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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의 모든 생물들이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듯이 인간도 땅으로 돌아간다. 땅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죽어서 산으로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산길들이 그렇듯이 히말라야의 길들 역시 평탄하지 않다. 히말라야의 길들은 어느 것 하나 순한 게 없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계곡을 따라서 형성된 길들은 문명의 접근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과 야크가 겨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닐 수 있는 이 길들은 만년설 지대를 향해 뻗어 있는데, 그 자체가 아름답다. 문명세계를 벗어나서 이 길로 접어들 때마다 나는 내 몸 안의 모든 기공들이 한꺼번에 열리면서 움츠러들었던 세포조직들이 하나둘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 길을 걸어갈 때 나는 깊은 숨을 쉴 수 있었고, 행복했다. 대자연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 인간과 야크가 함께 다닐 수 있는 길들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문명세계와 문명세계를 잇는 길들은 정상을 넘지 못했다. 히말라야에서 문명세계와 닿아 있는 길들은 대부분 베이스캠프 언저리에서 끊겼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 길 끝에 다다를 때마다 모든 것은 막막했고, 흰 산들이 언제나 그 막막함을 대신했다. 흰 산들을 보고 있으면 때론 죽음에 대한 공포가 꿈속까지 덮쳐왔다. 하지만 그 흰 산을 향해서 나는 끊임없이 길 없는 길을 나섰다.

- 엄홍길

 

나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알고 싶고 또 새롭게 느끼고 싶다.

- 라이홀트 메스너

 

긴 세월을 평범하게 살며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저 높은 곳에서는 한 달 사이에 체험한다.

- 예지 쿠쿠츠카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히말라야 탱크 엄홍길 14좌 환등 신화> 엄홍길 지음/이레 출판 중에서

지난주 오랜만에 반가운 책을 한 권 만났다. 한국의 대표적인 산악인 엄홍길이 쓴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연말의 들뜬 분위기로부터 잠시 도피하고자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몇 권 주문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손이간 책이 바로 엄홍길씨의 히말라야 14좌 환등 신화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막 겨울에 들어서면서 벌써부터 몸이 움추려지는 것 같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추위를 잊고 <도전>이란 화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옛생각도 많이 났다.

1988년 봄, 그러니까 벌써 15년 전에 나는 5주간 히말라야를 등반한 적이있다. 엄홍길씨의 책에도 나오는 <풍요의 신> 안나푸르나(8091미터)를 바라보며 해발 5,500미터의 토롱고개(Thorong La)를 넘었던 기억이 지금도 머리속에서 생생하게 재연된다. 나는 사실 네팔에 등반을 하러간 게 아니었다. 부처님이 태어나셨다는 룸비니동산을 찾아보고 잠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잠시 머물다 다음 여행지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수도 시내에서 올려다보이는 만년설 덮인 히말라야가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그냥 그대로 네팔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즉흥적으로 카트만두 시내에 즐비해있는 등산용품가게에 들어가 등산화를 비롯해 중고 장비를 구입했다. 그리고 곧장 등반지도를 손에 쥐고 안나푸르나를 향해 걸었다. 짐을 날아줄 포터도 길을 알내해줄 셰르파도 없이 단신 혼자 그 장대한 산을 향해 등반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무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때 내 나이 21살이었으니.....그렇게 열흘인가를 혼자 걸었다. 잠과 식사는 한나절에 하나씩 나타나는 작은 마을에서 민박을 하며 해결했다. 해발 1000미터, 2000미터, 3000미터, 숨이 가프고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 몇 시간 동안 단 한사람도 마주치지 않는 경우도 여러날 있었다. 입고 있는 속옷이 땀에 흠뿍 젖으면,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젖은 옷은 배낭 위에서 말렸다. 시냇물로 갈증을 해소하고, 식사는 민박집에서 주는 달바트 즉, 밥과 감자, 꽁 등으로 해결했다. 가끔 야생동물이나 산적(실제로 당시 히말라야 산속 깊은 곳에서 외국 등산객을 살해하고 금품을 강탈하는 사고가 종종 있었다)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왔지만, 금방 잊고 발길을 재촉했다. 한번은 등산을 하던 중 오전에 내리던 부슬비가 오후에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히말라야의 봄은 대게 날씨가 화창하고 아침과 낮의 기온차가 커서 낮에 등산할 때는 보통 T-Shirts를 입고 있었는데, 팔뚝에 눈이 내리면서 녹아 김이 모락모락 났다. 몸을 계속 움직이고 있어서, 몸에서 나는 열 때문에 눈이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는 순간 나는 얼어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해가지기 바로 전에 다음 민박집이 있는 마을에 도착한 적도 있다. 아무튼 운좋게 얼마후 독일 등반객들을 만나 함께 산을 계속 올랐고, 결국 혼자 카트만두를 떠난 지 3주 후 베이스캠프에서 3일 동안 고도에 적응을 마친 후 새벽 3시에 출발해 눈이 쌓여 형성된 해발 5,500미터의 토롱고개를 무사히 넘을 수 있었다.

정말 무모한 짓이었다. 지금 생각하도 아찔하니까. 나는 따뜻한 난로 앞에 앉아 자문해본다. 왜 나는 그때 그 산을 그렇게 오르고 싶었을까? 같은 질문이 엄홍길씨의 책에도 여러번 나온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철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때론 길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인지, 내가 길을 밀고 나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길은 멀었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길 위에서 몸 안의 기운들은 소진했다. 소진한 기운들이 길바닥에 버려질 때 삶에의 희망은 좀처럼 만져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마음속에서 일어섰다. 죽음의 공포에 질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인간은 많은 욕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산 앞에서 인간의 욕심은 무용지물이다. 산은 절대로, 자연은 절대로 욕심을 가지 인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산을 내려와서 산을 보면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산에 오르면 그곳엔 산이 없다." - 세 번째 등반에 실패한 안나푸르나에서 엄홍길

 

"나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알고 싶고 또 새롭게 느끼고 싶다."

- 라이홀트 메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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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설치한 장작난로

 

자상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난로와 연통을 설치할 수 있었다

나 어릴적엔

난로 위의 양은 도시락
- 이 기 표 / 자유기고가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골목 어귀에는 군밤과 군고구마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유혹하며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한다. 선홍색을 띠는 생고구마를 금새 까맣게 그을린 군고구마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기술을 가진 고구마통은 어릴 적 우리들의 양은도시락을 따뜻하게 지펴주던 '장작 난로'와 닮아있다. 내 장딴지만큼이나 굵은 장작개비를 삼키면서 뻘건 불과 함께 '타닥타닥' 괴성을 지르던 난로.

겨울방학이 되기 전까지 고학년 교실의 난로 위에는 항상 선생님의 예쁜 도시락 한 개와 여러 개의 양은도시락이 수북히 쌓여있었고, 그 옆에는 아이들의 발차기를 여기저기 견뎌낸 찌그러진 주전자가 보리차를 끓이고 있었다.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나도 난로의 참 맛(?)을 알게 되었다. 오후 수업을 하게 되면서 3년 동안 부러움으로 바라본 난로 위에서 싸늘하게 식은 도시락을 데워 먹을 수 있게 된 것. 2교시만 지나도 전혀 보온이 되지 않는 양은도시락 속의 밥은 이미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져 뱃속으로 넣기 힘든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3교시가 지나면 아이들의 도시락을 난로 위에 얹어두곤 하셨다. 처음 맛보는 즐거움이라 서로 먼저 도시락을 난로 위에 얹으려고 다투어 교실 앞으로 나가다 고꾸라지기도 하고 뜨거운 물주전자를 엎어 허벅지가 빨갛게 부어오르는 소동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사소한 다툼과 사건이 계속되자 선생님은 가위바위보 리그전으로 도시락을 놓는 순서를 정해 놓곤 하셨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도시락을 데워먹던 어느 날이었다. 유독 추위가 매서웠던 그 날은 커다란 장작을 낑낑거리며 여러 개를 넣었는데도 교실 안은 너무나 추웠다. 세찬 눈보라는 금방이라도 교실 창문을 창틀 위에서 떼 내어 떨어뜨릴 것처럼 덜커덕 거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 지 우리들은 무서움까지 견뎌내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그 날도 난로 위에는 우리의 도시락들이 빼곡이 올라 있었다. 억세게 운수가 대통이었는지 내 도시락은 맨 아래에 깔려 있었다. 한번도 맨 아래에 도시락을 놔 보지 않은 나는 '오늘 내 밥은 막 가마솥에서 나온 듯 따끈따끈 하겠지' 하는 기대 속에서 점심시간 종이 울리길 고대했다. 그러나 4교시가 다 끝나기도 전에 고소한 냄새가 감기 든 아이들의 막힌 코까지 자극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선생님이 낌새를 채고 부랴부랴 도시락을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츰 아래로 내려갈수록 양은도시락은 손으로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뜨거웠다. 선생님은 도시락을 내리려 애를 쓰시며 손에 감쌀 것을 찾느라 허둥거리셨다. 도시락이 맨 밑에 깔린 나는 그 광경에 발을 구르며 애타 했던 것 같다. 그러다 결국 빨간 내복으로 겹겹이 끼운 양말을 벗었다. 다른 아이들이 더럽다며 만류하는 것도 뿌리치고 뜨거운 도시락을 집어 던지다시피 하며 난로 옆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내 도시락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양말을 통해 전해지는 참기 어려운 열기를 견뎌냈다. 결국 형에게 물려받은 내 도시락은 더욱 일그러져 버렸고, 도시락 속의 밥은 까만 누룽지가 되어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 그 날 점심은 선생님의 맛있는 반찬이 든 도시락으로 정말 거하게 먹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그 날 어떤 점심을 드셨던 것일까? 이미 당시 선생님의 나이를 훌쩍 넘어선 지금, 쉰을 넘어 환갑을 바라보시는 선생님께 그 날 뒷얘기들을 슬쩍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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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감나무가 언제부터 재배되어 왔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우리나라 의 토박이 과수였슴이 분명하다.

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원종 때의 "농상 집"」에 있고 조선 성종 때의 「국조 오례」에는 감을 중추절의 제물로 사용한다 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부터 제례 때에 "조율이시, 홍동백서"라는 말로 감을 중히 여기고 애용하게 된 듯하다.

오랜 세월을 우리 인간과 함께 살아온 감나무를 칭찬 하는 글들이 옛 문헌에 나와 있다.

* 감나무의 칠절(七絶)

1 오래 살고(壽)  2 좋은 그늘을 만들며(多陰) 3 새가 집을 짓지 않고(無鳥巢) 4 벌레가 없으며(無蟲竇) 5 단풍이 아름답고(霜葉可玩) 6 열매가 먹음직스러우며(佳實可啖) 7 잎이 큼직하여 글씨를 쓸 수 있다(落葉肥大可以臨書)

* 감나무의 오상(五常)

1 잎이 종이가 된다 하여 문(文) 2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쓸수 있으니 무(武) 3 감의 겉과 속이 모두 똑같이 붉어 표리 부동하지 않아 충(忠) 4 노인이 치아가 없어도 먹을 수 있는 과일이므로 효(孝) 5 늦가을까지 남아 달려 있으므로 절(節)

* 감나무의 오색(五色)

1 목재의 검은색 2 잎의 푸른색 3 꽃의 노란색 4 열매의 붉은색 5 곶감의 흰색 온 세계에 분포한 감나무 속 식물은 백구십종쯤으로 열대와 아열대, 온대 지방에 자생한다.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 분포된 감나무들은 이용 가치가 거의 없고 과실 로서 재배 가치가 있는 것은 거의가 동북 아시아 지역의 한국, 중국, 일본에 분포 하고 있는 것뿐이다. 동양 과수로서 감나무는 가을을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인 나무이다. 익지 않은 떫은 감을 한입 베어 깨물면 떫은 맛으로 입안이 가득하게 된다. 이러한 떫은 맛은 탄닌이라고 하는 물질 때문인데 사람 혀의 점액 단백질을 응고 시킴으로써 느껴지는 오그라드는 맛을 말한다. 떫은 감을 달게 만들어 먹으려면 탄닌 물질을 제거하거나 녹지 않는 상태로 변화시켜야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감을 깎아 말려 만든 곶감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독특한 솜 씨와 미각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하겠다. 곶감은 저장하기도 좋고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기침, 딸꾹질, 숙취, 각혈이나 하 혈 같은 데에 좋아 민간약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다. 요즈음의 발달된 의학은 감이 혈압을 강하시키는데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있고, 감 잎에는 많은 비타민 C가 함유되어 있다고 하여 감 잎차를 상음하는 사람이 늘 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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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후박나무>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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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연합 내년부터 애완동물에게 여권 발급 시행

유럽연합(EU)은 27일 애완동물을 동반한 여행객들과 동물들의 편의를 위해 내년 7월 3일부터 역내를 여행하는 애완동물에게 EU 여권을 발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애완동물들은 지금까지 EU 15개국이 각각 발급하던 여권 대신 EU 대부분 지역에서 통용되는 여권을 수의사들로부터 발급받게 된다.

12개의 황금색 별이 원을 이룬 EU 로고가 새겨진 지갑 크기의 동물여권에는 광견병 예방접종 확인 스탬프를 찍는 난이 마련돼 있고 동물의 신원 확인을 위한 마이크로칩과 의료기록이 첨부되며 사진은 선택사항이다.

그러나 동물 검역에 매우 철저한 영국과 스웨덴, 아일랜드는 이 같은 애완동물 EU 여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입국 동물에게 추가 광견병 검역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EU의 애완동물 여권은 개와 고양이, 담비를 대상으로 하며 생쥐와 파충류, 물고기 등은 여권 없이도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

<브뤼셀=AP 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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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다양한 지구촌 모습을 보시려면 위 그림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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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