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여행자의 옛집
최범석 2011년
마음산책 2010년 11월 20일

선정평
"최범석은 20대 때 이미 70여 곳의 나라를 여행한 광적인 여행가였다. 자유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된 곳은 그가 자란 고향 집이다. ‘학소도’라 이름붙인 그 집이야 말로 그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위한 성찰의 장소라는 것을 발견한다. 파랑새가 먼 곳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되찾은 인왕산 자락 고향집에서 정성스레 집을 가꾸며 또한 자신을 삶을 가꾼다. 아름다운 책이다."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12] 식물의 행성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걸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이 지구를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지구는 엄연히 식물의 행성이다. 우리는 종종 밭을 갈아엎고 나무를 베어내며 우리가 이 지구를 호령하며 사는 줄로 착각하지만 식물은 우리를 가소롭다 한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의 무게를 다 합한다 해도 식물의 무게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지구는 단연 식물이 꽉 잡고 있는 행성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과나무를 심고 길러 사과를 따 먹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사과나무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사과나무가 우리로 하여금 탐스러운 사과를 먹고 싶게 만들어 사과나무를 심고 기르게 하는 것이다. 과일이란 식물이 자기의 씨앗을 먼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채택한 전략이다. 부모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씨앗이 그야말로 발밑에 떨어지면 스스로 드리운 그늘에 자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씨앗을 맛있는 과일 속에 넣어 동물로 하여금 그걸 먹고 먼 곳에 가서 배설하게 하면 그곳에서 배설물을 양분 삼아 자랄 수 있다. 물론 과일을 만드는 데 드는 투자가 아까워 씨앗을 그냥 바람에 날려보내는 민들레 같은 식물도 있다.

동물처럼 직접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니며 짝짓기를 하지 못하는 식물이 안쓰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식물은 자기는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벌과 나비로 하여금 꽃가루를 이 꽃 저 꽃 배달하도록 만든다. 기껏해야 단물 조금 주면서. 우리 인간은 꽃을 아름답다 하지만, 꽃은 사실 식물이 꽃가루를 날라줄 동물들을 유혹하기 위해 세상천지에 펼쳐보이는 그들의 성기이다. 벌과 나비는 식물이 고용한 '날아다니는 음경(陰莖)'이고.

몇 평 되지도 않는 정원이지만 잡초와의 전쟁이 장난이 아니다. 일주일만 돌보지 않으면 잔디밭이 온통 잡초투성이다. 잡초들은 어디서 그렇게 끊임없이 날아드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벌써 몇 시간째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잔디 사이로 숨어 있는 잡초를 뽑고 있다. 잔디는 우리 인간 대표와 도대체 무슨 계약을 맺었기에 주말마다 나를 이처럼 철저하게 부려 먹는 것일까? 잡초를 뽑고 있는 내 머리 위로 벌들도 분주하게 매실나무의 꽃 사이를 날고 있다. "너희나 나나 이 무슨 자진한 노예살이란 말이냐?"

[만물상] 빌 게이츠式 상속

 록펠러·카네기에 이어 미국 역사상 세 번째 부자였던 철도왕 밴더빌트가 1877년 죽었을 때 그가 남긴 재산은 1억달러였다. 당시 미국 국립은행들의 총 예금액 8억3400만달러의 10%를 넘는 액수였다. 밴더빌트가 죽은 지 100년쯤 된 1973년 그가 세운 밴더빌트대에 후손 120명이 모였다. 그중에 재산이 100만달러가 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집안의 자랑이었던 뉴욕 그랜드센트럴역도 은행에 넘어간 지 오래였다. ▶카네기는 죽으면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명예로운 이름을 남겼다. 록펠러는 자식들에게 부(富)를 관리하는 법을 철저히 가르쳤다. 그러나 밴더빌트의 손자는 "돈이 많으니 애써 찾거나 구해야 할 것이 없었다. 물려받은 재산은 행복 추구를 막는 방해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홍콩 영화배우 성룡은 3년 전 3400억원 전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선언하면서 말했다. "아들이 유능하면 유산이 필요 없을 테고, 거꾸로 무능하면 탕진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부자들은 자식에게 돈이 아니라 돈을 벌고 지키는 법을 물려준다. 석유왕 폴 게티는 아버지 회사에서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하루 12시간 일하고 3달러 받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은 아들이 농장을 하겠다고 하자 수익을 절반씩 나눈다는 계약을 하고서야 땅 살 돈을 대줬다.

▶세계 두 번째 부자 빌 게이츠가 그제 영국 신문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 재산의 극히 일부만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열다섯 살, 열두 살, 아홉 살 된 삼남매를 뒀다. 그는 전에도 "한 아이에 1000만달러씩만 상속하겠다"고 했었다. 서민들 눈에 1000만달러는 어마어마한 유산이다. 그러나 게이츠의 재산이 560억달러(60조6000억원)이니 그중에 0.018%씩만 주겠다는 얘기다. 대신 그는 "아이들이 엄청나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하겠다"고 했다.

▶게이츠는 3년 전 "아이들 용돈을 일주일에 1달러씩만 준다"고 밝혔다. 그리곤 아이들이 집안일을 할 때마다 용돈을 조금씩 더 준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 친구가 모두 휴대전화를 가졌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휴대전화를 사주지 않았다. "물건을 쉽게 손에 넣다 보면 세상을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고 했다. 이런 집안이라면 100년 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보람을 찾아서

2011.05.31

 


2008
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71)는 한국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문학을 칭찬하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관한 서울국제문학포럼(5 24~26)에 참석하기 위해 2년 만에 방한했는데, 한강 김애란 등 젊은 작가들을 거론하며 “한국문학은 젊다”고 말했습니다. 20072008년 이화여대 통ㆍ번역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는 지금도 이화여대 석좌교수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은 한국문학과 한국어를 배우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번에 와서 한 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어 어휘의 풍성함을 드러내는 사례로 ‘보람’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입니다. 프랑스어나 영어에는 이런 단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문 인터뷰에 이어 마지막 날 고별만찬 인사에서도 그는 같은 말을 했습니다. 5년 만에 다시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보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람이란 자부심이며 미래에 대한 감정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각 문화는 동등하게 만나야 한다는 것, 문학이란 집을 짓는 행위와 같다는 것, 그것은 형극의 길이라 할 수 있지만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 그는 이런 말을 하고 갔습니다.

내가 아는 보람이라는 말의 용례는 겨우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나오는 것입니다. (전략)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후략).’ 문학작품에서는 그렇다 치고, 일상의 대화에서는 주로 비아냥거리는 데 이 말을 씁니다. 하늘은 잔뜩 흐린데 비가 오지 않으면 “우산 갖고 온 보람이 없어 어쩌나?”하고, 점심시간에 우산 들고 나온 사람을 놀립니다. 골프를 칠 때 누가 벙커에 공을 빠뜨릴 경우 겉으로는 걱정해 주는 척하며 속으로 고소해하다가 그 사람이 멋진 샷으로 그린에 공을 올리면 “이런 씨, 벙커에 빠진 보람도 없이.”라고 투덜거리곤 합니다.

그렇게 심술이 많은 터에 르 클레지오의 말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새로운 말을 발견한 것처럼 보람이라는 말이 갑자기 중요해 보이고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전에서 일부러 찾아보니 ‘보람’에는 내가 아는 것 말고 다른 뜻이 더 있었습니다. )약간 드러나 보이는 표적 ②다른 물건과 구별하거나 잊지 않기 위해 표를 해 둠. 또는 그런 표적. :비행기에 탈 때에는 가방마다 눈에 띄는 보람을 해 두어야 한다. ③어떤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나 만족감. 또는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일의 가치.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③의 풀이 한 가지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뜻도 있었나 하고 놀라면서 내 삶의 보람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잇달아 했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무수한 방법과 길이 있지만, 생애의 중반을 이미 넘긴 게 틀림없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보람을 느끼고 거둘 수 있는 일이란 어떤 형식이든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글을 쓸 거라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나와 남의 삶을 잘 알아야 하고 말을 정확하게 많이 알아야 하고 모국어를 깊이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 달 전에 <박완서 문학의 뿌리를 말하다>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타계 14개월 전인 2009 11 12일 서울대가 개최한 관악초청강연의 강연과 문답을 수록한 책입니다. 이 강연에서 박완서(1931~2011) 씨는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사전을 찾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글에 쓰려고 하는 말이 사전에 있는 말인지, 자신이 생각하는 뜻과 같은지 늘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모국어야 너는 얼마나 작으냐? 작지만 얼마나 예쁘고 오묘한지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작아지는 건 차마 못 보겠다.…나는 모국어 안에서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라는 박씨의 글도 소개돼 있습니다. 모국어가 작다는 말은 원래 김수영(1921~1968)의 시에 나오지만, 박씨의 산문으로 들으니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그 작은 모국어 중에서도 더 작은 모국어로 강릉 사투리를 들 수 있습니다. 강릉사투리보존회(회장 조남환)가 최근 개최한 세미나에서 이곳이 고향인 이익섭 서울대 명예교수는 “강릉 말은 길이(음장)나 높낮이(성조)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게 많고 활자로 인쇄할 때 찍을 수도 없는 아주 귀한 언어요소로 가득하다”고 말했습니다. 훈민정음에 나오는 고어의 흔적이 강릉 말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억양이 강하고 퉁명스럽지만 정겹고 보석처럼 귀한 강릉 사투리는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국어를 지키고 모국어 중의 모국어를 살리고 기르는 데 본능적인 애정을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귀한 모국어로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과 우리의 귀한 모국어를 새로 발견하게 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그들의 노력을 값지게 받아들이고 함께 말을 가꾸도록 하는 것이 국민이나 독자로서의 소중한 보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강릉 사투리로 번안한 시가 있습니다. 좀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사투리의 맛과 멋을 알아보기 위해 그대로 여기에 옮깁니다. 재미있는 작품이 새로 하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목단이 벙글기까정은/내는 상구 내 봄으 지달리구 있을 기래요/목단이 뚝뚝 뜰어져베린 날/내는 그적새서야 봄으 야운 스룸에 택자바리 괼 기래요/오월 워느날 그 할루 되지게 덥든 날/뜰어져 든논 꽃잎파구마주 휘줄구레해버리구는/오랍덜에 목단은 꽁 고 먹은 자리매루 웂어지구/뻗체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와르르했느니/목단이 지구 말문 그뿐 내 한 해는 마커 내빼구 말아/삼백 예순날 줄고지 우전해 찔찔 짜잖소/목단이 벙글기까정은/내는 상구 지달리구 있을 기래요, 매른웂는 슬픔으 봄으.

 

필자소개

 

임철순

1974년부터 한국일보 근무. 현재 주필. 시와 술과 유머를 사랑하고,
불의와 용렬을 미워하려 애쓰고 있음. 호는 淡硯(담연).

킹스 스피치 열풍, 우리시대 스피치 킹은?

2011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킹스 스피치’는 말더듬이 왕 조지6세와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의 감동 실화다. 우리 시대의 최고의 스피치 왕은 누가 있을까? 유형별로 정리했다. 아트 스피치 김미경 대표에게 이들이 이토록 말을 잘하게 된 비결과 특별한 스피치 노하우도 알아봤다.


1 김제동
유머형 스피치

김제동은 수많은 청중 앞에서 자유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토크 콘서트를 성황리에 열 정도로 말 잘하는 연예인이다. 그는 콘텐츠 지향적인 스피치를 하는 사람이다. 평소 책을 많이 읽기로 소문난 그답게, 어떤 장소에서 어떤 주제를 가져다놓아도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소유하고 있다. 즉 집을 짓기 위한 좋은 재료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유재석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는 경청의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앞에 있어도 그는 상대의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 그 사람이 말주변이 있든 없든, 개인적인 친분이 있든 없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각종 리액션을 섞어가며 말하는 사람이 자신감이 생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반응해준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다. 리액션 스피치를 잘하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반면 강호동은 원초적인 리액션이다. 그는 큰 목소리와 과장된 몸짓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듯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늘 낮은 자리에서 상대방을 대한다. 듣는 사람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그가 가진 최고의 강점이다. 강해 보이는 사람의 의외의 모습에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더 많이 열게 된다.


2 박칼린
리더십형 스피치


작년 KBS2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단을 이끌던 지휘자, 칼린쌤 박칼린의 말은 열정이다. 그녀가 다양한 연령과 직종의 합창단원을 진두지휘하며 환상의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카리스마를 느꼈다. 그녀에게는 모두가 자신의 말을 따르게 할 수 있는 흡입력이 있었다. 그러한 카리스마와 집중력 넘치는 스피치 스타일은 단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리더십형 스피치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듯 강하고 부드럽게, 리듬을 타면서 말을 한다. 어떤 때는 엄한 선생님으로, 어떤 때는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엄마로 변신하면서 능수능란하게 사람들을 움직인다. 다소 강하게 말을 하더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조차 그녀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가 카리스마 있는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말을 할 때 애정과 땀을 함께 보낸다.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손이나 눈빛, 표정 등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순간이 더 많다는 말이다. 박칼린은 ‘가자!’·‘눈빛!’·‘집중!’ 등과 같이 짧아도 강한 여운을 남기는 말을 주로 쓴다. 이 말을 듣는 사람에게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그녀가 단순히 말을 잘하기 때문에 아니라,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탄탄한 실력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칼린식 스피치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다.


3 안철수
학자형 스피치

요즘 각광받는 스피치의 달인은 알고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개발도상국 스피치와 지식사회의 스피치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짚어볼 수 있다. 지식사회의 좋은 스피치는 아는 것을 전달해서 청중이 그것을 100%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학자형, 전문가형 스피치는 말을 짧게 할수록 고수다. 장황하지 않게, 짧게 말할수록 좋은 스피치다. 지식사회에서 말 잘하는 사람의 조건은 달변이 아니라는 말이다.

학자형 스피치의 대표주자 안철수 교수는 전문 강사처럼 말을 잘하지는 못한다. 사투리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단어 선택이나 말의 구성을 매끄럽게 하지도 못한다. 마음이 느긋하고 여유로워서 말도 조곤조곤 하는 편이다. 질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답을 하기보다는 한참 생각한 후 짧게 대답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하지 못한 독특한 경험과 그 속에서 얻은 삶의 지혜가 말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이 가진 새로운 지식을 듣고 싶어 하기에 그의 말은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4 김태원
독설형 스피치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훌륭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김태원은 각종 예능을 오가며 4차원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가 의외의 달변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그에겐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잘못을 부드럽게 지적해서 넘기는 기술이 있다. 그 기술이라는 것은 그냥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멘토 역할을 하면서 멘티들의 고쳐야 할 부분을 지적할 때도 반감을 사는 것이 아니라 뒤 돌아서 스스로 반성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말과 사람이 하나라고 본다면 그는 최고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경험에서 오는 통찰이 잘 어우러져야 좋은 독설이 나온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는 최고의 독설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방시혁은 다소 본인의 생각을 강하게 말하는 편이다. 상대방을 긴장하게 만드는 기술이 그에겐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소신은 그가 작곡가로서 최고의 전문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좋은 독설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역량이나 풍부한 경험이 철저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킹스 스피치’ 조지6세의 스피치 점수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문제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편치 않은 마음을 갖게 된다. 그의 스피치 점수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그가 인생을 걸고 스피치에 목숨을 걸었던 것은 그가 왕이어서가 아니다. 그가 평민이었을지라도 문제는 같다. 말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만 말을 잘하는 스킬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조지6세가 끝내 연설을 잘하게 된 것은 스피치 기술이 늘어서가 아니라 대중과 마음을 소통하는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 잘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
김미경 대표의 스피치 킹 되는 법칙

비단 영화 ‘킹스 스피치’ 열풍이 없었더라도 우리가 말이 중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말을 잘할수록,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수록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나는 원래 말주변이 없다고 말하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노력만 하면 누구나 말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김미경 원장 프로필 16년간 각종 교육 현장, TV, 라디오 등을 오가며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라이프 코치이자 전문 강사, 기업교육 컨설턴트. MBC 희망특강 ‘파랑새’에서 어떤 주제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통찰력과 특유의 통쾌한 입담으로 국민강사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최고의 스피치 아카데미로 인정받고 있는 ‘아트 스피치’를 운영하며 CEO, 정치인, 연예인 등을 개인코칭하고 있다. 저서로는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에서 배우는 여성 마케팅’,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등이 있다.

1 말 잘하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

영화 ‘킹스 스피치’ 개봉 이전, 미국 대통령으로 오바마가 당선된 이후 서점가에서 한동안 스피치와 관련된 책이 봇물을 이뤘었다. 그의 스피치가 얼마나 진실했고, 당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목조목 분석한 책들이다. 그의 연설은 스피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바마는 스피치 기술도 좋았지만, 그에겐 스피치 멘토가 여러 명 있었다.

오바마는 어린 시절 하와이의 푸나호우 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두 살 때 헤어져 얼굴조차 몰랐던 아버지였다. 처음 만난 아버지는 상상 속의 아프리카 추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키가 크고 마른데다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렸다. 오바마는 반가움보다 낯섦과 서먹서먹함부터 느꼈다. 아이들 앞에 선 아버지는 힘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어른으로 인정받는 루오 족의 관습, 자유를 위해 끝까지 영국과 싸웠던 케냐의 역사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강연 후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한때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는 스피치의 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의 스피치 멘토였다.

오바마의 사례에서 보듯, 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가까운 곳에 멘토를 두어야 한다. 부모가 존경하고 따를 만한 스피치 멘토가 된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스피치 파트너라도 되어줘야 한다. 대한민국 스피치 대표인 김미경 원장에게도 스피치 파트너가 둘 있었다. 바로 부모님이다.


2 콘텐츠에 맞는 눈빛과 표정을 지어라

스피치를 할 때 몸짓 언어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표정이다. 표정 없이 말하면 콘텐츠 전달이 제대로 안 된다. ‘말만 잘하면 그만이지’, ‘내 표정에 아무도 신경 안 쓸 거야’라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말보다 표정에 더 신경을 쓴다. 기쁜 이야기를 할 때라도 정말 기쁜지 슬픈지를 표정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내용에 맞게 표정이 따라주지 않으면 말이 청중의 귀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아무리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청중과 소통을 잘 하려면 자신의 표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콘텐츠에 맞는 눈빛과 표정을 수시로 보내며 이야기하는 스킬이 필요하다.


3 친구와 밤새 수다 떨듯 자연스럽게 말하라


재료 선택까지 잘했으면 다음에는 집을 잘 지어야 한다.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철저하게 구상했다면 다음엔 그것을 어떻게 잘 전달할 지 고민해야 한다. 표준어를 쓰고, 좋은 발음을 구사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요건은 아니다. 전하고자 하는 말을 상대방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벽에 부딪히고,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서 대신한다. 말로 전달해야 할 것을 원고에 얼굴을 파묻고 중얼중얼 읽는 모습은 초등학교 국어 시간을 연상케 한다. 그런 스피치에 소통, 설득, 공감이 있을 리 없다.

스피치할 때 중요한 요소는 말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능력이다. 공식적인 회의에서도 주눅 들지 말고 친구랑 밤새 수다 떨듯이 할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4 스스럼없이 토론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라

한국인 치고 스피치에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릴 때부터 말하는 법을 못 배워서다. 당연하다. 우리의 환경은 말하거나 토론하는 문화가 아니다. 예전에는 집 안에서 아이들이 말을 하면 말대답으로 간주됐다. 부모가 야단칠 때는 말없이 듣고 있어야만 했다. 밥상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엉뚱한 질문을 하면 어김없이 혼이 났다. 선생님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건 건방진 행동이었다. 토론이라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말을 못하면 바보 취급을 당한다. 이른바 ‘말 값이 몸값’이다. 해외 바이어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예산을 따기 위해 상사를 설득할 때도, 팀별 토론을 할 때도 스피치가 관건이 돼버렸다. 이제는 어디서든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5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둬라


좋은 말하기를 할 때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올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필수다. 전문 스피치에는 삶의 경험, 지식, 지혜가 담겨 있다. 전문 스피치는 타인의 삶을 업그레이드해주거나 최소한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삶의 경험과 지식, 지혜가 담긴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할 말이 없으면 말하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대중 앞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불문율이다.


6 말하는 사람이 직접 구상하라


설계도는 말하는 사람이 직접 구상해야 한다. 남이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같이 떠난 사람들까지 헤매게 한다. 스스로 설득되지 않는 말로는 결코 남을 설득할 수 없는 법이다. 연설을 잘한다고 알려진 故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 스피치 원고를 직접 쓰고 다듬었다고 한다. 야당의원 시절은 물론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비서가 쓴 원고를 그대로 읽는 법이 없었다. 거울을 보며 연습하다가 매끄럽지 않거나 설득력이 약한 부분은 직접 고쳤다. 그 정도로 스피치 원고에 많은 공을 들였다. 리더는 아무리 바빠도 직접 스피치 원고를 써야 한다. 글쓰기에서 빵점을 받은 사람이라도 사회적인 책임을 지게 되면 다시 공부해야 한다. 내가 직접 쓴 원고와 남이 써준 원고는 파급 효과와 진실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7 진실한 콘텐츠로 구성하라


말을 하는 것은 집을 짓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설계도를 가장 먼저 그리듯이 어떤 자리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큰 틀을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할 말은 많은데 연단에만 서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입이 얼어붙는 식의 경험을 하는 이유는 스피치 설계도를 전혀 그리지 않아서다.

스피치는 집을 짓는 것과 똑같다. 설계하지 않으면 할 말을 못하고 청중도 들을 말을 못 듣는다. 결국 서로가 피해를 보는 스피치가 된다.

말의 본질은 번지르르함에 있지 않다. 자신의 마음을 전해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소통의 기본이다. 그러려면 진실한 콘텐츠의 힘이 필요하다.

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말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진지하게 다가가는 순간 이미 말을 잘할 준비를 갖춘 셈이다.


/ 여성조선
취재 임언영 기자ㅣ사진 조선일보 DB

장국현 사진작가

"해발 900m 울진 산속에서 ‘대왕 금강송’을 만났다

수백년 바람과 폭설 견딘 소나무가 나를 사로잡았다

지구온난화 탓에 우리 소나무 사라진다는데

소광리 금강송 원시림을 세계자연유산에 올리는 게

내 마지막 과업이다"

나는 15년 전부터 소나무만 찾아다니면서 인적 없는 산속을 헤매고 있다. 연중 절반은 산속에서 보낸다. 그것도 모자라 세계 최대 소나무 군락지로 꼽히는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로 5년 전 아예 이사를 해버렸다.

지난해 늦여름, 여느 때처럼 이른 새벽 산속 원두막에서 일어나 소나무를 찾아 나섰다. 길도 없는 해발 900m 원시림 속을 건장한 청년 두 명의 도움을 받아 헤쳐나가길 6시간쯤, 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둘레가 5m나 되는 엄청난 소나무였다. 수백년 동안 동해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과 서쪽 태백산에서 내리는 폭설을 견디느라 키는 9m밖에 자라지 못했지만 범상치 않은 기운이 넘쳐났다. 바람에 가지가 서로 부딪치면서 상처가 나고, 그 자리에는 송진이 흘러내렸다. 송진에 어린 가지들이 달라붙은 채 성장해 거대한 분재를 보는 듯했다. 바람과 눈, 그리고 시간이 만든 걸작품이었다.

우리나라 소나무를 대표하는 '국송(國松)'의 격(格)을 갖춘 소나무와 드디어 만난 것이다. 넋이 빠져 사진 찍는 것조차도 잊어버렸다. 한참만에야 정신을 가다듬고 육중한 대형 카메라(필름 크기 9㎝×10㎝)를 꺼내 촬영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 소나무에 '대왕 금강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는 1970년 사진에 입문했다. 초기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는 휴먼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간첩으로 오인돼 경찰서에 붙들려가기도 여러 번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산 사진에 빠졌다. 백두산·한라산·지리산·설악산 등 전국의 산이란 산을 다 헤집고 돌아다녔다. 1주일이고 2주일이고 산속에서 야영을 하며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1초의 승부'로 판가름나는 결정적 순간을 만나는 것은 심마니가 산삼을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1년 동안 산속을 헤매고도 작품 한 점을 얻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내 사진 인생에 운명처럼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왔다. 산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소나무가 고사(枯死)한 현장을 자주 목격하게 됐다. 지구 온난화로 100년 이내에 한반도에서 소나무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전 세계 어딜 가도 한국 소나무보다 격이 있고 아름다운 소나무는 없다고 나는 자부해왔다. 새로운 소명이 생겼다. 나는 영정 사진을 찍는 마음으로 한국의 걸작 소나무를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뜻을 세웠다.

작품 사진에 담을 소나무를 찾아내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 그런 소나무들은 항상 깊은 산중에 호랑이처럼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엔 길이 없다. 가까이 가려면 길을 내줄 산꾼 3~4명과 함께 입산해야 한다. 하지만 소나무를 만나는 것과 사진을 찍는 것은 또 별개다. '사진이 되는' 단 한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9년 전 나는 오대산에서 '왕송(王松)'이라 부르는 걸작 소나무를 만났다. 지금까지 본 소나무 중 수피(樹皮)가 가장 붉었다. 이 왕송은 눈 덮인 고고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왕송 사진을 찍기 위해 오대산에 올랐다. 하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설 직후 영동 지방에 폭설이 내렸다. 내게 사진을 배우는 제자 2명, 전문 산악인과 함께 오대산에 올랐다. 눈이 허리까지 찼다. 전문 산악인도 200m를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2.2㎞를 걸어서 올랐다.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9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눈 덮인 왕송 사진을 찍었다. 9년을 기다린 내게 왕송이 드디어 마음을 연 것이다.

소나무 중의 소나무는 금강송이다. 금강송 중에서도 소광리 금강송이 첫손에 꼽힌다. 이렇게 아름다운 색조와 격조를 가진 금강송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소광리는 1600㏊ 면적에 200~300년 수령(樹齡)의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울진군은 이 지역 금강송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소나무에 미쳐 소광리로 거처까지 옮긴 나의 인생 후반부는 소나무로부터 받은 은혜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나무 때문에 숱한 상도 받았다. 내 나이 이제 곧 일흔. 내가 우리나라 소나무에 보답할 차례이다.

나는 '울진 금강송 사진전'을 이달 25일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와 울진에서 연다. 내년에는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파리에서 해외전도 가질 예정이다. 40년 사진 인생의 대미(大尾)로 울진 금강송 군락지를 세계자연유산에 등록시켜 후대까지 보존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소나무가 던져준 나의 마지막 업(業)이라고 생각한다.

 

제  목 : "미국 경제, 독일에서 배워라"…한국도 알아야할 교훈

 

- 실업급여 개혁.."일하면 인센티브, 놀면 제재"

- 효율적인 정부, 엄격한 규제로 시장에 적극 개입

- 복지혜택 원하는 만큼, 증세 추진도 마다안해

 

[뉴욕= 이데일리 문주용 특파원]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미국을 방문, 지난 7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 시각) 이와 관련, 미국 경제가 독일 경제로부터 배워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며 독일 경제의 숨은 교훈을 소개했다.

독일 경제가 수십년 성장하는 동안 ▲부동산 거품이 없었고 ▲탄탄한 중산층으로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지 않았으며 ▲정부의 효율이 높고 ▲엄격한 규제로 시장경제를 지키고 있을 뿐 아니라 ▲복지를 위해 증세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미국 경제 뿐 아니라 한국 경제도 배워야할 대목이 적지않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NYT는 먼저 독일 경제가 강해진 부분을 몇가지 꼽았다. 우선 독일인들이 미국인보다 훨씬 부유해진 점을 지적했다.

지난 1985년이후 독일인의 인플레를 감안한 평균 시간당 임금은 30% 가꺄이 오른 반면, 미국 노동자들의 소득은 6% 오르는데 그쳤다.

또 독일경제는 미국,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등이 겪은 주택경기 거품을 피할 수 있었다. 또 독일의 어린이들이 수학 과학기술에서 미국 아이들보다 더 뛰어나고, 정부의 중기 예산적자도 훨씬 적다고 지적했다. 특히 실업률은 6.1%로 금융위기 이전이보다 떨어졌다. 반면 미국은 최근 9.1%로 다시 올라갔다.

NYT는 독일경제보다 미국 경제가 강하지만, 좋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 할 수도 없다면서, 독일로부터의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독일 정부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점을 꼽았다.

독일도 서구권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안해도 상관없을 만큼 실업급여 지급 기간이 길었다. 10년전 이를 개혁하면서, 독일은 실업급여의 기간과 수준 등 급여혜택은 물로, 조기 은퇴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 줄였다.

또 장기간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분류,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은 기업을 연결시켰다. 이들이 급여가 낮은 직장을 갖게 되면 정부가 일정기간 급여를 보조했다. 반대로 이들이 근로를 거부할 경우 실업급여도 깎았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펠릭스 후프너는 "일을 하게 하는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제재도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실업자들은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고, 일을 더하자는 분위기도 잡혔다. 기술을 더 많이 배우고, 그 덕에 돈을 더 벌게 됐다는 것.

NYT는 "독일 정부가 효율적이라는 사실보다, 정부가 시장경제내에서 하는 독특한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독일 정부의 역할이 엄격한 규제와 함께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어설픈 규제로 주택경기 버블이 있었지만, 독일 규제당국은 주택 매입자가 자체 자금을 40% 내어야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법과 규제로서 기업내 노조를 없애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의 영향력 덕분에 독일 중산층의 생활이 나아졌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70년이후 독일내 최고소득계층 1%가 전체 소득의 11%를 차지했는데. 현재도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은 1970년에 전체소득의 9%를 차지했던 1% 최고소득자가 지금은 전체 소득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독일은 소득 불평등이 삼회되지 않았던 것.

NYT는 세금에 대처하는 독일의 자세를 높게 평가했다. 독일 정부가 적은 예산적자를 보이는 유이가 지출이 적기 때문이 아니라며, 과거 독일이 복지국가의 원조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신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복지혜택 만큼, 이에 필요한 세금을 기꺼이 내려 한다는 것.

OECD의 후프너는 "독일은 예산적자 감축을 60%는 지출 축소을 통해, 나머지 40%는 세금 증세를 통해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NYT는 "이처럼 독일이 미국보다 자신의 약점을 다루는데 있어 더 진지하다"면서 "미국은 지금도 로비스트들과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이 규제를 희석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민주당은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제도)를 절대 바꿀수 없다고 고집하는 반면, 공화당은 1990년대 수준으로 세금을 올리는데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牛骨塔시대 다시 왔나

2011.06.09

 

나는 196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 때의 대학은 상아탑(象牙塔)이 아니라 우골탑(牛骨塔)으로 불렸습니다. 시골에서 아들의 대학등록금을 대려면 황소 한 마리를 팔아야 할 때였습니다. 황소는 부동산 같은 동산이었습니다.

황소가 없는 집은 논밭을 팔아서 댔습니다. 이도저도 없는 아버지들은 품을 팔고, 어머니들은 삯바느질을 한 돈을 모아 자녀들의 대학등록금을 댔습니다. 대학생 자녀들은 부모의 고생을 덜어드리기 위해 가정교사를 하며 숙식을 해결했고, 학비를 벌었습니다.

그렇게 60년대가 가고, 1970년대 들어 본격적인 개발 연대가 시작됐습니다. 경제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소득이 늘고 다양한 직업들이 생겨났습니다. 가정교사는 과외학원들의 등쌀에 설 땅이 없어졌지만 방학동안 공사판에서 날품을 팔아도, 유흥업소에서 음식을 날라도 등록금은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극빈층을 제외한다면 돈이 없어서 자녀를 대학에 못 보내는 가정은 없을 것처럼 세월은 그렇게 흘렀습니다. 부잣집 자녀들이나 가는 줄로 알았던 해외유학을 이제는 웬만한 중산층 가정에서도 보냅니다. 4년제 대학이 5년제처럼 된 것도 재학중 1~2년의 해외유학이 필수과정처럼 됐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을 외국에 보내는 조기유학 붐과 함께 기러기 아빠의 고독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21세기에 접어들어 반값등록금이 왜 문제가 되고 있나요? 다시 우골탑의 시대가 왔다는 것인가요?

나는 아이들의 대학교육을 10여 년 전에 마쳤습니다. 박봉을 쪼개어 6개월을 모으면 한 학기 등록금은 마련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직접 관련은 없는 일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대학등록금 1,000만원 시대’라는 언론보도를 볼 적마다 등록금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서민가정에서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금액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개발연대에 그랬듯이 대학등록금은 대학생이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하여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선진국의 부자 집 부모들은 자녀들이 아르바이트로 학비나 여행경비를 벌게 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자녀들에게 독립을 가르치는 과정으로 간주합니다.

우리에게도 그것은 필요하지만 사정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현행 아르바이트 임금이 시간당 4,000원 수준입니다. 10시간을 일한다 해도 한 달 수입이 100만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두 달 방학동안 일해 봐야 한 학기 등록금의 절반도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대학생들이 요구하는 반값등록금의 산출근거가 그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일자리가 많은 것 같지도 않지만 일자리가 있다 해도 선뜻 나설 학생들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학생들을 더욱 절망케 하는 것은 졸업 후에도 실업자 신세를 면키 어려운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가계마다 빚 얻어 집을 사고 원리금 갚기에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의 사회입니다. 저축이 미덕이던 한국은 저축할 여력을 잃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저축률 국가로 전락했습니다.

학비가 없어 대학을 못 가는 사람이 없어야 선진국입니다. 학생이 자력으로 학비를 벌 수 있는 나라라면 더 건강한 선진국입니다. 고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은 분명 선진국 수준입니다. 그러나 대학교육을 전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가계입니다.

정당들은 선심쓰기에 바쁘고, 정부도 맞장구입니다. 적립금을 헐어 장학금으로 써라, 교수 월급을 깎아라, 교수 수와 안식년 기간을 줄이자며 묘안백출하고 있으나 모두 역효과와 반대급부를 치러야 할 미봉책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정치색을 칠해서 학생들을 선거판에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는 없습니다. 정부와 정당은 반값등록금 문제를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세금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예산의 절감, 일자리 창출 등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학자금 마련을 돕기 위한 공공근로 응급처방이라도 강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도 개혁을 하고, 낭비를 줄여서 등록금을 낮추는데 써야하고, 가계도 저축 여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쓸 것을 다 쓰고는 저축할 여력이 안 생깁니다. 가계는 등록금 문제의 근원이자 최후의 보루입니다.

필자소개

임종건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 "책보다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려요"
리뷰조선 review.chosun.com
최근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의 대중적인 보급 이후에 사람들의 독서행태에 다소 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여가시간 및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는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게임이나 음악감상, 동영상 시청 등의 다양한 일을 한다는 데 있다. 독서시간의 절대적인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자책(E-book)의 등장으로 활자 매체인 종이책에 변화가 찾아올 뿐 독서행위 자체는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향후 전자책으로 인한 독서실태의 변화는 우리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시장조사전문기관 트렌드모니터가 기획하고 이지서베이가 진행하여, 한·중·일·대만 4개국 각 1,000명씩 총 4,000명에게 스마트폰 보유에 따른 독서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스마트폰 등장으로 독서 시간은 줄어들 것', 한·중·대만은 동의, 일본은 비동의가 더 많아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대중 교통 이동 시 주요활동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독서를 하는 사람이 줄어든 대신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거 늘어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국(76%, 중복응답)과 중국(75.9%) 응답자들의 휴대폰 이용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대만(54.3%)과 일본(54.1%)에서도 높은 결과를 보였다. 반면 이동 중 독서를 하는 응답자는 전체 10명 중 3명 정도에 그쳤다. 한편, 일본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응답(35.9%)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특징을 보였다.

동북아시아 조사 참여자들은 늘어난 스마트폰 사용이 독서시간의 감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했다. 다양한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으로 인해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내다보는 것으로, 한국(동의 48%, 비동의 23.8%), 대만(동의 46.8%, 비동의 18.2%), 중국(동의 44.3%, 비동의 29.4%) 순서로 동의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반면 일본 참여자들은 이에 대한 비동의 의견(동의 19.3%, 비동의 39.3%)이 훨씬 많아 대조적인 면모를 보였다. 향후 종이책 독서 인구의 감소에 대해서는 4개국 모두 10명 중 4~5명이 동의하였다. 대만(49.7%)과 한국(47.7%), 중국(45.5%), 일본(39%) 순서였다.

■전자책으로 독서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일본은 다소 낮아

그렇지만 전자책의 등장이 오히려 절대적인 독서량을 늘어나게 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특히 중국인의 동의율이 전체 64.7%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또한 한국(50.5%)과 대만(43.4%)에서도 독서량 증가를 내다보는 의견이 많았는데, 일본의 경우(32%)는 이런 시각이 다소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히려 일본인의 62.1%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전반적인 독서실태 조사에서 다소 보수적인 경향이 나타남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전자책(E-book)의 향후 사용 의향에 대한 질문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중국 응답자의 89.1%(꼭 사용 39%, 약간 사용 50.1%)와 대만 응답자의 76.4%(꼭 사용 19.7%, 약간 사용 56.7%), 한국 응답자의 67.9%(꼭 사용 12.9%, 약간 사용 55%)가 향후 전자책 사용 의향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49%(꼭 사용 12.5%, 약간 사용 36.5%)만이 의향을 보여, 전자책이 독서량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의 인식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전자책의 가장 큰 매력으로는 이동 시 책 읽기가 용이하고 종이책 보관 공간이 불필요하며, 다수의 도서 저장이 가능하다 점을 공통적으로 꼽고 있었다. 전자책 구독 시 가장 선호하는 디지털기기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였는데, 중국의 경우는 태블릿PC보다 노트북을 보다 선호하는 특징을 보였다. 전자책 단말기 구입 시 가장 고려할 사항으로는 한국과 중국, 대만 소비자는 휴대 간편성과 배터리 사용가능 시간을 꼽았으며, 일본 소비자는 화면크기와 무게를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고 있었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신뢰는 4개국 모두 낮은 수준

한편 2010년 한해 동안 설문에 참여한 4개국 패널(panle.co.kr) 10명 중 8~9명은 독서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92.9%)이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였으며, 중국(88.4%)과 한국(85.4%)이 뒤를 이었다. 일본의 독서량(77.1%)은 다소 떨어지고 있었다.

책을 읽은 도서와 구매 경험을 가진 도서 분야는 4개국 모두 소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런 가운데, 4개국 국민들이 소설 다음으로 선호하는 도서 분야는 모두 달랐다. 한국은 소설 다음으로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고 구매하였으며, 중국은 로맨틱·무협·판타지 등의 장르 소설, 일본은 만화, 대만은 정기 간행물에 대한 수요가 다른 국가 대비 많은 특징을 보였다.

도서 구매는 한국, 중국, 대만 소비자들이 인터넷 서점을 선호하는 데 반해, 일본 소비자들은 여전히 시내 대형서점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일반서점 이용자들은 책을 직접보고 고를 수 있으며, 다양한 책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점을 이용 이유로 꼽았다. 반면 인터넷 서점 이용자들은 시간이 절약되고 할인율이 높아서 이용한다고 응답하였다. 한편 베스트셀러에 대한 신뢰는 4개국 모두 낮은 수준(한국 30.3%, 일본 22.2%, 중국 20.9%, 대만 18.3%)이었다. 베스트셀러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성향과의 차이에서 비롯되거나, 특정 출판사의 마케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공통적으로 많았다.

타임 표지모델 된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 인터뷰

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

이를테면 그는 이런 작가다. 소설은 10년 만에 한 권씩 쓴다. ‘베스트셀러의 보증수표’라는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이 기다렸다는 듯이 선정한다. 그런데도 “오프라의 독자는 내 독자와는 다르다”며 선정을 사양한다(이번에 9년 만에 화해했고, 다시 선정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식 출간 전, 가제본(假製本)을 싸들고 휴가를 떠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달 이 작가를 페이스북 창립자 주커버그, 위키리크스 설립자 어산지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했다.

스티븐 킹 이후 소설가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타임’ 표지 모델이 된 것도 그였다.

이 작가의 이름은 조너선 프랜즌(Franzen·52). 조선일보가 그를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이메일 인터뷰했다.

―좋은 문학은 독자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을 찍는다. 당신의 ‘자유’를 읽으며 내게 찍힌 화인을 확인했다. 당신이 ‘자유’를 소설로 쓰고 싶었던 첫 번째 이유는.

“나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고, 따라서 내가 할 일은 소설을 쓰는 일이다. 예전에 하나의 장편소설을 완성한 1년의 기간을 세 번 경험했는데, 그때마다 나 자신에 대해, 세상 속에서의 나의 위치에 대해 참 편안하게 느꼈다. 소설을 쓰는 게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었다. 또한 예술은 예술가가 청중에게 전하는 일종의 선물과 같다는 말에 동의한다. 난 ‘자유’라는 작품 속에서 세상에 대한 나의 경험을 깊숙이 파고들어, 세상에 대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독자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당신의 열 가지 창작 원칙 중 “작업실에 인터넷을 연결해두고 있는 사람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는 여덟 번째 원칙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넷은 왜 좋은 소설을 막는가. 반대로, 좋은 소설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믿는가.

“훌륭한 소설을 쓰려면 좋은 본보기가 되는 훌륭한 작품을 많이 읽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소설은 우리를 우리 자신 밖으로 끌어내고,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인식되면서도 우리와 똑같지는 않은 인물들을 만나게 한다.

소설은 우리로 하여금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심이나 공감을 느끼게 만든다. 반면, 인터넷은 모두 자아에 관한, 자아가 원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은 그런 소음으로 가득 찬, 자기 중심적 세상에서 피난처가 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은 아마도 미국보다 더욱 그 현상이 심할 것이다. 심지어는 전화기로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세상이다. 당신의 그 원칙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인가.

“가끔 나는 작업실에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가지고 간다. 그러면 그날은 아마도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니 나도 작업실에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는 데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원칙은 여전히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런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으면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다행히 내 작업용 컴퓨터에는 인터넷 접속을 차단시켰고, 작업실엔 전화기가 없다. 우리에게 쏟아지는 모든 뉴스와 정보, 나쁜 오락물로부터 피난처가 될 책들을 써내려면, 내겐 그런 종류의 고립이 필요하다.”

― 전작 ‘인생수정(The Corrections)’과 관련,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도서가 된 것이 300만 부 판매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언론에 본인의 우려를 드러낸 이후로 ‘잘난 체하는 속물’로 오인 받는 등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오프라는 이번 책 ‘자유’도 자신의 북클럽 선정 도서에 포함시켰다. 오프라 북클럽 독자들과 비교할 때 당신 책의 독자층은 어느 정도 다르다는 의견은 여전히 유효한가? 지금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100만 부 중에 당신이 겨냥한 독자층은 몇 부 정도 포함됐다고 보는가?

“얼마 동안은 힘들었다. 언론으로부터 욕을 먹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 사건 덕분에 내 얼굴이 좀 더 두꺼워졌고 따라서 상처를 덜 입게 된 것 같다. 성공한 책을 쓴 사람은, 오프라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해도, 대중에게 어떤 반감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어떤 타깃 독자층을 두고 작품을 쓰지는 않는다. 나는 늘 아주 다양한 독자들이 재미있게 볼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프라와 문제가 있었던 것은, 내 책이 오프라 북클럽 선정 도서가 되면 특정 독자들-특히 남성들-이 책을 사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독자가 남성 독자라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책을 통해 모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오프라의 팬들을 포함해, 최근에 나온 내 두 소설을 좋아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 기쁘면서도 무척 놀랐다.”

―본격문학 작가로서, 당신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타임’지의 표지 인물이 되었다. 그 이후 당신에게 생긴 변화는?

“변한 것은 별로 없다. 내가 ‘타임’ 표지에 실리자 나에 대한 어떤 반발이 일었던 건 사실이다. 발표 직후 잠시 동안은 길거리에서 나를 붙잡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늘어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들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타임으로부터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위대한 소설가’들은 누구인가? 다시 말해서, 당신이 매우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내가 매우 좋아한다고 꼽아온 작품은 너무나도 많다. 북미의 생존 작가 중에서는, 나는 항상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캐나다의 단편소설가 앨리스 먼로(Munro·70), 그리고 오랫동안 나의 개인적 영웅이었던 미국 소설가 돈 드릴로(DeLillo·65)를 꼽곤 한다.

하지만 나는 늘 존경할 만한 새로운 작품을 발견한다. 가장 최근에 읽은 위대한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와 18세기 새뮤얼 리처드슨의 소설 ‘파멜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소설을 다 읽고 극찬했다고 하는데, 기분이 어떤가. 한 나라 지도자의 시간을 이렇게 많이 빼앗아도 되는가?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장편소설을 읽을 게 아니라,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 하지만 물론 그가 ‘자유’를 읽었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자랑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는 특히 내가 생전 처음으로 전적으로 존경한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새 소설은 9년 만에 썼지만 종종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에 에세이는 발표해왔는데, 소설과 에세이를 쓸 때에 당신의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

“어떤 글이든지 글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소설보다는 비소설이 쉬운 편이다. 그 이유는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들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쓸 때는 이미 내가 낼 ‘목소리’와 관점이 존재하므로, 흥미로운 주제와 에세이를 구성하는 재미있는 방법만 찾아내면 된다. 반면에, 소설을 쓸 때는 내 삶 전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소설을 하나 쓸 때마다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는 당신 책의 첫 번째 번역본이 나왔다. 한국과의 인연이 있는가? 한국 문학이나 한국 영화에 대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문화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 하지만 한국이 역동적인 나라가 된 것에 감탄하고 있고, 역사적 비극인 북한이 안타깝다. 당신이 좋은 한국문학이나 영화를 소개해줬으면 감사하겠다.”

― 본격문학을 잘 읽지 않는 세상이다. 한국 역시 그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문학의 미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그리고 문학의 존재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소설은-그 어느 때보다도-소음과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현대 문화로부터 피난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그런 문화에서 끌어내 올 수 있도록 흡인력 있는 ‘문학’ 소설을 쓰는 데 매진하고 있다. 본격문학 작가들 스스로가 자신의 책은 많은 독자들이 읽지 않을 거라고 단념하고, 점점 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이 정말 더 위험하다. 본격문학의 위기는, 우리 작가들이 위기상황을 잘 파악하고 지혜롭게 행동한다면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도서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당신의 소설을 좋아할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부탁한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을 한 미국 작가의 책을 읽어준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갑’과 ‘을’, 공생관계의 먹이사슬
허영섭 2011년 06월 16일 (목) 00:58:09
믿어지진 않지만, 결혼식 축의금으로 자그마치 1,000만원씩이나 오가고 있다 합니다. 축의금 봉투 하나에 들어 있는 금액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대기업 임원들이 자녀를 결혼시키는 경우 하청업체나 납품업체에서 이렇게 거액을 넣어 건네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밉보이게 되고 결국 거래를 끊기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축의금을 빙자한 상납이며, 뇌물입니다.

비록 일부에 국한된 얘기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 ‘갑을(甲乙) 관계’의 극명한 현주소입니다. 계약을 주고받는 불가피한 관계 속에서 이렇게 비리가 움트고, 부정이 활개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우월적인 지위를 내세워 부적절한 요구를 해오는 경우도 있겠고, 그렇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거나 아니면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내려고 내쪽에서 스스로 알아서 처신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갑을관계에 있어 이러한 먹이사슬은 이미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최근 불거졌던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저축은행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만, 갑의 위치에 있는 감독관청 관계자들이 금품을 받고 비리를 키웠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함께 공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축은행의 경영상태를 평가하는 회계법인도 그것을 눈감아 주었습니다. 선량한 예금주들만이 엉뚱하게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갑과 을의 계약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약육강식의 거래가 아니라 공생관계의 먹이사슬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억울하게 뜯기고 갖다바쳐야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주고받는 과정에서 대체로는 서로 자연스럽게 같은 패거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돈을 받는 쪽이 문제가 있다면, 주는 쪽이라고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축의금을 마련하는 비자금 조성과정만 해도 눈에 선합니다.

어느 누가 결혼식에 1,000만원의 축의금을 낸다면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계약서를 쓸 때 그만큼의 이익을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혹시 내쪽에서 계약 자격에 문제가 있더라도 눈감아 달라는 의미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케이크 상자나 사과상자에 돈다발을 넣어 전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약이 다시 체결됐을 경우 회사에 미치는 손해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기술과 가격조건이 아니라 돈뭉치에 의해 계약이 성사됐다면 납품 물건이 성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갑을관계의 상납구조도 다양하게 짜여 있습니다. 룸살롱의 질펀한 술자리가 그렇고, 골프장의 접대내기가 그렇습니다. 법인카드를 사용하도록 제공하거나 거래 금액에 따라 리베이트를 지불하는 방법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휴가철에는 가족들의 해외여행비까지 대주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결혼식 축의금은 오히려 약과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부패구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으로까지 문제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최근 연달아 그룹 내부의 부정부패를 언급했을 정도입니다. 각종 청탁을 앞세운 정치권이나 인허가권을 행사하는 관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자체에 청탁 돈봉투를 갖고오는 사람들을 막으려고 단체장 사무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했다지요. 함바사건에 이어 4대강 공사를 둘러싸고도 공직자들의 거래관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힘없는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며 공직자들의 청렴의식을 주문했을까요.

그러나 한두 사람의 청렴의식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정신이 필요하다거나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도 이미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제시되곤 했지만 공염불일 뿐입니다. 축의금에 세금을 물리든지, 뇌물죄로 처리하든지 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결혼식장 접수대마다 세무서나 검찰 직원들이 지키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갑을관계의 은밀한 거래가 쉽게 근절되지는 않을 겁니다.

[J 스페셜 - 수요지식과학] 48년 만의 최악 한파, 반년 뒤 동식물 생태계 ‘침묵의 여

[중앙일보]입력 2011.06.22 00:56 / 수정 2011.06.22 01:29

이 폭염에 … 동상 후유증 앓는 한반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류기봉씨가 20일 자신의 포도밭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겨울 몰아친 한파로 류씨의 포도나무 가운데 60%가 얼어 죽거나 포도송이가 제대로 달리지 않는 피해를 봤다. [신동연 지식과학선임기자]

지난겨울 한반도는 따뜻하지 않았다. 삼한사온(三寒四溫)에서 사온(四溫)은 사라졌고, 삼한은 삼십한(三十寒)으로 늘어났다. 서울에 닥친 1월 한파는 48년 만에 가장 추운 것이었다. 6개월 전의 그 한파가 아직도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반도가 당시 심한 동상(凍傷)에 걸렸음을 알려 주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동식물과 어패류가 얼어 죽고 철새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지구온난화라 하는데 극심한 한파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기상전문가들은 이 같은 한파도 지구온난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온난화가 왜 한반도를 동상에 걸리게 했는지 알아본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류기봉(46)씨는 요즘 포도밭을 둘러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1만3000여㎡의 포도밭 가운데 60% 정도가 지난겨울 추위에 피해를 봤다. 나무가 아예 얼어 죽거나 다행히 살아남았다 해도 포도 씨알이 듬성듬성하고 작아 상품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류씨는 “지난해 수확철에 햇볕이 안 나 포도나무가 약해진 데다 올 1월 최저기온이 영하 15도 아래로 떨어지는 추위가 보름 가까이 계속되면서 냉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포도는 한 번 냉해를 입으면 2~3년 지나야 회복되기 때문에 타격이 작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남 하동군 화계면 쌍계사 근처에서 차밭을 일구는 구해진(44)씨도 냉해 피해자다. 1만6000여㎡ 넓이 차밭의 80%가 냉해를 입었다. 구씨는 “정남향의 양지바른 곳을 제외하고는 차나무 대부분이 얼어 죽었다”고 말했다. 보통의 삼한사온 날씨와는 달리 지난겨울에는 40일 내내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전남 보성군 지역에서도 차나무의 70% 이상이 냉해 피해를 입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7일 “잠정 집계된 과실류 동해(凍害) 피해 면적은 포도 2033㏊, 사과 858㏊, 복숭아 492㏊ 등 7908㏊에 이른다”고 밝혔다. 강릉·동해·고성 등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는 총 29.7㏊에 이르는 지역에서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가 얼어 죽었다.

 바다에서는 가두리양식장 피해가 심각했다. 바닷물 수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경남·충남 등지의 가두리양식장에서 키우던 쥐치·우럭 등 물고기 수백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보성군에서는 벌교 꼬막 30~40%가 한파에 폐사했다. 전북 새만금호에서는 올 2월 200마리가 넘는 상괭이(쇠돌고랫과 소형 고래)가 한꺼번에 죽어 물 위로 떠올랐다. 물 위로 나와 호흡을 하는 상괭이가 새만금 호수 물이 얼어붙는 바람에 숨을 쉬지 못한 탓이다.

 한파는 철새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채희영 박사는 “여름 철새인 붉은배새매가 예년에는 5월 초 일주일 사이 매일 수천 마리씩 홍도·흑산도를 거쳐 한반도로 이동하지만 올봄에는 몇 마리밖에 관찰되지 않았다”며 “지난겨울 한파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 민통선의 생태연구가 전선희씨도 “매년 철새 이동을 관찰하고 있지만 올해는 붉은배새매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채 박사는 “철새의 경우 번식지에 도착했을 때 먹이 상황이 좋으면 알을 많이 낳지만, 그렇지 않으면 알을 적게 낳는 경향이 있다”며 “기후변화 혹은 기상이변으로 번식지에서 곤충·애벌레 등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지면 철새들도 타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채 박사는 사라진 붉은배새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외국 전문가들과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다.

 지난겨울 극심한 한파가 닥친 데 대해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북극해 얼음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미국 빙설자료센터는 “1월 북극해의 얼음 면적이 1355만㎢로 1979년 첫 관측 이래 가장 작아졌다”며 “이 때문에 ‘따뜻한’ 바닷물이 북극해 상공의 공기를 데워 북극의 찬 공기를 에워싸고 있는 냉와류(polar vortex)를 약하게 만들면서 찬 공기가 북반구 중위도 지역까지 쏟아져 내려왔다”고 발표했다. 북극해를 덮는 얼음이 줄면서 바닷물의 증발이 늘었고, 늘어난 수증기가 시베리아에 더 많은 눈을 내리게 했는데, 이것도 북반구에 한파를 불러왔다. 시베리아에 쌓인 눈이 햇빛을 반사시켜 찬 공기 덩어리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극지방의 차가운 공기 세력과 합쳐지면서 냉와류(제트기류)를 남쪽으로 끌어내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중위도 한파의 원인을 ‘북극진동(Arctic Oscillation)’으로 설명하는 기상학자들도 있다. 북극진동은 북극지방과 북반구 중위도 지방 사이의 기압 차이가 주기적으로 줄었다 커졌다 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압 차이가 줄면 북극의 찬 공기를 에워싸고 있는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찬 공기가 북반구 중위도 지역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김성중 극지기후연구부장은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한반도에서 여름은 갈수록 더워지겠지만 겨울철에는 오히려 더 심한 한파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신동연 지식과학선임기자

[10년 후 우리의 모습…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일본] 한국은… 서울 30~34세 절반이 미혼

男-저학력 女-고학력 많아… 절반 정도가 혼자서 살아

서울에 사는 30~34세 중 미혼이 절반을 넘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작년말 현재 30~34세 미혼자가 43만1847명을 기록, 이 연령대 서울 인구의 50.4%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전체 30대 인구에선 10명 중 2.9명(227만명)꼴로 미혼이다. 이처럼 30대 미혼이 늘어난 것은 취업난, 경제적 어려움, 결혼기피 현상 때문이다.

공기업에 다니는 이모(52) 부장은 이른바 '골드 미스(Gold Miss)'다. 20대 때는 맞선도 많이 봤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과장·차장·부장으로 직위가 점차 올라가면서는 학력·수입 등에서 그의 눈높이에 맞는 남자를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 50이 넘어서자 결혼은 포기했다.

2010년 통계청 인구센서스를 보면 50세 이상 미혼자는 모두 23만9707명(남성 13만5246명, 여성 10만4461명)이다. 10년 전 6만1176명보다 3.9배나 늘어났다.

아직은 50세 이상 인구 결혼 경험이 없는 사람은 100명 중의 한 명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40대의 미혼율을 보면 '생애(生涯) 미혼자'가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40~ 44세는 10명 중의 한 명, 45~49세는 20명 중의 한 명꼴로 미혼이다.

한양대 조남훈 석좌교수는 "남성 비정규직들이 늘어나고, 여성들의 소득이 높아지면서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 생애미혼자 증가 속도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50세 이상의 미혼자를 학력별로 분석해 보면 남성은 저학력, 여성은 고학력자가 결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미혼율은 초등학교 졸업자 중 2.8%, 석사 1.1%, 박사 1.1%였다. 여성은 초등학교 졸업자 1.36%, 석사 9.7%, 박사 14.7%였다.

남성 미혼자 중에는 저소득이면서 초·중학교 졸업자가 많다. 이들이 노후에도 빈곤에 시달릴 우려가 있다.

생애 미혼자들은 절반가량이 다른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데 살기 편치않으니 각각 사세" 조선 선비, 편지로 전한 별거 통보

진주 하씨 무덤에서 출토된 한글 편지. 남편 곽주가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로, '죽엽주 만드는 법'이 적혀 있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1989년 현풍곽씨 후손들이 12대 조모(祖母)인 진주 하씨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하씨의 관 속에서 의복류 81점과 함께 한글 편지 172점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곽주가 부인 하씨에게 보낸 편지가 105점으로 가장 많았고 시집간 딸이 하씨에게 쓴 편지 42점, 하씨가 곽주에게 쓴 편지 6점, 친정어머니가 보내온 편지 등이 있었다. 후손들은 중요민속자료 229호로 지정된 이 유물들을 2006년 국립대구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편지 100여점과 무명 솜장옷 등 복식 10여점을 선보인다.

편지를 통해 부부의 일상생활과 내면까지 읽을 수 있어 흥미롭다. 곽주가 과거 시험을 보러 서울로 가던 중 보낸 편지들에는 아이들과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담겼다. "아기들 데리고 어찌 계신가. 기별을 몰라 걱정하네." "정녜, 정녈이(두 딸) 절대로 밖에 나가 사내아이들하고 한데서 못 놀게 하소. 외딴 집에 낮이라도 절대로 혼자 계시지 말고 조심조심하여 계시오."

부인 하씨가 겪었던 시댁과의 갈등, 어머니로서 느끼는 삶의 애환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곽주가 결혼 초기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에는 "자네 팔자가 남의 불평을 들으라고 타고났으니 삼년은 눈을 감고 귀를 재우고 견디소"라고 써있다. 하지만 하씨가 전처 아들과 계속 갈등을 빚자 "자네에게 많이 서럽게 아니하거든 삼년은 견디고…"라며 달래다가 급기야 아내 뜻을 받아들여 별거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둘은 떨어져 살면서도 편지로 왕래하며 많은 사연을 주고받았다. 출산을 앞둔 아내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산기가 시작하거든 즉시 사람을 보내소. 밤중에 와도 즉시 갈 것이니"라고 걱정하는가 하면, 딸아이를 할머니 댁에 데려갈 때 연초록 물든 저고리, 보라색으로 물들인 무명 바지를 해 입히라고 당부하는 세심한 모습도 보인다.

민보라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여성들은 엄격한 유교적 규범에 의해 자기감정을 내색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곽주의 편지에 비친 부인 하씨는 자기감정과 의견을 솔직히 표현하고 거처까지 옮긴 적극적인 여성이었다"고 해석했다.

대기근과 전염병이 만연했던 당대 사회상도 읽을 수 있다. 곽주의 편지에서는 아이들의 병치레에 대해 걱정하는 내용이 자주 보인다. "종기에는 소주가 가장 좋으니 꿀 위에 소주를 가득 넣어 보내소"라거나 석웅황, 생강 등 음식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법이 등장한다. 죽엽주·포도주 만드는 법, 집에서 수확한 면화를 노비들에게 분배한 기록, 시집간 딸이 "이젠 다시는 친정에 못 갈 것"이라며 눈물로 보낸 편지도 눈길을 끈다. (053)768-6052

여행지 속 인물 이야기 08 허난설헌  이동미(여행 작가) 기자

조선시대 3대 여류 시인하면 황진이, 허난설헌, 신사임당을 꼽는다. 그중 두 명이 강릉에서 태어났으니, 강릉 땅은 여류작가의 산실과도 같은 곳이다. 푸른 수평선에 눈이 베일 듯한 바닷가와 소나무가 어우러지는 강릉으로 문학여행을 떠나자.

 

초당두부의 뜨끈함과 어우러지는 동해의 청아함

길이 험해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을 한자어로 적으면서 생겼다는 대관령(大關嶺)을 강릉에 사는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면서 곶감 한 접(100개)을 지고 올랐다 한다. 힘이 들어 한 굽이 돌 때마다 하나씩 빼먹으며 정상에 도달하니 곶감 하나만 남아 대관령은 아흔아홉굽이로 전해진다는 얘기를 들려주니, 아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강릉시내를 지나 경포대 근처에 이르니 시원한 바다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그곳 솔밭 어디쯤에 내가 찾는 여인이 있을 것이다. 대관령 굽이보다 굴곡진 삶으로 알려진 ‘조선의 여인’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 ~ 1589)이다. 그의 이름은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삶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허난설헌 생가를 찾아가는 길엔 펄펄 김이 나는 초당 두부가 허기진 식객의 발길을 잡는다.
“엄마, 허난설헌이 그렇게 글을 잘 지었어요? 부럽다. 나도 글 잘 짓고 싶은데….” 작가가 꿈인 딸아이가 허난설헌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부러움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순간 그의 삶이 머릿속을 스쳐가기 때문이다.
허난설헌은 행복한 여자였다. 명종 18년(1563) 대사헌을 지낸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딸로 태어났으며〈,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지은 허균이 그의 동생이다. 아버지 허엽이 강릉 부사로 재직할때 동헌 뜰에서 나는 물로 두부를 만들게 했는데, 이것이 초당두부다.
두부의 이름은 허엽의 호 ‘초당’에서 유래한다. 난초[蘭]의 이미지와 눈[雪]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허난설헌의 본명은 초희(楚姬)다.
“엄마, 이름에 참 예뻐요. 초희… 난설헌….”

“어? ‘허’가 성이고 ‘난설헌’이 이름이에요? 나는 ‘허난’ 이성이고 ‘설헌’이 이름인 줄 알았죠!”

대관령 굽이 같은 허난설헌의 삶

여자들은 글공부를 시키지 않던 봉건적인 시대에도 난설헌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남동생, 오빠와 함께 글공부를 했다. 허난설헌은 문장이 뛰어나 아버지 허엽, 큰오빠 허성, 작은오빠 허봉, 남동생 허균과 더불어 ‘허씨 5문장’이라 불렸다.
“엄마, 그때 여자들은 왜 공부를 못했어요? 돈이 없었어요?”
아이들이 묻는다. 가난한 사람이야 당연히 돈이 없어 공부를 못했지만, 당시 여자들에게는 남자들처럼 교육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바깥 출입도 어려웠다는 말에 아이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다. 생가 뜰에 핀 꽃과 뒷마루, 부엌을 돌아보는 딸아이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 내 딸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난설헌은 열다섯 살에 안동 김씨 집안의 김 성립(金誠立)과 혼인을 했다. 5대에 걸쳐 문과에 급제한 문벌 집안으로 허난설헌보다 한 살 많았고 나름대로 문장을 했지만, 여덟 살에 ‘광한전 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지어 신동 소리를 듣던 난설헌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봉건적인 집안에서 자란 김 성립은 자신보다 잘난 아내에게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밖으로 돌았으며,현모 양처를 바라는 시어머니는 글을 짓는 며느리를 탐탁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힘겨운 시집살이였고 불행한 나날이었다. 아버지 허엽은 경상 감사를 하던 중병에 걸려 상주에서 객사했고(난설헌 18세), 동생허균은 귀양을 갔으며(난설헌 21세), 오빠 허봉은 황달과 폐병으로 38세에 객사했다(난설헌 26세).
난설헌에게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었는데 돌림병으로 죽고, 그 충격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고 만다. 몰락해가는 집안과 자식을 잃은 아픔, 속 좁은 남편,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시어머니 등 난설헌은 견디기 힘든 상황에 놓였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생각이 샘솟듯해서 이 세상 사람같지 않았다 한다.


불타버린 16세기 여류 시인의 작품들

어느 날 난설헌은 시를 하나 지었는데, 불행히도 이 시는 그녀의 절명시가 된다‘.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이다.

碧海浸瑤海(벽해침요해)푸른 바닷물은 옥 같은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청란의 채란) 파란 난새가 아롱진 난새와 어울렸네
芙蓉三九朶(부용삼 구타)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 霜寒(홍타월상한) 달빛은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하구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금년이 바로 3.9수에 해당하니, 오늘부용화가 서리를 맞아 붉어지겠다”며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을 감으니 난설헌은 향년 27세를 일기로 요절했다(1589년 3월 19일). 부용삼 구타(3×9=27)! 난설헌이 세상을 살다간 시간이다. 그녀가 쓴 시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는데, 다비(茶毗: 시체를 화장하는 일)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녀의 시가 대부분 한줌의 재로 사라졌다.
“무척 잘 쓴 시라는데다 태웠다니 아까워요.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허균은 누이의 시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자신이 암송하던 시와 본가에 남아 있는 시를 모아두었다. 허난설헌이 세상을 뜨고 17년이 지난 1606년,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은 허균이 보여준 그녀의 유고에 감탄하다가 명나라에 가져가〈난설헌집(蘭雪軒集)〉을 발간했다. 시집의 주문이 쇄도해 낙양의 종이값이 올랐을 정도였다니 한류열풍의 원조라 할 만하다.
〈난설헌 집〉은 명나라에서 조선에 역수입되었지만, 허균이 반역죄로 처형되자 시집도 매장되었다(1618년). 1692년에야 부산동래에서 조그맣게 간행되었고, 일본의 사신들이 가져가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 간행되었다(1711년). 16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여류 시인으로 국제적인 각광을 받은 허난설헌의 시가 213수만 남고 불타버린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사리같이 여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허난설헌 생가를 돌아보자니 허난설헌이 남긴 말이 생각난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 첫째 한이요, 여자로 태어난 것이 둘째 한이며, 김 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 셋째한이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에 사는 나와 내 딸이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문밖 출입은 물론 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고, 교육받을 수 있으며, 글을 쓸 수 있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도 할 수 있으니말이다.
남의 불행에 견주어나의 행복을 찾는 건 옳은 일이 아니지만, 21세기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허난설헌이 부러워 할 삶이라는 것이 이번 강릉 여행에서 얻는 슬픈 교훈이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