 것이다. 쾰른의 변호사 같은 남성은 알아서 잘한다. 그들에게는 잠재적인 불만족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여자 파트너를 찾을 정도로 급하지는 않다. 그들은 인생의 자유와 가능성을 마음에 들어한다.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이전에는 좋은 상대를 구했다면 지금은 최고의 상대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승과 하강을 즐기는 사람들

 여성은 어떠해야 하는가? “셀마 헤이엑(배우), 바바라 쇤베르거(MC), 지나 와일드(배우)처럼 생겨야 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정치가)처럼 생겨서는 안 된다. 섹스를 잘하면 좋겠고, 나와 같이 하는 섹스가 그녀의 마음에 든다는 느낌을 주었으면 한다. 아이를 원해야 한다, 아이를 원하지 않아야 한다, 많이 웃어야 한다, 쇼핑을 적게 해야 한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아버지를 좋아해야 한다, 사람에게 기대야 한다, 내 친구들이 그녀 때문에 나를 부러워해야 한다,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줘야 한다.”   
   
 
  
 뮌헨 뢰클 광장의 작은 레스토랑에 12년째 싱글인 50살의 남자가 앉아 있다. 정보학자인 그는 작은 개를 키우고 있다. 그는 파트너 찾기를 포기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잘 조직해두었다. 그는 친구도 있고, 자신의 네트워크는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 뮌헨에서 잠시 살던 미국인 여성을 사랑한 적이 있다. 그녀는 머리가 좋고, 성격이 까다롭고, 복잡하고, 매력적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여성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인일 뿐 아니라, 그가 사랑한 유일한 여인이다. 다른 여성들은 그녀와 비교당해야 했다. “난 몇 번이나 그녀를 찾아 미국에 갔습니다. 그녀는 결혼을 했어요. 이젠 잊어야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상적인 여성이었고 그녀보다 못한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치가 높아집니다.” 그는 기대치를 낮출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직업에서도 기대치를 낮추지 않는다. 그는 직업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좋은 음식을 즐기고, 그가 사랑하는 뮌헨의 한 구역에 살고 있다. “내가 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찾는 데 타협해야 합니까?” 인생이 한순간에 흘러가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30년간 심리 삼당소를 운영해온 아놀드 레처는 “많은 싱글이 남녀관계에서 비행기를 납치하는 하이재커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하이재커들은 상승과 하강을 좋아하고 변화와 사랑에 빠진 상태, 그 가슴 두근거리고 순수한 행복을 느끼는 격렬한 감정 상태를 즐긴다. 그들에게 평온한 관계는 지루하다. 최고치에 이른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이미 손에 넣은 것에는 관심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사랑과 함께 자기 인생을 손에 넣는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지속적인 욕구를 느끼는 것이다. 모두가 스스로 행복을 만드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인생설계로도 그것이 가능할까? 최고의 인생설계로? 레처는 말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행복상담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과 건강은 공통된 근본적인 특징을 가졌다는 사실을 잊고 있어요. 행복과 건강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얼마 전 함부르크의 인터넷 파트너 에이전시인 ‘엘리트 파트너’에서 약 1만 명의 싱글을 대상으로 ‘왜 그들이 동반자를 찾지 못하는가’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많은 대답은 역시 ‘기대치가 너무 높다’였다. 행복 추구, 자기 행복과 사랑에 대한 책임. 미국인은 심지어 행복 추구를 명문화했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행복’에 관한 문구에 대해 알고 있다. 행복이 국가의 목표였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혼율이 50%에 달한다. 
 “사람들은 행복에 대한 편집증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복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행복을 얻지 못한 자는 그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는 사람들이 행복을 더욱 열심히 좇게 만듭니다.” 레처는 “이런 ‘자기책임’ 개념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친밀함은 언제나 자유의 희생과 연관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사회이론 교수인 배리 슈바르츠는 선택 가능성이 무한한 세계에서 사람들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훨씬 만족스럽고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지만 약간 세상사와 동떨어졌다는 느낌도 든다.

차선에 만족해야 한다?

 내가 직업에 쏟는 열정은 최고가 아니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누가 이것을 동기부여 트레이너에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 회사의 제품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누가 이것을 고객에게 설명할 것인가. 당신은 나에게 최고의 여자가 아니야.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해? 누가 이것을 자기 아내에게 말할 수 있을까?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포기를 뜻한다. 하지만 우리 시대가 선전하는 모토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 최고가 아닌 차선에 만족해야 하는가? 어쩌면 모든 분야에서 최고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야말로 이 시대와 우리의 사고, 사회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다. 따라서 싱글이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80여 년간의 세월을 최대치로 누리려는 사람이 ‘recherchiren’이라고 쓰는 여자에게 만족해야 할까? 게다가 이 상태를 변화시킬 사회적·생화학적·경제적 압박도 없는 상태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불쾌감을 느낄 때는? “남자를 개조하려는 욕구, 너무 높은 기대, 더 젊은 여성에 대한 빈정거림, 섹스를 사랑의 증거로 보는 바보 같은 생각, 35∼40살의 거의 모든 자녀 없는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절망적이고 가끔은 비이성적인 행동,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한 그녀의 요구와 재산 또는 최소한 남자의 직업 전망에 대한 불같은 관심이 결합했을 때, 남녀관계를 자아실현의 일부로 보는 것.”
 자신의 아파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베를린의 한 모로코 카페에서 광고회사의 대변인인 한 남자는 말한다. “여자에게서 불쾌감을 느끼는 일이 전혀 없다.” 그는 여자를 아주 좋아한다. 지난해 몇 명의 여자와 밤을 보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주말이면 서너 차례 데이트 약속이 있다. 매번 그녀들과 침대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을 “특정한 관계를 맺지 않은 경험 많은 싱글”이라고 부른다. 그는 아주 매력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인터넷이 생긴 뒤 그가 다시 일반적인 관계를 맺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30∼50살 성인의 만남 가운데 남녀관계로 이어진 3분의 1이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다. 이런 경향은 점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독일연방정보통신협회(BITKOM)에 따르면, 독일인 130만 명이 인터넷을 통해 인생의 동반자를 찾아냈다. 광고회사 대변인은 차를 마신 뒤 자신의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상품이 수시로 변하는 시장입니다. 느슨하고 친절하고 좁디좁은 인맥이 형성됩니다. 이것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시각을 통해 전달되는 매력은 효력이 몇 배로 늘어납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인터넷에서 여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는 ‘핀야’(Finya)라는 이름의 인터넷 사이트 회원이다. 인터넷에는 이런 포털이 수십 개 있다. 그는 잘 나온 사진을 걸어두고 그 아래에 개인적인 멘트를 한두 마디 적었다. 그중 하나는 프랑스 시인 외젠 마린 라비쉬의 말이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자야말로 이기주의자다.” 다른 멘트는 “중요한 것은 자폐적으로 보이는 것이다”였다. 몇몇 남성은 상반신 나체나 서핑을 하는 사진을 올리거나 그들의 차 앞에서, 혹은 두 대의 차 앞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다. 한 뮌헨 사람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라는 개인 코멘트난에 “P1(뮌헨에 있는 유명한 나이트클럽)의 날라리 여성들은 필요 없다”라고 적었다.
 “이런 종류의 포털에서는 모든 정보에 의미가 있습니다. 개방적이어야 하지만, 너무 개방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중요합니다. 절망적으로 여성 파트너를 찾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여성이 저에게 가볍게 연락하기 쉽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광고회사 대변인의 말이다. 오늘 저녁 그는 24살의 여성과 한 레스토랑의 오픈 기념식에 갈 예정이다. 그는 38살이다. 그는 프로필에 한두 살 어리게 적은 연상의 여성들과 만난 적 있다.
 대부분 왜 파트너를 찾는지, 얼마나 오래 찾고 있는지, 얼마나 자주 이런 만남을 가졌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하지 않고 많이 들어주면서 여자에게 그가 그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해준다. 그는 몇 년 동안 이런 만남을 가져왔다. 그는 여자를 읽을 수 있고, 일정한 패턴을 알아내고, 거기에 자신을 맞추었다.
 
마지막 10년의 고독을 참을 수 있다면야

 하지만 ‘반복’이 가장 큰 문제다. 그는 매일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 어느 순간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게 될 전자우편을 여성에게 보낸다. 어떤 날은 8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다. “물론 슬슬 질리게 되겠지요.” 어느 순간 이런 만남을 그만두는 현명한 사람들도 있다.  광고회사 대변인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지만, 압박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친구들이 있고, 변화가 많은 직장이 있고, 자주 외출도 한다. 어쩌면 이런 생활을 계속할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모여살게 될지도 모른다. 일생 동안 혼자라는 것이 도대체 뭐가 그리 나쁘단 말인가? 인생을 최고로 살기 위해 그렇게 하는데 말이다.
 그 대가는 그의 마지막 10년이 고독하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좋은 거래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누구도 해주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안전성을 빼앗긴 뒤 이제는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부모님 세대보다 더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끝낸 뒤 광고회사 대변인은 자리를 떠야 했다. 집에 가 인터넷에서 새로운 전자우편을 체크하고 데이트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나는 내 삶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녀를 위해 내 메일함을 삭제할 수 있는 이상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Der Spiegel
번역 황수경 위원

pa15_6.gif

‘완벽맨’은 드물다!
[송년 특집] 싱글즈

   
 
클라우디아 포크트
Claudia Voigt <슈피겔> 에디터
 
 여자는 왜 남자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남자가 있으면) 사람들이 날 보고 미소를 지으니까, 아이와 가정을 원하니까, 이상한 여자 취급을 받을까봐 겁나서, 너무 오랫동안 혼자 살아서, 침대에 둘이서 같이 눕는 것이 혼자보다 훨씬 따스하니까, 누군가가 나한테 오늘 어땠느냐고 물어봐주기를 원하니까, 독신자에 대한 세금정책이 엉망이라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관계가 훨씬 좋으니까, 언제나 남자가 있기를 바랐으니까, 혼자 늙어가고 싶지 않아서….”
 남성 파트너를 찾고 있는 여성들은 이런 이유를 댔다. 이들은 이상형의 남자를 찾을 수 없어서, 혹은 언제나 나쁜 남자에게만 끌려 오랜 시간 진정한 파트너를 만나지 못한 8명의 여성이다. 이들은 모두 직업이 있었고, 그중 몇 명은 출세한 여성이었다. 별다르게 눈길을 끌지 않고도 밤에 혼자 나이트클럽에 가 남자들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고, 하룻밤 인연을 맺을 수 있다. ‘싱글맘’으로 혼자 아이를 키울 수도 있고, 심지어 섹스를 하지 않고 임신을 해 정자 제공자에 대해 평생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여성에게는 더 이상 남성이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진정한 짝을 찾으려는 열망은 남아 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자신의 짝을 찾는 30살에서 50살 사이의 여성 8명과 대화를 했는데, 대화에서 이 연령대 여성들의 문제가 좀 특이함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로맨틱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행복과 절망이 교차하고 생의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 진짜로 나타날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들의 직업은 스포츠트레이너, 변호사, 유치원 교사, 문화 매니저, 작가, 언론인, 미용사 그리고 회사 대변인이다. 다른 여성과 마찬가지로 그녀들도 이상적인 남성을 찾고 있다. 그중 몇 명은 적극적으로 파트너를 찾고 있지 않고, 또 다른 몇 명은 이미 함께하는 남성 파트너가 있지만 그 관계의 미래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만족스러운 커플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것은 그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사진에 찍히고 싶어하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을 신문에서 보는 걸 원치 않았다. 파트너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독신 상태가 흠이라도 되는 듯 익명으로 머물고 싶어했다.

남자는 더 이상 필요 없다? 

 독일에는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그 수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고 그저 대충 짐작할 뿐이다. 지난 몇 년간 해마다 약 20만 쌍이 결혼했고, 전 가구의 40%가 독신 가정이다. 이 수치는 점점 상승하고 있다.
 스포츠트레이너인 여성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단번에 ‘저런 여자가 혼자라니 이상하군’이라고 생각할 만했다.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남자는 많다. 그녀는 얼마 전 긴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그녀의 외모만을 보고 접근하는 남자들이 지겨워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12살짜리 아들이 한 명 있다. 몇 년 전에는 오늘날 그녀가 ‘떠나게 내버려두지 말았어야 할 남자’라고 칭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녀는 그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는 결혼을 부담스러워했다. 나중에야 그녀는 그와의 관계가 아주 특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변호사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유치원 교사는 몇 년간 남편의 거의 대화가 없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녀에게 고독은 해방이었다. 그리고 문화 매니저는 16살 아래의 남자와 불장난을 하고 있었다. 이 커플은 때때로 며칠씩 같이 지내지만 함께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가는 일은 없다. 그녀는 제대로 된 남녀 관계는 아니라고 했다. 작가는 두 자녀를 두었고, 이것이 진짜 인생인지에 의문을 가졌다. 언론인은 둘째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는 반드시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즐기는 남자여야 한다. 미용사는 몇 번의 짧은 교제를 경험했고, 이제 불혹을 넘겼다. 만일 그녀가 오랫동안 함께할 남자를 찾게 된다면 행운이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별 상관 없다고 말한다. 회사 대변인으로 일하는 여성은 그녀보다 훨씬 연상의 남자와 같이 살면서도 이상적인 짝을 찾고 있다. 그녀는 현재의 파트너와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어떤 깨달음이 사랑을 위해 중요한가? “언제나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해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름답죠. 하지만 끓어오른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야 서로에게 어울리는지 알 수 있어요. 임신하기 전에 파트너와 함께 임신 후의 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해봐야 해요. 진정한 짝이 끔찍스럽게 따분해 보일 수도 있어요. 성급하게 이별을 결심하지 마세요. 모든 커플이 부러워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대화와 섹스 모두 중요해요. 둘 중에 한 가지만 빠져도 제대로 된 관계가 될 수 없어요. 상대에게 강요를 해서는 안 돼요.”
 심리학자이자 커플상담가인 클라우디아 클라센홀츠베르그는 심리치료실을 약 20년간 운영했다. 그녀는 최근 몇 년 사이(5∼10년)에 30대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너무 큰 자유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걸 관찰할 수 있었다. 인생의 동반자를 찾으려는 욕구와, 특히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 넘칠 정도로 주어지는 선택권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결국 많은 여성이 파트너를 택할 수 없게 돼버린다.
 ‘어쩌면 이상적인 남편감이 내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 옆에 앉을지도 몰라.’ ‘어쩌면 베를린에 살고 있고 극장에 가는 것을 즐기는 정보기술(IT) 매니저와 완벽하게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지 몰라.’ 파트너 찾기는 끝이 없고 인터넷은 이 문제를 몇 배로 심화한다. 정착과 자유에 대한 양립할 수 없는 욕구가 동시에 우리를 갈가리 찢어놓으려 한다.
 
인터넷이 바꾼 사랑 방정식

 인터넷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알게 되는 과정을 변화시키고 있다. 감정적인 판단은 나중에야 할 수 있다. 상대방을 만나보기 전에 서로 수많은 전자우편을 주고받고, 결국 전화를 하게 된다. 클라센홀츠베르그 여사는 말한다. “허상을 만들고 상대방이 그 허상과 맞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는 거죠.” 마침내 엘베강 유역을 산책하거나 영국 정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게 되면 두 사람은 미래의 배우자 후보로서 서로를 보게 되고 마음속으로 ‘예’와 ‘아니요’를 결정하게 된다. 좀더 두고 지켜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아니면 동시에 여러 상대와 만나려 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의식적으로 불확실하게 놔두기도 한다. 이런 관계는 빠르든 늦든 모든 것이 표면적으로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의혹을 갖게 된다. 많은 여성이 인터넷 데이트를 통해 사랑에 빠진 느낌을 잊어버렸다고 고백한다.
 한 온라인 만남 사이트의 익명 데이터를 평가 분석하는 밤베르크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파트너를 선택할 때 자신보다 사회적 위치가 높은 상대를 선택한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대졸 여성에게 실업자 중에 싱글이 많으니 그들을 한번 생각해보라고 충고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졸 여성은 대부분 대졸 남성을 원한다. 사회심리학적 용어로 말하면, 그녀들은 동일한 교육수준을 가진 그룹 안에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문제는 여성들이 아침에는 침대로 차를 가져다주고, 사무실에 깜짝 선물로 꽃을 보내주고, 밤에는 지하 주차장에서 짧고 격렬한 섹스를 나눈 뒤, 오늘 사장과의 면담 결과가 어땠느냐고 물어봐준 다음에 아무 불평 없이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남자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남자는 아주 드물다. 이 문장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이 밑줄이 깨질 위험에 처한 결혼을 구할 수도 있다. 배려와 직업적 성공, 열정, 공감 그리고 파트너십을 모두 성공적으로 해내는 여성이 있기는 하지만, 남자 중에는 이런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런 드문 남자 중 한 명을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꽃은 포기하는 것이 어떤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또한 여성이 왜 그렇게 높은 기대를 하는지 질문해보는 것도 좋겠다. 여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 가운데 많은 부분을 처음부터 아예 빼놓곤 한다. 클라센홀츠베르그 여사는 “평생을 같이할 슈퍼맨을 기다리며 혼자 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그보다는 남녀관계가 타협과 충돌을 동시에 의미함을 인정하고, 결국 그 관계가 평생이 아닌 8∼10년밖에 유지되지 않더라도 그 관계를 통해 사람이 행복해질 수도 있음을 생각해보는 편이 낫다.
 
외모만 따지는 남성 

 싱글 생활의 나쁜 점은 무엇인가? “크리스마스 또는 생일날 밤 집에 돌아왔는데 집이 아침에 나갔을 때 그대로 있는 것, 어쩌면 자녀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는 것,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는 기분, 결혼식, 상대를 찾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여행 중에 혼자 식사하는 것, 내가 슬플 때 아무도 나를 안아주지 않는 것, 치약 뚜껑이 언제나 단정하게 닫혀 있는 것을 볼 때….”
 진화 생물학자 사비네 파울은 “우리는 유전적으로 안락을 찾는 본능과 종족 보존의 본능 두 가지가 프로그래밍돼 있어요”라고  말한다. 파울 박사는 부드러운 음성을 가진 차분한 여성으로, 외모는 냉철한 이론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책 <다윈 코드: 진화가 우리 삶을 설명한다>의 공동저자 중 한 사람이다. 지속적인 관계에 대한 그녀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그녀는 “인류의 유전적 프로그래밍은 더 이상 삶의 조건과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성의 외모를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부터 말하면 빛을 잃은 머리카락, 창백한 피부, 유머 부족, 열정 부족 등으로 남성은 이런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들은 이미 일상에 포함돼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너무 많은 사람과 알고 지내는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석기시대 때 인류는 대가족으로 이뤄진 그룹으로 떠돌았다. 물론 이 그룹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수였다. “그래서 인간은 최대 200명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이 되면 복잡해지죠.” 오늘날 이동통신과 인터넷은 훨씬 많은 사람들과 서로 알고 지내게 만든다. 그중 단 한 사람을 선택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그 모퉁이를 돌면 내게 더 잘 맞는 파트너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버텨내려 하기 때문에 결국 ‘영구적인 짝짓기’ 함정에 빠지게 된다.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에 성공하면 우리 유전자 안의 석기시대가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어렵게 만든다. 사비네 파울은 “무엇보다도 인생의 중반기에 종족 보존을 위해 완벽한 상대를 찾도록 프로그래밍돼 있기 때문에 인간이 격동의 시기를 겪게 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석기시대와 달리 인류는 더 이상 40대 중반에 생을 마치지 않고 70∼80살이 되도록 살면서, 자녀가 집을 떠나면 집에 남은 남편 앞에 서서 앞으로 30년간 이 사람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게 된다. 사비네 파울은 말한다. “우리는 인생 후반기의 배우자 선택에 대한 유전적 프로그래밍이 돼 있지 않아요.” 이것이 꼭 나쁜 소식만은 아니다. 꼭 이 남자여야 하는지에 대해 한번 더 자신에게 질문하고 자신의 종족 보존 본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결혼 생활을 힘들어하는 이들은 금혼식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일종의 ‘슈퍼 파트너’가 필요하다. 그 파트너를 찾아내는 사람도 많다. 50년간의 성실성이 로맨틱과 결합해 우리에게 사랑의 이상형을 만들어주었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인생 최고의 사랑은 예외로 머물러 있다. 한 문장 더 밑줄을 치자. 이 사실은 미래 사회를 더욱 강하게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에게 더 많은 ‘패치워크 가족’(조각보처럼 여러 인간관계가 가족적인 유대감을 이루어내는 공동체)과 더 높은 이혼율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 조부모 세대와는 달리, 여성은 더 이상 불행한 결혼에 평생을 묶여 있을 필요 없다. 다행히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인류의 도덕적 기준 또한 느슨해졌다. 많은 여성이 재정적으로 독립했고 그들은 남자를 찾고, 그다음 남자를 찾고, 또 그다음 남자를 찾게 된다. 이는 연속적인 일부일처제라고도 할 수 있다.
 여성이 남성에게서 싫어하는 점은?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너무 중시해요. 자기는 40대 후반에도 아이를 가질 수 있으니까 아이 얘기가 나오면 듣지 않으려 하죠. 실수를 해도 절대로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하는 것, 어떤 것에도 ‘응’ 아니면 ‘맘대로 해’라고 대답하는 것, 거짓말과 비겁함….”
 사회학자 유타 알멘딩거는 젊은 독일 여성들의 욕구에 대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여성은 자주 미래를 생각합니다. ‘내가 60살 때 어떻게 돼 있을까’라고 자신에게 질문하죠.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미래 계획을 도출해냅니다.” 베를린 사회연구과학센터의 연구원 알멘딩거와 그녀의 동료들은 2007년 ‘도약하는 여성’이라는 제목의 연구에서 17∼19살, 그리고 27∼31살 남녀를 대상으로 그들의 인생 계획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다. 지난해 봄 이 연구는 경제위기의 영향 아래 업데이트됐다.
 알멘딩거는 몸에 잘 맞고 유행에 따르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연구실 한쪽에는 요가 매트가 놓여 있다. 약 3분간의 의례적인 인사 뒤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독일 여성에게 여전히 남녀관계와 가족 구성은 직업과 병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다른 모든 것의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젠 교육받은 여성에게 흥미 있는 직업을 찾는 일이 아주 중요해져서 오직 25%의 여성만이 파트너 관계를 위해 직업적 출세를 포기한다. 
   
 

 여성은 ‘사랑’과 ‘가족’과 ‘직업적 성공’을 모두 원한다. 이 세 가지는 자주 버뮤다 삼각지대를 구성한다. 배우자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그것을 하려 들지 않는다. 이 또한 유타 알멘딩커의 통계 수치가 보여준다. 여성이 배우자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낼 수 있는 남성을 찾고 있는 동안,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의 외모다. 이것은 정직한 대답이다. 그리고 이 대답은 남성과 여성의 미래 계획 사이에 어떤 깊고도 넓은 구덩이가 파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파트너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알멘딩거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힌다. 그녀의 말은 끔찍하게도 옳다. 하지만 조용한 반박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행복한 커플들이 있지 않은가. 그중 많은 수는 아이를 낳고, 몇몇은 섹스도 한다. 고정적인 직업도 있다.
 
세 마리 토끼를 좇는 여성이여  

 결국 모든 것은 아주 단순할지 모른다. 그냥 사랑에 빠지기만 하면 된다. 진화생물학의 연구 결과 등을 무시하고 그냥 단순하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떨까? 놀라운 것은 몇 세대에 걸쳐 수많은 여성의 감정과 욕구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들을 둘러싼 세계가 변화하고, 남성과 여성의 인생 모습이 더 비슷해졌으며, 여성은 요구가 많아졌다. 하지만 그녀들의 파트너 관계와 결혼은 예전처럼 로맨틱하거나 최소한 외부적으로 페미니즘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분류된다. 이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여성 해방은 여성에게 거대한 독립성을 부여했고, 동시에 고독을 주었다. 모든 여성이 이것을 승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많은 여성이 싱글인 것을 부끄러워한다. 이는 지난 50년간 멈춰 있던 사회적 인식과도 연관 있다. 독신 남성은 그들의 자유로 인해 부러움을 사지만, 독신 여성은 분명히 복잡한 동정을 받아야 하는 존재다.
 어쩌면 여성 해방의 마지막 걸음은 싱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일지 모른다. 최소한 특정 인생 단계에서는 말이다. 남녀관계는 변화했다. 대표적인 특징이 관계의 지속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렇다면 매칭 포인트가 50밖에 안 되는 남자라도 고려해보고,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한정된 시간 안에서만 지속될지라도 그 위험에 도전해보라. 어쩌면 8년이나 6년밖에 사랑이 지속되지 않을지 모른다. 영원한 사랑은 더 이상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은 부디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남자란 어때야 하냐고? “조지 클루니처럼 아이를 좋아하고, 남자답지만 마초는 아니어야 하고, 축구 말고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밤일도 잘해야 하고, 말을 들어주고 가끔은 그 화제에 대해 질문도 해준다면 좋을 거예요. 가장 친한 친구도 있어야죠. 우습지만, 그 남자 자신 말이에요.”

ⓒ Der Spiegel
번역 황수경 위원

pa15_6.gif

악마적 천재, 스티브 잡스[기사 전문]
[Cover Story]i권력자

 

클라우스 브링크보이머 Klaus Brinkbaumer 토마스 슐츠 Thomas Schulz <슈피겔> 기자
   
지난 5월25일. 아이폰을 제조하는 홍콩의 폭스콘 회사 근처에서 일부 시위대가 아이폰을 그려놓은 종이를 불태우고 있다.

뉴미디어 종합 정보 시스템 회사인 애플만큼 초연하면서도 강력한 회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 회사의 창시자이자 현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 전제군주적이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중병에 걸려 쇠약해지기도 했던 이 남자는 이제 우리가 어떤 물건을 구입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 자체를 규정하고 있다.
그날은 매우 더웠다. 스탠퍼드대의 스타디움에는 한 점의 그늘도 없었고 학생들은 술에 취해 멍청한 미소를 짓거나 킥킥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 앞에 서방세계의 지배자가 고해를 하기 위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한입 깨문 사과의 로고로 알아볼 수 있는 그의 제품들은 현대인의 삶을 더욱 간편하게 할 수 있다고 인류가 믿기 때문에 소유하려는 물건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현대인의 삶이 아예 이 제품의 소유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배자는 그 자신에 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개는 말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내성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뭔가 팔아먹을 것, 그러니까 새 전화기(아이폰)나 납작한 판 모양의 새 기계(아이패드) 혹은 새로운 광고 플랫폼(아이애드)이 있을 때에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뭔가 말을 한다. 아니면 1·4분기에 30억7천만달러를 달성해 전년보다 90% 이상 증가된 새로운 수익 기록을 발표할 때에만 입을 연다는 것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그는 입을 다물고 주변 모든 사람에게도 침묵을 요구한다. 도대체 6월의 그날 스탠퍼드대에서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이 무엇인지,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그날 그곳에서 단 한 번 벌어진 일이었다.
단지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서 “대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잡스는 입을 열었다.
 
대단하지 않은 세 가지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는 전환점들의 연결에 대해서라고 말했다. 잡스는 어머니가 어떻게 그를 포기했는지, 자신이 어떻게 입양됐고, 어떻게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한 친구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가지게 될 때까지 수프 한 그릇을 얻어먹기 위해 몇 마일이나 되는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했는지 말했다. 인생의 전환점은 언제나 뒤돌아볼 때에야 연결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 모두 언젠가 이 전환점이 하나의 그림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관을 그리고 운명을 믿어야만 한다고 잡스는 말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이었다. 잡스는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인생의 역작인 애플을 찾아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 회사에서 해고됐지만 여전히 사랑했기에 계속 컴퓨터 분야에서 일했다며 “가끔 인생에서 장애물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의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뛰어난 성과를 이루는 단 하나의 방법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시(詩)인가? 아니면 미학?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개똥철학’일까? 세 번째 이야기는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 관해서는 나중에 언급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를 묘사하는 말은 많다. ‘구루’ ‘천재’ ‘메시아’뿐 아니라 ‘독재자’ ‘인간 착취자’도 있다. 잡스를 ‘악마’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 악명 역시 그에게 걸맞다는 사실은 그의 세계로 들어선 순간 이해하게 된다. 애플, 한때는 단순한 컴퓨터 회사였지만 오늘날에는 가전제품 계통의 세계적인 강자로 부상한 이 회사는 그 강력함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의 약점도 지녔다.
스티브 잡스라는 남자는 주류가 된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애플은 현재 세계의 온라인 음악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뮤직 플레이어와 하이테크 전화기 시장을 정복하고 있다. 지난 4·4분기에 애플은 아이폰 875만 개를 판매했다. 전화기와 노트북 사이에 위치한 아이패드는 미국에서는 열광적인 환영을, 독일에서는 열광적인 기대를 받고 있다. 아이패드는 미디어와 도서 시장에 태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제품으로, 터치 스크린을 장착하고 있어 사용자가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원을 그리는 등 가장 원초적인 동작으로 이 컴퓨터 시대에서 아마도 최고로 정교한 기술을 제어할 수 있게 한다.
애플, 언제나 초연하고 얽매임이 없어 보이는 이 브랜드는 아마도 지난 수십 년간 광신적 추종자를 가졌던,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회사일 것이다. 추종자 그룹은 한두 명의 열광적인 팬이 아니라 애플을 지지하는 수백만 명이다. <뉴욕매거진>은 잡스를 ‘iGod’이라는 문구와 함께 표지 인물로 선정했고, 애플이 아이패드를 발표했을 때 <이코노미스트>는 그를 예수 아이콘으로 나타냈다. 역설적인 표현이었을까? 약간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광기는 디자인과 많은 관계가 있다. 애플의 디자인은 소박하고 단순하며 타협이 없다. 이는 용기가 필요한 문제다. 애플처럼 거대한 규모로 제한 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회사는 많지 않다. 애플처럼 자사의 원칙을 자주,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바꾸는 회사도 없을 것이다.
잡스는 지금까지 져본 일이 없는 상대가 도사리는 경기장에 즐겨 들어선다. 그리고 가끔은 새로운 업계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그 업계를 독점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패드가 책이나 잡지, 신문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게 크기만 키운 아이폰의 복사품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아이패드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싶어하는 미래를 위한 기계라고 말한다. 아이패드는 패시브 컴퓨터로, 이 제품의 의미는 문화상품 소비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시대, 그리고 우리가 그 시대를 어떻게 살고 싶어하는지에 관련돼 있다. 사무실에는 아이맥(iMac), 이동 중에는 맥북(MacBook), 조깅을 할 때에는 아이포드(iPod), 교육을 위해서는 아이패드(iPad) 그리고 영원히 청춘이고 싶어하는 모든 이와의 연결을 위해서는 아이폰(iPhone)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21세기 개인의 삶을 이와 같이 보고 또 스스로 이렇게 보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55살의 스티브 잡스를 ‘21세기 철학자’로 만드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 검은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고, 넓은 이마에 수염을 기르고 은테 안경을 쓴 이 유혹자는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어하는지 결정한다. 그는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하고 그것이 우리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 그는 대중의 구매 행태를 변화시켰고 그를 통해 삶의 방식, 즉 문화를 변화시켰다. 회사의 성공을 기반으로 그는 이데올로기와 그가 만든 컴퓨터에 재생되는 콘텐츠를 검열할 권리를 이끌어냈다. 애플은 세상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회사가 돼가는 중일까? i-권력자?
애플사를 이해하려면 스티브 잡스를 이해해야만 한다. 애플은 그의 인생의 역작이며 이 회사는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잡스에게는 승리자와 패배자, 천재가 아니면 얼간이만 존재한다. 그는 육식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제품은 “미친 듯이 대단”하거나 “쓰레기”라고 평가한다. 직원들은 오늘은 천재라고 불리지만 내일 당장 ‘천하의 바보 멍청이’가 될 수 있고, 오늘은 꼭 필요한 인재이지만 내일 바로 해고당할 수 있다. 애플 직원들은 잡스의 지배 원리를 ‘영웅-쓰레기 롤러코스터’라고 칭한다.
애플, 동시에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인 이 글은 낡은 건물에서 시작된 그 시초부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회사가 된 미래까지 시대에 따라 목격자 6명의 증언을 기초로 한다.
 
I. 창립자
애플사의 이야기는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위치한 로스앨토스의 차고에서 시작한다. 1976년 어느 날 잡스 일가의 차고에서 스티브 잡스는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컴퓨터의 프로토 타입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알게 된 것은 5년 전이었다. 둘 다 전자제품광이었고, 대학을 중퇴했고, 아웃사이더였다. 나중에 사람들은 이러한 타입을 ‘너드’(Nerds)라고 칭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 창고에 있던 두 청년이 최초의 너드였을지 모른다. 그들은 비틀스와 밥 딜런의 음악을 들으면서 공짜 통화를 하기 위한 위법 장치를 만들었다. 비디오게임도 만들었다. 그중 ‘브레이크아웃’(Breakout)이란 게임은 비디오게임 회사 아타리의 최초 성공작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욱 엄청난 것, 모든 이를 위한, 누구나 부담 없이 구입하고 사용할 수 있는 개인 컴퓨터를 꿈꿨다. 그들의 꿈에는 두 가지 차이가 있었다. 워즈니악은 그 기계를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잡스는 그것을 파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 컴퓨터는 돈 많은 회사와 미 중앙정보국(CIA)을 위한 것으로, 가격이 최소 10만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기계였다. 하지만 워즈니악은 13살에 이미 첫 번째 컴퓨터를 만들었다. 이 재능은 1975년 6월 어느 일요일 저녁 그가 2개의 케이블로 자신의 프로토 타입 기계와 모니터, 키보드를 연결한 순간에 이미 최초의 혁명을 이루었다.
“그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라고 말하며 워즈니악은 웃었다. 그는 자서전에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것은 사상 최초로 인간이 키보드에 알파벳을 타이핑하면서 동시에 자기 앞에 높인 컴퓨터 모니터에 그 알파벳이 나타나는 것을 본 순간이었다.”
1976년 봄, 한 명의 스티브(워즈니악)가 다른 스티브(잡스)에게 개인용 컴퓨터의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타자기만한 크기의 기계로,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 훨씬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이었다.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박수를 보내고 계산을 해봤다. 그리고 워즈니악의 기억이 맞다면 이 순간 잡스는 그들 앞에 펼쳐진 가능성을 알았다. 애플의 탄생 순간이었다. 새 컴퓨터의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잡스는 자신의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1500달러에 팔아치웠다. 그리고 워즈니악에게 그가 다니던 휼렛패커드사를 그만두라고 설득했다.
애플I은 회로 기판과 몇십 개의 칩이 든 나무 상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물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잡스는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스티브는 회로를 설계하지도, 코드를 입력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컴퓨터를 팔아볼 생각을 절대로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건 스티브의 아이디어였어요”라고 워즈니악은 말한다.
1976년 4월1일 두 친구는 애플컴퓨터사를 창립했다. 애플I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당시 그들은 몇 주간이나 제대로 잠을 자지 않고 일했다. 잡스는 신중하게 직원을 고용했다. 언제나 고용한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의 양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잡스는 투자자를 찾아내고 제품 판매 루트를 조직했다.
1977년 6월 애플II가 시장에 나타났다. 가격은 키보드를 포함해 1298달러로, 모니터는 별도로 구매해야 했다. 이 물건이야말로 전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200만 대 이상이 팔려나간 사상 최초의 개인 컴퓨터이자 그 끝이 존재하지 않는 역사의 시작이었다. 워즈니악은 자신의 발명품을 시리즈로 제작했다. 그가 저렴한 플로피디스크와 컬러 그래픽을 만들어내는 동안, 잡스는 계속 판매 혁명을 일으켰다. 1980년 애플은 주식을 공개 상장했고, 워즈니악과 잡스는 백만장자이자 스타가 되었다.
애플은 “철학, 미래 그리고 반문화 운동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서로 닮은 두 명의 가장 친한 친구에 의해 만들어진” 회사라고 워즈니악은 2010년 1월에 언급했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했습니다. 무엇을 만들든지 전부 세계 최초이던 때였습니다”라고 워즈니악은 말했다. 하지만 그는 1985년 애플사를 떠났다. “잡스는 그 제품들을 한 회사의 미래로 보았지만 제게 그 제품들은 인생 전부였습니다. 전 더 이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 뒤 워즈니악은 록 콘서트를 기획하고, 학교에 컴퓨터를 기부하고 또 반복해서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그 회사들은 세계를 뒤흔들지는 못했다. 그에게 악마적인 면이 부족한 것일까? 냉혹함이? 워즈니악에게는 좀더 나쁜 면이 필요한 것일까?
잡스와 워즈니악은 서로 자주 만나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 처음 균열이 발생한 것은 1984년이었다. 그때 워즈니악은 잡스가 그들의 첫 번째 공동 프로젝트인 아타리의 비디오게임 가격으로 5천달러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게임을 팔 당시 잡스는 700달러를 받았다고 그에게 말했고, 두 친구는 이 700달러를 서로 나눠 가진 것이다.
그것은 사기였을까? 배신? 그게 아니라면 계산 착오?
25년 뒤인 지금 워즈니악은 잡스보다는 애플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아직도 애플의 직원이고 실리콘밸리의 로스개토스에 살고 있다. “잡스는 그 시절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살펴보고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무엇을 원할지, 그리고 애플이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최고의 지름길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합니다”라고 워즈니악은 말한다.
   
II. 마법사
1979년 애플사는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는 곧 개발 부서의 책임자가 되었고,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를 원했다. 매킨토시는 개발자가 세상을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질 것이었다. “우리는 계층과 구조를 경멸했습니다. 1970년대에 컴퓨터는 권위의 도구였어요. 우리는 컴퓨터를 모두에게 개방된 해방의 도구로 만들려 했습니다”라고 앤디 헤르츠펠드는 말했다.
헤르츠펠드는 매킨토시 개발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79년 애플사 최초의 직원 중 하나로 입사했다. 그의 명함에는 ‘소프트웨어 마법사’라고 적혀 있다. 헤르츠펠드는 이 회사를 좋아하고, 그 시절이 자신의 전성기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시기였던가! 하지만 동시에 다른 면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헤르츠펠드는 잡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극단적일 정도로 복수심이 강합니다. 모든 사람이, 특히 직원들이 그를 무서워했어요. 누가 나에게 잡스를 한마디로 설명하란다면 ‘제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잡스의 세계관은 그가 만든 규칙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신만 제외하고요.”
헤르츠펠드는 혁명가처럼 살고 있지 않다. 그는 팰러앨토의 조용하고 나무가 우거진 거리에 큰 집을 가졌고 땅딸막한 몸집에 늘어진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려 했습니다.” 매킨토시의 탄생은 단순히 새로운 제품 시리즈의 시작이 아니라 “오르가슴”과도 같았다고 헤르츠펠드는 말했다. 매킨토시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아이콘과 겹쳐져 열리는 윈도가 등장한 최초의 대량생산 PC였다. 그리고 이 컴퓨터에는 마우스가 달려 있었다.
“미래에 세상의 모든 컴퓨터가 그런 형태를 띨 것이라는 확신이 우리에게는 있었습니다.” 몇 년 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리고 앤디 헤르츠필드는 “애플은 경제적으로 많은 이득을 내는 제품이나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플 제품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완벽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매킨토시는 1984년 1월22일 슈퍼볼 경기 중계방송 중에 30초짜리 광고로 소개됐다. 이 광고는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만든 것으로, 필름에는 끝없이 길게 늘어서 있는 노동자와 감정 없는 군대가 나오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러더’ 같은 존재가 그들에게 채찍질을 한다. 이 군대는 당시 아직 애플의 라이벌이던 IBM을 의미했다. 한 젊은 여성이 화면으로 뛰어 들어오고 그녀의 뒤를 무장한 경찰들이 쫓아온다. 그녀는 빅 브러더를 깨부수고 노예가 된 대중을 구원한다. 이 여인은 애플이다. 그리고 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1월24일 애플이 매킨토시를 출시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1984년이 소설 <1984> 같이 되지 않을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거의 8천만 명에 이르는 시청자가 그 광고에 매료됐고 또 혼란스러워했다. 이 TV 광고는 광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시대 최고의 광고라고 인정받고 있다. 애플은 이 광고로 거의 모든 광고인을 애플의 포로로 만들었고, 이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애플의 포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애플은 많은 대기업이 성공하기 힘든 일을 해냈다. 제품에 감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가치를 통해 강화해 제품 자체를 가치 있게 만든 것이다. 애플은 유혹한다. 매킨토시를 구입하는 사람은 젊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쿨하다라고.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나중에 애플의 슬로건이 되었다.
이 점이 바로 애플이 코카콜라나 아디다스 같은 다른 글로벌 브랜드와 차별되는 것이다. “애플은 예술적 가치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회사의 본질입니다. 다른 어느 회사에서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한가요?”라고 헤르츠펠드는 묻는다.
 
III. 아티스트
그 집은 마치 애플 컴퓨터처럼 생긴 집이었다. 넓고 따스한 하얀 집. 집 밖에는 올리브나무와 야자나무가 서 있고, 집 안에는 하얀 벽과 크롬, 피아노, 중국 차 도구 그리고 마이센 도자기가 있었다.
그 집에는 허리 수술로 몸이 불편하더라도 여전히 옷을 입는 법과 우아하게 움직이는 법을 아는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남자는 청바지와 자수가 놓인 푸른 셔츠를 입고, 수염을 기르고 덥수룩한 회색 머리를 가졌다.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는 독일어에 영어를 섞어 썼다. 그는 몇십 년간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다. 에슬링거 역시 그의 세계에서 대단한 인물이다. 그는 디자이너이다. 1969년 그는 슈바르츠발트 지방에 위치한 알텐슈타익시의 한 차고에서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사를 설립했다.
“디자인은 단순한 포장이 아닙니다. 디자인은 생각을 하는 방식입니다. 디자인은 제품 전체에 대한 진지한 고찰입니다”라고 이전에 에슬링거가 말한 적이 있다. 며칠 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은 단순히 제품의 외형이나 촉감만이 아닙니다. 디자인은 기능하는 방식입니다”라고 말했다. “잡스는 가끔 남이 말하는 걸 잘 들었다가 나중에 그것을 자신의 말로 변화시켜 내놓곤 하지요.” 에슬링거는 이렇게 말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그는  잡스에게 감탄하고 있고, 무엇보다 그의 대담함을 높이 사고 있다.
1970년대 에슬링거는 독일 회사 베가의 TV 수상기 플라스틱 케이스를 디자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소니는 먼저 베가를 합병하고 나중에는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를 영입했다. 그 뒤 수십 년간 에슬링거는 소니를 위해 TV를 디자인하고, 루프트한자 디자인을 재설계하고 비행기의 창문을 설계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왜 컴퓨터가 그렇게 흉측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컴퓨터는 친구가 아닌 적처럼 보였고, 남자만을 위한 공구 같은 느낌이었다. 에슬링거는 이렇게 말한다. “모두 새로운 프로세서와 점점 작아지는 칩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 사무실이 감옥처럼 보이는지, 왜 사람들이 이 회색 물체를 집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지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케이블과 소음. 모든 관리자가 언제나 하는 일만 했습니다. 용기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용기는 완벽에 도달할 가능성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념입니다.”
잡스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위해 에슬링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에슬링거는 “때때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다”고 믿었다. 그는 또한 “좋은 디자인은 도발과 친숙함 사이, 그리고 기발함과 고루함 사이의 정확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잡스에게 다른 것, 즉 하얀색 컴퓨터를 제안했다: ‘캘리포니아 화이트’라고 그는 명명했다. “컴퓨터 업계는 인간이 물건에 감성적 애착을 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문장 역시 잡스가 며칠 뒤 회의에서 그대로 따라 읊어졌다.
“미치도록 위대하게!”(Be insanely great!), 이것이 잡스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프로그사 직원들은 수시로 아티스트와 엔지니어로 변신하면서 프로토 타입 모델을 설계했고 잡스는 그것을 지원해주었다. 프로그사는 매달 20만달러를 지급받았고, 이는 보수적인 실리콘밸리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위해 쓰기에는 아주 많은 돈이었다.
25년 뒤 에슬링거와 잡스의 협력관계보다 디자이너와 광고인들의 극찬을 받는 관계는 없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하고, 삶을 더 쉽고 즐겁게 만드는 물건을 개발하는 것. 그것이 애플의 비밀입니다”라고 함부르크에 위치한 광고 에이전시 숄츠앤드프렌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수제 바렛은 말한다. 다른 컴퓨터 회사들이 기술 발전에 따라 움직이는 동안 “애플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유용한 물건을 만드는 데 힘써왔습니다. 그를 통해 애플 제품들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즉 디자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애플의 기계들은 단순하고 기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플 제품은 광고인들이 이른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고 칭하는 종류의 물품이 되었다. 수많은 애플 제품을 장식하는 ‘i’ 로고는 한때 ‘인터넷’을 의미했지만 오늘날에는 ‘나’를 의미한다. 자아실현 또는 그에 대한 환상에 관한 것이다.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예술작품일 수 없을까요?”라고 현재는 빈대학의 교수이자 책을 쓰는 에슬링거가 되물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고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이러한 글귀를 에슬링거는 자신의 책에 써넣고 있다.
2007년 애플은 자사의 휴대전화를 시장에 내놓았다. 오래전부터 다른 회사들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낯선 시장이었다. 아이폰은 아이팟과 동일한 아이디어를 따랐다. 아이폰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스마트폰’보다 가늘고 심플하며 손에 쥐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이 휴대전화는 단순히 우리에게 필요한 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이 제품을 절실히 원했다. 
아이폰은 버튼 수가 적은 대신에 민감한 터치스크린을 장착해, 사람들은 이 휴대전화로 PC에서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다. 전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만든 18만5천여 개의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줄여서 ‘앱스’(Apps)는 애플 아이튠스 스토어(Apple iTunes Store)에서 판매된다. 다음에는 애플의 플랫폼 아이애드(iAd)를 통해 광고가 게재될 것이다.
에슬링거가 디자인한 첫 번째 컴퓨터 애플IIc는 당시 쿠퍼티노에 있던 잡스의 사무실에서 소개됐다. 25개 모델이었고 모두 하얀색이었다. 잡스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 이런, 이게 제대로 작동하길 바랄 뿐입니다. 저는 확신이 없군요.” 판매 첫날 애플은 5만 대를 팔았다. 1984년 4월24일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애플IIc는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지난 4월8일 미국 애플 본사에서 열린 특별설명회에서 아이패드를 선보이는 스티브 잡스.

IV. 적
그러나 잡스가 그의 추종자들이 칭송하는 것처럼 완벽한 인물이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그리고 그가 언제나 구글의 사장인 에릭 슈미트가 칭한 것처럼 “이 세계 최고의 CEO”는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한동안 CEO가 아니었던 적도 있다.
1980년 주식이 상장되고 확장이 시작된 뒤, 애플 이사회는 까다로운 잡스를 감독하고 그에게 글로벌 기업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가르쳐줄 경험이 많고 능숙한 매니저를 CEO로 영입하기를 바랐다.
잡스는 이 결정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CEO 선출 때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기를 원했다. 당시 잡스가 영입하기 원한 사람은 펩시콜라의 CEO이자 마케팅 전문가인, 그리고 컴퓨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존 스컬리였다. 18개월 동안 잡스는 스컬리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잡스는 스컬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여생 동안 계속 설탕물이나 팔고 싶은 건가요? 세계를 변화시킬 기회를 가지고 싶지 않습니까?”
스컬리는 승낙했다. 잡스는 스컬리에게 호감을 가졌다. 언론은 두 사람을 “다이내믹 듀오”라고 불렀다. 그러나 2년 뒤 스컬리와 잡스 사이에는 불화가 생겼다. 두 사람 중 힘을 가지고 있는 게 누구인가를 놓고 대결이 벌어졌던 것이다. 창립자 아니면 현재 CEO? 비전을 가진 기획자 아니면 성실한 관리자? 이사회는 스컬리를 선택했다. 1985년 가을 잡스는 그가 탄생시킨 아이이자 그의 인생이던 애플을 떠났다.
그리고 스컬리는 8년간 더 애플에 머물렀다.
“저를 CEO로 영입한 것은 큰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초 스컬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뉴욕의 한 사무실에 있는 묵직한 회의용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뒤에 있는 창문으로는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였다. “이사회가 스티브를 CEO로 선출하는 게 좋았을 겁니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저는 그냥 마케팅 담당 상임이사나 하는 게 좋았을 겁니다. 그랬으면 저와 잡스가 갈라질 일도 없었겠죠”라고 스컬리는 말했다.
그 뒤 잡스는 다시는 스컬리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맨해튼 거리를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 스컬리는 지친 듯 보였다. 71살의 사모펀드 회사 동업자이자 팜비치에 저택을 가진 이 남자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잡스의 호감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괴로워했다.
스컬리는 자신이 “잡스처럼 기획을 하거나 미래를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1993년 그 역시 애플을 떠나야만 했다. 회사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아이디어도 없고 경영도 엉망인 상태에서 컴퓨터 세계의 새로운 스타인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하기 힘들었다.
“다행히도 잡스가 돌아왔습니다.” 2010년 초 스컬리는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천재란 남들보다 20년 빠르게 먼 미래에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스컬리는 말한다. “그는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그 능력을 증명했어요. 그가 이제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일을 해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올바른 평가다. 스티브 잡스의 진정한 능력은 사람들의 잠재적인 요구를 파악하고 아직 미숙한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알아본 뒤, 그 아이디어에서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가 워즈니악이 만든 퍼스널컴퓨터의 프로토 타입을 보았을 때도 그러했다. 그리고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컴퓨터 제조회사가 되었다. 음반업계가 불법 파일 공유에 속수무책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애플은 세계 최대 온라인 음악 유통업체가 되었다. 그리고 모바일 산업계가 다수의 고객에게 휴대전화로 인터넷 서핑을 하지 못하게 했을 때 아이폰이 시장에 나타났다. 그 영향력은 너무나도 거대해 심지어 도이치텔레콤이나 AT&T와 같은 통신 대기업이 애플이 정한 가격에 따르고, 그들의 수익 중 많은 부분을 넘겨주고, 절대로 애플에 관해서 나쁜 말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해야 했다. 그 영향력은 독일에서 아이폰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열렸을 때, 오직 잡스만 무대에 나서고 도이치텔레콤의 CEO 르네 오버만은 무대 아래에서 그냥 보기만 할 수밖에 없게 할 정도였다.
음반산업계 역시 잡스에게 화가 나 있다. 이것은 물론 비공식적이다. 음반 대기업들은 현재의 상황을 불쾌해했지만, 그들의 제품, 그들의 음악 가격을 결정하는 기업의 손아귀 안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를 통한 구원의 대가는 모든 자가 ‘제어의 포기’인 것이다.
 
V. 남성 심리 전문가
“스티브 잡스는 다른 모든 천재와 마찬가지예요. 누가 모차르트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라고 파멜라 커윈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거칠거나 남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잡스는 비전을 가진 사람이에요. 다른 CEO들은 돈과 권력을 원하지만 그는 뛰어난 아이디어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에게는 뛰어난 기술을 탄생시키는 능력이 있어요. 일보 전진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잡스가 원하는 건 자기가 하는 일이 이 세상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커윈과 스티브 잡스가 처음 만난 1989년, 그녀는 픽사의 부사장이었고 잡스는 목적 없이 떠도는 한 남자였다.
“어쩌면 스티브는 어린 시절 높은 곳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는지 몰라요. 그래서 뇌 속의 어느 부분,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사용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부분이 활성화된 거죠.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는 현재 쿨한 것이 무엇인지 느끼지는 못하지만 어떤 것이 미래에 쿨한 것이 될지는 느끼죠. 그런 다음에 그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재촉해요. 떠나는 사람도 많지만 최고의 인재들은 남습니다. 그는 최고의 인재들이 최고의 성과를 올리게 합니다. 최고가 아닌 것은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그에게는 자비도, 타협도 없습니다. 아이폰을 한번 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튼이 더 필요하다거나 교체할 수 있는 충전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나요? 하지만 잡스는 ‘안 돼. 그건 사용자에게 불편해’라고 생각했죠. 물론 당시에도 그는 이 모든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어요.”
커윈은 스티브 잡스의 세계 속 중심부에 서 있는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사람이다. 또한  잡스를 사색적으로 관찰하고, 그에 대해 그녀가 생각하는 바를 쇼크 상태에 빠지지 않은 채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잡스의 호감을 잃어버리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잡스가 그저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정도임에도 10년 넘게 그들이 아직도 그 일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버려진 많은 이들은 몇 년 뒤에도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 그들은 잡스가 그들을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것 이상을 바라지 않을지 모른다. 아니면 잡스가 그들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하는 것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누군가와 ‘페이스 타임’(단독 면담 시간)을 갖고 의견을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타내주는 표식이다. 스티브 잡스가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누군가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그 사람 또한 미스터 잡스를 ‘스티브’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그 직원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나타내준다.
애플 제국의 내부는 참으로 유치하게 돌아가고 있다. 파멜라 커윈 같은 여성은 지금까지 등장한 인물 중 유일한 어른으로 보인다. 이것은 어쩌면 그녀가 애플에서 일한 적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커윈은 애플이 아닌 잡스가 1986년 인수해 리뉴얼한 픽사의 직원이었다. 픽사는 1970년대 후반 조지 루카스 필름 제국의 일부로 설립된 회사로, 당시에는 아직 영화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스튜디오가 아니라 그저 캘리포니아에 널린 수백 개 신생 회사 중 하나였을 뿐이다. 픽사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능이 있는 몇 명의 직원이 있었고, 그들은 파티와 맥주통과 스캔들 속에서 일에 치여 살았다.
3D 화면을 구성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 일을 픽사는 할 수 있었고, 잡스는 그 가치를 알아보았다. “잡스가 픽사에 돈을 버리고 있다고 온 실리콘밸리가 말했죠.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알아보았어요. 전 그걸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잡스는 조지 루카스에게 500만달러를 지급했고, 회사에 또 500만달러를 투자했다.
잡스는 창의적인 인재, 무엇보다 “왼쪽 뇌가 발달한”(커윈) 전략가들을 발탁했다. 잡스는 사실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아마도 그것이 우리를 그로부터 보호했을 거예요”라고 커윈은 말한다. 당연히 그는 소리를 지르고, 벌을 주고, 변덕스러웠다. 하지만 잡스는 픽사의 판타지를 담당하는 존 라세터에게 일을 하게 해주었고, 그가 할 수 있는 한 도왔다.
그는 픽사의 능력을 디즈니에 팔았다. “그는 상어들과 수영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게 불가능했죠. 그가 팔아먹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잡스는 언제나 1천만달러를 요구했어요. 그게 1천만달러의 가치가 없을지라도 말이에요”라고 커윈은 말한다. 그는 몇 달간의 노력으로 만든 결과물을 파괴하기도 했다. 이 일은 그가 인텔과 거래할 때 서명을 하기 직전에 발생했다. 잡스는 폭발했고, 인텔사 임원들은 기분이 상한 채로 돌아갔다.
파멜라 커윈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다른 유명한 CEO들과 거래하는 데는 별 소질이 없어요. 그럴 때는 에고와 에고가 맞서게 되는데, 스티브는 절대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가 프레젠테이션에서 청바지와 검은색 풀오버를 입고 마치 구세주처럼 나타나 고객에게 판매할 때는 화려한 쇼 스타가 되죠. 이때에는 거대한 에고가 방해되지 않거든요. 쇼 마스터에게는 거대한 에고가 필요하니까요.”
그는 픽사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움직이는 화면은 쇼트 필름이 되고 극장 영화가 되었다. <토이 스토리>의 각본이 만들어지고 잡스는 주식 상장을 준비했다. “당시 온 실리콘밸리가 아직 1달러도 벌어들이지 못한 회사가 주식을 상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졌고 <토이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몇 년 뒤 <니모를 찾아서>가 그 뒤를 이었다. ‘픽사 유치원’은 거대 기업이 되었고, 잡스와 함께 여행을 떠난 이들은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리고 잡스는 배웠다. 그는 모든 것을 흡수해서, 새로 구성하고, 아이디어를 확대시켰다. 그가 애플에 돌아왔을 때 가지고 온 것은 픽사의 아이디어들이었다. 움직이는 화면, 커뮤니케이션 형태의 네트워크화, 그리고 미디어. 픽사에서 잡스는 무엇이 가능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동영상과 음악을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 상점이 구상됐고, 음악과 동영상을 사용할 수 있는 인텔리전트 전화기와 미니 컴퓨터가 개발됐다. 모든 것이 단순하고 반듯해 보이고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어야 했다.
1996년 애플은 잡스의 회사 넥스트(NeXT)를 인수하고 잡스를 다시 복귀시켰다. 애플은 방향성이 없는 대기업이 돼 있었고 그 상태를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애플에는 말을 하는 목소리가 너무 많았고, 그 때문에 진짜로 애플을 대표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잡스는 그것을 염두에 두었고, 여기에서 이제는 전설이 된 애플의 ‘비밀 엄수’ 전통이 생겨났다.
“스티브는 이 목소리들을 없애고 애플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단 하나만 남겨두려고 했어요. 자신의 목소리였죠”라고 아이튠스 개발에 참여한 직원이 이야기했다.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비밀 엄수 서약에 서명한다. 이 서약은 그들이 애플을 그만둔 뒤에도 몇 년간 계속 유효하다. 잡스가 이것을 아주 심각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고, 애플은 소송에서 이겼다. 심지어 애플 직원들은 간행물마저 금지당했다. 그들은 자신의 연인에게조차 자신의 일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들 자신도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제품 분야는 코드와 숫자와 알파벳이 부여돼 있다. 핵심 엔지니어조차 코드만을 알고 있고, 제품이 완성됐다 할지라도 그것을 설계한 사람들은 설계 도면은 알지만 디자인을 알지 못한다
쿠퍼티노의 캠퍼스는 최고 보안 구역이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현재 일하는 건물만의 코드 카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옆 건물에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예외는 스티브 잡스 한 명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언제나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를 제지하는 경비원이 있으면 그 경비원이 해고될 뿐이다.
언론미디어 정책을 말하자면 ‘통제광’이라는 한마디로 줄일 수 있다. 우호적이라고 증명된 비평가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매체와 애플이 대화하는 일은 드물다. 이러한 정책이 애플 신화를 확대시키고, 잡스가 믿는 바와 같이 애플의 엔지니어 한 사람이 술집에 새 아이폰을 두고 오기만 해도 시작되는 전세계적인 입소문, 즉 ‘버즈’(Buzz)를 강화한다는 것이 사실일지 모른다. 또 확실히 ‘애플 신도’들은 이러한 병적 폐쇄성을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고객과 공급업체, 정치가와 세계 언론의 물음에 공식 서한으로도 답변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세상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수천 개 회사가 존재한다. 그런데 애플이 단 하나의 특정한 소프트웨어만 사용해야 한다고 결정하면 잡스는 수많은 오늘날의 ‘너드들’의 기반을 빼앗는 것이다. 애플은 이미 과거의 IBM 같은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이런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힘이 돼줄 자가 있을까? 자신감은 언젠가는 자만심으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내부나 외부에서 좀더 어른답게, 다른 의견에 귀기울일 줄 알고 그에 답변도 하면서 합리적으로 소통하거나 고객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이런 대기업을 더욱 강하게 만들지 않을까?
2008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애플은 전세계로 전체 전자우편을 보냈다. “모든 배송이 선물을 전달하는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도록 빨리 주문해달라”는 요청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독일 어린이들에게는 선물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배송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고, 애플에서 일하는 거의 모든 사람도 알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 수천 명의 고객이 불만을 제기했지만 누구도 답변하지 않았다.
오래된 매킨토시 모델을 가진 사람이 디지털 사진을 인화한 앨범을 만들고 싶어할 경우, 그는 애플도 이미 알고 있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컴퓨터는 일단 앨범을 생성하는데 이 과정에 약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 다음 컴퓨터는 새로운 프로그램 버전인 ‘아이라이프’(iLife)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띄운다. 이 프로그램의 가격은 80달러다. 사용자가 아이라이프를 주문해 다운로드한 뒤 설치하려면 마지막 클릭 후 “아이라이프를 이 컴퓨터에 설치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뜬다. 프로그램 반환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잡스 같은 사람에게 중요한 일일까?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할 때, 그는 광고 에이전시 TBW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켄 시걸을 고용했다. 그는 시걸에게 “애플이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졌고, 이 때문에 이제 회사의 정신을 다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석 달 뒤 TV 광고가 방송됐다. 광고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마틴 루서 킹의 모습이 나오고 이들이 애플과 같은 것을 구현한다고 말하며 ‘Think different’라는 슬로건을 보여준다.
“스티브는 언제나 ‘우리는 낡은 사슬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회사 전체를 걸 정도로 확신에 차 있었지요. 스티브가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원하면 그는 무자비하고 완고합니다”라고 시걸은 말한다.
1998년 8월 아이맥(iMac)이 출시됐다. 그 반향은 어마어마했다. 매출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플 지지자들이 열광했다는 것이다. ‘애플 컬트’ 문화가 되살아난 것이다. ‘Think different’라는 광고 아이디어는 소비자를, 당시 주류였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혁명의 동지로 만들었다.
이것은 이미지일 뿐이고, 이 이미지는 거짓을 말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더 이상 혁명가가 아니다. 그는 독과점과 시장지배를 행하고 있다. 혁명 뒤에는 항상 다음 지배자가 나타나는 법이다.
지금까지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그는 절대로 온화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빌 게이츠를 싫어한다. 그는 병에 들었었고 어쩌면 지금도 병들어 있는지 모른다. 그는 건강하고 젊은 자기 직원들을 싫어한다. 사실이야 어쨌든 최소한 젊고 건강한 애플 직원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의 친부모는 시리아인 정치학자인 압둘파타 잔달리와 미국 여성 조앤 시벨이다. 그는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돼 태평양 연안의 마운틴뷰와 로스앨토스에서 자라났다. 서른 살 즈음에 스티브 폴 잡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친여동생인 모나를 찾기 시작했고, 그녀를 찾아내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모나는 <멋진 녀석>(A Regular Guy)이라는 소설을 출간했다. 이 소설은 ‘너무 바빠서 변기에 물 내릴 틈도 없는’ 백만장자에 관한 이야기로, 소설 안에서 이 남자는 전 여자친구들이 침묵을 지키게 하기 위해 집을 사주고, 애인이 처녀이기를 바라는 나르시시스트다. 스티브가 모델인 것일까? 그는 이를 부정한 적이 없다.
1977년 잡스와 당시 여자친구였던 크리스앤과의 사이에서 딸 리사가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앤과 헤어졌고 그 뒤 친자 인정을 거부했다. 크리스앤과 리사는 국가에 의해 잡스가 친자 확인 소송에 기소될 때까지 사회복지기금으로 생활했다. 그가 서명한 한 문서에서 잡스는 자신이 무정자증이고 불임이어서 육체적으로 아이를 만들 수 없는 몸이라고 적었다. 법원은 그에게 혈액 검사를 강제했고, 그가 아버지가 맞다는 결과가 나왔다. 잡스는 오랫동안 생활비 지급을 거부했지만 결국 매달 385달러를 보내게 되었다.
1991년 그는 로렌 파월과 결혼했고, 두 사람은 3명의 자녀를 가졌다. 만족스러운 인생일까? 이런 경력을 쌓은 남자가 스스로 그것을 아직 의심할 수 있을까?
 
   
 


VI. 병사들
애플의 문화는 대립적이고 직접적이며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시끄럽고 거칠다. ‘고함 문화’라고 이 회사의 스타인 한 젊은 프로그래머는 말한다.
애플에는 한쪽에는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 다른 쪽에는 관리부라는 2개의 큰 라인이 존재한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고, 직원 3만4천 명이 있는 제국은 4명에서 25명으로 만들어진 팀들로 구성됐으며, 그 팀은 팀장이 지배한다. 그 위에 CEO와 부회장, 전문경영인 부회장이 있고, 이 작은 평행 우주에는 이사회와 자신들의 요구를 표명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몇몇 고객과 계약 파트너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잡스가 군림한다.
오래전에 잡스는 ‘오섬’(awesome)이라는 단어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 단어는 ‘경탄할 만한’ 또는 ‘굉장한’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미국 청소년들은 누구나 ‘오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값싸고 약간은 혐오스러운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애플 제품도 이와 같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라고 젊은 프로그래머 마이클 모어(가명)는 말한다. “잘나갈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같지만 우리가 두 번 연속 실패작을 내고, 스티브가 세상을 떠나면 금방 그렇게 될 걸요.”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애플에 관해서 털어놓았다는 사실이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침묵 서약을 깨는 사람은 바로 해고됩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려지고 다시는 고용되지 않아요. 그리고 애플의 변호사들을 상대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젊은 프로그래머가 묘사하는 회사는 불공평하고 거칠며, 때로는 목적 없이 떠돌다가 다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엄격하지만 동시에 창조적이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움직이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절대로 프로그래머들이나 그들의 상사와 이야기하지 않는다. 애플에서 누구도 엘리베이터에서 잡스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잡스가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에서 일하나? 왜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한가?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그는 “아니, 우리는 그게 필요 없어”라고 말한다.
언제나 몇몇 팀이 스포트라이트 속, 그러니까 잡스의 눈길 아래에서 일을 한다. 이 팀들은 모든 돈과 수단과 세계로 향하는 통로를 지원받는다. 하지만 이 스포트라이트는 캠퍼스를 배회한다. 그 말은 내부적으로 숨가쁘게 정치질이 이루어진다는 소리다. 수많은 대화가 오가고 누구나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를 원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잡스의 관심을 원한다. 하지만 잡스가 원하는 것은 결과물이고 그 외에 그가 진심으로 관심있어 하는 것은 없다. 애플에서 최고의 관리자이자 진짜 영웅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잡스의 고함을 특히 많이 들으면서 자신의 부하 직원들에게는 침착하게 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소보타는 해고되는 순간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애플에서 일한 사람이다. 그는 불안감이 ‘체계적’이라고 말한다. 소보타의 임무는 쿠퍼티노에서 설계된 제품을 군대와 미국항공우주국(NASA) 그리고 대학에 파는 것이었다. 오늘날 그는 전망이 좋은 버지니아 로아노크의 언덕 꼭대기에 살고 있다. “회사 전체가 그 모양입니다. 누구도 뭔가 결정을 내리려 하지 않아요. 그 결정에 스티브가 화를 낼 수도 있거든요. 애플에는 죽은 고깃덩어리가 참 많습니다.”
‘죽은 고깃덩어리’, 이것은 미국식 냉소다. 그 사람이 회사에 없어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할 사람, 즉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보타가 장군들, 교수들과 함께 쿠퍼티노에 오면 약속을 잡을 수도 없고, 잡스와 직접 만나게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언제나 그렇게 될 수 있다라는 분위기만 풍겼다. “하지만 그곳으로 날아간 장군들은 누구나 잡스와 만나고 싶어 했다”고 소보타는 말했다. 그리고 가끔 잡스가 나타날 때도 있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면도도 하지 않은 상태로 말입니다. 질문에 대답하지도 않고 언제나 그 순간 그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만 말했어요. 하지만 그는 언제나 공간을 지배했지요.”
애플은 미팅이 많은 회사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회의가 열리지만 결정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집으로 돌아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직관을 믿는 법을 배웠고, 수년 동안 천재라는 소리만 들어왔다. 그 때문에 그는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나서 어제 시행을 결심했던 프로젝트를 중단해버릴 수 있다. “잡스가 무대 위에 올라가 추종자들에게 이야기할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라고 소보타는 말했다.
이것이 ‘애플 군단’의 영광의 순간이다. 바로 이 순간이 그들의 목표인 것이다. 병사들은 돈을 잘 벌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버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연봉과 보너스 그리고 주식을 받는다. 병사들은 진짜 중요한 것은 그의 빛 속에 서 있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름을 말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는 “이들이 아이폰을 개발한 팀입니다. 박수를 보내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일어서서 돌아선다. 잡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친다.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전부다. 이 5초, 이 시간을 위해 그들은 3개월간 하루에 20시간을 일했다. 만일 직원을 존중하는 분위기에 의사 소통이 잘되고 현대적으로 경영된다면 애플이 더욱 성공적이었을 수 있을까?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뒤 연매출이 약 70억달러에서 430억달러로 증가했다. 주가는 5달러에서 260달러로 상승했다. 2009년 애플은 89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3만4천 직원이 1인당 24만달러의 수익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설립된 지 34년이 지난 지금 애플은 더 이상 컴퓨터 제조회사가 아니다. 애플이 어떤 회사인지 말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앞으로 애플이 어떤 회사가 될지 예측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로 보인다. 거대한 전자회사? 디지털 시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제품의 창시자?
음악의 소비와 생산과 판매 형태는 모두 10년 전과 다르다. 아이팟에는 1만 개 곡을 입력할 수 있다. 바지 주머니 크기의 언제라도 들을 수 있는 완전한 음악 컬렉션이다. 그 때문에 많은 대기업이 추락했고 아이튠스, 그러니까 애플이 권력을 승계했다. 이 온라인 음악 상점보다 음악이 많이 팔리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이팟은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출시된 지 3년 뒤, <뉴스위크>에서 묘사했듯이 “삶을 변화시키는 문화적 아이콘”이 된 것이다. 당시 애플은 겨우 300만 대의 아이팟을 팔았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애플은 1억6천만 대를 팔았다.
출판사와 미디어 회사들은 아이패드에도 이와 같은 붐을 기대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의 책과 잡지를 아이패드에 전자 양식으로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잡스는 물론 이를 ‘마법’과 ‘혁명’이라고 칭한다. 아이패드 역시 대기업, 잡지, 출판사, 신문사 그리고 TV 방송사를 위한 단순한 선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패드는 새로운 독자와 새로운 시청자,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수입원을 약속한다. 그들 모두는 디지털 시대에도 과거의 상품으로 돈을 벌 수 있기를 희망한다. 광고주에게는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다. 동영상을 첨가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광고를 더욱 생생하고 양방향 소통적으로 만들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타임>은 자사의 첫 번째 아이패드 버전에 광고를 게재하기 위한 비용으로 20만달러를 받았다.
물론 잡스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아이패드를 개발한 이유다. 이번에는 여러 분야의 업계를 한꺼번에 변화시키고 그들을 애플과 연결하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애플은 잡지를 아이패드에서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잡지 형태가 어때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 참여할 것이고, 출판사가 제공하는 콘텐츠 가격을 결정할 때도 목소리를 낼 것이다.
애플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장보다는 시장이 아예 없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잡스의 경쟁자들은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아이패드로 애플의 지배가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다가오는 애플의 시대는 지나간 시대보다 더 번성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애플은 다른 누구보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그들이 계속 다른 분야, 현대인의 삶의 새로운 분야로 뻗어나가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한동안 계속 위로 올라가다 어느 날 갑자기 애플의 세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결국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의 회사가 그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말이다.
잡스가 처음 쓰러진 것은 2004년이었다. 췌장암이었다. 당시 의사들은 최소한 10년은 더 살게 된다면서 수술을 권유했다. 하지만 잡스는 망설였다. ‘첨단 기술의 교황’은 의학 기술을 신뢰하지 않았다. 채식주의자이자 선불교를 믿는 잡스는 식이요법과 그의 자연요법사가 추천한 구슬을 사용하는 대체의학을 선호했다. 그는 9개월간 수술을 거부했고, 이 기간에 이사회는 주주들에게 잡스의 병과 치료 방법에 대해 알려야 할지 의논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를 추앙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2004년 7월31일 잡스는 수술을 받았다. 다음날 그는 직원들에게 그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병이 들었지만 이제 다 나았다고 쓴 전자우편을 보냈다.
5년 뒤 그는 다시 쓰러졌다. 그에게는 새로운 간이 필요했고, 물론 매우 빠르게 기증받았다. ‘자동차 사고로 숨진 20대 남성’의 장기를 기증받았다고 잡스는 말했다. 2009년 중반 왕은 다시 자신의 제국으로 돌아와 마치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은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망하기 직전의 로마 같았어요.” 그 시기를 겪은 어느 사람이 말했다. 잡스가 사라지자마자 애플에는 제대로 된 구조도 규칙도 없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잡스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릴 것인가, 아니면 위로 치켜올릴 것인가? 오로지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 뒤 “황제는 병이 들었고 모든 원로는 자신의 사병을 무장시키고 권력을 탐냈다”고 속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말했다. 복수전이 펼쳐졌다. 잡스가 자신의 재등극 당시 데리고 온 사람들은 잡스가 없어진 순간 사냥감이 되었고 모든 중요한 안건에서 소외됐다. “제품이 발표됐다가 다시 취소되고, 다른 곳에서는 성급하게 개발됐다가 다시 버려졌습니다. 모든 것이 사내 정치였죠.”
잡스가 없는 애플은 불안에 떠는 젊은이들의 모임일 뿐이었다.
보스는 보통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특히 약점에 대해서는 더욱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2005년 6월 뜨거운 여름날 그가 스탠퍼드대 스타디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마치 고해와도 같은 연설을 할 때, 그는 드디어 그의 세 번째 이야기를 했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그는 젊었을 때 이런 격언을 읽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네가 매일매일을 오늘이 너에게 주어진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어느 날엔가는 그것이 진실이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이후 잡스는 오늘이 그의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만일 대답이 ‘아니요’라면 계획을 변경했다고 한다.
그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잡스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오후 7시30분에 의사와 만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진단 결과는 췌장암으로 치유가 불가능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에서 6개월이라며 의사는 “주변을 정리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검사로 인해 살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생체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들은 호스를 삽입하고 암세포를 떼어내 분석했다. 그리고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수술을 하면 그가 살 수 있다고, 그의 경우는 아주 드문 특별한 예외라고 말했다.
교훈이 있는가? 교훈은 언제나 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 시간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기 위해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일 뿐인 도그마에 스스로를 가두지 마십시오. 타인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소음에 휩쓸려 여러분 내면의 소리를 죽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장과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장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항상 굶주려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도전적으로 사십시오.”
ⓒ Der Spiegel(distributed by NYT syndicate)
번역 황수경

pa15_6.gif

[경제초점] 통큰 치킨 태어나서 죽기까지

김영수 산업부장 yskim2@chosun.com
김영수 산업부장

한 마리에 5000원 하는 롯데마트 통큰 치킨이 태어났다 일주일 만에 죽은 스토리는 이렇다. 롯데마트는 옆집 이마트가 1만1500원짜리 대형피자로 인기를 끌자 대응책에 골머리를 앓았다. 고심 끝에 생각한 것이 통큰 치킨. 고객을 끄는 데는 전 국민이 사랑하는 치킨이 최고다. 재료비만 감안하면 5000원에 치킨 한 마리를 팔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게다가 하루종일 튀겨봐야 한 매장에서 300마리가 고작이다. 전국 82개 매장이니까 하루 생산량은 어림잡아 2만4000마리. 전국 치킨 판매량의 2%에 불과하다. 물론 롯데마트 인근 치킨집에는 타격을 주겠지만, 배달이나 심야영업을 안 하니까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자위했다. 여기다 공정거래위원회마저 "통큰 치킨을 너무 싸게 팔아 다른 업체에 피해를 준다고 보기 어렵다"는 첫 반응을 내놓았다.

그러나 롯데마트는 청와대에서 날아온 주먹 한 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트위터에 "대기업인 롯데마트가 하루에 닭 5000마리 팔려고 매일 600만원씩 손해보면서 전국의 영세 닭고기 판매점 운영자 3만명의 원성을 사는 걸까요"라는 메시지를 올린 것이다. 공정거래위는 청와대의 뜻을 읽고는 "치킨 업자들이 제소하면 롯데마트 치킨에 대한 조사를 벌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롯데마트는 청와대가 통큰 치킨이 상생·공정 사회에 반하는 것으로 오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병용 롯데마트 사장은 정진석 수석에게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에 역행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시간을 주시면 치킨 업체들과 협의,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롯데 측은 판매 시간과 판매량을 제한, 치킨 업체들에 피해를 적게 주는 방법을 연구 중이었다.

정 수석은 문자메시지에 답변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날 롯데마트 사장이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이 모 일간지에 그대로 게재됐다. 그러자 롯데마트는 치킨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정 수석은 "통 큰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대기업은 적(敵)이고 치킨 가맹점은 아군(我軍)'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과거 정권에서도 자주 보던 장면이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르다. 5000원짜리 치킨을 줄서서 1시간 이상 기다려서 사먹을 수밖에 없는 소비자와 영세 치킨가맹점 모두 서민이다. 롯데마트도 대기업이지만, 1만6000원 하는 치킨에서 1300원 이상 로열티를 받는 프랜차이즈 본사도 큰 기업이다.

만약 청와대 수석이 5000원짜리 치킨을 사려고 줄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렇게 쉽게 트위터에 글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아니면 적이라는 사고방식은 갈등을 유발하고, 싸움을 부추긴다. 통큰 치킨의 사활(死活)도 시장 경제 시스템에 맡겨두고, 문제가 있으면 사법·행정 절차를 통해 조정하는 게 옳지 않을까. 질 좋고 값싼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와 대형 유통업체에 맞서 싸우는 영세자영업자의 생존권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토론도 필요했다.

인터넷에서는 통큰 치킨을 패러디한 신조어인 얼리어닭터(치킨사려고 일찍 마트에 나온 소비자), 닭세권(롯데마트 인근), 계천절(통큰 치킨 판매일), 히틀러 패러디(히틀러 영화에 통큰 치킨 대사를 붙인 패러디)가 유행이다. 청와대 당국자들도 봄직하다.

 



출처: http://cafe.naver.com/remonterrac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524199

pa15_6.gif

어느 개인 블로그에서.....

pa15_6.gif

pa15_6.gif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