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트 에세이]최범석 작가의 도시 속의 고향 집

레이디경향 원문

20대에 나는 심한 병을 앓았다. 세상의 어느 의사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다.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무조건 떠나야만 했다. 떠나고 돌아오면 이 ‘여행병’은 한동안 사라졌다. ‘여행병’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란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고, 그 근원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자연스럽게 면역이 생겼다. 물론 강의실에서 처음 접하는 지식, 책과 영화를 통해 얻는 간접 체험도 때로는 도움이 됐다. 그러나 그건 진통제를 먹고 잠시 고통을 잊게 하는 효과 이상의 도움은 되지 못했다. 내가 당시 절실하게 원했던 건,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앞 유리를 통해 보는 세상이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경험이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달리듯 나는 그렇게 세상을 만나고 만지고 느끼고 싶었다.

학기 중에는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으로 학비를 아끼고 남는 시간엔 아르바이트를 해 여행경비를 마련했다. 은행 계좌에 돈이 좀 모이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바로 떠났다. 그렇게,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살기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볐다. 자취방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바라볼 때면 나도 모르게 나오던 고통에 찬 한숨이 인도 타지마할, 페루 마추픽추 유적, 쿠바의 거리, 파리 에펠탑, 칠레 안데스 산맥 목장에서는 기쁨의 환호와 감탄으로 바뀌었다.

세상 속에서, 세상을 향해 질주하며 20대를 즐겁게 방황하며 보낸 나는, 서른 살이 될 즈음 귀국했다. 15년간의 외국 생활과 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부모님 곁에 머무르며 옛 친구들과 어울리고 귀향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겨울 날, 일산의 부모님 아파트에서 키우던 진돗개 ‘인왕이’와 함께 우연히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서울 인왕산 자락의 고향집을 찾게 되었다. 단 며칠 캠핑 여행을 계획하고 도착한 옛집은 그러나, 적지 않은 충격을 나에게 안겼다. 내 기억 속에는 항상 예쁘고 즐거운 우리 집이었는데, 막상 그날 내가 마주한 집은 그런 집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늙고 초라한, 그래서 낯설기만 한 집이 한 채 외롭게 남아 있었다.

“어릴 때 넓은 들판이었던 곳이 어른이 된 다음 가보니 조그만 빈터였다”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표현은 이해하지만, 내가 마주한 고향집은 단순히 작아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떠나 있던 20년이란 세월 동안 옛집은, 낯선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들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뜯겨진 문짝들은 남아 있었지만, 오래전 아버지가 마당에 정성스럽게 가꾸셨던 나무와 꽃 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스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차라리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어릴 적 옛집에 대한 추억을 그냥 그대로 먼 과거의 액자 속에 간직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내가 마주하던 현실의 그림자는 이미 그 추억을 뒤덮고 있었다.

집은 늙었지만 나는 젊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집을 직접 수리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공사에 관해 문외한이었지만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독학으로 조금씩 집을 고쳐나갔다. 가끔은 친구들이 와서 도와주기도 했는데 모두 그런 육체적 노동에 익숙하지 않아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손으로 어루만지고, 고장 난 기능을 고치고, 상처 난 곳을 실리콘으로 때워주고, 찌든 때를 벗겨주고, 헐벗은 곳을 페인트와 타일로 덮어주고, 환한 조명으로 밝혀주자 집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오랜 시간 노숙자 생활을 하던 사람을 씻기고 머리를 다듬고 새 옷을 입혔을 때처럼 집은 귀향해 처음 마주했던 그런 집이 더 이상 아니었다.

봄이 오자 나는 어린 묘목들을 구해와 앞뜰과 뒤뜰에 심었다. 나무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처음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많이 저질렀지만 인재(仁齋) 강희안의 「양화소록」을 포함해 나무, 식물에 대한 책을 수십 권 사 읽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조금씩 나의 무지에서 벗어났다. 세상에는 내가 상상도 못했던 수많은 종류의 나무와 꽃과 풀들이 존재했다. 점입가경이라고 했던가. 그 하나하나의 이름, 특성, 꽃과 잎 모양에 대해 배우고 관찰하는 재미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간혹 너무 빠져들어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한번은 늦가을에 운전을 하다 대로변에 낙엽을 모아 담아둔 큰 자루들을 보게 되었다. 낙엽만큼 좋은 퇴비도 없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자동차의 트렁크와 뒷좌석이 가득 차게 6, 7자루를 싣고 집으로 왔다. 첫 자루를 풀고 내용물을 뜰에 부어보니, 맙소사!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이 반,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가 반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자루도 약간의 비율 차이는 있어도 내용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경하고 있던 멍멍이들은 처음 보는 쓰레기 조각을 하나씩 물고 신이 났지만 나는 낙엽 사이에서 쓰레기를 분리하느라 한나절을 보내야 했다.

어린 묘목들이 어느덧 나무로 자라 고향집은 작은 숲 속의 집이 되었다. 살구, 매화, 감, 대추, 보리수, 사과, 앵두, 자두, 모과 등의 유실수를 포함해 황금측백, 안개나무, 무궁화, 목련, 소나무, 장미, 말발도리, 자귀나무, 산수유, 능소화, 배롱나무 등 수십 종류의 나무들이 고향집 마당에 뿌리를 내렸다. 갖가지 다양한 종류의 화초와 허브들도 나무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작은 텃밭에서는 매년 각종 유기농 채소들이 건강하게 자란다.

인테리어 공사와 식물에 관해 문외한이던 30대 초반의 방랑자는 이렇게 11년 전 인왕산 자락에 정착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좌충우돌하면서 죽어가던 고향집을 다시 살렸다. 돌아보면 내가 살린 건 옛집만이 아니었다. 사라졌던 오랜 기억들이 30년 뒤 현장에서 되살아났다. 젊은 엄마가 부엌에서 초등학생인 나와 누나를 위해 간식을 준비하고 젊은 아빠는 마당에 핀 꽃에 물을 준다. 우리 집 애견 ‘벨’은 밖에서 동네 개들과 한참 어울리다가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친구들과 뒤뜰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축구도 하고 전쟁놀이도 한다. 누나는 방에서 피아노 연습도 하고 인형놀이도 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되면서 많은 장면이 때로는 한 장의 사진같이, 때로는 한 편의 영상같이 떠올랐다.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자명함을 귀향한 나에게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시인 고은 선생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방황이고, 만남이고, 경이예요. 새로움이란 무엇이겠어요. 예기치 않은 것과의 만남이에요. 이것이 삶에 생기를 주는 것입니다.” 나는 무조건 먼 미지의 세계로 떠나 방황하며 예기치 못한 수많은 만남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했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낯선 언어를 들으며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즐기고 화려하고 웅장한 문화유적을 감상하며 여행이 주는 새로움에 도취됐다. 그런데 정작 지난 11년간 고향집에 머무르며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신세대 유목민으로 세계를 떠돌아다니던 나에게는 애초에 고향이란 개념이 희박했다. 특별한 느낌도 의미도 없었다. 그러다 나의 옛집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고향이라는 곳의 안정감을, 편안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곳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는 공간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항상 낡은 것, 익숙한 것은 버리고 새것을 찾아 떠났지만 결국 나는 실향민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의식하든 안 하든 평생, 매일 사람들은 새로움을 찾고 있다. 반복되는 건 지루하고 권태는 두렵다. 그래서 텔레비전도 보고 쇼핑도 하고 여행도 떠난다. 나 또한 20대에 심각한 ‘여행병’을 앓았던 건 아마도 이러한 새로움에 대한 억제하기 힘든 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향집에 정착해 지내다 보니 ‘먼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거창한 것만을 추구하고 바로 내 앞에, 주위에 있는 소박한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하게 된다. 여기만 아니면 어디서든 더 행복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새로움을 자꾸 먼 곳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공허한지도 깨달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동요 ‘즐거운 나의 집’의 원작 시를 쓴 미국 시인 존 페인은 비록 ‘즐거운 나의 집’의 작사가로서 지금까지 기억되지만, 한평생 독신으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집도 없이 떠돌던 나그네였다. 그는 죽기 1년 전 한 친구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집의 기쁨을 자랑스럽게 노래한 나 자신은 정작 아직껏 내 집을 가져보지 못했다네. 아마 앞으로도 힘들겠지.” 기나긴 여행 끝에 옛집으로 귀향해 고향은 단순히 돌아가기 위해 존재하거나 필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어쩌면 존 페인보다 더 행운아일지 모른다.

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1823)
우리가 쾌락과 궁궐을 찾아 떠돌아다녀도,
초라하다 한들, 내 고향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네.
하늘의 마법이 우리를 성스럽게 해주는 곳.
세상 어디를 찾아봐도 만날 수 없는 곳.
나의 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고향!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네.
나의 고향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네.
집 떠나 타향살이, 눈부신 화려함이 아무 소용없네.
오 나의 보잘것없는 초가집을 돌려다오!
내가 부르면 날아와 즐겁게 노래 불러주던 새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 모두를, 마음의 평화를
돌려다오!

나 황량한 들판을 거닐다 달을 바라보며,
자식 생각하는 어머니를 느낀다.
어머니가 고향집 문 앞에서 똑같은 달을 올려다보실 때
그 옆의 인동 향기는 더 이상 나를 위로해주지 못하네.

아버지의 자상한 미소 곁에 앉아 있을 때가,
그리고 어머니의 손길이 달래주고 이끌어줄 때가 얼마나
즐거운지!
다른 이들이 새로운 쾌락을 찾아 기뻐할지라도,
오 제발 나에게, 내 집의 즐거움을 돌려다오!

벅찬 가슴으로, 나는 반드시 너에게로 돌아가리라.
마음속 간절한 위안은 그곳에서 나를 향해 미소 지어줄 거야.
다시는 고향집을 나는 떠나지 않을 거라네.
초라하다 한들, 내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네.
나의 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고향!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네, 오 나의 고향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네!
John Howard Payne / 최범석 옮김

편집 후기
개인적으로 그동안 말간 수채화 같은 정서의 일본 영화를 그다지 즐기진 않았지만 최근 들어 소소한 감정의 결이 구석구석 배어 있는 그 특유의 느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전원교향곡’ 같은 느낌의 일본 영화들을 몇 편 보게 됐는데 그 중에서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몇몇 장면이 있다.

탱글탱글한 풋풋함이 살아 있는 영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전교생이 달랑 6명밖에 되지 않는 시골 분교에 전학 온 잘생긴 소년과 설레는 첫사랑 전선을 형성하게 되는 주인공 소녀는 졸업을 앞두고 겨울 햇볕이 스며드는 교실에서 칠판에 입을 맞춘다. 카메라가 서서히 왼쪽 창가로 시선을 옮기면 그동안의 아픔과 상처, 두근거림과 행복, 관계와 마음이 담긴 시간들이 쭉 스쳐 지나간다. 소녀가 소년이 아닌 칠판에 입을 맞추는 건 아마도 소녀가 사랑했던 대상이 사실은 그 소년이라기보다는 학교에서 그와 함께 마음을 나눴던 추억들이기 때문일 것. 자신의 흔적이, 소중한 이와의 교감이, 현재의 자양분이 온전히 간직된 곳. 오래된 공기가 축적된 장소가 갖는 의미란 그렇게 첫사랑보다 더 커다란 비밀이 될 수 있다.

늘 새로운 것, 낯선 것, 특별한 것을 찾아 세계를 떠돌던 최범석 작가는 ‘옛집’으로 돌아와 비로소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고 전한다. 버려져 있던 고향집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텃밭을 가꾸고 화초를 기르고 페인트칠을 하는 동안, 잊고 있던 추억과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내가 진정 사랑하는 것,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의미도 찾게 됐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찾은 고향집에서 삶을 돌아보게 된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부럽다’는 생각을 하다가 또 한 번 영화 속 소녀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회색도시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나에게도 이곳과는 전혀 다른 풍경의 ‘고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꿀 때가 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치고 집 밖에는 황금물결이 드넓게 펼쳐지고, 구수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궁이에 고구마를 구워 먹는 그런 ‘고향’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소중한 줄도 모르고 무심하게 버리고 온 곳들이 다 나의 ‘고향’이 아닐까 싶다. 입을 맞춰주고플 만큼 아련하고도 고마운 기억들, 그 행복이 촘촘히 박힌 공간들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2011년 신년호를 위해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나날이다. 먼 훗날 또 다른 ‘고향’이 되어 있을 이곳에서의 시간이 지금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최범석 작가는…
서울 한복판,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집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진돗개를 기르며 살고 있는 최범석 작가는 20여 년간 전 세계를 떠돌며 다양한 경험을 체득해왔다. 인왕초등학교 졸업 후 독일과 미국에서 각각 중·고등학교를 마쳤고,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장학생으로 경제학·국제정치학·독문학을 공부하고 귀국해 병역 의무를 마친 뒤 서울대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세계 70여 개 나라를 배낭여행하고 프랑스 파리, 스위스 제네바, 중국 타이안, 미국 뉴욕에서 체류하며 이력을 쌓기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이끌며 그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스포츠매니지먼트 회사 (주)포르투나를 설립해 현재까지 CEO로 활약 중이다. 그간의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쌓은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내추럴 트래블러」, 「반더루스트, 영원한 자유의 이름」 등의 책을 펴냈다. 최근에는 자신이 태어난 인왕산 고향집에 돌아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담은 책 「여행자의 옛집」을 출간했다. 그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더 맛보고 싶다면 홈페이지 haksodo.com, 트위터 @haksodo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글 / 최범석 진행 / 이연우 기자 사진 / 최범석, 이연우

거실 난로 속의 장작과 불꽃

불은 살아 다양한 소리를 내고

쉬지 않고 춤을 추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한다.

삶도 예술도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나의 흰 바람벽

| 2010/12/02 01:37 | iggor


<여행자의 옛집>이란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은 책이다. 사실 서점에서 일하는 내가 아무리 바쁘다 손쳐도 일 때문에라도 읽어야하는 것이 책인데 그런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글쓴이의 마음을 따라가면서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나의 삶을 뒤적여보면서 읽는 기쁨이 오랜만이었다.

오랜 유학생활을 하고 전 세계를 일주했다할 만큼 방랑벽이 있는 글쓴이가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집으로 20년이 지나 돌아와서 정원과 집을 다시 일구고 가꾸며 사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폐가로 버려진 집에 캠핑하듯 들어와 며칠 밤을 보내다 이내 작정하고 페인트 칠을 하고 바닥을 새로 고친다. 이웃집이 온통 아파트로 변했지만 꽤 커다란 정원이 있는 그 집을 울창한 숲처럼 가꾸고 보살핀다. 봄엔 흐드러지는 꽃구경을 하면서 새로운 식물을 심고, 뿌텃밭에 씨를 뿌린다. 여름엔 친구들을 불러 흥겨운 파티를 하고 가을엔 국화향에 취하다 겨울이면 지난해 담궈놓은 과일주와 또 흥겨운 시간.

헌집을 만나면서 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 나무를 심는다는 것, 흙을 만진다는 것, 직접 먹을거리를 기른다는 것, 자연 속에서 계절을 느낀다는 것 등등. 글쓴이의 삶은 매 순간이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다. 마치 이제껏 없던 새로운 감각을 선물받은 것처럼 그 전에는 무심하거나 아예 관심조차 없던 것들이 생의 기쁨과 충만함을 가져다 주기 시작한다.

책을 보면서 예전에 일했던 성북동의 옛집을 떠올렸다. 그때의 기억이 있어서 글쓴이가 짧은 글 속에 담으려고 했던 그 순수한 기쁨이 무엇인지 너무도 공감이 되었다. 손바닥 만하더라도 뜰이 있다는 것. 그 안에 있는 나무와 풀포기들이 계절마다 변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 마당을 쓸고, 물을 주고, 새로운 절기를 준비하는 마음.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과 머물다 가는 바람의 속살과 공명하는 듯한 가슴 충만한 느낌.

책 말미에 단풍으로 물든 사진 위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가끔 현실의 삶에서 권태나 좌절을 느낄 때,
학소도의 사계절은 나에게 속삭인다.
모든 건 변하고 새로움이 바로 코앞에 있다고.


책을 보면서 매일의 내가 너무 불쌍하고 처량해서 가슴이 아팠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그 속에서 자연 속의 또 다른 생명체로서 숨쉬고 변화하는 글쓴이가 얼마나 부럽던지.
매일 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 죽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너무도 많다.
하루의 마감이 그만 영원한 마감이 되었으면 싶을 만큼 어느새 나는 '삶은 고통'이라는 공식을 당연히 생각했다.
고통을 노래하는 가수는 멋지지만 고통을 칭얼대는 사람은 너무 피곤하다.
일하는 중간에도 잠깐씩 다른 생각에 잠기면 이내 허무함과 무기력함이 밀려든다. 그리고 스스로 그걸 자각하는 순간이 내가 나에게 고통을 칭얼대고 연민을 호소하는 순간이다. 그건 몹시 피곤한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의식적으로 '아, 죽고 싶다'를 내뱉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슬픈가.

좋아서 하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일이 된다. 행복했던 오늘 하루도 내일이면 다시 찾아올 빈 시간일 뿐이다. 자조에 찬 한탄이 아니라 이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영원한 행복을 선사해줄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이 환상이다. 비싼 차, 많은 돈, 권력이 보장되는 자리가 그 환상을 메우더라도 금세 공허해진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면을 강하게 기르는 것도 발전적이지 못하면 "아. 죽고 싶다."하고 중얼거리는 지옥의 수행이 된다.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나의 흰바람벽엔
20대의 열정과 감수성에 대한 연민만을 안고
반복되는 고단한 현실 속에 그것을 불러올 수 없는 비극을 탓하며 칭얼거리는 어린 아기만 있다.
가난하고 외로운 것은 맞지만 어리석음으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낮은 것 마냥 울분에 휩싸여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정말 죽을 것이 아니라면
매일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일의 해를 두려워하며 '아, 죽고 싶다'라는 말을
이제 멈춰야한다.

옛집에서 겨울을 날 때.
봄 못지 않게 겨울을 사랑했다.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들과 풀포기들의 시듦과 갈색으로 변해버린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의 봄과 여름을 보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지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성장을 축하하고 휴식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라 느꼈던 걸까. 장독 뚜껑에 고인 물에 물을 축이던 딱새와 돌확에서 날개를 씻던 까치. 한 겨울 추위에 말라버린 산수유 열매에 새들이 입을 대기 시작할 즈음 어김없이 봄이 왔었다.

모든 건 변하고 새로움이 바로 코앞에 있다고.

나에게 말할 수 있을까.

(출처: http://blog.ohmynews.com/life30/271965)

[시론] 왜 한국인은 행복해하지 않는가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
대다수의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는다. 이에 대해 한 외국 학자는 "한국인은 자신을 다른 사회 구성원과 끊임없이 비교해 남을 이기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성공 가도를 걷고 있는 듯한 나라,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에 사는 한국인이 행복해하지도 않고,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는 것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돈은 웬만큼 있는 것 같은데도 한국인이 여전히 불행해한다는 것은 그것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믿음의 문제이다. 한국인의 불행감은 '남을 이기려' 하거나 '돈을 더 많이 벌려는' 데 있지 않다. '사회적 인정에 대한 목마름'에서 오는 것이다.

한 외국 기자는 한국의 '성형 열풍'을 일컬어 "인정을 받고 자기 확신을 얻고자 완벽을 추구하는 한국인"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본인이든 자식이든 최고의 학벌, 최고의 직장을 갖추려 한다. 그게 안 되면 비싼 명품처럼 남이 부러워할 무엇이라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자기 인식, 즉 한국인의 '정체성'이다.

한국인은 누구나 남들에게 '멋진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누구나 최고로 멋진 인물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입사 경쟁에서 성공하려는 대학생들은 높은 학점, 토익·토플 등 높은 영어 성적, 외국 연수 경험, 인턴 경험 등등의 최고 스펙을 내밀지만, 그들이 가고 싶어하는 회사는 생각이 다르다.

이렇게 우리의 삶이 자신의 예상과 다를 때,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것이 그렇지 않다고 느낄 때 행복지수가 높은 사회의 사람들은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은 체념한 자포자기한 모습이 된다. 삶을 불안해하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낮아진다. 이럴 때에는 특히 '강한 사람한테는 약하고 약한 사람한테는 강한 스타일'이 두드러지기 쉽다. 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이라고 믿기에 이런 사람일수록 타인을 볼 때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를 더 의식한다. 높은 자살률, 낮은 출산율, 높은 이혼율로 나타나는 우리의 삶은 바로 이런 마음의 반영이다.

자기 자신보다는 남에게 이상적이고 멋있는 모습을 보이는 데 집착할수록 그 사람의 삶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으로는 점점 더 체념하고 자포자기한 상태가 되어간다. '멋진 보통사람'과 '체념한 모습'이라는 일견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한 사람 안에서 작동한다. 한국인의 이 정체성이 우리가 잘사는 것처럼 보여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 생각보다는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현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자신이 살아갈 미래가 어떤 방향인지를 알 수 없다. 누군가가 그것을 알려주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때는 돈만이 유일한 답이 된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이 돈이 있어야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게 되는 까닭이다. 돈만이 답이라면 우리의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도 남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자기만의 거울을 닦고 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았으면 한다.

[사람과 이야기] "한국 최고라는 서울대에 지적(知的)공동체 없어"

초빙석좌교수로 2년간 지켜봤더니… 뉴욕주립대 김성복 교수 쓴소리
교수들, 학문보다 술·정치 관심 학생들은 진리보다 돈벌이 고민
법대 교수연구실, 카드키 '장벽' 법인화 계기로 공격적 개혁 필요"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는 서울대에 '지적(知的) 공동체'가 없어요. 교수들은 학문을 논(論)하지 않고, 고시공부와 취업에 골몰하는 학생들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초빙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울대를 지켜본 미국 뉴욕주립대 역사학과 김성복(78) 석좌교수는 서울대의 현실을 개탄했다. 1956년 서울대 문리대(사학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2008년 서울대 인문대 초청으로 '인문대 종합 진단평가'를 맡았다. 그는 대학본부의 교수 승진 심사, 외국인 교수 임용과 관련한 주요 위원회에도 참여했다.

지난 2년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초빙석좌교수로 재직했던 미국 뉴욕주립대 역사학과 김성복(78) 석좌교수. 지난 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학문 토론이 사라진 서울대 현실을 개탄했다. /이석호 기자 yoytu@chosun.com
7일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자기 학과의 이익이나 개인 연구에만 몰두하는 교수들 사이에서 진지한 학문적 토론을 볼 수 없다"며 "학술회의나 세미나에 잘 참석하지도 않고 모여서 술이나 마시고 시시콜콜한 정치 이야기만 한다면 그걸 지적 공동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진정 학생과 학문을 위한다면 학과 간, 교수 간 장벽을 낮추고 소통해야 한다"며 "줄 세우기나 자리보전 같은 눈앞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봉건적 할거주의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역사학자인 그는 역사 관련 3개 학과(국사·동양사·서양사)가 나뉘어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는 "가령 지난 150년의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세계열강들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능동적 학습자(active learner)가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서울대 교수들이 학생들과 거리를 더 좁혀야 한다"고 했다. "법대 건물에 갔더니 교수 연구실이 있는 층은 카드키(열쇠)가 있어야 출입할 수 있더군요. 교수와 학생의 밀착도가 얼마나 낮은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교수 연구실 문을 보면 '재실(在室)' '퇴근' 이런 말만 있지 언제 교수를 만날 수 있는지 알게 하는 면담 가능 시간(office hour)이 적힌 경우가 드물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교수들이 학생들한테 욕을 먹더라도 과제를 많이 내고 공부하지 않으면 학점을 나쁘게 줘야 한다"며 "서울대는 단순히 연구소나 직업학교가 아니라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 '창조 행위'를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수 평가항목 가운데 '교육' 부문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대 교수 평가에서 연구와 교육은 각각 40%로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 김 교수는 "교육에 대한 평가에 '동료 평가(peer review)'를 도입해 같은 학과 교수들이 언제든지 다른 교수의 강의에 들어가서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는 "술이나 마시는 낭만이 아니라 공부에 대한 낭만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젊은이라면 진리에 대한 갈망을 가져야 한다. '어떻게 돈을 잘 벌까'하는 고민만 한다면 '대학도(大學徒)'로서 수치스러운 것"이라면서 "교수들은 '대학도로서의 긍지'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법인화에 대해선 "둘도 없는 좋은 기회"라면서도 "법인화로 얻은 자율(自律)이 자폭(自爆)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와 교육에서 질적 향상을 이뤄낼 수 있는 총장의 리더십이 중요하고,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법인화는 대학에 일종의 자치(self-government)를 부여한 것인데 총장 권한이 막대해진 만큼 옳은 길이 있다면 교수나 학생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뚝심 있고 공격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0일 미국으로 떠났다가 올 7월 다시 들어온다. 당초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완전히 돌아가려 했지만 법인화가 결정된 뒤 학교 측의 설득으로 다시 초빙석좌교수(서양사학과) 자격으로 남기로 했다

 

[2011년 한국인이여 행복하라] 韓 물질주의, 美 3배·日 2배… 돈 집착·北 위협이 행복 빼앗아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해질까

[돈 때문에 괴로운 한국인 ]
"자녀들 가난 걱정" 30%, 저출산도 "돈 때문" 52%

[전쟁날까 불안한 한국인]
"核·테러 두렵다" 63%… 9·11 직후보다 많아

1960년대에 비해 1인당 GDP가 250배쯤 불어난 오늘날, 전 세계가 '한강의 기적'을 배우겠다고 몰려오고 있는데도 정작 한국인은 '돈 때문에 괴롭다'고 한숨을 쉰다.

조선일보가 한국갤럽·글로벌마켓인사이트와 세계 10개국의 행복 조건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두 가지'는 첫째 재물에 대한 집착, 둘째 안보의 위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 허진재 이사는 "한국인은 세대와 상관없이 분단과 대립이라는 특수한 안보 상황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며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서도 부자는 아니꼽다는 식의, 물질에 대한 이중 잣대도 한국인을 '불만의 늪'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北도발로 불안감 극대화

한국인은 10개 나라 국민 중 전쟁과 테러에 대한 두려움에 가장 크게 시달렸다. '핵무기 공격, 테러 발생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인 63.4%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2001년 미국 뉴욕의 9·11 테러 발생 직후 한국갤럽이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48.8%)보다도 큰 수치다. 허 이사는 "2010년 북한천안함연평도 공격, 북한 후계자 김정은 등장에 의한 불확실성 증가 등을 겪으면서 한국인의 불안감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핵무기·테러 공격에 대한 두려움은 중년층(40~50대·평균 56%)보다는 젊은층(20~30대·평균 64%)에서 높게 나타났다.

그래픽=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한국인의 불안감(63.4%)은 10개 나라 평균(49.8%)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끊임없는 테러 시도에 시달리며 2개의 전쟁을 수행 중인 미국(53.7%)보다도 높은 수치다. 한국인 중 '전쟁과 테러의 위험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답은 3.1%에 불과했다. 미국은 이 답이 13.0%였다.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로 조사된 콜로라도주(州) 볼더(Boulder)시 시청 직원 새러 헌틀리씨는 "미국 국민은 테러와 전쟁이 경찰과 군(軍)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충분히 준비하면 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크게 불안해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미국 버지니아대 심리학과 조너선 하이트(Haidt) 교수('행복의 가설' 저자)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쟁이 나라 밖에서 일어나면 국민들을 단결시켜주는 효과가 있지만, 영토가 직접 공격당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엔 인간의 공포를 극대화해 행복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강대국들이 개입한 내전을 겪었고, 중국에도 침략을 당했던 베트남 국민 중 40%, 스웨덴·러시아에 차례로 점령당했던 핀란드 국민은 4분의 1만 주변국의 위협에 시달린다고 답했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한국인 중 4.2%가 '전쟁·테러 등 안보와 관련한 문제로 죽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역시 10개 나라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돈에 대한 끝없는 집착

1인당 GDP 2만달러, 세계 경제규모 13위인 한국인은 재물에 대한 끝없는 집착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돈과 행복이 무관하다'고 답한 한국인은 7.2%에 불과했다. '돈의 잣대'로 보면 한국인보다 훨씬 열악하다고 평가되는 인도네시아 국민 중 44.2%, 베트남 국민 중 20.8%가 '행복은 돈과 상관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세계에서 제일 심각한 수준인, 한국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도 '돈'이었다. 한국인 중 절반 이상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육아에 대한) 금전적 부담'을 꼽았다. '행복한 나라' 국민들 중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아이를 왜 안 낳는지 모르겠다'(25.5%)였다. 미래 세대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금전적 문제'를 가장 많이(29.8%) 꼽은 나라도 한국이었다. 20·30대 젊은이 중 '자녀들이 가난해져 먹고살 것이 없을까 걱정이다'라고 답한 비율은 40·50대(24%)보다 훨씬 높은 36%에 달해 취업난에 시달리는 '88만원 세대'의 고민을 드러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한국인의 물질에 대한 집착이 미국인의 3배, 일본인의 2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한국인은 빠른 경제성장을 일구기 위해 친구 및 가족과 멀어졌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만족에서 오는 행복을 희생했다"고 말했다.

[2011년 한국인이여 행복하라] 군대가 추억이 되는 까닭

김주환·과학 칼럼니스트

인간은 '불행'을 오래 기억안해 행복을 향해 뇌가 진화하는 듯

요즘 젊은 부모들의 페이스북을 보면, 아기 사진 일색이다. '페이스북'이 아니라 '베이비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2005년 타임지(紙)가 '인생에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준 한 가지'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35%가 '아이들'이라고 답했다. 과연 아이는 행복의 원천일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Kahneman)은 같은 주제에 대해 휴대폰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갑자기 전화를 걸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한가를 물어본 것이다. 조사 결과 '육아를 하고 있다'는 사람 중 '행복하다'고 답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결과에 대한 해석은 이렇다. 인간이 '겪고 있는' 행복과 '기억하는 행복'은 다르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별의별 고생을 다 한 남성들이 제대 후에는 그 경험을 유쾌한 추억인 양 늘어놓는 일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길버트(Gilbert) 교수는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라는 책에서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도저히 슬픔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지만, 인간은 결국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행복한 상태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불행'이라는 상태가 생각보다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코네티컷대 보건대 글렌 애플렉(Afflek)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웬만한 사건을 겪은 후 '불행하다'라는 느낌은 바로 그 다음 날부터 행복 쪽으로 반등하기 시작한다. 가장 큰 슬픔을 느끼는 '배우자의 죽음'의 경우, 15일쯤 지나면서부터 '불행의 느낌'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간의 심리가 계속 행복으로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음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들이다.

2009년 아이오와주립대의 뇌신경학 학자들은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행복이 실제로 뇌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며, 행복을 만들어내는 뇌의 특정 부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러 사진을 보여준 참가자들이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는 순간, 뇌에서 언어와 관련한 영역을 관할하는 전전두엽 부위가 활성화됐다. 반면 불행이나 위협을 느낄 땐 인간의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을 통제하는 뇌의 뒷부분이 반응했다. 행복이 비교적 늦게 진화한 뇌의 앞부분에 위치한다는 사실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뜻 아닐까.

시카고대 심리학과 미하일 칙센트마이(Csikszentmihalyi) 교수는 몰입(Flow)이라고 부르는, '집중을 통한 행복'의 개념을 만들어 냈다. 행복이라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행복의 상태를 느끼는 심리적 상태에 몰입할 필요가 있다고 칙센트마이는 말한다. 어떤 조건 아래서 자신이 행복한지 파악하고, 그 지점에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힘써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믿으며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인간이다"라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말처럼, '행복의 지점'을 알아내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데는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2011 한국인이여 행복하라] 돈은 정말 좋은데 돈번 인간은 정말 싫어

 [4] 돈과 행복
"행복은 돈과 관계 있어" 92%… 물질 집착, 한국이 10개국 1위
"부자는 나쁜짓 해서 된 것" 57%… 부자 이미지, 10개국 중 최악
"남을 이기는 것이 행복의 길… 끊임없는 물질적 비교로 행복과 오히려 멀어져"▶한국인은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부자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삐딱하게 대답한다. "부모 덕 봤겠지 뭐. 부정부패로 치부했거나." ▶한국의 젊은이들은 집 살 돈이 부족해서 고민이다. 그런데 집 가진 40·50대(부모)는 집값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이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 믿으면서도 '한해 얼마나 벌면 행복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금액('3400만~6900만원')을 대답한다. '돈과 행복'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한국들이 드러낸 세 가지 '코리언 패러독스'다.

신년 기획 '2011년, 한국인이여 행복하라'에 자문단으로 참가한 해외 전문가들은 한국인을 "돈은 좋아하면서도 부자는 싫어하는 등 재물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캐럴 그래엄 이사는 "한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겪으면서 치열한 경쟁과 소득 불평등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은 세계 경제 규모 13위에 올랐으면서도 아직 빠른 경제 성장 시절 가졌던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행복은 돈과 관계있다' 한국 92% vs 덴마크 53%

조선일보·한국갤럽·글로벌마켓인사이트가 전 세계 10개 나라 5190명을 조사한 '행복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의 물질을 향한 집착과 이중 잣대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돈에 대한 불만은 삶의 불만족과 명확한 상관관계를 보였고, 행복하지 않다고 답한 사람 중엔 '행복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해 부자에 대한 불만이 지나치게 컸다.

한국인 10명 중 9명은 '소득은 행복과 관계있다'고 보았다. 덴마크인과 인도네시아인은 절반 정도가 행복과 돈은 무관하다고 답했다. 한국인은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믿으면서도 '한 해 소득이 얼마 정도면 행복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3400만~6900만원'이라고 다소 낮은 수치를 들었다. 나머지 9개 나라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답은 공통적으로 '연간 1억1400만원 이상'이었다. 한국갤럽 허진재 이사는 "한국인은 행복을 위해 필요한 액수는 비교적 낮게 생각하면서도 돈이 행복의 필수요건이라고 답하는 이중성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20·30대는 집을 못 사서, 40·50대는 집값 내려갈까 걱정

한국인은 자신의 '돈 걱정'이 미래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미래 세대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금전적 문제'를 가장 많이 꼽은 나라는 한국(29.8%)이었다. 특히 20·30대 남성은 10명 중 4명이 '미래 세대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인은 돈'이라고 답했다. 이번 조사에서 행복하다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던 브라질의 20대·30대 중에 '미래 세대의 돈 부족'을 걱정하는 비율은 각각 13.0%·11.2%에 불과했다.

장관 청문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부동산 문제는 역시 한국인에게 스트레스였다. 20·30대(약 42%)는 원하는 집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 40·50대(약 25%)는 갖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까 특히 걱정이었다. 한국은 특히 '부동산 가격 하락을 걱정한다'는 문항에서 나머지 9개 나라(7.8%)의 약 2배(18.4)를 기록하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부자가 사회에 공헌한다" 한국 9.5% vs 미국 28.4%

한국인은 재물에 집착하면서도 부자는 미워했다. 부자에 대한 이미지(복수 응답)는 10개 나라 중 가장 나빴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다는 답은 34.5%(전체 평균 51.3%)인데, 부자가 자신의 재산으로 사회에 공헌한다는 답은 9.5%(평균 17.8%)밖에 안 됐다. 부자들의 기부문화가 확립된 미국인 중엔 28.4%가 '부자는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인은 부자가 돈이 많은 이유가 부모의 덕이거나(66.4%), 부정부패와 권모술수를 동원했기 때문(57.6%)이라고 생각했다.

일리노이주립대 심리학과 에드 디너 교수는 "한국인은 사회 구성원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해 남을 이기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언제나 '승자'일 수는 없기 때문에 남과 물질적인 면을 계속 비교하다 보면 행복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행복 여론조사 어떻게 했나

조선일보와 여론조사 기관 한국갤럽·글로벌마켓인사이트는 2011년을 맞아 한국인 그리고 세계인의 행복을 분석하기 위해 국내 언론 최초로 다국적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10개 나라 5190명에게 26개 질문을 묻고 답을 받았다. 한국을 제외한 9개 국가(덴마크·말레이시아·미국·베트남·브라질·인도네시아·캐나다·핀란드·호주)는 미국 갤럽이 실시한 월드 폴(World Poll), 그리고 영국 신(新)경제재단 등이 실시한 각종 행복 관련 조사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한 나라들이다. 조사는 지난해 12월 16~24일까지 9일 동안 진행됐다.

생체 시계 느려지면 시간은 쏜살처럼 느껴진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0.12.26 05:52

나이 들수록 왜 세월은 빨리 흐를까

 

시간을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기고 시간을 의식한다. 불가사의한 시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영화에도 종종 나타난다. ‘사랑의 블랙홀’에선 매일 같은 날이 반복되고,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큰 사진)에서 주인공은 점점 젊어진다. ‘백투 더 퓨쳐’ ‘타임머신’(작은 사진) 같은 영화는 시간여행의 꿈을 펼친다.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절대불변의 시공간’이란 법칙을 깬 이후에도 여전히 시간과 관련된 많은 현상은 미스터리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1분은 60초, 하루는 24시간. 언제나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시계와 달력으로 시간을 재단하고 관리하지만 때로 시간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때론 영원할 것처럼 늘어진다.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일 것 같은 시간은 사실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다. 인위적이기도 하다.

물리학 법칙을 벗어난 시간의 신비로움은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운 법칙을 추가한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것이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르는 걸까. 10대엔 시속 10㎞, 20대엔 시속 20㎞로 흘렀던 시간이 50대에 이르면 시속 50㎞, 60대엔 시속 60㎞로 점점 빨라진다. 열 살에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진 지루하리만큼 긴 시간을 기다렸는데, 어제 마흔이 된 것 같은데 곧 쉰 살이 된다. 시간이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수수께끼엔 답이 있을까.

도파민 수치 증가한 쥐, 생체시계 빨라져
심리학자 퍼거스 크레이크(Fergus I. M. Craik)는 1999년 ‘노화와 시간 판단’에 관한 실험을 했다. 피실험자는 평균 나이 72.2세인 노인 그룹과 22.2세의 젊은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실험은 피실험자가 눈을 감고 30, 60, 120초를 짐작으로 세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실험자가 30, 60, 120초에 신호를 제시하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 연령에 따라 명확한 차이가 드러났다. 노인 그룹은 시간을 세도록 했을 땐 실제 30초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30초가 흘렀다고 답했고, 시간의 경과를 짐작하도록 했을 땐 실제 120초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40초밖에 안 됐다고 판단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학자들은 “노인과 젊은이가 가진 시계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의 속도가 느려지고, 행동이 둔해져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를 19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Alexis Carrel)은 이렇게 비유했다.

“시계에 표시되는 물리적 시간은 강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청소년들은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둑을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그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데 그래도 아직 강물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노년이 되면 몸이 지쳐버리면서 강물의 속도보다 훨씬 뒤처진다. 그렇다보니 강물이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그러나 강물은 청소년기나 중년기나 노년기 모두 한결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사람의 몸 안엔 호흡·혈압·맥박·체온·세포분열·신진대사 등 수십 가지의 ‘시계’가 있다. 생활의 박자와 리듬을 바로잡아 주는 생체시계는 각각의 고유한 주기를 가지고 있다. 혈압·체온·맥박 등이 약 24시간 주기로 변하는 것, 여성의 월경이 한 달에 해당하는 주기로 반복되는 것 등 몸 안에선 각각의 시계장치가 움직이고 있다. 학자들은 이것이 시간의 경과를 판단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했다.

시간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생리적 요인들에 대한 연구는 70여 년 전에도 있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허드슨 호글런드(H. Hoagland)는 체온에 따라 시간이 빠르거나,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병에 걸린 아내가 약을 가져온 그에게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느냐”고 타박했을 때였다. 실제 그는 아주 잠깐 아내 곁을 떠나있었는데도 말이다. 호글런드는 아내에게 짐작으로 1분의 길이를 맞혀 보라고 했다. 아내는 실제 37초밖에 되지 않는 시간을 1분이라고 답했다. 체온이 1도 오를수록 아내가 1분이라고 짐작하는 시간은 짧아졌다. 열이 오른 아내에게 시간은 실제보다 더 길게 느껴진 셈이다.

실험용 쥐에게 약물을 투여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수치를 조작한 실험도 있다.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도파민 생산량이 줄어드는데 이로 인해 시간 지각이 달라지는지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실험이다. 미국 듀크대 심리학·신경과학 워런 멕(Warren H. Meck) 교수는 20초마다 먹이 레버를 누르도록 훈련된 쥐에게 도파민 수치를 증가시키는 암페타민과 저하시키는 할리페리돌을 주사했다. 도파민 수치가 높아진 쥐는 레버를 누르는 속도가 18초로 빨라졌고, 저하된 쥐는 22초로 느려졌다. 즉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면 생체시계가 빨라지고, 낮아지면 느려진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연구 결과가 있지만 생체시계 이론은 수수께끼에 대한 정답은 아니다. 그럼에도 몸 안 시계의 속도는 느려지고 따라서 ‘시계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은 주요한 가설 중 하나다.

시간 감각은 정보량 따라 달라져
세계적인 신경의학자이자『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동차로 캐나다에 가는 길이었어요. 여행 중에 글 쓰는 일을 걱정하던 친구에게서 녹음기를 받았지요. 그리고 72년의 추억들을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72년 이야기를 끝낸 뒤 73년 이야기로 넘어갔어요. 국경에 이르렀을 때는 89년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녹음 테이프가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해가 지날수록 이야기할 내용도 점점 줄어들었거든요. 점점 더 이야기할 것이 없었어요. 그 길이가 거의 일률적으로 짧아졌어요. 왜 그럴까요? 인생에서 반복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걸까요? 나이가 들면 저장되는 경험들이 점점 적어질까요? 젊은 시절에는 집중력이 좋을까요? 나는 이 가정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릴 수가 없군요.(『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중)”

두 번째 가설은 바로 이것이다. 일어난 사건이 많을수록, 새로운 경험이 많을수록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의 시간 감각은 정보량에 따라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매일이 새롭고 모든 것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정보량도 많고 세세한 부분까지 생생하게 기억된다. 하지만 어른의 경험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이게 마련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뇌를 통과하는 정보의 양은 줄어들고 기억력마저 쇠퇴한다. 따라서 나중에 떠올렸을 때, 어린 시절이 다채로운 경험과 인상적인 기억의 연속인 반면, 단조로운 경험뿐인 어른의 시간은 하루하루가 흐리멍덩해지고 1년이 날아가버린 듯 사라진다.

‘기억의 저장’에 따른 시간 지각의 차이에 대해 연세대 심리학과의 김민식 교수는 이런 얘기를 덧붙인다.

“낯선 길을 갈 땐 멀게 느껴지지만 돌아올 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같은 거리여도 우리가 느끼는 소요 시간은 다르지 않나. 갈 때는 새로운 정보가 많아서 주위를 살피면서 가지만 올 땐 이미 알고 있는 길이라 집중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경험을 하는 아이들에게 시간은 처음 가는 길과 같을 것이다.”

이 가설에 대해 의아해할 수도 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 대화를 할 땐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가고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아주 천천히 간다. 그렇다면 기억할 것이 많을수록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앞서의 설명과는 모순되는 것이 아닐까. 기억의 저장량만으로 시간의 속도를 잴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두 가지 개념을 구분해 설명한다. 바로 현재적인 ‘시간의 흐름 판단(passage of time judgement)’과 ‘회고 시간의 판단(retrospective time judgement)’이다.
영국의 맨체스터대에서 ‘아마겟돈’이라고 이름 붙은 실험이 이뤄졌다. 각각 9분씩 한 그룹은 영화 ‘아마겟돈’을 봤고, 또 다른 그룹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판단하도록 했을 때 영화를 본 그룹이 기다린 쪽보다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고 답했다. 다음 실험과의 분리를 위해 두 그룹은 10분간 소설을 읽었다. 그러고는 앞선 9분에 대한 시간 판단을 요구받았다. 앞의 실험과 반대로 영화를 본 피험자들은 시간을 더 길게, 기다린 피험자들은 시간을 더 짧게 판단했다. 즉 피험자가 영화를 보는 상황 안에 머무는 순간엔 시간을 짧게 느끼지만, 상황이 종료된 후엔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간에 대한 관심이 심리학적 시간 판단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초침이 시계를 도는 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1분조차 상당히 길게 느껴지지만 흥미로운 일에 집중할 땐 시간의 경과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것은 마르셀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도 잘 묘사돼 있다. 화자인 는 스테르마리아 부인에게 저녁식사를 함께하자고 초대하는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편지를 기다리던 그날 오후에 다른 사람이 나를 방문해 주었더라면 시간이 빨리 흘러갔을 것이다.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시간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시간이 사라졌다가 한참 후에 갑자기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시간은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재빠르게 움직이곤 한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한결같은 속도로 똑딱거리는 시계추의 움직임 때문에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 그 순간을 더욱 의식하게 되면서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그만큼 늘려놓게 된다. 친구와 함께 있었다면 1분, 1분 시간이 가는 것을 세지 않았을 텐데.’

죽음의 불안 느껴도 시간 빨라져
어른과 아이의 시간 인식 차이를 인간의 발달과 관련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작은 어린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커다랗게 들이닥친다는 얘기다.

어른이 되어 초등학교를 찾아가보면 “이렇게 운동장이 좁았나, 책상이 이렇게 자그마했나” 깜짝 놀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운동장도, 책상도 예전 그대로인데 말이다. 이런 현상은 아이가 자신의 작은 몸을 기준으로 크기와 길이를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른이 되고 몸이 자라면 상대적으로 교실이 작아 보이고 길도 좁아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적인 공간 지각은 시간에도 적용된다. ‘나’를 기준으로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면 같은 시간도 갈수록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열 살짜리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10분의 1이지만, 쉰 살의 어른에게 1년은 인생의 50분의 1밖에 안 된다. ‘평생’의 길이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고 평가도 바뀐다는 것이다. 또 죽음이 점차 다가오면서 느끼는 불안감 탓에 시간의 속도를 더 빠르게 느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가설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일본 후쿠야마대 심리학과의 마쓰다 후미코 교수는 심리적 시간의 길이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시간의 경과’에 주의를 기울일수록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지루하게 기다릴 때가 그런 경우다. 일어난 사건이 많을 때도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진다. 빛이나 소리와 달리 지각기관이 따로 없는 시간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으로 보이기도 한다. 셋째는 생리적인 템포다. 체온이 오르거나 약물에 의해 몸의 템포가 빨라져도 시간은 빠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마지막은 시간 경과의 길이다. 당연하지만 긴 시간이 흐를수록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심리적 시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르는지’를 설명하는 데도 역시 유효하다.

다만 학자들은 앞서 두 번째로 들었던 회상효과 탓에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고 느껴지는 것이라면 그 길이를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KAIST 정재승 교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삶에 변화를 줘서 기억할 거리를 만들어 노년을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것으로 바꾼다면 시간도 더 길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변화는 나이와 관계없이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고 훈련을 통해 기억력 둔화 속도를 늦추는 것도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도움말 주신분=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 김민식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지구의 종말은 다가오는가

2011.01.19

 

새해 벽두부터 종말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선은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벌어진 새와 물고기들의 떼죽음 탓입니다. 미국 곳곳에서 찌르레기 새떼가 비가 오듯이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렸고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낸 물위에 떠올라 해변을 뒤덮었습니다. 브라질과 뉴질랜드에서도 물고기들의 떼죽음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니 종말론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급격한 기후변동으로 인한 재앙도 끊이지 않고 습니다. 호주와 브라질, 파키스탄 등에서는 폭우가 쏟아져 막대한 피해를 냈으며, 유럽 각국에도 눈사태에 폭풍까지 몰아쳐 적잖은 불편을 안겨주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중국 북동부 지역과 한반도에 엄습해온 강추위도 예사로 넘길 일은 분명 아닙니다. 더욱이 최근 세계 각지에서 지진과 해일이 잦은 데다 화산도 자주 폭발하는 추세입니다.

일단은 이런 현상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과학자들의 얘기를 믿고 싶습니다. 열흘 전인가, 중국 장춘에서 나타난 ‘환일(幻日) 현상’만 해도 그렇습니다. 해가 개로 보이는 현상이 목격됐다는 것이지요. 대기에 있는 미세한 얼음조각에 햇빛이 굴절되고 반사되어 마치 하늘에 태양이 무리지어 떠오른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입니다. 그렇지만 종말론자들은 이런 현상이 모두 지구 멸망의 징조라며 은근히 불안을 들쑤시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종말의 시기가 2012년, 그러니까 바로 내년이라는 주장입니다. 가운데서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당초 1999년으로 예견되었던 그의 종말론이 빗나가게 되자 다시 해석한 결과 내년이 최후의 시점이라는 얘기가 나돌기 시작한 것이지요. 태양과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이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되는 ‘그랜드 크로스’ 현상으로 강력한 태양풍이 불어와 지구를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것이 내용입니다.

이처럼 단순히 하늘에서 불이 쏟아지는 묵시록의 아마겟돈이 아니라 그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보태지고 있다는 점이 요즘 종말론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2009년에 개봉 할리우드 영화 ‘2012’도 내용은 비슷합니다. 태양 흑점이 폭발하면서 한꺼번에 튀어나온 중성미자가 지구 내부에서부터 끓어오르게 만들고 이에 따라 급속한 지각변동이 일어나 마침내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이지요.

이밖에 혜성과 충돌한다거나 지구 자기장의 변동으로 극이 이동하기 때문에 종말이 초래된다는 주장도 없지 않습니다. 종래의 핵무기로 인한 3차대전설이나 석유 고갈로 인류문명의 종말이 초래된다는 얘기들보다는 걸음 나아간 듯합니다만, 대체로는 주장이 뒤섞여서 결국 서로 비슷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가운데는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지는 주장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요즘은 고대 마야족의 종말론이 떠돌아다닌다고 합니다. 마야력이 2012년 12월 21일에서 끝난다는 바탕을 내용입니다. 그들에게는 2013년이 없다는 것이며, 결국 지구 종말을 암시한다는 것이지요. 마야력이 과거와 미래의 태양 궤도까지 내다보고 만들어진 정교한 달력으로 알려져 다는 점에서 특히 종말론자들의 눈길을 끄는 모양입니다.

사실, 종말론은 기독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에서 거론되는 것으로 인류 역사에서 급변기마다 대두되곤 했습니다. 세기말인 1999년에는 휴거소동으로 뒤숭숭했고, 역시 2000 밀레니엄을 맞으면서는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예기치 못한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Y2K 종말론’이 제기됐었습니다. 우리 민족종교에서 전해내려오는 개벽사상과 정감록이나 격암유록에서 거론되는 내용들도 종말론의 범주에 포함됨은 물론입니다.

이처럼 종말론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원천적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회가 혼란할수록 종말론이 더욱 기세등등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서로가 종말론에 휩쓸려 집단최면을 걸듯이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종말론자들이 주장하는 내년의 시점도 무사히 지나간다면  그들은 어떤 핑계를 대고 멸망의 시점을 늦춰잡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어떤 경우에도 종말론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종말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후의 내일은 없을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내일의 태양은 하늘에 빛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노라”던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성찰은 종말론으로 신음하는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소중한 교훈입니다.

그렇다고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여러 자연현상들에 대해 뒷짐을 지고 지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근 곳곳에서 나타난 동물의  떼죽음은 앞으로 그런 현상이 인간에게도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힐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퍼져가는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인간이 마지막 포식자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이 사람에게 미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기후온난화로 인한 재앙도 시시각각으로 펼쳐지는 중입니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도 이미 기정사실로 예고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서 대비하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막대한 피해를 안겨줄 것이 뻔합니다. 세계의 종말을 재촉하거나 피해갈 있는 방안이 인간의 능력과 의지의 범주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가 지구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서 재앙을 줄이는 작은 힘이나마 보탤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2007년 경향신문에서 논설위원으로 퇴직하기까지 26년간을 신문기자로 지냈다. 그 전에는 '뿌리깊은나무' 잡지와 전경련에서 근무. 저서: '50년의 신화'(현대그룹 창업기의 주역들), '법이 서야 나라가 선다'(이회창 평전), '조선총독부, 그 청사 건립의 이야기'와 그 개정판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

 

[경제 view &] 지구의 1%인 세계 도시, 온실가스 80% 배출하는 현실[중앙일보]

 
조셉 마일링거
한국 지멘스 대표이사 사장
도시는 지구 전체 면적의 1%를 차지하는 데 그치지만 75%의 에너지를 쓰면서 전체 온실가스의 80%를 배출하고 있다. 아울러 도시화의 진행 속도도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다. 인구 1000만 명, 2000만 명, 심지어는 3000만 명 이상 거주하는 이른바 ‘메가시티’의 수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40년 후에는 인류의 70%가 도시 거주민이면서, 온실가스의 90%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도시는 지구의 미래를 결정짓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도시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하는 일은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전 세계적인 지구온난화 위협에 대응하는 첫걸음이다.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이 지속가능한 지구의 핵심인 셈이다,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친환경 기술이다. 특히, 빌딩이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40%를 차지하며 온실가스의 21%를 배출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빌딩의 에너지 최적화는 단기간 내에 최상의 성과를 얻고 막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 예산이 빠듯하다면 에너지 절감 모델을 통해 친환경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 건물주는 계약에 의해 보장된 에너지 절감 비용을 친환경 프로젝트 추진 비용으로 대체할 수 있다.

 교통 시스템에 있어서도 친환경 기술은 상당한 비용을 절감하며 기후 보호를 가능하게 한다. 발광다이오드(LED) 신호등은 기존 신호등에 비해 최대 90% 전력을 적게 소모하는 반면에 수명은 10배가 더 길다. 수백만 t의 불필요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교통체증은 최신 교통관리시스템을 통해 현저히 개선될 수 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지하철과 같은 에너지 고효율 열차는 이전 모델에 비해 30%나 적은 전력을 소비한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하이브리드 버스는 이산화탄소를 기존 버스보다 3분의 1가량 적게 배출하며, 인도 델리의 새로운 지하철 신호 시스템은 수천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지멘스는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 인텔리전스 유니트와 공동으로 2009년부터 매년 ‘녹색도시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다양한 지역의 세계 여러 도시들의 환경 지속가능성을 비교함으로써 통합적인 친환경 인프라 솔루션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서로를 벤치마크할 수 있게 하고자 만든 것이다. 2009년 발표된 ‘유럽녹색도시지수’는 유럽의 30개 대표 도시를 대상으로 평가했고, 지난해 11월에는 17개의 주요 라틴아메리칸 도시를 비교한 ‘라틴아메리카 녹색도시지수’를 발표했다.

 경제성장과 도시화가 세계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이뤄지는 지역이 바로 아시아다. 지멘스와 인텔리전스 유니트는 최근 서울을 포함한 아시아 도시를 대상으로 비슷한 조사를 진행했다. 조만간 그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서울을 포함한 22개 주요 아시아 도시의 에너지 사용량, 이산화탄소 배출량, 교통망, 수자원과 위생, 환경정책 등을 포함한 총 8가지 환경분야가 평가됐다. 아시아 도시를 대상으로 친환경 성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조사는 ‘아시아 녹색도시지수’가 처음이다. 이 연구가 각 도시들이 처해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에 보다 성공적으로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서울과 같은 메가시티는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다양한 과제들을 지니고 있다. 우수한 삶의 질 확보, 녹색 환경, 안정적인 전기 공급 등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지만 여건만 잘 조성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여러 에너지 절약 기술이 시장에 나와 있다. 이러한 녹색기술을 최대한 적절히 활용하면 급속도로 늘어나는 세계 메가시티 거주자들이 양질의 삶을 영위하면서도 생산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지속가능한 환경 조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조셉 마일링거 한국 지멘스 대표이사 사장

[한경 인터뷰]

유럽 재정위기는 '케인스주의' 종말 의미
정부가 시장에 돈 쏟아붓는 건 이제 의미없다
무상복지는 재정비용 마련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
중국 결코 안 변해…한국도 中 인권문제 지적해야

입력: 2011-01-21 17:33 / 수정: 2011-01-21 17:51

 

기 소르망 교수는 20일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의 무상복지는 사회 구성원 간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이제 무의미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지적했다. /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학자인 기 소르망 교수(67)는 1990년대 중반부터 매년 두 차례 이상 한국을 방문하면서 국내 정 · 관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있다. 한국의 정치 · 경제 · 문화 등에 대한 이해도 깊다. 지난 19일 서울을 방문한 소르망 교수는 20일 아산정책연구원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 후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침체되는 와중에 과거와 같은 복지 혜택을 누리기는 어렵다"며 "최근 한국 사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무상복지 논란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르망 교수는 인터뷰 내내 한국 사회에 대해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신실한 지한파(知韓派)였다.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은 '케인스주의'에서 찾아야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유럽 각국 정부는 앞다퉈 시장에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시장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습니다.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돈을 풀었지만 경제는 여전히 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얻은 것은 막대한 재정적자뿐입니다. 더 이상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케인스주의가 종말을 맞이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1960년대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했던 이론이 케인스주의를 대체해야만 합니다. "

▼한국에서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정부 규모와 시장 개입 정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최근 전 세계 각국에선 공무원 수를 감축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프랑스 영국을 비롯해 유럽 각국과 미국 모두 공무원 수를 줄이고 있습니다. 정부 규모를 늘리는 것이 경제 전반에 이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 친화적인 인물로 알고 있는데,한국에서 공무원 수가 늘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한국이 정부 조직을 확대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입니다.

▼유럽 각국에선 재정적자를 경감하기 위해 복지혜택을 줄이고 있는데요.

"물론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유럽 국가들이 누렸던 복지 혜택은 경제 성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과거 유럽은 매년 평균 5%에 달하는 경제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인구도 꾸준히 증가했고요. 현재 누리고 있는 복지 혜택은 이 같은 과거의 경제성장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다릅니다. 연간 경제 성장률은 1~2%에 불과합니다. 인구 증가율도 둔화됐고요. 이젠 유럽인들도 '더 일하고 덜 받는' 문화에 익숙해져야만 합니다. "

▼지난해 프랑스에선 연금개혁안을 놓고 거센 반발이 일었는데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한 연금개혁안은 바람직한 방향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복지 혜택을 줄이려면 국민을 꾸준히 설득해야 했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이 점을 강조했지만 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복지 혜택 감소의 당위성에 대해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지 않고 밀어붙인 것이 반발을 불러일으킨 원인이었습니다. "

▼한국에서도 무상복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저도 그 논란에 대해선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무상복지는 어떤 면에서 분명히 좋은 정책입니다. 많은 유럽 국가에선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해주겠다는 건 당연히 좋은 것이죠.다만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재정비용이 소요될 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가 앞으로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할지 사회 구성원 간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

▼지난해 한국 국회에서 예산안 통과를 놓고 여야 간 심한 충돌이 있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는 불과 50~60여년에 불과합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 문화가 제대로 정착이 돼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은 과거 오랫동안 왕권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왕이 명령하면 국민은 순종해야만 합니다. 이 때문에 토론이나 상생 문화가 정착될 수 없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다른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려면 최소 한 세대는 지나야 할 것으로 봅니다. "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포퓰리즘 정치인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포퓰리즘에 국민들이 쉽게 매혹되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은 한마디로 '간단하고(simple)' '쉬운(easy)' 정책입니다. 민족주의가 대표적입니다. 한국만 보더라도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가 얼마나 간단하고 쉽습니까. 게다가 한국은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 하다 보니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헤어나는 건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

▼프랑스는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왜 프랑스에서 극우파가 활개칠까요.

"프랑스에서 극우파가 활개를 친다는 건 잘못된 표현 같습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여전히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다만 매우 강한 극우파 세력을 갖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장 마리 르펜의 국민전선(FN)이 대표적이죠.근본적인 문제는 이민 때문입니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민자들이 자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복지 혜택을 가져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민이 활발하지 않은 한국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극우파는 이민자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찬성하는 국민들이 점차 많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

▼미 · 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자국 인권을 좀더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는데요.

"중국은 절대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현재 자기들의 체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성장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 세계에서 중국만큼 성공적인 공산당도 없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위안화 절상을 촉구해도 중국은 수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인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는 아무 죄가 없는데도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에는 보수파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당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이기도 하고요. 공산당원들은 경제적 이해관계에 맞물려 현 상태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개혁이나 개방을 선택할 리가 없습니다. "

▼남북 관계에서 중국이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한국을 무력 침공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들었습니다. 북한의 배후엔 항상 중국이 있습니다. 북한은 중국의 꼭두각시정권(puppet)에 불과합니다. 중국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책임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

▼한 · 중 관계 발전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중국이 한국의 중요한 무역상대라는 점은 잘 압니다. 한국인은 중국 인권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경제는 경제고,인권은 인권입니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가 아닙니까. 중국에도 지적할 건 지적해야만 합니다. "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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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소르망 교수는 ]

기 소르망 교수는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다방면에서 통찰력을 보이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스스로를 '자유를 추구하는 지성인'이라고 부른다. 소르망 교수는 소르본대에서 문학을,동양어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후 명문 파리행정대학원(ENA)을 졸업했다. 1970년부터 파리 정치대 교수를 지냈다. 르 피가로,월스트리트저널,아사히 등 주요 언론에 칼럼을 실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스탠퍼드대 베이징대 모스크바대 등에서 경제학 · 정치철학 교수를 역임하는 등 세계 여러 대학의 초빙교수를 겸하고 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프랑스 총리 및 외무장관의 고문직을 지냈다. 1996년과 1997년에는 프랑스 총리 자문역으로 북한에 방문하기도 했다. 2002년부터 프랑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2009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국제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고,'국가브랜드위원회'도 그의 조언에 따라 출범했다. '열린 세계와 문명 창조'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 '진보와 그의 적들' '세계는 나의 동포' 'Made in USA' '중국이라는 거짓말'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냈다.

회사 회식 중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미국 아저씨

다국적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3년간 근무하고 며칠 뒤 고향인 미국 뉴멕시코로 떠난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35년 간의 직장생활도 끝이라고....

홍대 앞에서 본 간판

'못된 고양이' 너무 귀엽지 않은가?!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