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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범석입니다.

9월은 유난이도 바쁘고 분주한 달이었습니다.

먼저 회사 내에 인사이동이 있어 8개월 동안 근무했던 홍보국을 떠나

사업국으로 자리를 옮겼죠.

이제 '마켓팅 전문위원'이란 직함을 갖게 되었어요.

사업국으로 오자마자 1주일 간의 스위스 출장이 있었고,

돌아와서는 새 업무 파악으로 정신이 없었죠.

그리고 의미 있는 의미 없는 만남들, 약속들....

이제 추석도 지났으니, 이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크리스마스, 섣날이 또 눈 앞에 와 있겠죠?

추석 연휴는 역시나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지요.

집에서 한 게 있다면, 간만에 청소 및 방 정리 그리고

머루주를 담갔어요. 작년에 심은 머루나무 두 그루가

금년에 벌써 열매를 주렁주렁....

큰 유리병에 곱게 딴 머루를 담고

알코홀 농도 35도의 막소주를 10 리터 정도 부어넣었지요.

지하실에 잘 보관해 두었으니 월드컵이 끝나는 날

머루주로 축배를 들어야겠어요.

 

"나 학순이. 2001. 6. 19에 태어났고,

'학소도'에서 태어난 첫 강아지래요.

엄마 서울이는 백구인데, 아빠가 황구라서

나도 황구. 구구 아저씨가 아빠였으면 나도 하얕게 태어났을 텐데.....

하지만 구구 아저씨가 나하구 잘 놀아줘서 짱이랍니다."

"나 학순이, 라이온 킹 많이 닮았죠?

아래는 우리 아빠 '황부' 사진. 조금은 산도둑 같이 생겼는데,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라내요."

 

『고 향』 전광식 지음

"예언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 히브리 격언

고향은 세속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자연과 정서로는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곳이다. (p. 12)

고향은 나를 현실로부터 납치해간다. 아니 고향에 있으면 시간을 넘어선 영원의 세계에 온 듯하다. 이곳에는 과거가 현재이다. (p. 13)

인간은 '실향인Heimatlose' vs. '귀향자Heimkehrer'

*릴케Rainer Maria Rilke는 'Heimatlose'라는 말을 즐겨 썼는데,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면서, 인간의 현존(現存)과 삶에 대한 성찰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 자신 혈통은 독일계이고, 국적은 오스트리아였고, 또 출생지는 체코의 프라하였다. 그는 인간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정주(定住)할 수 없는 '뜨내기'라고 보면서 인간 존재의 근원 상실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p. 17)

노발리스Novalis는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Wo gehen wir denn hin?"라는 질문에 단 세 가지 낱말, 즉 "항상 집으로 Immer nach Hause"라고 답변하고 있다. (p. 18)

고향 파괴, 고향 상실, 탈(脫) 고향의 현상

이런 고향 이탈의 과정에서 인간은 공간적이고 지정학적인 고향, 즉 근원적 삶의 공간으로서의 고향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유대와 공동체 의식, 그리고 자기 동질성, 존재와 삶의 근원까지도 망각 내지 상실할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그래서 오늘날 사람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뒤틀린 인생관과 세계관, 그리고 갖가지 사회 병리 현상은 직·간접적으로 이미 '고향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여전히 돌아갈 고향도 없는' 사람들의 고향 상실증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p. 19)

우리말에서의 '고향'은 애당초 한자어로서 원의는 '옛 향리(鄕里)'인데, 이는 곧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난 고장'이란 뜻이다.....

1. 고풍성(古風性)

2. 회상성(回想性)

3. 은닉성(隱匿性)과 순수성(純粹性)

4. 풍경성(風景性)과 풍물성(風物性) (p. 25-6)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적어도 나에 의해서 자율적·능동적으로 선택된 곳이 아니라 신적 내지 인간적 타자에 의해 나의 운명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내 존재와 삶의 뿌리이고, 또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변경 가능한 것이 아니다. (p. 29)

탈문화적, 탈도시적, 탈근대적, 그리고 탈현세적인 것......이것은 익명화되고 비인간화되고 물화되어 소외된 현존으로부터 과거에로의 도피를 통하여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기 동질성을 확인하는 의식 작업인 것이다. (p. 43)

고향이 자유의 공간인 것은 그곳에서는 타율보다 자율이 지배하고 개인은 이질성 가운데서 타자로 있는 게 아니라 동질성 가운데 즉자(卽自)로 있기 때문이다. (p. 44)

"자기를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는 자는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향은 행복의 샘 fons beati - 고향은 욕망에서 나온 어떤 구체적인 목적 설정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므로, 거기에서의 행복은 '자기 찾음'과 '자기 근원으로의 회기'에서 갖는 근원적 행복이다. 말하자면 '일'에서부터 오는 정신적 피곤과 육체적 피로를 씻고, '삶'을 사는 곳이 고향이다.

고향은 단순히 지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제자리'이고, 따라서 고향에의 동경과 회귀는 인간의 '원초적 갈망'인 것이다. 그리고 고향에로의 이런 갈망은 그의 의식이 건강하고 정상적임을 보여준다. (p. 47)

고향은 '양식을 공급하는 토양'이며 '심미적 희열의 대상'이다. -페스탈로치 (p. 60)

'소외'(근대화, 이성화, 합리화, 산업화, 비인간화) & '향수병'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합리주의, 규격주의, 획일주의에 권태를 느끼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전체주의, 구조주의, 보편주의 대신에 해체주의, 탈중심주의를, 이성 logos과 합리적 절대주의 대신에 감성 pathos과 탈합리주의를, 의미의 일의성과 절대주의 대신에 개별성, 다양성, 상대성을, 인간중심주의 대신에 탈인간중심주의를, 그리고 정치적, 역사적 관심 대신에 탈정치화와 탈역사화를 그 본질로 가지고 있다. (p. 97)

도시는 실향인들의 주거지다. (p. 89)

도시는 '고향의 공동묘지' (p. 90)

뿌리뽑이고, 뿌리 없는 자들이 모인 곳이 도시 (p. 106)

"고등 인간이란 도시를 세우는 동물....세계사는 도시인의 역사다. 민족들, 국가들, 정치와 종교, 모든 예술들, 모든 학문들은 인간 현존의 한 원초 현상에 관계된다. 그 현상은 도시이다." - 슈펭글러 (p. 93)

시대 정신(Zeitgeist) - 현대인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 농축되어 있는 '정신'

'자유를 향한 도피' vs. '자유로부터의 도피'

"언어는 존재의 집 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 - 하이데거

고향은 거기 있는 것만 아니라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향의 '여기 있음'은 타향 속에서 그것을 찾는 이의 의식과 정신 속에만 있으므로 그의 정체적 실존에서 볼 때 그것은 너무 아쉽고, 너무 단편적이며, 또 온전치 못하다. 하지만 실향한 인간에게 향수병이라도 있음은 하나의 위안이 되는 셈이다. (p. 126)

고향은 떠나온 곳만 아니라 돌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인간도 귀향적 존재이다. (p. 127)

자아는 모험을 두려워하며 모험 앞에서 경직되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통해 강인한 자아, 즉 통일성을 부여하는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갖는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오디세이] (p. 153)

"하나님 다음으로 인간은 그 양친과 고향에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다." - 아퀴나스

지상의 모든 인간은 실향적 실존과 귀향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 (p. 191)

"지내기 좋은 곳이 바로 고향이다 Ubi bene, ibi patria" - 라틴어 속담

"타향도 정들면 고향" - 한국 속담

"오늘날의 인간은 전체 속에 개체성을 잃고 구조 속에서 개인을 상실하고 있다." - Peter Berger

오늘날은 쉽고 가볍고 유행적인 것을 탐닉하는 시대이다. 도시화·정보화·국제화·세계화의 물결 속에 고향 망각과 고향 상실의 시대가 되었으며, 또 뿌리뽑힌 시대가 되었다. (p. 203)

고향은 짐을 내려놓는 곳이다.....고향은 나그네 됨을 벗는 곳이다. (p. 204)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모든 길은 고향으로 간다. (p. 205)

 

태초에 전능한 하느님께서 정원을 만드셨다.

그리고 진실로 정원은 인간에게 가장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정원은 인간정신에 가장 큰 청량제여서,

정원이 없다면, 궁전과 건물은 조잡한 작품에 불과할 뿐.

예의바르고 우아한 시대라면

사람들은 위엄 있게 집을 짓고

섬세하게 뜰을 가꿀 것이다.

원예가 마치 최상의 예술이라도 하듯이.

......

정원을 훌륭하게 꾸미기 위해서는 1년 열두 달을 위한 정원들을 갖춰야 한다. 이 정원들에서는 계절에 맞춰 아름다운 사물들이 자라날 것이다. 12월과 1월 그리고 11월 말을 위해서는 호랑가시나무, 담쟁이덩굴, 월계수, 노간주나무, 실편백, 주목, 소나무, 전나무, 로즈메리, 라벤더, 하얀색과 자주색과 푸픈색의 협죽도, 개곽향, 오렌지 나무, 레몬 나무, 도금양, 향기나는 꽃박하 등, 겨울에도 푸르게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1월 말과 2월을 위해서는 그때에 꽃피는 메제리언 나무, 노란색과 회색의 크로커스, 앵초, 아네모네, 일찍 피는 튤립, 동양의 히아신스, 작은 붓꽃, 패모를 심는다.

3월을 위해서는 가장 빨리 피는 단순한 파란색의 제비꽃, 노란 수선화, 데미지, 아몬드 나무, 배나무, 산수유나무, 찔레꽃을 심는다.

그리고 4월을 위해서는 두 겹의 하얀 제비꽃, 쐐기풀, 비단향꽃무, 스톡, 모든 종류의 백합, 로즈메리, 튤립, 작약, 연한 수선화, 프랑스산 인동덩굴, 체리 나무와 양자두나무의 꽃, 아가위 나무, 라일락을 심는다.

5월과 6월을 위해서는 갖가지 종류의 패랭이꽃, 약간 늦는 사향장미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장미들, 인동덩굴, 딸기, 알칸나, 콜룸빈, 프랑스산과 아프리카산 금잔화, 체리 나무, 까치밥나무, 무화과나무, 산딸기, 꽃핀 포다나무, 하얀 꽃의 야생난초, 은방울꽃, 사과나무꽃을 심는다.

7월을 위해서는 다양한 비단향꽃무, 사향장미, 보리수꽃, 과일을 일찍 맺는 사과나무와 배나무 등을 심는다.

8월을 위해서는 열매를 맺는 모든 종류의 양자두나무, 배, 살구, 개암, 단 멜론, 모든 색깔의 금어초를 심는다.

9월을 위해서는 포도, 배, 모든 종류의 양귀비, 복숭아, 유도, 산수유열매, 겨울배, 마르멜트 열매를 심는다.

10월과 11월 초를 위해서는 마가목, 모과, 야생 자두, 늦은 장미, 접시꽃 등을 심는다. 이 지침은 영국의 날씨에만 적합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모든 곳에서 그 장소에 따라 영원한 봄을 맞는 것이다.

- <정원에 대하여>, 1625년, 프랜시스 베이컨*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영국의 재무장관 베이컨은 런던의 우중충한 날씨를 무색케 할, 항상 봄이 자리잡고 있을 이상적인 정원을 꿈꾸었다.

나의 정원은 욕망을 자극하지 않고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부주의하게 탐닉하여 갈증을 일으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치료책을 공짜로 제공하여 갈증을 해소해준다. 바로 이러한 즐거움 속에서 나는 늙어 간다.

- 에피쿠로스, B.C. 4세기

순수한 자연의 사랑스런 단순성 속에는 확실히 고결할 만큼의 정신적 평온함과 예술의 무대보다 더 높은 쾌감을 가져다주는 무엇인가가 있다......

내 생각에는 천재적 인간들, 그리고 위대한 예술적 자질을 가진 자들은 항상 자연에 대한 깊은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은 자연에 대한 연구와 모방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 <에세이>, <<더 가디언>>, 1713년, 알렉산더 포프

자아의 사랑,

자아의 사랑은 한 아름다운 정원에 갇혀 있다.

그곳에는 장미와 은방울꽃이 자라고

또한 접시꽃이 피어난다.

꽃들로 장식된 나의 정원은 지극한 즐거움을 준다.

낮이나 방이나 거기에는 한 명의 연인이 머물고 있다.

아침마다 맑게 노래하는 이 온화한 종달새보다

더 정다운 것은 없다.

피곤할 때 종달새는 휴식을 취한다.

어느 날 보았다, 종달새가 녹색 풀밭에서 제비꽃 따는 모습을.

그때 내게 종달새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내보였다.

나는 잠시 종달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새끼독수리처럼 온화하고, 장미처럼 새빨갛다.

- 16세기의 익명의 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면에서 자연의 작품과 예술의 작품을 비교할 때 후자가 더 불완전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예술작품이 가끔은 아름답고 기이하게 보일지라도 거기에는 정신을 황홀케 하는 위대함과 거대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자연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문화와 정교함을 갖출 수 있지만, 결코 디자인 면에서 자연의 작품과 같은 당당함과 화려함을 드러낼 수 없다. 예술의 아름다운 터치나 윤색보다도 자연의 거칠고 무관심한 운동들 속에는 대담하고 명인의 솜씨다운 것이 있다.

- 조지프 애디슨, 1712년 6월 25일

"저기 저 나무는 내가 어릴 때 직접 심은 거야. 아직 조그마한 나무였을 적인데 아버지가 큰 정원을 넓히는 공사를 하실 때 한여름에 뽑아 낸 것을 내가 구해준 거야. 그들은 올해에도 새 가지를 뻗어내면서 나에게 감사하겠지."

- <<친화력>> 1809년, 괴테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언제나 흙에서 평화롭고 고요한 자신만의 세계를 얻었다. 정원은 모두 다르지만....정원을 돌보는 사람의 몸짓은 그 열중하는 모습이나 느끼는 기쁨에 있어서 수세기를 통해 동일한 것이었다. 그 꿈 역시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원을 만들 때 우리는 미처 예기치 못한 풍부한 세계로 들어선다." (러셀 페이지)

작은 정원들은, 그곳이 도시이든 도시 변두리이든 시골이든 간에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 그것은 공간의 크기나 매력의 정도와는 관계없이 현대 생활의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며, 지구와 우리 삶의 고동소리를 느낄 수 있는 은신처를 창조하는 일이다.

- <<세계의 정원>> p. 127

 

 "웃음이란 사회적인 것을 분리해서 생각할수 없다. 모든 웃음은 집단적 사고의 결과다"


- 베르그송의 <웃음> 중에서.

 [심층취재] 사람과 개는 왜 서로 좋아 할까? ------> Click!

정선의 〈인왕제색도〉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