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홈페이지 <지도 없는 여행>의 최범석입니다.

오늘은 사진으로 말을 대신하겠습니다.

참, 아래 사진을 감상하시고 싶으시다면 공짜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돈은 안받으니, 방명록에 짧은 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왜냐구요? 누가 왔다갔는지 저도 궁금하잖아요!

즐거운 하루!!

 

 

허브 <보리지>의 꽃 (위, 아래)

이 꽃 빛을 [마돈나블루]라고 하는데, 성모마리아의 옷을 그릴 때 화가들이 이 꽃의 즙에서 고상한 색깔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허브 <딜>의 꽃

<특성>
고대 이집트에서 이미 약초로 사용되어 왔으며, [달래다]라는 의미의 [Dilla]가 어원으로 신경안정의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가는 실과 같은 잎을 가지고 있으며, 여름에는 우산을 편 것 같은 모양의 황색 꽃을 피웁니다. 미나리과 특유의 강한 향기가 있으므로 잎, 종자 모두 피클에 이용하며, 잎을 사용하면 더 강한 향을 냅니다. 딜의 잎을 끓여 허브차로 마시면 동맥경화 예방, 두통, 구취제거, 위장강화등의 효능이 있으며, 모유를 잘 나오게 한다고 합니다.

<접시꽃> (위, 아래)

접시꽃 당신

 

                                                                          - 도 종 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들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도종환(1944 ~  )

194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과 및 동대학원 졸업
동인지[분단시대] 제1집에[고두미 마을에서]등 5편의 시발표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 받음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울타리꽃> <부드러운 직선>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배>등

접시꽃은 아욱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중국이 원산지며 꽃이 아름다워서 정원에 흔히 심는다.
키는 2미터 넘게 자라고 잎은 넓은 심장 꼴로 6∼7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6월에 무궁화를 닮은 크고 납작한 꽃이 핀다.

꽃빛깔은 붉은빛, 흰빛, 자줏빛 등이 있는데 대개 흰 꽃이 피는 것을 약으로 쓴다.
접시꽃 싹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봄철에 어린순을 데쳐서 무쳐 먹거나 튀겨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
맛이 달고 성질은 약간 차다고 옛 책에 적혀 있다. 오래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하며, 개고기와 함께 먹으면 몸에 병이 생겨 영영 낫지 않고,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얼굴 색이 나빠진다고 하였다.

옛 책에 적힌 접시꽃의 약성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접시꽃 싹은 삶아 먹으면 결석을 없애고 열을 내리며 독을 풀고 설사를 멎게 한다.

뿌리와 줄기는 열을 내리고 소변을 잘 통하게 하며 농혈(膿血)을 제거한다.

접시꽃 싹을 나물로 먹으면 임질을 다스리고 속을 타는 것을 부드럽게 하며 해산을 쉽게 한다.”

학소도에서 수확한 매실

학소도에서 수확한 살구

머루 줄기

 학소도 뜰을 거닐고 있는 새

다음은 초피나무인데, 곳에 따라 조피나무, 지피나무, 쥐피나무, 죄피나무라고도 한다. 초피는 기름을 짜는 것이 아니고 양념으로 쓴다. 고추같이 맵고 탁 쏘는 맛이 나기 때문이다. 이 초피나무가 내 고향에는 없었다. 내가 초피나무를 본 것은 영덕 지방의 산에서다. 처음 그 나무를 보았을 때는 난디(분디)나무인 줄 알았다. 나무의 크기며 뻗어난 가지며 잎과 열매까지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피나무가 어째서 다 같은 경북의 북부지방인데 청송에는 없고 영덕에는 있는가? 사람들 얘기를 들으니 초피나무는 바다가 가까운 산에만 있다고 한다. 바닷바람을 맞아야 이 나무가 산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평안도나 함경도 바닷가 산에도 초피나무가 있어야 할 터인데, 북녘에서는 없는 줄 안다.

분디나무와 초피나무가 아주 비슷해서 알아보기 어렵다고 했는데, 쉽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잎이 나 있을 때는 그 잎을 따서 입에 넣어보면 된다. 분디는 분디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냄새가 날 뿐이지만, 초피는 맵고 톡 쏘는 맛이 난다. 그리고 열매가 맺었을 때는 그 열매를 맛보아도 그렇다. 만약 겨울이나 이른봄이 되어 잎도 열매도 없을 때는 가지에 돋아나 있는 작은 가시를 살펴볼 일이다. 분디나무는 가시가 하나씩 어긋나 있지만, 초피나무는 두 개씩 마주 나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책으로 아무리 애써 알려고 해도 이 두 나무를 구별할 수 없다. 두 나무를 잘 알고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사전에 나와 있는 나무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그만 뭐가 뭔지 머리 속이 뒤죽박죽으로 되고 마니 말이다. 모든 우리말 사전이 그렇고, 식물사전이고 백과사전이고 도감의 설명이 죄다 그렇게 되어 있다. 무엇보다 설명해놓은 말이 어려운 한자말로 되어 있어서도 그렇지만, 같은 나무를 말해놓은 것이 다르고, 또 모든 사전에서 우리말 나무 이름을 쓰지 않고 산초라는 한자말을 표준으로 해놓았기 때문에 어떤 사전에서는 분디나무를 산초나무라 했는데 다른 사전에서는 초피나무를 산초나무라고 했다. 이것 한 가지만 보아도 학생들이 방 안에서 책으로 자연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머리만 썩힐 뿐인 바보 같은 짓인가를 알 수 있다.

앞에서 산초란 말이 또 일본말을 따라가는 말이라고 했는데,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벌써 10년쯤 지난 일인데, 우리 아이가 이 근처에 조그만 농산물 가공 공장을 차려서 그 제품을 가락동 시장에도 보내고 더러는 일본에도 보내고 했을 때다. 한 번은 일본사람이 찾아와서 어떤 나뭇가지를 보이면서 이런 나무가 이 근처 산에 있는가 묻더란다. 그것은 분디나무였기에 아, 그런 나무는 얼마든지 있다면서 그 일본사람을 데리고 가까운 산에 가서 분디나무를 보여주었더니, 그 일본사람이 잎을 뜯어 코에 대보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니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거 산쇼오(山椒) 아닙니다.”

하고는 자기가 가져온 나무의 잎을 뜯어서 한번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는데, 코에 대보았더니 그것은 분디나무가 아니고 초피나무였다. 그래서 여기는 그 나무가 없지만 다른 데 가면 있다고 했더니 그 열매를 따 모을 수 있는 대로 모아달라고 해서 그렇게 약속을 했다. 그 뒤로 초피를 따러 다녔는데, 지리산에도 초피나무가 있었고, 내 고향 청송에서도 100m가 넘는 보현산에는 초피나무가 있어서 그 열매를 두 트럭이나 모아서 일본으로 보냈다. 지리산이나 보현산은 바닷가에 있는 산이 아닌데 어째서 초피나무가 있을까? 아주 높은 산이라면 바다에서 좀 멀리 있어도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일본말 사전에는 그 어느 사전에도 ‘산쇼오(山椒)’나무만 올려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초피나무라고 하는 나무인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일본말과 일본글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부터는 그만 이 ‘산쇼오’곧 산초나무가 그대로 초피나무라고 알려져버렸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분디나무와 초피나무를 구별할 줄 모르고, 또 초피나무보다 분디나무가 더 널리 각 지방에 있으니 그만 산초란 것이 분디로 되기도 하고 초피로 되기도 해버렸다.

일본에서는 ‘산쇼오’, 곧 초피나무만 있고 분디나무는 없는가? 일본은 섬나라가 되어서 아마도 초피나무가 많을 것이다. 어쩌면 분디나무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 까닭은, 사전에서 ‘산쇼오’를 설명하면서 그와 비슷한 나무가 있다는 말은 어느 사전에도 적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분디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데도 쓸모가 없는 나무라 사람들이 그 나무 이름조차 모르는 듯하다. ‘이누산쇼오(개산초)’란 나무가 있는데, 그것이 우리나라에 있는 분디나무인지 모른다. 우리는 옛날에 분디 기름을 등잔불로 소중히 썼기에 분디나무를 귀하게 여겼지만, 일본은 사방이 바다가 되어서 바다에서 잡은 고기 기름으로 얼마든지 등불을 켤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따서 기름을 짤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분디나무 같은 것은 그 이름조차 ‘이누산쇼오(개산초)’라고 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오덕

●1925년 경북 청송 출생
●1944~86년 경남·북, 부산 등지서 교편생활
●1986년 이후 글쓰기교육운동 및 우리말 연구, 전 우리말연구소 대표
●현재 충주시 신니면에서 집필활동중

최근에 일본의 어느 문학작품을 우리말로 옮겨놓은 책을 읽었더니 거기 산초나무가 나왔다. 원문은 보나마나 ‘산쇼오(山椒)’를 그대로 따라 써놓은 것이다. 우리가 한자말을 쓰게 되면 이렇게 해서 자주 일본말을 따라가게 되고, 그래서 초피나무는 산초나무가 되고, 그런데도 실제로는 초피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모르니 거의 모든 사람이 분디나무를 산초나무라고 알고 있다. 이런 말의 혼란을 일으킨 책임은 죄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져야 할 것이다.   (끝)

글: 이오덕 아동문학가

발행일: 2003 년 06 월 01 일 (통권 525 호)

쪽수: 632 ~ 636 쪽

 

2003년 6월 21일  학소도 풍경


 

 

 

 

  

 

 

이 아저씨는 유명한 개그맨이라고 하는데 나는 얼굴을 처음 봤음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