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범석입니다.

여러분들도 봄기운을 느끼시죠?

단독주택에서 겨울을 지내느라 꽤나 추었는지,

저는 따뜻한 봄이 무척 반갑습니다.

우리 인왕이, 구구, 삼돌이, 그리고 막내 귀염둥이

미소는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이녀석들의 사진을 이곳

홈페이지에 올리겠습니다.

여러분도 새소식을 방명록에 꼭 남겨주세요.

그럼,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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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생각] 바야흐로 봄, 봄입니다

먼 산에 잔설이 녹아내리고 매화꽃 벙글어 봄이 초록초록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기야 대동강물도 풀리기 시작한다는 우수절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곧 녹음방초 피어나는 봄잔치가 온 세상에 펼쳐지겠지요.

봄. 봄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아마도 봄눈이 신선하게 부딪쳐오는 계절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선지 이 아침엔 『문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바로 초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부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어라 //옹숭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마 꿈 같기에 설워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 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싶어라』라는 정지용의 시 「춘설」이 떠오르는군요.

그러나 봄은 왔지만 진정 봄은 아닌 듯 싶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 특히 정치판이 그렇지요. 구태의연한 정당간의 힘겨루기 싸움이 정지용의 시 한편 만큼도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감동을 못 주기 때문이지요. 감동은 커녕 속만 상하게 만들게 마련이지요.

경제, 사회현상은 어떻습니까? 온갖 부패와 타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보화 만능주의, 재테크지상주의 풍조 또한 만연하여 그것들만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형국입니다. 어찌 우리 삶이 정치적 삶이기 만할 것이며 경제논리만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제 정말 우리들의 삶의 자세, 생각이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삶의 질로써 행복이 논의되는 시대,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며 따뜻한 가슴이 소중하게 생각되는 참인간의 시대, 참문화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겠습니다. 일제 강점기나 6·25동란 시대처럼 생존권 자체가 문제되던 시대도 지나갔고, 50∼60년대 생활권을 추구하던 경제성장 제일주의 시대, 그리고 70∼80년대 자유권과 평등권으로서 인격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던 시대도 강물처럼 흘러갔습니다. 그야말로 개성과 창조력이 넘실거리고 인문학적 상상력이 존숭되며 생명공동체 사상이 참되게 구현돼야 하는 새 천년이 밝아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신문화의 핵심, 예술의 혼으로서 시와 시 정신이 긴절한 시대가 된 것이지요.

온갖 기계문명과 상업주의에 짓눌리고 공해와 탐욕의 기름끼에 찌들어 사는 우리 영혼에 청신한 서정시의 샘물을 길어올려 회색 콘크리트 숲에 흘러가게 해야 할겁니다. 좋은 서정시를 읽는 일은 이 시대에 있어 정신적 녹색운동을 펼쳐가는 일이 되기 때문이지요. 아기와 어머니를 사랑하듯이 풀꽃과 별을 꽃다이 여기고 작지만 소중한 것,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지켜 나아감으로써 참문화세계를 창조해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묻혀오는 하늬바람 위에 혼령있는 /하늘이여, 피가 잘 돌아』(서정주 「봄」부분)와 같이 봄은 온몸에 피가 잘 도는 계절이고 대지의 결박이 풀어져서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 새출발의 계절입니다. 멀리 남쪽 바다에서는 하루에 1㎞씩 봄이 북상해오고 있다는 소식이더군요. 이제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 마음의 가지에도 아기 새잎을 틔우고 꽃피울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사형장 높은 담벽 뒤에도 봄이 왔습니다. /그리하여 바람불고 햇빛 밝은 날 /작년에 쌓인 눈 속에서 /예쁜 강아지풀을 하늘하늘 피웠습니다』(이시영「봄」)처럼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우리 마음의 고향, ‘참나’를 찾아 새 길을 떠나야겠습니다.

바야흐로 봄, 봄입니다. 온세상 생명들에게 봄빛 더욱 가득하고 사람들 모두의 몸과 마음에 봄샘물 찰랑찰랑 넘쳐나기를 기원하는 마음 하늘 만합니다.

(김재홍,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내가 만난 포레스트 검프

내가 어네스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여름, 페루에 있는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였다. 그의 고향은 알프스의 작은 마을이라고 했다. 측량사였던 어네스트는 어느 날,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왔던 꿈을 실현하고자 직장에 사표를 낸 뒤 오직 자전거 페달만을 밟아 그가 태어나서 34년간 살아온 마을을, 나라를, 대륙을 떠나 벌써 3년째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앞으로 2년간 마지막으로 남은 대륙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횡단한 뒤, 스위스에 있는 고향 마을로 되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네스트를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눌 때도 그랬지만 그 이후로도 항상 나는 그가 기억날 때면, 수년 전 보았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된다. 비록 지능지수가 겨우 75인 저능아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 하나만으로 만인의 영웅이 되는 영화 속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 "포레스트,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도 같단다. 먹어보기 전에는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어." 그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바보란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단다." 걸어서 북미대륙을 횡단했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왜 달렸느냐고 질문하자, 포레스트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유도 없이 무엇인가를 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지만, 나는 달리고 싶어서 달렸으며 좋아졌으니까 계속 사랑해온 것이다."

어네스트 또한 지구라는 '초콜릿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 달리고 또 달리고 지금 이 순간도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자전거와 여행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인생을 사랑하기에 먼길을 떠나올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순수한 고집 하나만으로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찾아 오늘도 지구촌 어딘 가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을 어네스트를 생각하면 나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난 뒤 느꼈던 감동 그 이상을 느낀다. 그 느낌은,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갈수록 야박해지는 세상에서 단순함이 승리하는 것을 바라보는 흐뭇함이기도 하다.

(이것은 <샘터> 2월호에 실렸던 저의 글입니다.)

여행을 좋아하십니까?

나는 돈만 있으면 여행을 가요. 여행이라면 빚을 내서라도 갈 정도지요. 일년에 3번 이상은 해외 여행을 하고 국내 여행은 수시로 가지요.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여행을 권하고 싶어요. 빚을 내서라도 가세요. 못 사는 나라를 돌아봐야 해요. 이를테면 인도, 아프리카, 파키스탄, 네팔, 페루 같은데.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갔다 왔어요. 여럿이 함께 가기도 하고 두 명이 가기도 했는데 그런 데 가보면 정말 사람이 보입니다. 여행은 경치를 보러 다니는 게 아니에요. 이과수폭포나 나이아가라는 보는 걸로 끝나요.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사람을 구경하러 다니는 것이에요. 내 꼴을 다른 사람들에게 구경시켜 주고, 다른 사람 꼴을 내가 구경하는 것이 여행입니다. 대화가 안되면 안되는 대로 다니면 됩니다. 필리핀에 갔는데 재해를 당한 사람들이 있더라고. 여행비 털어서 그 사람들 구호품 나눠주고 그러고 다녔는데, 결국은 사람을 보러 다니는 거야. 사람이더라고. 언젠가 인도 여행을 하고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했어요. 칼(KAL) 게이트를 찾아갔는데, 거기에 동남아를 여행한 한국 사람들이 모여 있더군요. 인도에 불과 9일 있다 왔는데 한국 사람들 눈빛이 그렇게 살벌하게 보일 수가 없어. 그래서 일행 10명이 다른 곳에 있다가 출발할 때 오자며 자리를 옮겼죠. 느낌이 전부 똑같았던 거지. 인도 사람들의 눈을 보고 온 탓이었죠. 여행이란 바로 그런 거예요.

소설 쓰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소설을 어떻게 쓰는 게 좋겠다. 이런 얘기보다도 덮어놓고 여행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무슨 고급 호텔에 들어가지 말고. 인도 가면 매미만한 바퀴벌레가 왔다갔다하는 그런 곳도 있어. 그런 곳에서 자고, 버스 타고 왔다갔다하면 얻는 것이 괸장히 많아요.

- 김주영 선생 <BESTSELLER> 2000년 2월호 인터뷰 중에서

 

개꿈이 개꿈이면, 왜 개 없는 꿈도 개꿈이라고 할까. 범석생각Das Ende

- 인왕산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