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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이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새롭다는 것은 변화, 움직임을 의미하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쪽이면 좋은 것,

그렇지 않고 부정적으로 퇴보하는 것이라면 나쁜 것이겠지요.

그런 변화에는 당연히 위험부담(risk)이 발생하겠죠.

2004년 한해는 또 어떤 새로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입니다.

부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새로움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저희 회사 포르투나2002가 사무실을 이전했습니다.(1월 15일)

회사 창립(2003. 02. 03) 이후 남산에게 지난 1년간 잘 지냈고,

이번에 광화문에 있는 신축 빌딩 '쌍용 플레티넘'(윗 사진)으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남산에서 4계절을 보낼 수 있어서 참 좋았는데,

광화문으로 오니 마치 산에서 도시로 내려온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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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군 북면 백아산(높이 810m) 자연휴양림. 소나무숲으로 유명했던 이곳에 남아 있는 소나무는 9000여그루에 불과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500㏊에 달했던 소나무숲은 80㏊로 줄어든 상태다. 60~70년대 남벌(濫伐)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최근 기온 상승으로 소나무가 참나무 등 활엽수와의 종(種)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화순군의 설명이다.

화순군은 지난 2002년부터 소나무 생육을 저해하는 나무들을 제거하고 고사(枯死)하는 소나무에 영양제를 주사하는 등 긴급 조치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한두희(韓斗熙) 화순군청 산림과장은 “지난 2년간 소나무 보호에 1억원 가까이 썼지만 기온 상승에 따른 서식 환경 악화라는 대세는 감당이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20년 전 소나무는 한반도 삼림의 60%에 해당하는 384만여㏊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온난화 등으로 인해 256만여㏊로 줄었다”며 “이런 추세라면 소나무가 한반도에서 사라지는 등 한반도 전체가 아열대림화될 수도 있다”고 이희봉(李喜奉) 한국나무종합병원장은 말했다.

한반도 주요 산들의 모습이 이처럼 온난화로 인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충북 단양군 소백산(높이 1439m) 국립공원의 천연기념물 244호인 주목 군락도 비슷한 상황이다. 높이 4~20m에, 수령(樹齡)이 대부분 500년을 넘는 주목들의 수가 차츰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3일 소백산 1200m 능선. 1000여그루의 주목들 중 붉은 나무 몸체가 딱딱하게 말라버린 것, 몸통은 죽고 나뭇가지만 간신히 살아 있는 것, 잎이 누렇게 된 것 등 ‘병색’이 완연한 나무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아예 말라죽어 원래 모습조차 짐작할 수 없는 주목만 10여그루가 넘었다.

전문가들은 자연적인 노쇠와 함께 따뜻해진 고산 기후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추운 날씨에 잘 자라는 이들 나무들은 온도가 높아지면 광합성 작용이 어려워져 에너지 생성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 이경준(李景俊)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자연 상태에서 고사하는 숫자가 100그루에 1~2그루라면 온난화로 고사하는 나무의 수는 100그루당 3~10그루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 충북 단양군 소백산 주목군락지(천연기념물 244호)에서도 차가운 기후대에서 잘 자라는 주목들이 따뜻해진 기후를 이기지 못하고 하얗게 말라 죽어가고 있다. /장준성기자
   

온난화로 인한 산림 생태계 변화는 제주도 한라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해발 1300m에서 정상까지 추운 날씨인 ‘아고산(亞高山·고산보다 약간 낮은 지역)’ 지역에서 자라는 구상나무는 현재 그 면적이 7.2㎢로, 쇠퇴하고 있다.

지난 1996년 고사하는 사례가 처음 발견된 이후 개체 수와 면적이 갈수록 줄어가고 있다고 한라산연구소 연구팀장 고정군(高禎君) 박사는 말했다. 한라산 1500~1700m 고지에 68%가 밀집해 있을 정도로 높은 지역에 서식하지만 따뜻한 날씨로 점점 정상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고 박사는 “1000만년 전에는 제주도 해안선에서도 서식했던 구상나무가 이제는 점점 고립돼 가고 있다”며 “따뜻해진 날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지리산 1920m 지점에서 측정한 연평균 기온은 3.7도. 고산 식물이 살기에 적합한 최적 온도 0도 이하를 훨씬 초과한 수치이다.

이에 따라 구상나무와 함께 눈향나무, 시로미, 들쭉나무, 돌매화나무 등 한대성 식물의 분포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반면 소나무, 참나무, 참억새 등 온대성 식물들은 점점 서식 범위를 넓혀 고지대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참억새의 경우 2년 전까지만 해도 1400m 고지에서 발견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어리목에서 백록담 정상으로 올라가는 1700m 지점까지 북상해 있다.

북반구에서 기온이 1도 올라갈 경우 식물은 따뜻해진 서식 환경 변화에 따라 10~150㎞ 북상한다는 연구 결과이다. 또 수직적으로는 143m까지 올라간다. 만일 21세기 내에 4도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에 따르면 한라산은 구상나무뿐 아니라 눈향나무, 시로미, 돌매화나무 등 한대성 식물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대나무나 동백나무, 참나무 등 온대성 식물들이 가득하게 될 수도 있다.

(구성재기자 sjkoo@chosun.com )

(장준성기자 peac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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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사건의 생존자는 있다"
"주인공 외국에…교도소에서 만나 얘기듣고 소설로 출판"

영화 ‘실미도’가 개봉 2주만에 전국 관객 360만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영화에서 실미도 특수부대 훈련병들은 기간병들을 살해한 후 섬을 탈출,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를 향해 가려다가 군·경의 저지로 난관에 부딪히자 수류탄으로 자폭해 모두 숨진다. 공식적인 기록에서도 이들은 1971년 8월 23일 ‘실미도 사건’ 당시 버스 안에서 자폭해 숨지거나, 살아남은 4명도 이후 군사재판을 거쳐 사형이 집행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영화의 원작인 소설 ‘실미도’를 쓴 백동호(49)씨는 지난 1999년 7월 소설이 발간된 이후 계속 “‘실미도 사건’의 생존자는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영화를 세 번 봤다”며 “대체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주인공 ‘강인찬(설경구 분)’을 죽이는 영화의 결말에는 참견하고 싶었다”고 했다. “‘강인찬’의 모델이 된 인물이 아직도 살아있으니까요. 그러나 감독이 그렇게 하면 영화의 비장미가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생존자가 있다는 것은 당신의 주장일 뿐’이라고도요.”

원작은 주인공 ‘백동호’가 1988년 청주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실미도 특수부대원 출신의 죄수 ‘강인찬’을 만나 ‘실미도 사건’의 전말을 전해듣고 출소 후 그 이야기를 소설로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씌어졌다.
▲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던 특수 부대원 24명이 부대를 탈출, 버스를 탈취하고 서울 시내로 들어오다 대방동에서 군경과 대치끝에 진압되었다./조선일보DB사진. 71년 8월23일 촬영
 
백씨는 “‘강인찬’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라며, 자신이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강인찬'의 모델이 된 인물을 직접 만나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주장했다. “지난 1994년 출소했을 때부터 그 때 들은 ‘실미도’ 이야기로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라 내가 진실을 말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까봐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2년간 추가 취재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게 더 확실해지더군요. 당시 그 내부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그 사정을 손바닥 들여보듯 환히 알 수가 없어요.”

 
  ▲ 실미도 특수부대 요원 훈련을 맡았던 공군 기간병들의 모습./ 조선일보DB사진
   
그는 “실미도 사건 당시 ‘강인찬’을 비롯한 3명의 훈련병들은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과 담판을 짓자’는 다수 훈련병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얘기들었다”면서 “3명 중 1명은 실미도 현장에서 다수파에 의해 살해당했고 다른 2명이 달아나 살아남았다. 살아난 두 명중 한 명이 이후 다른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왔다가 나와 만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1971년 8월25일 오후 실미도 무장탈출사건 희생자영결식이 공군본부에서 열렸다./ 조선일보DB사진
   
현재 당시 공군 정보부대 중사로 실미도 특수부대에 소대장으로 파견돼 훈련을 맡았던 김방일(58)씨를 비롯한 기간병 생존자들은 “훈련병 중 생존자가 없는 게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자가 “모든 게 사실이라면 왜 ‘강인찬’의 신원을 밝히지 않냐”고 묻자 그는 “그가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소설에서 제가 쓴 것처럼 워낙 복잡한 과거를 지닌 사람이라서요. 그래서 그가 당시 무슨 혐의로 청주교도소에 입감됐는지도 밝힐 수가 없는 겁니다. 그는 현재 외국에 있어요. 나와는 아직도 연락을 취하지요. 물론 소설을 쓰기 전에 그의 허락을 받았어요. 제가 쓴 소설도 보내줬습니다. 별 말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더군요.”

그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며 “‘강인찬’ 역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싶었을 것”이라고 했다. “실미도 사건으로 죽은 훈련병들의 심정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소설가는 바로 나라고 생각해 소설을 썼다”고 그는 말했다. “돈 없고 빽 없고 힘 없으니 신체적으로라도 강한 사람이 되고싶다는 욕망, 그래서 짐승만도 못한 처우도 감수하며 북파공작부대에 지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불혹(不惑)인 1994년 첫 소설인 자전적 장편소설 ‘대도(大盜)’를 출간했다. 금고털이 혐의로 교도소에서 8년 6개월을 복역하고 나온 직후였다. 고아 출신으로 5살때 입양됐다는 그는 양부모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13세때 가출, ‘거리의 소년’이 됐다고 했다. “열 네 살에 소년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시작으로 폭력, 절도 등으로 계속 교도소에 드나들었어요. 제 인생에서 교도소에 있었던 기간을 따져보니 총 15년입디다.” 그는 “장기간 복역하고 출소를 앞둘 때 즈음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어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나는 죽어간 훈련병들의 영혼을 안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난하고 못 배우고 세상에 상처입어 뒤틀린 그들을 삶을 돌이켜볼 때마다 나는 어쩌면 나 역시 그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겠다 싶어 눈물이 납니다.”

(곽아람기자 aramu@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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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경찰서는 7일 애완용 강아지를 먹자는말을 듣고 격분해 동료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노숙자 서모(39)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씨는 작년 12월 7일 오후 11시께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애지중지 기르던 강아지가 차에 치어 중상을 입은 모습을 본 동료 이모(43)씨가 ‘어차피죽는데 구워먹자’고 말한데 분노해 이씨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씨는 경찰에서 “넉달동안 가족처럼 아껴온 강아지가 사고를 당해 극도로 상심하고 있던 차에 이씨가 잡아먹자고 말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이씨를 때렸다”고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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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Dog!?

전체 차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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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鶴학巢소島도에서 최범석 -