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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범석입니다.

임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제가 음력으로 66년 말띠라서 그런지

금년에는 정말이지 들판을 질주하는 말처럼 힘차게 한 해를 보내고 싶네요.

지금 몸담고 있는 2002년월드컵조직위의 모든 직원이 전국민의 성원을 등에 업고

열심히 준비해온 국가적 대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고,

저 개인적으로는, 작으나마 저의 기여가 이 역사적 행사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월드컵이 끝나는 7월이면 2년 동안 근무했던 현직장을 떠날 것이고,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번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하게 되겠지요.

아무튼 금년은 제 인생에 있어 아주 뜻깊은 한해가 될 것같은 예감이 듭니다.

걱정보다는 기대가 조금 앞서는 걸 보아, 예감이 그리 나쁘지는 않군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한해 동안 좋은 건강과 밝은 희망 그리고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나의 "새해 다짐"

<하나>

한번 마음먹은 일은 전력을 다해 끝까지 마무리하자!

<둘>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자!

<셋>

즐긴 땐 열심히 즐기자!

 <넷>

어리석은 실수는 범하지 말자!

<다섯>

술/술자리를 줄이자!

헤르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 중에서

 나이테와 상처가 아문 자국에는 그 나무가 겪었던 온갖 투쟁, 고뇌, 아픔, 갖가지 행복과 번성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굵은 나이테가 만들어진 해는 무성하고 화려하게 피어났던 때다. 나이테가 가늘었던 해도 있었다. 그해 나무는 거센 공격을 이기고 폭풍우를 견뎌낸 것이다. 젊은 농부들은 모두 알고 있다. 가장 강인하고 가장 고귀한 나무가 어떤 것인지를. 높은 산꼭대기에서 서서 늘 계속되는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결코 파괴되지 않고 굳센 둥치로 자라는 나무가 가장 좁은 나이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p. 52)

나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향이란 여기 혹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은 너의 내면에 있든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다.“


방랑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이며, 어머니를 기억하려는 동경이다.....방랑은 고향집으로 이끌어 간다. 모든 길은 고향집으로 향해 있으며, 모든 걸음은 탄생이다. (p. 53-4)


나무들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p. 54)    1918년


내가 정원 위로 눈길을 보내면, 정원은 단지 황홀해하거나 혹은 무관심한 시선을 던지는 이방인을 보듯이 그렇게 나를 대하지 않는다. 정원은 나에게 무한히 많은 것들을 준다. 지난 수년 동안 밤낮으로, 매 시간마다 모든 계절과 모든 날씨 속에서 정원과 나는 친밀해졌다.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의 잎사귀들과 그들이 꽃피고 열매 맺는 모습은 물론, 생성하고 소멸해 가는 모든 과정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친구였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나무들 가운데 한 그루라도 잃어버린다면 나한테는 친구 한 사람을 잃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다가, 깊은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피곤해지면, 발코니에 나가 나를 올려다보는 우듬지들을 바라보면서 기분 전환을 했다. (p. 69)


어딘가에 내 집을 갖고 한 조각의 땅을 사랑하며, 그 땅을 단지 관찰하거나 그림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경작하여 곡식을 재배하고 농부들이나 목장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맛보는 것, 지난 2천 년 동안 반복되어 온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의 리듬에 참여하는 것, 그것은 내게 멋지고 부러움을 살 만한 행복처럼 여겨졌다. 나로서는 다 경험해 보았던 것들이라 그런 것만으로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p. 121)

베르길리우스(B.C. 70~19): 고대 로마의 최고 시인으로 <<농경시Georgica>>에서 농사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생에는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이 있다. 그래도 때때로 꿈이 이루어지고 행복이 찾아온다.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 행복은 잠시 동안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한곳에 머물며 고향을 갖는다는 기분, 꽃들과 나무, 흙, 샘물과 친해진다는 기분, 한 조각의 땅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 50여 그루의 나무와 몇 포기의 화초, 무화과나무나 복숭아나무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이 그런 것이다. (p. 122)


땅과 식물을 상대로 일하는 것은 명상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쉬게 해주는 것입니다. (1955년 가을)


“식물을 가꾸고 좋은 정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단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어렵지. 불완전한 것까지도 사랑하려고 결심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고 말지. 너야 물론 나보다 잘해 낼 거야. 너도 아니? 의지의 자유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아주 샅샅이 연구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정원 일에 몰두해 봐야 한다. 대단찮아 보이는 관목도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자라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냐! 물론 아니지! 네가 어떤 관목을 골라 싶었더라도 그건 완전히 너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단다. 그 배후에는 어떤 무의식적인 바람, 추억, 필연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지.” (p. 228)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자연의 매력이 마음에 들고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뻐하면서도 들판을 마구 짓밟고, 아침내는 꽃과 가지를 꺾는다. 그러고는 금세 그것들을 내던져 버리거나 집으로 가져와 시들 때까지 방치한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이 되면 그런 애정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의 선량한 마음에 스스로 감동하는 것이다.” <<페터 카멘친트>> 중에서


정원을 꾸리면서 느끼는 창조의 기쁨과 창조자로서의 우월감이 그것이다. 사람들을 한 뙈기 땅을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바꾸어 놓는다. 여름을 기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과 색과 향기를 창조해 낼 수도 있다. 작은 꽃밭, 몇 평 안 되는 헐벗은 땅을 갖가지 색채의 물결이 넘쳐 나는 천국의 작은 정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즐거운 정원>>에서


나는 이제 내 정원 안에서 자란 과일과 채소를 보며 마음의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세상에 대한 동경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 1908년 바젤로 부친 편지에서


“비록 내일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련다.”

-마틴 루터


-행마의 속도에 대해 묻고 싶다. 바둑은 전쟁과 닮았기에 스피드는 능률적인 것이고 느린 것은 당연히 기피의 대상이다. 그런데 李9단은 어떻게 느린 행마로 스피드를 제압할 수 있었는가.

"느린 쪽이 단지 둔한 수라면 스피드에 밀릴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능력이 부족해 둔한 수를 잘 두고 그 때문에 초반엔 자주 밀리곤 한다. 그러나 빠른 게 꼭 좋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느림에도 가치있는 느림이 있다. 가치있는 느림은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 있다."

이창호9단은 인터뷰를 끝내면서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바둑 실력을 키우는 비결을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한참을 망설이다가 두가지를 버리면 바둑이 진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고정관념''욕심'인데 李9단은 두가지가 냉정한 판단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본 듯하다.  

[중앙일보 인터뷰 : [세계제패 10년 맞은 이창호9단 ] "욕심이 절제된 바둑으로 무적 고수되다"  중에서

정선의 〈인왕제색도〉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