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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범석입니다.

이렇게 한 해가 또 떠나가네요.달력의 마지막 장인 12월의 날짜를 하루 하루 바라보면서, 2001년의 나를 조금이나마 정리해봐야지 했는데, 결국 이틀후면 새해가 밝아오네요. 개인적으로 금년은 큰 해프닝 없이 그럭저럭 무사이 지나간 것 같군요. 휴가다운 휴가 한 번 없이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에 충실(?)했던 것 같고, 다만 작은 텃밭과 집앞 뜰에서 보낸 많은 시간이 그같은 생활에 많은 활력소가 되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초여름의 상추와 방울토마토에서부터 늦가을의 고구마까지 최악의 가뭄에도 불구하고 수확이 비교적 풍부했던 한해였고, 그만큼 내가 누린 기쁨도 컷답니다. 늦봄에 뿌린 잔디씨가 꽤 많이 자라 앞뜰을 푸른색으로 덮어주었고, 봄에 심은 자두나무, 배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왕벗나무 그리고 노란장미가 유난히 빨리 성장해 봄 여름 거의 매일 아침 앞뜰을 거닐던 나에게 기쁨을 더해주었죠.

2001년은 또한 많은 만남이 있었던 해였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을 함께 나누는 기쁨이야 말로 삶이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닐까요. 솔직히 실망스러운 만남도 많았고,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면서 시간을 헛되게 보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열번의 실망스런 만남 뒤에 찾아오는 한번의 뜻깊은 만남은, 앞의 열번을 보상하고도 남지요. '학소도'에도 많은 손님이 찾아주셔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봄에는 초등학교 동기들 모임이 있었고, 가을에는 대학동창 모임도 있었죠. 친한 친구들과 포커를 치며 새벽을 맞았던 날도 몇 번 있었고, 직장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보낸 밤도 여럿 기억나네요. 또한 '학소도'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꽤 많았군요. 친구들의 친구들이 함께 놀러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적도 여러차례 있었네요. 이들 모두는 내게 참 소중한 추억들을 선물했고, '학소도'를 그만큼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준 사람들입니다.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을 보내면서 아쉬움도 많이 남네요. 계획했던 몇 가지 일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내년으로 미루게 된 것은 결국 나의 게으름과 결단력의 부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군요. 책을 한 권 더 꼭 쓰고 싶었는데....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관리에 신경을 쓰고 싶었는데....그간 찾아뵙지 못했던 학교 선생님들과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려고 몇 번이고 계획을 세웠었는데....제작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와 금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선생님의 산소에 가보고 싶었는데....사랑하던 한 여자를 끝내 붙잡지 못하고 떠나보내야만 했지....부모님께 좀더 자상한 아들이 되어드리고 싶었는데....옛친구들과 좀더 자주 만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이 모든 아쉬움은 결국 나의 열정과 성의가 부족했던 탓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 곧 2002년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내게 주워진다는 기대감으로 자기위로를 해봅니다. 한해 동안 또 다시 많은 일과 사건, 만남과 이별, 그리고 특히 삶의 큰 변화를 겪게되리라 예상됩니다.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펼쳐지는 월드컵대회가 있고, 그 이후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 떠나야겠죠. 한 해를 더 산만큼 현실을 직면하는 지혜도 많으졌으면 하는 바램이구요, 계획을 추진하는데 있어 더 많은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2002년은 많은 열정과 의욕,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해가 될 것 같네요. 여러분 모두에게도 행운의 여신이 항상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고장을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심약한 초심자이리라. 어디를 가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건한 사람이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온 세상을 낯선 곳처럼 느끼는 사람이리라. 심약한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세상의 한 곳에만 고정시킨다. 강건한 사람은 그 사랑을 모든 장소로 넓힌다. 완벽한 사람은 그 사랑 자체를 끊어 버린다.”

                    - 12세기 수도사 휴고 오브 세인트 빅토르

 

2001년 12월 1일 부산 BEXCO에서 있었던 본선조추첨식

본선조추첨 공식만찬(Official Gala Dinner) 중 식탁 위에 올라온 축구공 쵸코렛

축구의 황제 '펠레'의 기자회견 모습 (부산 BEXCO)

2001. 11. 11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개장식경기 모습 (Korea vs. Croatia)

  

  

  

  

  

 

 '타락한' 배낭여행족

배낭여행족들은 친절하고 부드러운 원래 모습을 잃어 버렸다

 

 
허브가 부모들에게 동남아시아를 몇개월 동안 여행하겠다고 했을 때, 그는 앙코르 와트, 베트남 고산족, 원시의 필리핀 해변들을 얘기했었다. 그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전통을 얘기하며 자신을 외국의 문화 속에 흠뻑 젖게 하고 싶었다. 이런 여행은 분명 소중한 탐험이 될 것이고 몸과 정신을 위한 여행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파리에 살고 있는 허브의 부모는 이런 생각으로 축복을 빌어주며 허브의 여행을 허락했다. 하지만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 베란다의 그물침대에서 양팔에 여자를 끼고 누워 있으면서 허브가 발견한 사실은 10달러면 매일 밤 다른 매춘녀들과 그가 원하는 마약과 술이 있는 방에 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브는 그물침대에서 내려와 한 여자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싱긋 웃으며 한마디 한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니"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배낭여행족들이 처음 길을 나섰던 1970년대만 해도 배낭여행은 얻을 것 없는 패키지 여행에 대한 대안으로 보였다. 탐험과 모험이 살아있는 진정한 여행으로의 복귀 말이다.

값싼 비행기삯과 더 싼 현지에서의 비용 덕에 모든 서양인들은 현대의 마르코 폴로, 마젤란 혹은 정화(중국 명나라때 해군장성, 왕의 명령으로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차례나 동부 아프리카 지역으로 원정을 갔었다)와 같은 모험가가 될 수 있었다.

최고급 호텔에서 묵는 여행객들과는 달리 현지의 서민들과 지내며 배낭여행족들은 휴양지의 모조기념품 대신 진정한 문화를 보고 접할 수 있었다.

값싼 호텔에 머물고 가족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함으로써 배낭여행족들은 자신의 돈을 정말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친(親)환경적인 자세를 견지한 이들은 패키지 관광객들에 비해 아무 마찰없이 방문하는 곳들을 다녀갈 수 있었다.

배낭여행객들의 가이드북은 완벽한 윈-윈을 묘사한다. "배낭여행자들의 바이블 '론리 플래닛' 관계자들은 관광객들이 그 나라의 문화, 자연, 야생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또 이들이 쓰는 돈을 통해 방문국들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평화유지군이나 자원봉사는 필요없다. 단지 그곳에 가기만 한다면 제3세계에 도움이 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젊은이들은 어디서나 론리 플래닛의 정신을 가슴에 담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매년 이러한 여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믿을만한 통계는 없다. 단지 아시아태평양여행협회의 대변인은 "아시아에서만 수백만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4백30종류의 책들로 매년 3천만달러를 벌어 들이는 세계 최대의 가이드북 출판사인 론리 플래닛의 판매순위는 어떤 실마리를 던져준다. 옐로우 바이블이라 불리는 슈스트링사의 인도와 동남아시아 안내책자들은 각기 5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론리 플래닛 출판사의 창립자인 토니 휠러는 우리 여행의 방식을 바꾼 사람으로 지칭된다.

하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여행길에 나서면서 진정한 선구자들은 점점 드물어졌다. 배낭여행족들은 이들이 피하려 했던 패키지 관광객들과 별다를바 없이 떼지어 몰려 다녔다.

휠러와 그의 아내 머린이 1973년 값싸게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첫번째 론리 플래닛 책을 출판한 이래 아시아는 여행객들로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 됐다.

인도의 고아해변, 필리핀의 보라카이, 인도네시아의 발리 해변과 태국 남부, 중국 양슈오, 네팔의 카트만두 등 산악지대도 배낭여행족들이 즐겨찾는 장소가 됐다. 여행객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이들의 환경에 대한 믿음이 어떻든간에 현지의 문화와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토니 휠러는 "배낭여행족들이 모두 같은 장소만 찾으면서 양떼처럼 몰려다니는 경향이 생겼다. 부정적인 일이다"라고 말한다.

배낭여행족들만 여행지역의 전통요리나 문화를 접하는 것은 아니다. 채식주의자 배낭여행족들은 바나나 팬케이크, 과일 셰이크, 국수만 파는 특화된 카페들을 롬복에서 라오스까지 널리 퍼뜨렸다.

그리고 런던에서 온 DJ는 고향의 폭발적인 클럽문화를 모두 여행지역에 가져왔다. 영국맥주를 팔고, 엑스터시가 공공연하며, 밤새 폭음을 할 수 있는 태국의 섬들은 모두 영국의 식민지 같은 인상을 준다.

아름다운 천국과 같았던 코피피섬은 이제 다이빙 상점과 식당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의 비치 촬영현장을 싼 값에 구경시켜주는 여행사들로 붐비고 있다.

호주에서 온 시몬느 리차드는 깨끗하게 세탁한 태국 어부의 바지를 입고 옥수수 다발처럼 금발머리를 묶은 채 손은 헤나염료로 물들여 완전한 관광객 티를 내고 있었다. 올해 22세인 시몬느는 자신이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친구가 됐지만 정작 현지 사람과는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또 "어딜가나 똑같다. 어디나 여행객들 뿐이고 밤에 유흥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돌아다닐 뿐이다."며 "이곳처럼 좋은 곳은 모두 망가졌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뻔한 여행코스를 벗어나는 것은 어떤가? 이에 대해 시몬느는 "나는 태국말을 할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여행을 하다보면 괜찮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너무 쉬운 여행이어서 부담도 적다."고 대답했다.

배낭여행 세계의 중심은 태국의 코팡간섬이다. 1만명 이상이 몰려들어 보름달 파티를 벌이는 이 곳은 하드린 해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멋진 물고기와 산호초를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 파티와는 대조적으로 물속은 더이상 생명이 살기 힘든 곳이 됐다. 맥주캔의 녹색빛과 스티로폼의 흰색만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해변가는 이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배낭여행족들은 해변에서 채 1마일도 떨어져 있지 않은 7개의 클럽으로 몰려든다. 대부분 형광색 보디 페인팅을 하고 있다. 현란한 조각들이 해변가에 늘어서 있다. 행상인들은 음식과 물, 담배와 마리화나, 엑스터시, 각성제 등을 판다. 매춘도 성행한다. 댄서들은 무대에 늘어선 사람들 머리 위로 불붙인 체인을 돌려댄다.

귀를 찢을 듯한 음악이 울려퍼진다. 너무 취해 제대로 춤도 못추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달빛이 비추는 바다에 오줌을 누는 남자들도 있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휠러는 배낭여행족들이 아시아의 일부지역을 망쳐왔다는 데 동의한다. 올해 54세인 호주인 휠러는 "내가 언제나 살펴보는 곳은 발리의 쿠타해변이다. 이곳은 정말 멋진 장소였다. 하지만 요즘에 쿠타해변을 다시 찾으면 '어떻게 이런 만신창이가 됐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휠러는 자신의 책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우리가 미친 영향이 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없었더라면 이토록 많은 배낭여행족들이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객들의 수가 매년 많아지면서 아무도 이런 흐름을 막으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좋은 장소를 나쁜 곳으로 바꾸는 데 일조한 가이드북의 지혜를 제공했던 휠러도 딱 부러지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휠러는 서로를 덜 대담한 휴가객들과 구분하기 위해 '여행객'들로 부르곤 하던 배낭여행족들의 자부심을 포기할 준비가 됐다. "얼마동안은 이러한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우린 모두 그저그런 관광객들이 돼 버렸다."


ALEX PERRY(TIME)

 

인왕산 정상에서 (2001. 11) - 왼쪽에서부터

"학순" "서울" "구구"

진돗개 미녀 "서울"이 -- 예쁘죠?

"구구" 아저씨 앞에서 애교부리는 "학순"이(2001. 6. 19 태생)

 
조선 최고의 문학가이자 가장 오랜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낸 선비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인 녹우당 근처에 팔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집이 가난하여 할아버지가 가끔 산에서 나무를 해 파는 것으로 근근히 먹고 살았는데
거기에다 할머니는 백내장을 앓아 눈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들은 함께 사는 사람이 없어 개 한마리를 자식 삼아 키웠습니다.

친자식 같은 마음에 개이름을 윤바우라고 지었답니다.

키운지 5년째 되던 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이 집의 형편을 아는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며칠후 윤바우가 자기 밥그릇을 입에 물고 옆동네에 나타났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일하다 내다 보니 그 개는 밥그릇을 마당 한 가운데 놓고 멀찌감치 엎드려서

부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이 녀석이 밥을 제 때 못 얻어 먹어 그런가 보다
하며 밥을 퍼 주었는데 그 개는 그릇을 물고 자기집으로 가더랍니다.

장에 가는 길에 그 아주머니는 낮은 담 너머로 혼자 되신 그 할머니의 집을 들여다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개가 밥그릇을 마루에 올려놓고 눈이 안보이는 할머니의 소매자락을

끌어 당기며 먹으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개의 뜻을 알아차리고 밥그릇에 손을 가져가 그 밥을 먹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그 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졌습니다.

다음날 개는 다른집에 밥을 얻으러 왔습니다. 개도 인정을 아는지 같은 집에 또 가지 않았던 겁니다.

그 집 주인은 깨끗한 그릇에 밥과 반찬을 담아 보따리에 넣어 보냈는데 그 개는 그것을 또

자기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할머니는 그것을 먹으면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5년 키운 개가 50년 키운 자식보다 낫구나...

어느 자식이 눈 안보이는 홀 어머니를 위해 동냥질까지 하겠습니까.

정선의 〈인왕제색도〉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