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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하나, 서로 타협하려는 내 안의 모순들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와 산문 중 명문장을 가려 뽑은 <누구나 혼자입니다>에서

 

"습관이란 나무껍질에 새겨진 글자와 같다. 그 나무가 자라남에 따라 글자도 커진다."

- 이상각 저,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황금률"

 안녕하세요, 최범석입니다.

요즘 날씨가 장난이 아니죠?

물론 황사진 뭔지만 없다면 말입니다.

요즘은 종종 점심식사 후 회사 근처의 덕수궁에 산책을 갑니다.

도시 중심에 그나마 그런 공원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죠.

식후 공원을 걷는 것도 즐겁지만, 그 안에 있는 멋진 나무들을 하나 하나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저에게는 큰 낙입니다.

'학소도'에서 자라고 있는 묘목들은 언제나 저렇게 크고 멋지게 자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머릿속으로 미래의 나무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식물은 인간에게 많은 교훈을 주지만, 그 중에서도

인내를 가장 절실히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한해 한해 늘어가는 나이테가 말해주듯,

나무는 현대의 초스피드 시대와는 무관하게 자기 페이스에 맞추어

일년 일년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묘목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성실하게 생명을 유지하면서 항상

그 풍요로움을 간직하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합니다.

이제 4월이 가고 5월이 오면,

자연은 더 화려하고 풍요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선보이겠죠.

그 안에 숨겨진 소박함과 치열함은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요.

 

<조선일보> 2002. 3. 30      [문화칼럼] 말구유애 머리감는 女人 ...... 文貞姬

대지는 꽃을 통하여 웃는다고 한다. 만개한 목련을 보며 문득 연전에 만난 한 풍성한 여인을 떠올린다. 그때 나는 멕시코 중부 마야의 유적군이 있는 치첸이사라는 곳을 떠돌고 있었다. 밀림 속에 기원전의 피라미드들이 널려 있다는 촌로의 말만 믿고 차를 돌렸는데 풍경이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검푸른 숲 속에 눈펄처럼 흩날리는 흰나비 떼 속에서 연신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 뜻하지 않은 원시림과 흰나비 떼는 나에게 생명에 대한 그리움과 야성을 일순에 불러 일으키고 말았다. 더구나 줄줄이 낳아놓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길가에 서서 손을 흔드는 건강한 다산의 어머니와 그 아이들의 모습은 맨발의 가난쯤은 덮고도 남을 만큼 푸르렀고 그대로가 순연한 자연이어서 부럽고 눈부셨다.

그 풍성한 여인을 만난 것은 밀림 끝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였다. 마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평화롭게 돌아다니는 돼지와 거위들이었다. 아이들은 그물 침대인 해먹에 누워 구름을 세며 놀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녀는 여사제처럼 큰 몸집을 하고 마당 한 편에 있는 말구유에 상체를 거꾸로 들이밀고 머리를 감고 있었다. 풍성한 허리, 자연스럽게 출렁이는 젖가슴, 햇살에 그을린 피부, 일찍이 이보다 더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신화 속의 대지모(大地母)같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우리 옛 어머니들의 모습이어서 정말 친근하고 자연스러웠다.

선뜻 말문을 못 열고 그녀가 머리 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는 그동안 무언가 참으로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구나 하는 쓰라린 자괴감이 전신을 흔들었다.

물질문명의 산물인 유명상표가 달린 블루진을 세련된 듯 입고 있었고 그럴듯한 선글라스와 카메라를 메고 있었지만 이 너덜거리는 문명의 옷가지를 걸치기 위해 싱싱한 생명력과 자유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숲과 사람과 예쁜 짐승들과 돌멩이까지도 얼굴에 태양을 새긴 채 웃고 있는 이 신성한 유토피아에서 나는 아프게 입술을 깨물었다.

공해와 환경 호르몬으로 인하여 오늘날 현격히 줄어들고 있는 정자 수와 수정능력의 감소 수치는 접어두고라도, 겨우 태어난 우리 아이들이 사람의 젖이 아닌 소의 젖을 먹고 자라고 있는 현실과 그 아이들의 누런 얼굴이 떠올랐다. 자본주의의 상인이 만든 저울과 줄자에 맞는 몸매를 만들기 위해 온갖 방식으로 육체를 억압하는 화장 짙은 도시 여자들의 생기 없고 마른 모습도 떠올랐다. 어느 곳이 진정한 문명 도시요, 어느 곳이 야만의 정글일까.

푸른 숲 대신 괴물 같은 아파트의 밀림 속에서 흉기가 되기 일쑤인 자동차의 홍수에 떠밀리며 허겁지겁 살고 있는 도시는 혹시 슬픈 노예선이 아닐까. 정력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지렁이까지도 잡아먹는 남자들과, 외형의 미를 위해 밤낮으로 몸살을 앓는 여자들이 사는 사회를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시커먼 도시의 하수구 속에 떠내려가는 콘돔들과 드러내 버린 자궁들과 감별당한 태아들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만 전신에 오한이 일었다.

대지가 꽃을 통해 웃고 있는 창 밖을 또 바라본다. 공해와 황사 속에서도 어김없이 꽃을 피운 저 흙에다 오늘은 성자처럼 입술을 갖다 대고 싶다. 밀림 속의 그 여인처럼 말구유에 빗물을 받아 오래오래 머리를 감고 싶다. 지친 영혼과 오염된 흙을 맑게 씻어내는 일 말고 이 봄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으랴. 이 눈부신 생명의 계절에.

( 문정희 / 시인 )

  섬진강 매화마을에는 매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마을 주변에 10만 여 그루에 피어난 매화 꽃이 온 동네를 매화 향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2002. 3. 9

승주 선암사의 매화.
2002. 3. 9

승주 선암사 매화.
2002. 3. 9

<위 사진들: 고규홍 ( gohkh@solsup.com )> 발행지 "나무를 찾아서"

어떤 작은 마을에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언제나 귀엽게 자랐으므로 세상의 무서움이란 하나도 모르고 지냈다.  언젠가 이 소녀에게 세 사람의 젊은이로 부터 청혼이 왔는데, 한 사람은 이 나라의 왕자였으며, 두 번째 남자는 용감한 기사였고,세번째 남자는 돈많은 상인의 아들이었다. 이들은 소녀에게 각각 만일  " 나와 결혼하면 나의 왕관을 그대에게 씌워 주겠소." "나는 대대로 내려오는 좋은 칼을 주겠소." 그리고 "나와 결혼하여 준다면 나의 금고속에 가 득한 황금을 전부 주겠소."하고 말하며 청혼하였다.
그러나 소녀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을 하지않고 속으로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당신들은 너무나 좋은 분들이 예요."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세 사람의 남자는 소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서로들 화가나서 욕설을 퍼붓고 그대로 가버리고 말았다.
세남자가 모두 따나자 너무도 기가 막힌 소녀는 그대로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꽃의 여신 폴로라 는 소년의 넋을 언제나, 생명있는 튤립꽃으로 피어나게 하였다.
꽃송이는 왕관같고, 잎새는 칼과 같고, 황금빛 뿌리덩이의 튤립은 이렇게 피어났다.

접붙이기 -- 기원전 2000년경 중국사람들은 한 나무에서 잘라낸 가지를 다른 나무줄기에 끼워 붙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단 이러한 접붙이기가 '받아들여'지면, 이로 인해 새로 생겨난 나무에 열린 열매는 애초의 나무 중 더 우수한 쪽의 형질을 띤다.

셰익스피어는 봄을 가리켜 '일년 중 가장 감미로운 시기'라고 불었다.

약 350년 전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꽤나 생소했던 튤립은 잠깐 사이에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집단적인 광기를 불러일으켰다. 꽃이, 다른 것도 아닌 일개 꽃이, 1634년과 1637년 사이의 네덜란드에서만큼이나 역사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적은 전무후무하다.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인 이 투기 열품이 휩쏠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이라고는, 이후 수세기에 걸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은 역사적 수수께끼인 '튤립열풍'이라는 신조어였다. 이 열풍은 왜 하필 네덜란드에서 일어났을까? 다른 곳도 아닌 무감각하고 인색한 칼뱅주의 국가에서. 왜 하필 그 때 일어났을까? 그런 대로 풍요로웠던 시기에. 또한 왜 하필 튤립이었을까? 차갑고, 향기도 없으며 냉담해 보이는 튤립은 디오니소스인 구석이 전혀 없는 꽃이자, 열정을 자극한다기보다는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한 꽃인데도.....

튤립 열풍이 한창일 때는 알뿌리 하나가 만길더에 팔리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암스테르담에서 웅장한 수상 가옥 한 채를 살 만한 금액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쉴레이만 황실에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사로 와 있던 오기아 기즐라인 드 부즈베크가 바로 튤립을 유럽에 소개한 인물이라고 전해지는데, 그가 1554년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튤립 알뿌리를 서양으로 전송했다고 한다. ('튤립'은 터키 말인 '터번'이 와전되어 생겨난 말이다.) 튤립이 서양에서 처음 공식 소개될 때 이쪽 황실에서 저쪽 왕실로 옮겨졌다는 사실로 인해, 즉 궁정에서 애호된 꽃이라는 사실로 인해, 한층 빠르게 퍼져나갔는데, 왕가의 취향은 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오스만 터키 사람들은 야생 튤립이 몹시 변덕스럽다는 점을 알아차렸는데, 이 꽃들은(씨앗을 뿌려 튤립이 자라 새로운 빛깔을 내기까지는 7년의 세월이 걸리기는 하지만) 워낙 잡종을 잘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돌연변이도 쉽게 일어나며, 그 변화하는 형태와 빛깔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변종을 잘 만들어내는 튤립의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자연은 다른 어떤 꽃보다도 튤립을 소중히 여겼는지도 모른다. 1597년 존 제라드는 자신의 초본서에서 튤립에 관해 언급하여 "자연은 내가 아는 다른 어떤 식물보다도 이 꽃과의 유희를 즐기는 것 같다"고 적었다.

1608년 프랑스에서는 한 제분업자가 자신의 제분기를 알뿌리 하나와 바꾼 일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어떤 신랑은 단지 튤립 한 송이만을 지참금으로, 그것도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네덜란드에서 언제 거품이 생겼는지 정확한 날짜를 꼬집을 수는 없지만, 1635년 가을이 하나의 전환점이었음이 틀림없다. 이 때부터는 실제 알뿌리가 아닌, 약속 어음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거래될 꽃의 상세한 목록과 배달 날짜, 가격 등이 명시된 종이조각이. 그 전까지 튤립시장은 계절의 리듬을 타고 움직였다. 알뿌리는 들판에서 거두어들이는 시기인 유월을 전후해서, 그리고 다시 뿌리를 심는 시월에만 거래될 수 있었다.

수익이 보장된 투기에 너도나도 몰려들면서, 사람들은 하던 일을 집어치우고, 집을 저당 잡히는가 하면, 평생 모은 재산을 투자해 훗날 꽃과 바꿀 종이조각을 사들였다. 예상대로, 새로운 자금이 시장으로 흘러들면서 가격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붉고 노란 줄무늬 튤립인 '게일 앤드 로우트 반 레이든'은 한 달 사이에 46길더에서 515길더로 뛰어 올랐다. 빨간 수염이 달린 노란색 튤립인 '스위저'의 알뿌리는 60길더에서 1,800길더로 치솟았다.

꽃은 열매와 씨앗을 맺었고, 열매와 씨앗은 다시 지구상에서 생명을 탄생시켰다. 동물을 유혹해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속씨식물이 당분과 단백질을 생산한 덕에 세계적으로 식량 에너지 공급이 증대되었고, 이로 인해 온혈동물인 포유류가 대거 등장할 수 있었다. 꽃이 없었다면,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세상에서도 건재했던 파충류가 지금까지도 분명 수적으로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으리라. 꽃이 없었다면, 우리 인간도 없었으리라.

꽃 한 송이를 가만히 들여다 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자연의 이중적 특성, 다시 말해 창조와 소멸의 힘이 경쟁을 벌이고, 복잡한 형태를 지향하며 솟구쳤다가 이내 사그라지고 마는 특성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원은 여러 가지 성스런 예식이 가득 찬 곳으로, 때로는 일상의 흔한 공간이기도, 때로는 교회처럼 특별한 공간이기도 해서, 우리 인간과 자연세계가 영속적 유대를 맺는 의례를 우리들이 단지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 곳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유대의 영속성도 오늘날에는 상당히 시들고 말았는데, 문명이 인간과 대지와의 관계를 끊어놓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관계를 망각하도록 갖은 애를 쓴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정원으로 오면 과거의 유대관계가 되살아나고 이는 단지 상징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정원 한구석에 채소를 심고 이를 먹을 뿐만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태양이며, 빗물이며, 흔히 광합성이라 부르는, 이파리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나는 연금술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의존하며 사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저 위를 향한 우리의 막연한 시선을 잠시나마 대지로 끌어내릴 수만 있다면, 오늘날 또 다시 자연이 우리를 마음대로 부리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유용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정원에서 조용히 자라는 전지전능한 식물과 나무를 바라보는 일처럼 황홀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내가 보기에 봄 녘 대지 위에 초록도시처럼 솟아난 밭두둑의 파릇파릇한 어린 채소만틈 감동적인 광경도 흔치 않다. 나는 새로 심은 푸른 채소와 검게 변한 토양이 만드는 디지털 리듬과 여름의 위압적인 복잡함이며 온갖 전염병과 식물의 녹음이 찾아들기 전, 울타리를 두른 텃밭의 기하학적인 질서를 사랑한다.

농부나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라면 대개 자신의 지배가 기껏해야 운이나 날씨, 그리고 불가항력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좌우되는 허구임을 알고 있으리라.

1532년 안데스산맥......약 8천년 전 잉카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얼추 3천 종에 달하는 감자가 있었다.

'이상적 감자' 즉 맥도널드가 전 세계 수십억 사람들의 머릿속에 성공적으로 심어 놓은 감자의 이미지였다. 농업에서의 모노컬처(monoculture)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세계적 입맛의 모노컬처 역시 획일성과 지배와 관련된다.

특정성이나 지역성보다는 보편성을, 구체성보다는 추상성을, 현실보다는 이상을 자연보다는 인위를 미화하려는 우리의 욕구가 표출된 것이다.

'변화무쌍함'과 '자유분방함'에 반대하여 '획일성'과 '질서정연함' -- 모노컬처

'십 년 사이에 아이랜드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고'.....아일랜드의 재난의 씨앗을 뿌린 것은 감자 그 자체라기보다는 감자의 단일재배였다.

자연의 복잡성과 다양성, 그리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우리 인간의 영웅적 노력에 맞선 자연의 완강함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자연이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던 부분이라고 한다면 농업에서 재생산 수단으로 이용해 온 자연의 소유물, 즉 씨앗이다.

결국 튤립이 최후의 승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네덜란드 중산계급의 은행잔고가 바닥을 드러낸 뒤에도 전세계 튤립은 승승장구를 거듭했으니까 말이다.

공진화(共進化) -- 인간과 식물의 욕망이 어우러진 춤판으로, 이 춤판의 욕망은 참여한 식물과 사람을 기어이 변화시키고야 말았다.

접붙이기를 하는 사람들이나 단일재배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유전공학자들처럼 생명의 다양성을 축소하는 일은 진화의 가능성, 다시 말해 우리에게 열린 미래를 축소하는 일이다. 동물학자 E. O. 윌슨은 생물다양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는 십억 년에 걸쳐 진화한 생명체의 집합이다. 그동안 온갖 부침(浮沈)을 다 삼킨 뒤 그것들을 유전자에 담아 세상을 창조했고 그 안에서 인간이 창조되었다. 그 안에는 세계가 안정되게 존재한다." 다양성을 위협하는 일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다.

위 글은 <<욕망의 식물학: 식물이 세상을 보는 관점>> 마이클 폴란 지음/이창신 옮김, 최재천 감수에서 발췌

* 세계의 국화 *  

<'학소도'의 이미지 포토>

 

2002 FIFA 월드컵과 20년 된 나의 아디다스 축구화

거실의 계단책장과 벽에 걸린 카프카/프라하 포스터

정선의 〈인왕제색도〉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