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there! 안녕하세요?

내가 지난 3개월간 생활했던 이 신도림 현대아파트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새벽에 몇 자 적어봅니다.

내일이면 일산에 계신 부모님 곁에서

또 다른 새벽을 보내게 되겠죠.

갖은 짐은 별로 없지만

(아마도 자동차로 두 번 왕복하면 족할 거예요)

어쨌든 다시 짐을 챙겨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때,

아! 또......하는 한숨과 함께 옛 생각들이 나더라구요.

내가 이사 다니면서 짐을 꾸려야만 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 말이죠.

아쉬움을 삼키고 떠나야만 했던 나의 임시 안식처들......

하루 이틀, 바람과 비와 추위와 햇살을 막아주던

수많은 방들 말고도 짧게는 두 달, 길게는 삼 년 동안

나의 보금자리였던 집들......

지금은 아마도 행복한 아내이자

어쩌면 애 엄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옛 여자친구들처럼 다시는 돌아가기 불가능할 나의 옛 둥지들.....

내가 오래 살았던 Berkeley Ellsworth street의 방은

바로 밑에 층에 세계적인 통계학자 Erich Lehman 교수님이

사신 덕분에 일주일이 멀다하고 신경전이 벌어졌지만

(그 분과 나 사이에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은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통계학 전공자를

만나면 그 분 성함을 들먹이면서 한바탕 웃곤 하지요),

바로 그 방에서 나는 지도와 친해졌고

벽에 걸린 지도를 보면서 가장 많은 꿈을 꾸었죠.

세계지도를 보면서 점으로 혹은 작은 부분으로 표시된

도시와 나라 속으로 내 자신이 들어가는

그런 상상을 하곤 했죠.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꿈은 많이 실현되었어요.

지도에서만 보던 많은 곳에 어느 날 내 자신이

실제로 서 있었던 겁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옆에, 크레타 섬 계곡에, 예루살렘 골목에,

케냐 산 위에, 타지마할 앞에, 히말라야 만년설 위에,

안데스산맥 목장에, 이구아수 폭포 가에, 몽골 초원에.......

빠리 세느강변의 3층 아파트에선 매일 새벽 강 건너편

노틀담 성당의 종소리가 나를 깨웠고,

거실의 작은 창가에 앉아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새벽안개에 덮인

강변도로를 바라보곤 했죠.

너무나도 고요하고 잔잔한 시간들과 투명한 생각들......

이 시간이면 젊은 연인들은 침대에 누워

곤한 새벽잠을 자고 있겠지,

저기 개를 끌고 산책하는 노인들은 무척 쓸쓸해 보이는군,

저렇게 매일 새벽 청소차가 다니는데

길엔 웬 쓰레기가 그리 많지,

저 아저씨가 들고 가는 바게트는 마치 야구 방망이 같네.....

이런, 글을 쓰다 보니 내 자신이 정말

추억 속으로 깊이 빠져드네요.

아무튼, 지금 내가 떠나려는 이 아파트에서 그 동안 나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이웃은 옆집 신혼부부가 아니라

바로 앞 아파트

공사장에 우뚝우뚝 솟아 있는 크레인들이었답니다.

여기가 17층이니까, 거실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크레인들과 키가 비슷해서 심심할 때면

유심히 바라보곤 했는데, 정말 신기한

중장비예요. 나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마구 자극할 정도로.

"크레인맨"(크레인 조종사)과 17층 아파트에 혼자 사는 젊은 여자

사이에 사랑의 불씨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들도 한 번 상상해 보시죠.

어떤 사랑이 가능할지......^^;

아 이제, 전 이 글 홈페이지에 올리고

새벽 커피나 한 잔 하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들 조심하시고, 멋진 꿈들 많이 꾸세요!!

절실한 꿈은 언젠가 현실이 됩니다.

-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