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범석입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밀레니엄이다 뭐다 주위에서 너무도 떠들어대서인지

사실 벌써부터 조금씩 식상해지기는 하지만,

어쨌던 의미를 부여하자면 끝이 없겠죠.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새롭게 단장한 방명록에,

금세기를 떠나보내는 그리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소감 한마디씩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그냥 혼잣말 하듯,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고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한두어 마디 적어주세요.

님의 침묵
- 萬海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
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남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
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
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앙,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
- 萬海 한용운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 萬海 한용운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비는 해를 가리고 하늘을 가리고 세상사람의 눈을 가립니다.
그러나 비는 번개와 무지개를 가리지 않습니다.
나는 번개가 되어 무지개를 타고 당신에게 가서 사랑의 팔에 감기고자 합니다.
비 오는 날 가만히 가서 당신의 침묵을 가져온대도 당신의 주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비 오는 날에 오신다면 나는 연(蓮)잎으로 웃옷을 지어서 보내겠습니다.
당신이 비 오는 날에 연잎 옷을 입고 오시면 이 세상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이 비 가운데로 가만히 오셔서 나의 눈물을 가져가신대도 영원한 비밀이 될 것입니다.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 아래 글은 월간 문학/문화 잡지 [BESTSELLER] 12월 호에 실리게 될 원고의 일부입니다 *

킬리만자로는 높이 5,895미터의 눈에 뒤덮인 산이며,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마시이족은 서쪽 봉우리를 가리켜 '느가이예 느가이'라고 일컫는데, 그것은 신(神)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서쪽 봉우리 근처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 하나가 나둥그러져 있다. 과연 표범은 그 높은 산봉우리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킬리만자로의 눈> 1936

        시간을 잃어버린 나라 쿠바의 수도 아바나. 한때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시간과 함께 주름으로 금이 간 노인의 얼굴과도 같이, 아바나는 늙어있었다. 인구 220만의 이 도시는 나에게, 아이러니컬하게도, 거주자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빈 '유령 도시'(ghost town)를 연상시켰다. 이것이 내가 아바나에서 받은 첫인상이자 마지막 실망이었다. 그러나 조급히 떠났던 이 '유령 도시'로 3주간의 쿠바 일주를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구면이 되어버린 이 도시에게 곧 매우 독특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주름으로 덮인 얼굴에서 총명한 눈동자와 촉촉한 입술과 환한 미소를 보듯, 죽은 줄만 알았던 이 도시에서 강한 생명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쿠바의 심장인 아바나는 시간을 잃어버린 채 강하게 숨쉬고 있었다.

        "싼 프란시스코 데 빠울라로 가는 시내버스를 어디서 타죠?" 흰 가슴 털을 드러내놓고 입에는 코히바 시가를 문 채, 2층 아파트 발코니에서 아바나의 유명한 해안도로 말레꼰(Malecon)을 내려다보고 있는 민박집 주인 노인에게 내가 묻자, "택시 말고?" 그가 되묻는다. "택시 말고 버스요." "까삐똘리오 옆 프래떼르니다드 공원에서 M-7번 버스를 타면 될 거요." "그라씨아스!"
        말레꼰 대로에는 전날밤 이 거리를 메우던 카니발 인파, 쓰레기와 음악이 사라지고 없고, 다시 주인이 된 자동차들이 북쪽의 플로리다 해협에서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달리고 있다. 몸을 녹일 듯이 뜨거운 열대성 태양을 피해 나는 도로변 3층 건물들이 만들어주는 그늘 밑을 걷는다. 몇 몇 건물은 수십 년만의 보수공사로 새단장을 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자연사(自然死)를 기다리고 있는 듯 황폐한 모습으로 겨우 서있다. 실제로 아바나에서는 하루 평균 한 개의 건물이 예고 없이 무너져 내린다고 한다. 그것이 지진으로 인한 자연의 피해라면 덜 비극적일텐데.
        아바나의 또 다른 유명 거리인 프라도(Paseo del Prado)를 걸으면서 흰 대리석 벤치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큰 개 한 마리가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광경이 나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한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얼굴을 활짝 펴고 웃거나 미소 지을 일이 별로 없는데, 이처럼 무더운 열대지방의 여름날씨 속에서 낯선 장면 하나로 일그러져 있던 표정이 펴질 수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중략]


        대낮의 햇살을 받아 밝은 초록색 빛을 내는 나뭇잎들 사이로 높이가 충분히 20미터는 되어 보이는 흰색 타워가 보인다. 그리고는 곧 그 오른쪽으로 같은 색의 단층 건물이 나타난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단조로운 건축양식의, 그야말로 평범한 한 채의 집 앞에 다다르자 안내인은 이곳이 바로 20세기의 대문호가 생전에 가장 오랫동안 고정된 안식처로 여겼던 장소라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여기가 헤밍웨이의 집입니다."
        쿠바가 배경인 소설 <<노인과 바다>>를 집필한 곳도 이곳이고, 자신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친구의 전화로 처음 접한 곳이 이곳이며, 헤밍웨이가 생애의 마지막 20년을 즐기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46년 전, 나는 한 광고를 통해 이 집을 찾게 되었고 월세 100달러를 내고 빌렸어요 [......] 바로 이 책상에 앉아 그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썼죠." 남편과 별거하기 위해 쿠바를 떠난 이후, 1985년 처음으로 아바나와 핀카 비기아를 다시 방문했던 헤밍웨이의 세 번째 부인 마사 겔호른(Martha Gellhorn)은 자신이 쓴 글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부인을 따라 이 집을 처음 보러왔던 헤밍웨이는 낡고 황폐했던 건물과 주위 환경
에 아연질색 했다고 한다. 더더구나 그가 가까운 친구들과 즐겨 찾던 아바나 시내의 술집 '엘 플로리디따(El Floridita)'와 '라 보데구이따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조용한 농장이 마음에 들리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포기하지 않고 많은 돈을 들여 집 전체를 대대적으로 수리했는데, 공사가 끝난 뒤 헤밍웨이가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당장 입주를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일년 뒤인 1940년 소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출판성공으로 벌어들인 인세로 핀카 비기아를 매입하게 되고, 1960년 마지막으로 쿠바를 떠날 때까지 세 번째와 네 번째 부인, 다수의 고양이 그리고 애견들과 함께 이곳에서 생활했다.

[중략]

        단층의 집 건물 바로 옆에 독립적으로 지어진 이 타워의 맨 위층에는 헤밍웨이의 작업실이 있다. 사방의 창문으로 빛이 많이 스며드는 내부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그리고 받침대 위의 길다란 망원경이 고요한 방을 지키고 있다. 매일 오전 열대의 태양이 밤새 식었던 공기를 또다시 뜨겁게 달구기 시작할 무렵, 헤밍웨이는 이 방으로 올라와 지금과 같은
고요함 속에서 집필을 했다. 신문이나 잡지, 편지 등 작업과 관련이 없는 것은 일체 가지고 올라오지 않았으며, 그가 이곳에서 글을 쓰는 동안에는, 종종 그의 집에 묵던 손님들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도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작업실 공간은 작가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위해 존재했으며, 작가의 상상 속에서 때로는 바다가, 때로는 투우장이, 때로는 복싱 링이, 때로는
사냥터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노인과 바다>>를 집필할 때는 노인 산티아고가 되어, "인간은 패배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은 파멸을 당할지언정 결코 패배할 수는 없다"는 용기를 다짐하고, <<만(灣)에 있는 섬들>>을 쓰는 동안에는 주인공 토마스 하드슨이 되어, 현실에서는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고독함을 종이 위에 고백했을 것이다. 글이 막히면
의자에서 일어나 밖의 전망을 내다보았을 작업실 창문에서 등을 돌리며 나는, 용감한 투쟁은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헤밍웨이는 그 어느 작가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으리라 추측해본다.
        바닥이 메말라 있는 실외 수영장 옆을 지나는데, 가지런히 서 있는 4개의 작은 비석이 보인다. '네론(Neron)' '린다(Linda)' '네그리따(Negrita)' 그리고 '블랙(Black)'.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애견들의 무덤이다. 그는 동물을, 자연을 사랑했지만 또한 지배하려고 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지배의 대상이 되었다. 엽총 구멍 앞에서, 낚시 바늘 끝
에서 그에게 굴복하는 자연을 보면서 그는 만족감을 느꼈다. 마타도르의 칼끝에 죽어가는 황소를 바라보면서 삶의 화려함과 격렬함을 즐겼고, 그에게 복종하는 여자들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반면, 그에게 복종하지 않았던, 그가 지배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와 세 번째 부인 마다 겔호른은 그래서 끝까지 그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략] 

        수영장 가로 돌아와 그늘에 덮인 큰 돌 위에 앉는다. 안내인 여자는 내가 권한 담배를 입에 문 채, 잠시 상념에 빠진 듯 하다. 입에서 뿜어 나오는 담배연기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그 움직임에 맞추어 등뒤에서 대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니 뜻밖에도 작은 대나무 숲이 있다. 어느 겨울날 안동 하화마을 민박집 방에서 밤새도록 들었던, 그 이후 최명희의 <<혼불>>을 읽으면서 다시 들을 수 있었던 바로 그 소리. "그것은 사르락 사르락 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 듯 사운거리다가도, 솨아 한쪽으로 몰리면서 물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잔해졌는가 하면 푸른 잎의 날을 세워 우우우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국경이 없는 기억과 상상 속에서 잠시 쿠바를 떠나 있던 나는, 이글거리는 태양 빛을 향해 아쉬움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금 나의 아쉬움은 헤밍웨이라는 대문호가 생활하던 이곳 핀카 비기아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늘에 앉아 시원한 파도소리와도 같은 대나무들의 노래를 들으며 맑은 공기를 들이쉴 수 있는 이 한가한 휴식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안주하고 싶을 때 떠난다는 것은 그만큼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헤밍웨이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을 떠났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그가 애착을 갖었던 나라들과 친구들을 떠났다. 동시에 그는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세계 곳곳에 자신의 자취를 남겼다. 그것은 곧 그의 식을 줄 몰랐던 치열한 삶과의 싸움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를 젊은 무명 작가에서 유명 작가로 키웠던 프랑스 빠리, 그가 삶의 열정을 마음껏 누렸던 스페인 빰쁠로나, 그를 모국으로 불러들였던 플로리다 주(州) 키 웨스트, 그에게 킬리만자로의 눈(雪)을 보여주었던 아프리카 케냐, 그리고 그의 마지막 남은 열정을 불사르게 했던 쿠바 아바나.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독한 삶, 그 이상은 아니다 [......] 진정한 작가에게 새로운 책을 집필한다는 것은 도달할 수 없는 곳을 지향하는 새로운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는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다다르지 못한, 이전의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한 그 무엇을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1954년 11월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서 대리인을 통해 읽혀진 이 연설문 대목에서 느낄 수 있듯, 헤밍웨이는 그의 문학세계에서도 모험가였으며 항상 새로운 실험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포기하기 싫은 싸움을 언젠가 끝내야 한다는 것을. 싸움의 종말은 그것을 외면했던 사람에게도, 그것을 용감하게 받아들였던 사람에게도 인간인 이상, 결국은 오고 만다는 것을.
        "더 이상 글이 나오지 않아."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헤밍웨이가 이 단어들을 힘없이 반복하는 동안 눈물이 그의 볼을 적셨다. 결국 그는 1960년 7월 25일 부인 웰쉬와 함께 핀카 비기아를 떠나 그의 모국인 미국으로 건너가 정신치료를 받지만, 그의 우울증과 편집증은 날로 심각해져 갔다. "내 친구들이 날 죽이려고 해." "FBI가 분명 날 뒤쫓고 있어." "난 이제 완전히 망해서 가난뱅이가 됐다고."

        그의 예순 두 번째 생일을 19일 앞둔 1961년 7월 2일 일요일, 미국 아이다호 주(州)에 있는 케첨 시. 헤밍웨이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일어나 부인이 아직 잠들어 있는 침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조용히 지하실로 내려가 부인이 숨겨둔 열쇠를 찾아 진열장을 연 뒤, 엽총을 하나 꺼내 들었다. 거실로 올라온 그는, 입구 쪽에 서서 두 개의 총구가 달린 엽총을 천장을 향하게 세운 뒤, 허리를 굽히고 이마를 총구에 바짝 갖다대었다. 그리고는 곧 손가락으로 두 개의 방아쇠를 동시에 밀었다.

        옆에서 나와 함께 핀카 비기아의 정문을 향해 언덕을 내려가던 안내인 여자가 문득 멈춰 선다. 그러더니 나무에서 떨어진 망고 한 개를 주워 내게 준다. 내 주먹보다 조금 큰, 추운 겨울날 어린아이의 볼과 같이 천진스럽도록 예쁜 빨간색으로 물든 망고. 나는 이 과일을 손에 쥔 채, 승리자로서 모든 걸 남겨두고 허무하게 떠난 집주인 없는 핀카 비기아를 떠나온다.

"아빠, 그 사람은 왜 자살을 했을까요?"
"모르겠다 니크, 아마 참을 수 없었겠지."
"아빠, 많은 남자들이 자살을 하나요?"
"그다지 많지 않아, 니크." [......]
"아빠, 죽는다는 것은 어려워요?"
"아니, 내 생각엔 무척 쉬운 것 같다. 다 각자 나름이겠지." [......]
이른 아침 호수 위에서 아버지가 노를 젓는 배의 고물에 앉아 그는, 자신은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인디언 부락(部落)> 1924

 

흐르는 물은 소리가 있다. 물이 소리가 없음은 멈춰있는 까닭이다. 범석생각Das Ende

- 일산 문촌마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