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들 떠도는 젊은이들이여, 유쾌한 탕아들이여, 내가 비록 너희에게 5페니히를 적선했을지라도 나는 너희 모두를 존경과 경탄과 선망하는 마음으로 마치 왕을 보듯이 바라본다. 너희들 누구나, 방탕에 빠진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 왕관을 쓰고 있다. 너희는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고 정복자들이다. 나도 한때는 너희와 같은 나그네였기에, 방랑과 타향의 맛을 안다. 그것은 향수와 궁핍, 불안에도 불구하고 아주 달지.

다시 한번 젊고 경험 없고 매인 데 없이 대담하고 호기심에 차서 세상을 돌아다녀 봤으면! 길가에 앉아 버찌로 주린 배를 채우고, 갈림길에 이르러서는 오른쪽, 왼쪽 길을 웃옷 단추를 세어 정해 봤으면! 다시 한번 짧고 온화하고 향기로 가득한 여름 밤에 들판의 건초 더미에서 늘어지게 자보았으면! 다시 한번 돌아다니는 길에서 숲의 새들과 도마뱀이며 딱정벌레들이랑 조화롭게 지내봤으면! 그건 여름 한철과 새 신발창 몇 개의 가치가 있고말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지나간 노래를 부르고 지난날의 지팡이를 다시 휘두르고 옛날에 좋아하던 먼지투성이의 길을 가면서 다시 젊어져 모든 게 전과 같다고 상상하는 일은 가치가 없다.입니다

발췌,  헤르만 헤세 <나무들> (송지연 옮김, 민음사)

 

학소도의 은행나무 잎

씨가 어디선가 날아와서 금년에 꽃밭에 뿌리를 내린 은행나무

정열적인 색의 아마릴리스

아마릴리스

개화기 :

5월~6월

영   명 :

Amaryllis

 학   명 :

Amaryllis hybridum

 원산지 :

남아메리카

 특   성 :

춘식구근. 반내한성의 구근식물로 페루, 브라질등에 약 70여종이 분포하고 있다. 17세기 말에 유럽에 소개되어 교배종이 생기게 되었다. 화단용, 분화용, 절화용, 수경재배등으로 이용된다.

 재배법 :

3~4월에 식재한다. 배수가 좋고 햇빛이 잘드는 곳이 좋다. 구근의 상단이 흙에서 약간 나올 정도로 심는다.

아마릴리스(Hippeastrum hybridum), 꽃말은 '겁쟁이', '수다쟁이'이다.

아마릴리스는 구근류인데, 글라디올러스처럼 봄에 심는 춘식구근류이다.

꽃이 정말 크고 예뻐서 분화용으로 매우 인기가 많은 품목이다.
근데 왜 꽃말을 겁쟁이, 수다쟁이라 했을까? 내 생각엔 꽃이 너무 예뻐서 다른 꽃들한테 시기나 질투를 많이 받아 수줍음을 자주 타다 보니 겁쟁이가 되었고, 이런 아름다움을 남에게 뽐내고 싶어서 수다떠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런 꽃말이 붙여진 것 같다.

비온 후의 소철잎

철은 공룡이 한창 번성하던 중생대 시기에 지구를 뒤덮고 있던 식물들중에 가장 대표적인 식물의 하나이다. 소철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지구에는 지금의 헤고나무와같은 양치식물종류 또는 쇠뜨기를 전봇대만하게 크게 불려놓은것같은 고색창연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중생대는 '공룡과 소철의 시대'라고도 불리울 정도로 당시 식물 생태계에서 소철은 우점종이었고 많은 종류의 초식공룡들이 소철을 뜯어먹고 살았다. 소철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열대, 아열대 지방으로 퍼져 자라고 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특징적인 식물이 아프리카, 중국, 말레이지아,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대륙 등 모든 대륙에 퍼지게 되었는지는 지질학자나 식물학자들 모두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에 하나이다. 이 식물은 지구상의 모든 대륙이 처음에는 붙어 있었고 나중에 갈라져 이동해 떨어져나갔다는 대륙 판이동설을 주장하는 증거로 주장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소철의 거의 모든 종들의 씨앗은 바닷물에 가라앉기 때문에 해류에 의해 퍼져 나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고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에 새들이 뱃속에 넣어 실어날랐다는 주장도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즉 공룡과 소철이 지구상에 함께 한창 번성하던 시기에 현재의 모든 대륙은 연결되어 있었고 공룡들이 이 씨앗을 소철잎과 함께 뜯어 먹고 배설하며 이동하는 과정에서 전 대륙으로 퍼지져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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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도의 여름 단풍나무 잎

한 뼘 크기의 어린 소나무

오갈피나무에 핀 꽃

다행이 뿌리만은 겨울을 넘겼네요

접시꽃

그것은 늘 같은 꿈이다.

붉게 꽃피는 마로니에

여름 꽃이 만발한 정원

그 앞에 외로이 낡은 집 한 채.

 

거기, 고요한 정원이 있는 곳에서

내 어머니는 나를 요람에 뉘었다.

아마도 그건 너무 오래전이다

정원과 집과 나무는 이제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은 풀밭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쟁기나 써레가 밀고 지나갔을지도 모르고

고향, 정원, 집, 나무는

내 꿈속에만 있을지도 모른다.

 

- 헤르만 헤세 -

 

 

 

     미리 보는 힐러리 클린턴 회고록 `역사를 만들며 살다(Living History)`

 

 

 

회고록 사려는 사람들 8일 밤(현지시각)뉴욕의 반스 앤 노블 서점 밖에 힐러리 회고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뉴욕=AP연합

출간되기 전부터 화제가 무성했던 ‘힐러리 회고록’의 뚜껑이 드디어 열렸다. 9일 0시(현지시각), 미국에서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56)의 회고록 ‘역사를 만들며 살다(Living History)’의 판매가 시작됐다.

뉴욕의 한 서점에는 판매가 시작되기도 전에 80여명이 몰려들어 줄을 서기도 했다. 힐러리는 공개된 대로 책에서 ‘남편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며 비통한 심경을 토로하지만 책에서 가장 비중을 둔 부분은 변호사, 정치인, 또 독립적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자신의 활약상이다. 때문에 올 여름을 강타할 화제작으로 꼽히는 회고록에 대해 현지에서는 ‘2008년 대선용’ ‘이미지 개선을 위한 전략’ ‘본격 활동 재개의 신호탄’ 등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달 중 웅진닷컴이 책을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힐러리 회고록은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든 뒤, 그 그늘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홀로서기를 이뤄낸 여성의 성공담이다. 그 일부를 발췌한다.

◆ 퍼스트레이디로는 만족 못해

나는 이 시대 여성의 역할 변화를 상징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맞거나 놀림당하고 오면 어머니는 늘 “나가서 맞서라”고 얘기했다. 13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백악관 생활 8년을 빼고는 줄곧 직업을 가지고 일했기에 나는 ‘누구의 아내’로만 불린다는 것이 어색했다. 결혼 후에도 내 성(姓) ‘로댐’을 고집했다. 남편은 상관 안 했지만 시어머니는 울었다.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내게 물었다. “무엇을 성취하고 싶나요?” 내가 말했다. “여성을 대표해 한계가 어디까진지 시험해보고 싶어요.”

 

 

위기의 순간 1998년 12월,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이 초래한 탄핵 위기를 모면한 직후 클린턴 대통령의 모습. 그리고 그를 착잡한 듯 지켜보는 힐러리 여사. /조선일보 DB사진

◆ 나와 빌

예일대 캠퍼스에서 만나 끌렸다. 땀구멍에서 활력을 뿜어내는 듯 생기에 찬 모습이었다. 나는 그가 ‘아칸소에서 온 바이킹’ 같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엘비스처럼 구레나룻을 기른 남부 민주당 청년에 대해 뭐라 할지 궁금했다. 어머니는 “너를 그렇게 활짝 웃게 만든 사람은 빌밖에 없다”며 “꼭 잡으라”고 했다. 연애 시절, 빌과 만나기로 했던 식당에 갔다. 내가 종업원에게 빌의 인상착의를 말하자 옆에서 누군가 “아, 그 사람과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서 “참, 그런데 그 사람 언젠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78년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된 남편은 경마장에서 경주마가 튀어나가듯 맹렬히 일에 달려들었다. 우리는 간신히 휴가를 내 여행지에서 아이를 가졌다. 나는 빌을 설득해 라마즈 분만교실에 함께 참석했다. 당시 다들 “왜 주지사가 출산에 동참해야 하느냐”고 황당해 했다.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나는 재정계획을 짰다. 빌 클린턴은 도무지 돈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부동산에도 관심 없다. 그저 책 사보고, 영화 보고, 외식하고 여행할 정도의 재산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아칸소 주지사 관저에서 살면 그의 연봉으로도 충분했지만, 나는 ‘정치가란 원래 불안정한 직업이고 우리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구두쇠였던 아버지로부터 투자 감각을 물려받았다(힐러리의 선물투자 등은 나중에 수사대상이 됐다).

1987년 민주당 관계자들이 빌에게 대선에 도전하라고 했다. 그는 쉽게 결정을 못 내렸다. 하루는 ‘하겠다’, 다음날은 ‘안 하겠다’ 였다. 결국 나는 데드라인을 정해 확답을 달라고 했다. 빌은 원래 무슨 일이든 ‘마감’이 있어야 결정을 내린다. 출마 여부 발표를 하겠다고 호텔방까지 잡아놓고도 결심하지 못하던 그는 결국 막판에 “아직 첼시가 너무 어리다”며 포기했다(그러나 당시 클린턴이 여자 문제가 터져나올까봐 포기했다는 설도 있다).

어린시절 놀림당하면 엄마가 늘 "맞서라"격려
세계 외교무대는 리더간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
여성을 대표해 능력의 한계 시험해 보고 싶어

우리 부부는 부모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선거 때나 백악관 임기중, 첼시가 아빠와 등장하면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했지만 응한 적이 없다. 빌은 언제나 첼시의 숙제를 도와줬고 외부에 있을 때는 팩스로 숙제 내용을 전달받았다.

백발이 성성해도 빌의 소년 같은 미소와 유머감각, 낙천성은 수십년 전 내가 처음 그와 사랑에 빠졌을 때와 변함이 없었다. 우리는 정치적 동지였고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첼시가 스탠퍼드로 떠난 뒤 나는 백악관 딸 방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빌을 발견하곤 했다. ‘드디어 개를 키울 때가 됐다’고 생각해 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애견을 안겼다. 빌 클린턴은 엄청난 위장을 가지고 있다. 앞에 놓인 것을 무엇이든 먹어치울 수 있는 식욕은 그의 뛰어난 정치적 능력 중 하나다.

한번은 보리스 옐친이 만찬이 끝나갈 무렵 새끼 돼지 통구이를 새로 테이블로 날라오게 칼로 한쪽 귀를 베어 빌에게 권한 적도 있다.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줄곧 우리를 물고 늘어진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처음으로 백악관을 찾았을 때 빌은 그에게 내부 구경을 시켜 주었다. 그게 빌이었다. 적에게 그렇게 너그러울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내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연설문을 작성할 때면 우리는 늘 서로 조언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르윈스키 스캔들 관련 대국민 담화문 작성 당시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는 그에게 나는 “이건 당신이 일으킨 문제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라고 했다.

 

(르윈스키 스캔들 때) 백악관 스태프들은 내가 ‘돌격’ 신호를 내려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내 남편과 결혼을 위해 싸울 준비는 돼 있지 않았지만 대통령을 위해서는 싸우기로 했다. 외로운 경험이었다. 내 남편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조국을 배신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집안에 문제가 있어도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하지 않는가. 남편을 용서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지만 정적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 정치의 도시 워싱턴

백악관에서의 첫날. 새벽 5시30분에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은쟁반에 아침 식사를 날라왔다. 빌이 놀라서 “이봐요, 지금 뭐하는 겁니까”라고 외쳤다.

백악관 생활은 낯설었지만 빌과 나는 혹독한 정치판에 단련돼 있었다. 워싱턴은 정치적 게임과 권모술수가 난문하는 도시였다. 자살한 내 친구 빈스 포스터는 “이곳에선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 마치 스포츠처럼 전개된다”고 말했다. 공화당 세력은 늘 우리에게 공격을 가해 왔다. 위기에 처할 때면 나는 “여성은 티백(tea bag)과 같다. 뜨거운 물에 빠질 때까지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 아무도 모른다”는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의 명언을 상기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세계 무대의 외교 정책이 리더들끼리의 개인적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었다. 이념적으로 다른 국가라도 리더들 사이에 신뢰감이 있다면 협력 가능하다.

◆ 독립선언

탄핵위기를 넘기고 본격적으로 상원의원 출마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한 의원이 방송에서 나에 대해 ‘훌륭하고 젊고 똑똑하다’고 했다. ‘젊다’는 표현이 제일 맘에 들었다. 백악관을 떠난 뒤 재단을 설립하거나 방송을 진행하거나 대학 총장에 취임하거나 기업 CEO를 맡아달라는 제의가 쏟아지는 마당에 굳이 출마를 해야 하나. 나는 고민했다. 혹독한 뉴욕 언론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을까.

6시 7시 12시 4시 5시 6시 10시 11시 뉴스에, 사설까지 또 나를 얼마나 씹을까. 나는 내 미래를 놓고 빌과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그가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감수한 희생을 알고 있었다. 선거 당일, 그동안 투표소에서 늘 빌의 이름만 보다가 내 이름을 발견하니 매우 기뻤다.

빌과의 결혼을 유지한 것, 그리고 뉴욕주 상원의원에 출마한 것이야말로 내가 내 인생에서 내린 가장 어려운 결단이었다. 나 혼자 첼시를 이만큼 훌륭하게 키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나 혼자서도 앞으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지만, 나는 빌과 함께 늙어가길 바랐다. 백악관을 떠나며 빌과 나는 서로를 껴안고 잠시 춤을 추었다.

(정리=鄭在娟기자 whauden@chosun.com)

 

가로등-술취한 30 수족관 물고기 훔쳐

○...대구 수성경찰서는 11 이모(39, 평리동)씨를 붙잡아 조사중이다.

이씨는 이날 새벽 1시쯤 대구 파동 ㅊ식당 수족관에서 2마리 시가 5만원 상당의 물고기를 훔쳐 달아나다 식당주인 김모(35?#45824; 효목동)씨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 하고 귀가하던 수족관 물고기를 보니 안주 생각이 나서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 진술했다.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