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면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여러 단어들이 있다. 호기심, 용기, 도전, 즐거움, 두려움, 모험, 흥분 등.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만남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여행과 만남. 좀 더 명확하게 여행은 만남이고, 그 만남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이런 연관관계가 뇌리에서 진화하게 된 계기는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반복되는 다양한 행태의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고 또 그 예기치 않는 만남에서 내가 경험한 특별한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나는 이미, 5대양 6대륙 70여 개 나라를 배낭 하나 메고 여행했을 정도로 역마살이 유별난 사람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다른 직장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많은 자유를 포기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충실하게 살아야했다. 국내외로 떠나는 짧은 휴가 또는 출장은 대부분 내가 상상하는 여행과는 다소 거리가 먼, 그리니까 모험이나 즉흥성이 결여된 관광이나 업무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특별한 설렘도 흥분도 도전도 없는, 그냥 밋밋한 떠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의 여행계획이 내 머리와 마음속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에 새로 깔린 자전거 길을 달리는, 바로 국토종주와 4개강 종주 코스의 여행! 얼마 전 구입한 보급형 자전거를 타고 이미 주변 홍제천과 한강자전거길, 경인 아라뱃길을 달려본 경험이 불쏘시개가 되어,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새로운 모험에 대한 열망이 내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비슷한 코스를 이미 여행한 라이더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과 정보와 사진들은 나의 상상력과 역마살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나는 떠나야만했다.

2012년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나는 회사에서 퇴근하면서 그날 밤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추석연휴와 이어지는 개천절 그리고 이틀간의 휴가를 더하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6박7일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인터넷으로 그날 자정에 서울 강남에서 전남 목포로 가는 마지막 고속버스를 예약하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사놓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자전거가방에 최소한의 옷가지와 타이어펌프, 비상약품, 펑크패치, 충전기 등을 섞어 넣고, 택배로 받고 아직 포장도 안 뜯은 1인용 텐트와 침낭, 매트리스를 등산배낭에 챙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외여행 떠날 때 여권을 챙기듯,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여행 인증수첩’도 주머니에 넣었다. 버스 출발시간에 늦지 않게 손목시계를 수시로 확인하며 저녁식사도 잊은 채 갑작스런 여행준비에 분주했던 나는, 오랜만에 떠나는 모험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행의 즐거움의 절반은 준비 과정이 아니던가.

자전거를 고속버스 짐칸에 싣고 지정좌석에 앉았다. 버스는 명절을 보내기 위해 하루 일찍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그리고 이들 귀향객들 틈에 7일간의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내가 있었다. 도시의 피곤한 일상을 떠나 고향의 편안함과 한가위의 풍요로움을 그리며 떠나는 사람들 사이에, 도시의 분주한 일상을 떠나 자전거에 몸을 싣고 질주본능에 이끌려 작은 모험을 떠나는 한 사십대 남자가 있었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생전 처음 와보는 전라남도 목포에 도착했다. 함께 도착한 승객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어두운 터미널 주차장에는 나와 자전거만이 남았다. 깊이 잠들었다 막 깨어나 정신은 멍하고,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설렘으로 차있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첫 번째 목적지는 목포 시내를 가로질러 영산강 자전거길인데, 동서남북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근처 24시간 김밥집이 눈에 들어와 자전거를 가게 앞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에서 졸고 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맞았는데, 약 1시간 뒤 가게를 나올 때까지도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가을의 쌀쌀한 새벽공기와 시내를 가로질러 드디어 영산강 종주자전거길의 시발점인 하구둑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남아있던 약간의 불안감과 혼란이 사라지고 안도감이 찾아왔다. 아직 날은 어두웠지만, 이제부터는 자전거전용도로를 따라 페달을 밟기만 하면 되니 마치 기차에게 자기철로를 찾아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전거전등에 의존해 얼마를 달렸을까, 아주 옅게 그리고 느린 속도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수면 위에 떠있는 안개도 보이고 강주변의 경치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 반가움이란! 나는 그렇게 영산강을 만났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두발자전거에 오른 건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으니까, 아마도 여섯 살 때였던 것 같다. 낡은 세발자전거를 바꿔달라고 떼를 써 어느 날 어머니 손을 끌고 동네 자전거가게에 갔다. 그러나 정작 집에 끌고 온건 세발이 아닌 두발자전거였다. 그 나이 꼬마가 타기에는 안장이 너무 높았지만, 나는 상점 안에서 제일 작은 이 두발자전거에 이미 마음을 뺏겼고, 걱정하는 어머니를 설득하기보다는 생고집을 부려 결국 타지도 못하는 새 자전거를 끌고 집에 온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한손으로 아파트 울타리를 잡고 열심히 연습한 결과 드디어 아무의 도움 없이도 페달을 밟으며 두 바퀴를 돌릴 수 있었다. 혼자의 힘으로 균형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느낌. 어쩌면 그 느낌은, 꼬마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독립심을 체험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힘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첫 자신감!

세월은 40년이 지나, 같은 자전거는 아니지만 똑같이 두 바퀴에 페달이 달린 성인자전거를 타고 나는 낯선 길을 달리고 있었다. 강을 따라 새로 놓인 자전거도로뿐 아니라 산과 평야, 가끔 지나치는 마을들 그리고 한 시간을 달려도 마주치는 사람 한 명 없는 적막함, 이 모두가 나에게는 낯설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곧게 일자로 뻗어 있는 자전거길을 달릴 때면, 영화에서 보던 미국 중남부의 국도가 연상됐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길. 그나마 누군가 심어놓은, 가을이 아니랄까봐 활짝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가끔 마주치는 라이더나 지역주민에게 마치 잘 아는 사람같이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인사도 하고 손도 흔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낯설음도 여행 첫날이 지나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익숙해졌고, 그와 동시에 심해지는 육체적 고통이 외로움을 잊는데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

 

여행 첫날밤을 보내고 텐트 안에서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른 생각은, ‘온 몸이 쑤신다’ 였다. 결코 엄살이 아니었다. 다리에서부터 엉덩이, 허리, 팔, 손바닥까지 경쟁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침낭 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봤지만, 고통은 더 심해질 뿐이었다. 전날 달렸던 약 100km 거리는, 내가 자전거로 평생 24시간 안에 이동한 제일 먼 거리였으니, 어쩌면 몸의 반응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도 아니고, 가끔 주말에 등산을 가거나 최근 들어 자전거로 단거리를 몇 번 달린 게 전부이니, 그 정도의 몸 컨디션으로 무모한 짓을 했다고 볼 수밖에. 더 큰 문제는 여행계획 7일 중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다는 사실이다!

몸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침낭과 텐트를 빠져나왔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영산강의 자욱한 아침 안개만 보일뿐, 야영을 했던 원두막 주변엔 말 그대로 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짐을 챙겨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추석연휴 첫날 아침, 모두들 늦잠을 자거나 고향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을 텐데, 나는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페달을 밟았다.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자 고통이 좀 잊혀졌다. 해가 떠오르고 높은 가을하늘은 더 선명해지고 편의점에서 먹은 컵라면이 배를 채우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여행이고 모험인데, 생각해보니 어떤 불평이나 불만도 정당화될 수 없었다. 아픈 허벅지는 쉴 때마다 주물러주고, 아픈 엉덩이는 안장에 앉는 위치를 조금씩 바꿔가며 적응시켜가고, 아픈 손바닥은 핸들 잡는 각도를 조금씩 변형시켰더니 훨씬 나아졌다. 내 몸무게에 자전거 그리고 짐 무게를 모두 합치면 120kg은 넘을 텐데, 다행히 자전거는 아무 문제없이 잘 달려주었다.

몸과 머리가 여행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주변 풍경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 깔린 자전거전용도로 주변에는 언제부터인지 가늠할 수도 없이 오래된 원래의 자연이 있었고,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논과 밭 그리고 과수원이 있었다. 가끔 자전거길은 마을 중심을 가로질러 가게 만들어져, 시골농촌의 담장을 지나고 대문을 지나기도 했다. 짙은 주홍색으로 익어가는 감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감나무들이 마을마다 어김없이 보이고, 가끔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동네 개들이 무리를 지어 쫓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추석연휴라 식당들도 대부분 문을 닫아, 시간과 상관없이 일단 식사를 해놓는 요령도 터듯했다. 식수와 이온음료는 최소 3리터 이상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놓였고,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초코바는 비상식량으로 아껴두었다. 몸에 땀이 너무 마르지 않게, 시간당 한번 정도 자전거에서 내려 쉬는 시간도 가급적 짧게 했다. 여행이 다 끝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후배 한 명이 내게 물었다. 형, 혼자 여행하면서 시간이 많았을 텐데 무슨 생각했어요? 나의 답은, 생각? 아침에 눈 뜨면 자전거에 오르고, 하루 종일 휴식시간 빼고 계속 페달 밟고, 해지면 자전거에서 내려와 잠을 잤는데, 생각은 사치야 사치, 였다.

이 답의 절반 이상은 물론 농담이었다. 하루 평균 10시간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밟으며 7일간 여행하면서,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산천을 새롭게 만났다. 이전에 자동차로, 기차로, 버스로 이동하면서 경험하지 못한 우리나라 땅을, 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느꼈다. 일 년 중 최고의 계절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논을 보면서 가을의 풍요로움을 실감했다. 이동속도의 느림만큼, 이 모든 아름다운 풍경들을 더 가깝게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었다. 영산강 종주를 마치고 금강을 여행할 땐, 어느덧 지역 사투리와 억양이 달라져있었고 낙동강은 또 달랐다. 대한민국 영토는 작은 땅덩어리지만, 지역의 특색이 뚜렷하고 역사의 흔적들도 다양했다. 때마침 도착한 부여와 공주에서 열린 금강 백제문화제는 마치 나를 위한 잔치 같았다. 며칠 만에 군중 속에 섞여 그간 먹지 못했던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종주길 옆에 있는 상주 도남서원에서 낙동강을 내다보며 고요히 심신을 쉬며 혼자 보낸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여행 마지막 날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오지를 떠나온 것 같이,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제일 익숙한 공간을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물론 서울 집에 도착했을 때만큼의 기쁨은 아니었지만.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