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에서

[사진]"덤벼~" '개 겁주는 사마귀 '포착'

[팝뉴스]입력 2011.08.19 10:08


자신보다 수백 수천 배가 큰 몸집을 가진 상대에게 '당당히' 맞선 용기를 보여 준 사마귀가 화제다.

최근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의 곤충으로 떠오른 이 사마귀는 자신을 향한 개의 시선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온몸으로 맞선다. 이 사마귀는 개를 향해 앞다리를 힘껏 치켜세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개의 입장에서 보면 가소롭기 그지없지만, "사마귀의 용기가 가상하다"고 네티즌들은 말한다,

한편, 사마귀의 용기 혹은 지나친 무모함에 대처하는 개의 표정은 덤덤하기 그지없다. 사진은 미국 오클라호마에 거주하는 사진작가가 자신의 집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위기의 한국 SW 산업] 명문대 나와도 SW개발자는 시간급 인생…"장가가기도 힘들어"

 

한국에 애플·구글이 없는 이유… 젊은 층의 소프트웨어 외면 가속화
배우는 학생이 없다 - 90년대 초엔 의대보다 인기, 요즘은 충원 걱정할 정도
정부·기업의 푸대접 - SW 개발을 단순 노동 취급… 투자 안하고 베껴쓰기 선호1991학년도 대입 학력고사 전국 수석은 전남 목포 덕인고 출신인 한모(37)씨였다. 그가 지원한 곳은 의예과도, 전기공학과도 아닌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컴퓨터공학과는 최고 인기 학과였다. 대성학원이 만든 '1993학년도 학력고사 점수별 대학 입학 배치 기준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과 계열 제일 윗줄에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물리학과 등 2개 과가 있고, 그 밑으로 전기·전자·제어공학과군, 의예과, 기계공학과가 자리를 잡고 있다.

송문천 KAIST 교수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제2의 빌 게이츠'를 꿈꾸며 세계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컴퓨터공학과로 몰려드는 학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금의 NHN, 넥슨을 만든 이해진 의장, 김정주 회장이 바로 그런 꿈을 안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로 들어갔던 이들이다.

지금은 어떨까. 대성학원이 지난해 만든 '2011학년도의 대입 지원 가능 대학·학과 참조 자료'의 이과계열 제일 위칸에는 서울대 의예과가 있다. 그 밑으로 서울과 지방 대학의 모든 의예과와 한의예과, 치의예과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밑에는 서울대 화학·생물·재료·건축·기계공학·수학과 등이 나오고, 다시 그 밑에야 비로소 전기·컴퓨터공학부가 등장한다.

◆망가진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시스템

15~20년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소프트웨어 산업의 산실(産室)이 이처럼 몰락했을까.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분야로 진출해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황모(33)씨는 컴퓨터공학 석사를 마치고 2년간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에 다니다 퇴직하고 지난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는 "선배들을 보니 이 바닥에 계속 있다가는 장가도 못 갈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밤 12시, 새벽 1~2시까지 밥 먹듯 야근하는 선배들의 연봉이 3000만원이 채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던 학생들도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지거나 아예 한국을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KAIST 출신 박모(34)씨가 그렇다. 박씨는 대학원 시절에는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여러 편 쓸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대기업 계열 SI업체에 들어간 그는 4년 전 회사를 퇴직하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박씨는 "참신한 소프트웨어 아이디어를 내봤지만 조금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기존 프로그램 유지 보수만 시키는 데 좌절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킹서비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중학교 시절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하버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인물이다. /AFP
소프트웨어 개발을 일당제 노동자로 대접

IT업계에서는 우수 인재들의 소프트웨어 푸대접 구조를 만든 것은 정부의 소프트웨어 개발비 산정 방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등급을 실력과는 무관하게 학력과 연차에 따라서 매긴다. 개발 업무를 발주하면 연차에 따라 시간급에 차등을 주어 지급한다. 건설업계의 노무 인력에 적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개발 업체는 고급 개발자는 시급 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중급 개발자로 대체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실력을 쌓은 고급 개발자는 개발에 참여하지 못하고 매니저로 승급하거나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KTH 박태웅 부사장은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사람과 시킨 일만 하는 평범한 사람이 똑같은 대접을 받는데 어떤 천재가 이 업계로 들어오겠느냐"고 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인수·합병(M&A)이 거의 없고, 대기업들이 소프트웨어를 푸대접하는 것도 문제다. 세계 최대의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창업자는 모두 구글에 인수되면서 돈방석에 올랐다. 그런 소프트웨어 창업의 '대박 신화'가 미국의 젊은 인재들을 계속 소프트웨어 창업에 뛰어들게 만들고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가 그럴듯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M&A는커녕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대기업이 내놓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해당 소프트웨어 업체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소프트웨어 분야로 뛰어들어 도전하려는 젊은이가 드물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소프트웨어 분야는 실력이 뛰어난 2~3명이 책상 하나로도 창업할 수 있다"며 "우리도 성공한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주고 인수하는 M&A 문화가 활성화돼야 뛰어난 인재들이 소프트웨어 산업에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저주받은 로또…171억 당첨 후 9년만에 알거지돼 자살 기도한 英 남성

지난 13일 영국 노포크주 다운햄 마켓에 사는 마이클 캐럴(28)이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캐럴은 그러나 이웃의 신고로 구급차에 실려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캐럴의 자살 기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6일에도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다가 친구에게 발견돼 실패했었다. 1주일 새에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두 번 모두 실패한 것이다. 캐럴은 왜 이처럼 자신의 목숨을 끊지 못해 안달인 것일까?

영국 데일리 메일의 16일 보도에 따르면 캐럴은 엄청난 행운아이다. 그는 9년 전인 2002년 11월 로또에 당첨돼 973만6131파운드(약 171억원)의 당첨금을 받은 부자였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행운이었을 로또 당첨이 캐럴에게는 저주였다.

청소부로 일하며 힘든 생활을 하다 갑자기 큰 돈을 손에 쥔 캐럴은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흥청망청 탕진에 나섰다. 마약과 술, 여자, 사치품에 빠져 엄청난 재산이 어디로 새나가는지 알지 못했다. 171억원이 넘는 큰 돈은 어느새 단 한 푼도 그의 손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무일푼이 되자 여자친구를 포함해 그의 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 남은 것이라고는 술에 절어 알콜중독자가 되고 140㎏이 넘는 보기 흉한 몸뚱이뿐 집도 절도 없는 고단한 신세였다.

돈을 흥청망청 쓰는 동안 폭행과 음주운전 등 여러 차례 범법을 저질러 교도소에도 들락날락 했다.

캐럴은 결국 풍요로운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좌절감과 삶에 대한 허탈감 때문에 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캐럴이 첫번째 자살을 기도했을 때 그를 발견해 목숨을 구한 그의 친구는 "캐럴은 몹시 의기소침해 있다. 그가 자살을 기도한 것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현재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이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몹시 슬퍼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럴은 두 번째 자살 기도 후 다행히 죽겠다는 생각을 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는 두 아들을 위해 다시는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뚱뚱해져 과거에 하던 청소부 일에도 복귀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당분간은 파트타임으로 페인트칠을 하는 일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할 계획이라고 캐럴은 말했다.

스타벅스서 쿠폰 사용하고…공항서 짐 직접 챙기고…
로크 신임 주중 미국대사 ‘소탈행보’
“중국 관리들과 대비” 찬사
»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공항에서 베이징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게리 로크(61·중국명 뤄자후이) 대사가 공항 스타벅스 매장에서 쿠폰을 내고 커피를 사려다가 점원이 쓸 수 없는 쿠폰이라고 거절하자,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모습
14일 주중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첫 중국계 주중 미국대사로 부임한 게리 로크(61·중국명 뤄자후이) 대사는 최근의 부채 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미국에 투자한 자산은 안전하다며 채권국 중국을 안심시키는 내용에 초점을 맞췄다. 또 “최우선 과제는 미-중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며, 위안화 환율과 북한 문제도 주요 과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입국 과정에서 찍힌 그의 두장의 사진에 쏠렸다. 하나는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공항에서 베이징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그가 공항 스타벅스 매장에서 쿠폰을 내고 커피를 사려다가 점원이 쓸 수 없는 쿠폰이라고 거절하자,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모습을 매장에 있던 중국인 여행객이 찍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린 사진(사진)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소탈한 대사의 모습이 사치스럽고, 과시적이고, 부정부패로 벌어들인 돈을 흥청망청 쓰는 중국 관리들과 대비된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또 하나는 12일 밤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한 로크 대사가 수행원이나 경호원들에게 짐을 맡기지 않고,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채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든 채 공항을 빠져나가는 모습. 그의 부인 모나와 세 아이도 모두 큰 짐을 메거나 든 보통 여행객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탈권위주의적인 면모가 집중보도되며, 로크는 중국에 부임하자마자 ‘스타’가 됐다. 중국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웃으며 “나는 내 일을 스스로 하기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중국계 이민자의 후손이 미국대사가 돼 금의환향한 소감에 대해서는 “중국 이민자의 자손으로서 내가 태어난 미국과 나의 가족이 소중히 여기는 미국적 가치를 대표해 여기 서 있다는 게 영광스럽다”며 자신이 미국을 대표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로크 대사는 할아버지가 중국 광둥성 타이저우에서 미국으로 이민가 뿌리를 내린 가정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 3세다. 예일대를 졸업한 뒤 미국 역사상 첫 아시아계 주지사(워싱턴주), 중국계 첫 상무부 장관 등으로 미국의 이민사를 새로 써왔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서울 ‘나홀로’ 가구, 4인가구 첫 추월

[한겨레] 윤영미 기자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보니
24.4%…4인보다 1.3%p↑
1·2인가구 합치면 절반
독신·이혼 등 증가 탓
40대 독신남 10년새 2배

서울에서 홀로 사는 1인가구가 지난해 처음 4인가구를 앞지르면서 가장 주된 가구 형태가 됐다. 이는 부부와 자녀로 이뤄지는 기존 핵가족 개념의 근본적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서울시가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분석해 15일 발표한 ‘2010 서울 가구구조 변화’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서울의 전체 가구에서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4.4%(85만4606)로 4인가구 비중 23.1%(80만7836)를 넘어섰다. 3인가구는 22.5%, 2인가구는 22.3%로 집계됐다.

2000년까지만 해도 서울에는 4인가구가 전체 가수 수의 32.1%(98만9621)로 1인가구 16.3%(50만2245)의 배 가까이 차지하며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이후 2010년까지 4인가구는 18.4% 감소한 반면, 1인가구가 70.2%나 증가하면서 역전됐다. 같은 기간 2인가구도 52만4663가구에서 78만1527가구로 크게 증가했다. 1~2인가구가 서울 전체 가구에서 46.7%를 점유하며 두 집에 한 집꼴로 1~2인 가족으로 바뀐 셈이다.

1인가구 비중이 높아진 것은 학력 상승과 생활편의 추구,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 등으로 혼인율이 낮아지면서 젊은 독신 가구가 늘고, 고령화와 이혼 증가 등으로 고령 독신이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1인가구를 혼인 상태로 구분하면, 미혼이 60.1%(51만4003명)로 가장 많고 사별 17.4%, 이혼 12.6% 차례였다. 10년 전과 견줘보면 미혼이 74.3%, 사별이 56.2%, 이혼이 90.4% 증가한 것이다.

특히 40대 독신 남성은 2000년 3만6216명에서 2010년 7만4630명으로 10년 사이 배나 급증했다. 40대 서울 남성 77만4354명 중 9.6%가, 즉 10명 중 1명이 혼자 살고 있는 셈이다. 40대 남성 독신의 이유는 미혼 56.7%, 이혼 21.8%, ‘기러기아빠’나 별거와 같은 유배우 20.0%, 사별 1.4%로 나타났다. 10년 전과 견줘 보면 미혼이 199.9% 늘면서 40대 남성 독신 증가를 이끌었다.

40대 독신 남성뿐 아니라 30대 독신 남녀와 20대 독신 여성 증가도 1인가구가 늘어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0년 동안 30대 독신 여성은 81.4%, 독신 남성은 61.2% 증가했고, 20대 독신 여성도 52.2% 늘었다.

김상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은 “1~2인가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등 가구 구조가 변화하는 데 맞춰 서울시도 소형주택 공급을 늘리고 노령화 대책을 적극 마련하는 등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O2/커버스토리]한중일 3000명 결혼관 조사해보니…

女 아직도 사랑? 男 그래도 사랑!
한국女 “사랑보다 돈 중시” 중국女 “상대男 집 있어야” 일본女 “직업있는 男 선택”

 

《 “당신은 아름답고 능력도 있는데 왜 아직 결혼을 ‘못한’ 건가요?”

혹시 주변의 30대 여성에게 이런 ‘실례’를 범한 적이 있는가. 보통 사람이라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리라 전제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불편한 진실’에 주목해 보자. 한국의 여성, 특히 30대는 “결혼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고 말한다. 한국 미혼 여성들은 돈 없는 결혼은 상상하기조차 싫어하며, 결혼 후 불거질 시댁과의 갈등에 대해 강한 공포감을 느낀다. 심지어 한국 여성 다수는 그 갈등이 깊어지면 사랑하는 남편과 이혼도 불사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시댁이나 처가를 바라보는 한국 남녀의 시각은 ‘비교체험 극(極)과 극’을 방불케 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서도 그대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여성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질 텐가.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의 연중기획 ‘한중일 마음 지도’ 프로젝트가 이번에는 한국인의 결혼관과 이성관을 중국인 및 일본인과 비교해 살펴봤다. 조사 결과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결혼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컸다. 중국 여성은 한국 여성과 비슷한 경향성을 보이면서도 이혼에 대해서만큼은 보수적이었고, 일본인은 남녀 공히 ‘결혼은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O₂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4개월 전 ‘한중일 마음 지도’ 첫 회에 등장했던 혜리를 다시 등장시켰다.

당시 외로움에 빠진 20대 한국 여성을 대변했던 혜리가 이번에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로 변신해 한국 여성들의 ‘결혼관’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

 

○ 한국 여성 3분의 1만 “결혼은 필수”

가상의 한국 여성 ‘혜리’.

혜리는 현재 교제 중인 남자친구가 자꾸 결혼을 요구하자 고민에 빠져 있다. 친구들도 그렇고 혜리 역시 ‘결혼이란 것을 꼭 해야 하나’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넘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먹고살 만큼은 벌고 있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부모님이 남자친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남자친구를 사랑하지만 부모님의 뜻을 거슬러가면서까지 결혼에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결혼. 혜리에게는 참 쉽지 않은 문제다.

한국 여성 중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3.4%에 불과해 한국 남성(57.0%)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중국 여성(51.6%)과 일본 여성(44.4%)보다도 크게 낮은 수치다. 특히 한국의 30대 여성은 4명 중 1명꼴인 25.7%만 결혼을 당연시해 같은 연령대 한국 남성(50.7%)의 절반에 불과했다.

한국 여성들의 절반 이상(54.4%)은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부모세대가 많이 포함된 40, 50대가 부모의 뜻에 거스르는 결혼에 더 부정적이었지만, 미혼 여성들도 50%나 같은 답변을 내놨다. 한국의 미혼 남성들은 26.1%만이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돈 없는 결혼? “꿈도 꾸지 마!”

혜리의 남자친구는 집요하다. 그녀가 없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혜리도 더는 모른 척하기가 어렵다. 결혼을 결정하기 위해 가장 고려해야 할 문제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친구는 또래에 비해 소득이 높은 편이다. 그 대신 씀씀이도 커서 모아둔 돈이 많아 보이진 않는다. 남자친구가 살짝 한심해 보인다. 대부분 자신과 데이트를 하느라 써버렸다지만 그 흔한 적립식 펀드 하나 들어놓지 않았다니 걱정이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1만 원짜리 한 장도 쓰기 겁난다던 친구네 부부 얘기가 남 일 같지가 않다.

‘돈이 없어도 사랑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는 로맨틱한 답변은 한국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여성은 3국 중 가장 낮은 14.2%만 여기에 동의했다. 특히 미혼자(11.2%)의 동의 수치가 기혼자(15.8%)보다 더 낮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남자들 중에서는 중국 남성의 46.2%가 사랑만 있는 결혼에 흔쾌히 동조해 ‘로맨틱 가이’로 꼽혔다.

반대의 질문에는 어땠을까. ‘조금 덜 사랑하지만 상대방이 부유하다면 결혼할 수 있다’는 명제가 주어지자 다소 씁쓸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 남성(44.6%)과 여성(45.0%) 모두 절반 가까이가 동조의 뜻을 밝혔다. 일본(22.5%)의 두 배 가까운 수치였고, 중국(37.3%)보다도 훨씬 높았다.

○ 결혼 준비? “일단 집부터 구해!”


혜리는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결혼을 한다면 우선 신혼집부터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원룸에 사는 남자친구가 집을 장만할 목돈이 있을 리 없다. 설상가상으로 지방에 있는 남자친구네 집도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지금 같은 전세난에 당장 전셋집을 구하기도 버거워 보인다. 이 남자, 대체 뭘 믿고 나와 결혼하자는 걸까.

집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중국이 비슷했고, 일본은 뚜렷한 차이를 나타냈다. ‘결혼 상대자가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는 것’(중복응답)을 묻자 중국 여성의 48.6%와 한국 여성 33.8%가 ‘집’을 선택했다. 일본 여성은 단 4.4%만 집을 선택한 반면 현금(1년 연봉 이상)을 선택한 이가 무려 36.2%에 달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라경수 HK연구교수는 “한국에서는 결혼을 할 때부터 집은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이고 전세나 월세로 시작한 부부의 평생소원은 집을 장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면 일본의 신혼부부들은 거의 월세로 시작하고, 집을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지도 않기 때문에 배우자가 집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라 교수는 “일본은 신용카드보다는 현금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현금 중심적 사고가 강하다”고 덧붙였다.  

▼ 한국 여성 52% “성격 안맞으면 결혼 1년내 이혼할 수도” ▼

한편 한국의 20대 여성 중 9.2%는 결혼 상대자 부모의 경제력을 결혼의 주요 조건으로 꼽았다. 같은 연령대의 중국 여성과 일본 여성 중 같은 대답을 한 비율은 각각 3.5%, 3.9%에 불과했다.

○30대 한국여성 15.7%만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대할 자신 있다”

혜리는 오랜만에 여고동창들을 만난 뒤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결혼을 한 친구든 하지 않은 친구든 ‘시댁’ 얘기만 나오면 너나 할 것 없이 흥분모드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밉상 캐릭터들과 판박이라든지, 시댁에서 속상한 일이 있으면 남편까지 원수처럼 여겨진다든지 하는 얘기에 박수까지 치며 몰입했다. 시댁에서 키우는 강아지까지도 밉다는 친구도 있다.

그렇잖아도 혜리는 이번 주말에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뵙기로 해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어느새 ‘그냥 약속을 미루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버렸다. 아프다고 해볼까? 아니면 갑자기 해외출장을 가게 됐다고 할까? 그냥 결혼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한 것뿐인데, 갑작스레 지방에 계신 분이 올라온다고 하니 정말 한숨만 나온다.

시댁에 대한 한국 여성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30대 한국 여성의 70.7%가 ‘결혼 후에는 어쩔 수 없이 시댁(또는 처가)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전체 연령대를 보더라도 65.0%가 같은 대답을 했고, 미혼자(58.4%)보다 기혼자(68.6%)의 비율이 더 높았다. ‘나는 시댁(또는 처가) 어른들을 친부모처럼 대할 자신이 있다’는 제시문장에 대해서는 30대 한국 여성의 15.7%만이 그렇다고 했다. 같은 연령대의 한국 남성(52.9%)과는 정반대의 시각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문옥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장(문화인류학)은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압축 근대화로 인한 세대 간 충돌이 더 심한 편이다”며 “한국보다 수십 년 앞서 핵가족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 한국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 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일본 여성 중에서는 23.0%만이 시댁과의 갈등을 ‘필연’이라 여겼다. 동시에 시댁 어른들을 친부모처럼 대할 자신이 있다는 답변도 15.2%에 그쳤다. 이는 아들 부부가 시댁으로부터 상당히 독립돼 있음을 의미한다. 라 교수는 “일본에서는 아들 부부와 시부모 간 관계가 상당히 객관화돼 있다”며 “일본에도 ‘고부갈등’을 의미하는 별도의 용어가 있지만 고부간이 한국에서처럼 끈적끈적한 관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시댁이 싫으면 남편을 사랑해도 이혼”

혜리는 결혼 얘기가 나온 뒤부터 남자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더 세심히 바라보고 있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연애를 하는 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닐까. 막상 같이 살다보면 나와 성격이 맞지 않는 건 아닐까. 최근 급증한 이혼율 통계를 접할 때는 불안한 마음이 더 커진다.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혼 생각을 하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혼을 경험한 친구가 있긴 하다. 그 친구는 시댁 문제로 자주 다투다 결국 남편과 헤어졌다. “남편을 아직 사랑하지만,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친구가 안쓰러웠다.

한국 여성 절반이 넘는 52.2%가 ‘결혼한 지 1년이 안 되었더라도 배우자와 맞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60.7%로 가장 높았고, 40대(57.8%)가 다음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여성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한국 남성의 34.2%가 같은 답변을 한 것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이혼에 대한 여성의 거부감이 남성보다는 적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남성(42.0%)이 여성(37.0%)보다 비율이 높아 대조를 보였다.

‘시댁(또는 처가)과 갈등이 심각해지면 배우자를 사랑하더라도 이혼할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 남녀의 시각차가 매우 컸다. 이 질문에 동조한 한국 남성은 14.0%에 불과했지만, 여성은 39.8%나 됐다. 한국 사회에서 시댁이 갖는 의미를 재차 확인해 주는 수치다.

감우성 손예진 주연의 드라마 ‘연애시대’처럼 이혼한 뒤에도 배우자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중국인들의 답변이 가장 눈에 띄었다. 중국인 45.6%가 전 배우자와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답해 한국(25.4%)과 일본(10.5%)보다는 더 ‘쿨(cool)한’ 면모를 보였다.

혜리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던 어린 시절이 가끔 떠오른다. 그때는 정말 결혼이란 게 아름답고 행복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정작 결혼적령기가 된 지금은 자신이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정말 결혼을 하고 싶은지조차도 헛갈린다. 그런 혼란 속에서 결혼을 위한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 높다는 생각에 힘이 든다. 남자친구는 이런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줄까. 결혼은 정말이지 참 피곤하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여준상 동국대 교수 marnia@dgu.edu

 

[O2/커버스토리]외로움에 빠진 20대, 일탈 꿈꾸는 50대

우리가 몰랐던 한국인의 마음 지도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com

 

‘질투심의 화신’ 20대 여성과 ‘쿨(cool)하지만 위태로운’ 50대 아저씨.

우리나라 20대 여성의 속마음엔 봄바람은커녕 시베리아의 삭풍이 불고 있다. 그들은 자기보다 나은 타인에 대해 매우 강한 질투심을 갖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독한 집단이다. 다른 나라의 20대 여성 자살률은 동년배 남성의 절반 정도이지만 한국에서는 자살하는 여성의 수가 이미 남성을 넘어섰다.

반면 50대 남성들은 전 연령대 중 상대적으로 가장 마음 편한 인생을 살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가장 적게 신경 쓰고, 스트레스도 가장 낮다. 하지만 삶의 무료함을 참지 못하고 자극적 경험을 원하는 경향이 제일 강하다. 일탈의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이가 ‘신정아 스캔들’ 류의 자극적 경험을 원한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는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와 함께 30일부터 연중 기획 ‘한중일 마음 지도’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대홍기획(콘텐츠 기획)과 엠브레인(설문 실시)도 파트너로 참여했다.

한중일 마음 지도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마음을 분석하면서 중국인 및 일본인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한중일 3국에서 1000명씩, 총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첫 회에서는 우선 한국의 특징적 세대를 분석하고, 한국인의 정신적 특성과 관련한 주요 포인트들을 소개한다.
(아래 본문에서 긍정적 답변은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의 합이다. 부정적 답변은 ‘전혀 그렇지 않다’와 ‘그렇지 않다’를 합친 것이다. 경향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는 5점이 만점이다. 1점은 ‘전혀 그렇지 않다’, 2점은 ‘그렇지 않다’, 3점은 ‘보통’, 4점은 ‘그렇다’, 5점은 ‘매우 그렇다’이다. 아래 기사에 등장하는 혜리는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가상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 인물 여러 명의 발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 한국 20대 여성, 과소비-외국행으로 출구 찾아

“외국인 남자친구요? 쿨하잖아요. 한국 남자보다 자상하고, 여성을 평등한 시각에서 바라봐 주거든요. 가족 간의 관계도 평등해서 좋아요. 남자친구 부모님께서는 한국 사람처럼 집안이나 배경을 많이 보시지 않더군요. 유럽분들이라 그런지 나 자신을 더 많이 봐주시는 것 같아요. 솔직히 부모님 노후 문제나 형제자매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한국보다 자유로운 편이라 부담이 적어요.”

혜리는 벨기에 출신 남자친구와 열애 중이다.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꿋꿋이 참아내고 있다. 결혼 후 유럽에 가서 살면 모든 것이 해결될 테니까. 요즘엔 인터넷 카페에서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눈다. 카페 대문에는 “항상 우리 곁에는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도와주고 격려해 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란 문구가 걸려 있다.

그녀가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 것은 여성학 수업 교재로 ‘경계선 위의 여성들(Women on the Verge·카렌 켈스키·2001년)’이란 책을 읽고 난 다음이었다. 책은 억압적인 기업문화와 가족 구조에 반발한 일본 여성들이 해외 유학이나 외국인과의 결혼에 나서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 불이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처럼 해외 연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지금의 현실에 많이 답답해해요. 여성 입장에서 한국은 사회 환경이 열악하고 경쟁이 너무 심하니까요. 취직도 힘들잖아요.”

여성의 20대 무렵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20대 그녀들은 심리적인 압박과 갈등으로 ‘상실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특히 예전 선배들에 비해 자아가 강한 이들은 자신의 ‘주체적 삶’과 관련해 많은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일부는 그로부터의 출구를 외국행이나 과소비 등에서 찾는다.

마음 지도 조사에서 20대 여성들은 타인의 시선에 매우 민감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절반 이상(52.3%)이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염려한다고 답했다. 특히 취업시장에서의 성차별은 여성이 자신의 욕구가 아니라 사회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게 만든다.

“선영은 살얼음 같은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배운다고 말한다. 가진 것도 특별히 없고, 얼굴도 그다지 예쁘지 않다고 말하는 선영은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사회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란다.… 같은 조건이면 남자를 뽑는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저는 학점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남성들이 배우는 것처럼 극기 훈련부터 동아리 활동까지 모든 것을 다 했어요. 나의 여성성을 삭제하기 위해 술자리도 과감하게 가려고요.”(“누구를 위한 ‘섹시한’ 미래인가” 중·변혜정 서강대 상담교수)

혜리는 때로 답답한 마음을 충동구매로 푼다. 마음 지도 조사 결과 20대 여성의 충동구매 지수는 3.55점으로 동년배 남성(2.92점)을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스트레스가 높다는 점에서 20대 여성의 충동구매는 ‘강박구매’에 가깝다. 스트레스 정도는 전 연령대 중 20대여성(55.4% 긍정)이 가장 높다. 강박구매를 하는 소비자들은 불쾌한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욕구 때문에 물건을 산다.   

“마음이 공허할 때 명품을 사면 어느 정도 기분이 좋아져요. 물론 한 번에 많은 돈을 쓴 것 때문에 후회도 하지만요. 하지만 가끔 명품을 사고, 해외여행을 하지 않으면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아요.”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0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자살률(10만 명당 13.2명)은 OECD 평균(5.2명)의 2배를 훨씬 넘어선다. 특히 20대 여성 자살률(25.4명·이하 2009년 기준 통계청 자료)은 2008년에 이어 남성의 그것(25.3명)을 넘어섰다. 대부분의 OECD 회원국 20대 여성 자살률은 남성의 절반 이하다.

○ 체념에 익숙해 ‘안정적’이 된 한국 50대 남성


공자는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하늘의 뜻을 알아 순응’하는 나이라는 뜻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번 조사에서 한국의 50대 남성은 다른 나이대에 비해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2.68점) ‘시기 질투도 대체로 낮고’(2.91점) ‘불평이 적으며’(2.84점) ‘스트레스도 가장 낮은’(3.06점)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일을 쉰 지 3년 되는 김정욱 씨(55)와 현직에서 일하는 백홍열 씨(53)는 담담하게 “포기하는 거죠”라고 입을 모았다. 김 씨는 “이제 다른 기회는 없다는 현재 한국 사회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알아버렸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쿨하지만 이면에는 체념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로 평생고용이 무너지고 자신보다 겨우 몇 년 선배들이 회사를 떠나는 걸 봤다. 명예퇴직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일상이 되는 걸 몸으로 겪었다. 김 씨는 말한다. “그때는 구조조정 되는 직원들은 ‘눈물의 비디오’라도 만들었어요. 일종의 격렬한 저항이었죠. 지금은 저항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압니다.” 백 씨는 “우리는 조직에서 튕겨져 자영업을 하거나, 아니면 곧 일을 정리하게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세대”라고 했다.

50대는 미래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지도, 추구하는 가치가 크지도 않다. 더 성장하거나,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대부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렸을 때 “라면을 매일 먹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며 자랐고 연공서열이 확고할 때 일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얼마를 받을지 명확했고 미래도 불투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체계는 거의 다 깨졌다. 문제는 이들이 성과지상의 새 체제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것. 백 씨는 “아마 지금 50대는 대부분 ‘나는 중산층’이라고 말할 것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요새는 차라리 ‘1970, 80년대 우리나라의 현실이 고마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앞만 보고 살면 됐기 때문이다. 열심히만 하면 기회가 보장되던 때”라고 했다. 체념에 익숙하다 보니 시기, 질투, 불평이 필요 없다. 아니, 소용없다는 걸 안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이렇게 자조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안정돼 보이는 50대 남성이 왜 다른 누구보다 ‘자극적 경험을 강하게 찾는 것’(63.2% 긍정)일까.

하나는 ‘인생 뭐 있어?’라는 생각이다. 과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명확해진 상황에서 남은 길은 자아실현뿐이다. 자아실현 방법은 생각보다 여러 가지다. ‘더 나이 들기 전에…’라는 생각이 더해지면 ‘애인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댈 때도 있다. 이야기가 통하는 30대 여성과의 연애를 꿈꾸며 실현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뒤늦은’ 로맨스는 여성에게 뭔가 줄 수 있는 남성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김 씨는 잘라 말한다. 김정운 명지대 사회교육원 여가경영학과 교수는 50대 남성의 로맨스 추구에 대해 “젊은 시절 암울한 시대 상황 때문에 낭만적인 경험을 해보지 못한 ‘박탈당한 청춘’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설명했다.

극한 쾌감을 맛보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역의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전시회를 순례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도 한다. 성장한 아이들에게서 멀어지고 배우자와도 소원해져 30, 40대에 비해 더 외로움을 느끼는 50대는 그저 일상을 탈출하고픈 욕구가 커진다.

원만한 삶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내심 자극적인 것을 찾으며 자아실현에 애쓰는 이들 50대 남성은 공격성(38.9%) 및 이와 비슷한 남성성(50.5%)도 평균 한국인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백 씨는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외환위기 같은 시대상황의 산물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격변을 겪으며 사회 흐름에서 도태되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방어의 심리가 공격성으로 잠재해 있다는 풀이다. 김 교수도 “50대 남성의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창 사회활동을 하던 1970, 80년대의 압축성장과 군부독재의 경험이 이런 성향을 이들의 심리에 집단정서로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어쩌면 50대 남성은 두려울지 모른다. 백 씨는 “인생에서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50대임을 쉽게 인정하기도 싫다. 조사에 응답한 50대 남성들은 대부분 자신이 아직도 40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 연령대 중에서 실제(호적상) 나이와 본인이 생각하는 외관상 나이의 차이는 50대에서 가장 컸다. 한국의 50대 남성들은 자신이 실제 나이보다 일곱 살이나 어려 보인다고 답변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만물상] 회고록의 진실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는 미테랑 대통령을 14년 동안 그림자처럼 보좌해 '미테랑의 휴대용 컴퓨터'로 불렸다. 그런 그가 1996년 미테랑이 죽었을 때 장례식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대통령 특별보좌관 시절 일기를 모아 몇 해 전 펴낸 회고록이 문제였다. 아탈리는 책에서 독일의 통일 움직임을 접한 미테랑이 "독일 통일은 유럽에 또 한 차례 전쟁을 몰고 올 것"이라며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썼다. 독일 통일 당시 미테랑은 영국의 대처 총리에 비해 지혜롭고 유연하게 대응했다는 평을 듣는다. 미테랑은 살아있는 동안 아탈리를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체니 부통령은 모든 일을 막후 조종하면서도 지문을 남기지 않는다." 부시정부 초기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스콧 매클렐런은 물러난 뒤 회고록에 그렇게 썼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한 진짜 이유는 중동 장악이었으며 후세인의 대량 살상무기 위협은 핑계였다"고도 했다. 부시의 백악관 참모들이 들고일어나 "좌파 블로거 같은 얘기"라며 비난했다. 부시는 회고록에서 "체니를 임명한 것이나 이라크전쟁이나 모두 정당했다"고 썼다.

▶한 나라를 다스렸거나 한 시대를 요리했던 사람들이 쓰는 회고록은 무엇보다 생생한 사료(史料) 가치를 지닌다. 흐루쇼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사후(死後) 미국에서 출판된 회고록에서 "6·25전쟁은 김일성이 기획하고 스탈린이 승낙한 침략전쟁"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오랫동안 우리는 한국전쟁이 남한 주도로 시작됐다고 주장해왔지만 이제 역사를 위해 진실을 말한다"고 했다. 그는 김일성이 남침계획을 갖고 스탈린 별장을 찾아왔을 때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회고록에 털어놓았다.

▶같은 시기 같은 일에 관계됐던 사람들이라도 회고록에 따라 증언이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필자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내용을 부풀리고 불리한 것을 감추려는 경향 때문이다. 최규하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은 항룡(亢龍·하늘에 오른 용)의 위치에 있으니 재직 때 일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아예 입을 다물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근 출간된 회고록에서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에게 대선자금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6·29선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측은 펄쩍 뛴다. 엇갈리는 말들 속에 어느 쪽이 진실인지, 나중에 역사는 제대로 기록할 수 있을까.

 

 

[만물상] 맞바람

자동차회사 피아트의 오너였던 조반니 아넬리는 1953년 결혼할 때 이미 호가 난 바람둥이였다. 그는 프랑스 주재 첫 여성 미국대사로 유럽 사교계의 꽃이었던 파멜라 해리먼, 미스 스웨덴 출신 섹시 스타 아니타 에크베르그와 관계가 깊었다. 남성 패션을 이끌 만큼 옷맵시도 뛰어났다. 그러나 아넬리의 아들은 이런 아버지와 피아트사를 멀리하며 종교에 심취했다가 다리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이름난 미국 배우 윌리엄 홀든은 레이건과 낸시가 결혼할 때 가장 가까운 들러리였지만 정치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유부남 홀든은 1954년 영화 '사브리나'를 찍다가 오드리 헵번과 로맨틱한 사이로 발전했다. 헵번은 홀든의 아이를 원하며 더 적극적이었지만 홀든이 몸을 사려 사이가 깨졌다. 말년의 홀든 곁을 지킨 사람은 동물보호운동을 함께한 여배우 스테파니 파워스였다.

▶재클린이 남편 존 F. 케네디의 난봉꾼 행각을 참다 못해 아넬리·홀든과 맞바람을 피웠다고 말한 육성 증언이 일부 보도됐다. 영국 신문은 재클린이 "백악관 침실에서 다른 여자의 속옷을 발견하고 울화가 치밀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자기의 맞바람에 대해선 "은밀한 로맨스로 남편 속을 썩이는 게 기뻤다"고 말했다 한다. 재클린이 '50년 뒤 공개'를 조건으로 남긴 육성 테이프는 곧 공개될 예정이다.

뉴욕 상류층 커플의 외도를 다룬 영화 '라스트 나잇'이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개봉됐을 때 한 미국 잡지가 설문조사를 했다. '애인이 있는데도 다른 이성에게 흔들린 적이 있는가'에 여성의 73%, 남성의 54%가 '있다'고 답했다. '애인이 바람을 피우면 어떡할 것인가'에는 여성 17%가 '보복 연애를 한다'고 했고, 남성 8.7%가 맞바람을 피우겠다고 했다. 여성들이 유혹에도 더 약하고, 상대방 외도를 더 못 견뎌 한다는 분석이 따라붙었다.

▶맞바람 이야기는 스타·정치인 할 것 없이 툭하면 뉴스를 탄다. 평범한 짝들이 빚어내는 보복 연애와 치정도 가십성 사건기사의 단골 소재다. 영화·드라마·연극에서 맞바람은 관객몰이의 약발이 센 편이다. 그리스 신화시대나, 50여년 전 재클린 때나, 지금이나 외도와 맞바람은 잦아들 줄 모른다. 마침 의정부의 한 판사가 간통죄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다시 물었다. 위헌이든 아니든 '바람'이 없어야 '맞바람'도 잠들 텐데….

 

 

[만물상] 예술가의 이름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화백은 자기 그림을 전시회에도 쉽게 빌려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는 화랑과의 관계에서도 작품 값을 놓고 타협을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가격을 고집했다. 자기를 아끼고 주장이 강한 예술가였던 만큼 사람들은 유 화백이 작고하면 그의 이름을 내세운 번듯한 미술관 하나쯤은 만들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2002년 세상을 뜨며 "내 이름으로 된 미술상(賞)과 기념관을 만들지 말라"고 했고 유족은 이를 따랐다.

▶죽어서도 자기 작품이 칭송을 받고 이름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건 예술가들의 꿈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가 세상의 몫이듯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세상의 권리다. 전주의 '혼불문학관'이나 하동의 '토지문학관'은 작가의 삶과 작품을 아끼는 사람들 마음이 모여 만들어졌다. 이들은 작가의 손때와 땀이 묻은 유품과 작품 세계를 뒷받침하는 각종 자료들로 많은 발걸음을 불러 모으고 이들 가슴에 오래도록 작가 이름을 살아 있게 한다.

▶어떤 예술가들은 자기가 나서서, 심지어는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이름을 단 문학관이나 미술관, 기념관을 만들려고 한다. 화가들 중에는 작품 일부를 연고가 있는 지자체에 기증하고 그 대가로 자기 이름을 붙인 미술관을 세워줄 것을 흥정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 옛말에 "선비 중에 상(上)은 이름을 잊고, 중(中)은 이름을 세우고, 하(下)는 이름을 훔친다"고 했다. 사후(死後)의 이름까지 자기가 관리하겠다고 하는 건 과욕일 뿐 아니라 현명하지도 않다. 이런 사람들이 예술계뿐 아니라 우리 주변엔 너무 많다. "그 이름을 물에 썼던 자 이곳에 누워 있노라." 영국 낭만파 시인 키츠는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죽으며 오직 이 한 구절만 묘비에 새겨달라고 했다.

경기도 구리시가 올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가 살던 아차산 자락 아치울 마을을 '박완서 문학마을'이라 이름 짓고 주변에 문학관, 문학공원, 문학비 등을 만들려 하자 유족이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유족은 "어머니는 '아치울'이란 이름을 사랑했고 길·마을 어디에고 당신 이름이 남기를 원치 않으셨다"며 "오직 작품으로만 사람들 기억 속에 남고자 했다"고 했다. 평생 글 써서 모은 돈 13억원을 세상에 맡기고 훌훌 떠나더니 이름에 대해서도 매한가지다. 그렇게 해서 '박완서'라는 이름은 선비의 맨 윗자리에 자리 잡았다.

 

[청춘상담앱] 진리를 찾지 마, 일리 있는 삶이면 돼!
등록 : 20110811 19:40 | 수정 : 20110811 22:18

 

 
“놀아야 성공한다”는 김정운 명지대 교수가 말하는 재미와 행복의 가치

“친구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요?” “요즘 젊은이들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선 나도 아는 바 없어. 내 관계도 힘든데. 알아서 헤쳐나가.”

“청춘에게 한 말씀?” “난 누구 가르치는 거 싫어해. 집에서도 애들한테 훈계는 잘 못하고 대신 삐치는 건 잘해.”

헐,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지난 4일, 대학생 세명과 기자는 인생의 재미를 찾기 위해 ‘재미주의자’로 유명한 김정운(49)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를 만나러 갔다. 평소 톡톡 튀는 주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그는 예상대로 예상을 벗어나는 답변을 쏟아내 학생들을 긴장시켰다. 거침없는 달변 속에는 흔히 말하는 ‘정답’이란 게 없었다. 하긴, 인생의 정답을 찾으려 했거나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 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게 맞다. 김정운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알아서 헤쳐나가”라며 인생살이에서도 요즘 대세인 ‘자기주도학습’을 적극 권장하는 그의 철학은 무엇인지, 한 대학에서 잡지를 함께 만들며 청년들의 고민을 나누고 있는 김삼영·유지향·화강윤씨가 탐구했다.

논다는 게 도대체 뭔가?

화강윤 연구실이 마치 대통령 관저 같네요.

김정운 베스트셀러 저잔데 이 정도는 돼야지! (모두 웃음)

화강윤 어떻게 하면 베스트셀러 저자가 될까요?

 
김정운 많이 굴러다녀. 여기저기서 얘기 많이 듣고. 사람들이 공감하는 얘기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해. 가르치려고 하면 안 돼. 내가 글 쓰는 방식은 ‘난 당신과 얘기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야. 설사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저 사람 이야기 일리 있다’ 정도 반응이면 돼. 진리가 아니라 일리! 모두 진리를 얘기하려니까 싸움이 일어나는 거야.

김삼영 교수님은 늘 ‘잘 놀아야 성공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런 인생철학을 갖게 된 계기가 뭔가요?

김정운 내가 그런 얘기 하니까 사람들이 날 잘 노는 사람인 줄 아는데, 난 잘 노는 사람이 아니야. 대신 안 놀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알지. 사람들은 흔히 한국 사회의 문제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나 자유·민주주의 억압의 문제로 설명을 해. 틀린 얘기 아냐. 다 맞아. 근데 문제는 그 얘기만 한다는 거야. 민주주의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삶이 행복해지고 재밌어질까? 자유·민주·평등 이런 것들을 난 수단적 가치라고 생각해. 이와 동시에 무엇을 위한 자유이고 평등인지, 궁극적 가치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해. 수단적 가치에 대한 얘기는 많이 하는데, 재미와 행복이란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은 없어. 그래서 내가 얘기하기 시작한 거야. 한편으로 내 삶을 돌아보면, 내가 왜 이렇게 꼬이는가, 삶에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왜 재미없는가, 좋아하는 게 분명치 않은데 재미없지, 그럼 뭘 좋아하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글 쓰는 거 좋아해.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걸 분명히 하는 것에서부터 해결책이 시작됐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까 나도 즐거워지고 내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도 많아지고…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건 즐거운 일이지. 그래서 사람들한테 좋아하는 것 찾으라고 하는 것이고.

화강윤 남한테 인정받으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건 스스로의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김정운 나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남한테 인정받는 게 다른 차원은 아냐. 둘은 심리학적으로 같은 구조야. 남과 비교하기보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 동기부여하는 사람이 용기 있고 주체적인 삶을 살겠지. 그런데 남한테 인정받는다는 게 돈 많이 벌고 높은 지위 얻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어줄 수 있을 때야. 우리는 이야기하려고 살아.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이야기하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그때가 다른 사람과 할 이야기를 찾아내려는 시간이기 때문이야.

유지향 혼자서 그냥 쉬고 생각하는 것도 교수님이 말하는 놀이에 포함되나요? 놀이의 정확한 개념이 뭔가요?

김정운 그런 것도 놀이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혼자 음악 듣고 글 쓰고 잡생각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놀이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니고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유지향 젊었을 때는 뭐 하고 노셨어요?

김정운 젊었을 땐 오직 국가와 민족에 대한 고민을 했지. (웃음) 나도 전형적인 학생운동 세대였는데, 이건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큰 문제야. 교조적인 부분 말이지. 국민교육헌장을 외울 수밖에 없었고. 국가와 민족 문제에 고민하는 걸 철저히 훈련받았지.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지.

김삼영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도 교수님한테는 놀이가 되지 못했던 건가요?

김정운 그 치열함과 사회변화에 대한 신념이 한편으론 놀이가 됐고 한편으론 되지 못했지. 그런데 그것만으로 삶 전체를 이끌어나갈 수가 없더라고. 밥 먹고 살아야 하고 결혼하고 애 키워야 하고… 이런 구체적인 삶 속에서 즐거움이 없으면 피곤하고 힘들어. 우리 땐 그런 식의 삶의 즐거움을 얘기하면 ‘프티 부르주아’ 취향이라고 비난받았지. 그 시대에 그런 다양한 이야기가 빠졌다는 게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어.

우리는 과정을 사는 거다

김삼영 ‘요즘 젊은이들은 분노하지 않고 생각 없이 산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정운 나도 젊은 시절에 치열한 분노 속에 살았어.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고. 난 다른 가치를 얘기하고 싶어. 자신이 재밌어하고 좋아하는 걸 구체적으로 찾아보라는 거지. 자네들 학과가 사회학과, 역사학과, 신문방송학과라고 했는데, 그건 대학에서 짜준 커리큘럼일 뿐이야. 나는 예를 들면… 음… 창문학? 이런 거 공부하고 싶어. 왜 한국 건물이 후질까 고민해봤거든. 원인이 창문이야. 그렇다면 창문학을 해보는 거야. 요새 내가 만드는 학문이 있는데 ‘에디톨로지’, 편집학이야. ‘세상은 편집되는 거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니 무척 재밌는 거야. 건축공간의 편집이야. 음악은 속도·박자·음높이의 편집. 이 나이에 세상을 판단하는 내 나름대로의 굉장히 중요한 기준을 얻은 거야. 그런 자세로 세상을 폭넓고 다양하게 보면 설득력 있는 얘기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화강윤 아 네. 선생님은 어떤 글에서 “재미는 존재의 근거이고 당위와 의무로는 내 삶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는데요. 그렇다면 당위와 의무로 가득 찬 군대 2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김정운 나는 학생운동 하다가 제적되고 강제징집 당해 최전방에서 3년을 보냈기 때문에 그 시절은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괴로운 시간이었지. 그때 미래가 뭐가 있겠어. 그런데 군대라는 것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데 어쩔 수 없는 거야.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아.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해. 군대에서 보급하는 ‘진중문고’라고 있는데, 난 항상 포켓에 넣어 다녔지. 책 볼 시간 없는 것 같지만, 훈련 나가 참호에서도 읽고 달빛 아래에서도 읽었던 것 같아. (학생들, 못 믿겠다는 눈빛) 진짜 달빛이 환하면 글이 보여. 달빛 아래서 편지도 많이 썼지. 내가 지금 남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객관적으로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잖아? (웃음) 내 글쓰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군에서 편지 쓰는 걸로 갈고닦은 능력이야.

김삼영 주로 누구한테 쓰셨어요?

김정운 고참들이 편지를 쓰라고 시켰지. (폭소) 옛날 가요책 보면 펜팔이라고 맨 뒷장에 여자들 주소가 나와. 이름과 주소만 보고 편지를 썼는데 답장 오는 비율이 98%야. (웃음) 군대를 당위로만 받아들이면 힘든 거지. 내 나름대로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필요해. 우리는 과정을 사는 거야. 목표를 사는 게 아니야. 그런데 사람들은 목표만 얘기해.

화강윤 저의 가장 큰 문제는 게으른 거예요. 공부하고 책 읽자 마음을 먹지만 잘 안돼요.

김정운 게으르다는 것에 죄의식 가질 필요 없어. 게으르다는 건 인간의 에너지가 한쪽으로 많이 쓰였기 때문이야. 인간이 가장 창조적일 때가 멍하니 있을 때야. 게으르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지. 만약 만날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만 본다면 문제가 있지. 사유가 존재하는 게으름은 얼마든지 게을러도 돼. 멍하니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생각을 하고, 문득 ‘내가 왜 이런 생각 하지?’ 하는 경우가 있다고. 흔히 ‘생각이 날아다닌다’고 하는데, 그럼 그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찾아보라고. 천재와 또라이의 차이가 뭐냐면, 천재는 생각이 날아갔다가 이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거슬러 찾아가. 또라이는 못 찾아가. (웃음)

화강윤 티브이를 부숴버려야겠네요.

모든 고민거리를 ‘나의 행복’과 연결지어보자

김삼영 저희는 항상 불안해요. 뒹굴고 있으면 불안하고, 당장 8월말 토익 봐야 하고, 국어시험 봐야 하고. 난 여기서 뭘 하고 있지, 하는 불안감이 너무 커서 교수님이 말한 창조적인 게으름도 못하고, 휴식으로서 놀이도 못 즐기고, 그렇다고 정해진 목표치 달성도 힘들고… 과정 자체가 총체적으로 힘들어요.

김정운 인간은 다 불안하지. 내일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 불안하니까 어떻게든지 미래를 통제해보려고 지금 열심히 하는 건데… 그렇다고 미래가 통제되는 것도 아냐. 불안해서 열심히 하는 것과 즐거워서 열심히 하는 건 달라. 어떻게든 즐거워서 시작하는 걸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다들 불안감에 젖어 토익 공부하고 그러거든. 그러면 꼬이는 거야. 그때 꼬이면 평생 꼬여. 난 대학 때 꼬이니 45살까지 꼬여가지고. (웃음) 좋은 데 취직해봐야 얼마 가겠어. 내 친구들 좋은 데 취직했다가 이제 다 나와. 인생 길거든.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느릴지 몰라도, 삶이 훨씬 재밌어져. 그게 지속가능한 삶이야. 지속가능한 삶의 토대를 마련하는 시기가 젊은 시절이라고 생각해.

유지향 한 조사 결과를 보니, 우리나라에서 ‘지방’에 살고 ‘돈’과 ‘연인’이 없는 학생이 제일 불행하다고 나왔더라고요. 그런 학생들은 경험할 수 있는 폭이 좁은데 재미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김정운 그게… 나도 유학 시절 내내 주말마다 경비 일 하면서 돈 벌었어.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 못 하지 않았어. 낚시 다니고… 즐거움을 찾아다녔지. 물론 최악의 힘든 경우도 있어. 그 문제를 모르는 게 아냐. 그러나 사람이 고통스러우려고 사는 게 아니거든. 내가 대학 시절 재밌게 보내야 한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그걸 꼭 등록금 문제로 환원시켜서 내 문제제기를 가치 없는 걸로 만들어 버려. 요즘 학생들 알바하기 힘든데 당신은 한가한 소리나 한다고. 등록금 문제도 정말 중요하지만 즐겁게 사는 문제도 절실해. 등록금이 고민이라면, 등록금 문제가 과연 내가 추구하는 궁극적 행복, 가치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해. 나아가 내가 이 대학, 이 학과를 반드시 졸업해야 하는 건가 하는 문제까지 고민해야 하고. 만약 그렇다면 등록금 투쟁 해야지. 피부로 와 닿지 않으면 솔루션도 안 나오고 힘이 안 생겨.

유지향 교수님의 활동을 보면, 대중과 지식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활동에 어떤 사명 같은 게 있나요?

김정운 한국 지식인의 문제는 허위의식이야. 어렵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어려운 개념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설명하기 위해 생긴 건데, 대학교육에서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체계가 빠지니까 학생들이 토익이나 공부하고 대학을 취직을 위한 장소로 생각하는 거지. 우리는 우리 학문을 안 해. 우리가 우리 시대를 처절히 고민한다면 거기에 맞는 언어를 사용해야지. 대중과 지식인이 괴리돼 있으니까 일반 사회에서는 막장드라마나 보고, 아이돌 허벅지 얘기나 하고. 우리 사회가 어디에 관심 있는지 인터넷에 떠도는 낚시성 제목들 보라고. 나는 내 삶의 과제가 있어. 삶의 다양한 차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도록 내가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면 내 삶도 재밌어질 수 있을 것 같아. 진행·정리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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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운 명지대 교수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개인연구실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에서 청년 인터뷰어들과 삶의 재미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즐거움을 찾는 용기

그는 첫 만남부터 분주하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의 외모는 아인슈타인의 천재성, 혹은 의외성을 연상시켰다. 양말을 거침없이 벗어던지는 행동에는 자유로움이 묻어났고, 연구실을 가득 메운 책들은 그의 사유가 얕지 않음을 암시했다. 그의 인상은 평소에 칼럼이나 강연장에서 즐겨 만나던 ‘김정운’이라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전동화처럼 풀어가는 그의 이야기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진리’보다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감’의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와 내가 함께 경험하고 공감하는 이야기에서 즐거움과 재미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잘 먹히는 구라’들을 통해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좀 다른 ‘일리 있는’ 말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맞다. 사람은 누구나 설득당하지 않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런 견고한 방패 위에 나만이 옳다는 논리의 창을 퍼부은들 어떤 문제도 해소될 수 없다. 하지만 이 시대의 담론들은 날카로운 창들뿐이고, 그런 살벌한 판에서 우리 청춘들은 점점 더 자기에게로만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나를 포함한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진리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자신있게 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웅크려 자신의 안전판만을 견고히 하는 데 노력과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삶이 주는 즐거움, 삶이 추구해야 하는 즐거움을 찾는 일은 자꾸만 수능 후로, 취업 후로, 집을 산 후로 유보되는 것이다.

서로 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접점을 찾아간다면 갑갑한 소통의 단절도,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도 즐겁게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청춘들도 더 밝은 표정으로 스스로를 세상에 내놓을 자신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과 격정적인 말투, 그러다가 가끔씩 해맑은 미소로 자기를 드러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는 자신감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나는 불안감보다는 즐거움 속에서 삶을 만들어 나갈 작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화강윤

모든 자신감엔 근거가 있다

인터뷰 내내 나는 그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에 혀를 내둘렀다. 스펙과 등록금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자신의 삶에 빗대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라는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니 그의 근자감은 자신이 하고픈 일을 제대로 알고 그 길을 충실히 걸어가는 사람의 특권이었다. 역시, 모든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기 마련이다. 유지향

일리 있는 재미주의자

도무지 <한겨레>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 미디어에 비친 그의 모습은 사회구조의 문제는 배제하고선 개인의 문제로 모든 것을 치환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김정운이 <한겨레> 칼럼에 등장했을 때 당황했다. 그러나 막상 만나고 보니 그는 ‘일리’ 있는 재미주의자였다. 그와 이야기 나누며 누군가가 정해준 진리에 강박적으로 맞추어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재미있게, 일리있게 살고 싶다. 김삼영

감정절제된 수직 리더십, 불만땐 ‘레이저 광선’
 
 
[성한용 선임기자의 대선주자 탐구] 박근혜

쿠데타로 집권했던 군 출신 대통령의 딸이 이 시대에 대통령을 할 수 있을까? 그의 리더십은 권위적일까, 민주적일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사실은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것이다. 그는 22살이던 1974년 어머니가 숨진 뒤 5년 동안 청와대에서 아버지를 보좌하며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했다. 1997년 45살의 나이로 정치에 입문할 때도 ‘박정희의 딸’이라는 덕을 봤다.

그러나 정계 입문 이후 14년 동안 그는 ‘신뢰의 정치인’ ‘원칙의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자신만의 정치 스타일과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30%대의 안정적인 지지율을 확보한 것이 그 증거다. 박근혜 전 대표는 도대체 누구일까? 어떤 정치인일까?

먼저 공인 의식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보통 정치인들과 확실히 다른 면모가 몇 가지 있다. 무엇보다 사고방식이 다르다. 그의 머릿속에는 ‘개인’이나 ‘욕망’은 없고, ‘국가’와 ‘원칙’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쳐서 무서울 정도다.

보통 정치인들은 “이렇게 하면 당신에게 유리하다”거나 “저렇게 하면 우리에게 몇 표가 온다”는 말을 좋아한다. 유권자의 표를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정치인의 속성상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반드시 면박을 당한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규칙을 정할 때 협상에 나갔던 측근이 “이 안을 받아들이면 불리하고, 이렇게 해야 유리하다”고 보고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유리하다 불리하다고 말하지 말라. 어떤 게 당헌 당규에 맞는 것이냐, 무엇이 옳은 것이냐”고 따졌다. 그의 측근들은 “지금도 박 전 대표를 설득하려면 ‘이렇게 하는 게 유리하다’는 표현보다,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이나 욕망보다 국가와 원칙을 중시한다.
‘전략’이란 단어는 ‘속임수’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정치는 ‘쇼’가 아니라는 것이다.
차갑다는 평가엔 “허무개그를 하고 깔깔 웃는다”며
인간적 측면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전략’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전략을 ‘속임수’와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으면 그만이지 무슨 전략이 필요하냐”는 말을 자주 했다. 가식이나 포장을 싫어하는 것은 물론이다. 언젠가 주변에서 정치인은 ‘18번’(즐겨 부르는 노래)이 있어야 한다며 노래를 하나 정해서 팬카페에 올리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가 없다”고 거절했다. ‘쇼’는 안 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해나 욕망, 욕심을 혐오하는 박근혜 전 대표의 특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의 한 측근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선천적인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에서 사관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개인주의가 억제되고 국가주의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미노베 다쓰키치라는 도쿄대 법학자가 천황기관설을 주장했다가 국가주의자들의 압력으로 귀족원 의원직을 사임한 일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만든 국민교육헌장을 읽어보아라.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 아니냐.”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의는 그 시대의 통치철학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그 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다. 그의 발언이나 행동에서 개인적이거나 인간적인 것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국가주의 그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적 리더십이 독선적이라는 비판은 의미심장하다. 그를 보좌한 경험이 있는 한나라당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으로서는 그만큼 수련된 사람이 없다. 헌신성, 공인 의식, 감정 통제, 언어 절제는 놀랍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은 지나치게 수직적이다. 지금은 국가 지도자가 톱다운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수평적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기도 어렵고, 되고 나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폐쇄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측근들도 박 전 대표의 진의를 잘 모른다. 보스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고 보스의 표정을 지나치게 살핀다는 점에서 동교동(김대중 전 대통령) 문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아랫사람에게 너무 차갑다는 증언도 있다.

“당 대표로 모실 때 결재판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서류를 몇 장 넘겨보다가 갑자기 의자를 창 쪽으로 돌려 외면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식은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결재판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독선적 리더십과 관련해서는 적극적인 반론도 존재한다. 사실은 박근혜 전 대표의 문제가 아니라 측근들이나 대화 상대방의 문제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를 가끔 만나는 정책 전문가는 “내용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대하면 박 전 대표는 얼마든지 알아듣고 받아들인다”며 “훌륭한 학생”이라고 평가했다. 또 “나는 박 전 대표를 사석에서 가끔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격의없이 대화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주변 인사는 “그를 여자라고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당하게 되어 있다. 그는 경륜이 있는 정치 지도자다. 나이가 벌써 60이다”라고 말했다. 쌀쌀맞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인간적으로 차가운 사람이 결코 아니다. ‘허무개그’를 하고 깔깔대는 모습을 기자들도 자주 보지 않았느냐”는 반박이 있다. 비판만큼이나 반박도 일리가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다른 문제점 중 하나는 호가호위형 인물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다. 2007년 경선을 도왔던 인물 중에 돈 문제에 얽혀 수사를 받았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도 박근혜를 팔며 자기 정치를 하는 다수의 사람이 존재한다.

호가호위형 측근이 많지만 그들은 비리로 구속되면
“박 전대표가 살려줄 것”이라고 자신 못한다.
직설법과 반말은 안한다.
사이비 교주 의혹을 받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형제들과의 갈등은 어두운 개인사다

박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친박 인사들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물어본 일이 있는데, ‘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더라”며 “그런 사람들을 중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측근 인사는 “언젠가 친박 정치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당신들 비리로 구속되면 박 대표가 살려줄 것 같으냐’고 물어봤더니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해진 일이 있었다”며 “친박 인사들도 박 전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원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 정권이 되는 것이지, 친박정권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수첩공주’라는 별명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식과 경륜이 짧다는 비판을 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 별명을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 측근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수첩에 뭔가를 적을 때는 나중에 반드시 챙긴다는 의미다. 기자들의 취재수첩과 마찬가지다. 수첩만 보고 읽는 정치인으로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박 전 대표에게 해명하자고 건의했다. ‘그냥 두세요. 아니면 됐지요’라고 대답하더라.”

박근혜 전 대표의 화법은 어떨까? 그는 좀처럼 직설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가 사람에 대해 보고를 했을 때, 박 전 대표가 “그 사람 잘 아시잖아요?”라고 말하면 긍정이다. 반대로 “그 사람 잘 모르시잖아요?”라고 말하면 부정이다. 박 전 대표는 측근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없다. 대신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의견을 내는 게 고작이다.

반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와 조카에게만 반말을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언어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매우 발달해 있는 셈이다. 동시에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특유의 ‘레이저 광선’을 쏘는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공인이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 된 뒤 ‘큰 영애’로 불렸다. 그리고 20대부터 국정에 개입했다. 어느 정치인도 이런 이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의 과거에 대한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권에 떠도는 이야기를 추적해 보았다. 그의 대학 시절 동기, 청와대 담당 비서관 등 몇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적극적인 증언을 거부했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혹시라도 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기자가 알고 물어보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관계를 바로잡고 보충해 주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1979년 10·26 직전 부마항쟁(당시는 부마사태) 공수특전단 철수에 개입했다는 얘기는 사실이었다. 이 이야기는 박근혜 전 대표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운영위원들의 입을 통해 처음 흘러나왔다.

1979년 부마항쟁때 공수특전단 철수를
아버지에 건의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국가주의정권의
퍼스트레이디 경험 탓에 독선적이란 비판을 받는다.
“수평적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국가지도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1970년대 말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1주일에 한두 차례 박근혜 전 대표와 테니스를 쳤다. 테니스를 친 뒤에는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이 자리에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참석했다. 기자들로서는 매우 중요한 취재 현장이었다. ‘큰 영애 보좌’를 주임무로 하던 최필립 공보비서관(현 정수장학회 이사장)도 참석했다.

1979년 10월15일 부산대를 시작으로 시위가 터져 온통 나라가 어수선했다. <뉴스위크>에 군인들이 시위대의 귀를 잘랐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근혜 전 대표는 테니스를 치는 대신 기자들에게 ‘부마사태’에 대한 민심을 들었다. 민심이 뒤집혀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고, <뉴스위크> 보도는 사실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필이면 특전단을 투입해 대학생들과 충돌이 커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시 간담회에 <중앙일보> 기자로 참석했던 성병욱 인터넷신문 심의위원장은 “학생데모에 시민들이 호응하고 있는데, 부가가치세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고 회고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최필립 비서관에게 기자들의 얘기를 타자로 치라고 한 뒤, 아버지(박정희 대통령)에게 공수특전단 철수를 건의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불쾌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근혜 전 대표가 최필립 비서관에게 “비서관님, 경호실장(차지철)에게 지시하세요. 특전단 당장 철수시키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필립 비서관은 박근혜 전 대표의 입에서 나온 공수특전단 철수 지시를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전달했고, 차지철 실장은 정병주 특전단 사령관에게 철수를 지시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당시 정부에서 하는 일 가운데 잘못된 것을 주로 아버지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부가가치세 도입에 대한 부정적 여론, 김영삼 신민당 총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및 의원직 제명이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도 아버지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임무’는 어머니(육영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게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이다. 청와대 안의 ‘야당’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언론인들의 견해를 꽤 존중했다고 한다. 구국여성봉사단 명칭을 한마음봉사단으로 바꾼 것도 언론인들의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

대학 시절에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몇 가지 일화가 있다. 박 전 대표는 서강대 전자공학과 70학번이다. 그의 입학 동기들은 청와대에 가서 다과회를 했던 추억이 있다. 누군가 박 전 대표의 어머니에게 “친구끼리 야자해도 괜찮으냐”고 묻자, 육영수씨는 “서로 존댓말을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박 전 대표와 그의 전자공학과 동기들은 서로 존댓말을 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등교할 때 반드시 신촌로터리에서 차에서 내려 학교를 걸어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에게 말을 쉽게 붙이지 못했는데, 대통령 딸이어서가 아니라 워낙 단정한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구쟁이 남학생 후배가 그에게 “누나 빵 사줘”라고 자주 조른 일이 있는데, 경호원이 이 남학생을 빵집으로 데려가 큰 봉지에 한가득 빵을 사주고 “다시는 큰 영애님에게 빵 사달라고 하지 말라”고 경고한 일이 있었다. 박 전 대표는 다음날 그 남학생에게 “그건 내 뜻이 아니다”라고 사과했다.

일탈도 있었다. 어느 날 박 전 대표가 사라져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녀들 숙소 뒤편 쪽문을 통해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 명동 중앙극장까지 가서 영화 <천일의 앤>을 보고 온 것이었다. 박 전 대표는 동기 남학생이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가 제적되자 어머니에게 얘기해서 그 학생을 취업시켜 준 일도 있다.

물론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다.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그의 주변 인사들은 “젊은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영적인 위안을 받은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최태민 목사는 사이비종교 교주 출신이라는 의혹을 비롯해 여러가지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1975~1979년 신문을 보면 박근혜 전 대표와 최태민 목사가 행사에 함께 참여한 사진과 기사가 실려 있다. 지금 인터넷에서도 관련 의혹을 제기한 블로그나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의혹이 잠시 제기된 적이 있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검증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가족과의 관계도 박근혜 전 대표의 약점이다. 그는 부모가 다 돌아가신 뒤에 동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여동생 박근령씨와는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지금도 관련 소송이 진행중이다. 박근혜 전 대표 앞에서 근령씨 얘기를 꺼내면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고 한다. 한때 마약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남동생 지만씨도 박근혜 전 대표의 취약점이다.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잡음도 역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표 본인이 설명해야 할 대목이다.

shy99@hani.co.kr


박근혜 연표

1952 대구 출생

1970 서강대 전자공학과 입학

1974 모친(육영수) 사망

1979 부친(박정희) 사망

1997 한나라당 입당

1998 대구 달성 재보선 당선

2004 한나라당 대표 취임

2007 한나라당 대선 경선 패배

» 1966년 11월 가족과 함께.

» 자서전에 담긴 1972년의 모습.

» 1979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과 함께.

» 2009년 5월 미국 방문 뒤 인천공항에서.

성한용 선임기자의 대선주자 탐구

정치인은 만인의 술안주다. 동시에 만인의 친구다. 사람들은 정치인을 싫어하지만 바로 그 정치인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한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흐릿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사람들은 유명 정치인의 외모, 출신 지역, 학력, 경력 정도로 그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한다. 그러다 보면 정치인의 실체는 좀처럼 알기가 어렵다. 2012년이 다가오면서 대선주자급 정치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은 갖춘 것일까? 또 하나의 이미지를 덧씌울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몇몇 정치인에 대한 관찰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황성준 칼럼]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읽고

살아있는 운동권 화석들, 공짜 밥에 자유 팔다

무상급식 개념에 경악한 캐나다의 진보 지식인들...“그것이 가능해?”

 공짜 점심에 자유를 팔 것인가
싸구려 점심에 ‘자유’를 팔아먹으려 하다니
황성준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읽고

“무상급식? 그것이 가능해?”

최근 캐나다를 방문, 10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캐나다 기자와 맥주 한 잔을 한 적이 있다. 이 친구는 기자, 작가, 사회운동가 등 여러 캐나다 친구들을 함께 데리고 나왔으며, 과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이야기를 안주 삼아 즐겁게 대화했다.

필자가 한국에서의 무상급식 논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만 하더라도, 필자는 이 캐나다 기자를 무상급식 찬성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친구는 미국 보수주의 진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이른바 ‘미국식 리버럴’이었으며 필자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복지국가에서는 으레 무상급식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무상급식을 실시하지 않고 있었으며, 스스로 ‘진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 캐나다 기자 친구도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아니 함께 자리를 같이 한 캐나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무상급식이란 개념 자체에 경악하고 있었다.

무상급식 개념에 경악한 캐나다의 진보적 지식인들

오히려 당황한 것은 필자였다. 이들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이유는 정부의 재정능력과 같은 지엽적(?) 문제가 아니었다.

“무상급식? 그런 전체주의적 발상이 자유 대한민국에서 가능해?” 필자의 서툰 영어 때문에, 필자가 잘못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날 함께 자리한 캐나다 진보 지식인들은 필자를 취재(혹은 취조)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필자도 이들의 관점을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다른 발상법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은 대화가 상당히 진행된 다음이었다. 이들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이유는, 아니 무상급식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선택의 자유’, ‘개인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정부 혹은 학교 당국이 일률적으로 학생들의 식탁을 결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며, 아니 돼지고기 자체를 먹지 않는 학생도 있을 것인데, 메뉴는 누가 정하느냐”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다양한 입맛과 요구를 무시하고 어떻게 획일적(혹은 전체주의적) 식탁을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들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무상 공동급식이란 아프리카나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지, K-Pop의 국가이자, G20 의장국 역할을 했던 대한민국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들과의 대화는 필자가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이야기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2002년의 일이었다. 약 10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 옛 ‘동지’들과 회포를 나눌 때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서로의 생각을 서로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솔직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을 때였다. 필자는 필자대로 ‘세월이 흘렀으니, 철이 들지 못했더라면 때라도 묻었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 옛 친구들은 그들 나름대로 필자가 먹고 살기 위해 조선일보에서 일을 했지만, 그래도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그들과 생각을 함께 한다고 믿고 있었던 때였다.

전교조 활동가로 일하는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소부르조아 가족제도 철폐와 사회적 공동 식탁제로 가기 위한 핵심 중간고리로서 무상급식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솔직히 당황했다. 아직도 저런 화석이 존재한다니! 1980년대 숙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구 쏟아내던 이념을 지금도 저렇게 순결(?)하게 지키고 있다니!

그러나 문제는 화석이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주라기 공원’에서처럼 생명을 얻어 부활돼 우리의 자녀들의 뇌수에 ‘원시공산사회’를 이상향으로 주입시키고 있는 위험한 현실이었다. 그렇다! 이 대화를 잊고 있었다. 이번 무상급식 문제는 단순히 국가 재정이 무상급식을 허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회적 공동 식탁제’로 나가려는 전체주의자들과 이러한 ‘노예로의 길’을 거부하는 자유민 간의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투쟁인 것이다.

살아 있는 운동권 ‘화석’들, 그들의 무상급식 논의

물론 자유는 소중한 만큼 또 향유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아무나 자유를 즐길 수는 없는 것이 객관적 현실이기도 하다. 한 줌의 빵도 얻을 수 없는 자들이 자유를 이야기한다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는 국가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싸구려 점심에 ‘자유’를 팔아먹으려 하다니.

구약성경에서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어리석음과 무엇이 다를까. 국가나 사회가 보호해 주어야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점심 한 끼를 못 먹는 결식아동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와 전체 학생들의 문제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오히려 전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교훈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자유주의 경제학적 관점인 것이다.

서울에 돌아와서 서재를 살펴보니, 한 구석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책이 한 권 있었다. 밀튼 프리드먼 부부가 함께 쓴, ‘선택할 자유’였다.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읽어 보았다. ‘자유와 경제와의 관계에 대한 고전적 탐구’라는 이 책의 부제가 이미 잘 지적하고 있는 바처럼, 문제는 ‘자유’였다. 그러한 자유를 포기하는 순간, 경제적 번영도 사라지며, 우리는 하이에크가 경고한 것처럼, ‘노예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 책은 번역돼 자유기업원에서 출판됐다. 그런데 아뿔사! 절판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판되지도 않고 겨우 출판됐다 하더라도, 잘 팔리지 않아 절판되면 새로 찍지 않는 것이 보수 혹은 고전적 자유주의 진영 출판계 현실이다.

참! 이 책의 모태가 된 같은 이름의 TV 시리즈물이 있다. 그리고 이 시리즈물도 번역돼 있다. 책을 읽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선택할 자유’ 비디오 테이프나 CD를 구입해서 TV나 컴퓨터로 봐도 좋을 것이다. (미래한국)

황성준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미국 20대女 "한국 첫날 밤 충격! 이런 일이…"

[중앙일보]

외국인이 반한 한국 (33) 한국 밤 문화에 빠진 미국인 영어 교사 크리스티나 리트
클럽·노래방·DVD방서 놀다 찜질방에서 피로 푸는 맛이란 …

 

미국인 영어 교사 크리스티나 리트는 한국의 밤 문화가 좋아 한국에 눌러 앉은 경우다. 그녀는 “한국의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밤 풍경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젓가락·병뚜껑게임 하며 과일소주 한잔

한국에서의 첫날 밤을 기억한다. 떠들썩한 거리와 번쩍이는 불빛, 수많은 사람, 한국의 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활력이 가득했다. 새벽 3시가 다 된 시간인데도 이렇게 북적거리다니!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분위기가 아침 7시까지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새벽 1시면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한국에서의 첫 밤이 나에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3년 넘게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의 밤 문화 때문이다. 한국의 밤 문화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살았던 미국 뉴저지에는 한국 사람이 많다. 수많은 한국 식당과 상점이 있다. 한국 식당에 들어가면 소주를 즐기는 한국인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때 소주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처음 소주를 마셨을 때, 보드카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깔끔하고 가벼운 맛이라고 느꼈다. 자체로 훌륭했지만 현재 내가 푹 빠져 있는 건 과일 소주다. 과일 소주는 내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료로 소주에 과일 주스를 섞어 만든다. 파인애플·레몬·블루베리·키위에 심지어 요구르트 맛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다 맛있지만 딸기 소주는 단연 으뜸이다. 과일 주스처럼 단맛이 강하다.

 한국에서 게임 없는 술자리는 상상할 수 없다. 이것이 한국의 술자리 문화다.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31게임’ ‘젓가락게임’ ‘병뚜껑게임’ 등이다. 호프나 바에 들어가면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떠들며 열정적으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두가 비슷한 방법으로 문화를 즐기고 있어서 주변에서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한국 사람은 진정으로 주어진 시간을 즐길 줄 안다. 나는 게임을 하지 않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새벽 5시에 포장마차 ‘잠들지 않는 나라’

저녁에 친구들과 만날 때면 난 서울 홍대 거리나 강남으로 간다. 난 밤새 춤출 수 있는 열정적인 사람이라 아주 자연스럽게 홍대 거리와 강남의 많은 댄스 클럽을 알게 됐다. NB, EDEN, Club Naked 등이 내가 즐겨 찾는 클럽이다. 맨 처음 한국의 클럽에 들어갔을 때 재미있었던 건, 모두가 DJ를 보고 춤을 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모두가 곳곳에서,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춤을 춘다. 궁금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그들도 그 이유를 모른단다. 그들이 DJ를 보고 춤을 추는 이유는 여전히 나에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춤을 추다 잠시 쉬고 싶을 때나 한창 신나게 춤을 춘 다음에는 레스토랑으로 가는데 항상 이른 아침까지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새벽 5시에도 수많은 사람이 떡볶이나 어묵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운 단어 중 하나가 ‘방’이었다. 한국에서는 많은 활동이 노래방·DVD방·찜질방 등 방에서 이루어진다. 이 수많은 방은 24시간 열려 있다. 한국 사람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누구나 노래를 잘한다.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노래방 문화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 거리에 10개, 아니 그보다 많은 노래방이 있는 거리도 봤다. 난 노래와는 친하지 않아 가끔은 친구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두렵지만 한국의 노래방에서는 아무도 내 노래 실력에는 관심이 없다. 한국의 노래방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분위기가 아주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같이 온 사람들 앞에서만 노래하면 된다. 서구 문화에서 가라오케는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곳이라 노래를 할 때면 늘 부끄러웠다.

 밤에 영화가 보고 싶어지면 동네 DVD방에 가면 된다. 친구·가족·연인과 함께 독립적인 공간에서 커다란 소파에 편안히 누워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음료나 간식을 사 들고 들어갈 수도 있다. 미국에는 이런 문화가 없어 한국에서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DVD방에 간다. 홀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독립된 방은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다. 많은 한국 사람이 DVD방이 사적인 이유로 커플들을 위한 공간이라 쑥덕거리지만, 나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밤새 놀고 난 뒤에는 찜질방에 간다. 찜질방은 자거나 쉬거나 목욕을 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곳이다. 한국에 오면 반드시 찜질방에 가봐야 한다. 이 독특한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서, 아니면 단순히 친구들과 밤새 놀다 새벽 4시에 집에 가는 택시를 잡을 수 없을 때 찜질방에 가야 한다. 가격도 저렴하다. 대부분 8000∼1만2000원 정도다. 가능하다면 나는 찜질방에서 살고 싶다.

 한국은 진정 잠들지 않는 나라다. 원하는 것이 로맨틱한 축제의 밤이든, 밤새워 춤을 즐길 수 있는 곳이든, 한국에서는 누구나 밤을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보낸 매일 밤이 모두 즐거웠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하루하루를 모두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앞으로 만나게 될 멋진 한국의 밤을 기대한다.

정리=손민호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기획

크리스티나 리트(Christina Ritt)

1984년 미국 출생. 한국에 먼저 와 있던 언니를 따라 2009년 한국으로 왔다. 원래 계획은 한 달간 한국 여행. 그러나 한국의 매력에 푹 빠져 여행기간이 두 달, 석 달이 되더니 벌써 3년째가 됐다. K팝 댄스 따라하기, 여행이 취미이며 요즘 한국어 배우기에 한창 열중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안양 범계초등학교 영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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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