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흔히, 여행 중에 자기 자신도 만났다고 얘기한다.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평상시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우리의 일상이라면, 여행은 우리를 잠시 머물게 한다. 육체적으로는 계속 움직이고 있을지언정, 기억으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갈 수 있게 해준다. 그런 환경과 여유를 선물한다. 나 또한 자전거를 타고 약간은 무모하게 떠난 이번 여행에서 나를 드문드문 다시 만났다. 해발 500미터가 넘는 이화령고개를 온 힘을 다해 오른 뒤 정상 인증센터의 스탬프를 수첩에 찍으면서 어린아이같이 기뻐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참 잘 했어요’라는 칭찬에 굶주린 대한민국의 40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평소 자전거를 즐겨 타셨다는 사실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이 아름다운 자전거길을 달릴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슬픔에 빠지기도 했고, 어머니의 아파트 베란다 구석에 남아있는 낡은 아버지의 자전거를 집으로 가져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잊고 있던 어릴 적 나의 모습도, 이번 여행 동안 땀 흘리며 페달을 밟은 동안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독일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나는, 독일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다. 30여 년 전 독일 라인 강변에는 이미 자전거전용도로가 있었고,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마음껏 달렸다. 한번은 방학이 되어 친구 두 명과 함께 일주일간의 자전거여행을 계획해, 실제로 라인강과 모젤강을 따라 떠났다. 부모님 몰래 짐에 넣어간 와인을 한 병 따서 밤에 텐트 안에서 나눠 마신 뒤 나와 친구들 모두 취했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귀엽고 미소 짓게 하는 추억들....세월이 총알같이 지나가고 30년 뒤 내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일종의 데자뷰를 경험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