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범석입니다.

참 오랜만에 이곳에 새소식을 전하네요.

이곳을 찾는 분들 중 과연 몇 명이나 나의 근황에 대해서 궁금해할까

생각이 들면서도, 일부러 이곳을 찾아주시는 단 한 분을 위해서라도

짤막하게나마 소식을 전해드려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낌니다.

 

제일 먼저 전해드릴 소식은,

약 한 달 전에 일산의 부모님 곁을 떠나(또 다시!)

인왕산 밑에 있는 저의 고향으로 이사를 왔다는 것입니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마당이 꽤 넓은 주택인데,

이곳은 바로 제가 태어나서 12세까지 살았던,

말 그대로 저의 고향입니다.

애견 두 마리(인왕이와 구구(99) - 진돗개 - 각각 7개월과 2개월)와

사료, 조립식 침대, 노트북, 살림 몇 가지를 차에 싣고

이사 아닌 이사를 했지요.

집을 떠난 지 정확히 20년(1979-1999)만에 '고향 집'으로 돌아와

첫날밤을 보내던 날,

새벽까지 잠을 설치면서 새로운 감회에 묻혔답니다.

15년간의 외국생활은 나에게 고향의 소중함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느끼게 했지만, 서울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서

서울이 고향이 될 수는 없더군요.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에게 고향의 상실은 가장 큰 손실이 아닐까요.

그러던 차에, 부모님이 감사히도 옛집을 보존해주셔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저는 지금 이 곳에서 인왕이 구구, 이 두 녀석과 함께

매일 흙을 밟으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비록 집은 낡아서 볼품없고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뭐 어때요. 아직 젊고 생활은 만족스러운데.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음으로 전해드릴 소식은 저의 집필활동과 관련된 것인데,

작년 12월부터 [BESTSELLER]라는 월간 문화/문학지에

'반더루스트의 노래'라는 코너를 맡아 여행문학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원고 마감날짜에 쫓기기는 하지만,

자유로운 주제로 여행문학의 글을 쓸 수 있어 기쁘답니다.

그 외 최근, 잡지 [샘터] 2월 호에 '내가 만난 포레스트 검프'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발표했고,

지난 5년간 준비해온 장편소설 [지도 없는 여행]을 출간하기 위해

최종 끝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아직 출판사와는 접촉을 하지 않았지만,

저의 첫 소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날,

저로서는 정말 행복한 날이 될 겁니다.

 

사실 새해 들어서 만도 새로운 뉴스 거리가 몇 가지 더 있지만,

오늘은 이만 하죠. 혹시라도 지루하게 느껴지실까 해서요.

 

잊지 않으시고 꾸준히 저의 홈페이지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게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행운과 행복이 금세기에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p.s. 1) 홈페이지 [지도 없는 여행]이 넷츠고 선정

베스트 홈으로 뽑혔습니다.

2) 방명록에 심수정님의 '남극통신'과

진경환님의 '방콩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일사일언] 나만의‘시작과 끝’....... 박순발 (충남대교수 고고학)

 

한해가 저물어 간다. 여느 해와는 다르게 부여된 의미가 많다. 한해의 말, 세기의 말, 그리고 천년기의 말. 그래서 이웃 일본에서는 올해의 한자로 `말'자가 선정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모든 끝은 시작의 대응 개념이다. 유시 유종이므로 무시이면 무말이다. 그래서 끝의 의미는 그 시작에 있다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맞으려는 3개의 끝은 서력에 바탕한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하나의 종교·역사적 사건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먼 과거의 인간행위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는 필자는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의 범위를 벗어난 사건과 씨름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그 사건의 시간적 위치를 매김에 있어 기준이 되는 것은 인식 시점인 현재이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두발로 걷게 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만년 전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시간이란 것은 그것을 잴 수 있는 척도가 없으면 헤아릴 수 없고, 그 경과와 더불어 현상에 변화가 없는 한 동질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한 차례 `신선놀음'에도 `도끼자루가 썩어 없어지는 것'은 그러한 시간의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교통과 통신이라는 공간 이동 및 의사 소통의 수단이 무한 진보하고 있는 지금 시간적 변화에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일원적 시말 인식에 기준을 둔 신드롬적 행위 속에 소중한 자아 건원의 시말관을 상실하는 어리석음은 경계하여야 한다.

[밀레니엄 인터뷰] ▲ 알랭 투렌

세계적 석학, 지도자로부터 새 천년의 전망을 듣기 위해 마련한 '밀레니엄 인터뷰'시리즈 열 번째로 프랑스의 세계적 사회학자 알랭 투렌(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와의 인터뷰를 마련했다. 현대사회의 위기를 이성의 도구화에서 찾으면서 이성과 '창조적인 주체'의 대화에서 그 명쾌한 해결을 제시한 '현대성의 비판'(문예출판사刊)으로 국내 지성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그를 함재봉 교수(연세대) 가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 21세기에 '문화' 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근대화/산업화를 주도해온 국가들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술지배를 가능케 했던 도구적 이성과 문화간 간극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전세계 어디를 가나 자동차, 컴퓨터, 시장경제는 보편화돼 가고 있는 동시에 문화적 차별성은 더욱 더 부각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가 보다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

- 구체적인 예를 들면.

"미국에선 극우파가 '진정한 미국적 가치' 의 부흥을 주장한다. 프랑스의 신 드골파나 공화주의자들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다. 이렇듯 도구적 이성과 문화간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권위주의가 득세할 것이다. 중동의 이슬람 정권이 좋은 예다. "

- 한국이나 동아시아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동아시아는 '연성 권위주의(soft authoritarianism) ' 하에서 공동체를 강조해 왔고, 그 결과 근대화의 명제를 받아들여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문화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한국과 동아시아에서도 문화에 대한 의식을 싹트게 한 것 같다. "

 -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나 문명 충돌론에서 드러나듯이 문화의 중요성과 함께 보편윤리의 정립도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보편윤리들이 특정 국가의 이념/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돼 전파됐다. 미국 헌법에서 강조한 '자유' , 프랑스 혁명이 대변한 '자유.평등.박애' , 영국의 '의회민주주의' 가 그랬다. 과거에는 이처럼 특정 국가의 이념, 가치, 제도들도 보편성을 확보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점차 도구화돼 가는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첨단 기술의 세계와 함께 각 국가의 고유한 문화적인 세계를 동시에 맛보고 싶어한다. 이 때의 문화란 꼭 전통문화만이 아니다.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민족적(new ethnicity) 정체성이나 성적(sexual) 정체성 같이 전혀 새로운 것일 수도 있다."

 - 그렇다면 문화적 정체성과 인권은 결국 조화될 수 없는가.

"이제 법과 인권이 보편적인 반면 문화는 특수한 것으로 대비해서는 안된다. 세계 도처에서 근대의 합리적인 가치체계와 문화적 다양성을 조화시키려는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오늘날 보편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근대화된 산업사회의 합리성과 각 개인이나 공동체의 가치관을 조화시킬 수 있는 권리다. 2백년 전까지만 해도 인권이란 곧 시민권 또는 투표권 등 정치적 권리를 뜻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정치적.사회적 권리 외에도 문화적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

 - '문화적 권리' 의 문제점은.

"일종의 문화적 볼셰비키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진리의 담지자라고 주장한다. 이런 경향은 결국 이란의 경우 문화적 독재(cultural dictatorship) 로 귀결되고 말았다. 반대로 여전히 문화적인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강하다. 자유주의는 정치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미국식 삶의 양식을 강요하고 있다. 프랑스조차 아직도 모든 권리를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규정하고 있다. 이는 매우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다. "

 - 이는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공동체주의가 퇴조하는 대신 자유주의가 득세한 데 기인한 것은 아닌가.

"TV와 같은 매체의 확대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사람들의 기동력이 전에 없이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규범이 약화되고 문화적 규범들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자유주의적인 것도, 또 공동체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공동체주의자 마이클 월저와는 직접 토론을 벌인 일이 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전형적인 미국식 자유주의자일 뿐 결코 공동체주의자가 아니었다. 따라서 자유주의대 공동체주의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대신 주목해야 할 것은 문화간 교류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합리성과 보편성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관은 그 적실성을 급격히 상실해가는 반면 문화적인 동시에 경제적 삶이 그것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

 - 그 주장 역시 '개인' 을 가장 중시하는 것 아닌가.

" '개인' 보다 '주체' 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이는 '개인' 과 같이 사회를 초월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회 내적 차원의 개념이다. 이제 현대인은 각자 자신의 인생 얘기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통해 각자에게 의미 있는 세계관을 구축할 권리가 있다. 신.합리성.자연은 더 이상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세계를 제공해 줄 수 없다. 이제 모든 사람은 문화 속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인들이 서양의 제도화된 교회보다 동양의 종교에 관심을 갖고 심취하기 시작하는 것은 비록 유치한 차원이라도 의미 있는 현상이다. "

 - 탈 냉전.탈 산업화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우리는 항상 도구적인 이성과 가치관 중심의 세계를 구분하려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둘 다 잃을 수밖에 없다. 정치와 사회를 엄격히 구분해 정치를 우선시하는 모델은 이미 1백년 전부터 작동하지 않게 됐다. 이제 모든 사람은 돈.기술.지식을 공유는 것과 동시에 문화적.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향유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권리와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

 정리〓김창호 학술전문기자 <wjsans@joongang.co.kr>

[고은의 하버드편지] 2. '東'으로의 회귀 이젠 필연

갈매기가 이곳 케임브리지 일대의 공중까지 와서 심심파적으로 날고 있습니다. 날고 있다기보다 그저 날개를 편 채 가만히 있노라면 느긋이 보이지 않는 바람결이 밀어준다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서부 버클리의 봄 학기에도 태평양의 갈매기가 대륙의 공중에 와 있었는데 여기 하버드에도 대서양의 갈매기가 와서 제 마당으로 쓰고 있습니다.

굳이 바다와 뭍을 가리고 살게 뭐냐, 둘 다 내 삶의 터전이 아니냐는 듯이 자연스럽습니다. 옛사람이 이런 것을 유유자적이라 했던가요. 또한 그 갈매기는 지상에 대고 바이없는 연민을 보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너희들 이렇게 모여들어 '지식의 수도 하버드' 라고 자랑하는데, 그래 너희들의 공부가 도대체 무슨 공부이뇨, 그 공부로 세상을 어떻게 만들려하느뇨, 하고 탓하면서 나 봐라 학교의 문턱 넘은 적 없이도 이렇게 일체의 탐욕 모르고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한 수 알려주는지도 모릅니다.

비켜갈 수 없는 팔자라 여기 와서도 몸을 호젓이 할 때가 통 없습니다. 그저 누가 준 선물이거니 하고 입술 부르트면서도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따금 연구실이나 숙소에서 나무들을 바라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런 비물질적인 행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나무와 나 사이의 무언으로 아주 가라앉아 어떤 동요도 사절합니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떼놓는 법 없이 서 있습니다. 이런 나무를 두고 이 세상 각처를 실컷 떠돌고 있는 내 신세가 여간 미안하지 않습니다.

우선 좋은 것만 말하기로 한다면 이곳 사람들의 입안에는 '익스큐즈 미' '생큐' '아이엠 소리' 가 가득히 들어있다가 입을 열기만 하면 그 세 마디 말 중의 하나가 나오고 있습니다.

능히 예절의 자동서술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딪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우산을 쓰고 갈 때도 서로 먼저 우산을 피해줍니다.

이런 사람들의 예절과 달리 동양 성리학이 예(禮)를 체제의 율법으로 삼아서 도리어 예 본연의 예를 죽여버리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바가 아닙니다. 

나무들은 사람에게 절로 예가 우러나게 하고 있습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같은 나그네도 구면인 듯 실로 오랜만에 하심(下心)이 됩니다.

한여름 대낮에도 어디 하나 가릴 그늘 모르고 서서 마구 내려꽂히는 태양의 백색광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조금도 피하지 않고 그것을 다 받아들여 잎새들이 축 늘어지기까지 합니다.

또한 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어디 한군데 막을 것 없이 그 혹한을 다 감당합니다. '참을 인(忍)' 자를 만개도 더 그 의지 속에 새겨서도 아닐 것입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맞습니다.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온몸을 흔들며 바람소리를 낼 따름입니다. 바람소리란 바람 그 자체의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 부딪치는 대상이 내는 소리가 아닌지요.

그래서 '바람이 움직이나 깃발이 움직이나' 라는 육조 혜능의 질문 앞에서 옛 조계산의 불꽃이 튀었던 것이지요. 큰 바람에는 끝내 그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 뽑혀 쓰러지기도 합니다. 아니면 어린 시절 줄기의 다친 곳이 잊혀져 있다가 바람의 빌미가 되어 쓰러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토록 모든 것이 철저하게 노출된 채 모든 것을 다 무릅쓰고 견뎌내야 하는 나무야말로 사람의 빈 그릇 같은 부박(浮薄)을 무섭게 꾸짖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런 교훈 따위를 훨씬 넘어선 나무 자신의 숭고함은 감히 사람의 경지 밖인 듯합니다. 소년기의 밤나무와 마을과 거리의 큰 나무, 첫사랑의 나무, 친구 베냐야민이 이해해줬던 아파트 마당의 한 그루 나무, 그러다가 망명지의 나무들과 돌아갈 나라 폐허에 서 있던 포플러 나무….

나무를 유난히 좋아한 동독시인 브레히트가 생각납니다. 어쩌면 그는 나무와의 우정에 의해서 그의 시적 변혁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쇠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악기조차 목관악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이름없는 나무와 나무들에게 주제로서의 우정을 바침으로써 그의 시와 희곡은 세상의 보석이 되었겠지요.  

그런 그가 5행짜리 작은 노래를 남겼습니다. '호숫가 나무 밑 오두막/지붕에서 열기가 솟아나네/만약 그것이 없다면/얼마나 삭막했으리오/집도 나무들도 호수도'

[.....]

흔히 풍경 혹은 풍경화는 사람들의 깊은 성찰과 상관없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풍경은 사상을 넘어서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에게 최초로 자신의 마음을 비춰본 미학일 것입니다. 그래서 풍경의 마음은 어느 마음보다 찬란합니다.

보십시오. 풍경의 경(景)은 그윽히 정(情)을 낳아 '풍정' 또는 '생정(生情)' 이라는 풍경의 본질에 이릅니다.

주역에서의 '관광(觀光)' 이 사물의 본체를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풍경이란 그것을 발견하는 인간과 만날 때 바로 '세계내 존재' 의 살아 있는 현상이 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오랜 동양화들은 이런 풍경들을 실재에의 표현보다 사람의 내면과 일치시켜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풍경들의 문인화는 예외없이 그려진 부분보다 그려지고 남는 부분에 화제(畵題)의 중심(重心)을 두기도 했습니다. 여백이 그것입니다. 그런 여백으로서의 그림 속에 어쩌다 그려지는 인간존재란 실로 자연의 한 주변부에 말단으로 존재하면서도 그 모습이 하나도 비굴하지 않은, 과부족이 없는 생태적 품위를 점청(點靑)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신선이란 것도 이런 풍경 속의 마음을 표상한 기호였습니다. 노장사상이야말로 풍경의 진리입니다. 어떤 필연도 자연으로 돌려놓아버립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물화는 신의 시대를 인간의 시대로 교체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인물화에 대한 풍경화는 인간이 처음으로 태양과 만나고 케케묵은 권위의 실내에서 해방의 야외로 나가는 영혼의 율동과 밀접한 것이 아닐까요.

동양화의 여백에 대해서 서양화의 충실도 의미심장합니다. 서양화의 화면은 어느 곳에도 빈틈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절대 완성으로서의 충실.충만의 극치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동양과 서양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같은 평범한 구별과는 또 다르게 근대의 개막과 함께 아시아 여러 지역이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문화충격을 받아온 점에서는 서양이란 그 능동적인 대응이 된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의 상대였습니다.

굳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되 그것의 노예가 아니라 정신과 명분은 동양이되 그 방법만은 서양으로 하자는 어쩔 수 없는 절충론이었습니다. 중국과 한국이 이런 서구모방의 수용에 대한 체면치레로서 오랜 동양사상을 새삼 과시하는 것과 함께 일본의 서구수용은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그들의 근대적 명제를 설정하였지요. 동양의 보편적인 가치로서의 동도이기보다 일본 자체의 화(和), 즉 일본정신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아시아적 가치 혹은 유교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사회를 말할 때의 동도적 관점이 아닌 한 우리 근대가 얼마나 서구화의 맹신적 과정을 지나왔던가를 돌이켜보게 됩니다.

지금의 근대어나 근대적 생활풍습이나 교육.문화 전반의 표면은 전적으로 서구적인 것과의 동질성으로 일관돼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불가불 서구 혹은 서양이라는 인식의 반사경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 제법 자존심 늠실늠실한 발언 중에는 동도동기론(東道東器論)이 있는데 이에 대한 실질적 토론은 접어두고라도 '도와 기를 일치(道器合一)' 시키는 커다란 발상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제 어느 제한적 자아는 그 편한 인습을 떨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글= 고은

 

같은 생각. 범석생각Das Ende

- 인왕산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