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Kong의 공근혜 대표의 초대로

영국인 사진작가 Michael Kenna의 전시회 오프닝에 다녀왔다.

나무를 소재로 한 그의 흑백 아날로그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다.

산수화, 수목화 같은 느낌이 드는 그의 이번 전시 작품들은,

영국인의 눈에 비친 동양의 나무들이 때로는 외롭게, 때로는 위엄있게

고용한 자연의 공간 속에 담겨있었다.

작가와 여행, 사진, 나무, 자연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고,

헤어질 때 마침 가방에 있던 내 책 <여행자의 옛집> 한 권을 선물로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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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e Trees, Study 1, Wolcheon, Gangwondo, South Korea, 2007

 

Snow Tree, Woljeongsa Temple, Gangwondo, South Korea, 2005

 

Snowfall, Numakawa, Hokkaido, Japan, 2004

 

Forest Edge, Hokuto, Hokkaido, Japan, 2004

 

East Sea Tide, Hoojeong Beach, Gyeongsangbukdo, South Korea, 2010

 

Huangshan Mountains, Study 3, Anhui, China, 2008

 

Huangshan Mountains, Study 48, Anhui, China, 2010

 

Forbidden City Tree, Beijing, China, 2007

사진 출처: http://www.michaelken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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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엄있는 표정 … 나무는 인물이다 [중앙일보]

마이클 케냐 12일부터 서울 사진전

고요한 눈밭 위에 홀로 서 있는 고목. 미니멀한 공간감각이 동양화 한 폭을 펼쳐든 듯하다. 마이클 케냐 ‘쿠스하로 레이크 트리-스터디 5’, 일본 홋카이도, 2007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 작가 마이클 케냐(58·사진). 그가 12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철학자의 나무’ 사진전을 연다. 나무·자연·건축 등 사람이 없는 흑백의 미니멀한 풍경 사진으로 국내에도 팬층이 두터운 그다. 그의 명상적인 미니멀리즘은, 국내외 사진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는 제목처럼, 나무 사진전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최근작까지 유럽에서 북미·일본· 중국 등을 누빈 나무 사진 50여 점이 선보인다. 특히 팬이 많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먹이 번지는 수묵화적 효과에 회화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눈에 띈다. 그는 “사진가 이전에 화가를 지망했고 판화·그래픽 등 다양한 장르에 대한 관심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인물사진을 찍지 않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저도 인물사진을 찍습니다. 바로 나무의 인물사진이죠. 인물사진에서 표현되는 존재의 위엄, 희망, 철학적인 감정 등을 저는 나무에서 봅니다. 인물사진처럼 나무 사진을 찍는 셈이죠.”

 전세계 곳곳에서 만난 나무들에 대해서도 “언제든 찾아가고픈 친구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늙은 나무들은 사진을 찍고 나중에 다시 가보면 베어지고 없어집니다. 이렇게 세월의 흐름을 따라 계속 변화하고, 통제나 예측이 불가능한 삶을 산다는 점에서 나무는 사람이나 인생을 닮았죠. 또 전 어떤 대상을 찍을 때 마치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그 곳을 여러 번 찾아가고 자주 만나고 점점 더 깊이 알아가면서 그 과정들을 사진에 담아내려 하지요.”

 도록에 실은 작가의 글에서도 나무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애정이 묻어난다.

“나무는 스스로 꾸밀 필요가 없고 말대답도 하지 않으며 지극히 독립적이고 생생한 아름다움을 가졌고, 내가 장시간 촬영할 때도 추위 속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을 즐기는 듯 보인다. 그러니 어느 누가 나무를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무는 자연이 선사한 가장 멋진 선물. 시인과 화가, 사진가, 그리고 철학자들의 주제어이자 지하세계와 땅, 그리고 하늘을 결합하는 보편적인 이데아다.”

“나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거대한 고마움에 대한 작은 징표로 나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한다”(작가의 글)

 1980년대 중반 흉물스런 발전소 굴뚝을 새로운 미감으로 재해석한 사진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케냐는 아날로그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35년간 600개가 넘는 미술관과 화랑에서 전시를 열었으며 200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슈발리에’상을 받았다. 특히 세계적인 팝스타 엘턴 존이 그에 매료돼 사진 콜렉션을 시작했고, 200점 넘게 소장해 화제가 됐다.

 케냐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7년 우연히 찍은 강원도 삼척의 솔섬의 나무 사진은, 당시 LNG 시설 건립계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솔섬의 생태에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솔섬을 살리는 계기가 됐다. 2006년 법정 스님의 에세이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에도 그의 사진이 다수 실렸다. 그는 4월 모스크바 현대미술관 회고전에 이어 내년 하반기 ‘코리아’ 시리즈를 한국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학생 2000원, 일반 3000원. 02-738-7776

[기고] 운전대만 잡으면 돌변하는 한국인

앤드루 새먼 더타임스지 서울특파원

앤드루 새먼
더타임스지 서울특파원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맨 처음 배우는 것 중 하나가 "한국 사회를 다스리는 것은 법이 아니라 인간관계"라는 점이다.

여기엔 물론 좋은 점도 있다. 한국인은 미국인처럼 만사를 송사(訟事)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영국인들처럼 갖가지 쩨쩨한 규제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고 살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이 한국인의 '하면 된다'는 멘탈리티를 떠받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쁜 점은 무엇일까? 일상생활 속에는 인간관계가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 하나 있다. 바로 도로이다. 누가 우선권을 가질지 혹은 양보해야 할지를 나이로도 직위로도 정할 수 없는 공간,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공간, "대가야 어찌 되건 지르고 보자"는 현대 한국인의 강렬한 경쟁심이 거침없이 분출되는 공간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공간은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각자의 사무실에서 평범한 이 부장, 김 과장, 박 대리로 통하던 한국인들이 이 공간에서만큼은 집단의 속박에서 벗어나 1t이 넘는 강철 덩어리를 빠른 속도로 자유자재로 운전하기 때문이다.

미국인 풍자작가 PJ 오룩이 서울에 와본 뒤 "모두들 미친 듯이 운전하고 있는데,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도시(everyone is driving like hell, with nobody getting anywhere)"라고 했다. 예의 바르던 한국인들이 일단 운전대를 잡고 나면 F1 경주에 나간 사람으로 돌변한다. 기갑부대 사령관을 방불케 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영국에 있을 때는 절대로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는 달리지 않지만, 서울에서 차를 몰 때는…. 뭐랄까, 남들처럼 몬다. '로마에 가면 스파게티를 먹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이것이 웃을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0년 통계를 보면,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자동차 1만대당 사고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교통사고 사망자도 터키슬로바키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나는 위험하게 운전하는 사람을 수없이 본다. 오늘 여러분이 신호등이 빨간불인데도 마구 달리는 차를 몇 대나 봤는지, 경찰이 딱지를 끊어줄 때 불평하지 않는 사람을 몇 명이나 봤는지 생각해보라. 법에 대한 존중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도 없어 보인다.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인이 경찰을 존중하는 것을 보고 싶지만, 한국 사회가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것 같다.

운전면허 시험 난도(難度)를 높이는 건 어떨까? 서울에서는 대부분 단번에 운전면허를 따지만, 영국에서는 두세 번 도전해서 합격하지 단번에 통과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영국 면허시험은 어렵다. 대부분 주행시험이고, 필기의 비중은 낮다. 한국에서 운전면허 필기시험 비중을 낮추자는 건 환영하지만, 주행시험 비중도 따라서 낮추자는 목소리는 오히려 우려스럽다.

물론 나는 도로 교통 전문가가 못 된다. 한국과 영국을 오간 약간의 경험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조치가 필요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한국인들은 무슨 일이든 해외와 비교해서 순위를 매기기 좋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통사고에 대해서만은 아무리 낮은 등수가 나와도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Weekly BIZ] [Cover Story] '1회 컨설팅료 25만불의 사나이' 골드스미스 박사

구글도 보잉도 이 남자에게 리더십 배웠다

마셜 골드스미스 박사의 좌우명은 ‘인생은 좋은 것(Life is good)’이다. 그가 세계 최고의 리더십 코치가 될 수 있었던 비결도 사람들에게 이런 긍정의 힘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미국 버클리대 MBA 과정 강의에서 파안대소하는 골드스미스 박사. 그는 평소에도 이렇게 박장대소한다. / 마셜 골드스미스 파트너스 제공
"내가 '하지만(but)'이라는 말은 절대 쓰지 말라고 했죠? 벌써 세 번째예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한 귀퉁이의 시끌벅적한 커피숍에서 만난 리더십 컨설팅 전문가 마셜 골드스미스(Marshall Goldsmith) 박사는 머리가 훤하게 벗어진 마른 체격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기자가 "하지만…"이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또 걸렸다!"라면서 박장대소를 했다. 공책을 꺼내놓고 직접 횟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 번에 10달러씩 벌금을 매길 테니 나중에 자선단체에 기부하세요."

"'하지만'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하지만' 같은 부정적인 말은 은연중에 대화 상대방에게 '나는 맞고 당신은 틀리다'라는 인상을 주는 아주, 아주 안 좋은 버릇이에요.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잘못 중 하나죠.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다면 그 버릇 고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는 기자에게 손권총을 날리면서 찡긋하고 윙크를 했다.

그에겐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미국 포브스와 영국 더 타임스는 2009년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사상가 15인'으로 선정했다. 구글과 보잉,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 세계적인 대기업 120여개의 CEO와 임원들이 그에게 리더십 컨설팅을 받았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리더십 코치''수퍼코치(super coach)'라고 불린다. 1회 컨설팅료는 무려 25만 달러(2억8000만원).

Weekly BIZ가 만난 골드스미스 박사는 이런 명성과 권위를 시원하게 벗어 던진 사람이었다. 훤한 머리 스타일만큼이나 말이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말 그대로, '모조(mojo)'가 넘쳐났다. 모조는 흑인 토속종교의 주술(呪術)에서 유래한 말인데, 그는 '내면에서 솟아나 외부로 방출되는 긍정적 에너지'라는 뜻으로 썼다. 삶의 에너지가 그의 표정과 손짓, 말투에서 그대로 풍겨났다.

골드스미스 박사는 오늘날 리더십 컨설팅의 방법론으로 자리잡은 '360도 맞춤형 피드백 프로그램(customized 360-degree feedback)'의 개척자다. 이는 경영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 부하 직원들을 상대로 비공개 면접과 설문조사를 실시, 경영자 리더십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장기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훌륭한 리더·CEO 되는 비결… '하지만' 같은 부정적인 말하지 말고
"내 생각이 옳다"고 강요하지 말고 "이건 꼭 해야된다"고 말하지말라

그는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데릭이란 경영자를 만난 적이 있다. 데릭은 내부 조사에서 직원들에게 제일 인기가 없는 리더로 꼽혔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직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밤잠 안 자고 뛰었는데, 날 싫어한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뭐가 문제일까? 그는 열정적으로 일했지만, 직원들을 지나치게 몰아붙였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싫은 소리를 했다. "그는 일에 대한 열정과 진심을 직원들에게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사람을 존중할 줄 몰랐죠. 나는 이 부분을 코치해 줬죠. 이내 그의 태도가 바뀌었고, 훨씬 존경받는 경영자가 됐죠."

골드스미스 박사는 개인뿐 아니라 경영진 전체를 컨설팅해 주기도 한다. CEO와 임원들이 서로 반목하는 핵심 원인을 밝혀내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의 리더십 컨설팅 철학의 제1원칙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자신을 변화시켜라"는 것이다. "주변 환경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화내지 마세요.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조직 속에서 행복을 찾으세요. 자신의 삶이 행복하고 의미 있어야 훌륭한 리더십이 나오고 회사도 좋아집니다."

그는 기업의 리더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지나친 자기 확신(self-confidence)'과 '자기 중심적 태도(too much ego)'라고 했다. "대부분 리더들은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신경도 안 써요. 이런 리더를 주변에서 어떻게 대하겠어요? 비위나 맞추면서 뒤에선 험담하겠죠. 오호, 당신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요? 나하고 내기 걸어 볼까요?"

골드스미스 박사는 "리더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꼭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쓸데없는 지시로 불신을 키우거나 사기를 꺾고 자신의 리더십까지 망쳐버리는 걸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CEO와 리더들이 하는 말과 행동의 절반은 쓸데없는 짓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유쾌하고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그의 조언은 얼음처럼 냉정하고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리더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그는 이런 조언을 했다.

"풍부한 일자리와 짧은 노동시간 등 부모 세대가 누려온 좋은 시절(good old days)은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도중국의 저임금·고숙련 노동자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가난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열심히 일하는 1억명의 젊은이와 말이죠. 그들이 당신처럼 하루종일 TV 보고, 인터넷 서핑이나 게임을 하면서 '세상이 썩었어'라고 불평할 것 같습니까? 그들이 미래의 당신 일자리를 뺏어 가도록 놔두지 마세요."

가부좌를 틀고 앉은 마셜 골드스미스. 그는 학창시절 불교 서적 400여권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불교 철학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그의 리더십 철학 역시 상당 부분 불교 철학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 마셜 골드스미스 파트너스 제공
"CEO여! 웃음은 헤프게, 입은 무겁게 하라"

올해 61세인 마셜 골드스미스는 강연과 컨설팅을 위해 늘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산타페 인근과 동부인 뉴욕에 집이 있지만, 베이스캠프일 뿐이다. 일주일에 2~3일은 비행기를 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7년 UCLA에서 조직행동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360도 맞춤형 피드백 평가 프로그램'을 창안하면서 리더십 컨설턴트로 이름을 날렸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딴 마셜 골드스미스 파트너스라는 CEO 리더십 코칭 전문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Weekly BIZ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만났을 때에도 그는 버클리대 강연을 왔다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녹색 셔츠에 카키색 바지를 입고, 커피숍 테이블에서 노트북PC를 펴놓고 있었다. 비서나 직원 한 명 없이 혼자였다.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은 그는 주변의 소음에 지지 않으려는 듯 큰 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리더가 인상 쓰면 모두에게 독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글로벌 대기업의 CEO와 임원들을 만나셨죠. 훌륭한 CEO들의 공통점이 뭔가요?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삶의 진정한 행복과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에요. 자기 일에 대한 성취동기가 높고, 다른 사람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열정적·긍정적이며 진지한 동시에 힘이 넘쳤죠. 포드사 CEO인 앨런 멀럴리(Mulally)가 그랬고, 미국 걸스카우트 총재였던 프랜시스 헤셀바인(Hesselbein)도 그랬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들이 불평하거나 풀이 죽어 있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리더에게 이런 긍정적 기운은 정말 중요합니다. 리더십의 요체라고도 할 수 있죠. 만약 회의를 한다고 칩시다. 리더가 기분이 나쁘고 계속 짜증을 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회의 자체가 무의미해지겠죠. 리더는 매사에 모두의 역할 모델이 되는 사람입니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과 일의 의미와 행복을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의 긍정적 기운이 훌륭한 리더십의 핵심이라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나는 이를 모조(mojo)라고 부르죠. '내면에서 우러나와 외부로 발산되는,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모조라는 개념은 '모든 것은 내 안에서부터 나온다'라는 제 개인적인 깨달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CEO와 임원의 리더십을 컨설팅했는데, 시간을 많이 들인 사람일수록 효과가 작고, 시간을 적게 들인 사람일수록 효과가 크더군요. 컨설턴트는 고객들이 변화하고 달라질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성과를 얻는 것은 고객들의 몫이라는 걸 깨달았죠. 즉 변화의 힘은 밖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옵니다. 모조는 그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당신 내면의 힘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위대한 리더들은 하나같이 모조의 수준이 무척 높았어요."

골드스미스 박사는 지금까지 리더십에 대해 총 30권의 책을 썼다. 가장 최근 것이 ≪일 잘하는 당신이 성공을 못 하는 20가지 비밀(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과 ≪모조(Mojo)≫다.

"앞의 책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inter-personal)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반면 모조는 인간 내면(intra-personal)에 대한 것입니다. 리더가 자기 삶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아야 비로소 그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다는 거죠. 이는 기업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예컨대 가정의 리더인 부모가 '행복하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면 아이가 어떤 메시지를 얻겠습니까? '나는 아빠에게 별 의미가 없구나. 중요치 않은 존재야'라고 생각하겠죠. 정말 끔찍하지 않습니까? 리더의 모조는 주변 모든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쓸데없이 제안하거나 지시하지 마라

―리더들의 공통적인 문제가 뭡니까?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태도입니다. '내가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미신의 함정(superstition trap)에 빠지죠. 이는 심각한 위험성이 있습니다. 과거 한국 민항기가 산에 부딪혀 추락한 적이 있죠? 그때 부기장이 충돌 위험성을 알았지만, 기장의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서 그냥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리더가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아래 직원들은 정반대의 모습이 된다고 한다. 조직 하부의 젊은 직원들은 자신감을 잃고 윗사람의 눈치만 본다는 것이다. 그가 버클리의 MBA 학생들에게 리더십 강의를 하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모조(mojo)… 내면에서 발산되는 '긍정의 힘'
CEO여 '활력'을 회사에 퍼뜨려라… 당신이 찡그리면 직원이 운다
당신이 미소띠면 실적이 오른다… 말 한마디에도 '웃음'을 담아라

"왜 당신은 리더의 자존심을 끌어올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리더들 대부분은 오히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 문제니까요."

물론 CEO가 되려면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지나치면 조직에 독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는 CEO에게 어떤 조언을 할까?

"직원들에게 함부로 제안(suggestion)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바보가 CEO의 제안을 제안으로만 받아들이겠어요? CEO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명령입니다. 리더들은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기 전에 반드시 '과연 이걸 할 필요가 있는가' 자문(自問)해 봐야 합니다. 특히 큰 기업의 CEO일수록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반복하세요. CEO가 지시하는 일의 절반은 쓸데없는 일일 때가 많습니다. 절대로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그는 보통 사람들은 하루 24시간 중 상당 부분을 TV나 인터넷 서핑에 낭비한다고 했다. 또 대화 시간의 65%는 남을 헐뜯거나 흉보는 데 쓴다고 한다. 그는 이 이유가 '행동의 관성' 때문이라고 했다. 마치 좀비(zombie)처럼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켜서 보는 것처럼 말이다. "TV를 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생각 없이 습관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관성의 족쇄를 깨라

―리더십 코치를 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점은 뭡니까?

"실천(practice)이죠. 대부분 사람들이 리더십의 원칙은 어느 정도 이해해요. 하지만 그걸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하죠. 머리로만 아는 리더십은 아무 쓸모가 없어요. 엄밀하게 말해 제대로 실천하기 전에는 리더십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는 예를 하나 들었다. 미국 교육 제도의 효율성에 대한 논쟁이었다. 최근 한 교육학자가 "중요한 것은 시스템 그 자체가 아니라 시스템의 참여자, 즉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얼마나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시스템 문제만 탓하면서 변화를 위한 실천을 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얘기였다.

"실천이 없으면 교육 제도 개선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십 컨설팅을 아무리 하고 조직 구성을 효율적으로 바꿔봐야 리더와 직원들이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어떻게 변화를 위한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사람은 가던 방향대로 가고, 하던 것만 하고, 그동안 얘기하던 대로 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관성의 족쇄(shackles of inertia)를 끊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무척 힘든 일이죠. 그래서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해보세요.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지?' TV를 볼 때나 멍하니 인터넷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으면 이런 습관적 행동들이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게 될 겁니다."

그는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활용하라고 했다. 동료들과 함께 해야 할 일들을 매일 체크하라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체크하면 실천력을 높일 수 있고 변화가 나타난다. "매우 간단하지만 강력한 방식이죠. 이렇게 하면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의 모조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나는 친구인 짐 무어(Moore)와 서로 전화를 걸어 매일 20여개의 체크리스트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불교에서 리더십의 철학을 깨닫다

그의 유쾌한 어조로 말했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肺腑)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좋았던 지난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란 얘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선 사지 멀쩡한 백인 남자는 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경기는 좋았고, 일자리는 넘쳐났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엄청난 글로벌 경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도전적인 경제환경이 펼쳐지고 있죠. 경쟁이 심해져서 예전처럼 쉽게 벌어먹을 수 있는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잘나가던 시절'은 모두 잊어버리세요. 그런 날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너무 가혹한 이야기 아닌가요?

"기업과 노동자들에게 시장이 요구하는 기대치는 예전보다 훨씬 높습니다. 또 인터넷과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당신은 24시간 365일 일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이건 정말 불공평해'라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불교, 깨달음… 20代 때 불교사상에 심취
부처에게서 리더십을 배웠다… 인간은 머물지 않고 변하는 존재
세상 일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 '변화의 힘'은 당신 안에 있다

그는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했다. "내가 처음 박사 학위를 받을 때만 해도 내 성적은 최상위권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똑같은 성적으로 중간에도 못 낍니다. 글로벌 경쟁 때문이죠. 내 딸 켈리(Kelly)는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박사과정 학생 22명 중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기 하나뿐이었다는군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은 아시아 출신이었고요. 이게 현실이에요. 우리는 글로벌화를 통해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되돌려 놓을 수 없다면, 당신이 변해야 합니다."

어느새 그의 뉴욕행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그는 문득 "나는 불교 신자"라고 했다. 미국의 코칭 전문가가 불교 신자라니 신기했다. 그는 30여년 전인 20대 후반에 400여권의 불교 서적을 읽으면서 불교철학에 심취하게 됐다고 했다. 내면의 힘을 중시하는 그의 리더십 코치 철학도 냉엄한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의 해탈(解脫)을 강조하는 부처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불교 사상에 심취하면서 나는 겉모습은 하얀데 속은 노란 계란 같은 사람이 됐어요.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그리고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얻은 작은 깨달음이죠."


모조(mojo)가 뭐죠?

美 흑인들 소원·부적 담은 '작은 주머니'서 유래
에너지·매력으로 통용… 영화에 쓰여 유명해져

모조는 미국 흑인들의 토속 신앙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 소원이나 부적을 담은 작은 주머니를 의미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이후 흑인 문화가 주류로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만족감이나 심리적 활력을 뜻하는 속어로 쓰였다. 1997년 007을 패러디한 영화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사진)'에서 성적 에너지나 매력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쓰이면서 유명해졌다. 지금은 미국뿐 아니라 영어권에서 널리 통하는 단어가 됐다.

모조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직장·가정·학교에서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점이기도 하다. 골드스미스 박사는 모조를 '내면에서 우러나 밖으로 드러나고 확산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라고 정의한다.

모조는 자신의 정체성(identity)과 객관적 성취감(achievement), 나에 대한 평판(reputation), 그리고 현실에 대한 수용(acceptance)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이 네 가지가 서로 균형 있고 바람직하게 유지될 때 '모조가 높다'라고 할 수 있다.


15가지 '체크리스트'로 긍정의 힘 끌어내세요

익숙해진 생활의 관성을 깨고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골드스미스 박사는 "실천하기로 다짐한 항목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동료나 가족과 함께 매일 체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도 매일 이를 실천하고 있다.

그는 "한국조선일보 독자들을 위해 내가 직접 이용하는 체크리스트를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뷰 직후 자신의 체크리스트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골드스미스 박사의 체크 리스트를 보면 그의 변화 목표가 드러난다. 1~2번을 보면 자신의 일에서 행복과 의미를 끌어올리겠다는 결심이, 3~6번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7~8번은 자신이 말하는 '똑똑한 사람들의 잘못된 습관'에 빠지지 않고 리더십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9~12번과 15번은 건강 챙기기, 13~14번은 가족에 대한 애정과 관심과 관련된 항목이다.

그런데 친구나 동료, 가족과 함께 체크리스트를 이용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절대로 스스로든 남에게든 부정적 평가(negative feedback)를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오늘 팔굽혀펴기 운동을 30개 했다고 하자. 그때는 "그것 갖고 되겠느냐"고 말하기보다는 "60살 먹은 사람치고는 상당히 잘했는데"라며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 좋다. 부정적인 평가는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죄책감만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는 "나 스스로 이런 체크리스트를 이용할 때와 하지 않을 때 효과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체험했다"고 말했다. 날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변화의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내 안의 긍정적 변화의 힘, 즉 '모조(mojo)'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 감동 정치리더십, 레이건이 그립다

<칼럼>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며 미국을 넘어 자유세계 추모 열풍
방만함 탈피 기본과 원칙 중시한 레이건의 유산을 적극 활용해야

 

◇ 1983년 11월 공식 방한한 레이건 미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지도자였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추모 열풍이 거세다. 레이건에 대한 향수는 점차 커지고, 정치인들은 레이건 흉내 내기에 앞장서고 있다.

레이건을 그리워하는 이유

지금 레이건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해줄 영웅을 찾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지도자의 표상으로 레이건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은 높고, 물가는 오르고, 정부의 방만한 살림에 무능함까지 겹친 오늘날의 무기력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레이건처럼 강인하고 낙관적이며 비전을 실천해 내는 지도자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레이건의 이미지는 서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불의에 맞서 당당히 총을 뽑아 정의의 이름으로 악당을 해치우는 카우보이처럼, 레이건은 어려운 경제여건을 과감히 해결하고 소련이라는 악의 제국을 힘있게 물리친 영웅이었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속 물가급등 현상)에 빠진 경제를 구출하기 위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경제환경과 제도를 고쳐 나갔다. 비대해진 정부를 효율적이고 강한 정부로 바꾸는 구조개혁에 성공했다. 나약해졌다는 비웃음을 받았던 미국을 위대한 미국으로 재탄생시킨 리더십, 이것이 바로 레이건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미국인들은 레이건을 링컨처럼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레이건은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기도 했지만, 전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가 인류에 기여한 최고의 공적은 소련을 포함한 공산권을 붕괴시켜 전체주의 아래 신음하던 인류를 구원한 일이다. 자유세계의 도덕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실험을 종식시킨 것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레이거노믹스

레이건은 1980년 선거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을 압도적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어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을 이끈 제40대 대통령이다. 레이건의 경제정책을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고 부른다. 세금을 줄이고 방만한 복지재정지출을 과감히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레이건은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과감히 낮췄고, 규제를 완화했으며, 통화긴축을 실천했다.

당시의 정치적 환경이나 시대적 흐름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케인스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시작된 정부의 팽창은 만성화된 질병처럼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고, 복지지출에 기대는 이익단체의 로비가 극성을 부렸다.

정부의존적인 사고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으며, 개인의 자립의지보다는 사회적 복지만능주의가 휩쓸던 시절이었다. 선진국들 대부분이 사회주의 열풍을 앓았고,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레이건은 미국사회를 오염시켜온 조합주의, 정부의존형 정책을 과감히 걷어내고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존중받는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실현해갔다.

그는 어떻게 시대의 흐름을 바꿔놓는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정치지도자로서 시대를 바꾸는 그의 리더십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자유주의 철학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하이에크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상이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위대한 사상은 세상을 더 밝고 풍요롭게 만든다.

레이건의 사상은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하고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보다 진보된 삶을 가능케하는 원천임을 지적한 사상가들이다. 이 두 사람의 사상가에서 영향을 받은 레이건은 현실 정치가로서 세상을 바꾸는데 성공한 것이다.

레이건의 신념과 사상은 옳았고 확고했다. 그는 공산주의의 사악함을 분명히 인식했고, 타협과 관용으로 이를 해소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공산권에 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압박을 가해 끝장을 냈다.

대내적으로 파업에 대해 단호히 대처했으며, 법을 존중하고 민간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줄여 나갔다. 작은 정부를 실천하고 시장경제의 활성화에 힘썼다. 불법 파업을 벌여 48시간 내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1만 명 이상의 항공 관제사들을 해고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린 용기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다.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국가가 더 이상 노조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하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같은 시대에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정치가이며 동지가 있었다. 바로 영국의 대처 수상이다. 레이건과 대처 두 위대한 정치인으로 인해 전 세계는 큰 정부에 의존하는 자본주의는 종말을 고하고, 다시 고전적 형태인 작은 정부의 자본주의로 회귀하는 시대사적 변화를 맞게 되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도 이에 동참했는데, 유럽에서는 제3의 길이라는 말로 사회주의 노선 포기를 합리화했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물가안정을 이루면서 고속성장 속의 풍요를 맞았다.

우리에게 남긴 빛나는 유산

레이건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자유주의 이념을 현실정치에서 구현하는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리더십을 보였다. 즉 위대한 정치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소통능력으로 무장한 리더십 때문이었다. 복잡한 문제를 간단명료하게 전달하는 말솜씨와 어두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유머 감각 등은 최고의 정치인이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한 마디로 그는 국민을 감동시켜야 하는 정치 리더십의 표본이었다. 미국 역사에서 취임식 때보다 이임식 할 때의 지지율이 더 높았던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와 레이건 둘뿐이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지금 국제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리더십의 실종 위기에 빠져있다. 나라 경제가 거덜 나더라도 내 복지수혜는 줄일 수 없다는 집단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정부는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돈을 마구 찍어냈고,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원칙은 실종되고 이익단체가 경제를 흔들고 있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데도 정부가 나서서 뭐든지 할 수 있다면서 정부의존적 사고를 키우고 있다.

방만함을 거두고 이제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때이다. 레이건이 남긴 빛나는 유산을 다시 활용할 때다. 통화팽창을 다시 통화긴축으로 돌리고, 세금을 줄여 방만해진 정부의 씀씀이를 줄이고, 정부의 간섭을 줄여 민간경제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일이다. 이것이 물가를 잡고, 고용을 창출하는 근본대책이다.

또 북한처럼 반인륜적 집단에게는 도덕적 우월성을 기반으로 철저히 봉쇄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레이건의 해법을 따라 국민을 설득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다. 레이건은 미국을 넘어 자유세계의 진정한 영웅이었다.

글/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성인 10명중 3.5명 연간 책 한권도 안본다

독서에도 양극화..학생들 참고서 구입비 일반도서 2배 넘어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의 35%가 일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등 독서인구가 갈수록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책을 읽는 사람들의 독서량은 더 늘어나 독서에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작년 11∼12월 전국의 만18세 이상 남녀 1천명과 초ㆍ중ㆍ고교생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연평균 독서율은 2009년보다 6.3% 감소한 65.4%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만화, 잡지를 제외한 일반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은 비율이 성인 10명 중 6.5명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성인의 독서율 추이를 보면 94년 86.8%에서 95년 79.0%로 큰 폭으로 떨어진 데 이어 99년 77.8%, 2004년 76.3%, 2008년 72.2%, 2009년 71.7%로 계속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지난해 책을 읽는 성인들의 독서량은 15.3권에서 16.6권으로 늘어나고 독서 시간도 10분(평일 기준), 도서 구입비도 1천400원 많아지면서 성인 전체 연평균 독서량은 전년도와 비슷한 10.8권을 기록했다.

독서는 성인들의 여가활용 순위에서 TV 시청(28.7%), 인터넷(12.7%), 수면ㆍ휴식(9.5%), 운동(6.9%), 모임ㆍ만남(5.6%), 집안일(4.9%)에 이어 7위(4.5%)에 그쳤다.

지난해 학생들의 독서율도 93.7%에서 92.3%로 소폭 감소했으나 학기당 독서량은 16.0권에서 16.5권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생의 학기당 독서량은 29.5권으로, 조사가 시작된 94년의 25.4권보다 4.1권 늘어나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며 중학생(12.4권)과 고등학생(7.6권)은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파악됐다.

한 학기 독서량이 21권 이상인 학생들은 '부모가 자신의 독서에 관심을 보인다'는 응답이 65%에 달한 반면, 독서량이 전혀 없는 학생의 경우 이런 대답이 24%에 그쳐 부모의 관심도가 독서습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1교시 수업 전에 '아침 독서'를 실시하는 학교 학생들의 평균 독서량은 20.3권으로, 이 프로그램이 없는 학교의 독서량 11.8권의 2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 방해 요인으로는 성인과 학생 모두 '일이나 공부 때문에 바빠서' '독서 습관이 부족해서'라는 대답이 많았다.

한편, 전자책 이용률이 크게 늘어나 성인은 11.2%, 학생들은 43.5%에 달했고 휴대전화 전자책 이용률은 성인 14.3%, 학생 25.5%였다.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읽은 성인의 월평균 도서 구입비는 9천800원, 학생들의 한 학기 도서 구입비는 일반도서 3만원, 참고서 6만8천원이었다.

지난해 공공도서관 이용률은 성인 29.2%였으며, 학생들은 2000년 이후 최고인 12.6%로 파악됐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성인 ±3.1%, 학생 ±1.8%였다.

kong@yna.co.kr
(끝)

삼성 신경영지침 "후배가 월급 5배 받아야 눈에서 불이 난다"

조선닷컴

 

자료사진=조선일보DB

"동기끼리 급여가 3배 차이가 나오게 하라.“
”후배가 5배 많이 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눈에서 불이 번쩍나는 분위기가 유지된다."
"이공계 우수 여학생은 장학금을 주고 졸업하면 곧장 채용하라.“
“인재를 확보하는 인재를 양성하라.”
“미국 유럽 전문가를 줄이고 중국 인도 전문가를 늘려라.”

삼성그룹이 최근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을 토대로 '지행(知行) 33훈(訓)Ⅱ'이란 새로운 경영지침을 마련했다. 삼성은 이 지침을 책자로 만들어 신규 임원 전원에게 배포했다. 이 책자에는 '초일류 기업 구현의 지침서'라고 표기돼 있다.

'지행 33훈'은 1993년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말한 프랑크푸르트선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지행은 지행용훈평의 준말로 삼성 경영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얘기한 것이다. 알아야 하고(知), 행동해야 하며(行), 시킬 줄 알아야 하고(用), 가르쳐야 하고(訓), 평가할 줄 아는(評) 종합예술가로서의 실력을 뜻한다.

이번에 새로 개편된 '지행 33훈 Ⅱ'는 지난 1993년 당시 이 회장의 ‘지행 33훈’에 새로운 경영환경과 그룹의 미래 비전을 반영해 개편한 것이다. 향후 삼성그룹이 나아갈 방향을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지침은 이 회장의 어록을 바탕으로 최고경영자(CEO)의 역할, 기술전략, 인재 확보, 기업문화 등 경영 관련 33개 분야로 세분화했다. 구체적 경영 지침과 함께 이 회장의 주요 발언도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삼성전자에 대해 “헝그리 정신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 정신무장을 강조했다.

삼성은 33개 지침 가운데 인재 확보에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먼저 뛰어난 인재(S급)는 인건비를 아끼지 말고 사장이 삼고초려해서 뽑을 것을 주문했다. '사장 월급을 줘도 아깝지 않은 인재, 해외 일류 기업에서 특급 대우를 받는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천재급 인재와 우수한 여성 인력은 장학금을 주고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직급이라도 3배 이상 연봉을 차등화하는 것이 일류 기업이라고 덧붙였다.

구체적 지침으로는 "인사팀에 특수 인력, 핵심 인력을 찾는 전문가를 확보하라"는 대목이 들어있다. '인재를 확보하는 인재'를 양성하라는 주문이다.

실적에 따른 차등 보상도 강조했다. 지침은 "동일 직급이라도 3배 이상 차이가 나야 일류 회사"라고 규정했다. 월급 50%를 올려주더라도 S급, A급 인력으로 무장하면 이익은 그 이상 증가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서는 동종업계 회사보다 20~50%를 더 주고 경쟁사와의 격차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인재 확보와 함께 하위 5% 정도의 인력을 매년 교체한다는 상시 구조조정에 대한 지침도 만들었다. 이와 관련, 이건희 회장은 "구조조정은 평소에 하고 1~3% 정도의 감축이면 충분하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인력을 지속적으로 정리하면 한꺼번에 10%, 20% 자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제휴나 스카우트보다 기술력을 갖춘 회사와의 합작을 먼저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방안도 담았다. CEO는 전용기와 헬기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고 해외 출장시 꼭 해외 인프라를 견학하고 유명 인사와의 교류를 통해 견문을 넓힐 것을 당부했다. 지역 전문가는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중점 배출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과거 지행 33훈과 비교하면 당시 신경영을 대표했던 7 · 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를 비롯해 질 위주의 경영, 국제화 등은 변화한 시대에 맞춰 새로운 내용으로 대체됐다.

[기고] 한국 축구가 일본에 진 이유

황주홍 전남 강진군수

황주홍 전남 강진군수
필자는 축구 전문가가 아니다. 그것을 전제로 이번 아시안컵 축구에서 한국은 슬로건 때문에 졌다고 생각한다. 우리 슬로건은 '왕의 귀환, 아시아의 자존심!'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아무리 의미없는 것이라고 해도 호주가 26위, 일본이 29위로 39위인 우리보다 위다. 우연인지 몰라도 대회 결과도 랭킹대로 갔다. 필자는 우리 축구가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에 발목을 잡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다른 팀의 슬로건은 '강함은 단결에'(우즈베키스탄), '승천하는 용'(중국), '자줏빛!'(카타르), '파란물결'(쿠웨이트), '녹색이여!'(사우디아라비아), '붉은 독수리들'(시리아), '용자들이 온다'(요르단) 등이었다.

우리 팀은 이란전을 앞두고 "이란 축구는 파울이 너무 많다. 이란이 월드컵에서 성적이 안 좋을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란의 대응은 이랬다. "이런 것(상대 비방)도 게임의 일부이기 때문에 기분 나쁘지 않다. 감독들은 경기를 앞두고 모두 예민해진다. 한국은 의심의 여지 없는 아시아 최고 팀이다. 박지성까지 있어서 모두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상대다. 아시아 축구 팬들이 멋진 경기 즐겨주기 바란다."

우리는 일본전을 앞두고선 "지금까지 한 번도 일본을 두려워해 본 적이 없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을 내일 경기장에서 보여줄 생각이다"고 했다. 일본의 말은 조금 달랐다. "한국이 이란보다 내용면에서 더 좋았다. 한국 선수들의 강한 승부욕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에 뒤지지 않도록 준비를 잘 하겠다."

우리 선수 한 명은 한일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일본(인)을 비하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다른 한 명은 패한 뒤 "심판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이 선수는 "기분나쁘지만 아시아 팀들의 기량이 올라온 듯하다"고도 했다. 모두들 일본 축구가 한국을 추월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팀의 생각은 달랐다.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과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어쩌면 정반대의 마음가짐이다. 이번 한국축구는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위험하고 무익했다. 많은 경우 최고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이미 최고가 아니다. 최고는 더 습득해야 할 필요가 소멸되는 경지이므로 배워지지도 나아지지도 않는다. 최고라고 믿는 인간적 오만(heubris)은 늘 응징을 받는다. 희랍 비극이 한결같이 보여주려 했던 바이기도 하다.

몇해 전 전남 강진군에서 열렸던 국제 중학생 축구대회 한국 대 라오스전 때 일이다. 한국이 2:0으로 이겼다. 그런데 첫 골이 터졌을 때 우리 선수들 그 누구도 기뻐하질 않았다. 골을 넣은 선수조차도 고개를 푹 숙이고 하프라인 쪽으로 걸어가는 거였다. 우리측 관계자에게 "아니, 왜 저러느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저 녀석들, 같잖은 팀한테 한 골 넣은 것쯤이야, 하는 거예요" 하며 웃었다. 두 번째 골이 터졌을 때도 우리 선수들은 무표정했다. 라오스 선수들과는 달리, 우리 선수들은 넘어지는 상대에게 손 한번 내밀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마저 '최고'라는 오만의 유니폼을 걸치고 있었다. 필자는 그때 우리 아이들이 이겼지만 졌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국 축구는 일본을 이길 것이다. 그 경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으면 한다. "일본은 최고 팀이다. 한일전은 항상 힘들다. 최선으로 승리할 뿐이다."

도전·희생·연대로 목표 성취 … 미식축구 DNA는 미국의 가치관

“승리와 패배는 습관이다”
명장 빈스 롬바르디의 가르침
오바마도 연설서 인용

 
그린베이 패커스의 쿼터백 에런 로저스(공 든 선수)가 패스할 곳을 찾고 있다. 로저스는 39번 중 24번의 패스를 정확하게 찔러넣으며 304 패싱야드를 기록했고, 세 차례의 터치다운을 이끌었다. 그는 수퍼보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후 “우리 수비를 믿었다. 모두가 협력해 우승을 일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알링턴 로이터=연합뉴스]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리자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은 웨스트포인트에서 미식축구 선수를 했던 장교들을 최전방에 배치했다. 그들만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인에게 미식축구는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니다. 미국과 미국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특별한 창(窓)이다. 미식축구에는 미국의 혼이 담겼다. 합리성과 실리를 강조하는 경기. 그러나 헌신과 희생이 없이 승리할 수 없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도전의식과 성취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다. 엄격한 규율 속에 창조의 정신이 번뜩인다.

 수퍼보울은 미국혼의 상징이다. 미국인의 핏속에는 ‘수퍼보울 유전자’가 용솟음친다. 미국의 대통령 취임식(1월 20일)이 수퍼보울과 겹치면 대통령 취임식을 연기할 정도로 미국인들은 수퍼보울에 몰입한다. 수퍼보울 진출 팀이 속한 도시는 경기 당일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을 정도다. 수퍼보울은 NFL 결승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단일 이벤트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미국인의 수퍼보울 DNA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빈스 롬바르디다. 1958년 승률 10%도 안 되던 꼴찌 팀 그린베이 패커스 감독으로 취임, 이듬해 승률 60%로 만들었다. 수퍼보울 우승 트로피를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라고 부른다. 1967년 처음 시작된 수퍼보울에서 2년 연속 팀을 우승시키면서 트로피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롬바르디는 선수들에게 “자기 자신을 알라, 실패를 통해 배우라, 모든 것을 쏟아부으라, 달리기 위해 달리지 말라”고 가르쳤다. “가끔 승리해서도 안 되고 가끔 제대로 해서도 안 된다. 항상 제대로 해야 한다. 승리는 습관이며 패배도 그렇다”고 말했다. 철학·카리스마·열정·희생·믿음이 중요하며 그중 제일은 인격이라고 생각한 롬바르디의 리더십은 미국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수퍼보울은 미국의 정치·사회·문화 전 부문에 그 빛을 드리운다. 실패에 굴하지 않고 끝내 일어서는 미국의 정신을 그린베이 패커스와 롬바르디가 보여주었다. 그러기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27일(한국시간) 에너지기업 순방길에 가장 먼저 위스콘신주 매니터웍의 ‘오리온 에너지’를 찾아가 연설하면서 롬바르디를 인용했을 것이다. 그는 “미국이 추구해야 할 자리는 언제나 1등”이라고 말했다. 위스콘신주는 그린베이의 연고 지역이다.

 가장 미국적인 대통령으로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가장 위대한 영광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것”이라고 외쳤다. 그의 외침은 수퍼보울과 잘 맞아떨어진다.

성호준 기자

린다 수 박 “고려 도공 다룬 내 동화, 미국선 역사 교재로 쓰여요.”

[중앙일보]

9년 만에 서울 오는 한국계 미국 아동문학 작가 린다 수 박

  미국에 한국문화를 알려온 아동문학가 린다 수 박은 “특별한 연령대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단 한 사람의 독자, 나 자신을 위해 쓴다”고 했다. [린다 수 박 제공]
린다 수 박(51)-. 한국계 미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2002년 미국 최고 권위의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賞)을 받아 화제가 됐다. 그가 이번 주말 한국을 찾는다. 9년 만의 방한이다. 미국 아동전문 출판사 스콜라스틱 창사 90주년 행사의 하나로 12∼15일 한국에서 사인회·강연 등을 한다. 그를 미리 e-메일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미국 내 그의 입지는 탄탄하다. “뉴베리상 수상은 작가 이력에 엄청난 영향(tremendous impact)을 미친다”고 했다. 미국 대부분의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이 수상작을 여러 권씩 구입하기 때문이다. 2002년 수상작은 『사금파리 한 조각(A Single Shard)』(사진 왼쪽). 고려시대 청자 도공(陶工)을 소재로 했다. 『사금파리…』는 지금까지 40만부 가량 팔렸다. 수만 곳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구입·대출한 점을 고려하면 실제 독자 수는 훨씬 늘어난다. 미국 사회에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톡톡히 알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그는 또 한 번 실력을 입증했다. 스콜라스틱에서 낸 아동 모험소설 『Storm Warning(폭풍 경보)』이 40만부나 팔렸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그의 목소리에선 힘이 넘쳤다.

-오랜만의 한국 방문이다.

 “자주 오고 싶었지만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몇 해 전 두 아이가 모두 대학에 진학한 후 자유가 생겼다.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 안타깝다. 제대로 배우고 싶다.”

-2002년 뉴베리상 수상 이후가 궁금하다. 여전히 그 상이 당신 삶에 영향을 미치나.

 “『사금파리…』는 비영어권 독자들에게도 폭넓게 읽힌다. 뉴베리상 때문이다. 13, 14개 언어로 번역됐다. 요즘도 『사금파리…』에 대한 강연 요청을 받는다. 1주일에 10건쯤 된다. 편지를 보내는 독자도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보다 뉴베리상 수상작이 더 오래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사금파리…』는 주인공 소년이 깨진 청자조각을 들고 개성에 가 왕실 납품을 받아내는 대목이 감동적이다. 특별한 서사 전략이 있다면.

 “이야기가 보편성을 갖추려면 구체적이어야 한다. 아마 모든 예술의 역설일 것이다. 인물과 이야기가 실감 나려면 세부가 생생해야 한다. 사건은 인물의 감정을 드러낸다. 감정은 인간 모두에 보편적인 것이다. 어느 시대, 어디에 살든 사람은 야망이 있다. 사랑할 사람,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난다. 또 자신의 인생이 의미 있기를 바란다. 정리하면, 세부에 충실해야 관심을 끌 수 있고 보편적 감정에 호소해야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

-아동문학과 성인문학, 둘 사이에 차이가 있나.

 “아동문학 작가가 되려면 오히려 더 훌륭한 작가여야 한다. 어른들은 인내심이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 다. 아이들은 책이 조금만 재미 없어도 닌텐도를 붙든다. 아동문학가끼리 ‘우리는 아주 유치한(immature) 사람들’이라고 농담할 때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 책을 좋아한다는 거다. 하지만 아이들은 키 작은 어른일 뿐이다. 덜 격렬할지 모르겠으나 감정적인 구성(emotional makeup)은 어른과 같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일제강점기 체험을 녹여낸 『내 이름이 교코였을 때』(오른쪽) 등 작품 대부분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특정한 의도가 있나.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된 후 내 자신의 성장과정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미국에 한국에 관한 어린이책이 더 많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미국 아이들에게 내 책은 아마 한국에 관한 첫 책일 것이다. 굉장한 일이지만 큰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역사전문가는 아니다. 이야기꾼일 뿐이다.”

-작품들이 미국 학생들에게 어떻게 읽히나.

 “문학적 재미로, 혹은 역사책으로 읽힌다. 미국 학생들은 12살이 되면 세계사를 배운다. 아시아의 역사를 새롭게 소개하려는 선생들이 내 책을 활용하는 것 같다.”

-미국 교실에서 교재로 쓰인다는 얘긴가.

 “그렇다. 역사 과목 보충 교재로 사용되곤 한다.”

-한국에서도 역사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입 필수과목이 아니다 보니 역사가 홀대 받는다는 우려가 크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4년 과정 중 2~3년은 역사를 배운다. 젊은이는 국가의 미래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과거에 대한 지식 없이는 온전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려면.

 “독서 체험을 일찍 하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생후 일주일 만에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큰애는 16살, 작은애는 13살까지 읽어줬다. TV를 안 볼 수는 없겠지만 어른들이 TV를 끄고 책 읽는 모습을 자꾸 보여줘야 한다.”

신준봉 기자

◆린다 수 박=1960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났다. 한국인 이민 2세대다. 4살 때부터 시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기업 홍보, 광고, 교사직 을 거쳐 1999년 『Seesaw Girl(그네 타는 소녀)』을 발표하며 아동문학 작가로 데뷔했다. 『A Single Shard(사금파리 한 조각)』가 2002년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주는 뉴베리상을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The Kite Fighters(연싸움)』 등 아동을 위한 소설책 9권, 그림책 6권을 썼다. 아일랜드 출신 남편 사이에 딸과 아들이 있다.

신준봉 기자

[과학 칼럼] 지구형 행성은 1000억 개

조현욱 과학평론가

지구의 나이는 45억여 년, 생명체가 나타난 것은 35억~40억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시기는 들끓는 용암과 화산의 불바다와 혜성과 운석의 융단 폭격이 그치고 환경이 비교적 안정된 뒤 불과 몇 억년 지나지 않은 때다. 지구에서 이토록 이른 시기에 자연법칙에 따라 무생물로부터 생명이 발생했다면 우주의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 은하(밤하늘의 은하수가 그것이다) 내에서 지구형 행성을 찾으려는 것이 미항공우주국(NASA)의 ‘케플러 계획’이다. 2009년 3월 발사된 케플러 우주선은 미리 선정한 15만여 개의 항성을 관측해 행성의 존재 여부와 크기 등을 파악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지난 2일 NASA의 케플러 우주망원경 분석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새로 관측된 행성 후보는 1200여 개에 이른다. 지구만 한 것이 68개, 지구 2배 크기까지의 ‘수퍼 지구’가 288개, 해왕성 크기가 662개, 이보다 큰 것이 184개다. 이들 ‘후보’ 대부분은 몇 개월 내지 몇 년간의 추가 관측 후에 ‘행성’으로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중 주된 항성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서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거주 가능(habitable)’ 영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후보는 54개다. 그중 5개는 지구와 비슷한 크기다.

 기존에 발견된 외행성 300여 개 중 ‘거주 가능’ 영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두 개뿐이었다. 지구로부터 약 20광년 떨어진 천칭자리의 적색 왜성 글리제581 주위를 도는 글리제 581g가 그중 하나다. 지난해 9월 천체물리학 저널에 지구의 1.2~1.4배 크기인 ‘수퍼 지구’로 발표됐다.

 물론 이런 조건을 충족한다 해도 실제로 생명이 존재할 수 있으려면 목성 같은 가스체가 아니라 암석형 행성이어야 하고, 물도 풍부해야 한다. 지구는 생성 초기에 혜성(먼지가 많은 얼음덩어리)들에 대량 폭격을 당하는 행운이 있었지만 이는 우주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은하 내 항성의 숫자는 2000억~4000억 개로 추산된다. 케플러 망원경의 관측 범위는 하늘의 약 400분의 1에 불과한 데다 이번에 분석된 것은 2009년 5~9월, 불과 4개월간의 관측 결과임을 기억하자. 카네기 과학재단의 앨런 보스(Alan Boss) 박사는 2009년 “우리 은하 내의 거주 가능 행성은 1000억 개에 이를지도 모른다”면서 “이 중 많은 곳에 박테리아 같은 단순한 형태의 생명체가 살고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그런 행성 중에는 문명을 건설할 정도로 생명체가 진화한 곳도 있을지 모른다.

조현욱 과학평론가

[송호근 칼럼] 떠나는 그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평소 알던 사람들이 세상을 뜨는 소식이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 나이에도 작가의 부음이 유난히 스산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우리를 대신해 삶의 신경통을 앓아온 시대의 증거인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는 상실감 때문이다. 작가 박완서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는 서민의 친구였다. 수수한 모습이 그랬고, 주름 잡힌 생애가 그랬고, 비수를 감춘 담담한 문장이 그랬다. 일면식도 없는 그녀였지만, 작가 박완서를 떠올리면 숨 가쁜 시대를 힘겹게 살아낸 군상들의 표정이 어른거린다. 어쨌든 살아냈다는 것 외에 내세울 것 없는 한국의 소시민들, 때로는 가식과 허위와 생존본능을 방패 삼아 삶의 공격을 막아냈던 중장년과 노년세대의 회한은 그녀의 감각을 통과하면서 색깔 있는 스토리로 변한다. 세월과의 대면에서 발생하는 하찮은 일상적 사연들이 그 자체로 문학적 서사임을 보여준 작가, 개인적 표정에서 사회를 재구성해 내는 작가 박완서, 그래서 그녀와의 작별은 애틋하다.

 요 몇 년 그런 작가들이 우리 곁을 떠났고, 몇 명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위대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혼망한 삶의 갈피를 잡아주는 작가들, 사회적 풍화작용에 닳는 실존의 허망한 소멸과 싸우는 괜찮은 작가들과 이 시대를 동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해방 후 65년, 전쟁과 독재, 개발과 재난을 통과한 상전벽해의 세월을 해방세대로 불리는 이런 작가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무난히 건널 수 있었겠는가? 아니 그런 간난의 세월이었기에 괜찮은 작가들을 이 세상에 내보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산맥과 들판은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작가들을 유난히 많이 잉태했다. 충청도 농촌마을, 엄동설한을 견딘 대추나무엔 고(故) 이문구의 걸쭉한 사투리가 걸려 있을 것이다. 동백꽃 흐드러진 남쪽 해안선엔 여전히 이청준의 문학혼이 떠돌 것이고, 지리산 악양벌엔 박경리의 역사적 언어가 때이른 봄나물처럼 푸릇푸릇 지천으로 돋았을 것이다. 박완서는 박경리의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그녀는 아마 신이 자신을 솎아낼 시간을 예감했을 것이다.

 ‘신이 자신을 솎아내는 것’을 허허롭게 수긍하는 이 운명론적 인식은 해방세대만의 특유한 세계관이다. 젊은 세대와 작가들에게 이 시대가 무한히 펼쳐진 가능성의 초원이라면, 해방세대에게 그것은 가족과 청춘의 기쁨을 한순간에 매몰시키는 활화산이었다. 그 활화산의 언저리에서 조바심 내며 살았던 세대, 또는 격동의 역사에 부딪혀 어눌하고 피동적으로 살아야 했던 세대의 체험을 언어로 체화한 작가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있다. 시대와의 불화는 어느 세대이건 작가의 고유 자산이겠지만, 삶의 공간을 짓밟고 치명적 상처를 입히는 불화는 드물다. 해방세대의 작가들은 누구나 그런 상처를 안고 살았다. 그들의 통증이 크고 깊을수록 한국 사회는 역사의 상처로부터 서서히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들에게 진 우리의 빚이다.

 생기발랄한 젊은 작가가 풍부한 감성으로 인간의 내면과 사회풍속도를 그린다 해도, 전화(戰禍)에 가족을 잃고 실존의 벼랑에서 한 자 한 자 원고지를 채워나간 정신의 치열함과 문장을 따를 수 있겠는가. 그런 작가들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만년에 누린 사회적 명성도 경제적 안정도 이들에겐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이들에게 유일한 정신의 은신처는 고향이었는데, 고향은 끊긴 청춘의 꿈을 다시 이어주는 출발점이었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떠올리는 고향길은 그래서 상처 입은 마지막 세대의 눈물겨운 상징이다. 이청준은 죽기 전 전남 장흥의 산야를 헤맸다. 서편제의 판소리 가락이 한스럽게 울리는 그곳에서 작가의 존재이유를 물었을 것이다. 서울과 원주를 떠돌았던 박경리는 아득한 청춘이 묻혀 있는 통영으로 돌아갔다. 편안한 가정생활이 가능했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박완서는 전쟁 때문에 포기했던 처녀시절의 꿈을 떠올렸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수줍게 말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규정했고 모든 인위적 기획은 새로운 위기를 낳았다고 썼다. 극단과 위기가 첨예하게 중첩된 한반도였기에 이 세대 작가들의 문학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들의 문학정신은 화해의 문, 생명의 집이다. 귀향하고 싶은 그곳, 고향은 아마 폭력 없는 세계의 상징일 것이다. 이승과의 작별과 저승과의 해후를 ‘고향’에서 접목시키고 싶은 그들의 바람은 우리에겐 압축성장이 끊어버린 세대경험의 단절, 시대정신의 불연속선을 다시 이어보라는 마지막 권고처럼 들린다. 출발점에 다시 서서 현실과 꿈을 화해시키는 것. 그것이 지도상에 존재하는 지리적 지명이 아니더라도, 후세대가 앞서 살다간 세대의 아픔을 공감하는 ‘정서의 고향’ 같은 것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떠나는 그들, 떠날 그들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중년세대의 필자가 설을 맞아 고향길에 나서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게 그 때문이다. 중년세대에게 그 공감대가 없다면, 젊은 세대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으랴 싶은 것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이윤기 보다 오래 사는 '이윤기의 문학 나무'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2권의 산문·소설집 출간
아버지가 들려 주는'인생 극장' 같은 이야기… 글의 감동은 언제나 '생생'

위대한 침묵
이윤기 산문집|민음사|180쪽|1만원

유리 그림자
이윤기 소설집|민음사|156쪽|1만원

소설가·번역가·신화 연구가로 불꽃처럼 살았던 이야기꾼 이윤기(1947~2010)가 영면해 있는 경기도 양평의 옛 집필실은 생전에 그가 심어 둔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메타세쿼이아 등 1000여 그루의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빈 땅에는 나무를 심어야지요'라는 글에서 이윤기는 그 많은 나무를 심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나는 늙겠지만 나무는 자랄 것이다. 나는 내 값을 못 할 만큼 늙어가겠지만 나무는 언제나 제값을 할 것이다.'('위대한 침묵' 20쪽)

김창종 기자

'위대한 침묵'에는 그가 쓰고 미처 책으로 묶지 못한 산문 37편이 실렸다. 작가의 생물학적 수명보다 오래 살아남은 '글 나무'들이 독자의 눈을 향해 뿌리를 뻗는다. 젊은 시절의 이윤기는 고교와 대학을 중퇴하고 월남전에 파병됐다가 돌아와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그 시절의 혹독했던 삶을 기록한 수록작 '불편한 진실'은 이윤기 특유의 유머 감각과 어떠한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는 유쾌하고 낙관적인 인생관을 새긴 나무다. "나는 대학을 중퇴했는데도 언제부턴가 나의 약력에는 '수학(修學)'은 '수료' 혹은 '졸업'으로 바뀌었다. 2006년 여름 나는 모교 총장으로부터 명예 졸업장이라는 것을 받았다." 중퇴가 졸업으로 둔갑한 책날개의 소개글은 부정확한 것이었지만 훗날 모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음으로써 그 오류를 몸으로 수정했다는 것이다. 미국에 머물 때 박사 학위가 없는 자신을 미국인들이 '박사'로 착각해서 불러 마음이 불편했던 그는 한국에서 동인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받고 2005년 '명예 문학박사' 학위까지 받음으로써 자신을 박사로 부르던 이들을 결과적으로 족집게 예언자로 만들어 줬다. '중퇴, 초빙, 객원, 명예… 보라, 한 번도 꽃으로 피어보지 못한 채 나는 잎으로만 살았다. 그래도 잘살고 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힘을 내시라.'(100쪽)

 
소설집 '노래의 날개' 이후 7년 만에 유고집 형태로 출간된 '유리 그림자'에는 수묵화처럼 담백한 일상의 표정 안에 삶의 절묘한 지혜를 새겨넣은 단편 4편이 수록됐다. 수록작 '소리와 하리'에는 집에서 키우던 진돗개가 다른 개를 물어 죽인 것에 격분해 개를 처분하려는 아들이 등장한다. 이윤기의 소설적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는 "철창에서 개를 풀어준 것은 너(아들)"임을 알고 있지만, 그런 아들의 책임을 지적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꿰뚫어본다. "아들의 논리를 그럴 듯한 논거로 논파하지도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49쪽). 문학평론가 백지연은 유고 소설집의 특징을 '아빠 친구나 스승뻘 되는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인생극장'이라고 분석했다.

[아침논단] 달동네에 들어서는 高層아파트

전상인 서울대 교수·사회학

전상인 서울대 교수·
              사회학

초고층 아파트 거주가 한국 사회 성공의 징표
높은 곳서 내려다보면 地上의 고통과 절망 못느껴
눈에서 멀면 마음도 멀어져… 공동체·이웃 잊지 말아야

얼마 전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 일가가 월남하여 서울에서 처음 말뚝을 박은 곳은 인왕산 기슭의 현저동 달동네였다. 아닌 게 아니라 1980년에 나온 작가의 작품 〈엄마의 말뚝〉은 '달동네'라는 말을 널리 유포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산동네에 비해 달동네의 어감이 훨씬 정겹고 따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 주변의 고지대 영세민 마을을 뜻한다는 점에서 실상은 그게 그거다.

1970년대 초 미국 인류학자 빈센트 브란트는 한국의 달동네에서 '빈곤(貧困)의 등고선'을 발견했다. 당시 서울지역 극빈자들의 집단 거주지를 연결해보니 대부분 높은 산등성이더라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산 아래 낮은 곳은 부자들의 차지였다. 하지만 오늘날 서울은 빈부의 등고선이 완전히 역전되어 있다. 요새는 가난할수록 낮은 곳에, 부유할수록 높은 곳에 산다.

서민들의 대표적인 삶의 터전인 달동네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알려진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도 조만간 재개발에 밀려난다.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서는 것은 고층 아파트로 원주민들이 그곳에 입주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옛날 관악구 봉천동이나 신림동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마도 지하 혹은 반(半)지하 전·월세 집에 들어갈 것이다. 주거 난민(難民)이 되어 저지대 쪽방이나 비닐하우스, 만화방, PC방, 고시원, 찜질방, 다방, 여관, 여인숙 등을 전전할지도 모른다. 하긴 대다수 노숙인들에게는 지하도가 집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자들의 집은 나날이 '고고익선(高高益善)'이다. 우선 이는 우리나라 도시들의 전반적인 고층화 탓이다. 최근 서울의 아파트는 평균 18층 이상이 되었는데, 1980년대에 비해 두 배쯤 높아졌다. 게다가 최상류층일수록 초고층을 찾는 것이 작금의 주거문화다. 지난 2002년 강남구 도곡동에 66층짜리 초고층 고급 아파트가 등장하더니 이젠 100층 가까이 높은 빌딩에도 아파트가 속속 들어선다. 언제부턴가 로열층이 맨 꼭대기로 올라갔고, 이른바 '펜트하우스'의 인기 또한 식을 줄 모른다.

거주 공간이 계층별로 구분되는 것 자체는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유난스레 경험하고 있는 것은 거주지역의 수직적 양극화다. 하긴 좁은 면적에 인구는 많은 우리나라 형편에 서양의 도시처럼 거주지의 수평적 분화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집의 빈부 고도(高度) 격차를 이처럼 크게 벌린 유일한 이유는 아닐 성싶다. 여기에는 몇 가지 다른 요인들이 숨어 있는 듯하다.

먼저 그것은 부자들의 과시적 주택 소비와 무관하지 않다. 압축적 고도 성장 과정에서 전통적 상류사회를 잃어버린 한국 사회는 초고층 아파트 거주를 성공의 징표로 삼는 측면이 있다. 내면의 문화자본 미숙(未熟)에 대한 일종의 보상 심리 같아 보인다.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말처럼 '시선(視線)은 권력' 아니겠는가. 조망과 전망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주변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뜻하기도 한다. 높은 지위나 공간을 차지한 사람들이 디자인 개념을 강조하면서 도시의 가독적(可讀的) 질서와 미학적 경관을 중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고층족(高層族)'으로 살게 되면 지상(地上)의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효과도 있다. 수많은 동시대인들이 경제적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그곳에는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행기에서 멀리 내려다보는 세상이 항상 평화롭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착시(錯視)현상과 같은 이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물론 주거의 프라이버시 자체는 높은 데 사는 부자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들의 남모를 선행이나 자선, 기부, 봉사 덕분에 그나마 세상이 살 만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나 사회 통합의 진정한 의미는 여전히 요원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지금처럼 주거 공간의 수직적 양극화 추세가 심화된다면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기가 점점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도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오히려 쉬운 세태가 되어 간다. 하지만 그게 서민들의 달동네가 없어져야 할 명분은 아니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