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근본적인 태(모태)와 맞견주어질 공간이 있다. 이를테면 안방, 집, 고향, 품 등이 그렇다. 짐승으로 치면 보금자리나 둥지 같은 것이지만 이들을 통틀어서 ‘모태성 공간’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현대인이나 도시인이 된다는 것은 이 모태성 공간을 등지고 떠나는 일, 혹은 그것을 잃어가는 일이다. 모태성 공간 상실로 우리들은 20세기 후반을 아주 구겨버린 셈이다. 그리하여 모태성 없는 공간에 엉겨붙었다. 그 결과 우리들은 누구나 정신적으로 사생아가 아니면 고아가 되었다. 현대는 거대한 고아원, 그것도 사생아가 즐비한 고아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고향을 잃었다. 안방도 잃었다. 아파트 안에서 더러 안방이란 말을 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추억에 부친 가명(假名)일 뿐이다. 그것은 아파트가 우리집 아닌 우리집인 것과 같다. 

 

이렇듯이 우리들은 줄줄이 모태성 공간을 잃었거니와 달리 장독대 잃은 것도 함께 얘기해야 한다. 그렇다. 집안살림 규모로 우리들의 현대성을 규정짓자면 ‘장독대 없음’을 지적해야 한다. 독이며 단지며 동이, 그리고도 시루며 버지기 등 이제 이름마저 잊혀진 옹기들은 죄 부셔지고 깨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또 다른 우리들의 모태성 공간 그 자체가 아예 낙태수술을 받고야 말았다.  

 

김열규의 <고향 가는 길> 중에서 

 

[최근에 읽은 책 리스트]

l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야마오 산세이 저/이반 역 | 도솔

l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잔네 파울젠 지음, 김숙희 옮김, 이은주 감수 / 풀빛

l        식물재배도감 - 식물가꾸기의 모든것  아리사와 시게오 지음, 쓰키모토 카요미 그림, 김창원 옮김 / 진선출판사

l        숲의 도감 - 숲 속 생물 이야기  마쓰오카 다스히데 저/김창원 역 | 진선출판사

l        나만의 정원  프레드리카 P. 스필맨 그림, 킴벌리 버크와이너 글, 이주희 옮김 / 정인출판사

l        여행의 역사 - 오디세우스의 방랑에서 우주 여행까지   빈프리트 뢰쉬부르크 지음, 이민수 옮김 / 효형출판

l        잘되는 집안은 뭐가 다른 걸까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풍수 인테리어 이성준|예문

l        영혼의 산 1 & 2   가오싱젠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북스

l        영원한 것은 없다   이태복 지음 / 물푸레(창현)

l        30대 CEO를 실현하는 시간 활용 기술 우치다마사시 저/김정환 역 | 이손

l        7인의 베스트 CEO  제프리 크레임스 지음, 김영안 옮김 / 물푸레(창현)

l        거절당한 순간 영업은 시작된다  엘머 레터만 지음, 안진환 옮김 / 북스넛

 

반 고흐 작 - 해바라기

강렬한 노란 빛의 해바라기, 그 속에서 고흐의 모습을 느껴보자.

반 고흐 (1853 ~ 1890) 는 세잔, 고갱과 함께 인상파의 영향 아래 있었으면서 그것을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발전시킨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현대미술은 크게 추상적 흐름과 표현적 흐름의 두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추상적 흐름이 세잔에서 피카소로 이어진다면 반 고흐는 표현적 흐름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반 고흐는 화가로서의 경력은 단 10 년에 불과하다.
그는 국적은 네덜란드이지만 만년은 프랑스에서 보냈는데, 여기서 보낸 5 년동안 인상파기법을 완전히 소화하고 극복해내어 금세기 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1888 년 아를르에서 그린 몇점의 해바라기 그림중 하나이다. 반 고흐는 이 해에 아를르에서 고갱과 함께 생활을 하였다. 반 고흐는 고갱을 대단히 존경하였다. 이 그림은 고갱과의 만남을 기다리면서 그와 함께 사용할 작업실을 온통 해바라기 그림으로 장식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린 여러 점중 하나이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황색과 해바라기의 꿈틀거리는 꽃잎들, 이를 표현하는 거친 마티에르 등에서 반 고흐의 사랑과 열정이 그의 특징적 스타일로 나타난다. 반 고흐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 그림을 고갱에게 바쳤다.
그와의 만남은 반 고흐에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주었지만 결국 정신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귀를 자르는 것으로 결별하게 된다.
반 고흐는 작품 속에서 감정표현의 자유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예술적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이었고, 고갱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충만했지만 대단히 지적이고 상징적인 것을 추구하던 인물로서 어쪄면 그에게 반 고흐의 열정과 광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들의 만남은 현대미술의 두 거장의 만남이었고 거장들끼리의 만남은 그들의 너무나 강렬한 개성으로 인해 불행한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후 고갱은 타히티로 떠나 자신의 종합적이고 상징적인 양식을 완성하였고, 반 고흐 역시 정신 병원에서 요양하면서도 언제나 그림을 그렸고 그 시절에 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 기사 내용 : 글쓴이 - 김연희, Source- 세계일보

 

 

 

한여름의 강렬한 태양 아래서 커다란 꽃을 탐스럽게 피운 모습은 신선하고 열정적이다.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서 꽃을 피우는 이 꽃을 그리스 신화에서는 태양의 신 아폴론을 사랑한 요정 크리티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은 아폴론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가 그대로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1970년에 제작된 '해바라기'라는 영화에서 여주인공 지오반나가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되는 곳을 찾는데 그곳에는 해바라기가 눈부시게 피어있다.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의 풍경, 애절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주인공의 '애모'를 암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후기 인상주의미술(Impressionism art)의 대표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작품이다.
고흐는 1888년 여름 남프랑스 아를에서 몇 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는데, 꽃송이가 3개인 것, 12개인 것, 14개인 것 등이 있다.
그리하여 이것들은 각각 '꽃병에 꽂힌 세 송이 해바라기'(73×58cm) '꽃병에 꽂힌 열두 송이 해바라기'(91×72cm) '꽃병에 꽂힌 열네 송이 해바리기'(95×73cm) 등으로 불린다.

<출처: http://www.youth.co.kr/rs/rs2129.htm   &   http://vangogh.dreamwiz.com >

반 고흐와 색채


그는 미쳤었다. 그러나 그가 미쳤었던 것은 빛과 색깔에 대해서였다. 그 어떠한 것보다도 영혼의 빛을 찾아서…. "더 많은 빛을 얻고 더욱 강해지기 위해 진정으로 사랑할 만한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라." 반 고흐의 아버지(목사)가 해를 보지 못하는 광부들에게 가져다 주고 싶은 것도 이 빛이었다. 반 고흐의 색깔에 대한 감각은 정말 신비하다. "코발트는 고귀한 색이다." 그에게는 암흑마저도 색깔이 있었다. 그는 자기의 색깔을 얻기 위해 아틀리에의 번속한 분위기를 박차고 나가 아를과 타라스콩의 푸르른 하늘과 "태양이 쏟아주는 황금의 비"를 스스로 찾아 나섰었다. 색깔에 대한 열정이 조화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암흑 속에서 청명함을 간직하고 깊이를 획득하게 한다." 중요한 발전은 색깔이 하나의 선이나 윤곽으로 전의될 필요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모네와 같은 클래식한 화가들은 깊이를 색깔의 흐릿함이나 원근의 분리로 표현하였으나 반 고흐는 순수한 상태의 색깔이 창조해내는 암시를 통해 도달하였다. 피에르 프랑카스텔(Pierre Francastel)은 19세기 말 조형공간의 변혁에 있어서 반 고흐는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가라고 하였다. 초록과 빨강으로 반 고흐는 인간의 격렬한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푸른색의 비교할 수 없는 신선함"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태양을 사랑한 이 화가에게 있어서 근원적인 색채는 노란 색이었다. 아를의 그의 집 색깔도, 그가 선호했던 꽃의 색깔도 노란색이었다. 그가 최초로 자살을 기도하였을 때 그는 상당수의 물감을, 특히 크롬계 노란색 튜브의 물감들을 삼켰었다. 각 색깔들이 그 상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검정은 천국의 색이며, 빨강은 지옥의 색, 초록은 중재와 생명의 색, 노란색은 고귀한 색일 것이다.

  글쓴이 : 카를린느 드 빼스로우앙   Source : 월간 미술

     

 

소외된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글쓴이 : G. 알베르 오리에
Source : 반 고흐;태양의 화가 (시공사)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G. 알베르 오리에가 빈센트를 처음 만났던 곳은 1890년 빈센트의 동생 아파트였고, 빈센트의 그림에 깊은 감동을 받은 그는 그로부터 6개월 후, 1890년 1월 《메르큐레 드 프랑스》라는 잡지 첫 번째 호에 〈소외된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라는 글을 게재했다.


때로는 사파이어처럼 눈부시고, 때로는 뜨거운 태양열의 주조해 내는 금속과 크리스탈과 같은 구름이 있는 하늘 아래에서, 금과 다이아몬드, 진귀한 옥이 용광로에서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분출해 넘실거리며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는 장엄한 빛의 효과 아래서 쉬지 않고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이 펼쳐진다. 그 모습은 한순간 완전하게 현실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자연적이며 과장된 자연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는 존재, 사물, 그림자와 빛, 형태 그리고 색채가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열광적인 의지와 함께 솟구쳐 오르다가 더욱더 강해지면서 가장 밀도가 강하고 불과 같이 고조되면서 소리 높여 자신의 본질을 노래하는 것이다. 싸움터의 거인처럼 꼬여 있는 나무들, 옹이가 위협적으로 보이는 가지들 그리고 녹색 갈기를 흔드는 불굴의 힘, 피처럼 끓어오르는 활력, 폭풍처럼 가혹한 자연에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실편백나무는 악몽과도 같은 검은 색의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다. 산은 매머드, 무소의 등이나 활처럼 휘어져 있다. 백색과 금빛은 처녀의 이상적인 꿈처럼 보인다.

집도 환희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생각하는 것처럼 격정적으로 일그러져 있다. 돌, 대지, 나뭇가지, 초원으로 덮여 있는 들판, 정원 그리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광천수가 스며 있는 강은 윤기가 나고 희미한 빛을 발하는가 하면 무지개 빛을 내기도 하면서 황홀감을 불러일으켜 준다. 나뭇잎은 고대청동, 말끔한 유리, 실유리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화단의 꽃도 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루비, 마노, 에메랄드, 광옥, 자수정으로 만든 것 같다. 만물이 우주적이고, 광기어리고 또 눈이 멀 것 같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모든 것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며 열광적으로 뒤틀리면서 격정의 정점에까지 올라간다. 그것은 악몽이 되어가고 있는 형상이다. 색채, 불길이 되고, 용암, 그리고 값비싼 돌이 되는 것이다. 빛은 큰 불로 변화된다. 삶은 열기가 된다. 이와 같은 느낌들이 같은 네덜란인으로 과거 오래 전의 거장들에 비해 손색이 없는 후손인 반 고흐의 낯설고, 격정적이며, 열광적인 작품을 처음으로 대했을 때 망막에 남아 있는 인상이다.

아!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과거 네덜란드의 그토록 건전하고, 훌륭하게 균형이 잡히고, 전통적인 위대한 작품과 얼마나 거리가 먼 작품들인가? 드 휴, 반 데르 미어, 반 데르 헤이덴의 작품들 그리고 조금은 부르주아적이며, 인내심을 가지고 세밀하게 그린 그림, 무기력하게 지나칠 정도로 마무리 작업에 공을 들이고, 섬세하게 정확성을 드러내는 그림들과 얼마나 거리감이 느껴지는가! 반 오르타데, 포터, 반 고엔, 루이스다엘 호베마의 그림처럼 절제되고,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오랜 시간 부드러운 색조, 요컨대 회색과 희미한 안개색조 등으로 보기 좋게 묘사한 그림들과 얼마나 거리감이 느껴지는가!

그러면서도 빈센트는 선배 화가처럼 오류를 용납하지 않고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으로 간혹 발생하는 법칙에는 불복종했다.

그는 뛰어난 동족과 같이 현실주의자,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에밀 졸라는 자연주의를 "성격을 통해 보여진 자연"이라고 정의했다.

그것이 "성격을 통해" 혹은 주관적인 통일성이 의문을 복잡하게 만들고 또 화가의 성실성을 가늠하는 기준을 무색하게 만들면서 객관적인 다양성 속으로 스며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평론가는 기준을 설정함에 있어 조금은 가설적인 측면을 제기하고 결론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 작품의 경우, 낯설다는 이유 때문에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려 가기도 하지만, 선입견에 젖어 있지 않고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빈센트의 작품 속에 스며 있는 순진할 정도로 깊은 진실성, 화가의 독특한 시각에 부정하거나 의문을 제가하기가 쉽지 않다. 훌륭한 믿음이라는 향기로운 품격, 그의 모든 그림에서 배어 나오는 독자적인 진실성, 주제의 선택, 가장 과도한 색조, 특징에 대한 한결 같은 연구, 사물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부단한 추구, 작가의 심오함과 어린아이와 같은 성실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의미심장한 세밀한 부분들, 자연과 진실에 대한 그의 위대한 사랑, 이 모든 것이 끊임없이 조화를 이루면서 그만이 지닌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반 고흐의 작품 자체에서 인간 아니 한 사람의 화가로서 지니고 있던 그의 개성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빈센트의 작품의 특성은 대체로 지나친 힘, 지나친 신경과민, 과격한 표현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사물에 대해 내리는 맹목적인 단정, 종종 발견되는 과감하게 단순화된 형태, 태양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오만함, 스케치와 채색작업에서 볼 수 있는 격정적인 열정, 가장 사소한 부분에서도 드러나는 강렬한 형상과 형태, 그것은 남성적이며, 과감하고, 매우 자주 야수성을 담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이 그지없이 섬세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특징들과 사물의 현실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빈센트 반 고흐의 깊고 복잡하며 또 확연하게 드러나는 예술성을 특징지어 표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모든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빈센트도 물질적인 현실, 그러한 현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더욱더 자주 그러한 현실이 지니고 있는 매혹적인 면이 사고의 형태를 바꾸어 주는 뛰어난 언어가 될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상징주의자였기에 계속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확하고 무게가 있으며 만져서 지각할 수 있는 옷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거의 모든 캔버스에서 하나의 아이디어, 작품의 본질과 동시에 효과적인 마지막 근거를 발견할 수가 있다. 색채와 선으로 이어진 찬란하게 빛나는 교향곡, 화가들에게 그러한 것들이 작품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든 간에 그것들은 단지 표현을 위한 수단이며 단순화하는 방법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처럼 자연주의자의 예술 저변에 배어 있는 진정으로 이상적인 경향을 부정해 버린다면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작품의 큰 부분은 전혀 이해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씨를 뿌리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의 모습을 어떻게 그처럼 당당하고 수선스러우며 야성적일 정도로 빛나는 이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묘사할 수 있었겠는가?

빈센트는 항상 그들의 윤곽, 몸짓 그리고 그들의 힘든 일에 매혹당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석양 무렵의 불그스레한 하늘 아래서, 때로는 활활 타오르는 정오의 금빛 대지 한가운데 있는 그들의 모습을 쉼없이 그리게 했던 것이다. 우둔하고 산업지상주의에 젖어 있는 우리들의 속성이 망령처럼 그를 따라 다니며 괴롭혔던 고정관념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의 <씨뿌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섬세하면서도 영광스런 태양신화와 연관된 이야기에 대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집착을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하늘에서 빛을 발하는 둥그런 태양, 그가 반복적으로 쉼 없이 편집광적으로 그려내던 화려한 해바라기들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도덕군자들에겐 화나는 일이지만 꽃은 식물의 성기이다. 그 곳에는 우선 중앙에 놓여진 암술들이 있다. 암술은 끈적끈적한 주두柱頭를 높이 뻗치고 있는데, 작은 공이나 혹은 불룩한 모양의 주두들이 꽃가루를 받아들인다. 

암술을 빙 둘러서 무리지어 있는 것이 수꽃술들이다. 수술의 작은 머리들은 수술대 위에 얹혀있다. 꽃가루(화분)를 갖고 있는 것은 수술이다. 꽃가루는, 배주들로 하여금 수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많은 작은 화분들로 이뤄져 있다. 다시 말해 린네는 화분花粉을 인간의 정액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꽃가루 주머니를 남성의 성기부분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스웨덴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는 꽃을 인간과 비교했는데, 그의 동료 대부분이 분리하고 싶어하는 것을 그 자신은 혼합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식물의 생식기를 황홀하게 관찰한다. 동물의 생식기라면 혐오감을 가지고, 우리 인간의 생식기라면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바라볼 것이다”라고 그는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니 바로 그 때문에? - 그는 꽃을 침대로 묘사했다. 엄격한 도덕률의 시대에 린네는 암술 여자들과 수술 남자들이 이 꽃침대에서 결혼한 것이라고 소개했던 것이다.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잔네 파울젠 지음/김숙희 옮김/이은주 감수 중에서

 

                        친구가 찍어준 학소도의 나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