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d Columnist

How About Better Parents?

By
Published: November 19, 2011

IN recent years, we’ve been treated to reams of op-ed articles about how we need better teachers in our public schools and, if only the teachers’ unions would go away, our kids would score like Singapore’s on the big international tests. There’s no question that a great teacher can make a huge difference in a student’s achievement, and we need to recruit, train and reward more such teachers. But here’s what some new studies are also showing: We need better parents. Parents more focused on their children’s education can also make a huge difference in a student’s achievement.

Josh Haner/The New York Times

Thomas L. Friedman

 How do we know? Every three years, the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r O.E.C.D., conducts exams as part of the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or PISA, which tests 15-year-olds in the world’s leading industrialized nations on their reading comprehension and ability to use what they’ve learned in math and science to solve real problems — the most important skills for succeeding in college and life. America’s 15-year-olds have not been distinguishing themselves in the PISA exams compared with students in Singapore, Finland and Shanghai.To better understand why some students thrive taking the PISA tests and others do not, Andreas Schleicher, who oversees the exams for the O.E.C.D., was encouraged by the O.E.C.D. countries to look beyond the classrooms. So starting with four countries in 2006, and then adding 14 more in 2009, the PISA team went to the parents of 5,000 students and interviewed them “about how they raised their kids and then compared that with the test results” for each of those years, Schleicher explained to me. Two weeks ago, the PISA team published the three main findings of its study:

“Fifteen-year-old students whose parents often read books with them during their first year of primary school show markedly higher scores in PISA 2009 than students whose parents read with them infrequently or not at all. The performance advantage among students whose parents read to them in their early school years is evident regardless of the family’s socioeconomic background. Parents’ engagement with their 15-year-olds is strongly associated with better performance in PISA.”

Schleicher explained to me that “just asking your child how was their school day and showing genuine interest in the learning that they are doing can have the same impact as hours of private tutoring. It is something every parent can do, no matter what their education level or social background.”

For instance, the PISA study revealed that “students whose parents reported that they had read a book with their child ‘every day or almost every day’ or ‘once or twice a week’ during the first year of primary school have markedly higher scores in PISA 2009 than students whose parents reported that they had read a book with their child ‘never or almost never’ or only ‘once or twice a month.’ On average, the score difference is 25 points, the equivalent of well over half a school year.”

Yes, students from more well-to-do households are more likely to have more involved parents. “However,” the PISA team found, “even when comparing students of similar socioeconomic backgrounds, those students whose parents regularly read books to them when they were in the first year of primary school score 14 points higher, on average, than students whose parents did not.”

The kind of parental involvement matters, as well. “For example,” the PISA study noted, “on average, the score point difference in reading that is associated with parental involvement is largest when parents read a book with their child, when they talk about things they have done during the day, and when they tell stories to their children.” The score point difference is smallest when parental involvement takes the form of simply playing with their children.

These PISA findings were echoed in a recent study by the National School Boards Association’s Center for Public Education, and written up by the center’s director, Patte Barth, in the latest issue of The American School Board Journal.

The study, called “Back to School: How parent involvement affects student achievement,” found something “somewhat surprising,” wrote Barth: “Parent involvement can take many forms, but only a few of them relate to higher student performance. Of those that work, parental actions that support children’s learning at home are most likely to have an impact on academic achievement at school.

“Monitoring homework; making sure children get to school; rewarding their efforts and talking up the idea of going to college. These parent actions are linked to better attendance, grades, test scores, and preparation for college,” Barth wrote. “The study found that getting parents involved with their children’s learning at home is a more powerful driver of achievement than parents attending P.T.A. and school board meetings, volunteering in classrooms, participating in fund-raising, and showing up at back-to-school nights.”

To be sure, there is no substitute for a good teacher. There is nothing more valuable than great classroom instruction. But let’s stop putting the whole burden on teachers. We also need better parents. Better parents can make every teacher more effective.

"진보통합,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인터뷰] 손호철 "노회찬ㆍ심상정ㆍ조승수의 '귀순', 상식에 어긋나"

진보통합 논의가 마무리 국면이다. 19일 이정희(민주노동당), 유시민(국민참여당), 노회찬(통합연대)이 손을 맞잡고 통합정당 건설을 선언했다. 한때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17대 국회에서 진보정치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진보신당은 결국 빠졌다. 당의 대중적 얼굴이던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마저 잃은 채로.

어지러운 곡절을 지나온 만큼, 앞으로도 상당기간 통합정당과 진보신당이 진보진영의 완벽한 통합을 이루기는 난망하다. 통합정당이 진보의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 대중적 기반을 확장해낼지, 진보신당이 외골수의 멍에를 벗고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생존해낼지에 따라 진보통합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질 것이다. 큰 선거가 두 번 있는 2012년이 진보정치의 앞길에도 분수령인 이유다.

통합진보정당 논의가 급물살을 타던 즈음 손호철 서강대 교수를 만났다. 자유주의 세력(참여당)을 배제한 선(先)진보통합을 주장해 온 그에겐 현실이 무척 곤혹스러워 보였다. "진보 진영의 다수파는 '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이름하에 자유주의로 수렴될 것이고, 소수파는 대중정당으로 부르기엔 취약한 '등대 정당'으로 남겨질 위험이 있다"는 게 손 교수의 우려다.

손 교수는 '제3의 대안'이라는 진보정당들의 존립 기반을 빠르게 장악한 시민정치에 대해서도 "시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는 있어도 시민에 '의한' 정치라는 측면에선 과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20~40대의 열망에는 민생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치열한 고민이 있는데 과연 안철수, 박원순이 그 해답을 줄 수 있느냐"에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안팎으로 고난의 길이 예상되는 진보정치의 진로는? "그럴수록 밑으로, 현장으로, 지방으로 내려가 탄탄한 기반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진보정당의 위기 뒤에 더 심각한 '노동의 위기'를 바라봐야 한다. 노동정치가 되살아날 때 진보정치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손 교수는 지적했다.

손호철 교수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와 임경구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시민정치에 과연 시민이 있는가?"

프레시안 :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가장 큰 피해자가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이라는 평이 있다.

손호철 : 진보진영이 최대의 피해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의미는 복합적이다. 진보정당이 냉전적 보수세력으로 상징되는 한나라당,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을 상징하는 민주당이란 양대 거대정당 체제에서 제3의 대안으로 대접을 받아 오다가, 이제 그 자리에서도 밀려난 것이다. 지지율로 따지자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지지율을 모두 합쳐 13%까지 올라갔었지만 현재 3.5% 수준으로 급속히 하락했다. 분명히 진보정당의 최대의 위기지만, 이를 뒤집어서 본다면 진보정당이 제3의 대안으로서 자기 역할을 못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보면 한국의 진보정당의 지지기반 자체가 취약한 면도 있었다. 시민운동에 기초한 정당의 공백을 진보정당이 채우며 제3의 대안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한 때 13%까지 지지를 받았던 건 일종의 프리미엄, 가수요였던 면이 있었던 것이다. 진보정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양대 정당을 싫어했던 표를 가져왔던 건데, 이제 그 가수요가 빠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 손호철 서강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소위 시민정치 세력이 이제까지 야권의 외곽부대 정도로 여겨졌는데, 이 진영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정치 진입을 할 것이란 분석도 많다. 시민정치의 파괴력을 어느 정도로 보나?

손호철 : 우선 '시민정치'란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단순히 시민운동 출신이 정치권에 진입했다고 해서 시민정치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로 대표되는 시민들의 주체화를 의미하는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과거 서경석 씨 등 많은 시민운동 출신이 이미 정치권 진출을 했다는 점에서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정당을 통하지 않은 무소속 시민정치인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경우 창당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주당에 입당하지도 않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지만, 과연 무소속 시민정치인이 박원순 시장처럼 당선돼 얼만큼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시민운동가인 랠프 네이더와 그의 녹색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후자의 경우라면 '시민의 자기조직화 방식'으로서의 시민정치라고 할 수 있겠는데, 굉장히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SNS 등을 통한 정치참여는 일종의 '한국판 자스민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있지만, 문제는 이 자체가 불완전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일단 촛불시위에서 드러난 것처럼 주체화가 얼마만큼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한편으로 박원순 시장은 '시민후보'를 내걸고 나왔지만, 이번 선거 과정이나 선거 공약 등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충분히 이뤄진 것 같지는 않다. 출마 과정만 봐도, 진정한 의미의 '시민정치'라면 홀로 백두대간 다녀와 선언하는 것 보다는 출마선언부터 시민들이 의견을 모으고 참여하는 게 맞았을 것이다. 물론 선거공약 등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많은 부분 수렴됐지만, '시민정치'에 걸 맞는 시민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시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는 있어도 시민에 '의한' 정치란 측면에선 과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민생 해결 못하면 2007년의 역사 되풀이"

프레시안 :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20~40대가 박원순 시장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세대론에 대한 분석도 한창이다. 20대는 일자리가 없어 고통 받고, 40대는 고용문제로 불안한 상황, 이런 현실에 기반해 세대문제와 계급문제가 수렴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나?

ⓒ프레시안(최형락)
손호철 :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본다. 사실 지역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장 서울만 봐도 강북엔 호남 출신이 많고 강남에 영남 출신이 많다. 지역문제와 계급문제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문제가 꼭 계급문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세대문제와 계급문제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치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게 2002년 대통령 선거다. 2002년 대선도 이번 선거처럼 2030세대와 5060세대의 표의 양분이 일어났다. 그 때도 세대 간 진보·보수 성향이 확연히 갈라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흐름이 깨졌다. 이후 2030세대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40~50% 가까이 높아졌고, 결국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다. 20~30대가 50~60대보다 과연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 조사를 해봐도 20~30대 사이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조사하면 박정희와 이건희가 항상 높았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결코 진보성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진보성을 띤 부분은 북한 문제와 미국 문제였다. 한마디로 '탈냉전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20~30대의 정치성향이 문화적 진보주의지, 경제적 진보주의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국 노무현을 뽑았던 이들이 이후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이명박을 선택한 이유는 그만큼 노무현 정부에서 청년실업이나 아파트값 등 젊은층의 민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탈냉전이라는 '피의 문제'보단 결국 '빵의 문제'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에 이어 이명박 정부 4년 동안에도 민생문제나 실업문제를 해결하는데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이다. 현재 야당 지지도가 다시 높게 나타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데, 그렇다면 다음 대선에서 야권이 집권해도 그 다음 대선에서 그들이 다시 표를 얻을 수 있을까? 그들이 민생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2007년의 역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집권이 다시 패배의 초석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가 '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고, 그렇게 당선된 이명박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유권자들이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는 것인데, 사실 빵의 문제에 가장 민감했어야 할 진보정치 진영은 이 시기 내내 무기력했다. 자유주의-보수 정부 체제 속에 이 영역을 선도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 기회를 파고들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손호철 :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이 진보진영이 성장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고 실제 성장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원내 진입을 했고, 10%대의 지지율도 받았다. 결국 자유주의로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던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값이 뛰고 부동산이 난리가 났을 때 민주노동당은 침묵하고 정작 엉뚱한 북한 문제에만 매달려 있었다. 민생문제에 아젠다의 우선순위를 놓고 파고들지 못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선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다.

"안철수, 정치감각 뛰어나다. 그러나..."

프레시안 : 안철수 교수가 화제가 되기 시작할 즈음 <프레시안>에 '안철수 현상을 보며 한숨만 나온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었는데, 이제 안철수 바람은 더 커진 것 같다. 어떻게 보나?

손호철 :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한다. 기존정당이 그런 기대와 열망을 주지 못했고, 특히 공익이나 공공선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안철수 원장과 같은 상징적인 인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안 원장이 CEO 출신이지만, 그것도 공익적인 CEO 아닌가.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나 안철수 원장이 공익적 이미지를 갖고 대중이 그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해서, 지금 산적한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20~40대의 열망 속엔 민생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치열한 고민이 있는데 과연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시장이 그 해답을 줄 수 있나? 거기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오히려 이런 현상이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한국정치의 패턴, 즉 열망과 좌절의 진폭으로 다시 흘러갈 것 같은 우려도 있다.

두 번째는 안철수 자신의 문제인데, 정치를 하다면 그가 내용적으로 더 채우고 드러내야 한다. 정치를 기술관료적인 방식으로 풀고, 탈정치적으로 넘어서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건 철저하게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치 한국정치가 병들어 있으니 백신만 있으면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선 안 된다. 정치란 결국 개인이 아닌 가치선택과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공공선, 공익의 인격적 모델이 정치권에 이제까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안 원장에게 환호하는 것 같다. 그 가장 상징적인 사래가 최근 발표한 1500억 주식 기부다. 최근 이런 안 원장의 행보를 보면, 아직 내용이 없어서 판단하기 이르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제 확실히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로 읽히기도 하는데?

손호철 : 저 역시 그렇게 본다. 한편으론 어수룩하고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행보나 움직임을 보면 굉장히 정치9단 같은 세련된 모습이다. 50%나 되는 지지율을 5%의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해 국민들을 감동시킨 것부터 시작해, 마지막 순간 박 후보에 대해 절묘한 방식으로 지지선언을 한 것, 이런 시끄러운 국면에서 재산 환원을 한 것들은 국민이 무엇을 바라지는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본인이 이런 점을 의식하지 않은 것이라면 더 뛰어나다. 국민의 감각과 자신의 무의식적이 감각이 한 시대의 코드로 정확히 동기화된 것 아니겠나.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런 부분과 정책적 내용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안 원장이 청년실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또 한미FTA 같은 쟁점적인 사안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지, 이런 부분에서도 더 내용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제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이회창 별명이 왜 '대쪽'인지 아는가?"이다. 답은 간단하다. 대쪽으로 이름을 날리던 판사 시절 정치를 안했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이나 안철수 원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향후 그들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지금의 공익성과 순수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그들이 그런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정치를 안 했기 때문 아닌가.

프레시안 : 안철수 원장이 신당을 창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여론조사 등의 지표로만 보면 이른바 '제3의 지대'에 대한 가능성은 굉장히 높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어떻게 보나?

ⓒ프레시안(최형락)
손호철 : 안철수 원장이 시민운동세력과 결합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 현재 '혁신과 통합' 등 범야권의 통합 움직임이 있지만 당장 '반한나라 단일정당'을 만들긴 어려운 상태고, 다양한 정당들이 선거연합으로 갈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프레시안 : 사실 기존의 정당이든 제3의 정당이든, 양극화나 빈곤 등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적체된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우리 정치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

손호철 : 그렇다. 그런 맥락에서 제3정당이 과연 해답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최근 등장한 이른바 제3지대론 자체가 정치권이 민생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지 못하고 정파적이고 사익추구 식의 정치행태를 계속하다보니, 이에 대한 실망이 새로운 형태의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난 것 아닌가. 어떻게 보면 2000년 낙선운동의 데자뷰 같은데,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염증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은 아니고 단지 새로운 인물에 대한 열광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 원장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제3지대가 신당을 창당한다면, 관건은 그 정당이 기존의 정당과 조직과 행태 면에서 얼마나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기본적으로 정당은 유럽의 녹색당 같은 진보정당까지도 제도화 및 관료화 될 수밖에 없고, 일정 정도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억압적 국가기구 역할을 하게 된다. 새로 창당되는 정당이 이와 차별화된, 자율을 추구하면서 조직화되는, 즉 '제도화 되지 않는 조직화'의 전범을 만들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프레시안 :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정계 개편이 있을 것 같은데. 안철수 원장 등 제3지대의 부상으로 '거대한 보수-자유주의-왜소한 진보'라는 삼정립 구도가 해체될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호철 : 한국정치를 이념적으로 단순히 재단할 수 없는 이유는 지역정당 체제와 이념정당이 이중적으로 혼재하기 때문이다. 흔히 거대한 보수정당과 자유주의정당, 그리고 왜소한 진보정당으로 나눴지만 그 사이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제3당의 가능성은 1987년 양김의 분열과 삼당합당 이후 늘 관심거리였다. 비호남 야성 유권자를 묶어낼 정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호남정당으로 인식되다보니, 야권 성향의 비호남 유권자가 찍을 정당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안철수 원장이나 박원순 시장이 주목받고 있는 것인데, 일단 이들은 PK(부산경남) 출신인데다 지역주의적이지 않고, 민주당이 아닌 민주화세력으로 여겨진다.

최장집 선생님도 늘 강조하지만, 한국에서 최대 정파는 무당파와 기권자다. 그 사람들을 묶어낼 잠재적 기반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의 정당체제에 변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과거엔 그 때 그 때 움직이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지만, 이제 이들이 조직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07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결국 이합집산했듯이, 최종적으론 힘이 강한 쪽에 흡수되거나 통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동영 외에 자기반성한 사람 못봤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엔 샛강이 흐르고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엔 한강이 흐른다"는 표현이 매우 상징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요새 보면 민주당이 한미FTA 추진을 강하게 반대하는 등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진영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좁혀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손호철 : 그 부분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사람이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라고 생각하는데, 언젠가 정 의원이 '현재 한국의 정당 구도가 잘못돼 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기 전인 IMF 이전의 구도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민주당 쪽으로 옮겨가야 하고 민주당은 민주노동당 쪽으로 옮겨가는 전반적인 좌클릭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사실 한나라당도 많이 옮겨오지 않았나.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만 봐도,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하겠단 말이었지 아예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최근엔 당 일각에서 버핏세 얘기까지 나온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런 면들을 볼 때 저는 진보정당이 세력으로는 패배했을지 몰라도 진보의 아젠다는 거의 관철시켰다고 본다. 뱀에게 잡아먹힌 두꺼비가 속에서 알을 낳듯이, 세력 면에선 실패했지만 정책 면에선 진보가 승리하지 않았나.

사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좀 더 명확하게 하고 넘어가야 한다. 한미FTA 문제만 봐도, 노무현 정부에 비해 이익 균형이 무너져 반대한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투자자-국가제소제(ISD)의 경우 전혀 바뀐 게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하려던 내용 그대로다. 민주당이 근본적으로 자기반성을 해야 할 대목인데, 제가 알고 한 이런 명확한 자기반성을 한 사람은 정동영 의원 외엔 없다.

정책의 과오에 대해선 좀 더 공개적으로 자기비판하고 새로운 단초를 만들 때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이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21세기 한국사회 모델이 무엇인가에 대해 각 세력이 치열하게 논쟁하고 국민적 심판을 받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프레시안 : 진보진영이 향후 가지고 가야 할 정치적 아젠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손호철 : 복지 아젠다는 진보정당만의 아젠다에서 사회 전체의 아젠다로 떠올랐고, 이제 두 가지가 남았다. 하나가 세금 문제이고 두 번째가 경제체제 문제인데, 이 둘 모두를 민주당이 피해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복지 자체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그대로 놔둔 채 거기서 비롯된 사회적 약자 문제를 해결하는 사후적 설거지 아닌가. 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경제체제, 즉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경제체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한 자유주의 정당의 대답은 굉장히 취약한 상황이다.

프레시안 : 그런 경제체제는 많은 각론적 장치를 필요로 할 것 같은데?

손호철 : 사회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도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박원순 시장은 기대 이상으로 진보적 입장에서 잘하고 있다고 본다. 박 시장과 나는 같이 일도 하고 대립도 해 봤는데, 나에게 박원순을 평가하라고 한다면, 자유권에 대해서는 굉장히 진보적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 등에 열심히 나섰던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노동 사회권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만 에피소드를 얘기해보자.

첫째, 참여연대가 중심이 돼 재벌개혁을 들고 나왔는데, 주 내용이 소액주주 운동이었다. 결국 재산권을 재산권으로 견제하는 방안이다. 반면 우리는 대안으로 노동자 경영참여를 제시했다. 대주주 견제를 위해 소액자산가의 권한을 늘리자는, 박원순 식의 대안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윤을 만들어 내는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은 전혀 다른 대안이다. 진보의 대안은 그런 식으로 찾아져야 하는 것 아닐까. 두 번째, 박 시장은 낙선운동을 할 때 부정부패자에 포커스를 맞췄지만 나는 신자유주의 반민중 인사를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쌍용차 사태의 원인, 론스타 사태의 원인, 다 노무현 정부에서 생겨났는데, 그 부분에 대해 분명히 다른 대안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원순 시장에게 그런 면이 있는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훨씬 진보적 입장에서 (시정과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재벌개혁을 하는데 소액주주운동으로 할 것이냐, 노동자 경영 참여로 할 것이냐, 앞으로 이런 부분이 논쟁이 돼야 한다. 시스템 자체, 경제체제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참여당이 민주당보다 진보적인가?"

프레시안 :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돌아왔고, 선거 전술 논의도 한창 뜨겁다. 전반적으로 한나라당부터 자유주의 세력까지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했다면, 진보진영이 자기 정체성만 고집할 게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과의 접점을 넓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손호철 : 선거연합이나 정책연대에 대해선 전적으로 찬성하고,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노, 진보신당 같은 진보정당이 먼저 선(先)진보연대를 해 통합된 힘으로 바게닝 파워를 갖고 범야권 연대를 해야 한다고 본다. 한쪽에서 얘기되는 단일통합정당은 정당 간 힘의 관계나 여러 가지 여건상 어렵다고 보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프레시안 : '혁신과 통합' 같은 단일통합정당을 주장하는 쪽에선 정파등록제 등을 통해 진보정당도 얼마든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는 식인데, 같은 울타리 안에서 진보블록으로 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나?

손호철 : 기술적인 문제일 수 있는데, 대선이면 몰라도 총선의 경우 선거구 조정 문제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단일정당으로 갔을 때 지역구 조정이 더 쉽다는 얘기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결국 조정이 안 이뤄지면, 그 때 가서 박차고 나올 건가? 진보정당으로선 바깥에 있는 게 파워를 가질 수 있고, 각 정당이 자신의 조직적 기반을 넓히면서 유연하게 연대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본다. 당의 정체성을 지켜야만 당원 역시 끌고 갈 수 있다. 예컨대 한미FTA나 노동문제 등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의견이 다를 경우, 각 그룹의 지지자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결국 진보진영의 선(先)통합은 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 진보신당 통합파가 탈당해 '새진보통합연대'를 구성하면서 진보신당을 배제한 채로 진행되고 있다.

손호철 : 물론 현재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통합이 되든 안 되든, 국민을 감동시켜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야 하는데 결국 '그들만의 리그'로 끝났다. 불행하게도 진보신당에서 통합안이 부결됐지만 다음 기회를 생각하며 버텼어야 했다. 다음 총선 이후 다시 통합논의를 하자고 기다렸어야 했는데, 노회찬·심상정·조승수 같은 대중정치인들이 이 판을 깨고 나온 것은 상당히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자신들의 통합안이 부결됐으면 승복을 해야 하는데 당을 깨고 나갔다.

예전에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칼럼 주제로 생각한 게 '이인제-손학규-김건모', 즉 '대한민국 불복종의 계보'다.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결국 칼럼을 써놓고 보내진 않았지만, 이제 손학규-이인제-김건모 뒤에 노회찬-심상정-조승수가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진보신당엔 네 가지 층위가 있다. 먼저 노회찬·심상정·조승수로 대표되는 대중정치인이 있다. 대중정치인은 선거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통합을 주장한다. 두 번째는 액티비스트, 즉 활동가다. 이 층에서 반(反)통합 정서가 너무 강하다. 물론 그들의 심경은 이해한다. 과거 민노당 당권파의 패권주의에 워낙 당한 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당원과 대중의 바람이다. 액티비스트 수준에 머물러 있는다면 그야말로 등대정당이나 새로운 전위정당 밖에 되지 않는다. 대중정당으로 가면 우선 대중의 정서에 초점을 맞춰야하는데, 액티비스트들이 통합을 비토하니 대중정치인들은 정치적 생명을 위해 당을 나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소탐대실한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손 교수는 처음부터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진보 소통합 논의가 재추진됐다. 최근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손호철 : 솔직히 얘기하면,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민주당과의 대통합이 낫다고 본다. 참여당과 통합은 할 수 있는데 민주당과는 안 된다고 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정략적으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몸 불리기라고 한다면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념이나 철학으로 따졌을 때 어떻게 참여당이 민주당보다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나? 민주당이 무상의료 등 이른바 무상시리즈를 제기했을 때 유시민 대표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참여당은 복지·사회정책에 있어선 민주당보다 더 오른 쪽에 있고 통상정책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참여당 역시 정치적 측면에선 개혁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시대 핵심 화두인 신자유주의나 경제, 복지정책에 있어선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정당과는 통합을 하면서 왜 민주당과는 왜 안 되는 것인가? 소통합을 할 바엔 차라리 민주당을 포함한 대통합으로 가야 한다. 민주당이 참여당보다 오히려 더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18일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의 3자 통합이 결국 성사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손호철 : 그들이 기대하는 것이 몸집을 불린 이후 민주당과 협상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념적으로 보나, 정치공학적으로 보나 왜 세 세력이 합쳐야 하는지 명분이 없다. 정치공학적으로 봐도 유시민 대표의 효용은 이제 거의 사라진 것 아니냐. 문재인 이사장의 등장으로 친노 적자로서의 역할도 사라졌고, 안철수 원장의 등장으로 새로운 정치모델이란 기대감도 사라졌다. 또 참여당의 지지율이 바닥인데다, 참여당과의 통합으로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이 떨어지는데 그러면서까지 꼭 함께해야 할 이유가 있나. 특히 진보정당이 살기 위해선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 진영이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이들이 참여당까지 포함된 이 소통합 정당에 과연 지지를 보낼 수 있을까. 진보진영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지 기반을 넓히는 일인데, 이게 확대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결국 그 정당을 대표하는 스타 정치인이야 살아남을지도 모르겠지만, 진보정당의 대중적, 조직적 기반은 확대되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당의 키는 결국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쥐게 되고 이른바 노심조(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의 통합연대는 사실상 흡수되는 '귀순' 형태가 될 텐데, 민주노동당에도 다양한 정파가 있지만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이들이 힘을 얻게 되면 당의 정체성까지도 그 쪽으로 수렴될 것이다. 결국 대중적 진보정당을 얘기하면서 대중성에만 방점을 찍고 진보성을 탈각하는, 결국 우측으로 차츰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나.

프레시안 : 진보통합이 이뤄지더라도 지지부진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른바 통합의 시너지 효과는 이미 거두기 어려워 보인다. 내년 선거에서는 이른바 '단일화' 압박이 유례없이 거세질 텐데, 내년 선거를 앞두고 진보진영의 흐름은 어떻게 내다보나?

손호철 : 결국 민노-참여-통합연대의 통합정당은 셋을 합친 지지율을 웃도는 작은 정당으로 가게 될 것이고 진보신당의 경우 현재로선 1% 정도밖에 기대하지 못할 텐데, 결국 진보정당의 화두는 변혁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추면서 지지층을 확장해 견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난 촛불시위가 보여준 것처럼 대중성과 변혁성이 항상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은 어떤 때는 진보정치인보다 더 변혁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중적 진보정당'이란 이름하에 자유주의로 수렴돼 가는 다수파가 있고, 진보신당의 경우 결국 대중정당으로 부르기엔 너무도 취약한 등대정당으로 남겨질 위험이 있다.

진보정당의 부침은 늘 있었다. 4.19혁명 이후 진보정당이 꽃을 피우다가 5.16에 의해 좌절됐고, 결국 2004년 총선에서 원내에 진입해 짧은 황금기를 거치기까지 43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제 또 2004년에서 10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위기를 맞고 새로 시작해야 할 상황에 놓였는데, 그럴수록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으로, 지방으로 내려가 탄탄한 기반을 쌓아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사실 지금 진보정당의 위기만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 뒤엔 더 심각한 '노동의 위기'가 있다. 귀족노조라고 비판받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과 조직화되지 못한 다수로 양분돼 있는 것이다. 결국 그것을 묶어내 노동정치가 되살아 날 때만이 진보정치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노동 문제만으로 이 모든 것들을 환원할 수 없고, 흔히 말하는 '적·녹·보(노동·생태·여성)'의 가치가 대중운동과 결합하면서 진보운동을 새롭게 시작할 때인 것 같다.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하고, 흔히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고 한다. 가장 밑바닥으로 절망하고 내려갈 때 새로운 출발이 있는 것 아닌가. 진보는 왜 안철수 원장이나 박원순 시장처럼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 하고, 그간의 모습을 해체하고 다시 태어나 대중의 신뢰를 찾아가야 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드린다.

10대들 사이 확산되는 ‘노스페이스’ 유행 왜?

[한겨레] 이재훈 기자 기자메일

 

“성적위주 사회, 소비동조로 위안”
중고생들 교복처럼 착용
“계급상승의 도구로 인식
따돌림 안당하려고 합류”

“얼마 전 매장에 한 10대 남학생과 그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남학생은 47만원짜리 노스페이스 점퍼를 집었고, 어머니는 ‘집에 있는 점퍼 입으면 안 돼? 너무 비싸지 않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남학생은 ‘조용히 말해. 거지인 줄 알잖아. 다른 애들 다 입는데 나만 못 사주냐’라고 답했다. 결국 이 어머니는 꾸깃꾸깃 접힌 만원짜리 14장을 내고 나머지는 체크카드로 계산했다.”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 노스페이스 매장에서 일한다는 직원이 올린 경험담이다. 그는 이 글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라며 씁쓸해했다.

요 몇년 사이 중고생들에게 ‘노스페이스’와 같은 고가의 등산복 브랜드 점퍼가 ‘또래 문화’로 자리잡았다. 일부 학교에선 한 반 학생의 절반가량이 ‘노스’(노스페이스 점퍼의 줄임말)를 입고 등교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노스는 그냥 교복으로 불린다”며 “보온 기능 때문에 입는다고 보기엔 수가 너무 많고, 입는 계절도 불문”이라고 말했다.

왜 유독 노스일까? 학생들에게 한 벌에 40만~50만원인 노스는 일종의 계급 상승감을 위한 도구로 받아들여진다. 경기도의 ㅇ고 1학년 김아무개(15)양은 “반 친구 37명 가운데 나를 포함해 15명이 노스를 입는다”며 “브랜드 없는 점퍼를 입은 아이들을 보면 초라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의 ㄷ고 1학년 채아무개(16)군은 “한 반에 노스를 안 입는 아이는 5명도 안 된다”며 “보통 성적 등에서 자기가 부족한 것이 많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비싼 노스를 입는데, ‘나도 너희에 견줘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면서 ‘신분 상승’을 느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다수의 학생들은 이른바 명문대에 가기 힘들기 때문에, 성적 위주 사회에서 불안감과 좌절감을 느낀다”며 “이때 학생들은 또래집단 다수가 소비하는 고가의 제품을 ‘동조 소비’함으로써 ‘나도 주류에 포함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말했다.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 노스를 찾기도 한다. 서울의 ㄷ고 1학년 이아무개(16)군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노스를 입고 왔다”며 “그 친구는 ‘나도 노스를 입고 주류 집단에 속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사회체육학)는 “1980~90년대 ‘나이키’나 ‘조다쉬’ 청바지 열풍이 막연히 ‘외제’에 대한 동경과 과시욕에 따른 소비였다면, 최근의 노스 유행은 낙오되지 않거나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한 절박한 소비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은 노스에 대한 선호도가 낮았다. 서울의 한 자율형사립고에서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이 모이는 시사토론반 학생 6명에게 물었더니, 노스를 갖고 있다는 학생은 1명뿐이었다. 이 학생들은 ‘성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험이 끝날 때마다 악기나 운동 용품을 산다고 말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수(교육학)는 “명품이 대중적으로 일반화하면 최상위층은 더 이상 그 상품을 명품으로 취급하지 않고 더 비싼 제품을 소비하면서 차별화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라며 “성적 상위권 학생들은 여기에 더해, 악기나 운동용품과 같이 자기계발을 위해 필요한 상품을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 김윤덕
  •  

    "국민스타 김연아 이전에 내가 있었죠"
    그녀는 독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파이팅!'… 그 기합에 상대는 기가 죽었다
    2.7g 공으로 세상을 호령한 독종 그녀의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지고는 못사는 성미다. 초등학교 3학년, 운명처럼 만난 2.7g짜리 탁구공이 그 지독한 승부욕에 불을 지폈다. 바지 허리춤 배배 돌아갈 만큼 마른 체구였지만 대신 '깡'이 있었다. 6학년 때 전국대회 첫 우승을 맛봤다. 중3, 영국 세계주니어오픈에서 4관왕을 거머쥐면서 '천재' 소릴 들었다. 86년 아시안게임 여자복식 동메달, 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복식 우승은 '신화'의 서막이었다. 88년 서울올림픽 여자복식 금메달, 89년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대회 혼합복식 우승,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 우승, 1993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단식 우승…. 한국 탁구의 전설이 된 그는, 지난달 23일 국제탁구연맹(ITTF) 명예의 전당에 대한민국 선수로는 처음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현정화(42). 전화선을 타고 흘러온 그의 목소리는 초겨울 낙엽처럼 건조했다. 도하에서 열린 '피스 앤 스포츠컵' 대회를 마치고 막 귀국한 길이었다. 인터뷰 요청을 반기지도 않았다. "국가대표 선발전 때문에 내일 바로 영주 내려가야 하는데요."

    시차 적응할 겨를도 없이 현정화는 바빴다. 대한탁구협회 전무로 '살림'을 도맡고 있고,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으로, 국가대표 여자팀 감독으로 분초를 쪼개 뛰고 있는 셈이다. 영화 제작 현장에도 간다. 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으로 여자단체전 우승을 이끈 '감동의 46일'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현정화가 눈밖에 볼 게 더 있나요?” 탁구대 앞에서 현정화는 웃지도 않고 농담을 했다. 멋졌다. 오똑한 코, 깡마른 몸집 때문에 어릴 때부터 별명이 ‘피노키오’였다. 지금은 선수 시절 체중에서 10㎏가 빠졌다. “하루하루가 정말 바빠요. 느슨한 걸 참지 못하는 성미라. 가끔 브레이크도 잡아야 하는데요.(웃음)”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경북 영주 생활체육관에서 현정화를 만났다. 그는 에두르지 않고 질러 말하는, 딱 '부산 여자'였다. "김연아 전엔 내가 원조 스포츠 아이돌이었다니까요." "김영삼 대통령의 칼국수는 잊을 수 없죠. 땀흘려 뛰고 온 운동선수들한테 칼국수가 뭡니까?" 인터뷰는, 예상보다 시합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곧바로 서울로 향하게 된 현정화의 '재규어' 안에서 시작됐다.

    '감동의 46일' 영화로 만들어진다

    ―자동차가 멋지다.

    "남편이 골랐다. 내가 일이 많으니까 주로 사용하고, 남편은 버스 타고 다닌다.(웃음)"

    ―왜 이렇게 바쁜가.

    "1년에 주요 대회가 최소 열다섯 개는 된다. 이것저것 다 합치면 스무 개 이상. 행사도 있지, 회사(한국마사회) 일도 봐야지, 우리 애들도 키워야지, 이런 인터뷰도 해야지. 정말 힘들다."

    ―한국선수로 처음 국제탁구연맹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솔직히 부담스럽다. '한국 최초', 뭐 이런 식으로 내 이름에 붙는 수식어들에 발목이 묶인다는 생각, 앞으로도 계속 잘해야 한다는 강박. 내가 탁구를 통해서 받은 거니까 돌려줘야 하는 게 맞지만, 때론 버겁다."

    ―명예의 전당 오르는 게 굉장한 영예인가.

    "반짝 우승해서 얻을 수 있는 영예가 아니니까. 선수 출신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려면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에서 최소 5개의 금메달을 따야 한다. 중국이 한국과의 격차를 계속해서 벌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선수들 이름이 올라가기는 쉽지 않을 거다."

    ―'피스 앤 스포츠 컵'에서 북한팀을 만났겠다. 남북관계가 안 좋아 어색했을 듯한데.

    "전혀. 세계 대회 나가면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팀이 북한팀인데 사이가 나쁠 수 있나.(웃음) 서로 도와주고, 음식 나눠 먹고 그런다. 이번엔 북한팀이 고추장을 많이 가져와서 실컷 얻어먹었다."

    ―이분희 선수의 소식은 들었나.

    "결혼해 아이를 낳았는데 뇌수막염에 걸려서 장애를 얻었다더라. 요즘엔 북한의 장애인단체 쪽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내년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북한에 다녀온 영국대사님이 이분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전해주셨는데, 살이 많이 붙었더라. 참 앳되고 순박했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이 1991년 4월 29일 일본 지바에서 열린 결승전의 감격을 이야기한다. 현정화·이분희·홍차옥·유순복으로 구성된 '코리아' 팀이 세계 최강 중국과 3시간40분의 혈투를 벌인 끝에 3대2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내가 여간해서 울지 않는 성미인데, 그날은 눈물 콧물 짜내며 울었다. 우승한 순간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우리를 둘러싸는 바람에 감독들이 선수들 다칠까 봐 우리를 호위해 락카로 데리고 나갔을 정도다."

    ―이분희의 성격은 어땠나?

    "별로.(웃음) 워낙 어릴 때부터 탁구를 특출나게 잘해서 계급이 지도자들과 동급이고, 북한의 영웅이라 그런가 좀 도도했다. 단복에 늘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니길래, 내가 장난삼아 '그게 뭐야?' 물었더니 버럭 화를 내더라."

    ―46일간 지바에서 일궈낸 단일팀의 경기를 영화로 만든다던데.

    “내년 5월 개봉한다고 들었다. 2년 전 시나리오 작업부터 함께했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라켓도 못 잡는 배우들을 선수같이 가르쳐야 했으니. 어떤 생각으로 무모하게 덤볐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니까 또 되더라.(웃음)”

    ―배우 하지원이 현정화 역을 맡았다.

    “야무지고 열정 많은 배우더라. 운동에 대한 감이 있다. 처음엔 라켓도 잘 못 잡더니 한 달쯤 지나니 자세가 잡혔다.”

    ―흥행하기를 바라는가.

    “영화사 말로는 2시간짜리 영화인데, 후반부 1시간은 그냥 울어야 한단다.”

    피 말릴 듯 팽팽한 긴장감이 좋다

    현정화는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져도, 이겨도 무덤덤하다. 오로지 ‘파이팅!’만이 강렬했다. “기를 뺏기지 않으려고요. 아무리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상대의 타이밍을 절묘하게 빼앗아오면 단박에 승기를 잡을 수 있어요. 그걸 잡기 위해, 그리고 나의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파이팅을 외치는 거죠.” 그래서인가. 현정화의 승리는 대부분 ‘역전’이었다. 그 치열한 승부사 기질이 그녀를 국민 스타로 만들었다.

    ―거의 다 지게 된 경기를 다시 뒤집는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 아닐 텐데.

    “뒤집을 수 있다는 확신이 늘 있었다. 그건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력의 싸움이지. 아무리 격차가 벌어져도 집중력을 살리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보는 사람은 숨이 막힌다.

    “나도 막힌다.(웃음) 하지만 한점 한점 쫓아 올라갈 때의 그 느낌이 좋다. 그 쫀쫀함, 피 말릴 듯 팽팽한 긴장감이 좋다. 이른 아침, 빈속에 커피 한잔 들어가면 찌르르해지는 느낌, 경기장 들어설 때 머리털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 정말 좋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밥 먹고 난 뒤의 나른함이다. 긴장이 없으면 사는 것 같지가 않다.”

    ―라켓 던지고 도망가고 싶은 때는 없나.

    “도망가고 싶지. 그런데 포기하면 지는 거니까. 스포츠가 삶인 선수들에겐 승리가 목적이고 생명이니까.”

    ―현정화의 금메달은 기술보다 승부근성이라는 말이 있더라.

    “지면 분해서 속에 불이 났다.(웃음)”

    ―그러면 친구들이 없지 않나.

    “경기할 때만 독하다. 친구 많다.(웃음) 먼저 마음을 열고 배려하는 편이다.”

    ―독하게 훈련하는 선수로 유명했다.

    “스포츠는 자기가 투자한 시간만큼, 땀 흘리고 연습한 만큼 실력이 나온다. 진리다. 더 나오지도, 덜 나오지도 않고 딱 그만큼만 나온다. 발바닥에 물집을 달고 살았다. 우리 때만 해도 고무매트가 아니고 마룻바닥에서 훈련하고 시합했다. 발바닥에 불이 난다. 물집이 잡히면 바늘로 터뜨린 뒤 실을 끼워넣었다. 물집이 터져도 물이 남아 있으면 계속 옆으로 번지니까 실을 넣어 물을 빨아들이는 거다. 터진 물집이 서로 밀려 쓰라린 상태로 계속 연습한다. 몸살이 나도 오늘 하루 연습 쉬고 싶다는 말을 못했다. 1시간만 더 자면 나을 것 같은데 입 밖으로 그 말이 안 나온다. 스포츠의 세계에 타협이란 없다. 독해야 살아남는다. 1등은 한 사람이니까. 밟고 밟고 밟아서 나 스스로 서야 했다.”

    ―훈련시간이 동료선수들에 비해 길었던 건가.

    “남보다 10분 먼저 연습하고 10분 더 남아 연습했을 뿐, 무조건 오래하지는 않았다. 특히 집중력 키우는 훈련을 많이 했다. 공만 보는 훈련을 죽어라고 했다.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볼과 상대의 라켓만 본다.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공과 라켓과 내 몸이 하나 되는 순간이 온다. 신들린 듯 공을 치게 된다.”

    엄마를 위해 탁구공을 잡았다

    ―부산상고 탁구선수였던 아버지 영향도 컸겠다.

    “아버지는 늘 아프셨다. 폐가 안 좋아서 자리를 보전하시다 중2 때 돌아가셨다. 가끔 경기장에 오셔서 응원해주신 기억, 훈련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면 아이스크림 주시면서 ‘이걸 먹어야 피로가 빨리 풀린다’ 하시던 기억…. 내가 국가대표 되는 거 못 보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둘째 딸이 탁구 하는 걸 엄청 반대하셨다.

    “공부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고, 운동하면 배고프게 산다고 해서. 영국 세계주니어오픈에서 4관왕 따 가지고 오니까 포기하시더라.(웃음) 그런데 나는 엄마를 위해 탁구했다. 생계를 이어가시느라 엄마는 늘 집에 없었다. 큰 회사의 조리사로 취직해 매일 새벽 출근하시고 밤늦게 퇴근하시면서도 세 딸의 도시락, 간식 챙기는 걸 잊지 않으셨다. 일요일 아침이 제일 좋았다. 훈련이 없으니 늦잠을 자고 있으면, 엄마가 부엌에서 달그닥거리며 밥하는 소리가 참 좋았다. 일요일 오후엔 다 같이 때 밀러 목욕탕 가고, 집에 돌아올 때 요구르트 사먹고…. 나는 엄마가 낮잠 자는 걸 본 적이 없다. 엄마를 위해 성공하고, 엄마를 위해 1등 하자 다짐했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가 현정화의 전성기였다. 그 시절이 그립지 않나.

    “난 시합에서 이기든 지든 빨리 잊는 편이다. 한 달 뒤 또 시합이 있으니까 거기 도취돼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합은 그날로 끝나는 거다. 다음 시합을 위해 준비를 해야지, 승리의 순간을 회상하는 건 시간 낭비다.”

    ―88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뒤에는 요즘의 김연아만큼 인기가 많았다. 화장품 모델까지 했다.

    “팬레터가 2~3일에 1000통씩 왔다. 방에 인형을 깔아놓고 살았다. 죄다 여고생 팬이었지. 화장품 모델도 즐거운 추억이다. 2시간 동안 덕지덕지 신부화장한 뒤 카메라 앞에 섰는데 고상하게 웃으라고까지 해서 엄청 애먹었다.(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뭘까.

    “88올림픽, 91년 지바, 93년 예테보리에서 단식으로 세계선수권 우승했을 때.”

    ―단상에 서서 태극기 올라가는 모습 보면서 무슨 생각 하나.

    “내가 한국인이구나 하는 생각. 이상한 게, 내가 우승해서 태극기가 올라갈 때는 눈물이 안 나는데, 남들이 메달 따서 태극기가 올라가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웃음)”

    한국마사회 탁구단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현정화. 시합을 이틀 앞둔 선수들에게 그는 서브와 리시브 훈련에만 집중하도록 지시했다. “모든 경기의 기본이니까요. 감(感)을 잃지 않는 것, 경기와 인생 모두에서 중요합니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대통령들 축전도 무수히 받았겠다.

    “전두환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다. 선수 입장에선 전두환 대통령이 아쌀해서 좋았다. 지원과 격려를 팍팍 해주시니.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로 식사 초대를 두 번이나 하셨는데 두 번 다 칼국수를 주셔서 무지 실망했다. 국제대회 나가 싸우고 돌아온 선수들한테 칼국수가 뭔가.(웃음)”

    ―가슴 쓰라렸던 경기도 있겠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중국 덩야핑에게 단식도 지고 복식도 졌다. 동메달 2개 따서 돌아왔는데 국민 반응이 냉담하더라. 사실 동메달도 잘한 거 아닌가.(웃음) 너무 메달에만 연연했다. 오로지 따고 싶은 생각. 그걸 벗어야 플레이가 잘되는데, 신들린 듯 칠 수 있는데.”

    ―결국 덩야핑에겐 한 번도 못 이긴 건가.

    “단식에서는…. 그녀의 기가 엄청 세다. 늘 만나면 불꽃이 튀지. ‘아, 세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웃음)”.

    양영자 없으면 현정화도 없다

    ―바르셀로나에서 덩야핑에게 패한 뒤 ‘현정화의 시대는 갔다’는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슬럼프였다. 극복했다기보다는 탁구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꾼 계기가 됐다. 전에는 꼭 1등을 해야 하고, 1등만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패하고 좌절한 내 모습까지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더라.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선수,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인가, 이듬해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여자단식 금메달을 따냈다.

    “나는 박태환 선수의 슬럼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극복했으니 정말 훌륭한 선수고. 남자선수들은 여자와 달리 슬럼프를 극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김연아 선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충분히, 누구도 안겨주지 않았던 행복과 즐거움을 국민에게 선사하지 않았나. 김연아 정도면 IOC 위원에도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뒤 94년 은퇴했다. 너무 빠르지 않았나.

    “돈이 됐으면 계속 했을 거다.(웃음) 훈련 없이 1등 할 수 없고, 훈련 없이 1등 하는 걸 받아들일 수도 없는 성격이라 스스로 힘들었다. 좋은 선수로 기억될 때 은퇴하고 싶었다.”

    ―영광의 시절이 길었던 만큼 후유증이 컸겠다.

    “훈련 안 해도 되니 아침에 더 자도 되는데, 새벽 6시만 되면 눈이 떠졌다. 어이가 없어 영어학원 새벽반을 신청했지.(웃음) 6개월은 허공을 걷는 듯, 내가 뭘 하고 사는지 모르겠더라. 대학원 공부를 했지만 육체적으로 고통이 없으니 우울감이 지속됐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면서 다시 바빠졌고, 자연스럽게 치유됐다.”

    ―현정화의 멘토는 누구인가.

    “고등학교 때 탁구선생님. 기술보다도 사람됨을 가르치셨다. 중3 때 국가대표 코치로 만난 이에리사 촌장님도 잊을 수 없다. 내 전형을 전진속공형으로 바꿔준 분이다. 양영자 선배도 내 인생에 한 획을 그어주셨지. 양영자가 없다면 현정화도 없다. 언니는 볼이 찍찍 깔리는 중진 드라이브형, 나는 볼이 팽팽 회전하는 전진속공형이라 웬만한 남자선수들도 이기는 환상의 복식조였다. 몽골에서 선교사로 일하는데, 몇 해 전 서울 오셔서는 내가 살이 너무 빠졌다고 걱정하더라. 따뜻한 선배다.”

    ―현정화의 ‘한 성깔’을 보여준 것이 2007년 대한탁구협회의 감독권한 침해에 반발, 유남규와 국가대표 감독직을 동반사퇴한 사건이다.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계속 굴러가면 독이 될 뿐이다.”

    ―지금은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로 간부가 된 입장이다.

    “감독은 권한을 최대한 발휘하고, 대신 책임을 철저히 지면 된다. 탁구협회는 한국 탁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조직이다. 개인의 이익, 자기 팀의 이익을 내세우면 안 된다.”

    찬스볼이 찬스볼이 아니다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의견을 구하는 사람이 있나.

    “대개는 나 스스로 한다. 부모님, 선생님들, 선배들에게 잘 배운 덕이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 ‘코리아’로 결승전에 오른 현정화(오른쪽)와 이분희.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우승했던 46일 감동의 드라마가 현재 영화로 제작 중이다. / 조선일보사

    ―동료 탁구선수였던 남편(김석만)도 의지가 될 것 같다.

    “조언을 구하면 언제고 내 마음이 편해지는 대답을 해준다. 국가대표 감독 사퇴할 때에도 ‘네 뜻대로 하라’고 했다. 반대해도 내 결심 바꾸지 못할 걸 아니까.(웃음)”

    ―어떻게 만났나.

    “스무살 때. 태릉선수촌에서 연습 파트너를 많이 해줬다. 연애 10년 한 뒤 결혼했는데, 훈련하고 시합 나가느라 남들 1년 연애한 것만큼도 데이트를 못했다.”

    ―대중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어떤 점이 좋았나.

    “무뚝뚝한데 나한테만 잘해주는 것 같아서.(웃음) 선수생활의 어려움을 아니 많이 위로가 됐다.”

    ―유명한 아내를 둔 남편의 심적 갈등이 있었을 것 같다.

    “없진 않았겠지. 표현은 안 해도. 내가 남편에게 잘하려고 노력한다. 바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늘 표현한다. 집에 있을 땐 두 아이 보살피며 아내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크게 싸울 일 없더라.”

    ―자상한 아빠인가.

    “생활체육 지도자인데, 퇴근해 들어오면서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윤선생 다했니?’ ‘바로셈은 풀었어?’다.(웃음)”

    ―현정화는 어떤 엄마인가.

    “ 출장이 많으니 거실에 트렁크가 항상 놓여 있다. 이젠 아이들도 익숙해져서 내가 짐 싸고 있으면 ‘또 어디 가? 잘 갔다 와’ 한다.(웃음) 교육은 엄격한 편이다. 거짓말하거나 자기 할 일 안 했을 땐 회초리도 든다. 준비물 빠뜨리고 가면 절대 갖다주지 않는다. 선생님께 혼나고 와야 정신을 차리니까.”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원하는가.

    “타인과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 내가 1등만 바라보며 성적 위주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안다. 1등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로운 삶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말술’이라더라.

    “그런 말이 돌았나? 소주 2병 정도. 술이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을 줄여줘서 좋다.”

    ―체구에 비해 대식가라고 들었다.

    “개고기도 먹는다. 체력을 위해 먹기 시작했다가 맛을 알았지.(웃음) 다음날 아침 얼굴에 기름이 좍 흐르는 게, 확실히 덜 지치는 것 같다.”

    29일 현정화 감독이 국제탁구연맹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독종선수였던 현정화는 독종지도자인가.

    “그래야 하는데 잘 안 된다. 선수들 고충을 너무 잘 아니까 배려가 먼저 된다. 좀 힘들게 시켰다 싶으면 회식하러 가고 영화 보여주고.(웃음) 다만 경기를 쉽게 포기하는 건 용서하지 않는다. ‘탁구가 네 인생인데, 그렇게 쉽게 보여? 하지 마!’ 한다.”

    ―탁구와 인생은 어떻게 닮았나.

    “찬스볼이 찬스볼이 아니다. 언뜻 보기엔 뜬 공이라 강스매시할 절호의 기회 같은데 거기 함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찬스볼일수록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 선수들에게 공을 절대 함부로 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공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기회는 인생에 세 번밖에 오지 않고, 그걸 잡으려면 우리는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

    유전자, 섞어야 바뀌고 바뀌어야 진화한다

     

    혼혈이 더 강한 이유? 면역체계 정보 다양
    생명력 강해지고 유전적 변이로 좌우균형 뛰어나 매력적인 몸 갖춰

     
    우월한 유전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아론 지브 지음|김순미 옮김
    예담|295쪽|1만4000원

    나치는 아리안족 혈통을 순수하게 이어가야 한다며 독일인과 외국인의 결혼을 금지했다. 저자 아론 지브(Ziv)는 정반대 주장을 한다. 혼혈이 순혈보다 강하고 아름답다며 과학적 근거를 잇달아 댄다. 지브는 나치에 쫓겨 미국으로 이민한 유럽 유대인의 후손이다. 미국 UCLA 생물학과 강사를 거쳐 전문 강연자로 활동 중이다.

    왜 혼혈이 강한가

    우리 몸에는 면역 체계에 관여하는 유전자들로 구성된 '주조직적합성복합체(MHC)'가 있다. MHC는 쉽게 말해 인체 내부의 '범죄자 수배 전단지'다. 백혈구는 이 전단지를 보고 우리 몸에 들어온 병균을 척결한다. 좋은 전단지는 온갖 범죄자가 빠짐없이 적힌 전단지다. 부모의 유전자가 다르면 다를수록 자손의 전단지에 적힌 정보가 풍부해진다.

    이런 것을 'MHC 이형접합 수준이 높다'고 한다. 미국 연구팀이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보균자들을 조사해보니, MHC 이형접합 수준이 높은 사람은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6년이 지나도 열 명 중 두 명만 에이즈가 발병했다. 반면 MHC 동형접합 수준이 높은 사람은 열 명 중 일곱 명이 같은 기간에 에이즈 증상을 일으켰다(102쪽).

    "섞일 때 아름답다"

    인종 문제는 까딱 잘못 건드리면 폭발하는 정치적 지뢰밭이라 과학적 연구가 적다. 그래도 혼혈의 장점이 비단 면역체계에 그치지 않는다고 증명한 연구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하와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1986년 진행된 지능검사다. 유럽인 조상을 둔 주민, 일본인 조상을 둔 주민, 유럽인과 일본인의 피가 섞인 주민 가운데 세 번째 집단이 가장 인지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수퍼모델 하이디 클룸은 영국 흑인 가수 실과 결혼해 4남매를 키우고 있다. 첫딸은 클룸과 백인 애인 사이에서 낳았고, 다른 아이들은 실과 결혼 후 태어났다. 저자 아론 지브는“부모의 유전자가 다를수록 건강하고 매력적인 자녀가 태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Corbis/토픽이미지

    2005년 미국 UCLA 연구팀은 순혈과 혼혈의 매력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흑인·백인·미국원주민·아시아인·히스패닉 등 다섯 개 범주로 인종을 나누고, 부모 양쪽이 같은 인종인 학생들과 다른 인종인 학생들을 모집했다. 이들의 좌우균형을 측정한 다음, 사진을 찍어서 연구에 참가하지 않은 일반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연구팀이 예상한 대로, 피가 섞인 학생들이 좌우균형이 뛰어나고 매력도 점수도 높았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혼혈인은 전혀 다른 부모의 유전자가 섞여서 탄생한 사람이라는 것.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뛰어난 유전적 변이 덕분에 더 강건하고 좌우균형이 뛰어나고 매력적인 몸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131쪽)

    새로운 한국인 15만명

    나치가 '나쁜 우생학'을 주장했다면 저자 지브는 '착한 우생학'을 내세운다. 문제는 '착한 우생학'도 우생학은 우생학이라는 점이다. 순혈이 아름답다는 주장이건 혼혈이 대세라는 주장이건, 밑바탕에 '인종' 개념이 강고하게 깔려있긴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유전적인 강점을 이유로) 인종이 다른 사람 중에서 짝을 찾겠다는 이유는 같은 인종의 사람을 짝으로 선택하겠다는 생각만큼이나 어리석다"면서 "내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지침은 '당신의 마음을 따르라'는 것뿐"이라고 강조한다(252쪽).

    저자가 보기에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핏줄과 문화도 긴밀하게 혼합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인종 간 결혼과 국제결혼이 폭증하는 이른바 '혼혈 폭발'이 임박했다고 본다.

    그는 주로 미국 얘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꼭 남의 일은 아니다.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결혼이민자는 21만명, 그들의 자녀는 15만명이다. 한국인 배우자까지 합치면 다문화가정 구성원은 총 56만명이다. '국적=민족=핏줄'이 일치하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인데, 어느새 본인과 자녀 어느 한 쪽이 혼혈인인 한국인이 전체 인구의 1%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매년 새로 탄생하는 국제결혼 부부가 3만쌍이며,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김진의 시시각각] 공지영, 혼돈에 빠진 영혼

    [중앙일보]입력 2011.12.05 00:00 / 수정 2011.12.05 11:19

    세속이란 문을 통해 소설가는 영혼의 땅에 들어간다. 독자는 서툰 걸음으로 따라간다. 인생에는 주식이나 아파트로는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을 읽는다. 소설가는 영혼 여행의 노련한 동반자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카스트로 공산독재로 쿠바는 가난하다. 집과 차는 낡았고 사람들은 초라하다. 그래도 많은 이가 쿠바에 대해 낭만적인 환상을 갖는 건 헤밍웨이 때문일 것이다. 쿠바에서 20여 년 살면서 헤밍웨이는 낚시를 즐겼고 ‘노인과 바다’를 썼다. 여행객은 헤밍웨이 때문에 괜히 럼주를 마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특히 한국인과 가깝다. 어느 독자는 블로그에 “나의 20대에 가장 영향을 미친 작가”라고 썼다. 그는 하루키 때문에 일본 여행을 갈망했다. 아버지가 작고한 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동생과 함께 일본의 시골길을 달렸다. 그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셋이 아빠를 그리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하루키 때문에 세 모녀가 일본에서 아버지의 영혼을 만난 것이다.

    누구에게도 ‘내 마음속 소설가’가 한 명은 있을 것이다. 공지영은 가장 많은 이의 마음속에 앉아 있는 작가 중 한 명일 것이다. 기록적인 베스트 셀러들이 있다. 트위터에는 그를 팔로(follow)하는 이가 20만 명이 넘는다. 무소의 뿔, 봉순이, 세 번 이혼, 그리고 도가니처럼 공지영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한국어가 적지 않다. 많은 한국인에게 그는 영혼 여행의 꿋꿋한 친구인 것이다.

     그런 공지영이 지금 영혼의 위기를 겪고 있다. 상식과 순리를 파괴하는 지성(知性)의 이탈을 저지른 것이다. 자신만큼이나 유명한 가수 인순이와 피겨선수 김연아가 종편 개국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이라고 공지영이 트위터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인순이에 대해선 “개념 없다”고 했고 김연아에겐 “안녕”이라며 결별을 통고했다.

     4개 종편 중 3개는 중앙·조선·동아가 설립한 것이다. 공지영은 최근 들어 부쩍 진보·좌파 스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중·조·동은 보수·우파이니, 그들의 방송은 ‘반(反)시대적’이며, 이를 선전해 주는 건 틀린 거라고 믿는 것 같다. 그는 특히 김연아의 ‘TV조선’ 출연을 차갑게 비판했다.

     공지영은 우선 스스로 과거를 부정(否定)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중·조·동에 소설을 싣거나 칼럼을 썼다. 인터뷰도 많이 가졌다. 조선일보에는 ‘일사일언(一事一言)’이라는 코너에 글을 썼다. 중앙일보에는 2006년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연재했다. 중앙일보가 주최한 ‘위·아·자 나눔 장터’에 사형수에게서 받은 지우개 조각품을 기증하고 사연을 소개했다. 중앙일보 기자와 전남 담양으로 붕어찜 맛집 기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중앙일보의 친구’였던 것이다.

     논란이 일자 그는 “2006년은 지금과 달리 노무현 시대였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대통령이 누구든 자신이 활동한 신문(중앙일보)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데…. 그는 중앙이 그때는 덜 보수·우파적이었다고 믿고 싶은 건가. 하지만 아니다. 중앙은 노무현 정권에 대해 가혹한 비판자였다.

     이중성도 그렇지만 공지영의 세계관은 더욱 문제다. 그는 이념이 다른 대상에게 편집증적인 증오를 지닌 것 같다. 이는 위험한 것이다. 이념을 떠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행사에 유명인사들이 참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겨레신문 행사에도 유명인이 동참하지 않는가. 그리고 어떤 유명인사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한 걸 다른 유명인이 근거 없이 비난하는 건 무책임한 것이다. 다중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공지영은 지금 인기와 허상(虛像)이라는 도가니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과거에 그는 사회의 혼란스러운 시선을 피해 ‘5년 침묵’에 들어간 적이 있다. 삶에 그토록 진지하고 겸손했던 옛날의 공지영은 어디로 갔나. 공지영은 이제 경박과 혼돈의 진흙탕을 떠나 영혼의 비밀정원으로 피정(避靜)해야 하지 않을까. 같이 영혼 여행을 떠나려는 많은 이가 그를 기다린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김종인 “안철수, 서울시장 양보가 아니라 포기한 것”
    [노컷뉴스] 2011년 12월 09일(금) 오전 06:48
     
    [시사자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방송일 : 2011년 12월 8일 (목) 오후 7시■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 연 : 김종인 前 청와대 경제수석

    ▶정관용> 시사자키 2부 시작합니다. 지금 정국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발생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사건으로 매우 혼란스럽지요. 그래서 한미 FTA를 둘러싼 논의는 완전 중단된 그런 상태인데요. 한미 FTA 논의가 한창이었을 때 주목을 끌었던 헌법 조항이 있습니다. 바로 헌법 제119조 2항,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것이지요. 한미 FTA가 바로 이 헌법 119조 2항과 충돌될 것이다, 이런 논의가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헌법 119조 2항의 입안을 주도하셨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우리 사회이 대표적인 원로 가운데 한분이시고요. 아울러서 또 안철수 교수의 멘토 역할도 하신다고 그래요. 이모저모 궁금증을 오늘 2부와 3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고 듣고 옵니다.

    ▶정관용> 한미 FTA와 충돌된다, 라고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헌법 제119조 2항, 이 조항을 직접 입안하고 또 실제 헌법에 들어가도록 책임지셨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종인> 예, 안녕하세요?
    ▶정관용> 오래간만에 오셨지요?
    ▷김종인> 예, 오래간만입니다, 정말.

    ▶정관용> 오늘, 저는 김 박사님이라고 칭하겠습니다.

    ▷김종인> 예.

    ▶정관용> 김 박사님하고 나눌 주제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헌법 119조 2항 관련이고, 또 하나는 안철수 교수가 멘토라고 지칭을 하셔서 그 인연도 여쭤보고 그럴려고요.

    ▷김종인> 뭐 알았습니다. 내가 뭐...

    ▶정관용> 안철수 교수랑은 오래 전부터 아세요?
    ▷김종인> 나는 오래 전부터 안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2005년도, 내가 17대 국회에 있을 적에 내가 한번 보자고 그런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IT 벤처 기업을 해서 성공했다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시에 IT 벤처 기업들의 실태가 어떤 상황에 있고, 그 사람들이 소위 작은 기업으로서 애로사항이 뭐가 있는가, 하는 이런 거를 좀 한번 물어볼려고.

    ▶정관용> 의정활동 필요차, 그래서 만났다?
    ▷김종인> 그렇지요. 그래서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까 별로 이렇게 답도 잘 안 하고, 사람이 그렇게 확실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한 시간 정도 차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고맙다고 그러고서 헤어졌어요. 헤어졌다가 지난 5월 이후에 이제 다시 또 만났는데.

    ▶정관용> 금년 5월?
    ▷김종인> 예, 금년.

    ▶정관용> 2005년에 한번 만나시고.

    ▷김종인> 예, 2005년에 한번 만나고 이제 한 6년쯤 지나가지고서 내가 이제 평화리더십아카데미라고 하는 데가 윤여준 지금 전 장관께서 교장선생으로 계세요.

    ▶정관용> 이게 이제 법륜 스님도 관여하시는...

    ▷김종인> 예, 그게 법륜 스님 산하에 있는 교육기관인데, 거기 나보고 거기 강의를 좀 해달라고 그래서, 그래서 강의를 거리를 나가다가 보니까 안철수 교수도 거기 강사진에 들어있고 뭐 등등 해서. 그러다가 법륜이라는 스님도 만나게 되고, 그러다가 뭐 한번 여러 가지 나라 일에 대해서 의논도 해보자, 해서 이제 만나가지고서. 그 게재에 안철수 교수도 만나게 된 거예요.

    ▶정관용> 금년 5월부터?
    ▷김종인> 예, 그러니까 안철수 교수가 그래도 젊은 사람들 사이에 상당히 신망도 있고, 인기도 있고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젊은 사람도 한번 같이 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떻겠느냐, 해서 그래서 처음 만난 거예요.

    ▶정관용> 5월 달에?
    ▷김종인> 예, 5월 달인가...

    ▶정관용> 그리고서 자주 만나셨어요?
    ▷김종인> 그리고서 그러니까 내가 그런 회합 비슷한 데에서 한 세 번인가 네 번 만났고, 그리고 내가 이제 청춘콘서트를 두 번인가 게스트로 그 사람들하고 같이 한 적이 있어요.

    ▶정관용> 맞아요.

    ▷김종인> 그러니까 전부 합해서 횟수로 따지면 한 6번 만난 거지.

    ▶정관용> 최근에는 언제 만나셨어요?
    ▷김종인> 최근에는 8월 31일 만나고 나서는 내가 그 사람 본 적이 없어요.

    ▶정관용> 청춘콘서트에 게스트로 가신 것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냥 만나신 거고. 청중 앞에서?
    ▷김종인> 그렇지요. 그러니까 청춘콘서트에 가서 만나, 이제 공식적인 자리라고 그러지만 뭐 전후, 콘서트 시작하기 전, 후에 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 이야기도 해봤는데, 내가 청춘콘서트 두 번째, 분당에 가서 할 적에 두 사람이, 박경철 씨하고 안철수 씨가 서로 대담하는 것을 이렇게 보니까, 현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적인 의식도 가지고 있고, 상당히 이게 반응, 청중의 반응도 좋게 끌어내고, 이제 그런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그래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 사람이 대학교 교수라고 하는데, 지금 뭐 카이스트에서 교수하다가...

    ▶정관용> 서울대학교로.

    ▷김종인> 예, 서울대로 온 지 한 3~4개월 밖에 안 된 사람인데, 이렇게 매주 이 콘서트를 한다고 돌아다녀도 괜찮은가, 해서 내가 물어본 적이 있어요. 이렇게 해도 학교에...

    ▶정관용> 예, 문제 없느냐?
    ▷김종인> 학교에서 아무 소리 안 하느냐, 그랬더니 총장이 오히려 장려하는 입장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람들이 이런 짓을 계속 이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하는 걸 보니까 이게 아무 목적의식이 없이는 그런 짓 못하는 거예요. 시간도 그렇고.

    ▶정관용> 그렇지요.

    ▷김종인> 정력도 그렇고. 그래서 나는, 내가 보기에는 이 자체가 약간의 정치적인 행위라고 나는 판단하기 때문에 뭐 대화 나누는 것도 사회적인 비판도 있고, 경제정책 같은 것도 상당히 비판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내가 청중들한테 한번 물어봤어요. 이런 분들이 이렇게 나라를 걱정을 해서 관심도 많고, 여러 가지 자기 나름대로의 비판을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 직접 정치에 내보내보면 어떻겠느냐.

    ▶정관용> 어, 청중들이 뭐라고 그래요?
    ▷김종인> 청중들한테 물어보니까 청중들이 아주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더라고요.

    ▶정관용> 그랬겠지요, 예.

    ▷김종인> 그래 내 거기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참 일반적으로 보기에 국회라고 하는 곳을 굉장히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뭐 국회의원들의 질이 어떠느니, 국회의원을 비하하는데, 절대로 거기를 비하하려고 하지 말아라. 그래서 좋은 국회의원이 되려고 노력들을 하는 것이 좋겠다.

    ▶정관용> 중요한 곳이지요.

    ▷김종인> 예, 왜냐하면 아무리 우리가 국회가 좀 뭐 모양상으로 이렇게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게 민주주의가 아직 심화되지 않는 나라에서는 이런 꼴도 보일 수 있는 건데... 결국은...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 두분한테 직접 총선에 나가서 국회의원 해라. 그렇게 말씀하신 거네요?
    ▷김종인> 내가 그래서 그 콘서트가 끝나고 관중들이 이렇게 정치에 직접 참여하라는 데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기 때문에 콘서트가 끝나고 내년에 두 사람 다 총선에 출마하는 게 어떠냐, 내 그 이야기를 했어요, 거기에서.

    ▶정관용> 답변을 뭐라고 하던가요?
    ▷김종인> 답변을 뭐 별로 답변을 안 해요, 그런 거에 대해서. 내가 그런 적이 있는데, 그리고 나서 자꾸 모임이 이제 그런 등등을 가지고서 모이기 때문에...

    ▶정관용> 그 모임이라고 지금 칭하시는 거는 누구누구가 모이는 거예요?
    ▷김종인> 아, 그러니까 우리 윤여준...

    ▶정관용> 윤여준 전 장관.

    ▷김종인> 윤여준 씨가 이야기한, 윤여준 전 장관, 그 다음에 나. 그 다음에 이제 법륜 스님, 안철수 씨, 박경철 씨. 그 다음에 전에 주일대사하던 최상룡 씨. 이렇게 6명이서 만난 거예요.

    ▶정관용> 그 모임은 누가 주선을 하는 거예요?
    ▷김종인> 주선은 이제 법륜 스님이 주선을 해서 만나게 됐는데.

    ▶정관용> 그럼 그 모임에서는 주로 안철수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아니면 무슨 이야기를?
    ▷김종인> 아니, 전반적인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래서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나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거 무슨 의미 없이 자꾸 만나느냐, 말이야. 만나면 무슨 결론을 내야지, 그래서는 도대체 누가 정치를 할 건지 안 할 건지를 아주 결판을 내고서... 그렇지 않을 바에는 더 이상 만나지 말자, 내가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가 8월 31일날 만난 게 그것을 확정을 지으러 사실 만난 거예요.

    ▶정관용> 정치 할 건지, 말 건지?
    ▷김종인> 예, 그런데 이제 그날 이 사람들이 들어오자마자 나 좀 서울시장이 하고 싶은데, 서울시장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

    ▶정관용> 안철수 교수가?
    ▷김종인> 안철수가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더라고.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그랬어요. 아, 이 사람들이 청춘콘서트를 하고 다니더니 드디어 자기네들 원래의 가슴 속에 숨겨놓았던 목표가 지금 드러나는구나.

    ▶정관용> 그렇군요.

    ▷김종인> 그걸, 서울시장을 나간다는 얘기는 이제 앞으로 정치에...

    ▶정관용> 하겠다는 얘기지요.

    ▷김종인> 뛰어들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나는 당신은 서울시장 되기는 아직은 빠르다, 내가 그런 거예요. 당신 실질적으로 이 서울시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정치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서울시장 쉽게 할 수가 없다.

    ▶정관용>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할 생각이 있다는 것을 대중적으로 밝힌 것은 언제였지요?
    ▷김종인> 그 8월 31일날.

    ▶정관용> 아니, 대중적으로 밝힌 게요.

    ▷김종인> 대중적으로 밝힌 것은 아마 그 다음 날일 거예요. 9월 1일.

    ▶정관용> 그러니까 대중적으로 밝히기 전에 김종인 수석이 계셨던 그 모임에서...

    ▷김종인> 그렇지.

    ▶정관용> 한번 자문을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셨다?
    ▷김종인> 예, 나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어요. 이런 짓을 하려면은, 이게 서울시장이라는 것이 고도의 정치적인 자리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런 그런 정치적인 경험 없이 서울시장하기 힘들다. 내가 보기에 무소속으로 당신 출마해서 될지,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되더라도 내년 봄쯤 가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 거다. 서울시라고 하는 것이 당신이 뭐 벤처기업, 3~4백명 데리고 운영하던 거하고 서울시라는 공무원의 조직은...

    ▶정관용> 다르다?
    ▷김종인> 다르다. 그래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게...

    ▶정관용> 그런데 김 박사님의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거네요?
    ▷김종인> 그렇지요. 그러니까 그날은 안 받아준 거지. 그래서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뭐냐면, 내가 그래서 그런 생각이 있으면, 내년에 국회의원 나가는 게 좋겠다, 그랬더니 본인 자신이 뭐 국회의원이라는 건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는 거고, 국회가 무슨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 정치에 대한 본질적인 불신을 가지고 있어요. 정치가 뭐 이건 뭐 완전히 소모적인 거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울시장은 정치가 아니라 행정이니까 할, 충분히 할 수 있다, 하는 이런 자세더라고요. 그래서 뭐 난 더 이상 그런 논의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나와버렸어요.

    ▶정관용> 그 모임에서?
    ▷김종인> 예, 그 모임에서.

    ▶정관용> 그런데 그렇게 서너 차례 한 6분 정도가 회동하실 때 신당 창당 이야기라든지 이런 것도 좀 있었어요?
    ▷김종인> 아니, 뭐 그런 창당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한 적은 없고. 정치를 한다고 그래야지 뭘 하든지 하는 거지, 정치에 대한 확고한 의사 표시를 안 하는데, 거기에서 뭘 한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거지요.

    ▶정관용> 그런데 그 자리에서는 아무래도 정치를 한다고 하면은 주체는 안철수 교수였다?
    ▷김종인> 그러니까 이제 이 사람이 서울시장을 한다고 그러니까 벌써 정치할 생각이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결국은 윤여준 씨 같은 경우는 그 안철수 씨 이야기를 그대로, 액면 그대로 받은 거지. 본인이 원한다고 그러니까, 본인이 원하면 서울시장 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정관용> 한번 해보자?
    ▷김종인> 그렇게 된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나는 이제, 내가 나온 다음에 한동안, 한 3시간 동안 논의를 거쳐가지고서 시장에 나가기로 아주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를 그 다음날 들었어요, 내가. 들었는데, 그렇다고 나가면 나가는 거지, 나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 그러고 나니까 뭐 신문에 막 요란스럽게 나고...

    ▶정관용> 그렇지요.

    ▷김종인> 이렇게 하더라고요.

    ▶정관용> 엄청난 바람이 불었지요.

    ▷김종인> 예, 바람이 불었는데, 그래서 내가, 저 사람이 시장에 나가는구나, 했더니, 처음에는 무소속 출마를 한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자기는 뭐 절대 야권 연대니 이런 것 생각하지도 않고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고 한다고 그러다가 뭐 하루쯤 지나니까 또 뭐 야권 연대도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표시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참 이 사람들이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나는 내 개인적으로 생각이 그랬었는데.

    ▶정관용> 그 후의 경과과정은 뭐 대충 대중들에게 알려져있는 사실이니까...

    ▷김종인> 그렇지요, 그런데...

    ▶정관용> 박원순 변호사한테 양보하고 그런 과정.

    ▷김종인> 박원순 변호사한테 양보가,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시장 출마를 그 며칠 사이에 포기를 해버린 거야. 나는 사실 그분이...

    ▶정관용> 양보하기 전에?
    ▷김종인> 그렇지. 나는, 자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볼 적에 자기가 도저히 시장 출마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9월 6일날 박원순 씨한테 양보를 하는 것처럼, 신문에는 뭐 20분 동안 회동을 거쳐서 아주 멋있게 양보를 했다고 되어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벌써 3일, 4일 이 사이에 본인이 시장 출마 하는 걸 접는 결심을 한 거예요.

    ▶정관용> 그게 박원순 변호사가 나온다고 하니까 접은 것 아닐까요?
    ▷김종인> 아, 그러니까 박원순 변호사가 나온다고 하니까 접은 거지요. 왜냐하면 박원순 변호사하고 그분들이 오래 전부터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이야 그런데...

    ▶정관용> 그러니까요.

    ▷김종인>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가 시장을 출마한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안철수 씨가 나온다고 하니까 박원순 씨가 자기 나름대로의 또 어떠한 준비를 했다고 나는 봐요.

    ▶정관용> 예, 이메일 보내고 서로 연락하고.

    ▷김종인> 그러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을 해볼 적에 이거 안 되겠구나, 하니까 자기가 9월 3~4일 이 사이에 출마를 포기해버린 거지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김종인> 그래가지고서 결국은 9월 6일날 2시인가 만나가지고 한 20분 만나고서 뭐 양보한 것처럼 그렇게 되어버린 거지요.

    ▶정관용> 그리고 얼마 전에 안철수 교수는 신당 창당이나 내년 총선 출마 이런 것 전혀 없다, 라고 딱 못을 박았잖아요. 그런데 우리 김종인 박사께서는 만약 대통령에 관심이 있다면 내년 총선에 나와라,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잖아요.

    ▷김종인> 아, 나는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 그러냐 하면은, 저 사람도 깜짝 놀랐을 거예요. 자기가 이렇게 높은 지지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정관용> 그렇지요.

    ▷김종인> 그러면 인간의 심리로 봤을 적에 본인도 좀 딴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 아니에요?
    ▶정관용> 그렇지요.

    ▷김종인> 본인이 지금 학교에 저러고 있으면서도 정신적으로는 거기에 대한 참 압박을 많이 받고 있을 거란 말이에요. ▶정관용> 대통령 꿈이 있다고 보시지요?
    ▷김종인> 그러니까 갑자기 생겼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니까 설사 그런 꿈이 있다고 하면은 그걸 가정을 했을 적에 그러면 사실은 좀 투명하고 정직하게 국민 앞에 딱 떳떳이 나와가지고...

    ▶정관용> 하는 게 옳다?
    ▷김종인>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나는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문제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 이러한 거를 이러한 방향으로 풀고 가겠다, 라는 이거를 제시하고서...

    ▶정관용> 그게 옳다?
    ▷김종인> 국민들의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거지.

    ▶정관용> 그러니까 안철수 교수가 김종인 박사를 멘토라고 칭하기는 했지만, 말을 안 듣는군요?
    ▷김종인> 나는, 나는 몰라요. 내 말을 들으라는 것도 아니고.

    ▶정관용> 알겠습니다. 어쨌든 서울시장 때에는 나가지 말아라, 했는데 나가겠다고 했었고.

    ▷김종인> 그래 결국은 출마를 안해버렸잖아요.

    ▶정관용> 만약 생각이 있다면 내년 총선에 나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지금 안 하고 있는 것이고?
    ▷김종인> 아니, 그러니까...

    ▶정관용> 안철수 교수는 내년 한 9월이나 10월 쯤 이렇게 대통령 선거로 직행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세요, 어떻게?
    ▷김종인> 아니, 그러니까 또 저렇게 갑작스럽게 국민의 지지도가 높다 보니까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또 꼬일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여러 가지 아마 상황을 전제로 해가지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데 본인이 정치를 안 한다는 소리도 이제 안 하고, 또 국회의원 선거는 안 나가지만, 대권 출마를 안 하겠다는 이런 이야기도 안 하잖아요.

    ▶정관용> 아직 안 했지요.

    ▷김종인> 그러니까 그 문은 열어놓고 있다 이거야.

    ▶정관용> 그렇지요.

    ▷김종인> 그러니까 결국은 그 길로 가려고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가정을 할 수 있다고요.

    ▶정관용> 예, 그런데 김 박사께서는 그건 정도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김종인> 나는 정도가 아니라고 봐요.

    ▶정관용> 또 어디에서 인터뷰를 하시면서 내년 총선에 제2의 안철수 같은 사람도 나올 수 있다고 하셨단 말이에요.

    ▷김종인> 아, 그렇지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가 그러면 안철수 빼놓고 아무 것도 없다, 라고 하면 나라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정관용> 그런데 지금 없잖아요.

    ▷김종인>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1~2월 달에 다른 소위 새로운 대통령 후보감이 나는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요.

    ▶정관용> 어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요?
    ▷김종인> 어떤 사람이라고는 단정적으로 얘기를 안 해요, 내가 안 하는데.

    ▶정관용> 대중적인 인지도나 등등 이런 게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김종인> 아니, 우리 정관용 교수가 이렇게 보면은,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되는 과정을 한번 보세요.

    ▶정관용> 그거 뭐 깜짝 바람이 불었지요.

    ▷김종인> 2002년 1월에 노무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도가 1.5%예요. 그런 사람이 40%를 육박하는 이회창 씨를 꺾고서 대통령이 되지 않았어요?
    ▶정관용> 그렇지요.

    ▷김종인>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언제라도 나올 수가 있는 거라고.

    ▶정관용> 지금 현재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교수, 박근혜 전 대표 이런 사람처럼 막 높게 나오지 않는 사람...

    ▷김종인> 아, 그건 당연한 거지요.

    ▶정관용>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내년 총선을 통해 등장해가지고?
    ▷김종인> 아니, 내년 총선을 통해 등장을 할 수도 있고, 내년 1~2월 달에 하여튼 그런 의사표시를 하면서 나타날 수도 있고 그런 거지요.

    ▶정관용> 그래서 그분이 내년 1년 사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방식의 지지도를 얻어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김종인> 아, 물론이에요.

    ▶정관용> 그렇게 말씀하시면 대상이 너무 넓어지는데요?
    ▷김종인> 대상이 뭐 넓어지기는... 그렇게 넓지는 않을 거예요.

    ▶정관용> 염두에 두고 계신 분이 있으세요?
    ▷김종인> 뭐 내 개인적으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거야 뭐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지요.

    ▶정관용> 누군데요?
    ▷김종인> 아, 누구라고 얘기를 할 수가 없다니까요.

    ▶정관용> 성이라도 말씀해주세요.

    ▷김종인> 아니, 성은, 나는 일체 그런 이야기는 안 하려고.

    ▶정관용> 기존 정치권에는 없는 분인가요?
    ▷김종인> 정치권에서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 나올 수도 있고.

    ▶정관용> 아니, 그러니까 김 박사님이 염두에 두고 계신 분이, 현 정치권에 있는 분이에요, 바깥에 있는 분이에요?
    ▷김종인> 아, 정치권에 없어요.

    ▶정관용> 전혀 없는 분? 외부 인사인데?
    ▷김종인> 아니, 지금은 왜 이런 현상이, 안철수 현상이 생겨났느냐 하면은, 지금 기존 제도권 정당이 도대체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도 안 하려고 그러고...

    ▶정관용> 못하고 있지요, 지금.

    ▷김종인> 뭐 풀이할 생각은 추호도 없고, 이러니까 뭐 20대, 30대, 40대 이 사람들이 너무나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다, 라는 얘기에요.

    ▶정관용> 그렇습니다.

    ▷김종인> 그러니까 새로움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이 지난 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새롭게 비전을 가지고서 새롭게 방향을 제시하고 누가 나타나면...

    ▶정관용> 할 수 있다?
    ▷김종인> 그 사람도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예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아, 궁금해 죽겠네요. 누굴 생각하고 계신지. 한나라당이 지금 뭐 거의 해체 상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쇄신하겠다, 재창당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또 야권 쪽에서는 야권 대통합을 한다, 뭐 이런 설들이 들리는데, 그 전망은 어떻게 하세요?
    ▷김종인> 내가 보기에는 지금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제가 개인적으로 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만, 선거를 해놓고 선거 결과에 대한 인정을 안 하려고 하는 정당이에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작년 6월 2일날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상당히 큰 패배를 안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가, 라고 하는 것을 인식을 하고 그동안에라도 조금 자기 나름의 새로운 노력을 보였으면...

    ▶정관용> 계속 바꾸겠다고만 하고 못 바꿨지요?
    ▷김종인> 이런 식으로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주 경직된 모습을 보였단 말입니다.

    ▶정관용> 이번에는 할 수 있을까요?
    ▷김종인> 그런데 지금 이번에 보궐선거에서도, 지난번 주민투표에서부터 이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주민투표에 25.7%의 투표율을 보이니까 홍준표 대표가 뭐라고 그랬어요, 우리가 실질적으로 이긴 거라고 그랬잖아요.

    ▶정관용> 예, 맞아요.

    ▷김종인> 그러니까 그 25.7%이 보수세력을 다 끌어안을 수 있으면 내년 4월 선거에서도...

    ▶정관용> 해볼 만하다?
    ▷김종인> 해볼 만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 것 아니에요? 이제 그거를 믿고서 이번에 보궐선거에 임했던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한나라당은 보궐선거에 임하면서 25.7%만 생각을 하니까, 그 표는 돌아올 거라고 생각을 하니까 투표율만 낮으면 자기네가 이길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한 거예요.

    ▶정관용> 그렇지요.

    ▷김종인> 그래서 예를 들어서 25.7%를 다 자기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중에서 한 5% 정도는 디스카운트 해버리고, 20%만 지지를 하면 40% 초반의 투표율이면 자기네가 될 거라는 이런 생각을 했던 거지요. 그런데 그게 이제 안 들어맞아 버린 거지요. 그렇게 해서 결국은 무소속인 박원순 씨한테 졌기 때문에, 기존 소위 정당으로서의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거지요.

    ▶정관용> 그래서 지금 재창당하겠다는데, 할 수 있을까요?
    ▷김종인> 그 재창당이 금방 되겠어요? 나는 근본적으로 무엇을 놓고서 재창당한다고 그러는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데, 지금 똑같은 사람이 지금까지도 못한 사람들이 뭘 또 새로운 걸 뭘 할 수 있겠어요?
    ▶정관용> 야권 통합은 뭐 순조롭게 될까요?
    ▷김종인> 야권 통합은 이제 자기네들끼리 이제 계속해서 추진해온 건데, 민주당도 역시 한나라당이랑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10월 3일날 야권 후보 단일화에서 박원순 씨한테 졌을 적에 이미 민주당은 자기네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어요.

    ▶정관용> 그렇지요.

    ▷김종인> 그런데 그때 민주당이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그러면서 민주당은 10월 3일, 한나라당은 10월 26일날 둘 다가 다 똑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내가 미리부터 이야기했던 사람인데, 결국은 그렇게 해놓고서, 선거를 끝나고서 국민들의 뜻이 뭐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안 되는 거지요. 지금은 그러니까 야권 통합을 하다보니까 이제 기존 민주당의 기득권 세력들이라는 것이...

    ▶정관용> 반발하고 있지요.

    ▷김종인> 자기네들 기득권이 혹시라도 상실되어 버릴까 해가지고 기득권 보호 차원에서 지금 난리를 치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 결과적으로 국민의 빈축만 살 수밖에 없는 거지, 뭐.

    ▶정관용> 그걸 극복하고 통합에 성공할까요?
    ▷김종인> 내가 볼 때에는 시대의 흐름으로 봐서는 통합은 이루어질 거라고 봐요. 그런데 지금 나는...

    ▶정관용> 그런데 잔류파가 남을까요?
    ▷김종인> 잔류파가 남아서 그거 뭐가 되겠어요?
    ▶정관용> 그건 못 남는다?
    ▷김종인> 남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보기에는 존립하기가 굉장히 힘들 거라고 보는데...

    ▶정관용> 어쨌든 통합은 긍정적으로 보시는 거네요.

    ▷김종인> 그건 그렇지요.

    ▶정관용> 그렇게 되면 내년 총선에서는 야권 쪽이 유리합니까?
    ▷김종인> 아, 뭐 야권이 통합이 되어가지고서, 자기네들 지금까지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한 단일 후보를 만들어낼 것 같으면 내가 보기에는 뭐 굉장히 유리한 입장이라고 봐요, 현재의 정치 여건으로 봐서.

    ▶정관용> 과반수 이상?
    ▷김종인> 뭐 과반수가... 통합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단일화가 이루어진다고 그럴 것 같으면 과반수도 가능하다고 봐요.

    ▶정관용>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 지금의 야권 쪽에서 뭔가 새로운 인물이 또 나타난다?
    ▷김종인> 그렇지요. 아니, 그러니까, 내가 말씀드리는 게 그래요, 야권이 단일화가 되어가지고서 거기에서 후보가 나오면은 외부에서 사람을 들여올 필요를 느끼지 않아요. 외부에서 사람을 안 들여와도 자기네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정관용> 단일 후보만 나오면?
    ▷김종인> 그리고 대권이라는 것을 가지고 양보를 쉽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뭐 밖에서 어정쩡하게 내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가 가면 될 수 있다, 이거는 착각이라고 생각한다고.

    ▶정관용> 안철수 교수의 경우?
    ▷김종인> 내가 옛날에 63년도에 야권 대통령 후보 단일화하는 과정을 내가 보면은...

    ▶정관용> 그 이야기는 조금 쉬었다가 3부에 더 이어가도록 하고요. 경제민주화 조항 이야기부터 해야 되는데, 이게 궁금증부터 풀다 보니까 안철수 교수 정치 이야기부터 나왔는데요.

    ▷김종인> 그거 뭐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물어보니까 내가 이야기를 하는 건데...

    ▶정관용> 새로운 이야기가 좀 나올 줄 알았지요. 35분에 다시 옵니다.
    시사자키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www.nocutnews.co.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태평로] 정치 안 한다는 스님의 '정치력'

  • 박은주 문화부장
  •  법륜 스님의 존재를 알게 된 건, 필리핀 반군의 섬 민다나오에서 '평화의 전령' 역할을 하고 있는 이원주씨 이야기를 지난 연초 조선일보 Why 지면에 실었을 때였다. 필리핀서 사업을 하는 이씨는 스님을 수행해 민다나오를 방문했고, 그 참혹한 현장을 함께 보던 스님이 "방법을 좀 찾자"는 얘기에 봉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이씨는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 회원이다. 하루 한 시간 기도, 하루 1000원 보시, 하루 한 가지 선행을 하는 '천일결사(千日結社)', 그의 열 배에 달하는 기간을 약속하는 '만일결사' 등에 참여하는 신도는 수십만명이다.

    법륜 스님은 1969년 출가했지만, 조계종 같은 종단에 '적(籍)'을 올린 적이 없다. 공식적으로는 승적 없는 승려다. 그럼에도 법정 스님 이후 가장 큰 인지도를 가진 승려로 대부분 법륜 스님을 꼽는다.

    요즘 법륜 스님에 관한 뉴스는 신문 정치면에 나온다. 한 번도 선언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잠재적 대선 주자 안철수'의 멘토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정치적 발언으로 더 유명해진 김제동·김여진, '표절 가수'(작곡가 잘못이었지만 네티즌은 가수를 박살 냈다)로 불리다 단박에 '개념 연예인'으로 등극한 이효리까지 다 법륜 스님 인맥이다.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싫어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법이다. '법륜 스님이 제3당 창당을 원한다'는 소문까지 나오며 이제 그는 진보 세력의 상징이 됐다. "정교(政敎)분리 원칙도 모르나. 왜 스님이 정치를 하나" "차라리 승복을 벗고 아예 직접 나서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이회창 의원은 "스님은 법당에 머물러야 한다"고 못 박아 얘기했다.

    그럼 대체 '정치'가 무얼까. 별로 하는 일 없이 놀기만 하는 '건달 집단'에서 주먹과 쇠파이프, 최루탄까지 등장하는 '양아치 집단'으로 변신한 국회(이렇게 썼다고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까 겁난다)도 정치를 하는데 다른 이가 못할 이유가 없다. 무능력한 정치인들은 정당인의 '정치 독점권'을 스스로 폐기했다.

    문제는 법륜 스님 스스로 '절대 정치가 아니다' 하고 있는 애매한 상황이다. 정당을 만든 것도 아니고, 봉사와 대중 강연을 하는 걸 두고 '정치'라 못 박기는 쉽지 않다. 그의 말과 행동, 그 파장이 정치권에 요동을 일으키는 '정치적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건 '스님 책임이 아니다' 하면 그만이다. 잔잔한 물가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어나지만 이미 물은 스스로 거센 파도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난 파도를 가라앉히는 것이 수행자의 몫이며 도리라 믿는 이가 더 많다. 그러나 그런 단순 논리로 스님에게 '조용히 계시라' 하는 것은 의미도, 효과도 없다.

    법륜 스님을 세상에 널리 알린 '스님의 주례사'란 책이 있다. 스님 주례는 이런 식이다. "왜 결혼해서 살며 스님을 부러워하느냐. 덕 보려는 마음, 손해 안 보려는 마음이 커서 그렇다.… 손해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한번 살아봐라. 그렇게 살면 머리 안 깎아도 열반에 든다." 스님은 결혼을 안 해 봤으니 원칙적으로는 '자격 없는' 주례다. 그런데도 이 스님의 주례사는 누구 것보다 속 시원하다. 그는 사람들 속을 훤히 까보이고, 대신 기분 좋게 희생하는 법을 설파한다.

    정치 한다며 정치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욕해도, 정치 안 한다면서도 정치판에 파란을 일으키는 스님의 경쟁력은 당분간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세상은 행운인가, 불행인가.

    "스폰서 따는 데…" 여고생 골퍼 '성형 필수 코스' 충격

    [중앙선데이]입력 2011.12.11 01:40 / 수정 2011.12.11 13:19

    성형도 이젠 스펙? 한국, 수술 건수 세계 2위
    성형열풍 코리아, 그 빛과 그림자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지난 8월, 중견 여배우 신은경(38)씨가 갑자기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양악수술(얼굴 및 턱뼈를 깎아 갸름하게 하는 수술)받고 인터뷰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이 일었다.
    이제까지 연기자 신이와 강유미·김지혜·임혁필 등 개그맨들이 양악수술을 받고 화제가 되긴 했지만 인지도 높은 배우가 양악수술 후 공개적으로 인터뷰한 것은 신씨가 처음이다.
    신씨는 “각진 턱에 강한 인상 때문에 독한 성격의 배역을 주로 맡았다”며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고 싶어 수술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누리꾼의 반응은 다양했다. “정말 놀랍고 부럽다.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양악수술을 꼭 하고 싶다”는 여고생부터 “정말 좋아하던 개성파 배우였는데 안타깝다. 신은경이 아니라 딴 사람이다. 끔찍하고 싫어졌다”는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엇갈린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 아이디 zilack를 쓰는 한 의료인은 “양악수술은 원래 턱뼈 기형 등의 문제가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행해지던 고난도 수술이다. 주요 신경과 굵은 혈관이 모두 지나가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쌍꺼풀·코 수술처럼 간단한 게 아니다.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텐데 단순 미용수술인 양 얘기하는 것은 공인으로서 적절치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에 성형 열풍이 뜨겁다. 연일 터지는 연예인들의 성형 ‘커밍아웃(coming out)’으로 웬만하지 않고는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다. 성형이 대중화됐다는 뜻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이제 한국 여성에게 성형은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하거나 핸드백을 사는 것만큼 친숙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가 전 세계 25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형 행태 분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형 건수는 65만9213건으로 7위였다. 하지만 전체 인구 대비 성형률은 1.324%로 헝가리(2.326%)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성형에 대한 욕구도 높다. 최근 서강대에서 재학생 50명을 대상으로 성형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8%인 49명이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 있다”고 답했다. 구직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10명 중 3명이 구직에 앞서 성형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달 전북의 한 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는 성형수술비 지원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나타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 후보는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각할 때 외모는 빠질 수 없는 스펙”이라며 “성적 좋고 우수한 학생을 선별해 성형수술비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요즘 젊은 세대는 성형한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조성필 회장은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미용에 대한 개념이 넓어지면서 성형도 높은 소득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여대생 김아라(25·서울 서초구)씨는 “요즘 돈 좀 있는 집 애들은 부모가 알아서 성형외과를 알아보고, 방학마다 성형 ‘스펙’을 올린다”며 “친구들끼리 자랑 삼아 ‘우리 엄마가 이번에는 ○○성형 해 줬는데…’하면서 거리낌 없이 얘기한다”고 말했다. 올해 여고 2학년에 올라가는 최진이(경기도 과천)양은 “우리 반 35명 중에 벌써 4명이 성형수술을 했다. 수술한 뒤 모습을 싸이월드나 트위터에 자랑스럽게 올린다”고 말했다.

    한국에 이렇게 성형 열풍이 일고 있는 까닭을 한국 사회의 빠른 산업화와 관련 짓는 학자들이 많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모든 일이 빠르게 처리되는 한국 사회에서 한 인간을 두고 깊게 생각하고 판단할 여유가 없어졌다. 새로 만난 한 ‘인간’을 5분 내에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잣대가 외모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 분위기를 성형 열풍의 이유로 꼽기도 한다. 신 교수는 “한국은 대학·기업 면접 때 그 학생이나 직원을 맡았던 교사나 상사가 추천서에 좋은 말만 써준다.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 사람을 평가할 때 믿을 만한 판단 기준이 없다는 것도 한국 사람이 유독 외모에 높은 가치를 두는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민족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민족적 기저 심리가 외모에 더욱 집착하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는 분석을 내놨다. 거기다 연예인들의 외모를 찬양하는 매스컴의 보도 행태도 외모지상주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평이다.

    실제로 다양한 직군에서 외모로 서열이 매겨지고 있는 게 한국의 실정이다. 연예인은 물론, 스포츠 선수 세계에서도 외모에 따라 ‘몸값’이 매겨진다. 실력은 기본이고, 외모까지 받쳐줘야 스폰서 계약이 쉽다.

    LPGA 박모(24·하나금융그룹) 선수는 몇 년 전 얼굴이 확 변했을 정도로 큰 성형수술을 받았다. 동료들까지 잘 몰라봤을 정도였다. 박 선수는 이후 “쌍꺼풀 수술을 받아 자신감을 찾았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여고생 골퍼의 경우 프로 데뷔 전 성형이 필수 코스일 정도로 일반화됐다.

    이렇게 성형 열풍이 일다 보니 성형 수준도 덩달아 올라가고 몇 해 전부터 한국에 성형 원정을 오는 외국인들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말에는 중국의 여가수 왕룽이 서울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돌아가다 여권사진과 성형수술 뒤 얼굴이 너무 달라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은 해프닝이 있었다. 2007년에도 중국의 한 여성이 서울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귀국하다 입국을 저지당했다. 이 여성은 가족을 동원해 신원을 보증한 뒤에야 출입국사무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필요한 성형도 적지 않다. 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 오갑성 교수는 “안면기형이나 찌르는 눈썹, 내려앉는 눈꺼풀, 삐뚤어진 코 등은 그대로 두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한 좌우 비대칭은 몸의 전체적인 골격도 삐뚤게 해 근육 통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삐뚤어진 코는 호흡을 어렵게 해 턱을 발달시키고, 부정교합(치아 교합이 바르지 않은 것)에 이르게 해 만성소화불량·호흡기장애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찌르는 눈썹은 어린이 시력 저하의 주된 원인이고, 노인의 내려앉은 눈꺼풀은 시야 확보를 어렵게 해 낙상 등의 원인이 된다. 오갑성 교수는 “얼굴 한쪽 면이 심하게 삐뚤어져 항상 머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다니던 여성, 심하게 들린 돼지코 때문에 평생 놀림 받으며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남자 고등학생이 수술을 받은 뒤 울먹이며 고맙다고 하는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성형수술은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는 긍정적인 역할도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무분별한 성형이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조성필 회장은 “성형외과 수술은 비급여 항목인 데다 수술 한 건당 의료비가 가장 높다. 게다가 수요가 많아지다 보니 10여 년 전부터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 또는 다른 진료과 전문의까지 너도나도 성형외과를 개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병원 간 경쟁도 치열해 환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선정적인 광고도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하루 만에 신데렐라’ ‘180도 달라진 나’ 등 자극적인 광고로 고객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비포 앤드 애프터(before & after) 사진, 실제 성형 모델이 전면 광고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성형외과 수술에 자신이 없는 비전문의일수록 이 같은 선정적 광고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성형수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회복 불능의 부작용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성형외과 부작용 상담 건수는 2006년에 1901건이었지만 2010년에는 2984건으로 57% 늘었다.

    이진아(가명·33·서울 성동구)씨는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자다. 자기 뼈를 이용한 새로운 수술법을 사용한다는 한 병원에서 1년 전 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코가 부어올라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오는 피오나(슈렉 부인)처럼 됐다. 병원을 찾아가 다시 원래 상태로 해 달라고 했지만 ‘우리는 잘못 없다’는 냉담한 대답만 들을 뿐이었다. 다른 병원에 찾아갔지만 어떻게든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됐다는 절망적인 얘기만 들었다. 이씨는 현재 피켓 한 장과 자신의 얼굴 동영상이 나오는 노트북을 들고 해당 성형외과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인터넷 포털의 수백 개 성형전문 카페에서는 부작용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온다. 이들은 성형 부작용이 많이 생기는 병원들에 대해 자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배지영·장치선 기자 jybae@joongang.co.kr

    “안철수, 뭔가 하려면 비전 내놓고 국민검증 받아야”
     
    한겨레가 만난 사람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인터뷰/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당도 유권자들 호응 없으면
    그들의 바람대로 창조적 파괴를
    SNS 규제는 리더십 무능 자인한 꼴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젊다. 늘 새로운 변화를 이야기하고 이를 수용한다. 넓다.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한다. 그는 스스로를 보수라고 이야기한다. 일평생 자신의 말을, 신념을 바꿔본 적이 없는 보수라고. 원칙을 지키면서 늘 변화하려는 태도가 그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정치인과 시각을 넓히려는 경제인, 갈 길을 묻는 시민단체 운동가들이 끊임없이 그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할 때 그를 찾은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현실 정치권 모두가 숨가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시점에 서울 종로구 부암동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으면서 꺼낸 인사말이 바로 인터뷰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안철수 원장 이야기가 나왔던 탓이다. 그는 안 원장이 올바른 정치적 평가를 받으려면 먼저 국회에 가서 현실 정치를 올바로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들이 정신차려야 한다. 안철수 원장이 지금 이 상태로 대통령 되면 나라가 엉망이 될 수 있다. 안 원장이 나에게 ‘국회의원과 국회가 무슨 일을 하냐’고 되묻더라. 정치는 소모적이고,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 아니냐고 하더라. 의회의 기능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생각을 하냐. 그러나 아무리 국회의원들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운명은 거기에서 결정된다. 그곳을 모르면 안 된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정치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나와야 하는데, 아직 용기가 없는 것 같다.”

    -늘 건강한 모습인데,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

    “무엇에 집착하면 건강이 나빠진다. 세포가 죽는다. 난 뭐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 편이다. 편한 마음 가지고 살면 건강에 제일 좋은 것 같아. 그런데 요즘 술은 많이 마시지 않는다. (그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가득 채운 폭탄주 7~8잔은 거뜬히 마셨다.) 술을 마시려면 대화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비교적 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제는 그 대화가 흥미롭지가 않다. 대화도 공통의 토론 소재가 생기고 논쟁이 이뤄져야 희열도 느끼는데, 요즘은 진지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을 만나기 힘들다. 문제의식이 없으면 대화가 재미가 없다. 요즘 50대 이상의 현실이 그렇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 사회의 허리라는 4050세대들이 자신들의 삶에만 빠져서 2030세대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것 같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정치적으로 우둔한 판단이 결국 한국 정치에 변곡점을 가져왔다. 오 시장이 그만두고 급작스럽게 시민운동 하던 박원순씨가 출마해서 서울시장이 됐다. 10월3일 민주당의 단일화 경선 결과를 보면 박영선 후보가 7%포인트 차이로 졌다. 그날 민주당의 존재 가치는 없어진 것이다. 국민의 배척을 당한 것이다. 난 박원순 변호사가 단일후보가 되던 날, 한나라당도 10월26일에 똑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지를 않더라. 봐라. 10월26일에도 한나라당이 7% 격차로 지지 않았나. 한나라당도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지고, 박근혜 전 대표 체제가 새롭게 가동될 것 같다. 한나라당이 현재 위기를 탈출할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0·26 이후 안이하게 책임지는 사람 없이 적당하게 가려다 디도스 사태가 나면서 지금 벌집 쑤셔 놓은 꼴이 됐다.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의사표시를 한다. 대한민국 선거에서 서울 민심의 외면을 받은 정당은 결코 생존하지 못했다.

    1958년 자유당 정권이 서울 민의원 선거에서 전멸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민의에 지고도 힘의 논리로 60년 3·15 부정선거 하다가 결국 사라졌다. 63년에 집권한 공화당은 71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에서 완패했다. 그런데 공화당은 유신으로 맞받았지. 그러다 78년 10대 의원 선거에서 서울에서 공화당이 모두 2등을 했다. 당시는 한 선거구에서 2명을 뽑을 때라, 당선은 됐지만 사실상 진 거지. 공화당이 그 다음해에 사라졌다. 80년에 들어선 민주정의당은 85년 12대 총선 때 역시 서울에서 모두 2등을 했다. 이 힘을 가지고 야당이 대통령 직선제 하자고 하니까 전두환은 87년 4월 호헌선언으로 무시했어. 그러나 6·10 항쟁으로 국민들 앞에 패배하고 직선제로 갔다. 그런 정치적 흥망을 이해하면 10·26 선거 결과를 보고는 바로 당을 바꿨어야 한다. 기업들은 상품이 안 팔리면 창조적 파괴를 한다. 슘페터의 이야기다. 정당도 유권자들의 호응이 없으면 그들의 바람대로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어떤 방향으로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하나?

    “그들이 늘 감세만 이야기하지 않았나. 정부가 사용할 수단이 세제와 재정정책인데, 감세만 하자고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약자를 위한 정책을 하자고 하면 진보파, 좌파로 매도하던 게 한나라당이다. 2030세대들은 그런 이념공격에 관심이 없다. 이념의 시대는 갔다.”

    -세금 문제가 내년 총선에서 큰 쟁점이 될 것 같다. 여야가 세수정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정부가 제대로 된 재정정책을 하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그러면 여유있는 사람들이 더 내야지. 한 가지 과거 사례를 이야기하자면, 1973년 1차 오일쇼크 났는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회적으로 긴장이 높아졌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재정긴급명령으로 긴급조치 3호를 내렸다.소득세 면세점을 1만8천원에서 5만원으로 올렸다. 그러면 소득세 면세 인원이 전체 납세자의 80%가 된다. 고소득자 20%만 세금을 내고 모두가 면세자가 되는 상황이었다. 정치적으로 긴박하면 그런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 미국에서 워런 버핏과 같은 대부호들이 세금을 더 내겠다고 나서서 ‘버핏세’ 도입한다고 하는데, 상층부가 돈을 더 낸다고 해서 세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마음이 달라진다. 세금의 역사는 정치혁명의 역사다. 세금은 정치적으로 잘 요리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 세제는 흔히 ‘누더기 세제’라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세제를 건드리기 힘드니까 변칙적으로 부가세만 늘렸다. 교육세, 농어촌특별세 등등 이런 것들. 1977년에 시작한 부가가치세 정책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87년 한때 부가세를 15%까지 올리는 방안이 검토된 적이 있다. 조세부담률을 21%까지는 올려야 제대로 된 재정정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조세부담률을 21%까지 올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각종 감세를 하는 바람에 19%대로 떨어졌다. 이런 식으로 감세하는데, 재정부담은 더 늘어났다. 새로운 정부는 이런 조세정책을 다시 과감히 손볼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조세부담률 21% 돼야 재정정책 가능
    새 정부, MB조세정책 뜯어 고쳐야
    내년 대선주자, 양극화 해소방안 제시를

    -내년이 대선이다. 대선을 앞두고 흔히 시대정신을 이야기한다. 내년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사회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조화를 이룰 방안을 말해줘야 한다. 양극화를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방안을 내줘야 한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당도 참 한심하다. 내가 민주당은 10월3일에 존재 가치를 잃었다고 하지 않나. 그러면 시대적인 과제로 야권통합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야권도 빨리 하나가 되어 수권정당이 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 정당이 정권을 잡아서 어떤 결과를 빚었는지 잘 알지 않나. 지금 일부 기득권을 누리고 싶은 이들이 대세를 역행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는 존재 가치가 없다. 그러니까 안철수 원장 같은 사람이 갑자기 나오겠다는 식이 되는 것 아니냐.”

    -안철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방향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한국 정당과 정치구조가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나는 유권자들의 욕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겠는가?

    “유권자들이 안철수 원장에게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여야 정당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에 빠져 유권자들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원장도 본인의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 개인만 있다. 자기가 뭔가를 하려면 자신의 계획을, 비전을, 해결책을 내놓고 국민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투명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

    -진보정당들은 통합해서 통합진보당으로 출범했다.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내가 진보 쪽에 아는 사람도 많지만, 죄송한 이야기지만 대한민국에서 진보의 행동반경이 크지 않다. 진보도 뭐를 하겠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았다. 복지도 그렇다. 그간 진보에서 복지문제에 대해 제대로 이슈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 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교수가 경기도 교육감으로 나서면서 무상급식으로 큰 표를 가져가니까, 민주당도 진보정당도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

    국민들이 생존을 위협받을 때 그들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사회정책의 기본 목표다. 사회·경제정책을 제대로 하면 재정수요를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마트·롯데마트 같은 기업들이 인구 30만~40만 하는 소도시에 들어가면 소상인들이 모두 망해서 영세민이 된다. 그러면 사회적 재정수요만 늘어나게 된다. 이런 일들을 제대로 된 경제정책으로 먼저 막아야 한다. 이런 역할을 좀더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시장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2040의 반란이라고 말한다. 이들에게서 현실 정치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21세기는 지식정보화사회다. 이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비판적, 합리적이다. 정부가 종전처럼 언론을 통해 여론 조작하고 통제할 수가 없는 세대다. 이들은 불공정, 비민주, 불평등, 이런 것들을 제일 싫어한다. 흔히 소통이 안 돼서 그렇다는 말을 하는데,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어떻게 국민들과 일일이 소통하냐. 정책의 결과가 소통이다. 정책이 잘못됐는데, 무슨 내용을 가지고 국민들과 소통하냐. 또 (집권 여당에) 언론이 지금처럼 잘해준 때가 어딨냐.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말을 바꾼 적이 없다. 나는 내가 가진 신념에 투철한 사람인데, 그렇다고 시대의 변화에 꽉 막히지도 않은 사람이다. 세계의 변화에 대해 매일매일 방송과 신문으로 보고 익혀왔다. 지도자는 국민들의 변화에 철두철미하게 반응해야 한다. ‘내가 옛날에 그랬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옛날의 유능이 지금의 유능은 아니다. 언론을 자기편으로 돌리면 국민이 따라갈까? 그렇지 않다. 그건 히틀러식 홍보방식이다. 지금은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규제하겠다는 그런 식의 발상을 한 것은 근대사회를 이끌어갈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방송도 통제하겠다고 하는데, 지상파 4개 방송이 하나같이 똑같아지면 국민들이 짜증난다. 그러니 방송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보수언론 ‘조중동’을 보면 기사가 똑같다. 그러니까 독자들이 신뢰를 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 여당도 여러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청와대에서 호루라기 불면 모두가 따라가는 방식으로 하다가 지금 여당이 저 꼴이 난 것이다.”

    -다음번 대통령이 될 후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에서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주권을 가지고 정책을 하려면 먼저 남북문제가 풀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행동반경이 제약을 받는다. 중국 경제가 저렇게 가면 대한민국 경제는 결국 중국 의존형이 된다. 지금과 같은 관계로 가면 중국과 정치·외교에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마찰을 빚을 수 있다. 남북한 관계가 먼저 풀려야 한다.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북한을 대해서는 안 된다. 전쟁중에도 정치적으로 대화는 해야 한다는 것이 클라우제비츠(독일의 전략가)의 말인데,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이유로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다. 6자회담 초기 대표였던 이수혁 전 주독일대사가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했는데, 이런 말들을 유념하고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김종인은 의료보험·헌법 ‘경제정의 조항’ 도입에 기여

    김종인(71) 전 청와대 수석은 경제학자이자, 국회의원을 네 번(11대, 12대, 14대, 17대) 지낸 정치인이다. 모두 비례대표로 선출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그의 조부는 일제강점기에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정부 수립 후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이다.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스터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집안 분위기로는 정치적으로 정통 야당에 가까웠지만, 공직 생활은 군사정권에서 했다. 독일에서 유학한 그는 국가의 권한과 의무를 중시하는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박정희 정권 때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참여해 의료보험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 때 ‘경제정의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119조 2항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노태우 정부 때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하여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했고, 이후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했다. 강력한 재벌개혁론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태희 기자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최보식이 만난 사람]요란한 정치판의 국회최다選(7선)…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의원

    “때가 되면 당을 깨니… 낙선 두려워 이합집산 초선의원들에 실망”
    노무현은 '준비 안 된'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 빈곤, 안철수 언행과 처신에 문제
    청와대 초청받은 적 없어, 물러날 때 왔지만 불안해, 정치인 최고 덕목은 '용기'

    정치판에는 때가 되니 '개혁'과 '쇄신'으로 요란한데,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76) 의원은 국회도서관에서 지내고 있었다. 규칙적인 일과였다.

    ―구호 속에 숨어있는 본질은 뭐라고 보나?

    "정치인의 생존 본능이다. 내년 선거에서 당선되느냐를 계산한다. 선거란 개인의 노력 이상이고, 정당 지지도가 필요하다. 특히 한나라당의 앞날이 어둡다. 하지만 정치인이 낙선하는 걸 두려워해서 되겠나."

    ―조 의원은 안 두려웠는가?

    "낙선도 해봤다. 하지만 낙선을 병가상사(兵家常事)로 여겨야지. 날 때부터 국회의원이 보장됐나. 정말 실망스러운 것은 초선의원들이 낙선이 두려워 부화뇌동 이합집산한다. 쇄신·개혁을 꺼내 도피한다. 살기 위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다는 말도 들었다. 국정 운영에 잘못이 있다면 야당 할 각오를 하고, 앞으로 남은 기간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게 옳다."

    ―패배가 명백하니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 아닌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과반수를 달라고 했고 성공한 것 아닌가. 내부적으로 개혁하고 인적 쇄신을 할지언정, 다음 선거까지는 적어도 당을 깨거나 당명을 바꿔선 안 된다. 새로운 정당이 되면 이 나라에는 집권당이 없게 된다. 국정운영에서 한나라당은 대통령과 연대책임이 있다. 그 결과를 피해서는 안 된다."

    조순형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민주당도 해체하고 야권통합으로 가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지방선거와 재보선에도 승리했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으면 몰라도 당을 깰 만한 사정이 없는 것 같다. 때가 되면 당을 깨는 것이 과연 정당정치고 책임정치인가."

    안철수 교수의 등장으로 기존의 정당정치가 흔들렸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현상일까?

    "처음에는 일시적인 것으로 봤는데, 상당히 지속되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박원순 후보를 당선시켰으니까. 양대 정당은 맥을 못 췄고."

    ―안 교수의 대선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그는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이미지고, 인간적인 매력도 있다. 여기에 정치권에 대한 불신·실망감이 가세했다. 하지만 아직 대선까지 1년이 남았다. 정치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많이 달렸다."

    ―저런 바람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나?

    "안 교수가 등장할 때, 민주당이야 우군(友軍)으로 생각했지만, 집권당은 왜 정면대응을 안 했냐. 안 교수의 언행과 처신에는 잘못된 게 있다."

    ―어떤 점을?

    "그는 지난 6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취임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모든 학문의 벽을 넘나들면서 신지식을 창조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 새롭고 위중한 분야라면 전심전력해야 한다. 그런데 취임 석 달도 안 돼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려고 했다. 이는 공인으로서, 국립대 교수로서 문제가 아닌가. 그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있었다. 현 정권의 국정철학이나 가치관에 동조해왔다는 뜻이다. 이런 그가 '집권세력은 역사를 거스르는 세력'이라고 극단적인 비판을 했다. 이런 모순을 왜 지적하지 않나. 또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뒤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에서 상식이 이겼다'고 논평했다. 그러면 나경원 후보를 지지한 46%는 비상식적인가."

    ―대통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권력의지'를 중요하게 본다. 안 교수의 권력의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주변에서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에서도 영입하려고 하지 않나."

    ―조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형식상으로 그렇지만 실권은 없었다."

    ―당시 지지율이 낮았던 노무현 후보에 대해 '당내 흔들기'가 있었지만 그를 지켰다. 그때 어떤 확신을 갖고 있었나?

    "민주당 경선에 여러 후보가 나왔다. 처음에는 '이인제 대세론'이 있었다. 당시 천정배 의원이 찾아와 '노무현 후보에게는 지지하는 현역의원이 없다. 다른 사람은 소용없고 선배께서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딴 후보들도 모르는 사이가 아니니 내가 나서기는 그렇다'고 말했다. 당시 노 후보에 대해서는 아직 이르지 않는가 생각했다. 어쨌든 경선에서 노 후보가 이겼다. 하지만 그 뒤 치른 지방선거 결과가 부진했고 인기가 떨어졌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 열대여섯명이 탈당해 정몽준 의원 쪽으로 옮겨갔다. 나는 그게 굉장히 못마땅했다. 경위야 어떻든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로 당 후보를 뽑았다. 지지하는 게 당연한 도리다. 그때 노 후보가 '도와달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렇게 해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노 후보 당선의 공신(功臣)이라고 할 수 있는가?

    "뭐 그렇게 볼 수도…."

    ―이듬해 '개혁'을 앞세운 친노파가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게 노 대통령과 갈라서게 된 계기였다."

    ―당시 흐름은 열린우리당 쪽이었는데, 그때 조 의원은 왜 남았나?

    "노 대통령은 민주당 간판으로 당선됐다. 민주당은 집권여당이다. 민주당이 아무리 '구태정치'라 해도, 분당하거나 해체시켜서는 안 된다. 국정운영에 대해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그런 열린우리당도 노무현 집권이 끝나기 전에 해체됐다."

    ―당시 잔류 민주당 대표로서 노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런 결행에 아쉬움이 없나?

    "원칙대로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 대통령이 한 발 좀 물러섰으면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노 대통령을 당선시킨 입장에서 탄핵까지 나선 데는 감정적인 면도 개입됐나?

    "그가 민주당을 분당시킨 것은 도의적으로 잘못됐다. 그 뒤에도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도와주는 것'이라고 공개 발언을 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중앙선관위에서 두 차례 공문을 보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선거법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이는 탄핵사유가 된다. 하지만 그때껏 헌정사에서 대통령 탄핵은 없었다. 의원 과반수 발의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다. 탄핵 발의를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지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그냥 정치적인 경고였을 뿐이다."

    ―결국 그전까지 대중적 인기가 좋았던 조의원이 '탄핵역풍'을 맞고 낙선했다.

    "그때는 정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역구도 타파에 나서 불이익을 받는 등 신념과 용기가 있는 대중정치인이다. 다만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된 게 아닌가. 대통령이 돼서는 주위에 잘 보좌하고 이끌어줄 인맥이 없었다. 너무 섬광처럼 됐지 않는가."

    인터뷰하는 모습
    ―조 의원도 잔류 민주당 대선후보(2008년) 경선에 나선 적이 있다. 본인을 대통령감이라고 자신한 것인가?

    "현실적으로 당세나 여러 가지로 보나 가능성이 없었다. 다만 대통령 후보가 있어야 했고, 흥행을 위해 경선을 치러야 하니 내게 나서달라고 했다."

    ―이인제 의원에게 밀려 2등을 하다가 중도사퇴했다. 본인의 정치력에 어떤 한계가 있었나?

    "조직과 자금이 없어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전에도 최고위원·원내총무를 뽑는 당내 선거에 나갔지만 다 졌다."

    ―그 뒤 탈당했는데.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통합하려는 것을 내가 반대했다. 민주당을 파괴했던 정당 아닌가. 민주당은 보수정당인데, 그 정체성이 변질되는 걸 보고 탈당했다."

    ―그게 밉다고 정치적 입장을 달리해왔던 자유선진당으로 가서 비례대표가 됐다. '미스터 쓴소리'의 이름을 더럽힌 게 아닌가?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봐야 어렵고, 정치를 접으려고 했다. 그때 이회창 총재 측에서 제안이 왔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보수주의 노선에 공감했다."

    ―비례대표는 두 번 하는 경우가 드물고, 현재 나이를 감안하면 지역구 출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역구는 끝났고…, 물러나갈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최종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최종 결정을 못 내렸다면 어떤 미련이 있나?

    "의사당 안에서 최루탄을 투척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법관이 정치적 발언을 마음대로 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한다. 법치가 실종돼가고 있다. 한나라당도 복지포퓰리즘을 쫓아가고 있다. 뭔지 모르나 떠나기가 불안하다. 내가 농담으로 '정치 인생 30년쯤 지나니까 국회의원은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새로 시작한다면 정말 잘할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술도 안 마시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오후 6시면 퇴근하고, 성격적으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지 않는다. 어쩌면 정치인으로서 가장 부적합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지냈다. 정당 안에서도 비주류였다. 내 성격 탓도 크다."

    조병옥 박사의 아들인 그는 1980년 형 조윤형 의원이 정치규제로 묶이자, 형 대신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 뒤로 30년을 정치판에서 지냈다.

    ―그런데 7선(選)을 했다.

    "술 마시고, 자기 자랑 잘하고, 청탁 잘하고, 무리 잘 짓고, 권모술수에 능한 것, 정치인에게는 이런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나는 교과서대로 해왔다. 이제 새로운 유형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용기일지 모른다. 불이익과 손해가 있더라도 발언하고 행동하는 용기 말이다."

    ―민노당의 김선동 의원은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렸으니 용기있는 정치인 아닌가?

    "그건 잘못된 용기다.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신념이 옳다는 것을 위해 발언하고 행동한 것은 평가해줘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런 용기의 10분의 1만 있어도 오늘날 국회가 정치가 이렇게 안 됐을 것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점수를 얼마나 줄 것인가?

    "그렇게 부지런한 대통령이 없다고 들었다. 경제위기를 두 번 잘 극복했다. 다만 정치력 빈곤, 부재다. 정치를 잘 모르고 멀리 했다. 오늘날 지지율이 하락된 것은 그 때문이 아닌가. 국정의 실패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평가되겠지만."

    ―어떤 정치력을 말하나?

    "18대 총선이 끝난 뒤 한나라당 당선자만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했다. 이건 참 잘못하는구나. 여·야 안 가리고 당선자 전원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야지. 내가 양대 정당 소속이 아니더라도 국회 최다선인데 청와대 콜을, 청와대 정무수석의 방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번 한·미 FTA 처리를 앞두고 대통령이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왔다. 정중하게 잘 썼더라. 하지만 이를 의원사무실마다 그냥 던져놓고 갔다.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을 특사로 보내 의원들 개개인을 직접 만나 설득해야 하지 않는가. 이게 정치력의 한계다."

    ―'미스터 쓴소리' 별명에 본인은 자부심을 느끼나?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얘기해 별명이 붙었는데, 오히려 부담이 되지. 쓴소리를 마냥 해야 하니까."

    ―쓴소리를 잘하는 사람은 남의 쓴소리를 듣는 건 못 참는다는데.

    "나도 사람이니까 그런 소릴 들으면 불쾌하지만, 뭐 좋은 말만 들을 수 있겠나."

    ―좀 재미가 없는 사람이 아닌가? 꼬장꼬장하고, 집안에서도 그런가?

    "별명이 붙어서 그렇지, 농담하고 웃기도 잘한다." 그는 웃어보였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