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학시절 카페에서 공부하는 걸 즐겼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종종 조용한 도서관보다는 사람들로 붐비는 카페에서 오히려 정신집중이 더 잘됐다. 미국에서도 카페와 중고서점이 많기로 유명한 버클리市에서 대학을 다닐 적에 캠퍼스 근처에 있는 카페 서너 군데는 나의 단골이었다. 여기서 단골이라 함은, 하루에 최소한 이중 한곳을 간다는 말이다. Café Roma, Café Milano, Café Codys Books..아직 이 카페들이 같은 이름으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이른 아침(대략 7시)부터 강의가 시작하는 9시 조금 전까지 짙은 원두커피 향과 크루아상(croissant) 냄새에 둘러싸여 The Wall Street Journal과 The New York Times를 읽거나 그날 제출할 과제를 끝마치고 있을 때의 즐거움이 가끔 그립다. 낮에 강의시간 사이에도, 저녁식사 후에도 나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리포트를 쓰거나 가끔은 멍하니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1994년 미국 캠브리지市에서 다시 유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Café Au Bon Pain와 Café Pamplona는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서울생활에서 가끔 아쉽게 느껴지는 점이 언제든지 마음편하게 찾아가 몇 시간이고 주위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이야기들 속에서 나만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카페가 없다는 거다. 가끔 일요일 오후나 저녁에 내가 가는 비슷한 카페가 있긴 하다. 광화문 우체국 옆에 있는 Coffee Bean.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회사관련 일을 하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생각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기도 한다. 옆 테이블에 손님이 가는지 오는지도 의식하지 못하고 몇 시간이고 대중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을 수 있어 좋다. 일요일인 오늘도 저녁에 그곳을 찾았다. 동행한 친구와 함께 구석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다음달 출장계획을 세우고 내일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적었다. 그러던 차에 핸드폰이 울렸다. 학소도 옆집 남자. 아차, 순간적으로 우리 개들이 또 말썽을 부렸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개가 담을 뛰어넘어 옆집으로 놀러 간 것이다. 화난 목소리가 핸드폰 속에서 사라지기가 무섭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달려왔다. 다행히 구구, 서울이, 학순이 모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있었고, 내 마음도 모르고 꼬리를 흔들었다. 다행히 옆집 강아지들을 겁주고 아이들을 놀라게 한 죄밖에 없어, 집 주인을 사정사정해서 겨우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 일로 경찰까지 부른 이웃이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깡패 같은 우리 멍멍이들이 더 미웠다. 하지만 그 미움은 내 앞에서 꼬리를 열심히 흔드는 그 녀석들 앞에서는 어찌 달리 표현할 수가 없으니 참 답답하기만 하다.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더니……나쁜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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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결산하는 학소도의 꽃사과나무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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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한생곤의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렸다.

그의 이야기는 또한 KBS2-TV <인간극장>에 5부작으로 방송되었다.

http://www.kbs.co.kr/2tv/human/vod.shtml

아직 못보진 분은 인터넷에서 꼭 보시길 바랍니다.

[문화] 중고버스로 전국 유랑하는 떠돌이화가 한생곤
삶도 예술도 즐거운 여행처럼

잿빛 어둠 우울히 내려앉은 도시의 한모퉁이, 몽골 기타 샨스로 동요 ‘반달’을 연주하는 이 남자를 보신 적이 있는지. 한생곤(38)이란 이름의 그는 시인이고, 화가이며, 세상을 정처없이 떠도는 유목민이다. 그는 거리에서 산다. 중고 버스에서 잠을 자고, 밥을 지어먹고, 그림을 그린다. 낯익을 만하면 다른 곳, 더 먼 곳으로 버스를 몰아 옮겨가는 그는, “인생은 지구 위의 여행이며, 모든 사상(思想)은 여행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구 위의 여행

서울 방배역 근처 경남아파트 단지 입구. 곱슬머리를 한 모듬으로 묶은 채 오른쪽 겨드랑이에 샨스를 끼고 서 있던 한생곤씨는 “지난 밤은 서울대 정문에서 묵었는데, 바람소리에 잠을 설쳤다”며 맑게 웃었다. 버스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예전엔 종알대는 유치원 아이들을 잔뜩 태우고 다녔을 20인승 노란 색 버스 안은 가난한 대학생의 자취방처럼 어수선했다.

“삶 자체로서의 여행”을 위해 그가 버스에 올라탄 것은 재작년 여름. 7년 만에 완성한 석사학위 논문 때문이다. ‘깨달음의 회화적 수렴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논문은 삶과 예술에 관한 내면의 고백을 치열하게 기록한 것으로, 1999년 당시 서울대 미대에서 가장 잘 쓰여진 논문 중 하나로 꼽혔다.

논문을 쓰려고 그는 서울을 떠나 경기도 포천으로 들어갔었다. 계급론과 민중미술에 회의를 느끼던 무렵. 미술의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 밥 먹고 노동하며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 생계를 잇기 위해 포장마차에서 일했고, 그 사이 두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마침내 얻은 ‘깨달음’의 내용이란 아주 단순했다. “온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합창이며, 낙엽이나 풀 한포기처럼 나 역시 그것의 구성원으로 자유롭고 즐겁게 살아가면 그뿐”. 이후로 ‘나는 화가다’라는 형태적 강박관념에서 훌훌 벗어날 수 있었다는 그는, 포천 집 전세금을 털어 중고버스를 한 대 장만했다.

#반고 선생님

1년4개월 동안 수많은 길들을 쏘다녔다. 배 고프고 오줌이 마려울 때, 흙을 밟고 싶거나 바다가 보고 싶어 버스를 세우면 그 곳이 정착지였다. 라면과 기름을 얻기 위한 한때의 노동조차 행복했다. 페리호에 버스를 싣고 건너간 제주에서는 50일 동안 감귤농장에서 품을 팔았다. 들판에서, 공사장에서 인부들과 함께 일한 뒤 한자리에 둘러앉아 먹는 소찬의 기쁨! 반주 한 잔에 곤히 잠든 농부의 얼굴,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동그랗게 감은 채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상념에 잠긴 노동자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샨스를 만난 것도 길에서다. 버스가 길을 잘못 들어 노숙하게 된 곳이 몽골문화원 뒷마당. 중년의 몽골 여인이 품에 안고 연주하던 샨스의 조형미에 넋이 나가, 주머니 탈탈 털어 악기를 손에 넣고야 말았다.

서툴기만 한 그의 샨스 연주를 가장 좋아하는 관객은 아이들이었다. “뭐 하는 분이세요?” 하고 물으면,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이상한 아저씨. 유명한 화가라곤 반 고흐밖에 몰랐던 아이들은 작은 화첩을 손에서 놓지 않는 그를 ‘반고 선생님’이라고도 불렀다. 때때로 버스 안에서 미술수업이 열렸다. 반고 선생님은 “그림이란 마음을 즐겁게 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소원

‘길에서 얼어죽기 전, 아이가 성냥불을 하나씩 켜면서 ‘아, 따뜻해’ ‘아, 행복해’ 하며 위안을 받았던 것처럼 나는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환상이 외롭고 추운 인생들에 작은 성냥불 하나만큼의 위안이 된다면 그 이상의 바람은 없을 것이다.’(한생곤의 그림노트 중)

그림 그리는 아들을 늘상 ‘미친갱이’라고 부르던 아버지는 아직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류대학을 나왔으면 교수가 되든가, 하다못해 잘 나가는 학원 강사로 돈을 벌든가. “언젠가는 나만의 ‘집’을 갖게 되겠죠. 우리나라 미술계처럼 새로운 사조가 밀물처럼 흘러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런 전셋집말고, 나의 느낌과 생각, 가치관을 밑천으로 토대부터 튼튼히 나의 집을 지을 겁니다.”

길가에 삐죽 솟은 잡초, 줄맞춰 기어가는 개미, 인기척에 깜짝 놀라 날아가는 나비들…. 이젠 귀로 듣지 않아도 자연의 생각을 알아들을 수 있다. 한생곤씨는 가끔 그들에게 묻는다. “너희들도 나처럼 지구라는 별을 여행하고 있니?” 대개는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만 가끔은 곰국으로 보신한다며 웃는 그는, 앞으로 10년은 더 길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튿날 떠돌이화가는 서해의 천수만으로 떠났다. 1년 만에 만나는 철새들에게 그동안 연습한 샨스 연주를 들려주겠다면서.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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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그렇고 유쾌한 농담도 그렇지만, 놀이 또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활동인 듯하다. 직접 참가하는 당사자에게는 물론이고 지켜보는 이에게도 순연한 들거움을 가져다준다. 그 점만으로도 놀이는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는 기쁨의 행위이다. 온 세상은 넓디넓은 놀이터이다. 동물학자들은 동물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새끼 고래가 어미의 꼬리 주위를 맴돌면서 코끼리처럼 둔한 몸짓으로 물 속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물위로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모습, 어린 불곰이 이빨 사이에 꽃을 꺾어 물고 스페인의 무희처럼 거침없이 들판을 가르며 뛰어다니는 모습, 이런 것들을 기록한 연구자들의 글에도 그들이 느낀 기쁨이 드러나 있다……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에게는 놀이가 집단생활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주는 역할도 한다. 어린 동물들은 놀이를 하면서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사나운 성향들이 사라지거나 줄어들게 된다. 히말라야원숭이나 다람쥐원숭이는 생후 삼 개월부터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가량을 놀이에 할애한다. 놀이 시간이 많은 원숭이일수록 성장한 후 무리에 잘 적응한다. 승부 경기를 통해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배우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영장류의 놀이는 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수컷은 맞붙어 싸우는 놀이를 좋아하고, 암컷은 술래잡기 놀이를 좋아한다……

놀이를 발전시키는 핵심적인 요소는 놀이 언어를 개발하는 것이다. 놀이 언어를 통해 동물들은 놀자라든가 좀 천천히 해라든가 장난으로 그런 거야 등의 의사를 표현하게 된다. 놀이 동작 중 상당 부분이 공격 동작과 비슷하기 때문에 놀이를 즐기려는 동물은 자신에게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러한 의도를 밝히는 메시지는 때로 정형화된 형태를 띤다. 강아지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앞다리를 구부리고 엉덩이를 뒤로 뺀다……

인간 또한 놀이를 통해 언어를 익힌다. 갓난아이들은 옹알이를 하고, 걸음마 단계의 아이들은 단어를 조합하는 연습을 한다. 좀더 크면 이야기를 지어내고,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들이나 수수께끼를 통해서 언어 자체를 즐긴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말을 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남녀의 두뇌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어머니가 아들보다 딸과 말은 더 많이 하기 때문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또하나의 특성은 부모와 자식이 놀이를 하면 부모가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다른 동물들은 새끼가 먼저 어미에게 장난을 건다. 그러나 인간의 아기는 한동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가 놀이를 시작해야 한다. 부모는 아기의 발을 흔들고 배를 간질이거나, 열쇠 꾸러미를 짤랑거리고, 노래를 불러준다. 그리고 이도 없는 아기가 잇몸을 드러내며 웃으면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이런 놀이를 통해 유아는 신체와 두뇌에 자극을 받지만, 부모 자신도 지친 영혼의 휴식을 얻는다.

발췌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나탈리 앤지어 지음/햇살과나무꾼 옮김

학소도 막내 <학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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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작품 갤러리 Sklo 오프닝 파티

하버드 동문회 송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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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