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오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풀 무더기를 한 평만 떼어다 교도소 운동장으로 옮겨 놓을 수만 있다면……그럴 수만 있다면 운동시간 내내 그 풀밭에 머리를 박고 지낼 수 있을 텐데……”

몇 달 전 초등학교 친구 태희가 황대권씨의 <야생초 편지>를 선물해 주었다. 회사를 시작한 이후로는 이래저래 정신적인 여유를 찾지 못해 독서를 게을리했던 게 사실이다. 가끔 주말에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전에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을 뒤적이기는 해도 새책을 살 생각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은 친구의 선물인지라 침대 머리맡에 놓고 자기 전에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나의 사고와 기억은 한편으론 책 안의 단어들과 학소도의 정원을, 다른 한편으론 그 단어들이 그려내는 상황과 과거 내가 여행하던 상황을 분주하게 왕복하고 있었다.

저자의 그 한 평의 간절함은 구십 평의 학소도 정원과 텃밭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문득 잡초야생초가 되었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풀들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며느리밑씻개, 달개비, 명아주, 쇠비름, 씀바귀, 까막중, 질경이, 민들레, 강아지풀, 닭의덩굴, 방가지똥, 왕고들빼기……정돈 안된 것같이 보이던 정원이 자연의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내가 직접 심은 나무와 꽃과 허브 외에도 이제는 야생으로 자라는 식물을 관찰하느라 허리를 더 자주 굽히게 되었다. 작년에 친구 안지영이 선물해준 <약이 되는 우리 풀, 꽃, 나무> 두 권도 다시 꺼내 읽으며, 풀잎 하나를 내 몸처럼 사랑하자. 풀잎 하나의 이름을 외우고 풀잎 하나의 생김새를 알며 풀잎 하나의 신비로움을 배우자. 우리는 결국 아는 것만큼 사랑할 수 있다라는 저자 최진규씨의 외침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 모두가 반가운 일이고 즐거운 일이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새로운 세계의 유혹에 기분 좋게 빠져들고 있는 나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야생초 편지> 속으로 돌어가면 나는 다시 부끄럽고 미안해지지만 말이다.

한 평 공간의 교도소 방에서 편지를 쓰는 저자를 상상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전에 한창 지구 위를 여행하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초점은 갇혀 있는 저자와 자유로운 나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와 나의 고립, 그리고 그 고립 속에서 세상을 관찰하는 두 사람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한 사람은 나무와 같이 교도소 방 한자리에, 다른 한 사람은 철새처럼 지구를 떠도는데 공통된 모습이라니?

나는 지구 위 하나의 점 안에 있다. 세계지도 위에 그려진 북아프리카 어느 지역에 바늘구멍보다도 훨씬 더 작은 공간 안에 앉아있다. 버스는 만원이고 승객들은 평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대화를 하거나 졸고 있거나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옆좌석에 앉아 있는 남자가 이집트어로 말을 걸어온다.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나는 그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나는 그 이집트인의 얼굴표정을 관찰한다. 나의 관찰은 그의 얼굴, 눈과 코와 입, 주름살과 머리카락, 그가 입고 있는 옷, 손과 손톱에 끼어 있는 떼, 신발 사이로 드러난 발로 이어진다. 그리고 문득 나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있다. 나의 손과 손톱을 보고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다. 어느 순간 나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면서 잊고 싶은 기억과 씨름하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껴안으려고 애를 쓴다. 나의 시선은 다시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나일강과 나일강변의 농촌에 가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일상을 탈출해 멀리 도망가듯이 오지로 떠나는 여행은 여행자를 낯선 환경에 고립시킨다. 여행은 그를 긴장시키고, 문득 주위의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어서 그래서 두렵기까지 해서 결국, 가장 친숙한 자신에게로 도피하게 만든다. 단순한 호기심이 그를 새로운 환경에 잠시 몰입하게 만들지만, 머지않아 그의 더듬이들이 지쳐오면 여행자는 자신 안에서 안식처를 찾게 된다. 그래서 홀로 떠나는 여행다운 여행은 여행자를 철학자로 만드는 것이다.

교도소 방에 고립되어 있는 수감자와 낯선 세계 속에 고립되어 있는 여행자는, 너무나 대조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통되게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게 된다. 아니 몰입을 강요받는다.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함과 동시에 철학자가 된다.

황대권씨의 <야생초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여행길에서 집으로 부친 수많은 편지와 엽서들을 언젠가 찬찬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밴쿠버 중우형님의 낚시하는 모습

안수진 작가의 <착한 도깨비>

충돌과 조화의 미학을 찍는다
<정사> <순애보> <스캔들…>의 감독 이재용을 구성하는 7가지 키워드

1. 코스모폴리타니즘

‘이재용 스타일’에 어떤 기저처럼 깔려 있는 것이 코스모폴리타니즘이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조선시대 사대부와 처자들이 아무리 휘젓고 다녀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게 <스캔들…> 풍경이다. 바로크 음악과 사극의 양식미라는 이질적 요소가 충돌해 이토록 어울릴 수 있다는 건 정말 이상하다. 가채를 뒤집어쓴 상류층 부인네들의 방 안에 서양 망원경과 시계가 툭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다. 무엇보다 <스캔들…>은 비슷한 시기, 지구 반대편의 서양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한 원작을 꼭 찍어 그대로 옮겨왔음에도 수입품이란 티가 잘 나지 않는다. 각본·연출은 물론 편집까지 도맡아 개인적 취향을 가장 잘 드러낸 <순애보>는 같은 시간, 다른 나라의 다른 도시에 살지만 결국은 다르지 않는 조건을 사는 한국과 일본 젊은이의 일상을 대차대조표처럼 보여줬다. 일본에서 일본의 배우들과 찍은 <순애보>의 반쪽은 마치 일본인 감독이 연출한 것처럼 일본 안에 푹 젖어 있는 느낌이다. 이국적 취향은 세 영화의 결말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주인공들이 <정사>에서 브라질의 리우로, <순애보>에선 알래스카로, <스캔들…>에선 연경으로 떠나가 버린다.

감독의 말 >> “프랑스 원작소설로 <스캔들…>을 만들기로 하고 우리의 옛 좌식문화를 조사하면서 애초 구상을 우아하게 그려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예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서 그곳 문화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어볼까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대주의라는 오해는 하지 말아주길. 확실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내 인생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영화는 백일몽처럼 나를 세상 모든 곳에 데려다주었다(심지어 그는 중학생 때 영화에 등장한 뉴욕 거리가 아주 익숙해 뉴욕 지하철을 어떻게 타면 되는지 감이 잡힐 정도였다). 내 삶을 보면 고향인 유성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한국 밖으로 끊임없이 떠나고 있다. 떠난다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정사>에서 서현(이미숙)이 브라질로 떠나는 건 어항 속에 갇혀 살던 여자가 스스로 새로운 자아를 찾아 자기 삶을 살기 시작하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늘 양가감정이 있다. 브라질은 원시적인 낙원의 이미지가 있지만 동시에 병들고 가난한 저개발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다. 알래스카는 순수하고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지만 유린네이션이란 포르노 사이트가 만들어지는 곳이고 알코올중독의 원주민이 수

2. 이성주의 vs 감성주의

우연찮게도 <스캔들…>과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는 한 여인네가 겨울 호수의 빙판 아래로 빠져죽는 장면이 나온다. 기구한 운명에 휩싸인 여인네를 삼켜버린 얼음 구덩이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클로즈업도 비슷하게 배치돼 있다. 그러나 두 얼음 구덩이의 느낌은 다르다. 김기덕의 얼음 구덩이는 욕망의 슬픈 운명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투박한 즉물성의 이미지다. 이재용의 얼음 구덩이는 그 드라마적 기능은 같되 비할 데 없이 탐미적이다. 여인네가 고이 간직했던 붉은색 목도리는 눈과 얼음의 차디찬 흰빛과 곱게 대비를 이룬다. 또 목숨을 빨아들인 구덩이에 떠 있는 얼음 조각들에는 곱고 투명한 얼음 결정체가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처연한 운명과 예쁘고 고운 이미지의 충돌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순애보>에서 잠시 멈칫거렸을 뿐, <정사>와 <스캔들…>은 현란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결코 방정맞거나 과장스런 기교로 빠져들지 않는다. 늘 멈춰 있는 듯 조용히 움직인다. <정사>의 숨막힐 듯한 미장센의 미학은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미술에만 20억원을 들여 ‘스타일리시한 사극’의 본때를 보여주는 듯한 <스캔들…> 역시 화려하되 침착하다. 이미지가 드라마를 압도하지 않고 드라마가 이미지에 대한 미적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런 이재용 스타일은 감성적으로 다가오지만 그 감성이 이성으로 단단히 제어되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재용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계몽군주’로 불린다(대부분의 감독이 모든 걸 자기 중심적으로 처리한다는 점에서 ‘왕자’로 불리는 것과 비교해). 모든 스탭이 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맡은 바 일을 각자 완벽하게 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주의·주장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배려깊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감독의 말 >> “스타일 있는 감독이란 개념이 왕가위나 라스 폰 트리에처럼 기교 넘치는 현란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나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디테일을 꼼꼼히 계산하면서도 그것이 내용과 얼마나 부합되는가부터 본다. 카메라가 왜 그렇게 움직여야 하는지 나 스스로 설득할 수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다. 내 머릿속의 그림이 그대로 다 드러나길 바라지만 전체의 흐름이 먼저다. 큰 왜곡보다 안정되고 균형미를 이룬 미장센을 좋아해서 핸드헬드조차 써본 적이 별로 없다. 내 기본 성향은 미화보다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에 있다. 얼음 구덩이 장면에서도 사람이 빠졌을 때 어떻게 빠졌을까부터 연구하자는 주의다. 그런데도 그 얼음 구덩이가 미학적으로 느껴진다면 내가 워낙 예쁘고 아름다운 걸 좋아한 결과일 거다.”

3. 전복성 vs 판타지

그의 영화는 한결같이 성(性)스러우면서 성(聖)스럽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섹스라는 소재는 예상 밖의 공간과 상황, 관계에서 등장한다. 먼저 유사 근친상간. <정사>에서 서현과 지현 자매는 우인과 차례로 관계를 가졌을 것이고, <스캔들…>에서 사촌지간인 조원(배용준)과 조씨 부인(이미숙)은 만나기만 하면 섹스를 공모하고 기약한다. <정사>에서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제사를 지내는 동안 며느리는 집을 빠져나와 공공장소인 오락실에서 동생의 약혼자와 에로틱한 정사를 벌인다. 엄숙함에 대한 전복적 도전은 <스캔들…>에서 똑같이 차용된다. 사돈댁 사당에서 엄숙한 제의가 치러지는 동안 별채에선 기생과 질펀한 놀음을 벌인다. <스캔들…>에서 조원과 숙부인(전도연)이 환희에 차 벌이는 정사신은 비록 전신 노출이지만 지극히 교과서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싱거울 지경이다. 이재용 스타일이 빛을 발하는 건 아무리 변태스런 설정을 해놓아도 그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순애보>에서 우인이 동사무소 안에서 또 공공 화장실에서 아주 이상한 짓을 해도, 아야가 포르노 사이트에서 어떤 아르바이트를 해도, 아야의 동생이 그런 누이의 몸을 관음해도, 아야의 어머니가 스와핑을 시도해도 그건 비정상의 행위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전복성 속에 사랑의 판타지가 꼭 끼어든다. <정사>의 서현은 안락한 중산층의 삶을 버리고 동생의 애인과 먼 타향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이뤘을 것 같다. <순애보>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래스카에서 만난 우인과 아야는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들은 애뜻한 순애보를 써내려갔을 것이다. <스캔들…>에서 조씨 부인과 조원은 유혹과 배신의 험난한 게임을 헤치고 사랑의 완성을 이뤄내고야 말았다.

전복성과 판타지가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건 양쪽 모두 딱 그럼직할 정도만 존재하도록 배치하는 솜씨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않는 중용과 절제는 이재용 스타일의 또 다른 키워드다.

감독의 말 >> “사실 엄숙함을 잘 못 견딘다. 엄숙함은 감정이입이나 몰입이 돼야 가능하다. 예컨대 교회나 절에서 기도하는 게 나에겐 불가능하다. 몰입이 안 되고 자꾸 거리감을 두게 된다. 이런 성향 때문에 경건한 제사와 아주 사적인 혹은 금기적인 섹스를 대비시키고 충돌시키는 걸 좋아하는 건지 모른다. 또 사랑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완벽한 그 무엇이 있을 거란 판타지를 갖고 있지만 그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에 대해서는 회의하는 편이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고 결론내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단정짓는 것을 늘 유보한다. <정사>의 엔딩도 상업영화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끝냈을지 모른다. 브루클린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이정재가 담배를 피우고 있고, 카메라가 그 위로 올라가면 이미숙이 백인 남자 밑에 누워 있는 거다. 행복은 약속될 수 없다. 다만 있을 수 있다는 것뿐이다.”

4. 부르주아 vs 보헤미안

이재용 감독은 “사람이 왜 이런데?” 하는 질문을 받으면 “충청도 중산층 출신이라서 그래”라고 농담처럼 대꾸하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영화에는 구질구질한 인생이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넉넉한 부르주아들이다. <정사>와 <스캔들…>의 등장인물들은 시대만 달랐지 서로 조응할 만한 상류층이다. <순애보>에서 우인은 비록 동사무소의 말단 직원이지만 아버지 재산 덕에 적어도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모두 부르주아이지만 동시에 보헤미안이다. 비극적으로 뒤얽힌 사랑 때문이건 남루한 일상이 지겨워서건 그들은 한곳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한다. <스캔들…>의 조원이 문무에 능하나 출세에 뜻이 없고 유희를 찾아 즐기는 것도 이런 별스런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르주아를 중심에 세우지만 프롤레타리아를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순애보>에서 삼류 댄서로 살면서 미혼모가 되는 리에나 불법체류자 아랍인 네마자데는 조금도 기죽어 있지 않다. 심지어 게이오대학을 다니는 척하는 스포츠센터 청년은 딸과 아내가 있는 어엿한 가장이자 포르노 배우다. 비난의 빛은 조금도 없다.


감독의 말 >> “한창 영화를 고민할 때가 80년대였다. 어떤 영화를 해야 할지 고민할 때 나는 내가 아닌 걸 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모르는 걸 할 수도 없었다. 내가 하려는 건 다 하찮아 보이던 시대였다. 그래서 영화를 그만두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안주하지는 말되 솔직해지기로 했다.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의 <시골에서의 일요일>을 아주 좋게 봤는데, 어디선가 ‘프티 부르주아 리얼리즘의 대가’라는 소개말을 읽었다. 그게 힘이 됐다. 내가 중산층 출신인 건 맞지만 상류층과 하류층 그 어느 곳에도 속했던 적은 없고 변방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사실 내 영화에 상류층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정사>의 처음 컨셉은 청담동 사는 부인이 아니라 은행의 부장급 아내 정도였다. 그런데 소재가 불륜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아주 좋아하지만 이런 구도로는 그 범위를 벗어나기 힘들어 보였다. 추석특선영화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같은 걸 만들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미숙과 이정재라는 스타를 데리고 말이다. 그래서 판타지로 가되 객관적인 거리두기를 하기로 했다. 환상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남의 사랑놀음을 보며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말이다. <스캔들…>도 마찬가지다. 왕실 이야기는 TV에서 넘쳐나고, 토속 에로물도 그동안 수없이 만들어졌다. 다뤄지지 않은 게 사대부 문화에 대한 것이었다.”

5. 클래식 vs 트렌디(혹은 근본주의 vs 키치)

“10년 뒤에 봐도 세련된 느낌이 남는 영화를 만들자”는 게 <정사> 이후 일관되게 유지해온 이재용 스타일의 공식 노선이다. 클래식한 영화가 되고자 하는 소망이다. 그는 또 상업영화의 장르 안에서 익숙한 소재들(<정사>의 불륜, <순애보>의 일상성, <스캔들…>의 사극)을 안고 가면서 자기 식으로 비틀어대는 걸 즐긴다. 멜로나 사극 같은 장르만큼 클래식한 것이 있을까. 자기식 변용에서 끼어드는 게 트렌디한 쿨한 감성이다. <스캔들…>에서 조원이 가슴아리게 숨을 거둘 때, 그의 손발이 되어온 자근노미가 중얼거린다. “양반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데 이렇게 값어치없게 죽나!” 이건 재치있는 농담이지만 멜로의 절정을 완성하는 긴요한 시점에서 분위기를 깨는 결정적 대사가 될 수 있다. 제작사 내부에서 논란이 일었지만 감독은 밀어붙였고, 시사회에서 20대 중·후반의 젊은 여성들이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클래식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서 <순애보>에선 키치적 감성으로 작품 전체를 은근히 감쌌다.


감독의 말 >> “섣부른 퓨전이나 트렌디를 하기보다 근본을 잘하자, 클래식을 잘하자는 주의다. 유행에 관심이 많고 그걸 즐기기도 하지만 내 것으로 선택하고 사야 하는 시점에선 결국 클래식하고 베이식한 걸 고르게 된다. 사실 난 존 워터스나 알모도바르의 초창기 영화 같은 키치하고 펑키한 영화를 좋아하고 그런 걸 만들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키치적인 게 주류가 돼버리면서 흥미를 잃게 됐다. 조폭영화가 유행하면서 양아치라는 걸 지나치게 자랑하고 드러내는 데 거부감이 일었다. 뭐든 관습화되고 주류가 되면 일단 싫어지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스캔들…>의 음악도 대금이나 국악을 싫어해서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이 대목에선 이렇게 쓰는 게 정석처럼 통용되는 게 싫었다. 포장마차 메뉴가 어딜 가나 똑같은 것도 난 싫다. <바람난 가족>을 아주 재밌게 봤는데 시니컬하기가 10배쯤은 더할 영화가 토드 헤인즈의 <해피니스>(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 솔론즈의 <해피니스>임. 확인!!!)일 거다. 세상을 혐오하게 만드는 이런 영화를 재밌게 즐기는 편이지만 내가 만들어 보여준다는 것에는 회의가 든다. 쿨한 감성이 내 취향이긴 하나 이른바 ‘쿨한 영화’로 불리는 걸 만들기는 싫다. 그래서 내 영화에 신파적 요소가 자꾸 끼어드는 건가?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다 모아놓으면 <아멜리에> 같은 영화가 될 것 같다. 모든 캐릭터가 약간 병적이며 신경증적이지만 귀여운.”

6. 자기 페르소나와 거리 유지

<정사>와 <순애보>에서 같은 이름으로 등장하는 우인은 이재용의 페르소나일 것이다. <정사>에서 우인의 세련된 겉모습에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지만 내면을 드러내는 표정은 어떤 결핍감에 시달려 보인다. 정상적인 듯하나 약간 고장난 상태다. <순애보>에서는 우인을 확실히 고장난 상태로 만든다. 마비된 새끼손가락이 상징하듯 ‘거세된 남자’이고 스스로를 외부세계와 시종일관 차단시킨다. 이렇게 어딘가 고장났고 폐쇄적이지만 우인은 숨어 있는 열정을 발산시키려는 욕망을 갖고 있고, 그런 기회를 만나면 서슴없이 폭발시켜버린다. 특이한 건 이재용 감독이 자기 페르소나를 편애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정사>에서 쿨한 감성은 우인의 몫이 아니라 그의 ‘경쟁자’인 서현의 남편(송영창)일 것이다. 우인이 그에게 “행복하십니까”라고 묻자 남편이 답한다. “행복이 별거야? 저 수족관을 봐. 물결은 잔잔하고 온도 딱 맞고, 먹을 건 언제든지 계속 공급되고, 아무 걱정없이 설렁거리며 헤엄만 치는 것. 그게 행복 아닌가.” 쓸쓸하기는 해도 비난할 수 없는 현실감각이다. 남편은 서현의 외도를 알면서도 굳이 캐묻지 않는다. <정사>는 남편을 지리멸렬하게 그리지도 않았고 위기의 원인을 그에게 돌리지도 않았다. 이재용 감독의 ‘관조적 쿨함’은 이렇게 고루 분산돼 있다. <스캔들…>의 조원이 이재용의 페르소나는 아니겠으나 우인보다 훨씬 거리를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조원은 대범하면서 야비하고, 악하면서 선하다. 이재용 감독은 거꾸로 캐릭터의 이런 이중성에 더 애정을 품고 있는 듯하다.

감독의 말 >> “배우의 얼굴이 너무 진하고 극적이면 부담스러워서 싫다. 평범한 듯한데 뭔가를 감춘 듯한 사람의 얼굴을 한 배우가 좋다. 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할 것이다. 그런데 한명한명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선악 같은 어떤 도식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기란 힘들다. 평범한 듯한데 변태일 수 있다. 그래서 배우도 아주 드라마틱하기보다 살짝 변용이 가능한 친구가 좋다. 이정재는 평범한 듯한데 섹시하고 배용준은 부드러운 듯하지만 안경을 벗으면 매섭고, 단호하며, 야비한 느낌까지 들어서 좋다. 난 내 캐릭터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는 있어도 편들고 싶지는 않다. 나 자신에 대해 가혹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단죄하지도 못한다. <스캔들…>의 원작에서 조씨 부인은 악인으로서 결국 벌을 받고 병들어서 야반도주한다. 내 작품에선 그렇게 못했다. <정사>의 서현도 내가 단죄할 수는 없었다. 인간이 지닌 삶의 무게는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나는 건 아니지만 인간적 고뇌에 관한 한 평등하지 않을까.”

7. 디테일 vs 유머

이재용 감독처럼 촬영현장에서 말이 없는 연출자도 드물 것이다. 스탭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다(술자리에서도 도통 말이 없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왜 이렇게 말이 없으세요” 하면 “제가 보이나요?” 하고 되묻는 ‘유머’를 구사한다. 그는 투명인간이 돼 보이지 않는 관찰자가 되고 싶을 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디테일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스타일리스트의 기본은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 이야기의 맥락과 전후관계, 왜 저 캐릭터가 이 상황에서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지 논리와 상상으로 충분히 납득이 돼야만 한다. 그의 유머감각은 정교하게 설계한 상황의 아이러니에서도 나오지만 한두번 봐서는 찾기 어려운 디테일로 드러나기도 한다. 감독만이 알고 있을 디테일과 유머를 들어보자.

감독의 말 >> “<순애보>에서 아야가 가는 사진스튜디오(실은 포르노 사이트 업체)의 이름이 ‘벨 드 쥬르’(나팔꽃)다. 이건 루이스 브뉘엘 영화에서 따왔다. 성적 리비도에 억압돼 있는 카트린 드뇌브가 남편 친구로부터 고급 매춘업소에 대한 정보를 듣고는 낮에만 몸을 파는 여자가 된다. 그곳에서 지어준 이름이 낮에 피는 꽃이란 뜻의 ‘벨 드 쥬르’다. <순애보>에서도 아야가 ‘아침에 와서 (사진을 찍어도) 좋아요’라고 하자 아침 조(朝)가 들어간 아사코란 예명을 지어준다. 아사코의 머리 모양과 옷은 <비브르 사비>의 ‘나나’ 스타일을 옮겨왔다(안나 카리나가 연기한 나나는 매춘부다). <스캔들…>에서 첫 음악이 불협화음처럼 들려오는데 그건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앞두고 악기의 줄을 맞추는 듯한 효과를 염두에 두고 넣었다.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감상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지 않는가. 조원이 춘화를 그릴 때마다 낙관을 찍는데, 자세히 보면 그 호가 ‘발몽’이다(같은 원작을 영화화한 밀로스 포먼의 작품 이름). 춘화도 자세히 보면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을 짜깁기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조씨 부인과 한담을 즐기는 대갓집 마나님들의 이름이 허씨 부인, 오씨 부인 등인데 모두 내가 좋아하는 허진호 감독, 오정완 영화사 봄 대표 이름에서 따왔다. 하하.”

<씨네 21> 글 이성욱 lewook@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편집 권은주

백무현 화백

 

-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